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인생 행27:1~37 16.06.19 스크랩, 출처
◑폭풍의 유익
조지 허버트라는 분은 "기도를 배우려면 바다로 가라." 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은 해변의 아름다움이 기도를 가르친다는 말이 아니죠.
성난 파도를 일으키는 폭풍 속에서, 우리는 진정한 기도를 배울 수 있다는 말입니다.
폭풍 속에서 우리의 기도는 짧아집니다. 미사여구가 필요 없습니다.
우리의 간절하면서 터져 나오는 기도는, 수식어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하나님, 살려주십시오." "하나님, 구원해주십시오."
"하나님, 제가요..." 이러한 짧은 단어로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것이 바로 ‘폭풍 속에서 배우는 기도’입니다.
▲폭풍은 고난 속에서 항해하는 인생들에게
하나님께서 그 분의 주권을 가르쳐주시는 방법입니다.
엄청난 고난 속에 있었던 욥이, 하나님 앞에서 많은 질문을 던지죠.
욥기가 길어진 까닭은, 그의 고난의 길이기도 하지만
고난 속에서 욥이 하나님 앞에 많은 질문을 던졌던 질문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많은 질문에 대해서 하나님이 응답하실 때
폭풍속에서 하나님께서 임재, 응답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 폭풍과 함께 나타나셨을까요?
폭풍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 폭풍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죠.
"내가 땅의 기초를 놓았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번개가 내려가는 길을 아느냐?"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만물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그 주권과 섭리를
어찌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욥은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욥이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하죠.
"내가 다 알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말하였습니다."
"과거에 내가 귀로만 들었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귀로 듣는 신앙에서, 눈으로 하나님을 보는 신앙으로 변화된 것이잖아요.
이렇게 욥은, 폭풍속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또한 폭풍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는 인생들을
돌이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니느웨에 가서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라는 말씀을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던 요나를, 하나님께서 폭풍속으로 쫓아내셨어요.
그 폭풍은 요나 때문에 일어난 폭풍입니다.
그 배가 좌초될 위기에 처해서 결국 요나가 바다에 떨어지게 되죠.
그 물고기 속에서 요나는 회개하게 되죠.
요나도 폭풍 속에서 하나님을 뵌 것입니다.
폭풍우는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그 주님의 길이 됩니다.
▲갈릴리 호수가 폭풍이 일어나서 성난 파도처럼 변했죠.
갈릴리 호수는 사실 그다지 큰 호수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호수에서 어떻게 그런 성난 파도가 일어날까요?
성지순례를 가보면, 해수면과 그 지형의 특성 때문에
어떤 때는 큰 바람이 일어나죠.
그래서 갈릴리 호수 근처에 있으면 갑자기 바람이 불면
막 파도가 치듯이 그렇게 파도가 차오르는 때가 있습니다.
심하게는 한 10m 이상까지 물결이 차올라 올 때가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제자들이 탔던 작은 배가 감당하기에는 큰 파도가 일어나고,
그 폭풍이 일어났을 때
저 멀리서 누군가 그 물위를, 폭풍 속에서 걸어오는 모습을 봤습니다.
한 제자가 소리쳤습니다. "유령이다!"
그 때 다가오시던 주님이 말씀하시죠.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께서 왜 제자들을 찾아오실 때, 호수가 잠잠할 때 찾아오시지 않고
그 폭풍 속에서 찾아오셨겠습니까? 그 이유가 있습니다.
이 폭풍이 지나간 이후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마태복음
14:32~3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32. 그리고 그들이 함께 배에 오르자 바람이 잔잔해졌습니다.
33. 그때 배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께 경배드리며 말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제자들이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라고 경배했다는 거예요.
기적이 일어날 때도 제자들이 이렇게 하나님을 경배한 적이 없어요.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실 때도, 그리고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말씀해 주실 때도
제자들이 이렇게 함께 주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경배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폭풍 속에서 그들에게 걸어오신, 그리고 폭풍우를 잠잠케 하시는 주님께 그들이 경배했다는 거죠.
왜 그렇습니까?
이 폭풍의 위용 속에서, 그들의 모든 소망이 끊어지는 그 상황에서
그들이 구원을 얻었기에
그 체험속에서 주님이 진정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체험한 것입니다.
