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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무겁게 여기라

LNCK 2017. 4. 11. 08:32

 

결혼을 무겁게 여기라            20:14, 고전7:2~4, 9:9

 

십계명 7계명 간음하지 말라, 그 세 번째 시간입니다. 3 of 3

   

칠계명을 주신 목적은 가정을 지켜라. 가정이 중요하다.’ 이런 말씀입니다.

 

간음이 나쁜 것은 가정을 깨뜨리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기 가정만 깨뜨리는 게 아니고 남의 가정도 깨뜨리는 거죠.

그래서 간음하지 말라. 간음은 나쁜 것입니다.

 

성경에서 성애는 오직 가정 안에서만 허용됨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성적 관계를 맺는 것,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적 관계를 맺는 것.

모두 금지된 것입니다.

 

종교개혁자인 마틴 루터나 존 칼빈은 이렇게 말합니다.

간음이란 갖가지 형태의 음란한 행위 전체를 포함한다.

다양한 형태, 음란한 행위 전체를 일컫어 간음이다.’

 

기혼자이든 미혼자이든 순결을 지켜야 하고

음란을 부추기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성 문제는 개인적인 사적인 영역이라 주장합니다.

그러나 성은 사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영역입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 공동체, 미래가 달린 문제였던 것이죠.

 

성은 결코 개인의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대에 이 성을 너무 가볍게 다루는 음란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인 우리 자신도 모르게 많이 오염되어 있습니다.

매우 기준이 느슨해지고 믿지 않는 사람들과 거의 큰 차이가 없는

도덕적 기준을 가지고 있다는 통계가 나온 바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의 기준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칠계명을 대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결혼의 출발부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첫 단추를 바로 끼워야 합니다.

 

결혼을 가볍게 여기는 문화를 경계해야 합니다.

결혼은 한 번 해보는 거예요. 해보고 아니면 말고식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결혼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미혼의 때부터 몸과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결혼제도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문화 안에서 성적 탈선과 방종이 범람합니다.

 

결혼을 중요하게 여긴다면, 부부의 관계를 중요하게 여긴다면

성은 함부로 다루어질 수 없습니다.

 

영혼이 없는, 인격성이 결여된 육체적 탐닉만을 추구하는 것은

결국 결혼관계를 무너뜨리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결혼은 생물학적 짝짓기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결혼이란 하나님의 승리 가운데서 맺어진

언약적 관계 안에서 일어나는 신성한 행위라는 것입니다.

 

요즘 결혼을 의도적으로 미루고 미혼의 상태에서

성적 자유를 즐기고자 하는 태도는 매우 위험합니다.

 

고린도전서 7:2절입니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가정은 음란한 죄를 짓지 않도록 막아주는 보호막 역할을 합니다.

칠계명의 핵심은 부부관계를 중요하게 다루는 일입니다.

가정으로 돌아가라는 거예요. 가정을 지키라는 것!

 

오늘날 이혼이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헤어지는 당사자들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음도 분명합니다.

 

어떤 분들은 상담해보면 정말 당장 헤어지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의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혼의 문제는 재고하고 또 재고하고 또 재고해보아야 합니다.

 

주님은 자기 아내를 정당한 이유 없이 이혼하고 장가드는 것을

간음이라 했습니다. 마태복음 19:8~9절입니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본래는 그렇지 아니함이라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한 번만 결혼하여 살도록 디자인하셨습니다.

 

본래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이혼 증서를 써주고 헤어져도 된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가능한 이혼하려 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요지는, 자신의 개인적 만족을 위해 이혼을 이용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목적으로 이혼을 한다면

그것은 나쁜 일이라는 것입니다.

 

가능한 가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을 성경은 강조합니다.

참된 사랑으로 가정을 지켜가는 게 너무 중요합니다.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뜨겁게 사랑하라는 거죠.

하나님은 성적인 즐거움을 허락하셨습니다. 성은 선물입니다.

 

그런데 부부의 사랑이 식는 순간부터 유혹에 노출됩니다.

