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uHUIOp88uwA&feature=youtu.be
◈영적지도자 12. 사람들을 두려움에서 해방시킴 롬8:5 영어보기
A Spiritual Leader 12. Freeing Others From Fear
영적 지도자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는 수단으로
결코 두려움을 이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그는 두려움에서 사람들을 구하려고 애씁니다.
두려움은 사탄의 병기고에서만 발견되는 무기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을 두려움에서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모든 영적 지도자는 예수님과 똑같은 일을 합니다.
히브리서2:14에서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 하신 이유로
"그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즉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하여 떠는 사람들을
구해 주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8:5절은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여기서 바울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 spirit of slavery’과
‘양자의 영 spirit of adoption’이신 성령님을 대조합니다.
▲모든 타종교의 일반적 속성, 공통된 속성은, 심지어는 점집과 무당에 이르기까지
"두려움을 조성해서" 신도들의 헌신을 이끌어 냅니다.
두려움은 항상 노예와 속박을 가져옵니다.
전 세계 사람들이 두려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왜 우상을 섬기고, 점을 치고, 귀신 앞에 가서 빕니까?
가장 큰 첫 번째 원인은, 사는 게 두려워서 그렇습니다.
혹시나 재앙을 당하지 않을까? .. 혹시나 망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즉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았기 때문에, 더 귀신에 빠져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신자들 또한 어느 정도 두려움 속에 떨며 살 수 있습니다.
그 믿음이 굳건히 서 있지 못할 때, 역시 어느 정도 두려워 떨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을 충분히 두려워 떨게 한다면,
당신은 그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이단 및 거짓종교가 무기로 삼는 원리입니다.
자기 단체나 종교를 떠나면
가족이나 사업에 큰 재앙이 닥칠 것이라고 은근히, 교묘히 사람들을 세뇌시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그걸 반복해서 들으면, 순순히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그 집단이 잘못되었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두려움 때문에 계속 거기에 머무를 것입니다.
그런 두려움은 그들을 노예로 삼습니다.
▲기독교는 일반종교와 차별되는 참 구원의 종교이지만,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천성적으로 가지는 종교성과 공유되는 점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지도자들도, 마치 타종교가 그렇게 하듯이
두려움을 무기로 삼아서 신자들의 어떤 헌신을 이끌어 낼 수 있는데,
예를 들어서, 타종교처럼 교주를 ‘묻지마 숭배’식으로 이끌고 간다든지
교회에 헌물을 정확히 바치지 않으면, 의사와 병원비로 그 돈을 쓰게 된다는 식으로
어떤 두려움을 주입해서, 신자들을 이끌고 가려는 것은
사탄의 방식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면, 예수님은 그런 두려움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는 분이지,
사람들을 그런 건강하지 못한 두려움에 얽어매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일을 지켜야 하고, 헌금을 자원해서 드려야 하고,
사역자들을 마땅히 존경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식으로
두려움을 주입하는 것은, 성경적 방식이 아니라,
이단 종교적 방식임을 우리는 명심하고, 차별화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옛 언약 아래의 사람들은 두려움에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신명기 28 장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으면
빈곤, 질병 및 다른 악으로 처벌받게 된다는 경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으로 하나님께 순종 했습니까?
말라기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십일조를 바치지 않았다면
저주받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말 3:10) 하지만 그것은 법 아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러한 율법적인 순종으로부터 우리를 구해 주러 오셨습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인 사가랴는 새 언약 시대에 관해 예언했고,
우리는 참된 경외심에서 "두려움없이 하나님을 섬길 수있다"고 말했습니다. 눅1:74
※물론 교회와 목회자는 '선지자적인 지적 또는 경고'의 음성을 발해야 합니다.
'그 길로 가면 사망의 길입니다. 그렇게 살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선순위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기독교, 새언약, 복음은.. 무슨 계명이나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계명이나 율법을 모조리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냐? 그건 아니죠.
그건 율법폐기론, 또는 도덕률폐기론이며, 올바른 성경적 개념이 아닙니다.
