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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왕의 반면교사 / 짐 심발라

LNCK 2016. 6. 30. 11:01

https://www.youtube.com/watch?v=rlqIut1zhws 

사울 왕의 반면교사           삼상15:24               출처, 대강 번역

Jim Cymbala / The Out of Order Man        

 

사울은 처음에는 아주 신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름부음을 받고, 왕으로 추대되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째서 삶이 무질서해 지고, 비참한 결말을 맞게 되었을까요?

한 때 기름부음 받은 사람도, 그렇게 타락할 수 있다는 말이 되네요.

우리는 사울 왕을 통해, 반면교사를 삼고, 교훈을 배우려 합니다.

우리도 주의하지 않으면, 한때 기름부음을 받고도, 비참하게 끝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울의 데뷔는, 아주 멋지고 훌륭합니다.

아마 전체 성경을 통 털어, 이렇게 멋지게 데뷔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자기를 낮출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적어도 다윗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는 이스라엘의 영웅이었습니다.

 

제 짐 심발라가 성경을 통해 바라보는

사울 왕의 쇠락의 원인은

 

 

1. 그의 삶에는 감사와 찬양의 표현이 없었습니다.

 

사울 왕도 감사할 꺼리가 많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것,

 

-삼상11장에서, 왕이 된 후 암몬 자손과 전쟁해서 이긴 것.

*이긴 후에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사울과 이스라엘이 크게 기뻐했다는 기록은 있습니다. 삼상11:15

 

-14장에 블레셋과 싸울 때, 요나단의 용맹으로 전쟁에서 이긴 것.

 

-그 외에도 몇 번의 전쟁에서 이겼습니다.

삼상14:47 사울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후에 사방에 있는 모든 대적

곧 모압과 암몬 자손과 에돔과 소바의 왕들과 블레셋 사람들을 쳤는데 향하는 곳마다 이겼고

48 용감하게 아말렉 사람들을 치고 이스라엘을 그 약탈하는 자들의 손에서 건졌더라.

 

그러나 그 어떤 경우도, '사울이 하나님께 감사했다, 찬양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17장에는,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고, 이스라엘이 블레셋을 물리친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때도 사울 왕은, 전쟁에서 승리를 감사, 찬양해야 될 터인데.. 그런 기록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골리앗의 협박으로, 40일간이나 전장터에서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 위기에서 구원받았으면, 하나님께 무한 감사, 찬양, 영광돌려야 될 게 아닙니까.

 

그런데 그는 도리어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라는 여인들의 칭송을 듣고

마음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감사는커녕 다윗을 잡아죽이려 하게 됩니다.

 

반면에 다윗은, 왕이 되기 이전부터, 아마 들판에서 시편을 지으며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후로 그가 죽을 때까지, 한 번도

하나님께 감사, 찬양 했다는 기록이 안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와 찬양이 끊어지고, 원망과 불평이 나오기 시작할 때,

내가 사울의 길로 걷기 시작하는 첫 단초가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여러 가지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도

가만히 기도하며 생각해 보면,

사실은 하나님이 7가지, 8가지를 들어주셨는데,

해결해 주지 않으시는 2~3 가지 때문에, 늘 삐져 있습니다.

 

물론 그 해결해 주지 않으시는 2~3가지도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혹은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아서, right timing이 아니라서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초보적인 신앙에 늘 수 십 년 오래 머물러 있지 말고

보다 성숙된 신앙으로 속히 나아가려면,

평소에 늘 감사하고, 찬양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다윗처럼 시편으로 찬송하든지

-간단한 찬송가를 늘 습관적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즐거운 일 아닌가?

         내 평생에 가는 길 순탄하여.. 내 영혼 내 영혼 평안해

 

그래서 내 사기를 항상 생생하게 유지해야 합니다.

평소에 늘 하나님께 불평불만인 가운데서,

어떤 주님의 사명을 잘 감당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거의 불가능합니다.

 

사울이 주님께 감사할 조건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는 지금 이스라엘의 왕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감사와 예배가 사라지니까

자기 사위요, 충신인 다윗을 쫓아다니는 사냥꾼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스스로 자기 인생을 망친 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잘못된 선택도, 존중해 주십니다. 막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어떤 곤경한 환경에 처하더라도, 올바른 감사와 찬양을 선택할 수 있기 바랍니다.

 

받은 복을 세어보아라는 찬송이 있는데, 우리는 늘 그래야 합니다.

아니면 우리는 늘 내가 아직 받지 못한 복을 세다가사울처럼 실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사울의 삶에는, 자기 인생의 큰 그림이 없었습니다.

 

다윗의 삶에는, 자기 인생의 큰 그림이 있었습니다.

