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3

책망을 받을 때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한다 / 허운석

LNCK 2016. 7. 30. 09:43

책망을 받을 때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한다       고전1:17~18, 4:26~27, 78:9, 32~37

 

13.03.01.허운석 선교사 제19LDI 세미나 전체특강  

    

 

아마존 선교지 소개 영상을 보고 있으니 이런 생각이 듭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투병하면서 자꾸 허리가 구부러져요.

항암 치료를 계속하다보니 폐가 약해지면서 자세가 앞으로 숙여지네요.

 

저희가 하나님 앞에 가졌던 아픈 소원이 있었어요.

그것은 한 사람의 제자를 얻기를 바랐던 간절한 소원이 느껴져서

제가 가슴의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한 사람이라도 제자로 정말 십자가를 알고, 주님의 부활의 생명과 연합되어서

견고하게 믿음의 뿌리를 내린 한 형제를 얻기를 바랐던 소원을 생각하니까

너무 가슴이 저려온 것 같아요.

 

십자가를 알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죽음을 경험하고

주님의 부활의 생명의 능력과 연합되기까지

충성스럽고 오롯이 주님만을 향해서 가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요.

참 쉽지 않구나.. 하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했습니다.

 

지금도 정말 저희들의 심경 가운데 간절한 소원과 눈물로 하나님 앞에 간구하는 것은

그런 형제와 자매들이 몇 사람이라도 있게 되기를 간구하는 신념인 것 같습니다.

 

저도 여러분들께 부탁드리겠습니다.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17절부터 18절의 말씀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아멘. 우리 한 번 갈라디아서 말씀도 읽어볼까요.

갈라디아서 426절부터 27절 말씀입니다.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오늘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얘기는, <십자가의 부활의 생명>에 대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정말 원하는 것은 주님의 뜻을 따라 살고 싶은 거죠.

 

진짜 꿈에도 소원은 주님의 뜻 따라 살고 싶고, 주님께 온전히 순종하고 싶은 겁니다. 그렇죠?

이 목마름이 얼마나 우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우리의 골수를 상하게 하는지 모릅니다.

 

오늘 보니까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성령의 열매를 못 맺어서 주님과 연합되지 못해서 고통하는 너희여, 기뻐서 외쳐라.’

오늘 아주 좋은 기쁨의 소식이 기록된 것을 보고 여러분들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많이 고통스러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주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고통스럽게 고민하실 것 같습니다.

 

제가 열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정말 온 마음과 정성을 들여서 하나님을 섬기고자 했습니다.

정말 금식하고 철야하고 봉사하고.. 이런 일에는 남달리 뛰어난 열정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해야 순종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해야 육적인 몸을 벗는 할례를 받을 수 있을까?’

율법으로 나가기도 했었고. 엄청난 고통을 겪었던 사람입니다.

 

오늘 와서 제가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제가 병들어서 하나님께 얻은 것은

놀라운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는 은총을 제게 베풀어주셨던 겁니다.

 

제가 그렇게 소망하고 알고 싶어 했던 것을, 암을 투병하게 되며 명료하게 가르쳐주신 것 같습니다.

이것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왜 아멘 안 하세요? (웃음).

 

제가 성경을 읽다가 너무 좌절하고 너무 고통을 했던 여러 구절이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시편 789절입니다.

 

9. 에브라임 자손은 병기를 갖추며 활을 가졌으나 전쟁의 날에 물러가도다.

 

말씀 앞에서 늘 제가 슬퍼하고, 주님을 원치 않게 배반하는 저를 많이 봤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는 아담의 생명이 내 안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있음을 알았고

그리고 내 원죄에 대해서 그것이 해결되지 못한 저를 봤습니다.

 

그래서 제 마음 속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항상 그 두려움 때문에

주님을 부인할 수밖에 없는 그러한 일을 많이 봤습니다.

 

여러분들께 조금 어려운 이야기들이 있을 수 있는데

언젠가는 여러분이 이 설교를 들어두셨을 때 그 말이 이런 말이었구나하실 수 있겠습니다.

믿음으로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말씀이 저를 죽음으로 이끌고 가게 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시편78:32절부터 읽을까요.

 

32.그럴찌라도 저희가 오히려 범죄하여 그의 기사를 믿지 아니하였으므로

33.하나님이 저희 날을 헛되이 보내게 하시며 저희 해를 두렵게 지내게 하셨도다.

34.하나님이 저희를 죽이실 때에 저희가 그에게 구하며 돌이켜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고

35.하나님이 저희의 반석이시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도다.

36.그러나 저희가 입으로 그에게 아첨하며 자기 혀로 그에게 거짓을 말하였으니

37.이는 하나님께 향하는 저희 마음이 정함이 없으며 그의 언약에 성실치 아니하였음이로다.

 

저는 이 말씀을 읽고 절망해버렸습니다.

얼마나 절망을 했는지, 제가 죽음에 가까울 만큼 엎어졌던 기억이 납니다.

 

어떤 말씀이 놀라웠느냐면,

정말 하나님이 그들을 죽이실 때에,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을 간절히 찾았는가,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이 반석이심을 깨달았어요.

지존하신 하나님이 저희 구속자이심을 기억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그렇게 나에게 말하는 것이 아첨이다.’

이렇게 이야기하시는 거예요.

그리고 네 혀로 지금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잖아.’ 이렇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이게 얼마나 기절할 노릇인가요. 진심을 말했는데,

진실로 주님은 나의 반석이시고 지존하신 하나님이 구속자이심을 기억했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이 대답하시기를 너희는 입으로 아첨하고 있고 거짓말을 하고 있잖아이렇게 하시는 거예요.

 

왜요? 하나님을 향하는 우리들의 마음에 정함이 없으며

그 언약에 성실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러니 성실할 수가 없다는 얘기에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죽음으로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세요.

여러분이 꼭 기억하셔야 해요.

