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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수의 요새들을 파함 / 프랜시스 프랜지팬

LNCK 2017. 3. 21. 09:38

www.youtube.com/watch?v=xh6Ighx49JY

원수의 요새들을 파함       고후10:3-5         출처보기

 

프랜시스 프랜지팬   <영적 전쟁의 세 영역> 中 제3           1 마음            2장 겸손  

 

사람들이 구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다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두신 계획의 첫 단계일 뿐이며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성품과 능력에 있어서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관계를 이렇게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우리 안에 아주 많은 영역들이, 변화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있게 될 것입니다.

 

요새들을 파한다는 것은

이와 같은 나의 옛 자아를 허물어 제거하여

내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임재하심이, 나를 통해 밖으로 나타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겉껍질이 깨어져야, 호두의 속살이 나올 것이 아닙니까.

 

요새, 즉 견고한 진이란 무엇인가요?

 

우리가 육체으로 행하나 육체에 따라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리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고후10:3-5

 

구출 작전에 성공하려면, 먼저 적의 방어진을 제거함으로써 시작해야만합니다.

영적 싸움에 관해 말하면서 사도 바울은

 

견고한 진” Strongholds 이란 낱말을 써서

사탄과 그의 군대들이 숨어서 보호받고 있는 영적 요새들을 설명했습니다.

 

이 요새, (사탄의) ‘견고한 진들은 개인교회, 아울러 지역사회국가를 지배하는

사고방식과 이념들 가운데 존재합니다.

 

우리 남편은 절대 안 변해!’ .. 이런 생각을 가끔 할 수도 있지만,

이런 차원이 견고한 진이 되어,

내 머리 속에 사탄의 난공불락의 요새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인종차별, 국수주의 (쇼비니즘) .. 이런 것들이, 사회적으로 견고한 진이 될 수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나는 OO 죄는 도저히 못 끊어!’ 하는 이런 생각들이

견고한 진으로 자리 잡을 수 있습니다.

그만큼 허물어뜨리기 힘들다는 뜻이지요

 

우리는 승리를 외칠 수 있기 전에

이 요새들을 파하여 사탄의 무장을 벗겨버려야 합니다.

 

그런 다음에야 말씀과 성령의 강력한 병기가

효과적으로 사탄의 집을 약탈할 수 있습니다.

 

견고한 진(혹은 요새)”이란 낱말의 성서적 의미는 무엇입니까?

 

구약에서 견고한 진은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방편으로 사용되었던 요새화 된 주거지를 말합니다.

 

우리는 다윗이 사울 왕을 피해

광야 수풀 요새들에 숨어 있었던 것을 봅니다. 삼상 23:14, 19

 

이 요새들은 자연적인 구조물들로 보통 산 중턱 높은 곳에 있는 동굴들이었으며

공격하기가 매우 어려운 곳들이었습니다.

 

이런 장면을 마음에 그리면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서를 기록한 이들은

요새란 말을 써서

강력하며 힘을 다해 지키는 영적인 실체들을 정의한 것입니다.

 

요새는 주님이 우리의 요새가 되시는 경우처럼(18:2)

우리를 마귀로부터 지켜주는 보호의 근원지일 수도 있습니다.

 

또는 역으로 요새는 마귀를 위한 방어의 근원지일 수도 있어서

악에 대한 우리의 동정적인 생각들을 통해 귀신 또는 죄악의

 

활동이 우리 안에서 실재로 방어되고 있는 곳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폭로하려는 요새는 옛 자아의 삶을 감싸고

지키려는 그릇된 자세들입니다.

 

이들은 아주 종종 한 개인의 삶 속에 귀신으로부터 짓눌리는 요새화 된 거처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요새의 하나를 모든 이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이라고

정의합니다(고후 10:5).

 

마귀의 요새는

하나님을 아는 것 위에다가 스스로를 높이고

이로써 마귀에게 개인의 의식 생활 가운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거점을 확보하게 하는 온갖 형태의 생각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악령에 사로잡힌 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자는 기독교인이 귀신에 붙잡힐 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이 귀신에 붙잡힘을 당하면

성령이 기독교인의 영을 충만케 하시는 식으로 그 귀신은 잡은 자의 영을 충만케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귀신들에게 눌림을 당할 수는 있습니다.

