tte[#pg_il_#

분류 없음/2013

스불론, 평범함 속의 은혜

LNCK 2016. 4. 25. 09:05

스불론, 평범함 속의 은혜           창49:13,  4:13, 사9:1, 30:20         13.01.27설교 녹취, 출처

    

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 지경이 시돈까지리로다. 창49:13 

 




오늘 말씀의 제목은 "평범함 속의 은혜"입니다.

창49장 야곱의 12아들에 대한 예언을 살피는 중인데,

오늘은 그 4번째 시간으로 스불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대 그리스 시칠리아에 시라쿠사 라는 도시가 있습니다.

거기에 왕인 디오니시오스 1세 밑에 다모클레스라는 신하가 있었습니다.


다모클레스는 왕의 권위에 대해서 항상 칭송하는 말을 하면서 부러워 했습니다.

왕이면 못할 게 없으니까, 늘 왕의 그 권위에 대해서 좋은 말들을 하면서 부러워하고 있었지요.


하루는 디오니시오스 왕이 다모클레스 경을 불러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가 왕위를 너무 너무나 부러워하는 것 같은데, 오늘 하루 자네를 왕으로 임명 할 테니까,

자네가 왕 노릇을 한 번 마음껏 해보게. 단 오늘 하루는 왕좌를 떠나서는 안되네.”


다모클레스는 너무나 행복 감격해가지고, 왕이 하루를 비워줘서

자기가 이제 왕좌에 앉아서 왕 노릇을 하는데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어요.


제일 먼저 한 일이, 연회를 베풀어라 해놓고 신나게 즐기면서

자기 말 한마디 한마디에 대신들이 움직이고, 무희들이 움직이는 걸 보면서 행복해 했습니다.


아주 거드름을 피우면서 삐딱하게 앉아 있는데, 눈 앞이 반짝하는 느낌이 나서 위를 쳐다봤어요.

그랬더니 앞에서는 안 보였는데, 자기 머리 위를 정확하게

가느다란 실에 매달린 날카로운 칼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거예요.

언제 그게 떨어질지 모르는 무서운 칼날이 자기 머리를 겨누고 있는거예요.


그는 너무나 충격을 받아가지고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야 되겠는데’.

왕과 약속이 있기 때문에 이 왕좌를 벗어나지를 못하고,

하루 종일 왕 노릇을 하는데 간절한 소원 한 가지가

빨리 오늘 하루가 지나서 이 자리를 벗어났으면 좋겠다.’ 그 생각밖에 안했다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는 특별한 자리, 스타가 되고 유명해지는 남다른 자리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의 특별한 좋은 점도 있겠지만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 오르면, 안절부절 못 할 만한 괴롭고 힘든,

   차라리 내가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하는 일도 많이 있습니다.

   오히려 평범하게 있는것이 훨씬 행복할 때가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 '스불론'이란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데

여러분 스불론 이름 들어봤어요? 별로 못 들어 봤지요.


스불론 하니깐 저는 생각나는데, 군대에서 하도 괴롭고 힘든 일이 있을 때

막 속에서 화가 나는데 욕은 못하고 스불론 스불론...스불론 스불론그랬던 기억이 납니다.


   르우벤은 육신의 정욕 때문에 그 모든 천부적인 은혜를 잃어버렸고,

   시몬과 레위는 혈기 때문에 완전히 망하게 되었죠.


   유다는 자기 희생을 통해서 가장 존귀한 왕적인 지위를 확보하게 됩니다.

   왕같이 존귀한 사람, 하나님께 복받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오니까

   사람들이 전부 다 '나도 왕 같이 좀 특별하고 유다처럼 유명해지고, 사자처럼 용맹스러운'

   그것만 복이라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스불론'이라는 낯선 이름, 유명하지 않은 사람.

르우벤처럼 큰 죄도 안 지었고, 그렇다고 유다처럼 엄청나게 희생한 것도 아닌,

그런 사람의 인생도 복이 있을까요? 의미가 있을까요?


도대체 인생이 무엇인가 생각할 때, 우리 대부분은 너무나 평범한 삶이예요.

이 평범함의 인생을 실패라고 생각하고, '나는 유명하지도 않고, 나는 헛살았다'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예요. 평범함 속에 뭐가 있다구요? 은혜가 있습니다.



◑1. 스불론은 '후한 선물로 태어난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스불론'이라는 말의 의미는 '후한 선물' 입니다.


야곱의 첫 번째 부인인 레아가, 여섯 번째 아들로 스불론을 낳았습니다. 창35:23

레아가 너무나 감격해서 이름을 짓기를 스불론이라고 붙였습니다30:20

30:20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누구에게나 굉장히 '후한 선물'로 보내어진 존재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갚진 선물인지 몰라요. '후한 선물입니다'

이렇게 이야기 해도 별로 동감을 안하고, 몇 분만 고개를 끄덕끄덕 하는데

여러분의 가치를 평가절하하면 안 되요. 굉장히 후한 존재고, 굉장히 귀한 사람들이예요.


