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른 자인가 굶주린 자인가? 마5:48 스크랩, 출처
A. W. 토저, 도서 <하나님을 향한 열정> 中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그 분의 말씀에 기초해 깊이 뿌리내리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 마땅히 있어야 할 것에 있게 하려면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왜냐면 우리가 행하는 어떤 것들이
영적인 진보를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영적 진보를 방해하는 잘못 5가지를 간략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1. 내 토저 가 볼 때 첫 번째 잘못은
‘성경 안에 있는 것이면, 자동적으로 우리 안에도 있게 된다’
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기도회에 사람들이 일어나 이런 성경구절을 인용하면서 간증합니다.
갈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사는 것이라’
자기가 성경을 믿고, 또 이 구절을 인용했기 때문에
이 구절의 내용이 그의 삶에서 현실로 이루어졌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의 간증 대로
이 말씀이 그의 안에서 현실로 이루어졌음을
증명해 주는 것이 삶에서 별로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말씀을 믿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우리의 삶속에서 현실로 이루어졌다고 속단하면 안 됩니다.
우리의 잘못은, 성경 안에 있는 것이
자동적으로 우리 안에도 있게 된다는 오해입니다.
이런 중요한 것을 우리의 성경교사들이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성경에서 어떤 것을 읽으면,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 없이
자동으로 우리의 것이 된다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우리는 성경이 주려고 하는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것이, 자동적으로 우리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게 되려면, 성경이 가르치는 것들을
개인적으로 체험하는 수준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물론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첫 단계일 뿐입니다.
첫 단계를 지난 사람은, 계속 인내하여 완성에 이르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능력을 통해 체험하는 단계까지 올라가야 합니다.
▲2. 우리의 하나님의 인식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잘못은
‘영적 게으름’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은 신앙의 진보가 더딘
어린아이 같은 교인들의 수준에 맞춰 돌아가고 있습니다.
목회자는 깊은 신학의 기초한 수준 높은 목회를 감히 엄두도 못 냅니다.
지지부진하고 빈약한 양떼가 그를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인데요.
이런 교인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그들이 영적인 갈증을 느끼게 하는 것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사람들에게 육체적 운동을 하라고 권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들이 열심히만 한다면, 결실을 머지않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잘 권하기만 하면
소수의 사람들은 지적인 훈련도 얼마든지 소화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영적 갈증을 심어주려면
성령께서 일하셔야 합니다.
신자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서
성령님이 일하실 때에야 비로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사람들을 격려하여 책을 읽게 할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일들을 향한 갈증과 굶주림을 심어줄 수 없습니다.
이 일은 성령님께서 하셔야 합니다.
▲3. 우리의 하나님의 인식을 방해하고 훼손하는 또 다른 잘못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세상 사랑’은,
우리가 정상적인 사람으로 대우받기 위해서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세상적인 기준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예를 한 번 들어봅니다.
폐결핵 환자를 치료하는 요양소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기는 거기서 태어나고, 살고, 성장하면서
자기의 생활환경을 정상적인 것이라고 여깁니다.
왜냐면 바깥세상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요양소 안에 있는 이들은 모두 기침을 하고
종종 손을 가슴에 갖다 대고
가래를 뱉을 수 있는 작은 봉지를 가지고 다니고
하루에 5번 낮잠을 자고 식이요법을 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정상이라고 여기고
자기의 모든 생활을 거기에 맞출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이, 오늘날 교회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교회에서 봐 온 낮은 수준의 연약하고 노쇠하고
빈혈에 걸린 것 같은 기독교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런 기독교를 신약성경의 기독교라고 믿으며
더 이상의 것을 바라거나 찾지 않습니다.
(내가) 세상을 정상의 표준으로 받아들이면
세상의 기준들에 적응하게 되고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들과 충돌하게 됩니다.
(내가) 세상에 적응하면, 주변 세상의 모든 것이 정상으로 보일 것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이 더욱 높은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사라지게 됩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완전함을 향해 열심히 전전하라’
라고 명령하신 것들을 *마5:48등
기억해야 합니다.
이 명령을 따르려면, 날마다 영적인 훈련을 해야 합니다.
▲4. 우리의 하나님 인식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잘못된 것은
어떤 식으로든 ‘위로 받겠다는 욕구’입니다.
오늘 날에는 이런 욕구가 너무 팽배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 어떤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 위로를 받겠다는 마음을 가질 정도까지
영적 수준이 높아진 교인은 얼마나 될까요?
어떤 이들은 위로 받기 위해서 교회에 갑니다.
그러나 교회는, 위로를 찾는 곳이 아니라
구원을 주는, 복음을 듣는 곳입니다.
위로 받는 것과, 구원 받는 것은
너무나 다릅니다.
위로를 얻었지만, 결국에는 지옥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심한 가책과 두려움을 느끼지만
회심하여 결국 천국에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설교자들이 항상 우리를 위로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어떤 아이처럼, 위로 받고, 편안해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나의 가장 나쁜 점을 깨달아
늦기 전에 고쳐야 합니다.
만일 내가 잘못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면
그것을 고칠 수 없을 것이고
결국 그것이 내 삶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우리의 지독한 또 하나의 잘못은
‘육신에 대해 죽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기독교 잡지에, 성령을 주제로 한 글을 몇 차례 기고한 적이 있습니다.
주제는, 우리와 성령의 관계, 그리고 더 깊은 삶에 관련된 것이었습니다.
그 일련의 기고문에 쏟아진 반응은
낮과 밤이 다르듯이 서로 극명하게 엇갈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충만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기를 썼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비록 죽은 교단 출신이었지만
자기의 죄를 깨닫고, 몹시 고민하던 중
누구의 도움 없이,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갔습니다.
이런 차이는 이미 배부른 사람과, 배고픈 사람의 차이입니다.
나 자신 뿐만 아니라,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영적 굶주림 없이 세상으로
배부른 자입니까?
아니면 굶주린 자입니까?
여러분은
예수와 복음으로
배부른 자입니까?
아니면 굶주린(배고픈) 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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