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워셔 2013년 한국사경회 발췌1 딤후3:14~15
딤후3:14 그러므로 너는 배우고 확신하는데
데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리라
앞서 13절은 ‘악한 자들과 속이는 자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14절은 13절의 그들과 대조해서
‘신자들’을 명확하게 보여줍니다.
바울은 지금 모든 신자들을 향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삶은 13절의 속이는 자가 되어선 안 됩니다
위선적인 삶으로 살아서도 안 됩니다.
(말씀을 선포하되) 진리와
자기 삶의 신실함으로 증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디모데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바울이 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너는 배우고 확신하는데 계속 거하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합니다.
‘너는 계속해서 진리 안에서 자라가라'
네가 배우고 가르침 받았던
성경 안에서 성장해가라!
바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고"
이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이 지금 하려는 일을 보십시오.
바울도 사람입니다.
바울은 지금 영원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디모데의 생명 혹은 사망을
결정할 것들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국에 갈 것인지 혹은 지옥에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들에 대해서요.
바울이 디모데를 보면서 말합니다.
‘디모데야 잘 들어라
너는 내가 말한 모든 것을 잘 따랐다'
제가 여러분께 한 가지 중대한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고)
아무도 오늘날 이와 같이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께 와서
이렇게 말할 수 없습니다.
'제 말을 들으세요, 제 가르침을 들으세요'
저는 그렇게 할 권위가 없습니다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고"식으로)
저도 여러분께 그저
바울이나 사도들의 가르침을 들으세요.
즉 성경말씀에 귀 기울이세요. (라고 말할 뿐입니다)
제가 여기서 이 사실을 강조하기 원합니다.
저는 정말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권위로
말하는 것을 듣는 것에 넌더리가 났습니다.
그가 큰 목회를 하던지
그가 웅변적인 설교를 하던지
그가 그의 목회가 번창하든 상관없이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러이러 하므로 <나의 말>을 들어라’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 “네가 뉘(사도)게서 배운 것을 알며”)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은 여러분에게
성경 말씀을 가리킵니다.
(내 말을 들으라고 하지 않고)
‘성경 말씀을 연구하세요!’ 라고 간청합니다.
제가 매우 중요한 내용을 보여드리기 원해요
골로새서1:1절입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예수의 사도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이것은 우리가 권위에 대해 말할 때
중대한 사항입니다.
두 사람이 나오는데요.
사도 바울과 디모데입니다.
디모데는 정말 훌륭한 ‘형제’였습니다.(↔사도)
디모데야 말로 참된 하나님의 종된 증거를
잘 보여주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디모데는 바울에게도 신임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사도들과 함께 동행했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사도들과 동행했던
어떤 사람을 안다면
여러분은 그의 말을 듣기 원할 것입니다.
디모데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자기와 디모데의 차이점에
대해 말하는 것을 주목하십시오.
바울은 ‘사도’이고요
디모데의 그저 우리의 '형제’입니다.
얼마나 디모데가 훌륭한 사람이었어요.
그는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사도적 권위
Apostolic Authority로 말하는 사도는 아니었습니다.
왜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여러분 중 일부는 이 집회에 온 이유가
여러분이 제가 유튜브에서 설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것이 그 사람(인터넷 설교자)에게 권위를
주지 못합니다.
제가 설교의 권위를 가졌다면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해석하고
올바르게 전달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모든 설교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여기서 말하는 ‘설교자의 사도적 권위’는
‘제도적 권위’가 아니라
설교 전체의 문맥을 들어보면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는 권위’를 뜻합니다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느냐
그는 설교의 권위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지 못하고
성경을 읽고 나서 ‘자기 말’을 한다면
그는 ‘설교의 사도적 권위’를
하늘로부터 받지 못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분의 설교를 들어선 안 됩니다.
저는 여러분이 어떤 교회에 다니는지 몰라요.
이 교회에 다니든지 다른 교회에 다니겠지요.
그러나 잘 들으세요.
모든 교회가 동일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설교자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사람은 아닙니다.
많은 ‘속이는 자’가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과 자기 권위으로부터 말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곳에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그저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옳게 해석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깊은 열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여러분이 더 높은 거룩함으로
신앙생활하고(걷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야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말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은 ‘사도의 권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옳게 해석해서 설교하는 권위)
여러분이 만약 디모데처럼 성장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말씀과 사도들의 가르침을
붙잡아야 합니다.
