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세상을 대하는 법 시46:1, 103:1~8 스크랩, 출처
矽谷生命河靈糧堂 - 劉彤牧師 실리콘 밸리 River Of Life Ch. 류동 목사
911 사건 이후로 지금까지 하나님의 손은
계속해서 이 세계를 내리치고 계십니다.
왜 이 세계를 내리치시는 거죠?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이 땅의 모든 안전체계를
무너뜨리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과거에 의지했던 모든 것을 다 없애고자 하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인간이 보다 겸손해지길 바라시기 때문이며
진짜 하나님을 구함으로써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리길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손이 내리치시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비록 깨진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온 땅을 변화시키는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지금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이 깨진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 문제 제기
교회는 어떻게 깨진 세상과 마주해야 하고,
눈 앞의 기회를 잡아야 하는가요?
◑1. 큰 첫 번째로, 깨진 세상을 마주할 때,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바로 <하나님의 피난처로 들어가는 일>입니다.
시46:1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오,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위 구절은 명확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 라고요!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여기서 한국어로 ‘만날’은 원어로, ‘지금’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현재 만나는 도움’ 이라는 뜻이죠. present help
여러분은 지금 환란 중에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의 피난처시오,
지금 이 순간의 도움이십니다. present help가 되십니다.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리치고 있는 세상에 살다보면,
아무리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이렇게 깨진 세상에 살다보면
우리 마음속에도 두려움이 싹틀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처럼 말이죠.
하박국은 하나님의 손이, 이스라엘을 치려한다는 것을 알았을 때
하나님이 갈대아인을 보내서 이스라엘을 심판하려 하실 때
마음속에 두려움이 가득했습니다.
왜냐하면 갈대아인은 이스라엘보다 훨씬 더 사악한 민족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치려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두려워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망대에 올라가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손으로 그 땅을 치고자 하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백성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의 피난처다’ 아멘?
다시 말해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겁낼 필요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세상을 내리치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안에서 평안과 안식과 기쁨을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때는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하루 이틀 알고 있는 진리가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분명히 알면서도,
그렇게 많이 듣고 살아왔음에도
우리 내면은 그러한 안식과 평안을 누리며 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몇 주전 이런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제게 아주 분명하게 한 가지를 일깨워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피난처는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이라고요.
그렇습니다.
‘피난처는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냥 그 곳에 피난처가 있다고 아는 것은, 별로 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 되신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는,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교회를 몇 년이나 다니고 매일 교회에서 살고
성경을 달달 외우고 있다고 해도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 되신다는 것을 알고 외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피난처는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머리로 아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이죠.
시간을 들여 그 피난처 안으로 직접 들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왜 이 피난처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제가 발견한 가장 중요한 원인은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두려움 속에서 지내고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지켜주지 않으실까봐 두려워하면서요.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이 미덥지 못한 것일까봐 두려워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필요를 채워주지 않으실까봐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우리 마음속엔 원망만 쌓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여러분.
하나님을 원망하고, 환경을 원망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합니다.
결국 그렇게 마음속에서 평안과 기쁨이 사라지게 됩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피난처로 들어가는 법을 다시금 배워야 합니다.
어떻게 들어가야 할까요?
눈을 열어 하나님을 다시 알고, 그 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고, 그를 의지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알아야 할 3가지가 있습니다.
▲1.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고
내면의 불평은 듣지 않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함께 말해 봅시다.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고
내면의 불평은 듣지 않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시103:1
다윗은 자기 내면과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하루 종일 자기 안의 목소리가
불평하고 두려워하고 고민하는 것만 듣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내면과 대화할 줄 알았기 때문에
시편103편1절에서 “내 영혼아”라고 자기 내면에게 명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향해,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명령할 수 있었던 것이죠.
우리도 자신의 내면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것, 그것이 괴로움이든 원망이든 두려움이든
모두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멘?
반면 내면의 불평에는 귀 기울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내면을 향해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내 믿음을 하나님 말씀 위에 세워야 합니다.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시103:5
이 얼마나 귀한 말씀입니까.
제가 정말 좋아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소원을 들어주지 않으실 것 같습니까?
하나님은 ‘좋은 것’으로
우리 소원을 만족케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들어주지 않으신다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들어주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찾아온 문둥병자가 생각나는군요.
그는 치료받기를 원했습니다.
그가 예수님께 말하기를 ‘주여 원하시거든..’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는 ‘주께서 원하신다면’ 내가 깨끗함을 얻겠습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게 예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 문둥병자는 분명히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듣자마자
‘정말요? 제가 잘못 들은 것 아닙니까?’
정말 제가 들은게 맞나요? 라고 했을 겁니다.
그는 기뻐 뛰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주님 앞에 나왔지만
확신 없이 주님을 부를 때가 많습니다.