사랑이 식은 상태를 방치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부부는 끊임없이 서로 노력해야 합니다. 문제는 서로에게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부 사이에 다른 것이 끼어들게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이 음욕만 품어도 간음이라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음욕을 품는 순간 부부관계에 틈이 생기고

작은 틈이라도 부부관계는 매우 위험해집니다.

 

사람들은 부부관계가 아닌 다른 관계를 통한 사랑을 기웃거리지만

속지 않아야 합니다. 외도는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거짓된 사랑으로는 만족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외도, 혼외정사, 불륜, 동성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사랑은 만족보다 더 깊은 갈증을 만들어내고

급기야 파괴적으로 끝납니다.

 

인격적인 치밀함 없이, 육체적 치밀함에 초점을 맞춘 사랑 역시 만족하기 어렵습니다.

탈선적 사랑은 그 자체로 만족을 얻을 수 없을뿐만 아니라

부부관계 안에서의 행복까지 다 앗아갑니다.

 

음란물을 보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왜곡된 사랑을 하도록 부추기고

정상적인 사랑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적 타락이 깊어진 세상 속에 다른 답이 없습니다.

부부가 뜨겁게 사랑하는 것. 하나님은 부부관계 안에서만

행복과 즐거움을 맛 보게 하신 것입니다.

 

전도서 9:9절입니다.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

 

우리가 전도서를 잘 알지만 전체적으로 허무함이 깔려 있습니다.

허무한 세상이라는 거죠. 명예든 돈이든 다 허무해요.

 

그 허무한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 축복, 우리가 누릴 몫이 하나 있다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사랑하는 배우자와 함께 부부가 즐겁게 살라는 것!

 

여러분, 만약에 이런 허무한 세상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 있는데

부부가 함께 살아가는 이것을 놓쳐버린다면

세상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얼마나 허무한가..

이런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7:3~4절도 마찬가지입니다.

[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이것은 성에 대한 얘기에요. 결코 성경은 성에 대해 침묵하지 않고 구체적입니다.

성적 즐거움을 무시하거나 소극적으로 대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부부가 성적 만족을 위해 배우자에게 최선을 다할 의무가 있다고 성경은 가르칩니다.

 

한국교회는 청교도의 영향을 받아 성에 대해 금기시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금욕주의를 지지하거나 우리 모두가 수도사가 되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아가서를 보면 솔로몬과 술람이 여인의 그 농도 깊은 사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가서 읽어보셨죠. 얼마나 짙은지 몰라요.

그런데 왜 그것을 성경에 채택했을까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사랑도 얘기하지만 남녀의 사랑을 표현한 것 속에

하나님의 그리스도인의 가정들 안에 부부의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고 성실함을 다하는 것. 부부관계 속에

최상의 만족을 누리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부가 오랜 세월 함께 살다 보면 변함없이 사랑하는 게 쉽지 않아요.

부부의 사랑이 식을 때가 옵니다. 요즘 권태기가 빨리 와요.

사랑이 식었을 때가 문제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다른 길을 찾으면 안됩니다.

 

부부가 함께 살아간다는 건 참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딱 들어맞는 부부. 딱 들어맞는 부부, 있어요?

우리 부부는 천생연분입니다. 거짓말이에요. 그런 가정이 별로 없어요.

 

젊은 커플들이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건 있어요.

결혼하면 완벽한 하나됨으로 행복을 누릴 것처럼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요.

 

꿈을 꾸게 해줘야 해요. 너무 현실적이어도 결혼하기 어렵지만

환상도 위험합니다. 결혼 전과 후는 너무 다르잖아요.

연애할 때는 너무 멋있죠. 가면을 다 쓰고 있잖아요.

멋있게 꾸미고 화장도 하고 다 했기 때문에. 화장 지운 얼굴 보고 충격 받는다는 거예요.

 

그 이가 그 이인가. 여러분, 성격차. 남녀의 차. 삶의 배경의 차이. 극복하는 게 쉽지 않죠.

쌍둥이도 여러분 기질의 차이가 얼마나 다릅니까.

