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로 승리하는 삶 P1 갈5:24~26 13.01.15 아래 설교 녹취
갈라디아서 5장 24절로 26절까지 읽겠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아멘.
우리 한절 더 읽겠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27절입니다.
27.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 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아멘.
▲제가 드리는 말씀은 조금 듣기가 힘이 드시죠? 괜찮아요?
제가 전에 어느 미국 어느 교회에 가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 많이 헌금하시고 많이 봉사하십시오. 그러면 그 대가로 무엇을 받을까요?
지금까지 여러분들은 봉사하고 헌금 많이 해서, 하나님에게 무엇을 받았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축복을 많이 받으셨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교회에서 말하기를 ‘봉사 많이 하고 헌금 많이 하면, 하나님께서 복 많이 주신다...’
그런 얘기 많이 들으셨죠? 그래서 복 많이 받으셨습니까? 축복 많이 받으셨습니까?
왜 대답을 안 하세요? 못 받으셨나 봅니다. 그죠?
제가 또 이런 얘기도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봉사 많이 하고, 헌금 많이 하고, 여러분들이 복 받은 것이 무엇이냐 하면,
여러분들 속에 있는 악이 튀어 나왔다는 것입니다. 악을 봤다고 하는 겁니다.
헌금 많이 하고 봉사 많이 하면, 우리가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우쭐거리고 싶고, 남이 좀 나를 알아줬으면 좋겠는 거예요.
근데 남들이 나를 안 알아주잖아요.
그러면 핏대가 서고, 또 뭐가 생깁니까?
시비가 생기고 화딱지 나는데.. 그런 것을 발견하는 축복을 받는다는 얘깁니다. 할렐루야.
그런데 거기서 그렇게 봉사, 헌금했는데도,
칭찬도 못 받고, 인정도 못 받으면.. 철새교인이 되는 거죠. 그죠?
‘에이씨, 아무도 나를 안 알아줘.’
그래가지고 목사님한테 시비 붙고, 옆에 있는 사람한테 시비 붙어가지고 교회를 떠나는 거예요. 그렇죠?
그런데 한국 교회는 별로 그런 것 같진 않은데, 미국 이민교회는 많이 그래요.
한국 교인들도 그럴 것 같아요. 우리의 본성은 똑같으니까요.
우리가 헌금 많이 내보세요. 내 악이 발견이 됩니다. ‘나를 안 알아줘?’하는 악 말입니다.
봉사 많이 해보세요. 내 악이 들추고 쑤시고 나옵니다. ‘내가 최고네’ 하는 교만 말입니다.
그래서 그 복 받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나 됨을 볼 수 있다고 하는 그 놀라운 축복을 받는 겁니다. 할렐루야.
놀라지 마시옵소서. 기뻐하세요. 그 들키는 재미가 보통이 아닙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본성을 들킬 겁니다.
내 속에 숨겨져 있는 그 수 만 가지의 그러한 죄들이 들키는 역사가, 죽을 때까지 있을 겁니다.
▲사람들이 ‘허 선교사님은 별로 그렇게 근심이 없을 것 같은데..’ 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많이 십자가로 처리 되셨으니까 참 좋으시겠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요, 저도 날마다 수없이 들키는 행복 속에서, 제 얼굴이 날마다 훤하게 빛이 나는 겁니다. 할렐루야.
들키는 것만큼, 그래서 자기 죄악의 실상을 깨닫고, 주님께 회개하고 돌이키는 만큼
얼굴이 훤해지는 겁니다.
율법 안에 있는 사람은 들키는 것마다 쭈그러듭니다.
이게 율법과 은혜의 차이입니다. 할렐루야.
아직까지 주님의 보혈을 믿지 않고, 자기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그런 확신이 없는 사람은
들킬 때마다 쪼그라들어가지고 정죄로 빠집니다.
성경에 디도서에 보면, ‘스스로 정죄하는 자가 이단이다.’ 이렇게 기록이 되어있어요.
딛3:11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
스스로를 정죄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정죄하는 거잖아요, 그죠?
그러니까 무엇을 내 속에서 정말 죄를 발견한다던가
그러한 불순함과 부패된 것이 발견될 때,
율법아래 있는 사람들, 아직까지 주님의 보혈을 씻김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를 정죄하게 됩니다.
‘오, 주님 제가 또 범죄했습니다. 아, 주님 제가 또 잘못했습니다.’ 하고
자기를 너무너무 괴롭히는 거예요.
그러니깐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면
‘아직까지도 내가 쓸 만한 사람인데. 실수를 했구나’
이 사람은 아직도 상당히 스스로 의로운 사람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썩고 부패했는지 아직까지도 생각을 못하고 있는 형편이죠.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상황을 보내셔서
내가 얼마나 썩고 부패했는지를 주님께서 많이많이 보여주시는 겁니다.
▲그런데 은혜 안에 있는 사람들, 자유함을 얻은 사람들은
그러한 부패됨과 그리고 불손함과 죄가 내 속에서 발견될 때마다 한편으로 기뻐합니다.
왜냐면 숨겨져서 주님을 거역했던 것이, 이제 뽀록이 나서 겉으로 드러났으니까 말이죠.
‘아 주님 또 들켰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래서 겸손할 수 있는 겁니다. 할렐루야.
겸손으로 나아가는 겁니다.
‘와, 주님 이런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참으시고
이때야말로 주님께서 들추어내셔서,
아마 얼마 전에 들추어내셨으면 믿음이 없어서 까무러쳤을 텐데
지금까지 주님께서 잘 기다려 주셔서,
이제 무르익어 가는 그 순간에 들추어내셔서,
나의 나됨을 보여주심으로 나를 겸손케 하시니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요한 사도가 이런 얘기를 했어요. ‘하나님의 계명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되..’ 그렇죠? 요일5:3
근데 예수님 믿는 사람의 99%는 아마 너무너무 힘이 들어가지고
그냥 헉헉 거리며 우리가 이러고 살고 있죠, 그죠?