폭풍은 우리의 사회적 진리나 경력이나 돈이나
우리 자신의 배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찾아옵니다.
폭풍이 찾아오면 우리는, 홀로 버림받은 것 같고, 앞이 보이지 않고
그리고 모든 소망이 끊어지는 그런 상황에 처합니다.
그때 주님이 그 폭풍우 속에서 우리에게 찾아오시죠.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폭풍 속에서 주님의 이 음성을 듣는 복된 주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을 태운 배가 로마로 가는 중에 유라굴로라고 하는 엄청난 폭풍을 만났습니다.
그 폭풍 가운데 주님은 바울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바울을 통해 나타나셨습니다.
가이사랴에서 로마까지 가는 여정은 아주 먼 길이지요.
3200km정도가 되는 먼 길이라고 합니다.
지도를 같이 보십시다.
가이사랴에서 쭉 이렇게 해안선을 따라서 가는데
루기아 에서 더 큰 곡물선으로 갈아탑니다.
알렉산드리아 호라고 하는 배로 갈아타서 좌측으로 이동하던 중에
그 크레타라고 하는 한 섬까지 가는데 역풍이 계속 불어서 더뎌진 것이죠.
그래서 가까스로 크레타섬에 미항에 잠시 정박합니다. *아름다운 항구
그때에 이제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된 겁니다.
‘계속 항해를 이탈리아로 가는 항해를 할 것인가?
아니면 그곳에서 머물러서 더 지체해서 그 일기를 보고 판단할 것인가?’
라는 그 판단을 크레타 섬에서 하게 되는 거죠.
이 때 바울은 경고를 합니다. 충고를 합니다.
‘지금은 시기적으로 위험한 시기입니다. 그때가 약 한 10월 초중순정도가 되었을 텐데
9월 중순에서 11월까지는, 이 지역이 항해에 위험한 시기라고 합니다.
물론 11월 이후에는 더 위험하고, 항해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위험한 지역입니다.
바울은 역풍이 계속 불어오는 것을 보고 감지한 것이죠.
이것은 꼭 기도를 통해서 음성을 듣지 않아도
경험상 상식적으로 과학적인 판단을 내려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그런 판단이었죠.
그래서 바울이 충고를 합니다.
행27:9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금식하는 절기도 지났기 때문에
항해가 위험해졌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사람들에게 충고했습니다.
10 여러분, 내가 보니 우리가 이렇게 계속 항해하다가는 재난에 빠지고
배와 짐이 큰 손실을 입을 뿐 아니라 우리 목숨도 위태로울 것입니다.
11 그러나 백부장은 바울의 말보다는 선장과 선주의 말을 더 따랐습니다.
금식한 절기가 지났다고 하는 것이, 그 시간적인 때를 설명해주는 거죠.
“지금 위험한 때이고, 역풍이 부는 것으로 보아서 지금은 항해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라는 조언을 한 것입니다.
좋은 믿음은 이 과학과 상식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통 유대인들은 대개 바다와 친숙하지 않다고 여겨지는데,
대개 이 남쪽에 있는 이집트, 북쪽의 그리스인들...
그 사람들은 해상무역에 아주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그렇지만 바울은 유대인으로서는 특이하게
이 바다 여행에 노련한 사람이었다고 봅니다.
고린도전서에 보면 3번이나 난파한 경험이 있다 그랬고,
그리고 한번은 하루 동안에 바다에서 이 나무기둥을 붙잡고 표류한 경험도 있었다...
그는 누구보다도 바다의 유대인으로써는 친숙한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이 경험으로 볼 때, 또 상식적인 그 환경이나 상황으로 볼 때
“이건 위험한 항해이다. 시기적으로도 그렇다. 그래서 일단 머무르는 것이 좋겠다.” 라는 조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백부장은 선주와 또 선원들의 말을 선장의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면 그 배를 운행하는 선주와 선장은, 바울이 알고 있는 위험을 몰랐을까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더 잘 알았겠죠. 그런데 왜 그들은 항해를 결정했을까?
그것이 오늘 이 시대에 일어나는 많은 사고의 공통적인 원인입니다.