‘주님 당신이 원하시면.. 당신께서 허락하시면..’
하지만 주님은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주님은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케 할 것이며
네 청춘을 독소리 같이 새롭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할렐루야!
*신실한 관계에 있을 때 말이죠. 아니면 초신자일 때나요!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 말씀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그래야만 믿음의 성장을 얻을 수 있습니다.
▲3. 세 번째 소망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속성 위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103:8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우리의 소망은 반드시 하나님의 변치않는 속성 위에 세워져야 합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을 다시 알아 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읽을 때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소중한 분인지 알게 되고
하나님을 다시 알아갈 때, 우리 마음 가운데
소망이 다시 싹트게 될 것입니다. 아멘?
소망이 있는 사람은, 결코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환경을 탓한다면, 그는 소망이 없는 사람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주신 환경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환경을 주셨을 때는, 우리가 그 위치, 그 환경에서만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은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곳에 있어야만, 하나님의 손 안에서 그의 쓰임을
받을 수 있기 떄문입니다.
하나님이 그러한 환경을 우리에게 주셨을 때는
우리를 그곳에 두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곳에 서 있어야만 비로소 은혜를 받고
쓰임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마치 구약시대의 요셉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케 하기 위해
요셉을 사용하기 좋은 곳에 두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꼿에 있어야 했던 것입니다.
물론 그곳이 하필 감옥이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요.
하지만 그 곳은, 한님이 그를 사용하기 위해
그가 반드시 있어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환경을 주셨습니까? 그곳이 우리가 있어야 할 곳입니다.
그곳에 있어야만 은혜를 체험할 수 있고,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망이 있는 사람은 결코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이 그곳에 자신을 둔 이유를 알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있는 사람은 그 어떠한 환경에서도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어려움을 헤쳐나갈 방법을 찾아냅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아멘?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반드시 해결책을 찾아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요. 마치 바울처럼 말입니다.
바울이 얼마나 로마에 전도하러 가기를 원했습니까.
그가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을 때 그는 감옥에 갇힌 신세였습니다.
감옥에서 어떻게 전도를 하겠습니까? 우리 생각에는 방법이 없는 일이죠.
하지만 바울은 감옥에 있으면서도 온갖 방법을 동원합니다.
그는 언제나 소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해결책을 찾아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살폈을 때 그를 지키던 로마군 간수를 발견합니다.
그 간수들은 6시간에 한 번씩 교대를 하죠.
바울은 이것을 큰 기회라 여깁니다.
그가 복음을 전하면 어떤 사람들은 듣지도 않고 도망가 버렸지만
감옥(가택 연금)에는 자신의 옆에 지켜 서서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떠나지 않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가만히 옆에 서서 쫓아내려 해도 떠나지 않는 사람이 말이죠.
그리고 늘 사람이 바뀌기까지 합니다. 이렇게 좋은 기회가 또 있을까요?
바울은 그냥 가만히 전하기만 하면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의 모든 간수들이 복음을 들었다고요.’ 아멘?
하나님께 영광 돌립시다.
이렇듯 소망이 있는 사람은 환경을 탓하지 않습니다.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해결책을 찾아 나섭니다.
그리하여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낸다는 것입니다. 아멘?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날 이러한 환경에서 이 무너져가는 세상 가운데
우리는 반드시 피난처로 들어가야 합니다. 들어가서 진정한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만날 때 비로소 마음속에 새 소망이 넘쳐날 것입니다.
어떠한 환경에도 쓰러지지 않고 어떠한 환경 중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그의 역사를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아멘?
그렇기 때문에 가장 첫 번째로 피난처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2. 큰 두 번째 입니다. 우리는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장 7절 말씀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주님은 분명히 우리에게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셨습니다. 막11:17
하나님은 교회가 단지 설교하고 설교를 듣는 곳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교회가 그저 설교하고 설교를 듣는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은 ‘만민이 all nations 기도하는 교회가 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토록 위기가 가득한 시대에 우리는 잦은 무력감을 느낍니다.
어떻게 돌파해야 할지 모르는 무력감 말이죠. 하나 알려 드리죠.
바로 그런 때가 가장 기도하기 좋은 때입니다. 아멘?
▲주님은 마태복음 18장 18절을 통해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보십시오.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귀한 약속을 주셨습니까?
주님께서 얼마나 큰 권세를 주셨습니까?
기도만 하면 무엇이든 땅에서 맨 것은 하늘에서도 매이고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겠다고 하셨습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다시 한번 구해야 합니다.
기도의 불씨를 지펴 달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시대에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근신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왜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까?>
▲1. 첫번째 이유는 바로 주님이 우리를 기도하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22장 30절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는 무너진 성벽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곳을 막아 서서 이를 위해 기도할 단 한 사람을 찾는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구별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무너진 곳에 서서 지킬 사람을요.