왜냐하면 아직까지도 자기가 얼마나 썩은 부패된 사람인지를, 못 봐서 그래요.
그래서 하나님이 지난번에도 말씀드렸지만
하나님은 환경과 사건을 일으키셔서
나의 밑바닥까지 하나님께서 들춰내셔서
나를 내 자신에게 보여주신다는 거예요.
그럴 때마다 우리는 주님 앞에 나아가서
‘예, 주님. 제가 이런 사람임을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나는 주님이 필요한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 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악할 뿐입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 가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이 죄인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그럼 뭐라고 말해야 됩니까?”
“이제는 ‘죄인’이라는 소리가 하도 우리가 그거 많이 들어가지고
그냥 이렇게 감각이 없어졌어요.
이제는 뭐라고 우리가 주님 앞에서 무슨 고백을 해야 하느냐,
‘하나님 나는 악독한 인간입니다.’ 그러면 조금 느낌이 오는 것 같아요.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이게 아니라
‘주여 나는 악독한 존재입니다. 악독한 사람입니다. 악독한 인간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조금 감을 잡는 것 같아요. ‘맞어, 나랑 조금 맞는 것 같아!’”
그래서 주님 앞에서 깜짝 놀래가지고
“주님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아주 악독한 죄인이 맞습니다.”
이렇게 슬슬 깨어나는 것 같습니다.
이제 여러분들은 “주님 나는 죄인입니다.” 이런 소리 하지마시고 어떻게 하라고요?
“주여 나는 악독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 같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저 악일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죽음을 허락하시느냐?
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된 죽음을 살게 사시느냐 하면요
우리가 어느 정도, 그래도 우리가 고칠만한 어떤 여지가 있었으면
주님께서 그 말씀을 안 하시고, 예수님도 안 돌아가셨을 거예요. 그렇죠?
그러나 우리는 완전히 부패되어서, 어떻게 고칠 수가 없는,
죽음밖에는 죽음으로써 다시 살릴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라는 겁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주님은 우리에게 아주 죽음을 주시는 겁니다.
이것을 여러분들이 꼭 아셔야 됩니다.
우리가 로마서 6장으로 한번 가겠습니다...
◑그 전에, 제가 어떻게 선교사가 되었는지, 조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가 23살에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그 전에 저는 어머니가 7살 때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17살 때 돌아가셨는데
그러니 새어머니와 함께 살게 되었어요.
그런 가운데서 제가 생에 대한 그런 불의함을 느끼는 거죠.
내가 까닭도 없이 이러한 대우를 받는다는 것.
그리고 약한 자로서 받아야 되는 그 아픔들.
‘도대체 내가 왜 이런 것들을 겪어내야 되는가?’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늘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조물주가 계시다고.’
저는 23살에 믿었으니까, 그 전에는 예수님을 몰랐죠.
‘조물주가 계신데 왜 세상이 이럴까?’
거기에 대한 아픔이 너무나 커서, 일찌감치 저는 ‘사는 것 보다는 죽는 것이 훨씬 좋겠다.’
이런 생각 속에서 성장을 했습니다.
이제 좀 더 사춘기를 지나서, 한 19세 정도 되었을 때, 죽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때 당시에 생각을 해보니까, 이렇게 의미도 없이 목적도 없이 산다고 하는 것은
너무나도 끔찍하고 정말로 끝없는 고통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가 이제 한번 죽는 시간도 가졌었고요,
그러다가 제가 23세살 때 어느 분이 저를 전도를 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 졸업식에 저를 데리고 갔는데
이제 그분이 저를 전도하려고 애를 많이 썼었는데, 제가 말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그 졸업식에서 그 학장께서 설교하시는 것을 제가 듣고 조금 반응이 와서
그때 제가 명동에서 1976년도 어느 날에 생맥주를 마시면서
‘왜 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세상이 이렇게 고통밖에 없느냐. 그리고 이렇게 불우하냐.’
그랬더니 그분이 ‘저한테 마귀가 있어서 그렇다’고 그랬어요.
제가 그 말을 듣고 너무나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렇지. 그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만들어 놓으시고 이 지경으로 해 놓으셨겠나.
아, 그 마귀란 놈이 그 짓을 했구나...
그러면 내가 예수라는 분에게 가면, 그분이 왜 이 지경이 되었는지 가르쳐 주시겠구나’
해서 그 다음 주에 제가 교회를 제 발로 찾아나갔습니다.
찾아나가서 한 달이 되었을 때, 제가 하나님 앞에 목숨을 다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오늘 저녁에 나를 죽여주시든지 요절을 내주십시오.
나는 더 이상 이런 삶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내가 이렇게 살수는 없습니다.
그러니깐 하나님, 오늘 저녁에 새로운 피조물로 만들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딱 끝내주십시오.’
그러면서 기도를 하다가.. 기도가 나오겠어요? 한 달 밖에 안 된 사람이?
그러다 보니까 너무 내 자신이 미운 거예요. 그래서 막 땅도 때리고 막 날 때렸어요.
너무너무 내가 미워서요.
왜냐면 하나님 앞에 나오니까, 내가 스스로 싫은 거예요.
내 모습이 너무 감당할 수가 없고, 이렇게 거지같은 이러한 모습이 아닐 텐데..
그 처절함속에 그렇게 울면서 밤새 기도하였을 때, 제가 방언을 받았습니다.
그 다음부터 완전히 돌아가지고 새벽기도를 나가는 거예요.
그 교회에 그때에 새벽기도가 없었습니다.
