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행진 출40:1~38 16.05.15.스크랩, 출처
◑성막의 영광
출애굽기 마지막 강해입니다. 출애굽은 제목 그대로 '떠남'입니다. 애굽을 떠나는 이야기입니다.
영어로 엑서도스인데 헬라어 원어로는 ‘엑스 호도스’ 곧 길에서 벗어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에 여행가면 이 단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가는 도로에는 ‘엑스 호도스’라 쓰여 있습니다.
원래 가던 길에서 빠져나가는 출구라는 의미입니다.
애굽의 노예의 삶에서, 노예지만 편안하고 익숙한 삶을 벗어나는 이야기입니다.
신약에서 이를 세례로 비유한 것은 적절합니다.
세례 또한 과거의 삶에서 죽음과 단절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지 탈출, 벗어남이 다가 아닙니다. 분명한 목표가 있습니다.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하여서 나아갑니다. 익숙했던 것을 벗어버리는 것은 힘들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약속의 땅이라는 분명한 소망이 있기에 감내할 수 있습니다.
광야의 배고픔과 위험과 태양의 뜨거움과 외로움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약속의 땅은 무작정 들어가기만 한다고 하여 되는 곳은 아닙니다.
우리 삶의 양식과 태도를 바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노예적 삶에서 자유인의 삶으로, 우상숭배의 삶에서 하나님을 믿고 경배하는 삶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약속의 땅은 애굽과 별반 다를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스라엘에게 광야는 훈련도장이었습니다.
노예적 습성을 버리고, 우상 숭배적 삶을 버리고, 참된 진리와 생명이신 하나님을 믿는 삶,
진정 자유인의 삶을 살기 위한 훈련의 도장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은 시내 산에서 근 2년 가까이 머물렀습니다.
20개월 동안 머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여러 말씀들을 들었습니다.
이때 가장 중요했던 일은 성막의 건설이었습니다. 성막은 17절에 보면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고 말씀합니다.
출애굽한 지 꼭 1년 지난 새해 첫 날에 성막이 완공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으로 가려는 이유는 그곳이 단지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자유롭게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풍요는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지키시지 않으면 약속의 땅은 바람 잘 날 없는 전쟁의 땅이 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막의 건설은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거할 땅의 처소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성막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거룩하고 무한하신 하나님이 좁고 누추한 집으로 옮기셨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성막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그곳에 계시다는 것입니다.
34절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을 보면서 하나님이 성막에 계심을 압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거룩한 백성인 까닭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진영 중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광야가 거룩한 땅이 된 이유는 하나님의 집인 성막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싸우는 전쟁인 성전, 곧 성스러운 전쟁이 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편이 되어 함께 싸우시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보이지 않는 하늘을 향하여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제는 시내 산이나 어떤 거룩한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진중에 있는 성막에 거하십니다.
◑교회의 영광
▲1. 솔로몬 시대에 성막은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의 침략할 때 성전은 무너졌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이스라엘이 이때 깨달았던 위대한 통찰은
하나님은 장소가 아니라, 시간 속에 거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안식일입니다.
출애굽 기에서 가장 중요한 율법은 물론 우상숭배 금지이지만
가장 많이 언급된 계명은 안식일입니다.
천지 창조도 안식일이라는 7일 도식에 맞추어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여 드림으로써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였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이 임하시는 날이기에 다른 어떤 계명보다 더 철저히 지켜졌습니다.
▲2. 신약시대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영광은, 다른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제자와 사도와 신앙인들이 보았던 것은 하나님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한 인격체 가운데 거하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집이었고, 하나님이었고, 몸소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1:14)
여기 ‘거하시매 dwell’란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거하시매는 헬라어로 ‘스케노’입니다.
성막은 헬라어로 ‘스케네’입니다.
34절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여기 회막, 성막이라는 단어는 다 같이 ‘스케네’라 쓰고 있습니다.
요한과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그가 성전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내 산에서 광야에서 보았던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하나님의 성전은 다시 하늘로 갔는가요?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모시고 예배드리는 공동체, 곧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3장 16절입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에베소서 2장 21절, 22절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 편지를 받고 있던 고린도교회나 에베소 교회는 정말 작은 공동체였습니다.
불과 20-40명이 모여 예배를 드리던 볼품없는 공동체였습니다.
그들은 학식도 변변찮고 태반이 노예나 여자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합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1. 바울은 헤롯이 만들었던 성전을 보았던 사람입니다.
헤롯 성전은 근 80년에 걸쳐 중건되었습니다. 가로 500m 세로 300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입니다.
온통 대리석과 황금으로 만들어 수km 밖에서도 빛났습니다.
누구도 헤롯이 지은 성전을 보지 않고는 아름다운 건축물을 보았다고 하지 말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유대전쟁사』를 썼던 요세푸스는 자신의 책에서 성전의 모습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합니다.
“성전의 외부형태를 보는 자는 그 눈과 영혼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 성전은 어느 곳이든 거대한 금판으로 덮여 있었고.