‘욕심’ 때문입니다.
지금 바울이 갈아탄 이 루기아라는 지역에서 갈아탄 그 배는
큰 곡물을 수송하는 곡물선입니다.
그러니까 시간이 지체되면 손실이 많은 거죠.
그쪽에서는 빨리 이 물건이 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고,
수송이 지연되면 운송비가 더 들고, 하루라도 빨리 가는 것이 좋기에
위험을 무릅쓰고 가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라는 거죠.
지체할 이유가 없다는 거예요. 어차피 위험한 것,
일단 빨리 가서 하루라도 단축시키자 라는 욕심 때문에 항해를 한 거예요.
오늘 이 시대에도, 충분히 피할 수 있는 폭풍을 만나는 것은, 인간의 욕심 때문이죠.
조금만 더 빨리, 조금만 더 이익을 보자는 욕심이, 폭풍을 만나게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제가 언젠가 지방을 내려가는데 충청도 어느 지역인지 제가 잊어버렸습니다만,
고속도로 중간 국도 오른쪽에 이런 큰 표지판이 붙여져 있더라고요.
아마 그 지역에서 차가 있으면 과속을 많이 하나 봐요.
이런 표지판이 있어서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렇게 급하시면 어제 내려오시지 그랬시유."
급하게 빠르게 조금만 더 얻고자 하는 욕심이
바울이 탄 배가 폭풍우를 만나게 되었다는 거예요.
처음에는 부드러운 난풍이 불자, ‘아 괜찮겠다.’ 생각하고 항해를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유라굴로라는 폭풍이 불어 닥쳤어요.
크레타(그레데) 섬에서 내려오자마자 바로 태풍을 만난 거예요.
그래서 저쪽에 몰타(멜리데)라고 하는 섬에 나중에 상륙하기 전까지
그들이 이제 살아남아서 올라가기 전까지 상당히 긴 여정이 되었지요.
지금도 몰타 섬에가면 바울이 그곳에 머물렀던 그러한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자, 그럼 이 폭풍을 만나서 그 바다를 표류하는 과정에 그들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했죠.
구명정을 배 위에 붙잡아 두고 선체를 밧줄로 다 동여매고,
닻을 내려서 브레이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짐과 배의 장비들을 다 바다로 버렸습니다.
근데 결국 그들은 소망까지 버리게 되었어요.
지금 살려고 다 몸부림치며 애쓰는 가운데
결국 그들의 상황이 바뀌지 않는 거예요.
‘해와 별이 보이지 않는 날이 오래되자, 며칠이 지나자 그들은 소망을 버렸다...’
이것이 얼마나 연약한 인생인지를 보여주는 것이죠.
행27:20 여러 날 동안 해와 별도 나타나지 않고 폭풍만 계속 불어 닥치자
결국 우리는 구조될 모든 소망을 포기했습니다.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비치지 않자, 소망을 포기하는 거예요.
요즘 같은 GPS가 있던 시대가 아니어서, 해와 별을 보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별자리나 해의 방향이 지도였고, 그것이 방향을 제시해주는 ‘자연 GPS’역할을 했죠.
해와 별이 며칠 동안 나타나지 않고 폭풍이 불어오자
그들은 ‘아 이제 우리는 죽었다. 우리는 살 수 없다.’ 라고 하는 절망에 빠져버리게 된 겁니다.
아무리 견고한 닻을 내려도 소망이 닻이 없으면 절망에 빠져버리게 되는 것이죠.
이러한 상황 속에서 아비규환이 되었고, 모두가 새 소망을 잃어버리는 어떤 대책도 소용이 없는...
▲그러한 상황 속에서, 오직 한 사람만이 이 폭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까지 호송당하고 있는 이 죄수 바울.
오직 바울만이 이 폭풍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가 다른 사람보다 담대했기 때문입니까?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겁이 없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주님이 그 폭풍 속에서 그 바울에게 찾아오셨기 때문에,
그리고 그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 그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행27:22 그러나 이제 내가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고 배만 손상될 것이니 안심하기 바랍니다.
23 어젯밤 내 하나님,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천사가 내 곁에 서서
'바울아 두려워 마라. 네가 마땅히 가이사 앞에 서야 한다.