제가 그 당시 핸드볼 선수였었는데, 그래서 좀 운동을 할 줄 알아요.
그래서 담을 뛰어넘는 걸 잘해요.
그래서 교회 담을 뛰어넘어서, 혼자 가서 새벽기도를 하곤 했습니다.
그때에, 그 주님을 만난 그 행복 때문에,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때 주로 제가 금식하며 철야하며,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오래 시간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나서 이제 제가 대한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믿은 지 1년 만에.
그리고 이제 제가 예수믿는 것 때문에, 집안에서도 나왔어야 되었고,
그러면서 길거리의 삶을 살기도 하고,
얼마나 배가 고프고, 얼마나 무정한 시간을 보냈는지 모릅니다.
그때에 직장을 그만뒀었는데,
다시 혹시 분식점에라도 취직해서, 밥을 조금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너무 배가 고팠으니까요. 신학교 다닐 때에 말입니다.
그런데 인물이 너무 출중하다고, 분식점에서 안 받아주는 거예요.
너무 똑똑해 보이고 그러니까, 여기서 일할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취직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저는 밥을 굶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잘 곳도 없이, 교회에 가서 엎드려 있다가 학교가고,
차비가 없으면 그냥 걸어 다니고,
그러다 보니까 무릎이 하도 약해져서 뼈가 삐그덕 소리가 날 정도로 쇠약해지기도 하고 그랬습니다.
어떻게 제가 신학교 4년을 마쳤는지를 모르겠어요.
누가 등록금을 해주는지, 저는 그저 날마다 철야하고 우는 일이 제 일이였어요.
정말 그럴지라도 제가 세상으로 나가지 않겠다고 하는,
내가 죽으면 죽었지 주님 앞에서 죽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을 가졌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주님 앞에 홀로 살고 싶었어요.
▲그랬는데 저희 남편이 저가 좋다고 3년을 따라다녔습니다.
저희 남편이 제보다 세살 아래 이시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정말 너무나 기가 막혀 가지고
제가 너무 자존심도 상하고, 그렇게 젊은 사람이 날 따라다니니깐...
아 그래서 저는 처음에 상대도 안했어요.
그런데 남편이 군대를 가기 전에 저한테 청혼을 했습니다.
이제 그래서 청혼을 했는데 그때 이런 얘기를 저한테 했어요.
자기가 선교사가 되야 되니깐 미8군에 떨어졌으면 좋겠대요.
거기 카튜사 부대에서 영어를 배우면, 장래에 선교사로 나가는데 도움이 되니까,
자기가 카튜사에 배치 받을 수 있도록.. 저보고 기도를 해 달랬습니다.
그래서 제가 열심히 기도해 줬어요. 그랬는데 정말 거기 카튜사에 들어갔어요.
그 전에는 제가 이렇게 바랬어요.
‘저 사람은 막내 티가 줄줄 나니깐, 저 최전방에 떨어져서 고생이나 진탕해야
좀 어린애 티를 벗지 않겠나..’
이제 속으로 그렇게 제가 나쁜 마음을 먹었었어요.
그랬는데 하나님은, 어떻게 되었는지 기도에 응답하셔서
남편이 미8군 부대에 채플린 어시스턴트로, 미군 군목의 비서로 배치 받았어요.
그래서 석달 만에, 한남동 미8군 종교수양관에 자기를 면회 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너무 어이가 없어서,
제가 면회를 가서 ‘오늘은 정말 끝장을 내겠다. 절교 선언을 확실히 할 것이다.’
이래가지고, 한남동에 미8군 종교 수양관에, 제가 씩씩거리고 찾아갔습니다.
그랬는데 그 사람이 그 날 보니깐, 미군 군복을 입었는데, 좀 이쁘게 보이더라고요.
당시 한국 군복은 좀 멋이 없었는데, 미국 군복은 아주 멋이 있게 보였습니다.
그러니깐 사람이 한 인물이 나 보이더라고요.
이제 가서 제가 ‘더 이상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나하고 결혼할 수 없는 것 알지 않느냐고,
나하고 결혼하면 나는 주님을 위해서 살아야 되기 때문에 굉장히 고달플 거니까
제발 좀 그만 두라’고 그랬더니
그가 카튜사 모자를 이렇게 쪼글쪼글 접으면서
‘왜 자기가 그렇게 싫으냐’고 물어봤습니다.
그래서 제가 긍휼이 많은 사람이예요.
그 말을 하는 바람에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너무 가엾은 마음이 들었어요.
‘이제 자기가 나하고 결혼을 안 하면, 혼자 살기로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대요.’
그래서 제가 얼마나 하나님에 끔뻑 죽는 사람인데,
그 말을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어요. 그걸 믿은 거죠. 혼자 살 거라 하는 말을.
그래서 그 말을 듣고 너무나 놀래가지고, 집에 돌아와서 혼자 철야를 하는 겁니다.
철야를 하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여자’라는 걸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은 ‘성경이 말하는 여자는, 너는 모른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성경에 여자를 만드신 이유에 대해서 쭉 설명을 해 주시는 거예요.
저는 너무나 충격을 받아서 ‘어, 그러면 시집을 가라는 건가?’
이렇게 해서 좀 더 깊이 기도를 했어야 되는데,
그냥 나 혼자 그런 가 해가지고, 김밥 싸가지고 미군부대에 찾아가서
‘내가 그럼 시집을 가겠다’는 말을 하려고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편 김철기 선교사, 당시 신학생과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때만 해도 제가 굉장히 금식하고 철야하고
늘 말씀에 집중했기 때문에, 굉장히 주님과 교제가 깊었었습니다.