우선순위로, 신약 복음은 "하나님과의 관계, 친밀함,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를 강조합니다.
그래서 사랑하므로,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14;15
그런데 신약복음과 새언약에 이르지 못하면
우선순위가 '계명이나 율법을 지켜야 하고, 어기면 엄한 벌을 받는다'
이렇게 종교가 사람을 억압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사랑의 관계'에서 성경의 계명을 자원해서 기쁘게 지킨다.
-'벌과 저주와 형벌을 받으면 안 되니까, 억지로라도 계명을 지켜야 한다'
이 둘의 차이를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기독교의 복음도, 타종교와 마찬가지로,
신자들에게 두려움을 조장해서, 성도들을 윽박질러 신앙심을 조장하게 됩니다.
▲당신 인생에서 공포에 의해 행하는 것이 있습니까?
예를 들면, 당신이 매일 아침 성경을 읽는데,
만약 읽지 않는다면 어떤 재앙이 당신에게 미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에 읽습니까?
그것은 단순하고 단순한 미신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당신이 그런 미신적인 방식으로 성경을 읽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당신에 대한 그의 강렬한 사랑을 알고
당신이 모든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를 의롭게 하신 이유는
사탄에 의해 결코 비난받을 수 없게 하기 위함 때문입니다.
1) 두려움이나 (그렇게 하면 너는 재앙을 받는다)
2) 정죄감을 주어서(그렇게 하면 너는 악한 죄인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어떤 사역도
결코 하나님에게서 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방식, 새언약의 방식은
신자들로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그의 계명을 지키며, 그분과 친밀히 교제하는 가운데서 신앙생활하는 것입니다.
어떤 억지, 강제, 두려움, 정죄감이 .. 그 동기가 되어선 결코 안 됩니다.
주님은 사람들을 자유케 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종교로 인해, 더 많은 속박에 빠지게하지 마십시오.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미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 와서, 정죄감이나 속박의 문제를 해결받고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구약 율법적인 교회가 되면
(모든 종교에는, 그런 속성이 있죠)
즉 신약의 새언약적 교회가 되지 못하면,
교회에 와서 꾸짖음을 듣고, 정죄를 당하고, 눌려서 집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주님은, 그의 백성들이 기쁨의 소리를 발하는 것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합니다.
교회 모임에서 주님을 찬양하는 모든 목적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높이고
그분이 우리를 기쁘시게 하고, 우리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우리가 선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우리 안에 선한 것이 없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회개 한 지금, 그는 얼마나 더 우리를 사랑할 것입니까?
▲그러나 사탄은 자기 자녀(불신자)들보다 하나님의 자녀들 가운데
더 많은 비난을 하게 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구약/율법적 교회에서 말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 가운데 있어야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 정죄와 합당치 않음의 느낌으로 살게 됩니다.
이것은 겸손이 아니라 불신입니다!
많은 신자들은 성령으로 충만하다고 주장하지만
여전히 두려워하는 노예입니다.
어떤 사람이 어떻게 성령으로 충만하며
여전히 두려워하는 노예가 될 수 있습니까?
어떤 거짓 선지자가 따라 와서 그들에게 어떤 재앙이 올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즉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회중에게 이 진리를 가르치고 과감하게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종류의 두려움이 있다면
결코 사탄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감이나 담대함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우리는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두려움은 악마의 무기입니다.
그의 사역에서 "두려움"을 사용하는 사람은 누구나 사탄과 교제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지옥에 관해 경고 하셨지만
무서운 이야기와 그 곳의 끔찍한 내용들로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위협적인 결과를 거론하며, 그를 위협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주인들에게
그들의 종들을 결코 위협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엡6:9
공포가 악마의 무기라면,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것을 사용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그들의 양 무리를 통제하기 위해
두려움을 사용하는 수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서 그러한 두려움을 몰아 낼 수있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우리는 다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요한 질문은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입니까, 신앙입니까?
우리가 두려움의 무기를 사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시도하지는 않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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