다혈질과 다혈질이 만나면 기가 막힌 것이죠.

 

성격이 너무 다를 때 오는 갈등 만만치 않습니다.

가끔 만나면 몰라도 늘 함께 사는 건 힘듭니다. 매일매일이 전쟁입니다.

 

부부관계는 복잡하고 미묘하고 많은 난제들이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약점과 연약한 부분이 있습니다. 상처 없는 사람이 없잖아요.

상처와 상처가 만나면 너무 힘든 것입니다. 안 싸우고 사는 건 정말 기적이에요.

 

힘들 때는 원수가 따로 없습니다. 어쩌다가 이 원수와 결혼했나.

여러분 예수를 믿고 신앙이 좋은 사람들도 싸웁니다.

행복학교 부부 세미나 강사도 싸웁니다.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들도 다 싸워요.

 

철야기도 금식기도 돌아서서 다 싸워요. 막 은혜 받고 다 싸웁니다.

성격이 좋아도 싸웁니다. 착한 사람 안 싸웁니까?

착한 사람은 아주 착하게 미묘하게 사람 힘들게 하면서 싸워요.

다 싸워요. 안 싸우는 사람이 없어요.

 

나도 내가 마음에 안 드는데 어찌 다른 사람의 마음에 들 수 있겠습니까.

부부가 완전한 일치, 어떤 갈등도 없는 관계, 불가능한 것입니다.

어떻게 하죠 여러분? 헤어져야 됩니까? 싸우면서 사는 거예요.

세월이 흐르면서 문제는 싸우는 방식을 터득해가는 것입니다.

 

싸움의 빈도가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고. 예전에는 매일 싸웠는데.

아침 전후로 싸웠는데. 일주일에 세 번, 두 번, 한 번. 줄어드는 거예요.

횟수가 줄어들고 좀 싸우더라도 지혜롭게 싸우는 법을 배우는 것이죠.

 

싸워본 분들은 알겠지만 부부의 싸움에는 승자가 없습니다.

이기려고 해봐야 이기는 싸움이 없어요. 뭐가 이기는 겁니까.

싸우되 요령 있게 싸우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막 던져버렸는데 이제는 골라가면서 돈 안되는 것만.

스마트폰 같은 것도 던지는데 벽으로 던지지 않죠. 이불 위에 팍 던져요.

 

그거 여러분 벽에 치면 누구에게서 돈 나가는 겁니까. 자기 돈으로 사야죠.

아내를 때리면 어떻게 되요? 아내 부러지면 며칠 밥 굶고 출근해야죠.

자기 고생이라는 거죠. 한쪽이 화를 내면 펄펄 같이 뛰면 미련한 겁니다.

 

한쪽에서 펄펄 열이 나있을 때는 딴 길이 있나요. 꼬리를 내려야죠.

슬슬 딴 방에 가 있으면 돼요. 같이 막 이러면 눈알이 흰자가 나오고 이러면 안됩니다.

 

여러분 너무 험한 사태까지 가지 않고 적당한 수준에서 끝내야 합니다.

이기기보다 조금 져주는 쪽으로 가는 게 유익하다는 걸 발견하잖아요.

살아가는 방식은 싸우는 방식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감정의 문제라기 보다 의지의 문제잖아요.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바울이 사랑에 대한 특성을 다섯가지 언급하면서

 

첫째로, 사랑은 오래 참고. 근데 여러분 맨 끝에 마지막 정리를 뭐라고 하냐면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했어요.

여기에 무슨 사랑의 무드가 있는 그런 걸 얘기하지 않아요.

사랑은 오래 참는 거고 견디는 거고 참는 거라는 거죠.

 

그러니 여러분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려고 애쓰는 겁니다.

이를 악물고 사랑하는 거죠. 그러다보니 나중에 사랑이 밀려오는 겁니다.

사랑하기에 참기도 하지만 참다보니 사랑이 찾아오는 겁니다.

 

용서의 감정이 생기도록 기다리면 용서가 됩니까. 안 찾아옵니다.