정말로 그냥 때때로 제 영혼이 탄로 나기도 하고,
가서 주님을 뵙기도 하고
그러고 듣기도 하면서 주님이 저에게 조곤조곤 얘기도 하시면서
어떤 그런 굉장히 순수함이 있었습니다.
그때 당시에 한국교회에 여종들이 굉장히 기도의 제단을 많이 쌓았고,
그러면서 그 여종들이 저의 순수한 것 때문에, 그분들이 저를 보기를 사모했다고 그래요.
그런데 제가 결혼을 하고 나서 시험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혼자였을 때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던 제가.
그리고 늘 어떤 것에도 두려움이 없었고, 어떤 것에도 죽으면 죽으리라 나갔으니까요.
없으면 안 먹고, 차비가 없으면 걷고,
주님이 자지 말라 그러면 안 자고 철야기도하고.. 그렇게 잘 했는데
남편이 생기고, 가정이 생기니까.. 그런 개인 경건생활에 아무래도 지장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저희 남편이 너무나 믿음이 좋으셔서, 아내를 밥 먹여 줄 생각을 안 해요.
결혼을 했는데, 책가방만 들고 학교만 가시는 거예요.
그러니깐 끼니 걱정은 누가 해야 되요? 내가 해야 되요.
그리고 남편은 등록금 걱정도 안하세요.
지금 생각하니까 믿음이 너무 좋으셨던 거예요.
그런데 내가 믿음이 없어가지고, 근심에 빠진 거죠.
누가 (애 낳아서) 학부형 되라 그랬어요?
그런데 혼자 학부형이 되가지고, 애 키우느라고 그렇게 고민을 하고..
그래서 기도하다가 응답도 안 되니까..
만약 응답이 안 되면 한 학기 쉬면 되는데, 남편이 사람들을 찾아가는 거예요.
그러니깐 우리가 얼마나 초라해졌겠어요. 주님이 얼마나 싫어하셨겠어요.
그때 신혼 때, 시험에서 나는 많이 넘어졌습니다.
결혼해서 자식을 낳았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예쁜 것도 입혀주고 싶고 그런 마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쓰잘데없는 마음인데, 그 하잘 것 없는 것인데,
그런데 그 때는, 또 마음이 안쓰럽고, 편하질 않았죠.
정말 그 아무것도 아닌 그 덫에, 제가 그렇게 초라해졌어요.
초라해지면서 아주 엉망진창이 되어서
주님에게 받았던 그 모든 보배롭고 아름다운 것들을 다 상실했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받은 고통이라고 하는 것은 형용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그 죄책감에서 한동안 오래 살았어요.
어느 날 제가 그것이, 하나님께서 나중에 노년에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하는 모형으로
저에게 보여주셨다고 하는 것을 깨닫기까지,
저의 젊은 시절에 보여주셨던 것이, 다시 십자가를 통해서 노년에 회복될 것이라고 하는 것을 알기까지
그 죄책감속에서 너무너무 고통하면서 제가 살았습니다.
◑시골교회로 내려가서 목회하게 된 사연
그러다 결혼했는데 그때 저희가 역촌동에 살았었는데요.
남편이 장신대까지 가니까 버스를 2~3번 갈아탔는데 멀미를 잘했어요.
그런데 보니까 남편이 새벽기도를 잘 안하시고, 기도를 안 하세요.
그러고 제가 말씀드렸듯이 남편이 과거에 왕바리새인이었잖아요.
이렇게 술담배 하는 사람을, 인간 취급을 안했거든요.
그러니깐 저는 ‘남편은 복음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영적으로 통하는 게 있겠어요? 말이 통하는 게 있겠어요?
아주 진짜 기도 안하는 사람하고 사는 게 얼마나 힘드는지, 아마 아시는 분은 아실 거예요.
아주 죽을 지경이죠.
그래서 그때에 제가 그랬습니다.
“장차 목사 될 사람이 이렇게 기도를 안 하면, 그 영혼들을 어떻게 인도를 하겠느냐.
당신이 기도를 좀 열심히 하라고!” 윽박을 질렀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기도를 잘 안 하세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이혼하겠다!’ 그랬습니다.
제가 아주 초강수를 둔 것이죠.
제가 지금 가만히 그때를 생각을 해보니까, 그때까지도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생각으로 사는 힘이 강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때, 아직은 주님에 의해서 죽고 사라지는 생명이 아니라
그냥 ‘내가 이렇게 하면 선한 길이겠거니. 이렇게 하면 착한 길이려니..
이렇게 하면 괜찮으려니..’ 하고 내 생각에 옳음을 따라서 살았던 사람이었죠.
그러다가 ‘이거 아니다..' 싶어서 그냥 체념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제가 세수를 하는데, 하나님의 임재가 왔습니다.
‘네가 무엇을 하느냐?’
너무나 제가 깜짝 놀라서 ‘어머 그러면 주님이 저한테 그렇게 시키신 거예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고 얼른 방으로 들어가서,
‘정말로 당신이 기도를 해야 되겠다. 진짜 안하면 정말 제가 결단을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그 하나님의 임재 때문에 그런지
이 남편 분이, 그럼 기도를 하러 가겠다고.
그래서 그때에 저의 아들 3개월 좀 지나서 백일반지 받은 게 있었어요.
그걸 팔아서 삼각산 통일봉에 20일 금식기도를 하러갔습니다.
▲남편이 삼각산에서 텐트를 치고 금식 기도하는데
한 20일 넘어서.. 금식을 더 연장해서 40일 금식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이 응답 받았다고, 이런 얘기를 제게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나에게 응답을 하셨는데, 목회자 없는 시골 교회에 가서 내 양을 치라.
나사렛과 갈릴리의 삶을 배우라!’ 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제 마음에 뭐가 들켰냐하면
‘그래도 내 신랑이 40일 금식기도를 하면, 능력 받아 큰 종이 되면
내가 좀 배는 안 굶고, 그래도 얼굴도 좀 들고 살 수 있을 텐데..’