무너진 곳곳을 지키고 그곳을 위해 기도할 사람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실까요?
왜 우리는 같은 세상에서 각자 다른 것을 보고 듣는 것일까요?
우리는 각자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느낍니다.
설령 같은 일을 본다 해도 같은 것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것을 보게 하고 다른 것을 느끼게 하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하나님은 각자에게 기도의 부담을 지워주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멘?
우리는 매일 다른 것을 보고 다른 것을 느낍니다.
그리고 그 중에 특별히 내 마음을 울리는 한 가지가 있기 마련이죠.
어떤 사람은 특별히 재난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마음 아파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의 파괴나 방황하는 영혼을 보면 가슴 아파하고
어떤 사람은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자 하는 절박한 마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가 그 대상입니다.
목사만 생각하면 마음의 큰 짐처럼 자꾸 목사를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이스라엘만 생각하면 눈물이 떨어질 거 같이 마음 아파하기도 합니다.
각자가 보고 느끼는 대상이 다릅니다.
모두가 같은 것을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왜 각자 다른 것을 느끼는 것일까요? 주님은 그것을 통해 각자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바로 그 무너진 벽에 서서 그것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지워준 부담인 것이죠.
당신에게 특별하게 느껴지는 무엇이 있습니까? 그것이 주님의 부르심입니다.
주님이 당신을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무너진 그곳에 서서 그곳을 위해 기도하라고요.
그러니 하나님의 부르심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주신 마음의 감동을 간과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마음에 다른 감동을 주셨습니다.
모두 같은 것에 감동을 느끼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대부분 이것을 간과해 버립니다.
주님의 목소리를 듣지 못합니다.
그러니 무너진 데를 막아설 단 한 사람을 찾는데 그를 얻지 못하였노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우리 마음에 주신 감동을 간과하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십시오.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유난히 우리 마음을 건드리는 그 한 가지 일을 통해, 주님은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중보자로 무너진 곳을 막아 서서 그곳을 위해 기도할 중보자로 말입니다. 아멘?
옆 사람에게 말합시다. 주님이 당신을 중보자로 부르고 계십니다.
▲2. 우리가 근신하여 기도해야 할 두 번째 이유는 이렇습니다.
기도가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만듭니다.
우리의 마음이 뜨거울 때만, 하나님의 일과 뜻 가운데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차를 우려내는 것과 같아집니다.
여러분은 차를 우릴 대 찬물과 뜨거운 물 중 어떤 물을 쓰십니까?
찬물로 차를 우려내면 어떻게 될까요?
찬물로 우려낸 차를 마셔본 적 있으십니까? 아무 맛도 나지 않죠. 아무 맛도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차도 찬물로 우려내면 아무 맛도 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것만은 반드시 아셔야 합니다.
차는 반드시 뜨거운 물에 우려야 합니다. 그래야 물에 넣은 찻잎이 펴지죠.
만약에 여러분의 삶이 그 오랜 기간 동안 크리스천으로 살아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맛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자기 삶이 아무런 향기가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여러분은 찬물과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동안 찬물로 차를 우려낸 것이죠.
하나님이 그 놀라운 능력으로 일하고 훌륭한 차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여러분한테만 가면 차가 우러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찬물이니까요.
우리는 반드시 뜨겁게 불타는 마음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기도를 통해 불타는 마음을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이 뜨겁게 타올랐을 때 그 뜨거운 물에 차를 넣으면
찻잎이 바로 열려 깊게 우러나고 향이 퍼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향도 나지 않죠.
그러므로 마음이 차가워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마음을 뜨겁게 유지해야만 하나님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뜨겁게 태우고 싶습니까?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는 순간 아무도 우리와 대적하지 못할 것입니다. 아멘?
그래서 이런 말이 있죠. ‘파리는 절대 뜨거운 냄비에 앉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의 삶 가운데 파리가 가득 끼어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건 여러분이 차갑게 식었기 때문이란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속의 냄비는 뜨거워야 합니다. 그래야 원수가 덤비지 못합니다.
감히 우리를 공격하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뜨겁게 달궈야 합니다. 절박한 기도를 통해서 말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 앞에 불타는 온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말세가 가까워 온 이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피난처에 들어가야 할 뿐 아니라
근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을 위해, 교회를 위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무너지는 곳에, 그 틈새에 서서 그곳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의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기적이
우리 앞에 펼쳐질 것을 믿습니다. 아멘!
◑3. 큰 세 번째로, 우리는 <치유 사역을 회복해야> 합니다.
여러분, 부흥과 치유는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부흥의 역사가 몰아칠 때, 교회 안에는 반드시 치유 사역이 강하게 역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부흥과 치유는 결코 뗄 수 없습니다.