이 귀신들은 거듭나지 못한 사고의 체계를 점령할 수 있으며

특별히 그런 체계를 이루고 있는 생각들이 자기기만과 거짓된 교리들로 방어된다면

더욱 그렇습니다.

 

내가 기독교인이므로 내게는 귀신이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은 전혀 사실이 아닙니다.

귀신이 영원토록 소유한다는 의미로서는 여러분을 붙잡을 수 없지만

 

만약 여러분이 악에 대한 동정적인 생각들을 회개하기를 거절하면

여러분에게도 귀신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여러분의 반역이

여러분의 삶 속에 마귀의 처소를 마련하는 것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여러 모양의 두려움에 시달립니다.

그들은 상담을 받고 또 기도를 받아 보지만 별반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기도보다 더한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필요했던 것은, 원수로부터의 해방이었습니다.

 

그러나 두려움의 영과 대적하여 그를 묶고 두려움의 요새를 파할 때까지

아마도 해방은 그들에게서 멀 것입니다.

 

많은 신자들이 그들에게 성령이 계시므로, 유혹에 속을 수가 없다고 배워왔습니다.

 

이 역시 사실이 아닙니다.

진리의 영을 보내신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가 쉽사리 자기기만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실상 기독교인은 유혹에 속을 수 없다는

바로 그 생각 자체가 속임수입니다.

 

바로 이 거짓말이 일단 신자의 마음에 번지면 그의 생각과 의견은 수정처럼 굳어져서

그가 영적으로 어떤 미숙한 상태에 있든지 그대로 변할 줄을 모릅니다.

 

온갖 종류의 악령들이 그 사람 자신의 생각과 교리의 무장으로

자기들이 보호받는 것을 알기에, 마음 놓고 그 영혼을 공격할 것입니다.

 

종교적인 자기기만의 세력을 부수는 일은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의 본질 자체가 의심의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단 유혹에 속아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속은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이미 속임수에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해

우리는 우리가 잘못일 수도 있다는 점도 아울러 알지 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한다면

도대체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잘못들을 고침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과 생각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드리지 않은 영역이

모두 사탄의 공격을 받기 쉬운 곳입니다.

 

그래서 유독 신자의 마음에서 십자가에 못 박지 않은 의식 생활이 차지하는 영역,

바로 그 곳에서 요새를 파하는 것은 극히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참으로 원수로부터의 해방을 가능하게 하려면

우리는 먼저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만 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을 발견하면

우리는 자신을 변호하거나 변명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의 심령을 낮추고 회개하면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도록 해야 합니다.

 

아시겠지요. 사탄은 죄를 먹고삽니다.

신자의 삶 가운데 어디든지 죄의 버릇이 있는 곳이면

그 분야에서 귀신의 활동을 보게 되리라고 예상해야 합니다.

 

죄의 버릇은 종종 신자에게서 힘과 기쁨을 빼앗아가는 악령의 거처가 되는데

바로 그 거처(habitation 혹은 버릇-habit)가 요새입니다.

 

악령들이 신자의 삶 가운데 마음가짐이라는 영역을 드나들며

이를 점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우리들 각자가 육적인 마음을 갖고 있으며

(역자 주 : 마음으로 번역된 영어의 낱말에는 “mind”“heart” 두 가지가 있습니다.

저자는 “mind”를 인간 사고의 영역으로 “heart”와 구별합니다.

이 구분이 문맥상 확실치 않을 경우 역자는

“mind”를 생각으로 “heart”를 심령으로 옮겼습니다.)

 

이것이 막연한 공상과 자기를 하나님 위로 높이려는 생각들(고후 10:3-5)

근원이 되고 있다는 데는 분명히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육적인 사고의 체계,

곧 원수를 보호하고 있는 요새를 처리함으로써 마귀를 처리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에는 요새, 그릇된 마음가짐, 그릇된 사고의 과정들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죽으심을 바로 앞두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 이 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그러나 저는 내게 관계할 것이 없으니

(흠정역 : 내안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14:30).