(*네가 뉘게서 배운 것을 알며)
성경 말씀 그대로를 붙잡아야 합니다.
바울은 딤후3:15절에 계속 이렇게 말씀합니다.
"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한 가지 묻겠습니다.
여러분 마음의 떠오르는 진솔한 대답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첫 번째 ‘여러분은 몇 년 동안
크리스천으로 살았습니까?’
두 번째 ‘당신은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깊이 아십니까?’
이 자리에, 신자가 된지 5년이 넘은 분
잠시 일어서 보세요. 제가 묻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성경을 인용해서
지금 제게 설명해 주십시오’ 설명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갈보리에서 대속의 의미에 대해
설명해 주십시오’ 하실 수 있습니까?
‘신자의 변화된 새로운 본성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
설명해 주실래요?’
결혼하신 분들은 일어나 주세요. 질문 드립니다.
‘성경이 남편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설명해 주십시오’
여러분은 하실 수 있습니까?
이제 여러분은 함부로
이 책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나는 그것을 믿는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만약 당신이 성경을 깊이 알지 못한다면,
당신이 성경의 위대한 진리를 연구하지
않는다고 가정한다면요.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있습니다.
오늘날 젊은 청년들이 예수님에 대해
흥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
시간을 가지길 원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는데 일에
그들자신을 쳐서 복종시키지 않습니다.
저는 2년 전에 큰 수련회에 갔었습니다.
아마 4천 명 정도 모인 것 같습니다.
그 주제는 선교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수련회를 마치고 청년들이 저를 찾아
왔습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제게 말했어요.
‘폴 형제님 저는 선교지에 가고 싶습니다. 당장요!
복음이 아직 선포되어지지 않은 곳으로 제가 달려가겠습니다’
저는 ‘훌륭하군요 그런데 질문이 있습니다.
질문에 대답할 시간을 3분 드리겠습니다.
대속 atonement 이 무엇입니까?’
단 한명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화목 사역 propitiation이 무엇을 뜻합니까?’
그 누구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서
예수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았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십니까?’
(그게 바로 화목사역 propitiation의 의미)
여러분은 문제점을 파악하셨나요?
청년들은 흥분해서 많은 일을 하겠다고 난리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우리 육신은 일면 예배에 참석하길
좋아할 수 있어요.
그러나 육신은 혼자 성경을 연구하는 일은
싫어합니다.
우리 육신은 공중앞에서 기도하는 일은
좋아합니다.
그러나 육신은 혼자 기도로 밤새우는 일은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깊이)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질문합니다.
‘당신은 몇년 동안이나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공부하셨습니까?’
‘폴형제님 저는 그것을 그렇게 오래 동안
연구한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몇 달 동안이라도
공부한 적은 있으십니까?’
여러분 인생 전체를 통틀어서
단 몇 달 동안이라도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공부한 적이 있느냐는 말입니다.
‘폴형제님 저는 그런 것을 한 번도 해본 적 없습니다 ’
‘이 한국강단에서
여러분은 하나님의 속성에 대해 설교를
몇 번이나 들었습니까?’
‘글쎄요 기억이 잘 안나는데, 아주 적습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요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 안에 많은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많은 설교가 들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일들이 무엇인지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크리스천이라고 여깁니다.
기독교란 하나님에 관한 것입니다. (↔인간)
그런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없다면
기독교가 어떻게 제 역할을 하겠습니까.
제가 한국에 오기 전에 한국 기독교에 관해
연구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미국으로부터 잘못된 점들을
배웠을 수도 있습니다.
설교자들이 번영과 축복과 최고의 삶에 대해
수 천 번의 설교를 하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에 대해, 복음의 영광과
아름다움에 대해 설교하지 않습니다.
거룩함에 어떻게 자라가는가,
진정한 회심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설교하지 않습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진정한 교회가 되어가고
그리스도께 영광돌리는 교회가 되리면요.
'분류 없음 > 20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노라 / 폴 워셔 (0) | 2017.04.06 |
---|---|
김철기 선교사 기도편지 2017년 3월 (0) | 2017.03.27 |
성화의 시작은 거듭남의 절대적 증거 P1 / 폴 워셔 (0) | 2017.03.22 |
제주도 모슬포 항의 게스트하우스 <레몬 트리> (0) | 2017.03.20 |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은 쉽지 않다 / A. W. 토저 (0) | 2017.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