   왜냐하면, 과학자들이 연구를 했어요. 요새 과학이 많이 발달하다 보니까

   인공심장도 있고 인공 피부도 있고 인공으로 여러 가지를 만들잖아요.

   그래서 도대체 한 사람을 만드는 데 모든 걸 인공으로 만들 때

   머리카락부터 발톱끝까지 돈이 얼마나 들까 하고 만들었어요.


   여러분 얼마나 들 것 같아요? 상상해보세요. 여러분은 얼마짜리일 것 같아요?

   그 조사를 했더니 4조원이 들었어요. 4조원.


   여러분 여기에 한 사람이 앉아있는데, 4조원의 가치가 있는거예요.

   근데 문제는 그 4조원짜리로 만들어놨는데 생명이 없는거예요. 그냥 시체덩어리에 불과한 거예요.


   이안에 생명을 불어넣어야 되는데, 과학자가 어떤 방법으로 해도 생명이 안 들어가잖아요.

   생명은 만들 수도 없고, 어떻게 뭐 방법이 없는거예요.


   결국 우리 각자는 4조원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이 비싼 값이에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사람의 생명이 뭐보다 귀하다구요?

   천하보다 귀하다 !왜냐하면 생명이 있으니까요. 생명은 어떤 값으로 살수가 없으니까요.


여러분이 자녀를 한 명 딱 낳으면은 최소한 4조원은 낳은거잖아요.

엄청난 일을 한 거예요. 유아실에 한명 한명 애들이 4조원이 넘는거예요.


여러분 어휴, 나는 결혼해서 번 돈이 하나도 없어요. 천만에! 애 낳아보세요.

2명 낳으면 8조원 이예요. 엄청난 거잖아요.

여러분, 그래도 생명까지 하나님이 주셨으니 얼마나 귀합니까.


여러분 자녀들한테 이 웬수야하는 말 다시는 하면 안되요.

4조원아해야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몰라요.


정말 여러분 우리의 존재는 스불론같이 평범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얼마나 소중한지요.

스불론은 평범했지만 그 평범한 삶은 완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운데 있었습니다.

얼마나 철저한 섭리가운데 있었냐하면

야곱이 이 예언을 하고 나서 450년 후에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쳐들어가서 땅을 분배받아요.


근데 놀랍게 그 땅을 분배받을 때 제비뽑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450년전에 했던 이 예언의 말씀 그대로 그 장소가 선택이 되었어요.

49:13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근데 이 스불론 지경이 어디냐면 갈릴리부터 지중해 까지예요.

그러니깐 팔레스틴의 중부지역. 광활한 지역이예요.

다시 말해서 450년전에 야곱이 죽으면서 예언했는데

놀랍게 평범한 스불론의 삶이 그대로 예언으로 그 후손들에게 이루어진 거죠.


그러니깐 여러분 우리는 뭐 유다처럼 다윗왕 같은 이런 위대한 분만 하나님께 예언되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에는 스불론처럼 유명하지 않아도

여러분의 삶은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어 있고, 계획이 되어 있고

그대로 진행되는 하나님의 디자인이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계획가운데 있는 아주 귀한 존재들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믿습니까? 잊지 않으셔야 되요.


스불론 이름이 뭐라구요? '후한 선물'이라는 의미이잖아요.

얼마나 후한가요? 다산의 기쁨이죠.

레아에게. 정말 레아는 못생겼고, 남편에게 사랑도 못 받는데

여섯명이나 자녀를 낳으니까 이게 후한 선물. 다산의 기쁨이라는 거죠


출애굽시에 스불론 지파는 장정만 574백명 이었습니다.

민수기 1:31절에 나오는데 40년 뒤에 이제 가나안땅에 입성할 때

민수기 26:27절에 보니까 65백명 이예요.


뭐를 의미하냐면, 그 숫자는 이스라엘 12지파중에서 4번째로 크게 성장을 했어요.

그래서 4번째 예언에 나오도록, 6번째 아들을 5번째 아들을 제치고 끌어올린거예요

갑자기 잇사갈보다 앞에나오는 이유가

예언의 말씀 그대로 평범함속에 번영의 복이 있는거죠.


여러분 우리나라에 호랑이, 늑대는 거의 씨가 말랐잖아요. 영웅같지만, 사자처럼 씨가 말라서 없잖아요.

근데 뭐 토끼, 소 이런것들 씨가 많잖아요. 평범한것은 이 번영의 복이 있는거죠.


   또한 신33:18절에 모세의 축복을 보면, 스불론 지파와 잇사갈 지파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거기보니까 '스불론은 해상무역을 하여 번성하고 잇사갈은 집에 재산을 쌓는다...'