 

우리는 정말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끔찍하게 절망과 죽음의 냄새를 여러분이 맡아야 합니다.

이해하시겠어요?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이해가 되십니까? 오케이. 굉장한 수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 정함이 없어요. 기도할 때만 좀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기도하고 돌아서면 또 이상한 거예요. 그렇죠?

웃는 사람은 이해가 된 거예요.

 

그 다음에 아무리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해도.. 안 돼요.

이 기막힌 고통..

 

아니 그럼 기도할 때는 용서가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런데 눈을 뜨면 또 이상한 내가 있잖아요.

이 절망감. 이 슬픔..

이것을 발견한 것은 엄청난 것을 발견한 겁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죽음에 가두시고

우리를 딱 죄인 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세요.

 

어느 정도까지 우리가 절망을 해야 하느냐면

에스겔 골짜기에 많은 뼈들이 있었잖아요.

그 많은 뼈들이.. 사실은 우리가 마른 뼈가 되어야 해요.

 

그래야만 하나님의 말씀이, 그제야 부활의 생명의 말씀이 들어와서

여호와의 군대로 일어설 수 있는 거예요.

 

하나님보다 높아진 자기 이름과, 하나님을 대적할 높은 지식들이 다 파해져서

말라깽이가 되었을 때에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부활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해요.

 

우리 힘으로는 안 되는구나. 이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이뤄주셔야만 하는 일이구나.’

무언가가 다른 영역으로 들어가야만 하는구나, 이 사건이..’

 

이것은 내가 아무리 애벌레가 기어봤자 애벌레에요. 그렇죠?

애벌레에서 나비가 되지 않는 이상은

그 흉한 꼬락서니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해가 되세요?

 

    조금 평범한 얘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에 참석한 우리 형제자매들은, 정말 놀라운 형제자매들이잖아요.

 

제가 어제 설교를 준비하면서, 잠을 못 자면서 뒤척이면서

제가 그래도 눈물이 났던 것은

그래도 LDI 형제자매들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이 형제 자매들이 잘 성장해서 한국 교회를 깨웠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들이 정말 한국 교회의 신선한 빛과 소금이 될 것이다..'

 

이런 간절한 소망 중의 기쁨을 제가 갖더라고요.

제가 갖는 게 아니라 주님이 그러신 것 같아요.

 

정말 신학 대학에서도 보면, 신학교에 들어가서

큰 목회 하겠다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정말 큰 교회 이루어서, 실력 가지고 한 번 주의 뜻을 이뤄보자.’

주의 뜻이 아니라 그건 내 뜻이죠.

 

나라는 사람이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한 번 확인해 보여주겠다.’

그것이 주님을 대적하는 줄도 모르고.. ‘한 번 해보자.’

 

그래서 정말 한국 교회가,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모든 세계의 교회가

사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능멸하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안 믿는 사람보다도 훨씬 악하고 악랄해진 것이

그리스도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여러분들은 정말 맨 몸으로 뛰는 사람들이잖아요. 간혹 생각을 해보면

여러분들이 캠퍼스에 가서 전도하고 그럴 때를 생각해 보면,

 

여러분들이 전도하다가 받는 모멸과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던 그런 모든 시련들을

여러분들이 온 몸으로 감당해내고 있잖아요. 이것은 엄청난 거거든요.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사람을 누가 바치겠어요, 주님께.

그래서 저는 여러분을 생각할 때마다 너무나 죄송스럽고

여러분들께 빚진 마음을 많이 갖고 있어요.

 

여러분들 실제로도 그렇죠?

캠퍼스에서 전도할 때, 멀쩡하게 생긴 사람이 그렇게 능욕을 받고 모멸을 받고..

정말 너무 이상한 사람 취급 받잖아요.

 

그럴 때마다 성령께서 얼마나 여러분들께 계셔서, 여러분들을 안위하시고 축복하시겠어요!

이것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경험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그렇죠?

 

여러분의 담대함. 능욕 받기를 즐거워하고.

이미 그게 기쁨이 된 여러분들은, 어디 가든 못 살겠어요?

 

여러분들이 정말로 한국 교회에, 전 세계에,

정말 예수를 믿는 것은 이런 것이라고.. 여러분들이 모델 되어 주시면 얼마나 감사하겠어요.

 

여호수아 24장의 말씀에 보면,

이제 여호수아의 마지막 고별 설교 말씀, 백성들에게 간절히 부탁하는 얘기를 하면서

너희는 하나님을 섬기지 못한다!’ 이러는 거예요.

 

여호수아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여호와를 능히 섬기지 못할 것은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시요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니 너희 허물과 죄를 사하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24:19

 

그러니까 백성들은 아니요,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겁니다.’ 이러니까 :21

아니, 너희는 하나님을 절대 못 섬겨.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여호수아가 이러시는 거예요.

 

저는 그 말을 듣고 그만 질려버렸어요.

너희는 하나님 못 섬긴다.’

 

그러니 제가 너무 속이 상해서 화가 났어요.

그래서 막 하나님께 도끼눈을 뜨고 게거품을 흘리면서 소리를 막 질렀어요.

그러면 어쩌란 말이에요, 주님! 그렇게 막 철야도 하고 헌금하고

이웃 사람 추우면 옷 벗어주고.. 그런데도 하나님을 못 섬긴다면, 그럼 어쩌란 말이에요? 주님!’

 

저는요, 주님을 그렇게 항의했어요. ‘그만 죽어버릴까요, 제가?’ 이러면서 협박도 하고요.

너무 약이 오르고 속이 상해서 그랬어요.

 

내가 금식하고 철야해서 이제 뼈도 못 추리게 생겼는데.

그렇게 헌신해도 당신을 못 섬긴다고 하니.. 그럼 어쩌란 말이에요?’

 

여러분들 그런 절망 느끼셨어요? 절망해야 해요.

 

▲그러나 너무 놀라운 것은,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부활의 생명에 이른다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살 수 있다는 거예요.