용서하기로 결단하고 의지적 행위로 옮길 때

용서의 마음도 감정도 어느 순간 따라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부부관계 속에 많은 난제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책임입니다. 사랑은 책임을 지는 겁니다.

책임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닙니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미루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결혼 자체가 주는 무거운 짐 자체를 부담스러워 해서 그렇습니다.

재미만 보고 책임은 지지 않는 관계, 불가능합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어요. 책임 없는 사랑이 가능합니까. 동거 문화가 많아요.

오늘날, 동거 편리하죠. 살다 싫으면 그만두면 되잖아요.

책임 안 져도 되잖아요. 그러나 여러분 그게 자유로운 것 같지만 속는 것입니다.

 

집을 짓는데 기초 공사 안하고 집 지어놓은 거예요. 바람 불면 넘어지는 겁니다.

굉장히 약은 생각이지만 그게 오히려 마이너스입니다.

헤어지기로 작정한 것과 마찬가지죠.

 

동거는 여자쪽이 훨씬 더 불리한 것입니다. 성경적 결혼이란 서약한 순간부터

배우자에 관한 모든 것을 끌어안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책임을 지는 게 결혼이에요. 책임 진다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감정으로만 결혼하게 해서는 안돼요.

좋을 때는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어하죠. 그러나 조금 냉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결혼을 앞둔 자녀들이 있으면 너무 뜨거우면

제정신인가 확인해봐야 합니다. 쿨다운하는 것.

 

정확하게 자신의 현실을 들여다보게 해야 합니다. 뜨거운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아요.

문제는 우리 인생 가운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권태기를 잘 통과해야 합니다.

책임만 있고 사랑이 식어버리면 피곤한 관계가 지속됩니다.

슬슬 자리를 피하게 되고 분방을 하고 따로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면 위험해지는 겁니다.

 

성경은 부부간의 책임에 있어서 모든 영역 속에 함께

수고와 희생을 치루는 대가와 지불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부부는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7:5절입니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부부가 기도할 이유 외에는 분방해선 안된다고 합니다.

기도할 목적이 아니라면 부부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부부는 묘한 관계입니다. 떨어져 있으면 처음엔 힘든데 조금 지나면 익숙해져요.

익숙해질 정도가 아니라 나중엔 편안해집니다.

그러면 나중에 함께 하려하면 불편해집니다.

그러다보면 유혹에 취약한 상태가 되고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무조건 가능한 같이 결사적으로 같이 있어야 합니다.

성경은 부부가 분방할 유일한 이유는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서,

물론 이것마저도 이용하려 해선 안됩니다.

 

예수 믿는 우리 분들은 헤어질 목적으로 떨어져 있을 목적으로

내가 기도를 좀 해야 하니 성경을 보라고. 그렇게 이용해선 안됩니다.

기도할 틈을 얻고자 하기 위해서, 이것도 영적으로 더 성숙해짐으로

부부관계가 깊어지는 데 도움이 된다면 일시적으로 그럴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상대방의 허락 하에 가능합니다.

성경은 많은 안전장치를 해놓았어요.

성경이 제시한 말씀은 부부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왜 부부가 떨어지면 안된다는 것입니까. 사탄이 시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부부의 틈을 비집고 들어와 유혹에 넘어가게 할 수 있다는 거예요.

틈을 만들지 말라. 조금씩 무너지는 게 위험한 겁니다.

 

분방하고 따로 떨어져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같이 있어도 마찬가지에요.

대화가 자꾸 줄어드는 건 위험한 겁니다. 공통의 관심사가 점점 없어지는 것,

위험한 것입니다.

 

슬픔이나 기쁨의 감정을 나누지 않는 것, 위험한 상태입니다.

잠자리를 갖지 않는 것, 위험합니다. 나중엔 그 틈이 점점 벌어지는 겁니다.

 

부부의 사랑은 세월이 흐르면서 자동적으로 깊어져가는 것이 아니라

무지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거예요.

