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7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자 / A. W. 토저

LNCK 2017. 6. 26. 09:51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자

 

A. W. 토저

 


우리는 하나님을 어떻게 보아야할까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의 눈에 보이는 육체로 거하신다면

우리의 눈에 어떻게 보일까요?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진다 할지라도 아무도 가까이 갈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의 빛 앞으로 나아가

하나님의 빛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럴 경우에 과연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으로 보일까요?

이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가 드러날 것입니다.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믿었느냐에 따라서

강해지거나 약해지기도 했습니다.

 

개교회들도 하나님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강해지거나 약해졌고 더 커지거나 작아지곤 했습니다.

 

물론, 교회의 크고 작음을 말할 때

나는 교인의 숫자를 가지고 말하지 않습니다.

 

교인 수가 많지 않으면서도 큰 교회라고 부를만한 교회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점, 신관은

신자 개개인의 신앙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내가 안다면 나는 당신의 미래를 어렵지 않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인식을

하나님을 생각하는 우리의 마음을

늘 점검해서 바로 잡아야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가지고 있는 개념 중의 하나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것이며

그 선하심으로부터 자비(‘긍휼로도 번역 됨)가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때문에 무관심은 하나님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무관심에 빠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 무한하고 압도적인

뜨거운 사랑의 에너지를 쏟아서 사랑하시든지

아니면 타협을 모르는 거룩한 증오의 불을 쏟아 미워하시든지 하십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의무를 갖고 계신다고 말하는 권리가 누구에게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그 무엇에 대해서도 의무를 갖지 않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서 세상의 창조에 대해서 말해보겠습니다.

세상은 오직 하나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선하심>의 의해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선하고 열정적이고 자애로운 하나님께서

만인과 만물을 창조하기 원하셨기 때문에

천지를 지으셨고

별들을 만들어 그들의 자리에 달아매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주제, 제목)이 이 모든 것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누구에게도 어떤 의무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이것 역시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입니다.

 

왜 그분이 죄를 용서하시는가?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인정 많고 자애롭고 호의적인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능력의 하나님으로서 가질 수 있는 불타는 마음으로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응답하시고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한 사람은 하나님께 나아가 자신의 주장을 펼쳐

그분을 설득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 오 하나님, 이러 이러한 이유가 있사오니 복을 주십시오

라고 주장한다면 그분이 응답하실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그 분을 설득해서 하나님의 본성에 어긋나는 것을

행하시도록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어떤 대가나 의무 없이

<하나님의 선하심>에 따라 모든 것을 행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매우 쉬워지며

하나님이 놀라울 정도로 가까이 계시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선한 뜻에 따라 하나님은 우리를 도울 방법을 정하셨습니다.

그 방법들은 <하나님의 선하심> 때문에 생겨난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하나님이여 저에게 자비(긍휼)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라고 했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기도 중에 가장 거룩한 기도를 드린다 할지라도

내가 응답받을 수 있는 것은 내 기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긍휼)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선하심을 베풀어

우리가 하나님께 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길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깨닫기만 하면 헛수고를 많이 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원래 우리에게는 기도의 응답을 받을 권리가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기도가 더 강해지고 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기도응답은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심>이 우리에게 부어지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속죄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몸이나 영혼 안에 있는 그 어떤 것을 보고

하나님이 당신을 떠나시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죄가 많고 더럽고 이상해도

하나님은 선하시기때문에 여러분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자비(긍휼)<하나님의 선하심>에서 흘러나옵니다.

다시 말하지만 자비(긍휼)는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자비(긍휼)는 하나님이 갖고 게신 어떤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만일 자비(긍휼)가 하나님이 갖고 계신 어떤 것이라면

그것을 어딘가에 베푼 후에 잊어버리시거나

그것을 다 써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비(긍휼)는 하나님 자체입니다. 자비(긍휼)는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당신에게 당신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라고 묻는다면

우리 하나님은 선한 분이시라고 대답하면 됩니다.

 

하나님에게 자비(긍휼)가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자비(긍휼)이십니다.

자비(긍휼)는 하나님의 본질이기 때문에 하나님처럼 영원합니다.

 

하나님의 자비(긍휼)의 근원은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그 분의 선하심은 무한합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의 행복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기쁨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거룩해지기 원하시는 그분은

여러분이 고난을 통하여 거룩해질 수 있다면 고난을 허락하실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고난 뒤에 즉시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거룩해짐으로 우리의 행복이 지속되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못한 행복은 오늘 피었다가 내일 죽는 민들레처럼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여러 고난과 시련을 통과하시게 합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금 당장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기쁨을 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긍휼)의 한 부분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서 자비(긍휼)를 늘리려한다면 소용이 없는 짓입니다.

하나님께 가서 당신의 주장을 펼칠 필요도 없습니다.

두 손을 높이 들고 하나님 제게 자비(긍휼)를 베푸십시오!’ 라고 말씀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자비(긍휼)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자비(긍휼)를 베푸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늘 그러신 분이라고 믿어야합니다.

어떤 특별함 때만 아니라 항상 언제나 그러신 분이라 믿어야합니다.

 

하나님의 자비(긍휼)선하심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자들로 부터 다시 살아나셔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우편으로 올라가셨을 때

하나님이 더 자비(긍휼)로우신 분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인정과 사랑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시어 살아계신 것은

자비(긍휼)가 샘물처럼 쏟아 흘러내리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통로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자비(긍휼)가 흐르는 길입니다.

자비(긍휼)가 가리키는 방향에서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인은 십자가의 진리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여러분의 죄악을 벗어버리십시오. 여러분의 죄악을 버리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자비(긍휼)가 여러분의 죄와 고통을 처리하고

여러분이 정결하다고 선언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자비(긍휼)를 받는 사람들입니다.

죄를 위한 속죄가 없다면 자비(긍휼)가 죄를 무효화할 수 없지만

감사하게도 속죄가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죽으심으로 이루신 것은 절대적으로 완전합니다.

당신이 속죄의 모든 것을 다 알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이 알아야할 것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당신을 위해 죽으셨고

그 분의 공로 때문에 하나님의 자비(긍휼)가 당신에게 강물처럼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