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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서 가장 두려운 진리와 복음 / 폴 워셔

LNCK 2017. 8. 4. 17:30

성경에서 가장 두려운 진리와 복음 / 폴 워셔 - YouTube

성경에서 가장 두려운 진리와 복음              출처

폴 워셔

 

첫 번째로 복음은 하나님으로 시작합니다.

진실로 모든 문제는 하나님의
속성에서 기인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속성을 위반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스스로 모순되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의로우신 하나님입니다.

이것은 좋은 얘기입니다.

이 우주가 전능하고 악한 신에 의해서
창조된 것을 안다면 우리는
정말로 두려울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의롭다는 것은 좋습니다만
이것은 다른 문제를 만듭니다.

 

만약 하나님이 의롭다면 그분은
우리를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여러분을 위해 문제점을
설명 해드리겠습니다.

 

몇 년 전에 저는 유럽에 갔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강연을 했고
저는 학생들이 저를 적대시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이 구닥다리가 청교도적 메시지와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말을 할 것이다.”

 

제가 강단에 걸어 나갈 때
저는 진정으로 기도했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

저는 그분이 지혜를 주신 것을 느꼈습니다.

대학생들을 바라보며 저는 말했습니다.

 

“저는 성경의 가장 두려운 진리를
여러분에게 전할 것입니다.”

저는 그들에게 경고하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하나님에 관련된
가장 두려운 진리를 전할 겁니다.”

 

그러자 그들은 모두 집중하는
태도를 갖추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바라보고

“가장 두려운 성경진리는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겁니다.”

 

그 순간 그들은 웃고 희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뭐가 문제지?”

 

어떤 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한 하나님이 무엇이 문제인가?”

“왜 그것이 나쁜 소식이고 왜 하나님이
선하다는 게 떨리는 것인가?”

 

제 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이 선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두려운 것은
우리는 선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같은 죄인들에게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거슬러 죄를 짓는 죄인이고

우리는 서로에게 죄를 짓고

우리는 본성을 거슬러 짓고

우리는 모든 것에 대해 죄를 짓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내는 모든 것은, 정죄를 불러 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진실로 의롭다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심판하셔야 됩니다)

 

만약 의로운 하나님께서 단순히
악한 자를 봐준다면

그는 더 이상 의롭지 않습니다.

 

만약 거룩한 하나님께서 악한 자와
친교를 가지기 위해 부른다면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아닙니다.

 

성경 전체에서 가장 커다란 문제는 이것입니다.

어떻게 의로운 하나님께서 악한 자를
용서하시고도 여전히 의로울 수 있는가?

 

어떻게 의로운 하나님께서 악한 자와
친교를 맺자고 부를 수 있는가?

그리고 여전히 거룩할 수 있는가?

 

그 답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속성에 관한 완전하며
대단하고 귀한 계시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그분은 우리 죄를
반드시 정죄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사람이 되셨습니다.

 

그분의 아들은 인간으로써
완벽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가셨습니다.

그 나무 위에서 백성들의 죄가
그 분 위에 얹어졌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하는 모든 공의와
모든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님의 머리 위에 쏟아졌습니다.

 

하나님의 정의가 완전히 만족되기 위해
요구되는 모든 분량만큼 말입니다.

 

수난이 끝나고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이것은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공의가 만족되기 위해 요구되는
일을 다 해냈다는 말입니다.

 

그는 모든 죄 값을 완전히 치루셨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예수님을 로마병정이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질했기 때문에 우리 죄가 속죄된 것은 아닙니다.

 

그분의 아들이 우리 죄를 품었기 때문에

우리 죄는 속함을 받았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를 부수기를
기뻐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사야53:10)

 

우리에게 떨어져야할 하나님의 진노는
그분의 독생자에게 떨어졌습니다.

 

그분은 모든 고통을 받았고
그분은 값을 치뤘고

죄의 삯을 위해 죽으셨고
삼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그리고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이외에는 우리를
능히 구원할 수 있는 이름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 길이고 그 진리이며
그 생명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누구도
성부께 나갈 수 없습니다.

 

한분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한 중재자인
예수 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구원을 위해 성경은 모든 사람을
그들의 죄를 회개할 것과 복음을
믿는 것으로 초청합니다.

 

그럼 회개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자신의 마음mind을 바꾸는 것"이라고
흔히 정의되어 왔습니다.   *메타: 바꾸다, 노이아 : 마음

 

헬라어 단어는 그것을 의미하고
실제로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현대 문화에서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마음을 바꾼다는 것을 상당히
피상적이라고 생각할겁니다.

 

그럴 수도 있겠지만 여러분이
마음(mind)이 무엇인지 이해한다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마음은 인간 중심부(control center)를 의미합니다.

이것은 의지-감정-지성의 중심부입니다.