이런 팔자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는걸, 들켰습니다.
왜냐하면 내 친구가 부흥사 와이프 였거든요.
그 친구 집에 다니러 가서 보면, 없는 것 없이 사는 거예요.
나는 날마다 너무너무 일용할 양식만 먹고 사는데, 그러니깐 나도 모르게 시험 들었겠죠.
‘이 멍청한 여자(나)가, 주님으로 말미암아 부유하게 되지 않으니까
거기 부유한 친구 집에서, 눈에 보는 족족 시험에 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제가 그 마음이 들켰겠죠.
그러니까 하나님께 들키니깐 얼마나 좋은지 여러분이 기뻐하셔야 되요. 아시겠습니까?
그래서 그 능력 받아 큰 종이 되고, 말씀에 팍 열려가지고
강대상에서 말씀을 팍팍 쪼개고 열심히 하시면
‘와우, 나는 이제 팔자 폈다’ 이러고 싶었는데, 주님이 제 뒤통수를 치신 거예요.
“목회자 없는 시골교회로 가라!”
그런데 최일도 목사님이, 남편의 신학교 같은 반 동기요, 절친한 친구였어요.
그래서 그분이 소개를 해서, 경상북도 금릉군 월곡리 학동이라는
열세 집밖에 없는, 산 하나 넘으면 무주구천동인, 첩첩산골 삼도봉 밑에.
우리는 삼도봉만 가요.
*삼도봉 : 그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삼도가 나눠지는 분기점.
지금 아마존에서도 저희가 정착한 썽 가브리엘라 다 까쇼에이라 는
세 나라의 국경이 만나는 지역이에요. 참 너무나 신기합니다.
그때에 제가 서울에서 중고등부 담당전도사에다가 전임전도사였습니다.
그때 뭐 학생들이 50명 정도 되는데, 2~3년 지나니깐 한 200명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제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몰라요. 시골교회에 가고 싶지가 않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남편한테 ‘그러면 대학부라도 졸업하고 가면 어떻겠냐?’
기도해보겠다고 그러더니 응답을 받았는데
‘와이프가 안 따라가면 너 혼자라도 가라.’
그래서 할 수 없이, 저는 전도사를 사임하고, 시골로 남편을 따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저희 아들이 7개월이었고 저희 딸이 3살이었습니다.
정말로 그 경상북도 금릉군 월곡리... 얼마나 시골이었느냐 하면,
차도 마주보고 지나다닐 수 없는 좁은 비포장 도로,
차 하나가 지나가려면, 다른 차는 저기 비켜서 기다려야 하는, 그런 시골이었습니다.
그나마 버스도 잘 안 다니니까, 늘 지나가는 경운기 얻어 타고 다녔죠.
그 털털 거리는 경운기 타고 5리를 들어가면, 그 깊은 산중에 아주 자그마한 교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이제 교회 옆 조그마한 집에서, 창호지 바른 방문 열면 바깥입니다.
그런데 이제 저를 길러주셨던 목사님이
‘허 전도사, 시골가면 조심해.’ 왜냐면 사모님들이 ‘사고’당하는 비율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왜냐면 목사님들이 주중에 다 서울에 공부하러 가시고, 시골에 혼자 있으니까
그렇게 ‘사고’를 많이 당한다고.. “조심해!” 이러시는 거예요.
그 소리 안 들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니깐 때로는 혼자 그렇게 4년을, 주중에는 남편 없이 애들 둘을 데리고 사는 겁니다.
총 6년을 지냈는데, 남편이 서울로 공부하러 다닌 기간이 4년이었죠.
때로는 너무나 두렵기도 하고, 그냥 창호지 문 하나 쑥 열면 되잖아요.
너무나 두렵기도 하고, 그래서 아예 애들을 둘을 데리고 교회에 가서 자는 겁니다.
새벽종 치는 그 재미가 너무나 좋아서 제가 살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이제 제가 설교하는 걸 굉장히 좋아했어요.
그래서 이제 방학해서 남편이 오면 시험이 드는 거예요. 제가 설교를 못해 가지고.
‘언제나 방학이 끝나려나. 언제나 저 지겨운 설교를 안 들을까..’
그랬더니 어느 날 주님이 ‘네가 판단을 그치라. 그리하지 않으면 심판을 못 면할 것이다.’
하고 말씀을 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네 남편이 설교를 못하던지/잘하던지
네 기도를 통해서 이 교회가 변화되면 될 것 아니냐?’고 막 저를 야단을 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남편 설교를 판단을 안 하고
반드시 한 시간 전에 나와서, 애기 젖을 미리 먹이고, 예배 드릴 준비를 다 하고 와서
열심히 먼저 기도하고 그래서
제가 기도하는 날은, 다들 열심히 설교를 잘 들으세요.
근데 제가 바빠가지고 기도를 안 하면
그 농촌에서는 농번기에는, 새벽부터 논에서 농사짓다가 교회에 나오니까
대체적으로 입신(졸음)을 많이 하세요.
성도님들이 자기도 모르게 딱 졸다가 자빠지고 그러시는 거예요.
그러면 옛날 같으면 ‘에이씨!’ 이러면서 막 속이 상해서
‘진짜 칼 바르트가 누군지 저 사람들이 어떻게 알아?
왜 설교시간에 쓸데 없는 소리를 저렇게 하는 거야?’
그러고 그냥 도끼눈으로 예배실 뒷자리에서 남편을 째려보고 있는 거죠.
그랬는데 이제 제가 주님한테 혼났으니까 그때부터는 철이 조금 들어가지고
‘주님 내 탓입니다. 제가 기도를 안 해서.. 오늘 그만 성도님들이 다 졸았습니다.
