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bSQfmfZYd-w&feature=youtu.be
◈성막의 의미 P1 출25~31장, 35~40장 2000.12.26~28 영어출처
The Meaning Of The Tabernacle / Zac Poonen
※성막의 전부를 다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차츰 차츰 단계적으로 공부해 나가려 합니
구약 성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시는 거룩한 성소(장소)였습니다. 출25:8
신약 요1:14절에도 ‘예수님이 육체로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다>’고 했는데,
원어적으로 ‘사람들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구약의 성막은, 하나님이 사람들과 함께, 사람들 가운데 거하신다는
하나의 예표였습니다.
신약시대의 교회에 대한, 구약의 예표라고 볼 수 있죠.
◑성막은 모세에게 명하신 그대로, 양식대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은 매우 특별하게, 성막의 모든 기구를
모세에게 보여주시고, 그대로 만들게 하셨습니다.
그 모든 각 기구의 크기와 재료에 대한 지침을 일일이 일러주셨던 것입니다.
출25: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많은 크리스천들은 깨닫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명하신 그대로 해야 한다는 것을요.
우리 교회의 장막도, 우리 각자의 신앙의 건축도
그렇게 양식대로 지어야 한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지어도 될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생활, 즉 개인의 생활과 교회생활을
하나님께서 명하신 그대로 해야지, 자기 임의로 신앙의 집을 지어서는
그건 모래 위에 짓는 집이 될 것입니다. 영원히 서 있지 못할 것입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거대한 피라미드의 건축을 보고 자랐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인 성막을 지으려 했을 때,
그처럼 거대하고 웅장하게 지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얼마든지요.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보여주신 성막의 양식을 스스로 임의로 변경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 눈에 보다 장엄하게 보이게 하기 위하여, 어떤 술수를 쓰지 않았습니다.
모든 기구의 상세한 부분에까지, 그는 하나님이 명하신 그대로
만들었습니다.
출40:33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34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성막을 양식대로 완성하니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임했습니다.
만약 모세가 이 성막 짓는 설계를 40세 때 받았더라면,
그는 하나님이 주신 양식에다 자기가 애굽에서 배운 지식을 더 보태서
더 멋지고 화려하게 지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그 성막은, 사람들 눈에 보기에는
더 멋지게 보였을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영광’은 거기에 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교회들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영적, 육적) 처소를
지으려 할 때도 명심해야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보다 까마득하게 더 높습니다. 사55:8~9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에 언제나 인간적 생각을 보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간절히 바라고,
그 영광이 나타나기를 사모하는 신앙의 건축자들은
하나님이 명하신 양식 그대로 짓습니다. 자기 신앙의 집을요!
우리 주님은 지상에서 계실 때, 마치 구약의 성막처럼,
구약에 예언된 그대로, 하나님이 명하신 그대로.. 온전하게 순종하며
그 예언을 성취하며 사셨습니다.
자신의 탄생, 생애,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자신에 관하여 ‘성경에 쓰여진 대로’ 모든 것을 이루며 사셨던 것입니다.
히10:7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일례를 들자면, 예수님은 아주 가난한 동네와 가정에서 태어나셨고
성장하실 때도, 이사야서에 예언된 대로 ‘아무 흠모할 만한 것이 없이’
자라셨습니다.
사53: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뭐 사람들의 눈에 띌만한 점이 없었습니다.
*우러러 보일만한 점이 전햐 없는 소위 흙수저 이셨습니다.
'그렇게 지어라'고 명하신 대로, 예수님은 자기 신앙의 건축을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무조건 크고 잘 되는 것이, 잘 믿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우리는
사고의 교정을 필요로 합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일부 교회들은, 사람들에게 흠모할 만한 굉장한 교회가 되기 원합니다.