24 그래서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네게 맡겨 주셨다.' 라고 하셨습니다.
25 그러니 여러분, 안심하십시오. 내가 하나님을 믿으니
내게 말씀하신 대로 이뤄질 것입니다.
26 그러나 우리는 밀려서 어느 섬에 닿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위기 상황속에서 3가지 내용을 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1. 첫째는 “두려워하지 마라.”
이것은 바울도 두려워했다는 거죠. 바울도 두렵지 않았겠습니까?
폭풍을 두려워하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폭풍이 두렵지 않기 때문에 바울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게 아니에요.
그도 역시 두려웠습니다.
그러나 폭풍 속에서 임재하신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흔들리지 않는 거죠.
폭풍만을 바라본다면 무너집니다.
그러나 폭풍 속에 계신 주님을 바라볼 때, 우리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마라."
▲2. 두번째는 “네가 반드시 가이사 앞에 서게 될 것이다.”
“너에게 주어진 사명은 로마에서 가이사 앞에 서도 나를 증언하리라는 그 말씀이 주어져있다.
너에게는 사명이 있다. 너에게 준 그 사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너는 안전할 것이다.”
“사명자는 죽지 않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의 사명을 완수하기 전까지는, 우리의 삶은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붙잡고 나아가는 인생은
하나님께서 그 사명이 다하기 전에는 절대 우리를 이끌어가지 아니하시는 거예요.
“너에게는 사명이 있다. 가이사 앞에 서야 하니,
아무리 폭풍이 불어도 너는 안전할 것이다.” 말씀하신거예요.
▲3. 세 번째는 바울과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너와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내게 맡겼다.”
첫 번째와 두 번째 말씀은 바울에게 주시는 말씀이죠. “두려워하지 마라.”
또 “너는 가이사앞에 서게 될 것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 무조건적인 보호약속이죠.
근데 세 번째 약속을 잘 보십시오.
“너와 함께 하는 이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내게 맡겼다.”
이건 무조건적인 보호약속이 아니라
바울이 어떤 리더쉽을 발휘하느냐에 따라서
이 사람들의 생명은 좌우될 수도 있는 거예요.
이때부터 바울은 표류하는 배에 영적 선장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때부터 바울은 적극적으로 리더쉽을 발휘하게 됩니다.
왜요? 이 사람들의 생명이 자신에게 맡겨져 있기 때문인 거예요.
자신이 리더가 되는 거예요. 적극적으로 나서는 겁니다.
◑선장 역할을 하는 바울
▲표류하는 이 세상에서 교회는 영적 선장의 역할을 해야되는 거죠.
보다 더 적극적으로.
저도 이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을 향하여 영적 지도력을 발휘해야 되겠다..’
정치적인 세력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을 맡겨 주셨기 때문에
영적 지도력을 어떻게 발휘하는가에 따라서..
그들의 생명이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바울에게 이 사람들의 생명이 맡겨진 거예요.
그런 바울이 얼마나 정신이 없을까요? 두려워할 틈이 없는 거죠.
그때부터 바울은 선장 역할을 하고 백부장 역할을 합니다.
이때 모든 지도자들은 다 절망에 빠져있죠.
백부장도 절망에 빠져있고 선원들은 도망가려고 해요.
몰래 구명정을 띄우고 도망가려고 했어요.
바울이 그걸 보고 백부장에게 말합니다.
“저 사람들이 떠나면 남아있는 사람도 온전치 못합니다!”
그래서 백부장이 구명정에 줄을 끊어버리죠. 못 가게 하는 거예요.
바울은 이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지금 도망간다고 해서 안전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내게 주신 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것이 안전한 것입니다.
폭풍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단 한가지 밖에 없습니다.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면 폭풍을 이겨낼 수 있을 것입니다.”
가장 안전한 것은 폭풍 속에서도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가장 안전한 거예요.
이들이 인간적인 방법을 다 해봤잖아요.
배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동원했지만, 결국 소망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을 때에
하나님이 임재의 닻, 하나님의 말씀의 닻을 내릴 때,
우리는 비로소 안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폭풍 속에 있는 배와 같습니다. 표류하는 배와 같습니다.