 

우리가 결정을 내리는 과정의 중심부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말씀하신 ‘회개’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만약 여러분이 마음(mind)을 바꾼다면
모든 것이 거기에 따라 변할 것입니다.

 

제가 회개의 완벽한 예를 들어드리죠.

사도 바울은 마음을 바꿨습니다.

그가 떠났던 다메섹 길 위에서
그가 그리스도인을 잡기위해 떠났을 때!

 

왜 그랬습니까? 그것이 바울이 믿었고
바울이 생각했던 바입니다.

 

‘나사렛 예수는 지구상의 가장
극악한 신성모독자이다.

그는 또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파괴되어야
하는 끔찍한 종파이다.’

이것이 그가 생각했던 바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길 위에서 그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마주쳤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그의 생각이 변했습니다.

 

그의 모든 실체는 거짓이라고
증명 되었습니다.

 

그가 실체라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특히 하나님에 관련한 것이 틀렸습니다.

그가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하나님의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생각의 변화 때문에 다른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세례를 받고 난 이후에
그는 사역을 시작했고

복음을 설교했으며

 

그가 박해하던 그 믿음으로
인해 박해받았습니다.

 

회개란 실체에 관한 모든 여러분의 생각과
모든 관점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바라보고
거기에 굴복하는 겁니다.

 

하나님은 어떤 존재이고
여러분은 어떤 존재이고

예수님은 어떤 존재이고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에 관한 하나님의
진리에 굴복하는 겁니다.

 

이제 문제는, 여러분이 진실로 회개했느냐는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진정 바뀌었냐는 겁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변한 것이
지성의 변화와 의지의 변화와 감정의
변화를 이끌었냐는 겁니다.
 
여러분이 이전에 사랑하던
<죄>를 이제는 미워하십니까?

 

여러분이 이전에 무시했던 <거룩>을
이제는 갈망하십니까?

 

당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던 그리스도가
당신과 함께하고

여러분은 그분과 이제 관계가 있습니까?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대단히 존경하십니까?

여러분은 천국을 값비싼
보물로 생각합니까?

 

이런 것들이 회개가 여러분 마음속에
일어났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회개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하고

우리  안에 구원할 만한 어떤 것도 전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찬송가 작가가 말했듯이
‘내손에 아무것도 들고 가지 않네.’

‘그러나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만 나는 주장하네.’

 

회개란 여러분이 오직 한 소망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그 소망은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에서 발견됩니다.

 

여러분은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만약 누군가가 ‘너는 어떤 선행을 통해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라고 제시한다면

이것은 여러분을 불쾌하게 만들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외칠 겁니다.

“아닙니다. 이것은 신성모독입니다. 아닙니다.”

“저는 단 하나의 이유로 구원받았습니다.”

 

“2천년 전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위해 피  흘리시고 죽었습니다.‘

 

구원은 ‘회개’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영생을 가졌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여러분이
진짜 믿는지 압니까?

 

설령 여러분이 어떤 회심의
경험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설령 여러분이 하나님과의
평화를 느꼈다고 할지라도
다른 수많은 감정을 가졌다고 해도

 

어떻게 여러분이 그것이 진짜인지
바르게 알 수 있습니까?

 

여러분이 진짜인지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는 그것이 지속된다는 겁니다.

 

반드시 감정이 지속적으로
격양될 필요는 없습니다.

 

무엇이 지속되어야 하느냐면
은혜 안에서의 성장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속적으로 회개를 더 깊게 합니다.

여러분은 지속적으로 믿음을
더 깊게 가집니다.

은혜 안에서의 성장이 지속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속적으로 회개를 더 깊게 합니다.

여러분은 지속적으로 믿음을
더 깊게 가집니다.

 

조금씩 여러분은 변화 받습니다.

점차적으로 예수님 형상을 닮아 갑니다.

 

“폴 형제님, 참 그리스도인이 죄를 범합니까?”

그렇습니다.
슬프게도 그렇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이 죄에 빠질 수 있습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차이가 있습니다.

 

참 그리스도인은 지속적으로 육적이고
미성숙한 상태로 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이렇게 말하기 때문입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히브리서 12장이 말하는
참 회심의 최고의 표지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사랑으로
자식처럼 보살피시고

 

그리고 여러분이 죄의 길에서 벗어날
때까지 그분께서 여러분을 훈육하고
매로 꾸짖는 겁니다.

 

단순히 여러분을 향한 그분의 태도가 변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이렇게 하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거룩을 원하십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보살핌과 지도를 받게 됩니다.

 

착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끝내실 겁니다.

 

예수님의 복음은

하나님은 의로우시고

인간은 철저히 부패하고

모든 정죄를 받을 만합니다.

 

인간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먼저 충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을 대신해서 섰을 때

그들의 죄를 지고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모든 진노를 아래서 부셔지셨습니다.

 

죽음으로 그분은 모든 죄 값을 치루셨고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회개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에 이르는 회개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의 증거는

지속적으로 거룩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