해가 뜨면 금판에서 불같은 광선이 반사되어 그것을 똑바로 보려 해도
해를 직시할 수 없는 것 같이 눈을 돌려야 할 정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이곳이 성전이 아니라고 합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이 모여 있는 초라한 공동체가 하나님의 성전이라 말씀합니다.
▲2. 에베소에 있는 아르테미스(아데미) 신전은 또 어떻습니까?
이 신전은 고대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라 불리던 웅대한 건축물입니다.
높이 16m, 직경 1.8m에 이르는 대리석 기둥 100여 개가 떠받치고 있는 엄청난 규모였습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보다 4배나 더 컸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곳이 신전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그 골목 어딘가 허름한 가정집에 모인 에베소 교회가 바로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이라고 합니다.
▲3. 고린도는 또 어떻습니까? 이곳은 아폴로 신전으로 유명합니다.
기원전 6세기에 고린도에 건설되었던 아폴로 신전 유적은
지금도 일곱 개의 거대한 기둥을 뽐내며 서 있습니다.
고린도 시 배후의 해발 575m에 달하는 아크로고린도 정상에는
한창 때 신전 창녀가 1천 명에 달했던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런 웅장한 곳이 아니라 비린내가 나고 가죽 냄새가 나던 한 공장에 모여 예배드리던
고린도 교회가 바로 신이 거하시는 성전이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이 거룩해서 인가?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형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26)
출신만 형편없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으로 개척한 사도를 인정하지 않던 배은망덕한 곳,
작은 공동체에 파벌도 많고 빈부의 갈등이 있었던 곳,
교인 중에 음란한 사건이 일어나고 서로 소송하던 곳,
알량한 은사와 학식을 가지고 우열을 따지며 자랑하던 곳. 그곳이 고린도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이곳이 성전이라고요? 네 성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요,
그리스도가 우리를 신부 삼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믿는 이 공동체를 사랑하시고 이곳에 거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 빛과생명교회가 창립된 지 10주년입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지만 우리교회는 크게 변한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개척교회 수준을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규모면 사도 바울 당시 가정교회 수준은 되는 것 같습니다.
교회는 위대합니다. 수가 많든 적든 건물이 크든 작든 하나님의 교회는 영광스럽습니다.
이 공동체 위에 하나님이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배 가운데 성령으로 임재하시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무엇 하는 곳입니까? 봉사하는 곳입니까?
그렇다면 사회복지 단체가 더 탁월할 것입니다.
교회는 선교하는 곳입니까? 물론 선교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선교합니까?
교회 개혁이 우리의 목적입니까? 예 개혁은 소중합니다. 그런데 왜 개혁합니까?
선교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백성들을 모으기 위해서입니다.
개혁하는 이유는 올바로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는 예배 공동체입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교회는 10년 동안 그 본질에서 어긋나지 않았습니다.
감사로 믿음으로 예배공동체를 이루기 위해 10년을 달려왔습니다.
계속 이 길로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씀이 있고 예배가 살아 있는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의 공동체로 계속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본질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영광의 행진
그러나 명심할 것은 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이 있다하지만
우리 인간 편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말씀순종입니다.
출40:16절, 19절, 21절, 25절, 27절, 29절, 32절 계속 반복하고 있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으로 존속할 수 있는 요건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고입니다.
“너희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을 믿지 말라”(렘7:4)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그곳은 더 이상 성전이 아닙니다.
그런 예배 공동체는 더 이상 하나님의 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지금껏 10년 예배공동체로 우리 교회가 잘 견뎌왔습니다.
처음 출발이기에 하나님께서 봐주셨던 10년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의 10년은 더 말씀에 순종하는 10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린 모습을 벗어나 더 성숙하게 하나님을 예배하는 공동체로 서야 합니다.
우리 교회에 주신 비전의 말씀들이 있습니다.
영혼이 잘 되는 교회, 가정이 행복한 교회, 미래 세대를 준비하는 교회,
사회의 빛이 되는 교회, 가난한 이웃과 함께 하는 교회, 민족화해와 북한선교를 꿈꾸는 교회.
이 비전의 말씀을 이루어가며 하나님을 더 영화롭게 하는 10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일하면 전진하는 교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공동체에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표징을 보여주십니다. 영광의 구름기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함께 행진하였습니다.
구름이 떠오르면 그 구름을 좇아서 앞으로 나갔습니다.
구름이 떠오르지 않으면 떠오를 때까지 나가지 않고 기다렸습니다.
예수님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20)
임마누엘의 약속은 말씀순종과 함께 합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과 함께 행진하는 10년이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인도해 가십니다.
멈추면 멈추는 대로 뜻이 있고, 돌아가면 돌아가는 대로 뜻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은 어김없이 목적지를 향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구름을 부지런히 뒤쫓아 가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구름이 보이지 않은 까닭은 없어서가 아니요 저 멀리 앞서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부지런히 그분의 뒤를 좇는 자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구름기둥의 영광이 우리를 앞서가십니다.
부지런히 하나님을 좇음으로 그 영광을 볼 수 있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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