그가 양치기 목동이었을 때는, 사무엘을 통해 기름을 부어서 미래에 왕이 될 것을 예언해 주셨고,

 

또한 사무엘하 7장에 보면,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했을 때, 하나님은 나단을 보내서 그걸 허락지 않으시면서

대신에 하나님이 그를 위하여 집을 세우겠다고 약속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 왕위가 끊어지지 않고, 대대에 이어질 것을.. 큰 그림을 보여주셨습니다.

 

장차 다윗의 집에서

메시야가 나올 예언이요, 큰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그런 게 없었습니다.

그렇다보니 매일의 순간 순간을

어떤 뚜렷한 방향성이나 지향성 없이 살게 되는 거지요.

그저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급급하며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기도하고 찬송해야 할 이유는,

그게 내 삶에 튜닝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주하기 전에, 튜닝하느라 모든 악기들이 시끄럽게 소리를 냅니다.

기타도 연주하기 전에, 줄을 당겨서 6줄이 제 음을 낼 수 있게 맞춰야 되고요,

바이올린도 연주하기 전에 반드시 줄을 당겨서 튜닝을 해야, 제대로 소리를 냅니다.

 

우리가 깊이 기도하고 찬송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장기적인/ 그리고 단기적인

그분의 나를 향하신 계획과 임무를

알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싸울 때 허공을 치지 않게 하시고

달릴 때 방향을 주시하며 달리게 하십니다.

 

기도와 감사 찬양이 사라지게 될 때

사울은, 하나님이 자기를 왜 왕으로 세워주셨는지도.. 잊어버리게 되고

자기가 왕으로서 지금 무슨 일을 해야 되는지도.. 먹통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카오스의 삶이 계속되다가, 카오스 가운데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아주 비극이죠.

이게 남의 얘기처럼 들려서 그렇지, 실제로 내 얘기라면 큰 비극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기도와 감사 찬양을 등한시하면,

우리도 카오스의 삶이 계속되다가, 카오스 가운데 숨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나는 어떻습니까?

나는 하나님이 오늘 내게 생명을 주셔서 살게 하신 목적이 무엇이며,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기 원하시는 비전이 무엇인지

분명히 깨닫고 있습니까? 그리고 내가 그 큰 그림을 살아내고 있습니까?

 

기도와 찬양이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트랙을 벗어나 곁길로 가고 있더라도,

즉시 나를 깨우치사, 트랙으로 되돌아오게 합니다.

 

우리는 그저 하루하루를 먹고 사는인생으로 허비해서는 안 됩니다.

먹고 살기에 바빠서정신없이 살아가는 인생은, 하나님의 설계가 아닙니다.

 

내가 왜 살고 있으며, 오늘 내가 해야 될 임무는 무엇인지,

거시적 플랜도, 확신하고 있어야 되고,

매일의 단기적 계획도, 주님의 지시를 받아서 행해야 합니다.

 

 

기도와 찬양이 안 되니까, 사울은 카오스에 빠지게 됩니다. *혼돈, 흑암, 대혼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사울은, 하나님을 의식하기보다, 사람을 의식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수직적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 사람은,

사람들과의 수평적 관계에 올인 하게 되는데요..

 

사울이 아말렉을 치고, 소와 양의 전리품 중에 일부를 숨겼습니다.

이에 사무엘이 사울 왕을 책망합니다.

 

가로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15:22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27

 

:30 사울이 가로되 내가 범죄하였을찌라도 청하옵나니

내 백성의 장로들의 앞과 이스라엘의 앞에서 나를 높이사 나와 함께 돌아가서

나로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경배하게 하소서

 

사울은 지금, 자기가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한 것은 염려하지 않고

백성과 장로들 앞에서, 자기 체면이 망가지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엉망진창이 되어도 상관하지 않고

백성들 앞에서 자기 권위와 체면이 망가지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무엘이, 자기 옆에 동행해서

자기가 하나님이 여전히 인정하시는 왕이란,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고 사무엘에게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을 붙잡아서, 그의 옷이 찢어지기까지 했습니다. :27

 

이런 경우 from bad to worse chaos 가 되지요.

상황이 더 악화되고, 더 꼬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그와 같은 유혹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실까?’.. 에는 별로 개의치 않고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를 엄청 신경 써서

옷을 입고, 행동하고, 헌금하고, 봉사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한때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우리 중에는 결국 사울의 길로 자기 인생을 망치기 쉽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생각하실지.. 그건 누가 알어? 눈에 뵈지도 않는데..

그래도 뭐니뭐니해도, 사람들 앞에서 그럴듯하게 인정을 받아야지!’