   스불론은 해상 무역을 한다라고.. 이 스불론이 그 대외무역을 많이 해가지고

   그 척박한 생산품이 없는 팔레스타인땅에 다른 지파들에게

   해외에 아주 좋은 물품들을 풍요롭게 후한 선물로 배달하게 되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게됩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이 아무리 평범한 것 같아도 그 누군가에게 이렇게 후한 선물이라는거

얼마나 귀한존재인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있다는 거를 잊지않아야 되요.


   여러분 우리가 키우는 자녀, 내 옆에 있는 친구들 교우들이

  사람들 이웃들이 얼마나 귀한존재인지 알겠지요? 후한 선물들이예요.


   그런데 이 후한 선물을 줄때 보통 우리는 사람이 그 선물을 감당할 수 있을때 줍니다.

   예를 들어서 자동차를 꼬마애가 너무너무나 좋아해요. 그렇다고 자동차 사주는 아빠있어요?

   장난감 자동차나 사주지,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다룰줄을 알아야 자동차를 사줘요.


그런데 생각해보면은 4조원이 넘는 이 엄청나게 귀한 생명을

우리같이 무능하고 인격이 부족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선물로 자녀들을 주시고

친구를 주시고 얼마나 큰 후한선물인지 몰라요.


사실 우리가 친구를 제대로 대접해줘요? 맨날 상처나 주잖아요.

사랑하는 이웃에게 자녀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자격없는 우리에게 너무너무나 후한 선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127:3절에 보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자식은 주께서 주신 선물이요, 태안에 들어있는 열매는 주님이 주신 보상이다.'

여러분 자식은 주님께서 주신 아주 후한 선물인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에 대한 가치평가를 절대 낮춰서는 안되요.

'정말 나는 후한 존재다.' 이것을 잊지않아야 됩니다.


한 목사님에게 딸이 있었는데요. 이 딸이 성탄절 선물을 받았어요.

애들이 너무 좋아가지고 막 선물을 뜯다가 큰 포장지에 있는 빨간 큰 리본을 발견하고

애들이 버리기 아까워하잖아요.


갑자기 무슨생각을 했는지 한참을 찾아보더니 그 리본을 자기 머리위에다 얹고 묶는거예요.

그리고는 아빠 나 좀봐 나 좀봐. 내가 선물이야. 내가 선물이야.”


여러분 자녀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줄을 믿습니다. 저는 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런생각을 했어요.

갑자기 하나님 아버지가 생각이 났어요.

자기 아들을 선물처럼 포장해가지고 구유에 강보로 싸서 우리에게 보내주신거죠.

후한 선물로 주셨어요.


그래서 요3:16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처럼 사랑하사 뭐를 줬어요? 독생자를 주셨다는,

선물로 주셨다는거예요.


예수님께서도 당신 자신을 소개할 때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내게 물좀달라는 이가 누구인들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4:10 


2:8절에도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어요.


여러분 우리에게 구원을 위해 보내주신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선물이예요.

가장 후한 선물이예요.


우리는 그 선물을 다룰줄을 몰랐어요. 영접하지 않았고 귀히 여기지 않았어요.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어요. 그럴줄 알면서도 우리를 위해서 선물을 보내주신

정말 후한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옆에 있는 사람들, 여러분 이 친구들도 얼마나 귀한 후한 선물입니까.

   저는 가끔가다가 제 친구들을 생각해보면

   “하나님 제가 뭔데.. 도대체 나에게 이렇게 귀한 선물을 주셨습니까.”


   왜냐하면 그 친구가 멋있게..또 훌륭하게 지혜롭게 또 많은걸 배우고 갖추어서

   나를 위로하고 나를 격려하고 나와 동행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물질과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서

   지금의 그 인물이 되었는데

   나는 그 친구를 위해서 씨를 뿌린것도 아니고 내가 낳은것도 아니고 내가 만든것도 아닌데

   나와 함께하고 나를 위로하고 내 편이 되어준다는거... 엄청나게 후한 하나님의 선물이지요.


예를 들면 프랑스의 화가 장 프랑소와 밀레 아시죠? 밀레의 그림 <만종> 유명하잖아요,

근데 그 밀레가 지금은 그렇게 유명하지만 그 당시 너무 가난했어요.

땔감이 없어서 찬 작업실에서 손이 얼어가면서 작업을 했고 처자식을 먹일 음식이 없었어요.


너무 가난하게 살았는데, 장 자크 루소라는 그 당시 유명한 친구가 찾아왔어요

어느날. 보니깐 너무너무나 작업실이 비참하고 다 굶고 있는거예요.


루소가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합니다. “내 친구가 한명이 있는데

그 친구가 자네 그림을 하나 꼭 사오라고 하던데 '접목하는 사나이'라는 이 그림 정말 걸작이야.

내 친구에게 팔 수 있겠나?” 했더니 밀레는 얼마나 반가운소리예요.


물론이지.” 그러고는 그걸 가져가고는 봉투를 하나 놓고갔어요.