그래서 가급적 큰 건물을 짓고, 화려한 음악과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요,
하나님이 그렇게 지으라고 지시하신 게 아니라,
자기 인간적 생각에서 그렇게 지으려 한다면.. 모래성을 쌓는 격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상 생애 마지막 시간에,
‘내가 하나님이 명하신 일을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7:4, 19:30
바울 역시 마지막 시간에 ‘달려갈 길을 다 마쳤다’고 고백했는데
그건 하나님이 자기에게 정하신 계획을 다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딤후4:7
우리가 각자 다 신앙생활을 해 나가고 있지만
하나님이 명하신 양식대로, 각자의 성막을 지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 역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가, 거기에 내 생각을 보태어
내가 생각하는 대로 신앙의 집을 일평생 건축해 나간다면,
‘하나님의 영광’은
절대로 내 삶에, 또한 우리 사역 위에 머무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모세에게 <법궤>의 양식을 주셨습니다.
법궤는 성막의 가장 안쪽 지성소에 놓여졌습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시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법궤의 양식을 제일 먼저 알려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는 가장 중요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 우리 스스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리시는 결정을, 우리는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중심에는 하나님이 좌정해 계시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혼자 하나님과 함께 있으면서 금식하고 기도하던 40일 동안
그는 성막의 양식을 보았던 것입니다.
출25: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서 잠잠히 기다리지 못합니다.
너무 급하게 자리를 뜹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브사렐과 오홀리압을 부르셔서 성막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기구를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재능을 주셨습니다. 출31:1~3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각자의 집을, 또한 교회를 지을 수 있는
거기에 필요한 특별한 재능을 주실 것입니다.
▲성막 뜰(마당)
성막의 마당은 길이 약 50미터에, 넓이가 약 25미터였습니다.
담장은 흰 세마포(모시 천)으로 막아졌습니다.
이 세마포는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합니다.
그것이 둘러 쳐져 있는 것입니다.
교회 안과 바깥을 구분하는 것은
인간적 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둘러주시는 의’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은’ 사람들입니다. 롬13:14
성도는 그저 흰 세마포 옷입니다. 단순하고 정결합니다.
그런데 계시록에 음녀 바벨론은, 세마포 옷이 아니라,
화려한 자줏빛 옷을 입고 있습니다. 계17:4, 19:8
이것은 성도들과 대조됩니다.
성막에는 출입구가 동쪽에 하나뿐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로 오는 길은 한 길이며
그것은 그리스도를 통하는 길 뿐입니다.
그리스도 말고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요14:6
그래서 아침에 예배하러 성막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해를 등지고 들어가는 셈이 됩니다.
그것은 당시 이집트 등지에 만연해 있던 태양신을 등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다른 우싱을 등지는 것입니다.
▲성소
모든 이스라엘인은 <성막> 마당까지만 들어오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성소>는 제사장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성소에는 분향단, 촛대, 떡상이 있습니다.
<지성소>에는 대제사장만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대속죄일에, 희생의 피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지성소에는 법궤가 있습니다.
그 두껑 위가 ‘시은소(은혜의 장소)’입니다. *베풀 시, 은혜 은, 장소 소
하나님의 영광이 지성소에 나타났습니다.
성소는 길이 14미터, 넓이와 높이가 각 5미터였습니다.
지성소는 5미터 정사각형입니다.
성소의 장막 기둥은, 아카시아(조각목)나무에 금으로 입힌 것입니다.
아카시아 나무는 아주 흔하고 값싼 재질입니다.
여기서 아카시아는 우리 사람을 상징하고
금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같이 비천한 사람들인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된 것을
상징합니다. 벧후1:4
이 성소 텐트의 벽을 이루는 나무판(널판)은 출26:15~29
각각 은받침과 촉꽂이가 있었는데
*촉꽂이 tenon : 홈이 파져있고 돌출되어 있어, 옆 널판과 끼워져 연결됨 출26:17
그래서 모래 땅 위에 연결지어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믿음과 순종을 의미한다고 잭 푸닌은 해석합니다. 주1)
모래 땅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성소(우리 각자)가 버티고 서 있으려면
믿음과 순종의 균형이 필요합니다.
이 나무판들은 옆 판들과 연이어져 있었습니다.
중간에 아무 틈이 없이요.
즉 성도들은, 이렇게 서로 틈이 없이 연이어 연결되어져 있어야 합니다.
각 나무판은 네 고리가 있는데,
그 고리 속으로 봉이 통과했습니다.
그래서 벽 나무판은 더욱 견고히 서 있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몸안에서 성도가 연합해서
서로 친밀한 교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성소 장막 덮개 출26:1~14
성소의 텐트는 4개의 덮개가 있었습니다.