 

젊은 날에는 육체적인 것이 더 중요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성적인 만족은 매우 중요한 것이죠. 필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예전에는 다루지 않았던 노인들의 성문제도 공론화되고 있습니다.

무시하면 안됩니다.

 

오늘날의 문제는 마치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감각적인 사랑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사랑은 전인적인 것입니다. 육체적인 것 이상으로 정신적인 부분이 중요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친밀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왜 외도가 허무함으로 끝날 수밖에 없습니까.

인격적 친밀함이 아닌 육체적 만족에 초점을 두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성적 만족 안에 더 깊은 근원적인 만족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면 친밀함을 원한다는 겁니다.

 

부부관계 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적인 행위만 있으면 안돼요.

친밀함이 있어야 합니다.

 

성적 탈선을 하는 이유는 친밀감의 결여에서 시작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그 친밀함을 갈망합니다.

 

그 친밀함이 결여되면 공허해지고 그 공허함을 다른 것으로 채우려다 보면

외도로 빠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은 결코 육체만이 아닙니다.

서로를 존중해주는 인격적 신뢰가 핵심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무엇보다 부부가 함께 대화하는 게 중요해요.

눈과 눈을 마주보며 깊은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이걸 잘못해요. 특히 경상도 사람들은 이 부분에 약합니다.

대화도 잘 안 하지만 대화하면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아요.

한 번 해볼까요, 여러분? 이게 잘 안돼요.

 

대화를 한다 해도 재미없는 주제를 다루다가 싸웁니다.

서로의 감정을 다뤄주는 대화가 없어요.

 

어려움이 있으면 감정을 솔직히 나눠야 합니다. 서로의 말에 귀기울여 주고

상대의 마음을 알아주려는 행위. 이 자체가 중요합니다.

 

특히 여러분 배우자의 외로움을, 우리가 모두가 외로운데

그 배우자의 외로움을 누가 해결해 주어야 합니까.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배우자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가운데 사랑이 조금씩 자라나는 거죠.

우리는 결혼하기 전 막 애걸하고 복걸하고 구애를 하고 막 야단이에요.

 

결혼하면 끝이에요. 결혼한 이후에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가정 안에서 더 적극적으로 부부관계 속에 사랑을 위하여 수고하고

애를 쓰고 성실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 남성들은 집에서도 더 아내들에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설거지도 하고 여러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는 거죠.

여성들도 나갈 때만 멋있게 차려입지 말고. 노력해야 하는 거죠.

서로 배려하라는 거죠.

 

가정은 인간의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생물학적 결합이 아니에요.

가정이란 제도는 하나님이 만드시고 그 부부관계 안에서 만족을 얻게 하시고

그 외에서는 어떤 곳에서도 부부 안에서 이루는 만족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부부관계가 주는 사랑과 행복만큼 큰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가끔 힘들 때 유혹 받을 수 있지만

일시적인 육체적 만족과 가정을 바꿔서는 안됩니다.

 

같이 사는 이 사람을 피하여 어디로 가면, 행복이 날아올 것 같은 상상을 할 때가 있죠.

여러분 그런 일은 없습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잘생기고 매너 좋고 돈 많고 그런 사람은 없어요.

그런 사람이 있다고 해도 아줌마가 된 나를 만나줄 일도 없고.

가능성도 없는 거예요. 꿈도 꾸지 마시고.

 

약간 배가 나오고. 넓어진 이마(대머리).

그래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최상의 배우자임을 믿으시길 바라요.

아내들은 아멘을 안 하더라고요.

 

남자들도 마찬가지에요. 함께하는 아내만한 여자가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직장에 미스리, 미스박 꿈도 꾸지 마시고.

잠시라도 마음 빼앗기면 큰일나요. 망신당하고 뉴스감 되는 것입니다.

 

비밀보장? 그런 것 없어요. 요즘 뉴스 보세요. 비밀이 있는가. 비밀 없어요.

아주 은밀하게 오고 간 모든 내용이 다 기록이 되고 모든 게 그대로 남아요,

지금은. 들통이 나게 돼 있어요.