나중에 장 자크 루소가 가고 난 다음에 봉투를 열어 보니깐 500프랑이라는

그 당시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있는거예요. 그래서 밀레가 너무너무나 고마워했죠.


그리고 며칠있다가 루소의 집을 방문했는데, 거실에 그 그림이 걸려있는거죠.

그러니까 자기 친구가 산다고 해놓고 사실 자기가 도와주고 싶어서

갑작스럽게 이렇게 도와줬던거죠.


여러분 내 형편을 이해해주고 나를 긍휼히 여기고 나를 도와주는 친구가 있다는거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런데 결국 우리의 유일한 친구. 가장 위대한 친구,

나를 위해서 자기의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는 친구가 있다면 예수님입니다.


15:12~17절에 보면 '너희가 내가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다 그러셨어요.

그리고 사람이 친구를 위해 목숨을 버리면 이 보다 큰 사랑이 없다' 했어요.

우리를 위해서 목숨을 버린 친구가 누구예요? 예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는 평범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후한 선물을 줬고

나 또한 후한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마세요.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고백해보세요.

나는 최소한 4조원짜리 후한 선물이다.”

 

       

◑2. 두 번째 우리 평범한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가요?

       그것은 누군가와 "동거"하는 인생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이 스불론의 이름의 뜻이 뭔가요? 30:20절에 보면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거함, 동거)이라 하였으며...


여러분 이 말은 무슨 말이냐 하면, 레아가 워낙 못생겨가지고 야곱이 오질 않는거예요.

만나질 않는거예요. 너무너무 외로워요.

그래서 남편하고 하룻밤을 보내기 위해서 합환채를 준비해가지고

어여쁜 라헬에게 합환채를 주고 오늘밤은 내가 남편을 샀다하고 동거를 하는거예요.

그래서 낳은 것이 잇사갈 이었어요.


그런데 웬일로 잇사갈이 태어난 다음에 야곱이 합환채도 안냈는데 자기를 찾아오는 거예요.

자기를 사랑해 주는거예요. 그래서 태어난 것이 스불론 이거든요.

다시 말해서 스스로 자원해서 자기를 찾아와주는, 그 동거의 감격을 레아는 맛보게 된거예요.


너무나 고마워서 '이제는 남편이 나와 동거하리로다' 하고 이름을 스불론(거함, 동거)이라고 지은거예요.

스불론이라는 것은 "동거"예요.


※위에서 '후한 선물'은, 레아가 스불론을 가리켜 말한 바에 의거, 스불론의 '의미, 가치'라면,

   스불론의 진짜 그 말뜻은 '거함, 동거'입니다.  


▲여러분 평범한 사람들이 특별한 사람들에 비해서 받은 놀라운 은혜중에 한 가지가 뭐냐면

"동거"하기가 쉽다는 거예요.


여러분 사람이요 전문가가 되고 유명해지고 스타가 되면요

그 사람 얼굴 보기도 힘들고 만나기도 힘들고 가족인지 남인지 모릅니다.

그리고 어떤 특별한 예술가라든지 유명한 정치인이라든지 연예인이라든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가족들 만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런데 평범한 사람들은 지겹도록 만나요.


매일 그냥 어디가지도 않고 들어와요. 동거하는 것이 얼마나 특별한 은혜인지 여러분 몰라요.

여러분 우리가 왕같이 존귀하게 사는 것도 대단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매일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거, 이게 얼마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인지 모릅니다.


실제로 스불론 지파는 늘 이스라엘 열두지파와 함께 하는 동거 하는 귀한 은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특별히 사사시대에 미디안 군대 같은 강력한 군대들이 쳐들어 왔을 때 다들 두려워 떨고 있는데

이 스불론 지파만 아주 용맹스럽게 나아와서 자기의 동족들을 지킨 이야기가 삿4장과 6장에 나와요.


이 스불론 지파는 나중에 광야를 지나가게 될 때, 이스라엘이 이제 진을 만들어 가지구요,

사면에 세 지파씩 진이 행진하거든요 근데 이 성막에 동쪽에 세 지파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스불론 지파예요.


근데 이 성막에 동쪽은 뭐를 의미하냐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이예요.

하나님이 함께 하는 곳이었습니다. 성전 문도 정문도 동쪽(해 뜨는 쪽)에 있었던 거죠.


다시 말해서 스불론 평범한 삶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거예요.

일상에 삶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 특별한 곳에 함께 하는 게 아니죠.

그것을 지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구나 다윗이 헤브론의 왕으로 임명이 될 때

사울왕의 네번째 아들인 이스보셋이 아브넬 장군에 의해서 왕으로 옹립되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이스라엘 지파들이 이스보셋을 다 왕으로 모시고 떠받들 때에

다윗은 왕으로 헤브론에서 임명이 되었지만 너무너무나 초라했어요.