가장 안 쪽 덮개는 세마포로 짠 것으로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합니다. 26:1
그 다음 덮개는 염소 가죽인데,
우리 죄의 속죄 양 scapegoat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레16:8
셋째 덮개는 붉게 염색한 양가죽 덮개입니다.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신 대속물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가장 바깥 덮개는 해달(돌고래)의 가죽입니다. 출26:14
짙은 갈색이었습니다.
광야의 모래 바람을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덮개 안쪽이 가장 보기 좋고, 바깥으로 갈수록 투박했습니다.
크리스천 또는 교회의 아름다움은 내면적인 것입니다.
외형적인 것이 일차적이 아닙니다.
검은색 ‘해달(돌고래) 가죽’은 그리스도의 수욕을 의미합니다.
겉으로 성도와 교회는 오해 받고, 존경받지 못하고, 수욕을 받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정 반대입니다.
겉으로는 아름다운 듯 보이지만, 속으로는 더러움이 가득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계실 때, 흠모할 만한 것이 없으셨습니다. 사53:2
세상에서 멸시를 받으셨고, 배척을 받으셨습니다.
오직 경건함을 원하는 자들만 주님께로 나아왔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보이는 것들에 이끌려 교회에 나오는 자들은, 처음부터 뭐가 잘못된 것입니다.
오직 참된 생명과 그리스도와의 참된 교제를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어야 합니다.
히13:13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히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위 히브리서 구절에서 13장은 ‘영문 camp 밖으로’ 나아가고
10장은 ‘휘장 안으로’ 나아갑니다. 모순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 속한 자들은
내면적으로는 ‘하나님과 교제의 은밀한 베일 안으로 들어가지만’
외적으로는 ‘교회 밖으로,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오늘날 대다수 크리스천들은
교회 안에만 머물러 있고,
베일 바깥에 거합니다. (반대로 합니다)
영문 camp 바깥으로 나가는 것은
세상에 의해 거절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서 오해받고, 마귀의 우두머리로 불렸던 것처럼
그 제자들도 세상에서 그렇게 배척을 당하는 것이 일면 정상입니다. 마10:24
예수님과는 달리
오늘날 일부 크리스천들이 세상에서 유명한 이유는,
그들이 세상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인간관계를 잘 하며, 타협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를 극렬히 대적한 자들은 로마인이나 헬라인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종교적인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미워했는데
왜냐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진리를 타협 없이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리스천을 가장 많이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이러니 하게도 종교적인 크리스천 들입니다.
제3세계에서는 타종교인들입니다.
그들은 ‘종교적’이라는 점에서 공통적입니다.
▲놋 번제단
놋 번제단은 성막 마당에 위치하는데,
그림에서 보듯이 중간이 텅 비어, 그 속에 번제물을 담게 되어 있죠.
이 번제단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그리스도의 예표였습니다.
조각목(아카시아)으로 만들고 놋으로 둘러쌌습니다.
놋은 성경에 언제나 ‘심판’을 상징합니다.
놋 제단에 불이 지펴지면, 위에서 보면,
그 타는 나무는 보이지 않습니다. 다 노랗게 보이죠.
이것은 그리스도의 내적 고난을 상징합니다.
그것은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습니다. 벧전4:1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의 예수님의 외적인 고통을 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내적, 심적 고통에는 주목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셨지만,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리지 않으셨고
항상 사람들을 위해서 우셨습니다.
사도바울도 고린도교인들에게,
자신의 사도권을 설명하기 위해, 당한 여러 외적 고난을 언급했지만,
자신의 처량한 신세를 한탄한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종들은, 외적인 고통 이전에, 내적인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번제단에는 사각 모서리에 한 1개씩 4개의 뿔이 있었습니다.
번제로 드릴 짐승을 도살하기 전에, 잡아매는 고리 였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십자가로 향해 나아가시는 단호함을 상징합니다. 눅9:51
그런 단호함이 우리에게도 보여져야 합니다.:27
매일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는 자들은, 그런 단호함이 있어야 합니다. 시
▲놋 물두멍
마당의 물두멍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는’ 것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우리는 말씀으로 씻어지는 것입니다.