오늘날처럼 상처가 많은 세상에서 무너진 인성, 무너진 가정, 무너진 사회를 보십시오.
예수님의 복음만이 이 모든 것을 치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만이 진정한 답과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는 반드시 다시금 주님 앞에 나아와 치유의 역사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신 동안 그가 행한 사역을 돌이켜 보십시오.
예수님이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그가 한 일은 무엇입니까?
자세히 돌이켜 보면 이 두가지만 남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가지 말만 행하셨습니다.
첫 번째. 복음을 전파하였고
두번째, 병자를 치료하셨습니다.
사복음서를 한번 살펴보십시오. 이것들뿐입니다.
하늘나라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를 치료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선택해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 명하셨습니까?
하늘나라 복음 전파와 치유 사역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따르는 70명을 선택하고 그들에게 무엇을 하라 명하셨습니까?
하늘나라 복음 전파와 치유사역이였습니다.
심지어 교회에 내린 큰 사명에도 무엇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마태복음에서는 대사명을 이렇게 말합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 삼으라.' 이것은 복음 전파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 안수하여 병자로 낫게 하라는 말씀은
치유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하늘 나라의 복음 전파와 치유 사역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사역은 이 두 가지가 전부입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아멘? 몸은 머리가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이 땅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이 땅 위에 모든 교회들은 바로 예수님이 행한 일을 해야 합니다. 아멘?
예수님께서 무엇을 하셨다고요? 두 가지입니다.
하늘나라 복음 전파와 치유 사역.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을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제3세계에서 이런 말을 하면 아주 쉬울 겁니다.
거기서 하늘나라의 복음 전파와 치유사역에 대해 말하면
곳곳에서 "아멘" 소리가 들릴 겁니다. 아주 잘 전해지겠죠.
하지만 미국에서는 어렵습니다.
하늘나라 복음 전파와 치료사역? 정말 그게 맞냐고 바로 의문을 제기할 겁니다.
하지만 형제, 자매 여러분.
저는 가끔 우리가 하나님의 진리를 선택적으로 믿고 있진 않는지 생각합니다.
반만 믿기로 선택하는 것이죠. 반만 행하기로 선택한다는 말입니다.
온전한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 담지 않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하늘나라 복음 전파와 치유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아멘?
교회 역시 예수님이 행한 그 일들을 행해야 할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그 일이 아니라요.
교회는 반드시 예수님과 같은 일을 세상을 향해 행해야 합니다.
하늘나라 복음 전파와 치유 사역.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많은 깨진 영혼들이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질병을 앓고 있습니까?
사람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필요로 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말을 해도 사람들은 알아 듣지 못합니다.
하지만 치료의 능력을 체험하는 순간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를 느끼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도움을 구합시다.
이 깨진 세상을 대할 때,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슬퍼하지도 마십시오.
주 안에서 우리는 피난처를 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우리는 기도의 권세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으로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시고 이 시대에 맞서 근신하여 기도하게 해 주시고
우리의 소망을 회복시켜 주시고 우리의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을 믿어 의심치 않게 해 주시고
우리의 사랑을 회복시켜 주시고 그리하여 치료의 사역이 회복되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치료와 자유를 얻게 해달라고 말입니다.
주님께 구합시다.
이 시대에 우리가 바로 그 변화를 이끄는 그릇이 되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 합시다.
주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은혜 주심에 감사합니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주님은 우리를 택하셨고 주님을 바라보게 하셨습니다.
주님, 이 깨진 세상에 살면서도 우리는 주 안에서 평안을 얻습니다.
주님 여기 모인 형제, 자매 모두가 하나님의 피난처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다시 한번 주님으로 인해 소망을 품게 되길 원합니다.
감사합니다. 주님. 우리 삶 가운데 성령 충만함으로 기름 부어주시고
우리 교회로 하여금 이 시대를 잘 알아서 이 깨진 세상 가운데
나 자신을 주님 앞에 내려 놓고 쓸만한 그릇으로 사용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말세가 가까운 이 때에 우리를 통해 치유의 역사를 세상에 나타내시고
하늘의 자유와 평안과 기쁨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합니다. 주님. 감사함 승리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다 함께 일어나 찬양 부르시겠습니다.
♬마음이 상한자를 고치시는 주님 / 하늘의 아버지 날 주관하소서
주의 길로 인도하사 자유케하소서 / 새일을 행하사 부흥케 하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 성령의 기름 부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 내 잔을 채워 주소서
성령으로 채우사 주 보게 하소서 / 주의 임재 속에 은혜 알게 하소서
주 뜻대로 살아가리 세상 끝날까지 / 나를 빚으시고 새 날 열어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 성령의 기름 부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 내 잔을 채워 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 성령의 기름 부으소서
의에 주리고 목이 마르니 / 내 잔을 채워 주소서♪
타자 KB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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