 

예수님 안이라는 것은, 다른 영역이에요.

예수님 안이라는 말을 바울 사도가 많이 쓰시잖아요.

이것은 주님과 연합해서 죽음을 경험한,

그리고 주님의 부활의 생명과 연합된 사람들이 갖는 영역들이에요.

 

성령의 열매를 맺은 사람들이에요.

여러분들 성령의 열매 맺고 싶으시죠? 맺으십니까? 맺어졌어요?

 

그게 아니라 너무 힘들어서 죽겠죠?

우리 한국 교회는 가짜 열매를 나무에다가 매달아놓고, 사랑하라니까 사랑하는 척 하잖아요. *사랑: 성령의 열매

 

가짜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아 놓잖아요. 그리고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얘기해요.

그래서 하나님 말씀에 죄다 걸려 넘어져서 진노하심에 처하게 된 상태죠.

 

제가 이번에 11월인가 미국 갔었어요. 굉장히 아팠었는데, 그 와중에 그런 얘기를 참 많이 했어요.

 

여러분들 많이 봉사하세요. 헌금 많이 하세요.'

여러분들 축복 받고 싶으셔서 양잿물이라도 마실 수 있잖아요, 우리는.

 

우리나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축복 받는데 귀신들이 되었으니까.

축복 받으려면 양잿물이라도 먹을 수 있잖아요.

 

브라질 사람들의 말로는 공짜라면 이마에 주사도 맞을 수 있다이런 표현이 있어요.

브라질 속담이에요.

 

'아, 헌금 많이 하시고. 봉사 많이 하세요. 그러면 축복 받을 줄 알죠?'

제가 그래요.

 

그럼 사람들이 당황해요.

'축복 받는 건 분명합니다.

무슨 축복을 받느냐. 심판을 받는 축복을 받습니다!’

심판을 받으면, 우리가 얼마나 정결하게 되겠어요. 그래서 축복이지요.

 

무슨 심판을 받느냐?

내 마음에 어떠함이 드러나잖아요. 헌금 많이 하게 되면.

 

헌금하면, 어떤 게 드러나요?

누군가 내가 이만큼 헌금한 것에 대해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절망감이 속에서 사무치잖아요.

그게 드러나잖아요.

 

그래서 목을 기린처럼 늘려놨다가, 사람들이 인정해주지 않으면.. 시험에 들어요.

교회에서 봉사 많이 하면, 사람들과 부대끼는 가운데서 어떻게 돼요?

내가 누구인지 알게 돼요. *교만하고 인간의 영광을 바라는 자인지 알게 되죠.

 

그래서 봉사 많이 하면, 그 육으로 심은 것 때문에,

환란을 당하면서, 자기 진면목, 아담의 죄성이 드러나면서 

회개해서 영원한 것으로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금과 봉사가 복입니다.

제가 그런 얘기를 많이 했어요.


사람들은 봉사 많이 하고, 헌금 많이 하면.. 하나님께 축복 받을 것이다.’

이렇게 단순하게 생각합니다만..

 

축복 받는 건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주목하면 안 돼요.

왜냐하면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드러나는 나의 진면목을 꼭 봐야 해요.

 

그래서 율법으로 가면 안 되고, 자유함으로 가야 하는 거죠.

 

여러분들이 헌금 많이 해서 들켜지는 자기 마음을, 반드시 정확하게 봐야 해요.

정확하게 보지 않으면,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내가 심판자가 되고 내가 주관자가 되어서.. 시험 들어요.

시험 들어서 멸망하는 자가 된다는 거죠. 이해하셨습니까?

 

그러니 여러분들도 봉사하다가 주님만 바라보세요.

그렇지 못하고 나를 바라보면,

사람들에 의해서 내 성실함이 인정 안 되면 시험 들어요, 안 들어요?

정직하게 말해요. 시험 들어요,

 

그것을 발견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발견인지 몰라요.

그것을 발견한 축복은 대단한 거예요. 그게 부활로 가는 길이에요. 아멘.

 

아주 심플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은 시험들어서 완고함으로 나아가고.

왜냐하면 자신의 욕구와 욕망이 안 이루어지니까 이를 갈게 되죠.

 

그런데 어떤 사람은,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자기 마음이 들킨 것에 대해서

너무 감사하고 기뻐하죠. 회개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는 것에 대해서.

 

저는 참 외로울 때가 많아요.

누가 나를 야단 좀 쳐줘야 하는데. 야단을 쳐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사람들을, 제가 목말라 하잖아요. 몸이 아프니까요.

제가 누군지 잘 발견이 안 돼요.

 

제가 간혹 가다가 드라마를 보면서, 자꾸 회개를 할 때가 있는 거예요. 놀라서.

그 악한 마음을, *제가 간접경험을 하게 되지요.

 

요즘 보니까 <돈의 화신>인가, 그런 드라마를 해요.

돈 때문에 난장질을 하겠지 했더니, 그런 스토리는 아니에요.

 

제가 그런 걸 보면서, 너무나 충격을 받고 놀라면서 회개를 하는 거예요.

그 사람들의 악행을 보면서

그것이 바로 내 안에 있음을, 너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께 고백하는 거예요.

 

나는 누구라도 보면서 회개하고 싶은 거예요.

악한 사람을 보면서

주여, 내 속에도 저런 것이 있습니다.

제게 기회가 안 왔을 뿐이지, 만약 기회가 오면 더 심하게 될 겁니다.

주여 나를 죽을 때까지. 주님, 사슬로 묶어서 당신 곁을 절대로 떠나지 않게 해주세요.’

그렇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여러분은 텔레비전 보면서 회개 안 하죠?

그러니 날마다 정죄만 당하는 거예요. *세속을 사랑하는 죄?

자기만족을 위해서 보니까 정죄 당하죠.

그런데 나는 회개하려고 보니까, 마귀에게 정죄를 안 당하죠.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를 육체의 방종의 기회로 삼으면 안 된다'고 하셨죠.