이 표류하는 폭풍 속에 있는 배와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어떻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의 닻을 깊이 내리는 거예요.
우리 영혼의 닻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이 세상가운데 내리는 거예요.
이 풍랑에 이들이 왜 닻을 내렸냐면은,
이 돛단배의 큰 돛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바람이 불 때는 돛을 내리고, 닻을 내리죠.
앵커(닻)를 깊이 내리면, 그 닻을 끌어당기면서 배를 지탱하고
그 닻을 끌어올려서 던져서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간다는 거죠.
바람이 전혀 없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람이 전혀 없을 때도 배가 못 움직일 때
그때도 닻을 내려서 닻으로 끌고 배를 끌고 가는 거예요.
그러나 닻이 소용없는 그런 폭풍 속에서
어떻게 우리가 이 험난한 폭풍 속을 항해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영혼의 닻이신 하나님의 말씀. 우리의 인생의 운명을 아시며,
역사를 결정하시며, 그리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임재 앞에
깊이 영혼의 닻을 내리는 것입니다.
유라굴로 폭풍은 276명의 생명을 바울에게 맡겨서
바울과 함께 하시고 바울이 섬기는 그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신 사건이예요.
이 바울이 영적 주도권을 끌고 가는걸 보십시오.
재판 받을 때도 바울이 영적 주도권을 가졌죠.
왜요? 양심에 따라 행했기 때문입니다.
▲이 폭풍 속에서, 그가 영적 주도권을 가졌죠. 왜 그렇습니까?
말씀을 따라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이 주어져도, 바울이 믿음으로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 또한 두려워했고 그 또한 당황했고
그 또한 영적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했을 거예요.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을때 그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이면서...
“두려워하지 말라.” 그랬을 때, 그는 두려워하지 않았고,
“너는 가이사 앞에 설것이다.” 했을 때 ‘나는 설 것이다.’ 라고 믿었고.
“이 생명을 너에게 맡겼다.” 그랬을 때, 그는 주도력을 발휘했습니다.
적극적으로 그는 선장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먼저 그 말씀을 믿는다는 행동으로 보여주었어요.
그래서 폭풍 속에서 그 흔들리는 배속에서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처럼
그는 하나님 앞에 감사하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어요.
그러더니 14일동안 표류하면서 그 흔들리는 배 속에 뭘 먹을 수 있겠습니까?
멀미가 났겠죠. 흔들리는 배 속에서 뭘 먹고 싶겠어요?
죽음 앞에 서있는데 뭐가 식욕이 당기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이 그 말씀... 바울도 똑같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 말씀이 그의 영혼 속에 임했을 때, 그는 그 말씀을 믿고 행동했어요.
사도행전 27장 33절에서 36절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33. 날이 밝아 올 무렵 바울은 그들 모두에게 무엇이든 먹어 두라고 권하며 말했습니다.
"지난 14일 동안 여러분은 계속 마음을 졸이면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굶고 지냈습니다.
34. 그러므로 이제는 여러분이 음식을 좀 먹어 둘 것을 권합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 어느 누구도 머리카락 하나라도 잃지 않을 것입니다."
35. 바울은 이렇게 말한 뒤 떡을 조금 가져다가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한 후 떼어먹기 시작했습니다.
36. 그러자 모든 사람들도 용기를 얻어 음식을 먹었습니다.
바울이 이 상황에서 감사하며 음식을 먹는 것은
믿음에서 나오는 평안을 보여주는 거죠.
바울 자신이 말씀을 믿었고 그 말씀속에서, 믿음속에서 안심했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식사하는 걸 보여주는 거예요.
사람들은 그 바울의 모습을 보고 안심하게 되었고
사람들은 듣고 따르지 않고, 보고 따르는 것입니다.
말보다 중요한 것은, 믿음에서 나오는 행동이죠.
상황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지만,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믿고 따르게 되었습니다.
이전과는 다르게 상황을 보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에서 점차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용기를 얻게 되었다는 거예요.
▲18세기 후반 랄프 에머슨이라는 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폭풍이 닥칠 때 위험에서 구해달라고 하지 않고
두려움에서 구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바울은 이 폭풍이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으로 임재하심으로
그의 영혼을 붙잡아 주셨고, 그와 함께 한 사람들의 생명을 구원해주셨습니다.
