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외계인의 정체성 지키기 벧전1:1~2, 4:7~10 출처, 편역
How Aliens Keep the Identity of Their Homeland by John Piper
벧전1:1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
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크리스천은 이 세상에서 외계인 Alien 들입니다.
1절에, 나그네를 영어 성경에는 strangers, 또는 aliens 로 번역했습니다.
한글 성경에는 대부분 ‘나그네’로 번역했는데요. *파라+에피데모스
그 헬라어에 ‘파라(주위에)’가 들어가는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어떤 도시나 성의 주위에, 둘레에, 성 밖에 사는 무리를 뜻합니다.
그는 이방인, 여행객, 대상이라서, 즉 타지나 타국에서 온 사람이라서
그 성의 사람들이 주류로 받아주지 않고,
도시 외곽이나, 성 밖에 그냥 한구석에 살도록 내버려두는 사람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우리는 천국 시민권자이라서,
이 세상에서는 그렇게 천대받는 ‘외지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 백성’이란 의미로, 한국어 ‘외계인’으로 번역해도 되겠습니다.
*영화에 나오는 외계인/Alien이란 뜻은 아닙니다.
비슷한 말로, 벧전2:11절에 ‘거류민’이 나오는데, *파라+오이코스
그 단어는 ‘시민권이 없는 자’를 뜻합니다.
벧전2:11절에는 ‘거류민과 나그네’ 이렇게 두 단어를 동격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크리스천의 시민권은 천국에 있는 것이지,
미국/한국 시민권은, 성도의 일차적 시민권이 아닙니다.
크리스천의 헌법은 일차적으로 성경입니다.
미국/한국의 헌법은, 성도의 부차적 헌법입니다.
크리스천의 일차적 수장, 최고 지도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미국/한국의 대통령은, 성도의 부차적인 최고 지도자이십니다.
그리고 성도의 가장 열망하는 마음의 소원들은,
이 세상의 보화들이나, 이 세상의 업적들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의 보화들이나, 그 나라의 업적들입니다.
▲성도는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언어, 가치, 습관, 사람들의 기대가
자기에게 ‘이상한 것처럼’ 느껴져야 정상입니다.
이 세상에 요령껏 너무 적응을 잘 하면, 그것 한 편으로 이상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가 살다보면, 이 세상에서 래디컬(과격, 극단주의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어지는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를 세상에서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우리는 거듭난, 즉 다시 태어난 born again
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난 게 아니라, 천국 백성으로 천국에서 다시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 성도의 현실에 대해 바울은 골3:3~4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4 그래서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성경은 우리들을 이 세상에서 ‘외계인’처럼 살라고 부르셨습니다.
*개역에 나오는 ‘이방인’이란 어감보다는 차라리 ‘외계인’이란 어감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외계인’으로 선택해서 번역합니다.
그래서 크리스천은 자기 생각을, 근본적으로
현실 세상과 다른 우선순위에 두고 사는 것입니다.
현실 세상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우선순위가 밀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에 너무 안달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입고, 어떤 집에 살 것인가?’에 온통 올인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들은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지요.
하나님은 우리가 그 모든 것이 필요하다는 것은 아십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먼저(우선순위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하십니다. 마6:31~33
만약에 하나님이 우리의 필요를 채우시지 않았으면,
우리는 벌써 굶든지, 헐벗던지 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우십니다. 비록 큰 갑부가 되게 하지는 않더라도요.
다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세상 시민권자로서 세상 가치관 매몰되어, 세상 사람처럼 똑같이 살지 말고
너희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너무 이 세상 시민권자로서 충실히 살지 말고,
외계인처럼, 이방인처럼, 좀 다르게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니까'요. 골3:4
◑세상을 따라가면, 영원히 멸망 받습니다. 영생을 못 얻습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외계인으로 살아야 하는데요,
다 그렇게 살지는 못하고, 성경에 보면 한 비극적 인물이 나옵니다.
골로새서에서, 바울은 ‘데마’를 가리켜
누가, 마가와 같은 반열의 ‘동역자’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후에 쓴 서신인 디모데후서에 보면,
바울은 ‘데마가 세상을 사랑해서,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썼습니다.
데마는 지금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요?
그가 나중에, 세상에서 다시 돌아왔을 가능성도 있지만,
어쨌거나 영생의 관점에서 보면, 데마는 세상을 사랑해서
아주 소중한 ‘자기 천국 시민권’을 포기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보기에 너무 못나서, 장래성이 없어서 이혼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가 미국의 대통령, 중국의 통치자가 된 예가 있습니다.
아마 많이 후회스럽겠지요?