그때 놀랍게 스불론에서 5만명의 정예 군사들이 파견이 되서 다윗을 보호합니다.

다윗과 끝까지 함께합니다. 그것을 역대상 1233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스불론 중에서 모든 무기를 가지고 전열을 갖추고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능히 진영에 나아가서 싸움을 잘하는 자가 오만 명이요."


이 말을 잘 보면요 스불론 중에서 아주 정예군사들이 나왔는데 이 사람들은 뭐라구요?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 이렇게 나옵니다.


여러분, 누구와 동거할때에 두 마음 품는 사람하고 만나면요 불안해서 못살죠.

'무슨 꿍꿍이 속이 있을까...' 근데 평범한 사람들은요. 두 마음을 품을 머리가 안되요.

그냥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거지요.

그런데 특별한 사람들, 재주가 비상한 사람들, 똑똑한 사람들은요.

두 마음을 꼭 품고 있다니까요.


그 불안에 동거하는데 언제 깨질지 모르고 동거하는데 속썩임이 있을까봐 불안하거든요.

그런데 이 스불론처럼 평범한 사람은요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고요 한결 같이 함께있어주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왕조와 든든히 살 수 있었어요.


스불론 지파는 이래서 동거하는 은혜를 받았고 하나님과 동거하고 또 이웃과 동거해 주고

이런 복을 누리는 여러분 우리의 삶이 평범하다는거? 그런 은혜가 있어요.

나와 늘 함께해주는 사람이 꼭 옆에 있어요. 하나님의 참 은혜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못생긴 사람은 또 어떻게 못생긴 사람들끼리 잘 지내구요.

또 부자들은 부자들끼리도 친구가 있구요. 조폭들도 심지어 자기네들끼리 친해요.

동거해주는 사람이 있어요. 이 동거하는 사람이 없으면 사람이 견디지를 못합니다.


이 시대가 뭐가 지금 문제냐면요. 성공신화의 노예가 되어 가지고

뭔가 앞서가지고 튀어나와야되고 혼자서 돌출되어야 스타이고 성공이라고 생각을 해요.


근데 성경에 어디 그렇게 나와요? 동거하는 것이 복이예요.

함께 가야되요. 괜히 쓸데없이 선전에 나오는 것을 현실에 착각하지 마세요.


빠름 빠름 빠름 그게 다가 아니예요. 그게 복이 아니예요.

누구와 같이 있을 수 있고 함께 있을 수 있는것이 복이지요.


스피드 우상화 시대에 앞서려고 자꾸 하지 마세요.

같이 가는 훈련을 시켜야되요.

자녀들에게도. 누구와 함께 어울리고 어디가든 외롭지 않아야되요.


연예인들이 자살을 하고 많은 학생들이 자살한 이유가, 함께 하는 사람이 없으면 사람이 견딜수가 없어요.


제가 최근에 읽은 책중에 그런 책이 있었습니다. 그 책의 제목도 아주 독특했어요.

"나는 사랑의 처형자가 되기 싫다." 이런 책인데 책의 내용에.

사람은 생명인자 속에 자살씨앗이 들어있대요.

세포속에 자기 자신을 죽이는 세포를 파괴시키는 인자가 이미 들어와 있다는거예요.


근데 인간은 늘 이 죽음을 직면하며 살고 있기 때문에 두렵다는 거예요.

고통이라는거. 그런데 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뭐냐면 사랑에 빠지는 거래요.

누군가를 깊히 사랑하면 그 사람과 합일되는 기쁨이라는게요.


마치 마약에 취해있는 것 같은 모든걸 잊고 오직 황홀함속에 빠지기 때문에

사랑을 그렇게 갈구하고 누군가과와 연합하기를 원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근데 이 책에서 말하는게 뭐냐면 많은 예가 있는데

그 사랑이 동거할 때는 좋지만 헤어지게 될 때 사랑이 식을 때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치명적인 고통이 몰려온다는 거예요. 인간이 감당하기 힘들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알면서도 인간은 또 사랑을 갈망한대요.

그게 뭐냐면 동거하는 것이 그렇게 의미있고 소중하다는 거죠.


그래서 성경에서 시편 133편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여러분 이 말씀 잘 보세요. 하나님이 복을 우리에게 명하신 것이 뭐예요?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할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거예요.

그냥 혼자서 복받는게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함께 있을 때

그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이 임하고 영생에 천국의 삶이 가능한거죠.


여러분 요새 독신이 많고 트렌드처럼 유행하고 있잖아요.

40대 까지도 독신으로 있고 그 이후까지 독신인 경우 많은데, 연세 많은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러분 결혼 생활이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독신이 좋은것 같아요, 결혼한게 나은것 같아요?

물어본 제가 바보겠지요. (결혼이 낫습니다.)


근데 여러분 실제로 통계적으로 결혼한 사람들이

독신보다도 훨씬 사망률이 낮다는 보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심지어 듀크대학에서 연구하는데서는 2배 이상.


