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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15장 / 데이비드 플랫

LNCK 2016. 10. 28. 21:03

계시록15

 

데이비드 플랫 /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우리가 경배할 수 있나? (1)

 

▲요한계시록 15장을 펴주십시오.

이제 우리는 성경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지금 요한계시록의 절반을 조금 지났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요한계시록에서 지금껏 살펴본 내용을 간략하게 복습하고자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몇 가지를 나누었었죠.

그 다음에 크리스천들이 요한계시록을 읽으면서 물어야 할

가장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질문을 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간략한 복습부터 시작합시다.

첫 주에 보았던 요한계시록을 문장으로 요약해보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계시적 환상의 모음으로 예언적 공포로 가득하며

회중에게 쓰여진 서신이다"

 

이 문장은 이 책 전체를 요약하고 있습니다. 이 책은 계시적 문학입니다.

, 환상을 통하여 진리를 드러내고 계시한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이 책은 현재를 토대로 한 미래에 대한 예언입니다.

이 책이 모든 예언서의 절정이라고도 이야기했습니다.

 

동시에 이 책은 1세기 교회에 쓰여진 서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든 시대의 교회에 적용되는 서신입니다.

 

특히 이 땅에서 크리스천의 삶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번 시리즈의 첫 시간에 요한계시록이 쓰여진 목적이

크리스천들에게 혼란을 야기하거나 분열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게 하기 위함도 아닙니다.

 

그보다 이 책의 목적은 1세기부터 21세기의 고난 받는 성도들에게

흔들림 없는 소망을 주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유혹의 문화와 세상 속에서 죄를 피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 책은 교회 안에서 기만을 몰아내고 세계 선교를 하게 합니다.

 

요한계시록에는 계속해서 교회가 사방에서 공격당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밖에서 적대하는 세력이 있고, 안에서 기만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요한은 이 서신을 통하여 1세기 핍박 받고 생명을 위협당한 성도들과

21세기 고난 받고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

여러 가지 전투를 치르는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모든 것이 통제 불능처럼 보이고

심연에서 짐승이 나와 믿음을 공격하는 전투를 하고

여러분의 삶을 핍박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담대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사탄을 이기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지옥을 이기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십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눈물을 보십니다. 여러분의 부르짖음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을 일으키셔서 영원토록 함께 통치하기 위하여 돌아오십니다.

그러니 믿음의 전투를 하십시오.

그리고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해 힘쓰십시오"

 

이것이 이 책의 요점입니다. 도표를 연구하는 게 요점이 아닙니다.

도표보다는 그리스도에게 가까이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게 하고

지상 명령을 따르게 하는 것입니다.

 

이미 나누었듯이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다양한 환상을 봅니다.

이 환상들을 중심으로 이 책이 진행됩니다.

 

요한이 1세기에서 보았던 환상들이죠. 노트를 보시면

이 환상에 이런 것들이 포함됩니다. 이 상징들과 숫자들에 대하여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는 종종 다양한 해석으로 이어집니다.

어린 양과 용과 짐승과 얼굴이 사람의 얼굴 같고

사자의 이빨과 전갈의 꼬리를 가진 메뚜기가 나옵니다.

4, 7, 12, 144,000, 666, 1260, 3년 반. 각각의 숫자가 상징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이 상징들과 숫자들과 관련하여

온갖 다른 해석의 여지를 열어놓는 것처럼 보입니다.

 

교회사를 통틀어 성경을 믿고 복음을 전파하는 남녀들이

이 환상과 숫자를 다르게 이해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도

요한계시록을 정확히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어떤 성경 독자들은 이 형상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그들은 요한이 이런 일이 이런 방식으로 일어난다고 할 때

이런 일이 정확히 이대로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또 다른 독자들은 이 상징들을 각기 다른 역사적 사건들과 연결 짓고

요한계시록을 현대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연결 짓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말씀드렸듯이, 요한계시록을 그보다는 상징적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래그 비얼이라는 분이 아주 두꺼운 요한계시록 주석을 쓰셨습니다.

그 책이 이 문제에 있어서 제게 다방면의 도움을 주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왜 자신이, 문자 그대로보다는 상징적으로 이해하는지 설명합니다.

그는 요한이 요한계시록 1장의 첫 구절에서 다니엘서를 인용했음을 언급합니다.

 

, 요한이 이 책이 상징으로 가득하다고 말해주는 것이죠.

이처럼 비얼은 요한계시록 11절의 요한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책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절에서 요한은 상징을 많이 사용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의 말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것이죠.