하나님, 남편 전도사님이 설교를 거꾸로 하던지/ 바로 하던지
하나님 제 기도가 이렇게 잘 안 되어가지고 이렇게 되었으니까, 저를 용서해주세요.’
그렇게 회개하면 주님이 기뻐하시는 거예요.
▲그러다가 이제 6년이 지났습니다. 진짜 가난했어요.
당시 제 소원이 뭐였냐면 밥에 고등어자반 얹어서 밥 한번 실컷 잘 먹는 거였습니다.
이게 그 시골교회에서의 소원이었고, 아마존에서도 제 소원이었어요.
당시 남편 김철기 선교사의 소원은 뭐냐면 ‘계란을 실컷 먹어봤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농촌에 살면서 그렇게 가난하고
세상에 시골교회에서 그 조그만 돈을 받아서 서울에 학교 가면,
차비 하고나면 너무나 돈이 남는 게 없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나물 뜯으러 다니고, 미나리 캐러 다니고,
그때 우리 아들이 아주 애기였어요. 그럼 애기를 등에 업고 취나물 뜯으러 다녔어요.
그때에 하나님이 저를 가르치신 게 많아요.
가짜와 진짜를 제게 가르쳐 주셨어요.
진짜 취나물은 안팎이 똑같아요.
근데 가짜 취나물은, 위에는 파랗고 밑에는 하얀 솜털 같은 게 있어요.
처음에는 모르니까 그냥 막 다 뜯었죠. *채취했죠.
근데 나중에 그거를 보고, 주님께서 절 보고 반성하라고 다 보여주신 일들이죠.
애기를 논두렁에 앉혀놓고, 이제 미나리꽝(미나리 밭)에 가서 미나리를 뜯으면,
우리 애기가 앉아서 막 찬양을 해요. 손뼉을 치면서.
♬주 예수 사랑 기쁨 내 마음속에 내 마음속에
죄인 오라 하실 때에, 날 부르소서♪
그러더니 커서, 그게 우리 아들의 애창 찬양이 되었어요.
그러면서 제가 그때 당시 얼마나 씩씩한 여성이었느냐면,
제가 잠시 우리 애기를 방에 두고, 간장을 사러 자전거를 타고 5리를 다녀왔는데
갔다와서보니까 애기가 혼자 막 기어 다니다가, 밖으로 떨어져가지고 시궁창에 쳐박혀 있는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부터 아이디어를 내어가지고, 아기를 딱 제 어깨에 메고 자전거를 타는 거예요.
시골교회에서 성도님들이, 사모님이 자전거 타는 것도 우스워 죽겠는데
애까지 둘러업고 자전거를 타니깐 얼마나 우스워 하는지요.
근데 나는 그게 너무 멋진 거예요. 제가 그럴 수 있다는 것이.
그럴 때 서울에서, 누가 5만원 주고, 오토바이를 하나 사서 보냈어요.
그래서 또 제가 아들을 앞에다 태우고, 딸을 뒤에다 태우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 겁니다.
그 당시가 벌써 1980년도 였잖아요. 제가 시골에서는 신여성이었죠.
◑기도를 오래하면 신비의 세계가 열리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그때 이제 제가 목사님 설교가 듣기 싫으면, 제가 수를 쓰는 겁니다.
한 30리 떨어진데, 교회가 빈 데가 있었어요.
그러면 제가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예배드리러 가는 겁니다.
그러니까 제가 봐도 너무 멋쟁이예요. 그죠?
세상에 그 산중에, 잘못하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데,
그 터프한 한 여인이, 밤에 오토바이를 타고, 빈 교회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그리고 제가 스트레스가 쌓이면 오토바이를 타고 그냥 아주 속도를 얼마나 내고
그래서 스트레스 풀고... 시골교회 교인들이 시험도 많이 들었을 거예요.
그러면서 그때 당시에 제가 굉장히 고통 받았던 게 뭐였느냐 하면,
남편한테 순종을 해야 되는데, 제가 기도를 많이 그래도 좀 하는 편이였으니까
기도 하고 금식해서 은혜를 풍성히 받았는데,
제가 그만 남편한테 조금만 인상을 찌푸린다던가, 마음속으로 궁시렁 거린다던가 하면
열흘동안 금식하며 받은 은혜가, 2초 만에 싹없어 지는 겁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내 말 뜻을 알거예요. 그죠?
싸움박질 한번 하면, 은혜 뚝 떨어지는 거요.
진짜 남편이 아니라 원수 같고, 실제로 원수는 내 안에 있는데요, 그걸 몰랐죠.
그때는 이제 제가 시험에 들면, 저랑 반대되는 사람은 다 원수예요.
‘왜 내가 결혼을 했을까. 이 원수 아저씨가 나 망가뜨리려고 넘어뜨리려고 결혼을 했나.’
이렇게 사납고 무서운 생각까지 하는 거예요.
근데 나만 그런 게 아닐걸요? 여러분들도 그러실 겁니다.
시험에 들면 우리는 남 탓하잖아요, 그죠?
▲그랬는데 어느 날 제가 금식을 하고 기도를 끝냈는데
제가 기도하는 중에 엎드려있었는데 환상이 보이면서
‘아주 지혜로운 세계래요. 그리로 오라’고, 누가 제게 손짓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너무 하나님께 지혜를 구했기 때문에, 거기를 가고 싶은 거예요.
그때 제 뒤에서 주님께서 ‘네가 거기로 가면 안 된다’고 그렇게 얘기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만일에 거기 갔으면 교주될 뻔 했어요.
엄청난 능력과 엄청난 걸 받았을 겁니다.
그때 자칫 잘못했으면, 십자가를 거치지 않은, 그러한 신비한 세계가 열렸을 겁니다.