그 다음에 데일리 메일지에서 연구한 조사 통계에 의하면 3배 이상

결혼해서 함께 동거생활하는 사람이 혼자 사는 사람보다 훨씬 안정된 삶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오래 산다라는 통계가 실제로 나와있습니다.


근데 우리나라 심각한 문제가 뭐냐면요. 계속 독신 노인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미혼 노인들의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데 2010년의 통계에 의하면 16746명이 65세 이상인데

미혼으로 홀로 살아가고있습니다.


그러면 2035년에는 몇명으로 추산이 되는가.. 1012443명의 65세 이상의 독신 노인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504프로나 늘어나는 거예요. 엄청난 숫자들이 독신 노인으로 늙어가고 있어요.


여러분 지금 결혼 안 하시면 여러분 자녀들이 결혼 안 하면, 독신 노인이 그만큼 많아진다는 거죠.

이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가 보니까요.


제가 알고있는 한 권사님이 계신데 그분은 미 대사관에서 아주 고위직으로 일하는 분입니다.

얼마나 똑똑하신지 대화를 해보면은 배운것도 너무나 많고 판단력도 빠르시고 정말 지혜로우신 분입니다.

사회적인 지위와, 물질과, 지식과 모든걸 갖춘분이죠.


근데 이분이 너무너무나 교회에서 중요한 일을 하고 계신데

어느날 갑자기 오셔서 눈물을 흘리시면서 "목사님 제가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습니다."  

"권사님, 무슨 소리를 갑자기.. 지금 직장은 어떻게 하시구요?"


그랬더니 하시는 말씀이 당신 남편이 젊었을 때 오래전에 돌아가셨는데

자기가 출장을 간 사이에 이 분이 베란다에서 혼자 쓰러지셨는데 돌아가신거예요.


자식이 없었고, 근데 출장갔다와서 보니깐 돌아가신지 오래된거예요.

그 상처가 있는데 혼자 지금 살면서 자식이 없이 살면서 불안한거예요.


교회에서도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고 중요한 일을 하고 직장은 미 대사관에서 일하면서도

혼자있는 것을 견딜 수가 없어서 미국에 살고있는 여동생, 조카들에게 전화를 해서

"나랑 같이 살 수 있겠냐.. 내가 가도 되겠냐." 했더니

"언니가 오세요"라고 해서


"내 마지막이 혼자 있는것이 너무나 두려워서 내 누이동생에게로 가게 되었노라"고

울면서 정말 가기 싫은데 한국이 너무 좋은데 모든걸 버리고

나와 함께 마지막 내 죽음을 지켜볼 사람이 있는곳으로 갈려 그런다고 그렇게 이야기 한 걸 들었어요.


▲여러분, 우리 인생에서 정말 영원히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동거의 복이 따르는 것 너무나 중요해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 있습니까. 뭐가 성공입니까?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될 것이 있다면 남편도 아내도 결국은 우리와 함께하지 못해요. 다 떠나가게 되요.

사고든 죽음이든 여러가지 일로 자녀도 영원히 내 품의 자식이 아니죠.


결국 나와 영원히 함께 하기를 진정으로 원하는 거는 하나님 이시죠. 예수 그리스도 이십니다.

그래서 요14:2절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예비하면 다시와서 너희를 나와 함께 있게 하겠다. 이 말은 무슨말이예요?


예수님께서 너희들과 영원히 함께 있고 싶어서 내가 하늘나라에 가서 미리 집지어 놓고 기다린다.

다 준비해 놓은 후에 너희를 데리러 오겠다 그러셨어요.


여러분 예수님의 소원은 우리와 함께 있는거죠.

그래서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예언의 말씀을 따라서 마1:23절에 보면

예수님의 별명이 나와있죠. 보라 처녀가 잉태햐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뭐라고요?

임마누엘이라'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결국은 인생의 최종적인 완성이 뭐냐?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영성의 최고의 단계 추구하는 단계가 뭐냐?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삶이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그 복을 지금 스불론이 누리고 있는 것, 평범한 사람들이 누리고 있는거예요.


이것이 얼마나 예언가운데 이루어지고 있는지 보세요.

이사야서 9:1절에 보면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730년전의 예언입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그랬어요.


여러분 하나님이 영화롭게 했는데 예전에 멸시를 당했는데, 그 스불론 땅이 나중에 영화롭게 된다는 거예요. 왜 영화롭게 될까요?

그것이 이 예언이 나온다음에 730여년 후에 예수님의 삶을 통해서 입증이 됩니다.

그 내용은 바로 이런것이지요.


4:13절 이하로 부터 계속해서 이 스불론이 나옵니다.

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자 예수님 어디에서 사셨다구요? 그 스불론 땅. 그 해변에 가서 사셨다... 여러분 놀랍지 않아요?