그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것은,
성도가 천국 시민권을 포기하고, 세상 시민권으로 다시 돌아가는 일입니다.
그건 아마 탕자가, 이방 땅에서 돼지를 치면서 쥐엄열매를 먹으면서
아버지의 집을 그리워 한 것보다, 훨씬 더 비극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가끔 다니면서, 혹은 안 빠지고 다니면서도
실제적으로는 세속적 삶에 완전히 동화되어
‘천국 헌법’에 따라 사는 삶을 거부하고,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지 않고,
세상 불신자와 똑같이 사는 ‘세례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세례교인이라고 해서, 등록신자라고 해서, 모태교인이라고 해서
나중에 ‘그 나라를 상속’하게 될 것을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사도요한은 ‘그들은 우리에게서 나간 자들’이라고 했는데, 요일2:19
이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우리와 같은 자가 아니었다.
만약 그들이 우리와 같았으면, 그들은 우리 가운데 남아 있었을 것이다’고 말씀했습니다.
위 구절은, 어떤 ‘교적’을 뜻하지 않습니다. 당시에 ‘교적’은 없었으니까요.
‘우리에게서 나간 자들’이란,
성도로서의 거룩한 부르심과 그 삶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나간 사람을 뜻합니다.
▲그런데 신자가, 세상을 사랑해서, 세상으로 빠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미혹을 받아서 그런 것인데요,
세상적은 삶도.. 잠깐은 달콤하고 멋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죽임과, 도적질과, 멸망당함이 그 본질인데,
당장은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멋있고 좋아 보입니다.
그런데 “결국은” 망하고 맙니다. 그 모래성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처절한 비극은,
영생을 얻지 못하고, 영원히 멸망 당하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과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요일2:17
◑어떻게 우리는 외계인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을까요?
How Do We Keep Our Alien Identity?
이 점에 대해, 벧전 4:7~10절을 묵상하기 원합니다.
벧전4: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 근신하여 기도하라 :7
‘기도에 깨어 있으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반복해서 강조하는 바, 마지막 때에 세상에 함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에 깨어있는 삶’입니다.
오늘 내가, 매일 일정한 시간과 장소를 정해서, 만약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면
나는 어느 정도 세상에 함몰되어 가고 있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 몸에 때가 끼는 것을,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그것은 매일 진행상태입니다.
우리가 매일 기도로, 내 영혼에 끼이는 때를 씻어내지 못하고,
그게 몇 주, 몇 달 계속된다면,
나는 나도 모르게, ‘데마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 것입니다.
세속성과 거룩성은, 서로 반비례합니다.
세속성(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클수록, 거룩성이 줄어듭니다.
반대로 거룩성(성결한 삶)이 클수록, 세속성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세속성도, 정말 사람을 삼키는 그런 어떤 중독성이 있습니다.
알코올 중독이든지, 인터넷 중독, 드마라 폐인, 쇼핑 중독, 음란 중독.
중독에 한 번 빠진 사람은 ‘중독 없이 어떻게 사는가?, 그건 불가능하다.’ 합니다.
오직 거룩성에 빠진 사람만, 그 세속의 중독성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오늘 나의 거룩성(성결함)이, 세속성을 제어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의 세속성이, 나의 거룩성을 제어하고 있습니까!
‘그룹’과 ‘관계’가 필요합니다. :8~10
빗나간 청소년이 가정 뿐 아니라,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 청소년의 비행을 막고, 또한 그를 선한 길로 인도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그를 혼자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그를 자꾸 가족, 친구, 교회 관계, 친척 관계로 끌어내고 포함시키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사람, 기타 중독에 빠진 사람을 돕는 길도,
그를 혼자 내버려두는 게 아니라
자꾸 그를 가족관계, 교우관계, ‘알코올 중독자 치료 모임’등
관계 속으로 끌어내어서, 관계 속에 거하게 합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나쁜 길로 빠지는 경우가 훨씬 많거든요.
물론 처음에는 그가 관계를 거부하고, 그런 당신을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계속 관계성 속으로 그를 초대할 때, 또한 내가 포함될 때,
우리는 세속성을 막고, ‘외계인, 나그네’로서의 신자의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신실한 신앙의 동료들과, 신앙과 삶에 대해
거룩한 대화를 종종 많이 나누는 것입니다.
그것이, 홀로 동떨어져 외톨이로 지내는 신자보다, 훨씬 더 거룩하게 사는 방법론이 됩니다.
*물론 모여서 패거리 의식이 생기고, 소영웅주의가 발동되며, 군중심리가 발발해서
집단적으로 나쁜 길로 빠질 위험성도 있으니까요. 리더가 모임이 깨어있도록 늘 기도해야 합니다.