무시무시한 세계가 열렸겠죠.
그러니깐 도인들이나 불교나 그러한 사람들이 열려질 수 있는 것들이 있잖아요.
이게 우리가 십자가를 알지 못한 채, 기도가 어느 신비적 방향으로 이끌려 갈 때
여러분들 주님께 반드시 물으셔야 되요.
이게 한번 잘못 들어가면 큰일 나는 겁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저에게 나를 보여주시는데
제 자아가 어느 정도 크냐면
땅에 발이 있고 내 머리가 보좌까지,
내 자아가 하나님과 나를 방해하는 것을 제가 봤습니다.
너무너무 고통스러워서 ‘이걸 어떡하면 좋습니까?
그런데 이 자아가 하나님을 훼방하고 내 생을 망치고
하나님과 나를 단절시키는 이것을 어떻게 해야만 도대체 주님과 연합할 수 있겠는가.
어떡해야 내가 그토록 주님이 원하시는 뜻을 따라서 살 수 있다는 말인가?’
여기에 제가 너무너무 목마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남편한테 순종하다보면 또 실패하게 되고
내가 그러고 또 내가 딱 서면, 또 그분은 오그라지고.
이게 여러분들이 이해하는지 모르겠어요.
영적인 생활하는 사람들은 알거예요.
하도 이제 순종을 한답시고, 이제 육적으로 막 하다보면
이게 또 죄하고 연합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또 그러다보니까 이게 아니잖아요.
이건 아주 초년병 얘기를, 제가 여러분들한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제 생을 열어서 보여드리는 거예요. 잘 이해를 하시라고요.
▲그랬는데 그러다가 보니까 이거 아니야. 그러면 또 제가 또 제 힘으로 서요.
제 혼의 힘으로 딱 서면, 또 우리 남편께서 조용해지세요.
‘도대체 이게 뭘까?’ 너무너무 고통스럽고 힘든 거예요.
‘주님 내가 어떻게 해야 됩니까?’
그러면 나를 부인하는 것에 대해서 기도하고 금식하면 며칠은 가잖아요.
금식 효력, 철야 효력이 조금은 지속되는데
며칠 있다가 그 참았던 게 폭발을 했다 그러면 원자폭탄이 터지잖아요.
집안이 아주 쑥대밭이 되잖아요.
그래서 진짜 이 소경이 담벼락을 막 더듬듯이
‘이거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순종해야 되는가?’
‘이렇게 순종하면 죄와 연합하고, 또 이렇게 하면 이렇고
도대체 주님은 어디가 도대체 길입니까?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그러셨는데
나는 도대체 어느 길을 가야 할런지 모르겠습니다. 내가 정말 죽겠습니다.’
나중에는 이제 우울증까지 오는 거예요.
오랜 시간동안 제가 우울증에 빠졌었습니다.
이제는 말도 하기 싫고, 너무너무 생이 싫은 거예요.
‘내가 이럴려고 당신한테 시집왔습니까?
이것은 아닐 텐데,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고 있습니까?
왜 나에게는 성령의 열매도 없고..’
그런데요 일하러 나가면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은사가 있기 때문에.
그래서 남의 죄는, 남의 문제는요, 제가 너무너무 잘 해결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내 문제는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깐 남의 것을 잘 제가 보니까, 어느덧 나는 선생이 되어 있는 거예요.
이 죄 덩어리가, 이 자아도 처리 안 된 내가, 어느덧 은사로 사역을 하다가보니까
선생이 되어있는 거예요. 불법한 자가 되가지고 있는 거죠.
아니 남의 집 도둑 쫓으러 다니다가, 제 집 강도드는 것 모른다고.
제가 그 짝이 된 거예요.
그러면 사역하고 돌아오면 얼마나 몸이 피곤해요 그죠?
피곤하면 짜증나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이제 뭐가 되는 거예요? 독재자가 되는 거잖아요.
(이 문장은, 현재 사역자들의 생활을, 자신이 실수한 것처럼 빗대어 표현하는 듯)
집안 식구는 내가 들어가면, 다 제방으로 각기 돌아가고 다 무서워서..
뭔가 터질지 모르니까 다 조용해지는 거죠.
여러분들은 안 그러세요? ‘도대체 이게 뭘까..’ 그러면서 이제 그 세월을 보내는 겁니다.
▲그러다가 정말 그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때 6년이 지나면서 ‘선교사가 되어야 되겠다’ 그런 것도 이제 감히 생각도 못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너무너무 고민에 빠졌으니까요.
그 누구가 십자가라는 것을, 십자가에 대해서 가르쳐 주시는 분이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워치만 니의 책, 앤드류 머레이의 책을 많이 봤는데도 불구하고
이게 적용이 안 되는 거예요.
그 책은 다 이해가 되는데, 실제로 삶에 옮기려고 그러면 어머 이게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제 사람이 미칠 지경이 된 거죠.
‘도대체 이제 살아야 되는가, 죽어야 되는가...’
사람이 완전히 그냥 탈진이 되고, 우울증까지 막 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때, 한 3년을 말을 잘 안 했을 거예요. 우리 아이에게도요.
너무나 낙심이 되고 도대체 나를 어떻게 감당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면서 이제 제가 아마존에 떠나기 전부터, 말이 조금씩 열어지게 되었습니다.
이제 남의 아이도 데려다 키우고 이렇게 하면서
제가 이제 순종을 배우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때 이제 제가 처음으로 눈을 뜬것이 뭐냐 하면
내 주위에 펼쳐진 내 환경이, 바로 내 영적인 상태라는 걸 알았어요.
‘아, 주님께서 조금 눈을 여셔서 이제 보게 되는 거죠.