그 예언의 말씀이 있는데 그 임마누엘 예수님이 오셔서 스불론에 동거하는 그곳에 가셨다니.


사실 그 스불론 땅은 갈릴리 지역이잖아요. 그 곳에 정말 가난한 사람들만 있는 외진 곳 아니예요.

근데 바로 그 평범한 사람들이 있는 그 곳에 가셔서 다시 한 번 13절에 보시면 이렇게 나와요.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리로다. 창49:13 


배 매는 해변이라는 게 뭐예요? 지금 어부들이 작업하고 있는 곳이라는 거예요.

직장이라는 거예요. 삶의 현장속에 예수님이 살기 위해서 가셨어요.


자라나신 곳 나사렛을 피해서 낯선 땅 스불론으로 가셔서

예언의 말씀대로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같이 동거하신 거예요.


이 갈릴리 지역에는 세폴리스 라는 어마어마한 헬라 도시가 조성이 되고 있었어요.

예수님 태어나시기 전부터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이 목수로 일하면서

엄청나게 많은 대공사가 진행되서 최고의 신도시가 헬라식으로 건설이 되있었거든요.


근데 예수님이 놀랍게도 성경에 예수님의 생애를 보면 단 한 군데도 세폴리스라는 도시 이름이 안나와요.

근데 고고학적으로 이미 밝혀져 있는, 다시 말해 예수님은 이 스불론 땅 갈릴리 해변을 다니시면서

우리와 함께하신.. 평범한 사람들과 늘 동행하는 사셨다는거죠.


여러분 놀랍게도 마14:4~17절을 보면은 예수님의 복음의 전파가 어디서 부터 시작되었냐

스불론 땅에서 시작이 되요.

천국의 복음이 천국이 어디서 부터 시작되냐..

평범한 삶속에서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우리 인생을 통해서 시작된다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헤롯 궁전의 왕자로 태어나지 않았던거죠.

우리의 삶의 현장 그냥 평범한 것 같고, 지루하게 매일 설거지하는 것 같고,

매일 상사에게 혼나는 것 같은데 그 삶의 자리가 하나님과 동거하는 위대한 자리인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전도자 요한 웨슬레가 아주 위대한 말을 했습니다.

"The best of all is God with us."

'우리에게 가장 최고의 일(또는 복)이 뭐냐?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는 거다.'


   여호수아 19절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이게 최고의 복이라는 거예요.


예수님이 우리와 이렇게 함께 하시기 위해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평범한 삶으로 일상으로 내려오셨습니다.

그럼으로 여러분 여러분의 일상이 평범함속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가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것은 영성의 최고의 단계, 놀라운 복인 줄 믿고

늘 감사가 넘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3. 세번째, 노략당할 위험이 있는 존재입니다.


이 평범한 삶이라는 것은 그 만큼 위태롭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가 임하지만 그 은혜를 잘 지켜야 됩니다.

그것은 자신의 분수를 알고 경계를 알아야만 하지요.


다시 한번 13절 말씀 읽어보겠습니다.

스불론은 해변에 거주하리니 그 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그의 경계가 시돈까지 리로다.


여기 그 경계가 있다는 거죠. 행복하고 평범한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이 내게 경계로 설정해 놓으신거예요.

넘어서서는 안 되는 그런 영역이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이 후한 선물을 주셨고,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많은 동거의 은혜가 있지만,

그 속에서 안일하게 생활해서는 안되고, 자신의 자리를 지킬 줄 알고. 경계선을 그어놔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제 "그 경계선은 시돈까지 리로다" 했잖아요.

그 시돈이란 이름의 뜻이 뭐냐면, 노략물이라는 뜻 이예요. 후한 선물이 노략당할 수 있다는 거예요.

경계선이 무너지면 바로 노략물이 되버리는 거예요.


하나님 내게 주신 그 후한 것을 다 빼앗기고, 하나님과 동거하는 것이 깨질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 경계선은 시돈이리라. 이 말을 잊지 않아야 됩니다.


이 시돈이라는 곳이 왜 우리의 모든 후한 선물을 무너뜨리는가요

이 시돈은 베니게의 옛 도시 이름이죠. 여기는 엄청나게 상업이 발달한 도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돈땅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는 우상숭배 지역이예요. 이방 지역입니다.


결국은 솔로몬 왕이 이방 왕족과 정략결혼 하면서 시돈에 있는 첩들을 데려오게 되고,

나중에 아합 왕이 시돈 왕의 딸 이세벨을 들여오는 바람에

이스라엘의 바알 숭배가 아주 공식화 되버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극도로 타락하게 되죠.


그때부터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과의 동거가 깨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이 떠나게 되고, 그 경계가 무너짐으로 말미암아서 후한 선물들이 다 저주로 바뀌게 됩니다.