▲2. 피차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벧전4:8
성숙한 성도와 미숙한 성도의 차이는, 바로 이점입니다.
성숙한 성도는.. 주위 사람들을 돌아볼 여유가 있습니다.
미숙한 성도는.. 주위 사람들을 절대 못 돌아봅니다. 영적, 정신적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을 지키는 사람은, 결국 자기를 지키는 것은, 기본으로 얻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남을 지키지 못하고, 자기만 지키려는 사람은, 결국 자기마저도 못 지킵니다.
남을 살리려는 사람은, 자기도 당연히 살게 되는데
자기만 살겠다는 사람은, 결국은 자기도 못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차 뜨겁게 서로 사랑하고, 다른 사람을 지키는 것은,
그 이웃을 지키는 길이 됨과 동시에
그건 나 자신을, 세속으로부터 굳게 지키는 길입니다.
‘외계인’으로서의 자기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 되죠.
그런데 성도가 함께 소그룹을 형성해서 교제하다 보면,
서로가 완전하지 못한 상태라서, 서로 부딪히고 상처 입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고 권면합니다.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 상대의 허물을 용서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각 소그룹 모임에서, 이 구절을 붙들고 기도하지 않으면
아마 얼마 못 가서, 우리 소그룹 모임이 다 상처입고 깨어져 버릴 것입니다.
오늘날 성도들의 장례식 때, 정말 누가 와서 슬프게 애도를 표시해 줄 것입니까?
아무도 그 슬픔을 표시하고 애도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면,
그건 뭐라고 변명을 해도, 그가 잘못 살았다는 증거가 됩니다.
교회가 크지만, 내 장례식에, 내 결혼식에
같이 참여해서 슬퍼해주거나, 기뻐해줄 친구는
내가 교회에 참여하는 소그룹 멤버들뿐입니다.
그들과는, 내가 수년 동안 기쁨과 슬픔의 교제를 지속해 왔기 때문에,
어떤 인간적 정이 들은 것이지요.
우리는 이렇게 ‘피차 뜨겁게 사랑하는’
그것을 또한 5년 ~ 10년 지속하는 소그룹이 꼭 필요합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인 셈이지요.
함께 울어주고, 함께 기뻐해줄 신앙의 동료들이 꼭 필요한 것이고,
그들이, 내가 ‘외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는데, 귀한 도움을 줄 것입니다.
▲3. 서로 대접하십시오.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4:9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대접하는 것이 제일 좋지요.
사람들은 그 따뜻한 마음을 느끼고, 감동받을 것입니다.
요즘은, 집으로 초대가 힘들면, 식당으로 초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은, 서로 잘 조율이 되지 않으면 ‘원망과 불평’이 생기기 쉽습니다.
아마 일부는 초대하고, 일부는 초대에서 빠지게 될 때,
모두가 가능한 시간이 되지 못할 때, 불평과 원망이 생기기 쉽겠지요.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원망 없이 하라’고 권면합니다.
▲4. 당신의 은사로 봉사하십시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벧전4:10
나라는 나라끼리 서로 무역을 합니다. 서로 윈윈 하기 위해서죠.
농수산물도, 특산지가 있어서, 서로 교역해서 모두의 이익을 도모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받은 은사가 각자 다릅니다.
은사를 받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각자 자기가 받은 은사로, 다른 사람을 섬기면 됩니다.
서로 서로요!
그런데 만약 어떤 공동체에서
자기 은사를,
오직 목회자나 장로 등,
그 공동체 리더만 발휘한다면.. 그건 잘못된 일입니다.
모든 공동체 회원들이 다 각자의 은사가 발휘되어져야 합니다.
은사를 주신 것은, 봉사를 위함입니다.
그래서 ‘서로 봉사하라’고 권면합니다. service
다른 말로 ‘서로 사역하라’입니다. ministry
▲마치는 말
소그룹 또는 신앙의 교제권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자기가 어느 구역에 소속하기 싫다면,
그래도 자기 ‘신앙의 교제권’은 갖고 있어야 합니다.
자기가 스스로 만들면 됩니다. 또는 포함되면 됩니다.
보통 목회자는 구역에 소속되지 않고, 자기들끼리 교제권을 만들어 모이지요.
그래서 오늘 우리가 어떻게 이 세속적으로 깊게 어두워져가는 세상에서
‘천국 백성, 외계인의 정체성’을 유지할 것인지,
베드로전서를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1. 기도에 깨어있으라.
2. 피차 뜨겁게 사랑하라. 이웃에 대해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죠.
3. 대접하라.
4. 자기 은사로 이웃을 섬기라.
이것은 모두 소그룹/신앙의 교제권을 통해 가능한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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