여러분은 정말 무엇을 보나,

그 사람이 바로 나라는 것을 반드시 찾아내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그래야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을 수 있는 거예요.

누구를 보든지, 어떤 사람을 만나든지

그 사람이 곧 나라는 것에 대해서 초점을 맞춰야 해요.

그래야만 회개가 나오고, 죄에 대한 인정이 나와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입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더 악독해지는 이유가 뭐냐면

몇 푼어치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 몇 푼어치 기도 좀 했다는 것.

이것 때문에 우리는 왕 노릇하고, 사람들을 심판하길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힘써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하고.. 그런 행사를 하잖아요, 우리가.

 

바리새인 중의 왕 바리새인이 되는 거죠.

나는 저들과 같지 않음을 항상 감사해요.’ 그런 말 하는 사람 있어요, 없어요? 있죠.

 

, 맞습니다, ‘주님. 저는 왕 바리새인 중의 왕왕왕 바리새인입니다.’

그렇게 고백해야 해요.

그래야 얼마나 예수님 믿는 게 기뻐요. 너무 행복해요. 그렇죠?

 

▲여호수아서 24:19절의 하나님의 말씀에 제가 절망했어요.

주님, 그럼 어쩌란 말이에요? 제가 정말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다 드렸는데

주님은 내게 하시는 말씀이, 고작 너는 입으로 아첨하고 거짓말하고 있잖아.

조금 있으면 네가 네 육체의 방종을 따라서 마음대로 놀 것을 분명히 아는데..’ 이러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속으실 것 같아요? 조금만 있으면 이상한 짓 할 걸 뻔히 아시는데요.

 

그래서 주님은 불가분 우리를 할례를 육적인 몸을 벗는 자유함 속으로 데려가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자가를 보내시는 거예요.

그리고 주님의 죽음과 연합되는 그 죽음을 경험시키세요.

 

여러분들 이것을 모르면,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백 날 읽고 전도해도 무엇을 할지라도

여러분은 그냥 여러분들 일을 하는 거예요.

여러분들 생애에, 주님이 당신의 일을 하시도록, 내가 풀어 설명해드리는 일이 내가 할 일이에요. 아멘.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임을 고백해야 해요.

이 고백이 없이는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그것이 주님 앞에 의미가 없어요. 아시겠어요?

 

하나님은 무엇을 받으시냐면,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 받으세요.

예수 그리스도가 하신 것(십자가)처럼, 동일한 것을 주께서 받으신다는 거예요.

 

좀 어렵습니까? 아니죠. 여러분들 똑똑하니까. 잘 알아들으실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십자가에 적용시키시고

어떻게 죽음을 가지고 와서 우리의 영을 자유케 하시는가에 대해서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나도 죽고 싶은데, 나도 주님과 연합해서 제발 죽고

주님의 부활에 연합했으면, 내가 나비가 되어서

주님이 이 땅에 사실 때에 가지셨던 그 자유함 속에서 내가 살 수 있을 텐데..

 

이런 목마름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죽으면 좋을까요?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십자가를 지는 걸까요?

이것이 너무나 깜깜하다. 너무나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 아세요? 어떻게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는지 아세요?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가 그것 때문에 애통하고 슬퍼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긍휼히 여기사 연합된 죽음을 갖도록 인도해주신다는 거죠.

 

아까 제가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같이 읽었죠. 다시 가봅시다.

고린도전서 117절입니다.

 

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그럼 십자가의 메시지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하다,

그러면 이 멸망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님을 안 믿는 사람이냐.

아니요. 우리 크리스천들이에요.

 

여러분들은 이 사람들이 결코 불신자가 아니라는 걸 아셔야 해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럼 내가 멸망을 받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무엇으로 확인하느냐면

십자가의 메시지가 나에게 들려올 때에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를 보면

내가 멸망을 받을지/아닐지

내가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다는 얘기에요.

 

이게 얼마나 무서운 얘기에요. 굉장히 무서운 겁니다.

 

그럼 이 십자가의 메시지라는 게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메시지에 대해서 히브리서를 봅시다. 히브리서 412절입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여러분들이 내가 멸망을 받을 사람인지/아닌지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요?

이것은 말씀을 비춰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어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하나님의 십자가의 메시지는 내 속에 어떠한 것이 있는지를 드러내시고

들춰내시고 그러는 역할을 하신다는 거예요.

 

십자가의 메시지는,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 대하여, 율법에 대하여, 자기에 대하여.. 죽음을 선포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아직도 옛사람 아담이 처리되지 않은 사람은

십자가의 메시지를 들으면 신경질이 나는데,

왜냐하면 그 사람은 원죄가 처리되지 않았기에

모든 일에 대해서 자신이 주인이기에 대접을 받아야하고 인정을 받아야하고

누구보다 자기가 옳아야하는 사람이 되는 거예요.

 

그러나 십자가 안에 있고 부활 안에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러한 책망과 인정받지 못함과.. 그러한 모든 것에서 그들은 자유해요.

오히려 그들에게는 말씀이 오히려 자신들에게 사망이 되지 않고, 기쁨이 된다는 거예요.

 

분별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을 일생동안 벌거벗기셨다는 거예요.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인도하시는 과정 속에서 벌거벗기셨다는 거예요.

무엇을 보내서? 환경을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아브라함, 요셉, 야곱, 그들의 생은

다 십자가로 몰아진 생명들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이 어떠함을 일생동안 들춰내셨다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은 우리를 환경을 통해서, 내 자신이 어떠함을 드러내시는

그 메시지가 바로 십자가의 메시지입니다.

 

환경을 통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환경을 통해서 나의 어떠함을 드러내심으로써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스스로 확인하게 하시고.

내가 절대 의에 이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내가 하나님의 말씀처럼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심으로써

드디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한다는 놀라운 사실로 이끌어 가십니다.