엄청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지만,

크리스천으로써 내가 하지 말아야 될 것과 할 것이 분명히 선이 그어져있어야 되요.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동산의 복을 주시고 후한 선물을 주시고, 각종 실과 나무 니 마음대로 먹으라 했지만,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먹지 말아라. 먹는 날엔 죽으리라 그랬잖아요.


그 경계선을 허물고 하나님같이 되려고 하고, 교만해져서 결국 자기를 우상화 한 거지요.

그래서 결국은 쫓겨나는 거 아닙니까.

선물 다 잃어버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떠나서 동거를 잃어버리게 되는거죠.


그것이 우리 인생이예요. 평범한 삶을 살 때 은혜와 감격이 넘쳐가 되겠지만, 여러분 꼭 잊지 말아야 되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안되요. 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되요. 절대 우상화 해서는 안되요.


내 자신이 우상화 되서도 안되고, 남을 우상화 시켜서도 안되요.

여러분 오직 하나님을 경외해야 되요. 그 것은 평범함 속에 있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캐나다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서 당대 거부가 된 사람 중에 깁슨이란 사람이 있습니다.

이 깁슨이란 사람은 처음에 물레방앗간의 심부름꾼으로 일하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모릅니다.

언젠가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해서 아주 훌륭한 사람이 되리라는 결심 때문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그래서 마침내 거부가 되는데 산림으로 2만 에이커, 철도 280마일을 소유하는 거부가 되게 됩니다.

어느 날 인터뷰를 위해서 찾아온 기자가 물어봅니다.

"그렇게 훌륭한 삶은, 거부가 되는 비결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랬더니 깁슨은 아주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합니다.

"첫째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말것. 두번째 수고하는 것을 싫어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할 것.

셋째. 하나님을 믿고 매사에 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나니깐 기자가 너무 기가 막혀서

"지금 그렇게 거부가 되는 특별한 노하우가 있어야 되는 거 아니예요? 그런데 너무너무 평범한 이야기에요.

아니 그거야 누구나 하는 평범한 이야기 아닙니까?"


그때 깁슨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 못 됩니다.

누구나 다 아는 평범한, 평범한 일이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에 특별한 것이 없어도, 기본적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평범하게 순종하고 살면요

그 평범함 속에 비범한 은혜들이 담겨져 있는거죠.


그걸 실천하지 않고 말씀의 경계를 넘어가고 범죄하니깐 평범한 사람이 힘들어 지는거죠.


여러분 이미 특출하지 않아도 평범함 속에 있는 후한 선물들 마음껏 누리시고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여러분의 매일매일의 삶이 복되고 행복한 것. 깊이 느끼시고,

이 시대에 다들 튀어 나올려고만 해서 상처투성이인 이 시대를

치유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시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결단의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기도 시작/ 하나님! 나는 그 동안 헛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남긴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내 존재 자체가 이렇게 소중하고 내 자체가 후한 선물이고,

내 자식이 후한 선물이고, 내 이웃이 선물인 것 깨닫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그리고 주님과 동거하고 가족과 동거할 수 있고,

형제와 동거할 수 있고, 교우들과 동거할 수 있는 은혜주신 것 너무나 감사합니다.


무엇보다 영원히 주님과 동거하게 하시고, 주님이 정하신 경계선 넘지 않게 하시고,

이 시대에 너무너무나 스피드의, 또 성공의 노예가 되어있는데

이 시대를 복음으로 치유해 주시고 평범함 속에 있는 놀라운 은혜를 마음껏 누리는 저희가 되게 해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신 은혜를 마음깊이 새기기를 원합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 마음에 있는 교만함과 허망한 생각들을 다 내려놓고

일상을 비범한 은혜속에 살게 하여 주시고

작은 일에 감사하게 하시고, 내 자신을 용납하고 귀하게 여겨 사랑하게 하시고,

감사가 넘치는 심령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 각 사람을 붙잡아 주시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저희가 서로 동거하고 함께하는 기쁨을 맛보게 하여 주시고 그 은혜를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과 영원토록 동행하는 저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다시는 원망하거나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무엇보다도 경계선을 분명히 갖게 하여 주셔서

절대로 하나님 낙심하지 않게 범죄하지 않게, 시험에 들지 않게 분수를 알게 되기를 원합니다.


평범함 속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며 복을 누리는 저희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치유하시고 위로하시고 섬기시는 주님. 우리에게 찾아오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 그 귀한 예수님을 우리에게 후한 선물로 주시고,

한 알의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우리를 섬기시고 우리와 동행하시고 임마누엘 함께하신 은혜 감사합니다.

이 은혜 마음껏 누리고 주님 말씀따라 순종하여 평생 평범함 속에 있는 비범한 은혜를 누리는

복된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타자 KBH

'분류 없음 > 2013'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짜와 가짜  (0) 2016.06.07
십자가로 승리하는 삶 P1 / 허운석  (0) 2016.06.04
희생의 신비  (0) 2016.04.11
성만찬   (0) 2016.03.26
보라 이 사람을  (0) 2016.03.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