엡5: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이것은 물세례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물로 먼저 씻으십니다.
그 다음에 불로 우리를 태워서 정결케 하십니다.
금도 제련할 때, 물과 불에 넣어서 정금을 만듭니다. *신31:21~23
우리가 구약을 읽고 순종하면
우리 삶은 외적인 죄로부터 정결케 됩니다.
이것은 율법(말씀)이 우리를 물로 (외적으로) 씻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외적인 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내면 깊숙한 죄까지 다루십니다.
여자를 보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기만 해도 죄짓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마5:27
이 내면적인 죄는, 성령의 불로 정결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령이 우리를 인도하시도록 허락한다면
성령은 우리의 내면적 음심을 정죄해서 무겁게 느끼도록 만드실 것입니다.
아예 이웃집 여인이 요리 잘 하는 것까지도
내가 탐내고 동경하는 것을 지적하시고
‘탐내지 말라’고 경고등을 켜실 것입니다.
간음은 성적인 영역만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것, 다른 우상을 좇는 것도 영적으로 다 간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제물된 우리를 씻되
물과 성령으로
외적인 죄와 내면적인 죄를
동시에 다 씻고,
그 다음에 온전하게 성소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물로 씻음, 즉 말씀>으로 씻는 것은, 외적으로만 씻는 것입니다.
신약성도인 우리들은 <성령의 불>로, 내면적인 마음의 죄까지
정결하게 씻어야 합니다.
▲금으로 된 떡상
성소 안에는 떡 12덩이가 상에 놓여져 있었는데, 12지파를 의미합니다.
이 떡은 오직 제사장들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12지파를 대신해서, 대표로 그 떡을 먹었습니다.
이것은 도한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 되시고,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먹고 살아야 할 양식이 됨을 의미합니다. 마4:4
구약에는 떡이 12덩이가 있었고, 즉 12지파를 상징하지만
신약에서 떡은 오직 한 덩이, 한 몸만 있습니다.
성찬에서 떡은 하나였습니다. 우리가 한 몸임을 상징합니다.
세상에 많은 족속과 나라가 있지만, 신약의 성도들은 다 한 몸 one body 입니다.
우리는 모두 그 떡에 참예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구약처럼 족장이나 대표를 통해서가 아니라
신약은 그리스도와 직접 연결되고,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금 촛대
성소의 금촛대는 우리 각자의 또는 지역 교회의 증거 testimony 를 상징합니다.
제사장들은 이 촛대의 불이 꺼지지 않고 항상 타오르게 해야 했습니다.
그 의미는, 신자/교회의 증거 testimony가 (말과 행위의 증거를 뜻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증거)
항상 꺼지지 말고, 보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이 촛대가 하나였습니다. 거기엔 일곱 가지 branch 가 있었죠.
구약의 교회는, 여러 가지가 있는 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계시록에 보면
거기 일곱 교회 각자가 한 촛대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신약 교회는 각자 독립적이지만
동시에 연합체인 점을 가르쳐줍니다.
구약은 독립성이 없는 한 교회였죠.
그러나 오늘날 일부 교회는 구약의 패턴을 따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각자의 독립성보다 전체성을 강조할 때는, 그렇게 됩니다.
그건 구약적 교회의 패턴이 아닐까요?
촛대 속에 있는 각 등불은 (보통 한 촛대에 7개의 등불이 있죠)
지역교회의 각 성도를 뜻한다고 봅니다.
그 성도 각자는 밝게 빛나야 하는 것입니다.
각 성도가 범죄하는 일이 발생하면, 빨리 다루어지고 교정 받아서
촛대의 등불이 꺼지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등불은 항상 타올라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그 지역교회 안에 머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양식들을 하나 둘씩 무시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머무시지 못하는 것입니다.
▲금으로 된 향단 (향을 불살라 태우는 곳)
성소 안의 향단은 성도의 기도를 뜻합니다. 계5:8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기도가 우리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로 늘 올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출30:8, 눅18:1
우리의 진실된 기도는, 하나님 앞으로 향기로운 냄새로 올라갈 것입니다.