 

그 아들로 우리의 생 전체를, 그 아들에게 우리를 끌고 가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 아들 안에서 생명을 얻어야만 우리가 아벨의 제사를 지내고

바로 하나님이 받으시는 사람이 된다는 얘기에요.

그리고 <영생에 들어간다>는 거예요. 굉장히 어마어마한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예를 들어, 어떤 하나님의 사람이 여러분들을 권면할 수 있어요.

여러분은, 아마 훌륭한 리더들이 계시기 때문에

그들에 의해서 여러분은 순종을 배우셔야 합니다.

 

여러분은 다 발가벗겨져야 하고

그리고 자신을 부인할 수 있는지 아닌지

내가 그리스도와의 죽음과 연합할 수 있는지 아닌지.. 반드시 확인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나를 권면할 때에, 여러분이 어떤 반응을 하느냐에 따라서

여러분은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에게 속해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여러분이 주님을 따라가고 있는 사람인지

얼마만큼 주님의 생명을 소유한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는 거예요.

 

여러분이 무엇으로 하나님의 눈앞에서, 그 분의 심판 앞에서 여러분 됨을 어떻게 알겠어요?

예를 들어 하나님의 사람이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해봐요.

 

CBS방송 <새롭게 하소서>, 제가 얼마 전에 나갔어요.

한 십 년 돼야 다시 방송에서 부른다는데, 제가 죽을병에 걸리고 그랬으니까

말씀을 전하러 다니니까 저를 보고 와서 간증하라고 했습니다.

 

이번 주 월요일에 방송이 됐어요. <새롭게 하소서>.

제가 왜 나갔느냐 하면, 병든 형제자매들에게

또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는 형제자매들에게 위로가 될까

하는 마음이 있어서 제가 나갔습니다.

 

아시아연합신학대학에, 독일에서 오랫동안 공부하신 교수님이 제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선교사님, 왜 사람들이 선교사님을 싫어하는 줄 아세요?

왜 그렇게 선교사님을 좋아하면서도 버거워하는지 아세요?

적당히 사시지, 뭘 그렇게 주님을 따라야 하나, ? 저 때문에 짜증이 난다는 거예요

 

솔직하게 표현해주신 게 어찌나 고맙던지요.

세상에, 얼마나 정직하세요.

사람들 속에 그런 마음이 다 있는데 꿍쳐놓고 안 그런 척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 어른은 아주 솔직히 얘기하는 거예요. 자기 마음에 안 든다는 거예요.

얼마나 솔직한 얘기에요.

모든 사람들이 저를 굉장히 부담스럽게 생각해요. 싫어하죠.

도망가는 사람도 많고.. 왜 그러겠어요?

 

들킬까봐 그러는 거잖아요.

아니 내가 무슨 죄를 찾는 사람이에요?

 

나는 너무나 쓸쓸하고, 사랑하고.

자기 꼬락서니나 내 꼬락서니나 똑같은데.

내가 뭘 판단하는 사람이겠어요? 왜 나를 두려워하느냐 말이에요.

 

그러니 나는 항상 외로운 거예요. 너무 외로워해요.

죄다 내게서 도망가서.

 

그래서 제가 하나님 심정을 이해한다니까요.

그래서 하나님께 그러죠.

하나님, 당신께 그렇게 친구가 없는 게 무리는 아니죠. (웃음)

누가 당신 같은 사람을 좋아하겠어요. 적당히 좀 하시지.’

 

그러면 인간이, 내 앞에서조차도 자기 죄가 들킬까봐서 제가 버겁고 싫다는데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으니까 들킬까봐 싫은 거잖아요.

 

그런데 들켜야 하잖아요. 들켜야 그 놈(내 죄성)이 밖으로 나오든지 그럴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걸 껴안고 자꾸 숨기면 어떻게 되겠어요!

 

예를 들어 내가 책망을 받았어요.

속이 상해요. 신경질도 나고 짜증도 나고..

 

그럼 이러는 거예요.

사랑하는 마귀씨, 절대 나가지마. 나랑 영원히 살아줘.

그리고 나를 열심히 망가뜨려주기를 바래. 그대는 나와 떨어질 수 없어.'

이런 뜻이에요. 자기 분을 못 이기는 거죠.

 

여러분들이 슬퍼하고 낙심하고 여러분들이 중얼거리고

여러분들이 솔직해지지 않고.. 이 모든 것이 마귀를 철저히 보호하는 거예요.

 

사랑하는 그대여, 죽을 때까지 나를 망가뜨려주고 나를 지옥으로 끌고 가줘.

나는 절대 구원받기 싫거든. 네가 왜 떠나야 해? 나랑 영원히 살아줘.’

이러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러니 여러분이 중얼거리고, 들킬까봐 싫어하고 겁내는 거,

이것은 너무 마귀를 열심히 보호해주는 거예요.

 

그러니 언제 말씀이 들어가서 그 놈이 쫓겨나겠어요.

여러분들 마귀를 얼마나 보호해줬어요?

 

선교사님 참 모질게 말씀하시네요.’

나도 알아요. 그런데 복음은 원색적이어야 해요. 어쩔 수 없어요.

유식하게 말한다고 마귀가 봐주는 줄 알아요?

아니, 차라리 원색적으로 말해야. 마귀도 황당해서 쫓겨나가죠.

 

세상 임금이 우리 안에 거하잖아요, 그 놈이. 아주 들러붙어서.

그 놈이 나인지, 내가 그 놈인지. 구분도 안 돼요. 인정해요?

그 놈이 나인지. 내가 그 놈인지. 얼마나 짝 붙었던지. 수술도 안 돼요.

잘라내려니.. 너무 붙어서 어떻게 자르겠어요?

 

그런데 하나님 말씀으로 자를 수 있어요.

고통으로 닦아주면 슬슬 (본드처럼 붙은 곳에) 틈이 생겨요.