◑마치는 말
▲폭풍 속을 지나고 있는 바울을, 하나님은 찾아오셨습니다.
가이사 앞에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주셨기에
아무리 험한 폭풍이 와도 바울은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폭풍을 바라보지 않고 사명을 바라볼 때, 두려움은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든 할 수 있는 걸 다 동원해봤지만 소망이 끊어졌어요.
그러나 바울에게 찾아오신 그 말씀을 믿고 의지했을 때
그 모두는 소망으로 다시 회복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입니까?
마치 이 표류하는 배 속에 있는 바울과 같습니까?
폭풍 속에 있는 이 세상 속에, 누가 진정한 소망을 보여주며
누가 살 수 있는 길을 보여줄 수 있겠습니까?
우리 모두를 ‘주님’께서 이 시대의 영적 선장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늘 익히 듣는 이 말씀. 이 말씀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영적 선장의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선원도 아니었고, 선장도 아니었고, 군인도 아니었지만,
선장역할을 했고, 군인 역할을 했습니다. 지도자의 역할을 했습니다.
폭풍을 만나면 진짜 지도력이 누가 있는지가 나타나는 거예요.
폭풍 자체가 지도자를 만드는 게 아니라
폭풍 속에서 누가 진정한 진리를 가지고 있고
누가 진짜 생명을 가지고 있는지, 누가 진짜 길을 알고 있는지가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폭풍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닻을 깊이 내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임재의 닻, 하나님의 말씀의 닻을 깊이 내릴 때
어떤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살 수 있음을 믿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리고 함께 있는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소망을 잃어버린 수많은 영혼들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으니,
그들 또한 살게 하실 수 있는... 그들 또한 성령으로 인도할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폭풍을 통해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폭풍을 통해 찾아오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경험하며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주 품에 품으소서 / 능력의 팔로 덮으소서
거친파도 날 향해 와도 /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주님 안에 나 거하리 /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거친파도 날 향해 와도 /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가운데 나의 영혼 /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이 시간 다함께 기도하며 나아갈 때
폭풍 속에 있는 내 영혼이 잠잠하게 주님을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상황은 너무나 급박하고 소용돌이치는 절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주님의 말씀이 있으면, 주님의 약속이 있으면, 주님의 사명이 있으면,
주님의 임재하심의 닻이 있으면 우리는 잠잠할 수 있음을 믿습니다.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폭풍 속에 잠잠했던 바울의 영혼과 같이
우리의 영혼이 잠잠한 영혼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자신만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있는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사명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함께 합심하여 기도하며 나아가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폭풍가운데 바울을 찾아오신 주님,
폭풍 속에 그의 영혼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영적 선장의 역할을 감당할 뿐만 아니라
많은 영혼을 살리는 276명의 영혼을 그에게 맡겨주신 하나님 아버지.
폭풍 속을 지나고 있는 우리의 인생.
표류하는 이 세상속에 우리를 영적 선장으로 삼아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안심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그 약속의 말씀을 믿고 표류하는 인생 속에, 함께 두려워하지 않게 하여 주옵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의지함으로써
담대하게 믿음으로 용기를 얻어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시고
우리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주님 앞에 인도할 수 있는 저희가 되게 하시고
주께서 인도하시는 그 목적지로 온전히 나아갈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기를 원합니다.
두려움 속에 있는 영혼에게 용기를 주시고, 담대하게 하여 주시고,
영혼의 닻을 하나님의 임재 앞에 깊이 내리게 하여 주옵소서.
하나님 아버지, 폭풍속에 바울을 찾아오시고 그와 함께 하신 주님이
바로 우리의 주님이신 것을 믿습니다.
폭풍을 지나고 있는 영혼들, 붙잡아 주시옵시고 흔들리지 않게 하여주시고
영혼의 닻을 하나님께 깊이 내리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임재앞에 말씀 앞에 능력 앞에 뿌리내림으로써
흔들리지 않는 인생이 되게 하시고,
자신뿐만 아니라 맡겨진 영혼까지 그 생명까지 책임질 수 있는
영적 선장이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타자 K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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