 

사탄은 예수 안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사탄이 우리 속에 아무런 비밀 지역, 사탄이 단추만 누르면

악을 향해 우리의 영혼의 문을 열게 하는 유혹의 신호기가 없다고 말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우리 마음의 요새가 무너지면

비록 우리가 여전히 이따금씩 죄에 빠진다 해도, 우리는 큰 승리 가운데 행할 것입니다.

 

또 우리는 아울러서 다른 이들을 도와

원수로부터 해방되도록 하는데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악령으로부터의 해방에 앞서 회개가 있어야 함

 

요새를 파하는 것은 회개로부터 시작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내보내실 때 제자들이 나가서 회개하라 전파하고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인에게 기름을 발라 고치더라고 했습니다(6:12-13).

 

마음을 괴롭히는 악령으로부터의 해방에 관해

말하자면 해방에 앞서 회개가 있어야 하며

이런 해방은 종종 다른 영역의 치유도 가져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독교인이 되었다면

신자 생활의 기간이 얼마이었든지 간에

여러분은 이미

여러분의 삶속에 있던 많은 요새들이 허물어지도록 했습니다.

 

요새들이 허물어진 것은 여러분이 회개하고 예수님께 왔을 때였습니다.

원수로부터의 해방은 종종 본인이 이를 원할 때 이처럼 아주 간단한 일이 됩니다.

 

그럴지라도 어느 정도의 회개가 없이는, 해방은 거의 언제나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귀신에게 떠나라고 명령한다 해도, 만약 그 사람의 사고의 구조가 변하지 않았다면

그의 죄에 대한 그릇된 마음가짐이 그 귀신을 도로 불러들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역중 한 면은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는 것입니다(2:35).

 

여러분이 참으로 예수님과 함께 행한다면

여러분의 생각하는 과정이 많은 면에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권능이 임하여 여러분이 회개하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주님의 덕을 허락하시리라는 것을 믿게 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요새(견고한 진)들이 무너지고 승리가 임하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경고해야만 할 것은

바로 악으로 찬 세상,

또 아울러서 여러분의 육체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극소화하거나 무시하도록

여러분에게 압력을 가하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진짜 문제들은 깊숙이 잘 숨겨 놓은 채

그저 겉으로 드러난 죄 또는 어떤 사소한 잘못이나 내어놓으라는 유혹을 받게도 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죄를 비밀로 하는데 소모되는 에너지가

실제로 요새를 짓는 재료들이 됨을 깨달읍시다.

 

여러분이 싸우고 있는 귀신은 여러분의 삶에 드나들 수 있는 통로를 지키기 위해

여러분의 생각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기도합시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 저의 삶 가운데 제가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

온전히 드리지 못한 영역들이 있습니다.

(소리를 내어 버릇이 되어 있는 죄목을 말하십시오)

 

주여, 제가 타협해온 것을 용서하소서. 제가 또 주님께 구하옵기는 제게 용기를 주셔서

제 심령에 거리끼거나 고의적으로 자기를 속임이 없이 요새들을 파하러 나설 수 있게 하옵소서.

 

제 속에서 타협과 죄의 세력을 보강하고 있는 사탄의 영향력을

제가 성령의 능력과 예수의 이름으로 묶습니다.

 

제가 제 속에 자리 잡은 죄의 요새들이 밝히 드러나도록

진리의 영의 빛 앞에 제 자신을 드립니다.

 

성령과 말씀의 강력한 병기로써 제가 선포합니다.

제 삶속의 요새들이 하나씩 무너져 내리고 있습니다.

 

제가 하나님의 은혜로 제 속에 단 하나의 요새를 갖기로 결심합니다.

바로 그리스도의 임재의 요새를 말입니다.

 

주님, 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저를 씻기시니 감사합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제가 오늘 허물어진 요새의 잔해마저

제 마음에서 몰아내기까지 이 문제를 놓고 계속 싸울 것을 서원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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