아, 지금 내 펼쳐진 이 환경이 내 영적인 상태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이제 자백을 하기 시작하는 거죠.
그리고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내 모습이더라고요.
제가 밖에 나가서 일을 떨고 들어오면, 우리 아이들이요,
얼굴이 거지 상을 해가지고, 깡통 하나 들면 완전 거지예요.
그렇게 초라하고 그렇게 얼굴이 더럽고, 너무너무 희한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아, 아이들의 모습이 내 영적인 상태구나.’
또 그걸 알게 되었어요.
이제 그런 것을 보면서, 주님께 고백을 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어머 주님. 제가 이런 짓을 했습니다.
어머 주님, 제 이 상태를 알려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하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기 시작하는 것이 시작된 겁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내 모습을 보기 시작을 하니까,
사람을 정죄하지 않게 되잖아요, 그렇죠?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그러니까 제가 사역을 은사를 가지고 사람들을 대화하고
권면하는 일이나 그런 기도회라든가 그런 것을 하면서
그 사람들을 보면서, 제가 주님 앞에 이런 것을 고백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서 우리는 충돌하기가 쉬워요. 은사자들이.
왜냐하면 내 잘못은 잘 안 보이고,
저 사람 잘못만 많이 보이니까 짜증도 나고 신경질도 나고 화딱지도 많이 나고
이제 막 컨트롤 하려고 하기도 하고, 그런 게 막 나와요.
그럴 때에 우리가 굉장히 두려워해야합니다. 그때 우리가 넘어지는 거거든요.
그때에 우리가 그 사람의 모습이 내 속에도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주님 앞에 고백하면서 나가야 되요.
이것은 이제 아직까지 예수님이 내 안에서 온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의 얘기예요.
만약에 내 안에 주님이 계시고, 성령님의 열매가 내 안에서 나타날 때는
그때에는 내가 사역을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사역을 하시기 때문에
내가 그 사역에 동참을 합니다.
그래서 나도 은혜를 받고 내 삶이 풍성해지는 거예요.
그 전 단계에서 우리가 이제 주님 앞에 조심해야 될 것은,
아직까지 내가 성령의 열매가, 내 안에서 나타나지가 않는 상태에서
우리가 사역을 할 때는, 그 사람을 보면서
반드시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하면서
주님 앞에 회개하는 심정으로 사역을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심판관자리에 앉게 되요.
그러면 넘어지고 일어나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거늘, 너는 도대체 뭐야?
이래가지고 주님한테 우리가 벌을 받게 되요.
그래서 완전히 교만해져서 그 누구도, 그 사람을 권면할 수가 없을 정도로
세상에서 제일 회개하기 어려운 사람이 은사자들이예요.
왜냐하면 그 은사자들은 눈이 밝기 때문에 다 보거든요.
그러니깐 누가 와서 권면을 해도 난 알아... 나도 알아.
너 보는 것 나도 볼줄 알아. 이 교만함 때문에 절대로 회개가 안 되요.
그것도 제가 체험했거든요. 오랜 세월...
제가 온전한 자유가 없을 때에라도요, 다 봤거든요.
그 사람의 문제라든가 그 사람의 어떠한 것이라든가
그 사람의 미래라던가 그런 것이 다 보여지니까요.
그런데 내 마음의 성령의 열매가 없는 거예요. 사랑이 없는 거예요.
사랑이 없다고 하는 것은 주님이 안 계신 거예요. 아시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들은, 사랑을 또 만들어서 가짜 사랑을 만들어서
또 걸려고 그랬잖아요. 그러면서 나는 했다.
이렇게 자기 의를 쌓기 시작하잖아요.
선한 일을 행하면서 남을 도와주면서 헌금하면서, 내가 선한열매를 따먹기 시작해요.
선악과 중에서 선한 열매. 아주 악한 열매는 우린 아주 지겨우니까.
이제는 육체의 연습 속에서, 어떤 술을 마신다던가, 담배를 피운다던가
이런 면이나 저런 면에서 우리가 나쁜 간음하는 일 뭐
이런 일에 있어서는 대체적으로 우리가 이것이 옳지 않다는 건 알고 있잖아요 그죠?
고백을 하는데 이 선악과 중에 선한 열매는요, 이게 더 문제예요.
악한 것보다도 이 선한열매를 따먹고 교만해지면 고칠 약이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가 선을 행해서 자기가 스스로 여기에다 다 인식을 시켰어요.
나는 이것도 했고 저것도 했고... 그게 뭐죠? 염소가 그랬잖아요.
양들은 자기가 한 것을 몰랐어요. 왜요?
성령님이 하시는 것을 봤기 때문에, 자기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사람들은 여기에 없어요. 기억도 없어요. ‘내가 그걸 했나?’
이런 것도 기억도 없어요.
왜요? 주님께서 하신 것을 내가 보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저 주님이 주도하시는 사역을 되어진 것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그러나 아직까지 염소에 있는 사람은요, 육신에 속한 자로서
자기가 자기 의를 따라서 자기의 노력을 따라서 했기 때문에
여기다 죄다 기록을 해놓는 거예요. 혼에다가.
그러면서 그거를 가지고 바리새인이 되는 거죠.
‘하나님, 나는 저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이 지경까지 가는 거예요.
이 사람을 어떻게 누가 치리를 하겠어요? 그 사람한테 누가 권면해보세요.
잡아먹으려 그럴 겁니다. 그렇지요? 그 사람 한번 건드려보세요.
철야 열심히 하고, 그리고 헌금 많이 하고, 기도 많이 하는 이런 사람들 건드려보세요.
그 사람들이 낮아지는가.. 절대 안 낮아져요. 이 노릇을 어떡하겠어요?
하여튼간 저는 그랬습니다. (P2는 조만간에 계속)
타자: K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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