그 때 성령의 검이 확 들어오는 거예요. 아시겠어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확 내 마음이 들킬 때 아이고 주님 들켰습니다.’

그럴 때 성령의 검이 확 들어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나와 그 놈을 갈라놓으시는 거예요. 이게 죽음을 경험하는 거예요.

얼마나 놀랍고 반가운 기쁨의 소식이겠어요.

 

그러니 여러분 책망 받을 때, 여러분이 인정받지 못할 때

그 때야말로 내가 새로워질 놀라운 기회라는 것을

여러분이 지혜롭게 가져야 하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은 그렇잖아요. 죄에 대해서는 밀어내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 여러분이, 리더들이나 내 옆에 있는 친구들이나 누군가 내게 권면할 때,

이것은 하나님의 살아 계신 말씀이라고 들어야 해요.

 

저 친구가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이제부터는 친구가 하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소리다!’

이렇게 들어야 해요. 왜 아멘이 적을까요? 더 크게, 아멘!

 

김철기 선교사님이 미국에 가셔서, 전화로 제게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하는데, 환승역 안에서 너무 신경질이 났대요.

비행기가 연착되어, 환승하는 비행기를 놓쳐버린 겁니다.

너무 짜증이 나서 그냥 분하고 억울한 거예요.

너무 슬프고. 아주 그냥 혼났다고 그래요.

 

제가 그 얘기를 듣고서

결국 그 놈이 드러났구먼. 아주 왕 바리새인 심사가 망가졌구먼.

아주 이제 제대로 코스를 가시는군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몰라요. 우리 목사님 항상 신사잖아요.

외모로 보면 너무 신사에요. 근데 이제 망가지는 순간이 온 거예요.

그 망가지는 모습이 결국은 왕 바리새인이 무너지는 거거든요. 너무 감사한 거예요.

 

언제 드러나나 했더니 이제야 드러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들도 뭐가 드러나면 기뻐해야 하는 거예요.

 

절망하면 안 돼요. 원래 그런 놈이었는데 코를 석 자를 빠뜨려요.

원래 그런 놈이에요. 발각이 났으니 기뻐해야 해요.

 

영혼의 암을 늦게 발견하면 죽어버리잖아요. 수술도 못 해요.

일찌감치 발견했으니 얼마나 감사해요.

하나님 말씀으로 그냥 항암 치료를 해서, 살아야 하잖아요.

 

왜 살아야 해요? 회개하려고.

조금이나마 회개해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는 게 무엇인가를 알고 가야

주님 앞에 죄송스럽지만 드릴 수 있지 않겠어요.

 

여러분들 친구가 무슨 말 하면, 나를 권면하시는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으로 들어야 해요.

그래서 들켜야 해요.

신경질이 나고 짜증나고. ‘이씨, 제까짓 게 뭔데.’

 

그러니 여러분들이 탄로가 나면 들켜야 해요.

이게 바로 벌거벗긴다는 얘기에요.

 

저도 이걸 깨닫는데 30년이 걸렸어요. 세상에.

모진 고생, 아마존 시골 끌려가고, 암 걸리면서 이 모진 세월을 살면서

내가 하나님께 조금 얻은 치료에요.

 

나는 죽는 줄 알았어요. 나는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면서 일러주는 말인데

여러분이 시원찮게 들었다가는, 우리 아버지께서 얼마나 신경질이 나시겠어요.

열심히 들으셔야 해요.

 

우리 남편 목사님은 일 중독증이 있어요.

선교사들이 갖고 있는 일 중독증이 있어요.

일을 안 하면 그 사람들이 못 살아요. 일이 습관이 돼서.

주님 모시고 사는 것보다 일 하는 게 훨씬 편하거든요.

 

그래서 거기 푹 빠져서 그런 게 많아요.

그래서 곰곰이 회개하시는 거예요.


우리 개가 나가서 생선 훔쳐온 건 무슨 의미일까.

거리에 나가서 이상한 짓하는 우리 신학생들은 뭘까?

그러면 내가 사탄하고 이상한 짓하는 거 아닐까?’

 

그렇게 세부적으로 하나님의 존전 앞에서 나를 돌아본다는 얘기에요.

이게 회개에요.

 

얼마나 정갈해지겠어요. 이렇게 골골이 골골이

날마다 내 마음을 주님께 벌거벗은 것처럼 드러낼 때에

성령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고 나를 새롭게 하시고


나를 믿음의 반석 위에 세워주시며

그 분의 영이 오셔서 나를 얼마나 측은하게 생각하시고

결단코 나를 당신과 연합하는데 주저하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생명을 주신다는 얘기에요.

 

그런데 이렇게 쉬운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는 뭐하느냐고 (사탄에게) 뺏기느냐,

남 탓하느라고..

누구 얘기는 요만큼도 못 들어요. 그게 멸망 받는 사람이에요.

 

요만큼도 (여러분 청년들의) 엄마가 하는 소리 못 들어. 형님이 하시는 소리 못 듣고.

리더들이 하는 소리 못 들어요. 신경질이 나서.

그냥 말만 들으면 상처가 돼.. 이래서 어떡하겠어요!

 

이게 바로 내가 멸망 받을 자라는 거예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나를 드러내시고,

혼의 세계에 붙어 있는 모든 것을 쪼개버려서

하나님이 내 영과 연합하길 원하셔서

하나님께서 골골이 골골이 사건을 통해서, 환경을 통해서, 그렇게 간절히 말씀하시는데

 

우리는 너무 건방지고 교만해져서,

저건 그 사람이 들을 소리지하며, 나는 아무 것도 상관없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으니..

 

그러니 주님이 뭐라고 하세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내가 반석이라고?

네가 언제 내가 말할 때 성실했는데?

내가 다른 사람 통해서 너에게 그렇게 부지런히 말했는데?

네가 언제 받아들였는데. 언제 너를 인정했냐 말이야?’ 이렇게 나오시는 거잖아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이제부터 죽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이라는 것을,

벌거벗는 거예요.

