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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지도자 10. 영적 권위를 가집니다

LNCK 2017. 9. 14. 19:18

◈영적지도자 10. 영적 권위를 가집니다        마28:18, 요15:26      출처, 정리   

A Spiritual Leader.. Exercising Spiritual Authority    잭 푸닌 

 

◑지도자가 마땅히 가져야할 영적 권위

 

▲영적인 지도자는,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사역할 줄 압니다.

그의 사역에는, 영적인 권위가 늘 뒤따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예수님의 설교에는,

과거에 오래 동안 들어왔던 바리새인들의 설교와 다른 뭔가가 있음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많은 성경적 지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밤낮으로 성경을 읽고 암송하던 사람들이었으니, 성경 지식은 정말 탁월했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그들보다 더한 성경 지식을 갖고 계셨지만,

그러나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놀란 것은, 그 분의 탁월한 성경지식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의 설교에 뒤따르는, <영적 권위> 때문이었습니다.

 

만약 오늘날의 우리 역시, 지식만 가득하고, 성령의 영적 권위가 없다면,

우리도 바리새인과 똑같아 집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가르치실 때는.. 하나님이 그 뒤를 받쳐 주셨습니다.

즉 언제나 성령의 권위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그 하나님의 뒷받침

다시 말하면 ‘영적 권위’가 뒤따르는, 그런 영적 지도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도,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오시는 진리의 영

이 오시면, 그 영이 나를 위하여 증언하실 것이다.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요15:26~27

 

위 구절을 천천히 다시 읽어보십시오.

장차 성령이 나를, 즉 예수님을 위해 증언하실 터인데,

너희가 설교하고 전도할 때.. 성령님이 그때 함께 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영어로 ‘백업’이라고 하는데, 뒷받침해 주시고, 군대용어로 뒤에서 엄호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저 푸닌도, 이 구절을 늘 암송하며 기도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하고 가르칠 때, 늘 성령의 영적 권위가 뒤따르기를 바랍니다.

 

제가 예수님에 대해 설교하고 가르칠 때,

성령님께서 듣는 청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저 설교를 귀담아 들어라. 저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다.’

 

또한 저 역시, 성령님이 저와 함께 하실 때, 힘을 내어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이때 영적 권위가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한 성경적 지식을 가르치기는 하지만,

만약 성령님께서 제 가르침에 뒷받침 해 주지 않으시면,

 

성경지식과 신학이 올바르므로, 제가 이단이란 소리를 듣지는 않겠지만,

그러나 제 사역은 생명이 전혀 없는, 영적으로 죽은 설교, 죽은 가르침을 주게 됩니다.

 

 

◑지도자가 빠지기 쉬운 여러 다른 권위.

 

▲‘영적 권위의 위기’ 시대

권위에는 영적인 권위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권위가 있습니다.

자기 직책에서 오는 권위, 돈으로 행사하는 권위, 나이가 많다는 권위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자칫 잘못하면

마땅히 가져야할 영적인 권위를 갖지 못하고,

 

자기 직책에서 오는 권위, 교회 질서에서 오는 권위를 행사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21세기 사회는 ‘탈권위 시대’를 넘어서 ‘무권위 시대’입니다.

‘권위에서 벗어나자는 탈권위’가 아니라,

‘아예 권위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무권위 시대’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에, 종교지도자들이

영적인 권위 말고, 종교적 직책의 권위, 물질의 권위로 사람들을 다스리려고 할 때,

그것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예수님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영적인 권위’만 행사했지, 다른 어떤 권위

즉 ‘종교적 위계질서의 권위’ 또는 ‘인간적 권위’를 일절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시 이스라엘의 왕처럼, 어떤 정치적 권위를 휘두르지 않으셨고,

당시 예루살렘의 종교지도자들처럼, 어떤 종교적 권위도 행사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 점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오늘날 조직이 대형화되면서, <질서 유지>라는 명목으로

자꾸 ‘조직의 직제상 권위’를 행사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 모든 세상 권위들은,

<영적 권위>가 세워질 때, 자연히 따라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세워져야 할 <영적 권위>가 세워져 있지 않은 가운데,

종교 직제상 권위를 만약 행사하려 한다면..

교회가 무슨 ‘회사’가 되는 거고, 교회가 무슨 ‘기관’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교회’라는 정체성을 스스로 잃어버리는 꼴이 되고 맙니다.

 

 

▲‘유명세’라는 권위

오늘날 메스미디어의 발달로 인해, 유명 인사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유명 인사들은 연예인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유명 연예인들의 공연이나, 길에서 얼굴이라도 한 번 보기 위해,

몇 시간을 땡볕에서 기다리기도 하고, 심지어 야외에서 비를 맞는 것도 감수합니다.

 

그래서 일부 유명 연예인들은, 자기 유명세를 더욱 높이는 길을 모색하게 되고,

또한 거기서 오는 막대한 부를 얻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과 감정을 사로잡는 방법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 종교지도자들이, 유명세뿐인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이 알려져서 유명하기는 한데, 그 속에 ‘영적 권위’가 없는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연예인이 아닙니다.

유명세로 먹고 살려고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유명한 자 같으나 무명한 자로,

‘영적 권위’를 우선적으로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말씀 연구와, 기도와, 평소 자기 삶의 경건에서 나옵니다.

 

물론 자기가 원하지 않아도, 대중들이 누구를 유명인사로 만들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유명세’로 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 권위’로 일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영적 권위는 거의 없이, 자기 유명세로 일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분은 스로 락한 길로 가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박수치고 환호할지는 모르지만,

주님 보시기에 ‘영적 지도자’는 아니고, 오히려 ‘타락한 거짓 선지자’가 되는 셈입니다.