출30:37에 보면 ‘네가 여호와를 위하여 만들 향은 거룩한 것이니
너희를 위하여는 그 방법대로 만들지 말라’
모세는 이 향단에 태울 향을
특정한 양만 특별하게 만들도록 지시받았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1)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공로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이름으로 (즉, 예수님을 통하여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이름으로 기도’는 무슨 마법의 주문이 아니며,
그것을 말할 때, 항상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예수님의 공로로
기도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만약 자기가 의인이고, 자기가 잘나서 기도응답을 쉽게 받으리라고
예상하며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뭔가 오해한 것입니다.
기도는 오직 예수님의 공로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런 신자들의 기도만 응답될 것입니다.
2) ‘예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뜻은
즉 향단의 향은 아무렇게나 만들어지지 않고, 특별하게만 제조되었는데
우리가 아무렇게 기도해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기도해야 한다는 뜻도 됩니다. 기도도 특별해야 합니다.
이 말의 뜻은,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기도에 보면
무조건 자기 소원부터 아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먼저 구하는 기도를 드리셨다는 것입니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가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우리도 이렇게 먼저
하나님의 듯이 이루어지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드리는 기도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기 사익, 자기 야망 추구보다는요!
왜냐면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하셨으니,
우리의 기도 역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의인의 기도가 역사하는 힘이 많다고’ 했습니다. 약5:16
여기서 의인이란, 항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고,
하나님의 영광을 기도로 구하는 자가 아닐까요? (P2 에서 계속)
..............................
주1) 성소의 벽 널판
벽인 널판은 조각목으로 만들구요.
금으로 쌉니다.
성막 안에 있는 기구들이랑
마찬가지네요~
겉보기에는 성막 덮개로 덮여 있어서
그 빛나는 금이 안 보이겠지만
덮개를 벗기고 나면
온통 빛나는 금이네요~
우리가 가게 될 천국도
얼마나 빛나고 아름다울지
상상이 안갑니다^^
높이가 10규빗인데요
약 5m나 됩니다.
위의 그림 보시면
제사장과의 크기 비교가 나오네요~
약 3층 건물 높이쯤 되지 않나 싶어요
그림에서 휘장으로 된 문이 있는 쪽이
동쪽입니다.
그래서 이 성소의 벽인 널판은
남쪽과 북쪽과 서쪽만 세워지고
동쪽은 비는 것이죠~
남쪽 20개
북쪽 20개
서쪽 8개로
총48개의 널판으로 구성됩니다.
널판을 연결하는 띠가
5개씩 있는데
이 띠도 조각목 으로 만들고 금으로 쌉니다.
밑에는 은으로 된 받침이 있습니다.
이렇게 벽을 세우면 건물이 세워지겠죠~
이동식 건물이지만요~
지성소는 약 6-7평 정도 되고
성소는 약 12-15평 정도 됩니다.
합치면 18-20평 정도 되네요
하나님의 집의 크기가 이정도입니다.
이땅에서 하나님께서는
18-20평 정도의 집에서 살기로 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짓기로 결심하고
솔로몬이 그 성전을 지었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규격인지는
성경에 나와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모세의 성막은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하나하나 규격을 지정해주신 것이죠.
지금 우리에게 적용되는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면요~
널판과 띠는
조각목으로 만들고
금으로 싸는데요.
이것은 죄인인 사람이
다듬어지고
빛나는 예수님에게
연결되어
연단 속에서
빛나는 믿음을 가지게 된
공동체인 교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또 널판 밑에는 은받침이 있는데
한 널판을 지탱하는
은받침 두개의 무게가
80kg가 된다고 합니다.
널판이 넘어지지 않게
하려고 은받침이 있는데요
성막이 이동할 때에
은받침 나르는 사람들은
허리가 끊어지겠네요 ㅠㅠ
이 은받침은
변함없는 믿음을 상징합니다.
항상 믿음 위에 서서
흔들리지 말아야 하는 것이죠.
우리 개인도
교회도요.
이제 성막 건물을 다 세웠네요
다들 든든히 서 계신가요?
이제는 성막의 문을 달아야겠네요~
다음 포스팅은
출애굽기 26장의
마지막인 성막의 문!! '휘장'에 대해
알아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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