 

다윗과 바세바의 사건도 그렇게 출발했습니다. 착각이에요.

저도 조심해야 합니다. 사랑은 환상이에요. 그런 사랑은 환상입니다.

 

여러분 그냥 풀어헤친 머리를 하고 매력적이지 않아 보여도

나의 플랜에서 살아줄 사람은 그녀밖에 없어요.

 

립스틱 짙게 바른 여자나 근육질의 멋진 남자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마세요.

자칫하면 꽃뱀이나 카사노바에 걸려 죽을 고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혹은 남의 떡이 커보이듯이 남의 아내나 남편이 좋아보일 때가 있어요.

그러나 그것은 허상이에요.

 

이미 이혼하신 분은 어쩔 수 없지만 이혼을 생각하는 사람은

다시 생각해보세요. 재혼을 해도 그 재혼성공율 낮아요.

재혼은 너무도 맑은 정신으로 서로의 조건을 따지기 때문에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아요.

 

나이 들어서 불같은 사랑, 어림도 없어요. 잘못하면 죽음의 길로 갑니다.

제가 오늘 별 이야길 다 하죠. 그러나 모두가 아는 불편한 진실입니다.

 

칠계명. 지금 살고 있는 배우자와 잘 지내라는 계명이에요,

여러분. 이상한 곳에 돈 쓰지 말고 지금 살고 있는

아내와 남편에게 십 분의 일이라도 쓰면 그 투자, 최고의 수익이 보장될 것입니다.

 

그게 옳은 일이에요. 속지 마십시오. 미우나 고우나 일편단심 민들레야.

다른 곳으로 눈이나 고개를 돌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흔들릴 때는 더 적극적으로 배우자에게 다가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벗어난 만족과 행복을 약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부부간의 정절은 짐이 아니에요. 정절을 지키는 것은

배우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되는 것입니다.

 

깨끗한 사랑이 진짜 사랑인 것입니다. 결혼이라는 것,

부부관계는 길고 긴 세월동안 조금씩 벽돌 하나하나 쌓아올리듯

애정을 다하여 수고를 다하는 것입니다.

 

갑자기 떨어지지 않아요. 힘들고 어렵지만 노력으로 만들어 가다보면

오랜 세월 동안 만들어져 간 그 안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기쁨이 있어요.

 

끝내고 싶어도 참아야 합니다. 세월을 통해 깊어져 간 사랑은 젊은 날

펄펄 끓는 사랑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저희 부모님 두분은 다음 달이면 칠십 주년이 됩니다.

저희들이 축하를 해드리려고 준비하고 있는데 대단한 일이죠.

두 분이 칠십년의 생애를 결혼하셔서 살아오셨어요.

성격이나 모든 게 너무 다르죠.

 

그러나 살아오시는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사건들이 있었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깊어져 간 거죠.

어느 시점을 넘으면 어떤 경지에 이르는 것 같습니다.

세월을 통해 만들어진 깊은 사랑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게 없는 거죠.

 

살다 보면 부부싸움이라는 게 희안해요.

진 게 이긴 것이 되고 이긴 게 진 것이 됩니다.

헷갈려요. 지금도 두 분은 가끔 말다툼을 투닥투닥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승부가 무의미해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두 분은 서로에 대한 깊은 믿음으로 사십니다. 요즘 보니까 신혼 같아요.

두 분이 아주 오손도손 재밌게 사시는 것 같아요.

두 분이 사시는 모습이 얼마나 보기 좋은 지 몰라요.

 

그 두 분이 잘 살아주신 것이 자식들인 우리에게 최고의 선물이 되기도 합니다.

두 분이 멋지게 사셨던 것이 어느 날 세월이 흘러 자녀들에게 줄 수 있는

너무도 멋진 선물이에요. 멋져요.

 

험난한 질곡의 세월. 얼마나 많은 어려움과 때로는 헤어지고 싶은 욕구와

사건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쉽지 않은 삶의 여정 속에서

그 질곡을 헤쳐나온 용사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거죠.