이처럼 다양한 해석이 있습니다.

 

, 상징성에 대한 핵심을 간단하게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가 요한계시록의 어떤 내용을 상징적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책의 모든 내용을 상징적으로 해석할 면허가 주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 책은 성경의 특정한 장르로 쓰여진 것입니다.

이는 상징과 숫자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예언서입니다.

 

반면에 서술적 기법은 상징과 숫자를 전략적으로 사용하지 않죠.

그래서 홍해가 반으로 갈라지고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았다고 했을 때

그런 이야기들이 상징이라고 말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일어난 일입니다.

 

계시록과는 매우 다른 문학기법으로 쓰여진 책이에요.

그 기록은 역사적이고 실제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러니 그렇게 읽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략적으로 상징을 사용하는 다른 문학들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그 중 하나입니다.

 

아가서에서는 저자가 여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 머리털은 염소 떼 같구나 네 이는 암양 같구나

네 코는 레바논의 탑과 같구나"

어떤 남자도 아내에게 이런 말은 하지 않을 겁니다.

 

그러니 요한계시록에서도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의도적으로 상징과 숫자가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진노의 대접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일곱 개의 대접이 전략적으로 사용되었죠.

하나님의 진노로 가득한 대접입니다.

 

이 말씀이 문자 그대로 '진노'라는 액체가 가득한 대접이 쏟아지고 있는 것입니까?

여기 묘사된 고통스러운 상처와 피와 타오르는 열기

사람들이 고통 속에 이를 가는 모습이 있는 그대로 일어납니까?

아니면 상징적인 것입니까?

 

상징적이라면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처럼 상징과 숫자가 다양한 해석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제가 다시 이 부분을 언급하고 반복해서 말씀드리는 이유는

요한계시록을 해석하는 방식이 결코 교회 안의 분열의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시리즈를 하면서 날카롭고 혹독한 편지는 아주 조금 받았습니다만

같은 교회 안에서 성경을 믿고 복음을 수용하는 성도들이

요한계시록의 이런저런 내용에 대해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며

그것이 괜찮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성경을 믿고 복음을 수용하는 성도들이

요한계시록의 이런저런 내용들에 대하여 동의하지 않을 수 있지만

이 책의 핵심을 잊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 환상의 책은 최초의 독자들과 청자들이 믿음 안에서 인내하고

우리 또한 믿음 안에서 인내하도록 격려하기 위하여 쓰여진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자들인지를 깨닫고

복음 전파를 위하여 세상의 고난 가운데 계속해서 싸우도록 격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책이 순차적으로가 아니라 순환(또는 반복)적으로 배열되었다고 했습니다.

15장의 시작 부분을 보시기 바랍니다. 요한이 이렇게 말합니다.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이 말씀이 역사적으로 다음에 일어날 일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보다는 이 환상들이 어떻게 반복되는지를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과정 가운데 심화(심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본 내용들을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노트에 나와 있습니다.

2장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 봅시다.

 

우리는 일곱 서신과 일곱 인과 일곱 나팔과 지난주에는 일곱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에는 일곱 대접이 나옵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일곱 서신과 일곱 교회가 나옵니다.

그 다음에 요한계시록 4장과 5장에 보좌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리고 일곱 인이 열리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곱 인이 끝난 후에 8장 앞부분에서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이 땅에 쏟아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8장의 앞부분에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즉시 일곱 천사와 일곱 나팔이 나옵니다.

심판이 다시 처음부터 시작되는 것처럼 보여집니다.

 

그리고 11장으로 이어집니다. 일곱 나팔 소리와 함께

최후 심판이 이 땅에 떨어집니다.

 

그 다음에 12장을 보면 이 땅에 그리스도께서 재림하는 모습이 나오고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 역사 가운데 그의 백성과 사탄의 전투가 나옵니다.

용과 짐승과 어린 양이 나오고 이 땅에서 추수하는 그림이 나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15)을 보면 다시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일곱 천사와 일곱 재앙과 진노의 일곱 대접. 다시 순환이 반복됩니다.

 

그래서 이 환상들은 순환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순환에서 상황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기억해 보시면 <>의 심판이 지구의 4분의 1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나팔>은 지구의 3분의 1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이제 <대접>을 보시면 온 땅위에 쏟아집니다.

 

인과 나팔에서는 심판이 간접적으로 쏟아지고

어떤 심판은 피조물에만 쏟아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일곱 대접은 온 땅 위에 쏟아집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자들에게 진노가 쏟아지는 모습입니다.