      (비방이 아니라, 그럴 수 있으니 장래에 조심하자는 것입니다.)

그 마귀의 간교한 궤계를 스스로 분변해 내고, 거기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돈의 권위’

수많은 지도자들이, 돈의 힘으로 사람들을 조정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이것은 그만큼 방법도 쉽고, 이런 유혹은 사방에 늘려 있습니다.

돈을 조금 주기만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그 지도자를 상전처럼 떠받듭니다.

 

전쟁이 없는 세상은, 총칼로 사람들을 휘어잡는 것이 아니라,

돈의 힘으로, 사람들을 휘어잡습니다.

 

세상에서 돈의 힘이 행사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만약 교회에서조차도, 돈의 힘이 행사된다면..

거기에는 ‘영적 권위’가 절대로 생길 수가 없습니다.

성령과 맘몬이 어떻게 같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돈의 힘’으로 많은 선한 사업을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돈의 힘’을, 자기 권위로 휘두르려 하다가는,

기독교 지도자는, 반드시 파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주님께 버림 받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성령의 영적 권위’ 말고는,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물질의 권위’를 가지려 하는 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한 때 신령했던 지도자도, 자기 사역이 커지면서, 물질이 많이 들어올 때,

자기도 모르게 점점 ‘영적 권위’를 잃어버리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권위’를 사모하고, 그것을 가지려는 사람은,

스스로 청빈하게 사는 훈련을.. 자기 라이프스타일로 일평생 가져야 합니다.

 

‘영적 권위’와 ‘돈의 권위’는, 한꺼번에 둘 다 가질 수 없습니다.

반드시 하나를 포기하고, 다른 하나를 갖게 됩니다.

나는 둘 중에 무엇을 가져야 할까요?

 

▲꼭 큰 단체가 아니더라도, 작은 단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단체는, 예산이 많지 않지만, 잘 유지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지도자에게 ‘영적 권위’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영적 권위를 존경함으로, 그를 따릅니다.

돈으로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한계가 있고, 오래가지도 못 합니다.

 

그러므로 작은 단체도, 지도자들은, 돈이 없다고 한탄만 하지 말고,

자기 개인적 경건 생활과, 자기 경건한 말과 행동과 가르침을 통해서,

진정한 권위, 즉 영적인 권위를 가져야 합니다.

 

지금 내가 잘 안 되고 있다면, 그것은 사실 ‘영적 권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원인 파악을 제대로 못 하고,

‘내게 돈이 없어서, 내 교회가 작아서..’ 그런 핑계를 대면, 안되겠습니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에서 부장님은, 돈으로.. 부하직원들을 부리려 합니다.

가정에서 아버지, 할아버지도, 돈으로.. 아들이나 손자를.. 말을 잘 듣게 하려고 합니다.

 

그게 다 잘못된 권위입니다.

 

진정한 지도자는, 즉 부장님 또는 아버지, 또는 시아버지는

말씀과 기도와 경건생활로, 스스로 영적 권위를 가집니다.

 

(물론 그 영적 권위가, 돈이 없다고, 무시를 당할 때도 간혹 있지만)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부하직원으로부터 존경 받고, 아들과 며느리로부터 존경 받는 것은,

물질의 권위가 아니라, 영적인 권위입니다.

 

오늘날 많은 부모들이

‘내가 자녀에게 물질을 많이 물려주지 못해서, 아들, 며느리가 자기를 무시한다’고

탄식하는데, 그건 오해입니다.

 

왜 늙은 부모들이 무시 받습니까?

돈이 있어도, 돈을 많이 주어도, 자녀들은 서로 싸우고, 부모를 무시합니다.

그건 부모가 ‘영적인 권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영적 권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고,

평생 ‘돈의 권위’로, 자녀를 다스리려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평안한 노후를 위해서라도, 또한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라도,

부모는, 돈의 권위가 아니라, 영적인 권위를 가질 줄 알고, 행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 가정은, 물질의 유무에 관계없이

자녀들이 부모를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 권위에 복종하고, 부모를 따릅니다.

 

     사춘기 자녀가 말을 듣지 않는 것도, 결국은 부모의 영적 권위의 부족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가정이 많은 것은, 그만한 영적 권위를 갖기가, 대단히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돈으로 사람을 다스리거나, 컨트롤 하신 적이 없으십니다.

또한 제자들도, 아무도 돈을 얻을 목적으로, 예수님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줄 돈이 없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퇴직 연금도 약속하지 않으셨고,

약속하신 것이 만약 있다면, 그것은 장차 닥칠 큰 환란과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 필요는 모두 하나님이 채워 주실 것이다’

라고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하러 보내실 때도, 돈을 쥐어주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돈의 힘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가 없었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주신 것은 ‘영적 권위’였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위 Authority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마28:18

 

그런데 그 제자들은, 오늘날 우리들보다 훨씬 더 사역의 열매를 많이 거두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그들보다 훨씬 더 돈이 많은데,

반대로 그들보다, 우리는, 영적권위가 훨씬 더 약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의 힘은, 오늘날 기독교 사역의 큰 위협요인이 되고 있습니다.

물질이 많다는 사람, 물질이 턱없이 모자란다는 사람.. 둘 다 공통적으로 다 위험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사역에 있어서, 그는 ‘영적 권위’를 구하지 않고,

‘물질적 권위’를 먼저 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물질적 권위’로 자족해 하거나, 반대로 없다고 불안해하는 동안에,

‘영적인 권위’는, 결코 그에게 주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영적인 권위’도 구하지 않습니다.

늘 자기 눈에 ‘물질적 권위’만 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