 

성도 여러분. 인생은 생각보다 짧습니다.

사랑하기에도. 사랑하기에도 짧은 인생이에요.

 

함께 산다는 것이 구속으로 여겨질 순 있지만 한 사람의 구속,

그것이 얼마나 많은 자유를 주는 지 알지 못해요.

 

거침없이 내 마음대로 사는 게 자유가 아니에요.

한 여자, 한 남자에게 매여 있는 그것이 모든 남자 여자들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것이에요. 진정한 행복입니다. 결혼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매우 현실적인 것입니다. 오늘 칠계명. 간음하지 말라.

하나도 어렵지 않은 얘깁니다. 복잡하지도 않은 말씀이에요.

 

간음하지 말라. 쉽게 얘기하면 다른 데 눈 돌리지 마. 한 사람으로 만족해.

음성으로 주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어기면 죽을 고생을 다 하고 손해 많이 보고 후유증 어마어마합니다.

이 명령을 주실 때는 명령에 합당한 모든 원리에 의해서

이 세상이 돌아가도록 아주 조금도 오차 없이 만들어놓은 것이에요.

 

일계명부터 십계명까지 그런 명령이 아니라

이 말씀을 지키는 것과 지키지 않는 것에 인생의 판도가

완전히 달라지도록 삶의 모든 원리가 여기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여기에 맞춰갈 때 열차의 레일에 올라 돌아가는 것처럼

인생이 가는 거지 인생이 빗나가서는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는 거죠.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이 당신의 남편, 아내와 짧은 인생 살아가는 동안에

죽도록 사랑하며 살라고 이 계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속지 마세요.

다른 곳에는 우리가 찾는 사랑이 없습니다.

 

우리가 지속적으로 사랑하고 승리하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사랑 안에서 가능합니다. 그 놀라운 사랑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사랑이에요. 그러므로 십자가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은

그 십자가의 사랑을 우리 가정의 원리로 적용하면 멋있는 부부관계를 이뤄갈 수 있습니다.

 

상대를 위하여 나를 희생하는 것. 이타적인 것입니다.

자기의 욕구와 만족을 위하여 상대를 이용하고 억압하고 강요하는 게

사랑이 아니라 상대의 만족을 위하여 나를 희생할 줄 아는 것. 이게 십자가입니다.

 

이게 아가페입니다. 천박하고 육체적인 쾌락에 몰두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다르게 살아야 할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부부의 관계에서만 뜨겁게 사랑하는 것이 이 시대에서

칠계명을 지켜나갈 길임을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제 나만의 만족을 추구하지 않고 아내와 남편을 더 행복하게 해주려고 하는

이 십자가의 정신, 이타적인 사랑을 통하여 우리의 가정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행복과 만족과 즐거움을 누리심으로 이 흔들리는 가정의 시대 속에

가정을 굳게 지키며 가정 안에서 부부간계에서

이 행복과 즐거움을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며

 

그 이유를 묻게 하는. 멋진 인생 살아가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라고.

부부관계의 이 사랑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두 사람의 유일한 수고와 헌신이 필요함을 다시 결단하시고

 

오늘 돌아가시면서 두 손 잡고 굳게 살아가기로 결단하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라고

 

혹 지금 싱글로 사시는 분들이나 또는 여러가지 아픔으로 이혼하신 분들이라도

다시 새로운 관계를 주신다면

하나님, 부부관계 안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십자가의 은혜로 나를 붙들어주시옵소서.

 

부부관계에서 오는 행복을 그 어떤 것과 바꾸지 않게 해주십시오.

이것을 내가 지켜가겠습니다.

이 결단을 통해 하나님이 큰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우리에게 주신 이 칠계명 잘 명심하고

우리의 가정 안에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 안에서

더 깊은 사랑의 관계 안으로 들어가기 위하여 힘쓰는

우리 모두 되게 하여주시고 그 몫을 모두 누리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것은 사랑에 목말라 메말라 방황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주께로 나오는 역사가 있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J. H. 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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