죄 안에서 하나님을 떠나간 자들입니다.

이처럼 심화되는 모습이 나옵니다.

 

정리해 보자면 일곱 인과 나팔과 환상과 대접이

순차적으로 병행되는 모습입니다.

동시에 그 과정을 통하여 심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마치 최종 환상과 심판과 구원을 향해, 눈덩이가 굴러가는 모습 같습니다.

그곳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151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함께 보시기 바랍니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하나님의 최종 진노가 요한계시록 15장과 16장에서 쏟아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6장에서 일어나는 일의 개요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진노의 일곱 대접이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쏟아집니다.

 

특히 2절을 보면 짐승의 표를 받고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 표현은 요한계시록에서 불신자들을 일컫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이 땅의 것들을 숭배하고

하나님께 반역하고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않는 자들 그 모습이

요한계시록 15장에서 계속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일곱 대접이 쏟아지는 모습입니다.

 

1) 첫 번째 대접은 첫 번째 나팔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독한 종기가 납니다. 짐승의 표를 받은 자들이죠.

 

지난주에 이 사람들이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이 땅의 것들을 경배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결국 이 땅의 것들을 경배하는 자들은

모두 이 땅의 것들로부터 고난 받을 것입니다.

 

2) 두 번째 대접입니다. 첫 번째 나팔과 마찬가지로 바다를 치십니다.

물이 피 같이 되니 모든 바다 생물이 죽습니다.

 

이 대부분의 재앙은 출애굽기의 죄 가운데 있던

애굽과 바로에게 내려진 재앙을 토대로 합니다.

 

출애굽기에서 애굽의 경제 기반이었던 물이 피로 바뀌었습니다.

우월하신 이는 하나님뿐입니다.

이 땅의 경제 기반에 소망을 두는 자들은 결국 그것의 허망함을 보게 됩니다.

 

3) 세 번째 대접은 강과 물의 근원에 쏟아집니다. 이것 또한 피로 바뀝니다.

6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게 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피를 마시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핍박하는 자들을 심판하시는 모습입니다.

 

4) 네 번째 대접은 구체적으로 하늘의 해에 떨어집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사람들을 태웁니다.

, 문자 그대로의 의미일까요? 우리가 확실히 알 수는 없습니다.

 

이 모습이 그저 햇빛에 그슬리는 것은 아닐 겁니다.

강렬한 불이 사람들을 태운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무엇이든지 최소한 끔찍한 일일 것입니다.

 

5) 다섯 번째 대접은 짐승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고통을 내립니다.

하나님이 아니라 이 세상을 숭배하는 우상숭배자들,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되어 어둠으로 떨어집니다.

그리고 고통 가운데 고난 받습니다.

 

6) 여섯 번째 대접은 그 자체가 재앙이라기보다는

일곱 번째 대접에서 임하게 될 진노를 예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용과 첫 번째 짐승과 거짓 선지자라고 하는

두 번째 짐승이 나옵니다. 불경한 삼위일체의 모습이죠.

그들이 귀신적으로 기만하는 영을 보냅니다.

이 땅의 권세들을 불러 모아 하나님의 백성과 싸우게 합니다.

 

7) 이 모든 것은 일곱 번째 대접으로 이어집니다.

우주적인 심판이 최종적으로 이 땅에 쏟아지는 것입니다.

물리적인 세상의 역사가 끝이 나는 것입니다.

거대한 지진과 해일이 하늘에서 불신자들에게 떨어지는 것이죠.

 

이 세상의 통치자들과 방식이 19절의 말씀대로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최후 심판의 절정입니다.

이 일곱 번째 대접입니다.

 

하나님은 언젠가 궁극적이고 온전한 진노를 세상에 부으실 것입니다.

그분을 버리고 이 세상의 것을 숭배하는 자들은

모두 그분의 진노의 잔을 영원토록 마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이 일곱 대접의 요점입니다.

 

이 모든 것은 이 본문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전체의 이면에 있는

아주 중요한 질문을 묻게 합니다.

 

계속해서 또 계속해서 인과 나팔과 대접을 통하여

죄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보게 됩니다. 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그것이 선명하고 두렵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동굴에 숨어서 산과 돌이 자신들에게 떨어져

그 진노를 피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살인 메뚜기에게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입에서 불이 나오고 꼬리에는 전갈이 있는 말, 불과 유황으로 심판을 받아

그 고통의 연기가 영원토록 타오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16장의 끝 부분에서는 거대한 해일이 사람들에게 떨어집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 가운데 특히 오늘의 본문을 보면

15장의 앞부분과 16장의 중간 부분, 즉 이 진노의 대접 가운데

또 하나님의 진노가 끝났을 때, 우리는 경배의 노래를 보게 됩니다.