 

여러분, 소년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쳤을 때,

사울은 다윗에게 감사하다는 표현을 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그런 말이 안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발견하게 되는 사실은요,

우리가 그를 감사하지 않으면, 오히려 그를 질투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울은,

자기가 백성들 앞에서 어떻게 보일까?’ .. 자기 체면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이 카오스로 끝났다는 반면교사입니다.

 

사람의 상황이 더 악화되면, 귀신의 도움을 찾게 됩니다.

사울의 딜레마는 점점 더 악화되고, 더욱 더 꼬여 갔습니다.

 

bad에서 worse로 갔다가, 그래도 감사 찬양하지 않으니

이제는 worst 막장까지 가게 되었는데요.

 

여러분, 우리도 영적 상태가 아주 안 좋아지면,

하나님과의 수평적 관계가 개선되지 않고, 계속 막혀있으면,

 

우리 역시, 사울처럼, 정말 평소에 꿈도 꾸지 않았던, 이상하고 엄청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사울 역시, 자기가 그런 가증스런 일을 행하리라고는, 평소에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위기가 시시각각 자기에게 좁혀오고,

모든 면에서 코너와 위기에 내몰린 사울은,

아주 극단적이며, 가증한 선택을 하게 되는데,

그건 신접한 여인에게 찾아가서 묻는 것이었습니다.

 

사울은 한 때, 이스라엘에서 모든 신접한 자와 박수와 무당을 쫓아냈던 사람이었습니다. 삼상28:3

신접한 여인은, 그래서 사울의 부하들이 지금 자기를 죽이러 온 줄 알고, 벌벌 떨 정도였습니다. 28:9

 

사울은 여전히 자기 체면을 지키는데, 그래서 다른 옷을 입고 변장하고, 그 여인을 찾아갔습니다. :8

 

제 짐 심발라가 슬픈 것은, 그래서 사울의 결말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자기만 망한 게 아니라, 자기 가족들까지 다 몰살시켜 망하게 만든 장본인이 되었습니다.

 

그의 아들 요나단은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버지처럼 악하고 잘못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요나단은 다윗의 가장 절친이었지요.

그래서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두고두고 요나단의 자녀 므비보셋까지 챙깁니다.

 

그런 요나단이 아버지 사울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합니다. 

사울과 그 세 아들과 병기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삼상31:6

 

아들이라 어쩔 수 없었겠지요.

혼란과 카오스의 사람과 함께 했다가, 결국 같은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습니다.

아들들만 죽은 게 아니라, 그의 측근들도 같은 날 모두 함께 전사했습니다.

 

제 심발라는, 그렇게 허망하게 죽은 요나단의 죽음이 너무 아깝습니다.

그렇지만 사울의 죄 때문에, 그의 삶의 카오스는

자기는 물론이요, 자기 아들들과 측근들까지, 다 카오스로 함께 몰아가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반면교사입니다. 우리도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카오스는, 나 혼자만의 카오스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못하고, 내 가족과 내 측근들까지, 다 함께 카오스로 몰아넣을 수도 있습니다.

 

저 심발라는 일년에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상담합니다.

다 그런 것은 아닌데, 보니까 많은 경우에

부모가 잘못해서, 그 죄의 결과가 자녀에게까지 미친 경우를 수없이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죄와 그 혼돈이,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자녀세대까지 값을 치르게 하는 구나

하는 사실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요나단 처럼요!

 

물론 그 자녀가, 예수님을 진실히 믿고, 늘 기도의 삶을 살 때,

그 부모의 악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유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그냥 그대로 살면.. 가정공동체 전체에, 그 불행의 영향이 파급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반대로, 부모가 잘 해서, 부모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면

그 복이 또한 자녀들 세대까지 고루고루 미치니까요.

하나님을 너무 원망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지요.

 

마치는 말

오늘 우리가 다니는 교회에는

사울 같은 사람이 많이 다닐까요, 다윗 같은 사람이 많이 다닐까요?

 

다윗 같은 사람들이 많기를 바라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가요?

나는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내 삶의 트러블의 때에도 말입니다.

 

내 인생에는, 하나님이 주신 큰 그림이 있습니까?

또한 나는 매일의 삶에서 작은 그림을 주님께 부여받고 있습니까?


아니면 사람을 더욱 의식하면서

상태가 bad에서 worse 로 점점 더 악화되어가고 있습니까?

 

옷 입는 것에, 화장하는 것에 너무 신경쓰는 사람은,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옷을 단정하게 입어야 하지만, 우리는 사람보다 주님을 더욱 의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울의 반면교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심한 경우, 내 가족까지 카오스에 빠뜨린다는 것을 명심하면서

사울이 아니라

다윗의 삶을 사시게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