그냥 다른 사람 통해서 그리고 어떤 것을 통해서 드러날 때에

그 분의 존전 앞에서


하나님, 저입니다. 나도 저 사람이고. 저 사람도 나고. 나도 그렇습니다.’

이 어린아이 같은 순진한 마음을 주께서 보고 싶어 하시는 거예요.

 

제가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몰라요.

어제 밤에도, 오늘 새벽에도 얼마나 토했는지 몰라요.

토하면 장까지, 장도 다 말기 암이니까. 너무 힘이 들어요.

얼마나 나의 하루가 길겠어요. 그 고통 속에서, 그 통증 속에서.

 

이명우 교수님께 들었던 이야긴데 절대 안 잊어요.

예전 고구려 시대에 여자들이 말 타고 다녔대요.

      

내가 말 타고 다니는 그러한 용맹스러운 기질을 타고난 여인인데

지금 병이 들어서 그것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하고.

조금만 걸어가면 지팡이 짚고 다니거든요.

 

목사님 계시면 목사님께 대롱대롱 매달리고 다니다가

아무도 없으면 혼자 지팡이 짚고 다녀요.

 

그렇게 하루 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데

어떨 때는 아무도 없으면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나 죽네, 아빠 나 죽네’,

아파서 눈물이 막 펄펄 나죠. 얼른 진통제 먹죠.

그런데 항암약 때문에 또 토하죠.

 

오늘 새벽에도 얼마나 토했는지, 내장에서 경련이 일어나는 거 같아요.

장 경련이 일어나면 너무 무섭죠.

 

그러니 뭐 몸을 세워 한 쪽으로 누울 때,

이 장이 얼마나 흔들리는 그 고통이 얼마나 크겠어요.

 

내가 왜 이런 얘기를 하는가 하면,

하루의 삶을 나에게 허락하신 주님,

나는 이 안에서 무엇이 발견되고 드러나야 해서 더 정갈해져야 하는가..


흠과 점과 티가 없이 그 분이 오실 날을 기다리게 하시는

그 분의 그 특별한 사랑. 나에 대한 너무나 크신 사랑.

이걸 내가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저는 제 고통이, 하나님의 그 지독한 사랑이죠. 너무 지독한 사랑,

너무 지독히 사랑하셔서, 절대로 당신의 나라로 들어가서 나를 책망하실 수 없는 하나님,

나는 그 하나님을 알고 있어요.

 

그래서 이 땅에서 정과 흠과 티가 없이

그 분이 오실 날을 정결하게 기다리기 위해서

나를 분초마다 책망하시고 나를 정화시키시는 하나님.


나는 그 하나님의 열심을 항상 보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과 내가 틀린 점이 아마 그것일 거예요.

 

그러므로 여러분들의 부모님이 말씀하실 때,

, 너는 이러냐 저러냐그러시면

여러분은 속으로 항상 그래야 해요.

, 주님. 우리 어머님 말씀이 확실히 옳습니다.’ 하고 인정해야 해요.

 

부모님이 틀린 말씀 하던가요?

그런데 좀 틀리긴 하시겠지만, 바른 말씀을 항상 하세요.

항상 우리 속으로 , 주님. 옳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겸손하다는 게 뭐냐면, 절망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한 권면과 그러한 싫은 소리 들을 때에

하나님의 사람,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은, 그 마음에 절망이 없고 슬픔이 없어요.

 

이게 부활 생명에 연합된 사람들이고, 연합하지 못한 사람은 항상 걸려 넘어지는 거예요.

항상 짜증나고. 항상 날마다 깜깜하고

날마다 담벼락 더듬는 소경과 같이 일생을 살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정말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 말을 받을 때에

정말 의의 태양이 빛나는 속에서 사물을 보는 것처럼 확실하게 보인다는 거예요.

이 놀라운 사실을 거절하시겠습니까? 거절할 수 없죠.

 

아까 말씀드렸죠. '그 놈이 나인지. 내가 그 놈인지..' 너무나 서로 딱 달라붙어서..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권면하시고 징계하시고

싫은 소리 너무나 많이 듣게 하셔서, 겸손하게 내가 그걸 인정할 때에

그 달라붙은 둘의 틈 사이가 벌어질 때에, 하나님이 성령의 검으로 확 쪼개낸다는 거예요.

 

(내게서 마귀를) 그 놈을 쪼개내셔서. 육적인 몸을 벗는 할례를 받게 하시는 겁니다.

 

골로새서 2:11~12절입니다.

 

11.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이럴 때에 내 육적인 몸을 벗는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때에 잘려져 나가는 거예요.

 

육체의 고난을 받는 자가 죄를 그친다고 베드로서에서 말씀하셨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육적인 몸을 벗도록.

주님이 이 땅에서 가지셨던 그 자유함.

이제는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수 없는 영역으로, 나를 데리고 가신다는 거예요.

 

이 얼마나 기쁜 소식이에요!

기독교라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밖에 없어요.

용서와 사랑뿐이에요. 다른 것 없어요.

우리의 모든 다름질은 거기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나는 생각했어요. ‘십자가는 나의 생에 있어 알파와 오메가다.

나는 오로지 십자가 밖에는 필요치 않다.

나는 순간순간 죽음을 경험하며 그 분 안에 거하는 것.

그 분이 어떻게 나를 이끌어 가시든지, 그 안에서 안식으로 얻는 나일뿐이에요.

 

그 이상은 생각지 않고, 그 이하도 생각지 않아요.

오늘 나에게 주시는 십자가를, 얼마나 내가 반가워하며

그 안에서 자유로워지는가.

그것이 바로 주님의 생명과 더불어 이루며 사는 영혼이에요.

 

여러분도 그러길 원하십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하나님이 여러분의 어떠한 환경이나,

누구를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에 주께서 말씀하시는구나.