 

15장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3절을 보세요. 성도들이 이렇게 노래합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15:3-4

 

그 다음에 하늘의 찬양이 있습니다.

세 번째 천사가 세 번째 대접을 부은 직후입니다.

 

5절입니다.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 이여

이렇게 심판하시니 의로우시도다

그들이 성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렸으므로

그들에게 피를 마시게 하신 것이 합당하니이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제단이 말하기를 그러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심판하시는 것이 참되시고 의로우시도다 하더라' 16:5-7

 

요한계시록 19장을 펴보시기 바랍니다.

장차 일어날 일들을 예고편으로 보여드리겠습니다.

 

다음 주에는 요한계시록 17장과 18장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최종적으로 온전하게 바벨론에 쏟아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세상 방식과 세상의 불신자들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것이죠.

 

그 일이 일어난 직후의 반응을 잘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19장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집니다.

 

하늘에 허다한 무리의 큰 음성 같은 것이 있어'

그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보세요.

 

요한계시록 191절입니다.

'할렐루야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있도다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 음녀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두 번째로 할렐루야 하니 그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더라' 19:1-3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진노를 쏟아 부으실 때

성도들이 할렐루야 우리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이 진노를 부으실 때 경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잘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굉장히 어려운 부분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진노 자체를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과 긍휼과 자비와 은혜가 풍성하신 분이라고 믿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실제로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이 충만한 분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그분이 진노가 충만하심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진노가 충만하신 분으로 보고

더 나아가 그 충만하신 진노를 인하여 그분을 경배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죄와 죄인들에게 의로운 진노를 쏟아 부으실 때

이 장에서 믿지 않는 자들이 고통받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그것이 경배를 야기합니까?

 

그보다 더 흥미롭고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이 모든 것이 앞의 6장에서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죽임 당한 성도들이 드린

기도를 나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그 공의를 나타내시기를 부르짖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저는 목사로서 또 저 개인으로서 여기서 이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우리가 경배할 수 있을까요?

 

천국을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어떻게 천국에서 기쁘게 경배할 수 있을까요?

많고 많은 사람들이 영원토록 지옥에서 절대적인 고통을 당할 때 말입니다.

 

천국에서의 경배와 지옥에서 영원토록 올라오는 고통의 연기,

어떻게 둘이 함께 갈 수 있을까요?

 

천국에서의 기쁨의 찬송,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지옥의 진노.

어떻게 이 둘이 연결됩니까?

 

제가 묻고자 하는 것이 이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우리가 경배할 수 있을까요?

 

요한계시록의 이 말씀을 보면서 세 가지 단계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 진노 가운데 어떻게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거룩하신이여'라고

경배를 받으시는지 말입니다.

 

, 첫 번째 단계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에 대한 높은 관점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여기서 요한계시록 15장의 노래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이 구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크고 놀라우신 일을 생각해봅시다.

첫째, 하나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이것을 요한계시록에서 계속해서 볼 수 있습니다.

 

시편 241절의 말씀대로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입니다.

이 말씀은 그분이 통제하시며 모든 것을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에 모든 것을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과 하늘과 바다를 주관하십니다.

 

이 땅의 모든 동물을 주고나하시며 이 땅의 모든 남녀를 주관하십니다.

사탄과 용을 주관하십니다.

 

첫 번째 짐승과 두 번째 짐승과 모든 귀신을 주관하십니다.

핍박받는 자들과 핍박하는 자들을 주관하십니다.

 

그분은 고난을 주관하시며 죄를 주관하시며 죽음을 주관하십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통제하고 계십니다.

 

그분이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지금으로부터 영원토록 모든 것을 다스리십니다.

이것이 첫 단계입니다.

 

둘째, 하나님은 모든 이의 경외를 받으십니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않으리이까?"

4절은 묻습니다. 3절 끝 부분에서는 주는 만국의 왕이시라고 합니다.

 

이 구절들은 시편과 이사야서와 예레미야와 스가랴를 토대로 합니다.

시편 저자가 시편 4610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기록했죠.

'이르시기를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내가 뭇 나라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내가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46:10

 

이 약속을 주셨습니다. 시편 869절과 10절입니다.

'주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민족이 와서 주의 앞에 경배하며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리이다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이다'

 

타자 J. H. 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