 

오늘의 이 삶을 통해서 나에게 권면하시는구나.

, 주님. 지금은 짜증나고 신경질 나서 안 듣고 싶지만 제가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기쁘게 하시는 사람은 원수라도 더불어 화목하게 하신다고 하잖아요.

우리가 어른들한테, 또는 누구에게든지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사람들이 나를 권면하고 책망하고 싫은 소리 할 때에..

 

사람들이 저한테도 그래요. ‘아이고, 선교사님. 꼭 회개 좀 하셔야죠.

그러면 병이 나을 텐데.. , 좀 깨지셔야죠. 아직 덜 깨지셔서 병이 안 낫잖아요.’

 

자꾸 그러세요. 그러면 제가 너무 감사하거든요.

그 분 말이 틀렸어요? 안 틀렸어요.

왜냐면 내가 누구인데 회개치 않을 수 있겠어요.

내가 누구인데 다 깨졌다고 할 수 있겠어요. 그 사람 말이 맞아요.

 

그러면 나는 주님 앞에서 주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듣고

예스, 주님. 맞습니다. 제가 회개하기 원합니다.’

 

그 형제 앞에서도 , 제가 깨지길 원합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회개하길 원합니다.’

그럼 그 사람이 얼마나 황당하고,

얼마나 그 사람이 내 겸손으로 인해서 그 사람이 회개하겠어요.

그 사람하고 친구되잖아요.

 

이게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얻는것입니다.

이 경우가 그 소리에요. 할렐루야.

 

온유한 마음은 모든 땅을 주님도 차지하고, 사람의 마음도 다 차지할 수 있는 거예요.

이게 바로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맺는일을 하는 말씀인 거예요.

너무 멋있잖아요. 얼마나 복음이 심플하고 좋잖아요.

 

그런데 그 놈의 아담의 생명. 아담의 생명 중에 특히 자존심.

그 놈의 아담의 생명을 잘라내야만, 예수님의 생명을 접붙일 수 있기에 그래요.

 

그래서 아담은 고쳐서 쓰는 게 아니에요. 변화되는 게 아니에요.

죽여 버려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은 죽음을 원하시는 거예요.

 

죽음이라는 것은 , 주님하고 나를 비워내는 것.

그래서 더 깊이 비워낼수록 그 분과 더 깊이 연합할 수 있다는 거예요. 할렐루야.

 

그래서 사람들에게 더 핍박을 받고 더 고통 받을 때에

더 깊이 주님과 연합하는 거예요.

그게 누구에요?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그렇게 순교했잖아요.

 

그렇게 그들은 사자의 밥이 되고 능멸과 모욕의 난타질을 당하면서도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돌렸잖아요. 얼마나 놀라운 일이에요.

 

그래서 여기 보니까

잉태치 못한 자여. 기뻐하라. 해산하는 고통을 모르는 여자여, 소리쳐 외쳐라.

홀로된 여자가 남편 있는 여자의 자식보다 많겠다.’ 하는 얘기가 뭐겠어요.

 

홀로 서는 여자가 누구에요? 오로지 하나님과 결혼한 사람이에요.

남편 있는 여자는 누구에요? 세상과 짝하는 사람. 자존심을 버리지 않은 사람.

 

그래서 하나님과 연합한 사람의 사랑이 있기 때문에

그 사랑 속에 많은 자녀들이 몰려와서 젖을 먹길 바라요. 그 말씀의 젖을 받길 원해요.

 

그래서 그에게는, 사랑이 온전히 이루어진 자에게는

모든 사람들이 다 양육할 자식이에요.

 

그래서 이사야서 49:19절부터 읽어볼까요.

자기도 모르게 자녀들이 수두룩하게 생겨버린 거예요.


19. 대저 네 황폐하고 적막한 곳들과 네 파멸을 당하였던 땅이

이제는 거민이 많으므로 좁게 될 것이며 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이니라.

 

20. 고난 중에 낳은 자녀가 후일에 네 귀에 말하기를 이곳이 우리에게 좁으니

넓혀서 우리로 거처하게 하라 하리니


21. 그 때에 네 심중에 이르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이 무리를 낳았는고

나는 자녀를 잃고 외로와졌으며 사로잡혔으며 유리하였거늘 이 무리를 누가 양육하였는고

나는 홀로 되었거늘 이 무리는 어디서 생겼는고 하리라

  

아멘. 얼마나 놀라운 말씀이에요.

우리가 그 조금 내려놓고, ‘제가 그렇습니다.’ 라고 할 때에,

주님의 생명이 얼른 오셔서 나와 연합해주실 때에

그 사랑이 내 마음에 강 같이 흐르게 하실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젖을 빨기 위해 달려오는지 몰라요.

 

이게 진정한 부흥입니다. ‘이제 처소가 좁으니까 늘립시다.’

이렇게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여서 사람이 완성될 때에

아담의 생명 속에 역사할 때에 두려움이 끊어지는 것.

육적인 몸을 벗는 할례를 경험할 때에.

 

내가 날마다 죽노라하신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주님만이 내 안에 살아 계시기 위해서 그 분의 생명으로 살기 위해서

그 분이 하시는 일을 보는 것이 자기의 기쁨이 되기 때문에

이 말씀이 응해지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랍고 감사한 말씀이세요.

 

그럼 시간이 6분 남았는데. 여러분이 지금 두 손을 다 눈 감고 들어보세요.

하나님, 저 이웃들이나 형제자매들이 누군가 나에게 어떤 말을 할 때

기분 나쁘게 들었던 것,

하나님을 거역했던 것, 하나님의 손을 훼방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하나님, 이제는 주께서 나를 내 속에 있는 어둠을 벗기시고자

죽음을 허락하시는 놀라운 사실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거역했던 것에 대해서 회개합니다.’

 

그렇게 이 시간에 주님께 말씀드렸으면 좋겠습니다.

할렐루야. 다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타자 J.H.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