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17

겸손 7장. 겸손과 거룩 / 앤드류 머레이

LNCK 2017. 11. 16. 16:13

◈겸손 7. 겸손과 거룩

 

너는 네 자리에 서 있고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라65:5

 


거룩과 겸손은 같이 갑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일어나는 성결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이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또한 거룩을 추구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이에 관한 가르침과 집회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복된 진리인 거룩과

믿음으로 말미암은 거룩이

그 어느 때보다 강조되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거나 도달하고자 하는 거룩이

진리이며 생명인지를 확인하는 가장 큰 시험대는

우리가 더 많은 겸손을 나타내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겸손은,

하나님의 <거룩>이 사람 안에 머물고

그를 통해 빛을 발하도록 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분이신데,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승귀(승천으로 높아지심)의 비밀은

예수님 안에 있었던 겸손입니다.

 

신자도, 예수님도

만약 겸손이 결여되어 있다면

거룩도, 사명도.. 감당하지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거룩함을 시험하는 한 가지 확실한 방법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

우리 인격의 특징으로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거룩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입니다.

거룩도, 내적 겸손을 통해 이루어지는 외적 표지입니다.

 

거짓된 거룩, 외식적 거룩의 표지는,

겸손의 부족입니다.

 

그러므로 거룩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신으로 마치게 되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서 교만이 스며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두 사람이 성전에 기도하러 갔습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이었고 다른 사람은 세리였습니다.

성전은 지극히 거룩한 곳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은 그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서

자기 교만으로, 하나님의 성전에서 고개를 들고 턱을 내밀었으며,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자기 자신을 높이는 현장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리새인의 교만을 드러내셨고,

이후에 바리새인은 세리의 옷을 걸치게 되었습니다.

세리가 당하는 모욕과 수치를, 주님 앞에서 그가 당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때는,

내 속에 이런 두 모습이 둘 다 교차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씀합니다. 고전3:16, 6:19

우리 마음속 성전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예배하러 올라옵니다.

 

가장 고귀한 거룩을 고백하는 사람들과 같은 모습이 나타났다가

깊은 죄성을 고백하는 사람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두 가지 모습을 다 경계해야 하는데요.

 

내가 <세리처럼 낮아질 때>도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 옆에 서서 자신을 경멸하는 바리새인이 물론 아니라

스스로를 칭찬하고 높이려는

자신 안에 존재하는 동일한 바리새인적인 요소가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올 때

자신이 누구보다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

우리는 틈타는 교만을 경계해야 합니다.

 

 

거룩 속의 교만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탄도 그들 가운데에 온지라1:6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는 사탄도 서 있습니다.

가장 거룩한 공간인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도

사탄이 틈 탈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배하면서, 감사하면서도.. 우리는 교만할 수 있습니다.

우리 속에 바리새인과 같은 자세를 가질 때도 있는데요,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18:11

 

감사의 조건이 되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감사 속에서도,

하나님이 모든 일을 행하셨다는 고백 속에서도

옛 자아는 자기만족의 교만을 발견합니다.

 

신자는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하는 가운데

자신을 높일 수 있습니다.

교만은 찬양’, 혹은 기도라는 옷을 덧입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비록 겉으로는 바리새인처럼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는 말을

똑같이 하지는 않더라도


우리의 교만한 태도는

함께 예배하는 사람들이나 이웃을 향한

표정이나 말에서 종종 드러납니다.


실제로 그런지 알고 싶다면

신자들이 서로에 대해 자주 말하는 방식이 어떤가를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됩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온유함과 겸손이 얼마나 부족한지 모릅니다.

깊은 겸손이야말로 예수님의 종들의 대화에서

중심 주제가 되어야 함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러 교회와 성도들의 모임에서,

여러 선교회와 대표자 모임에서,

여러 협회와 위원회,

심지어는 해외선교지에서

연합이 얼마나 방해받고 있고,

하나님의 역사가 얼마나 훼방을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는 성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까다로움과 경솔함과 성급함과 자기방어와 자기주장과

날카로운 판단과 친절하지 못한 말로써

다른 사람들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지 않고 있으며


그들의 외형적 거룩 속에

내적인 성도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영적으로 성장하는 과정 가운데

자신을 크게 낮추고 깨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만

그 후로도 계속해서 성숙해져야 합니다.

 

겸손으로 옷 입고, 겸손의 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마음을 낮추는 것을, 몸에 배이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의 종으로 여기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었던 바로 그 겸손의 정신을

나타내며 사는 모습으로 계속 자라가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나는 당신보다 거룩하니, 당신은 내 옆으로 물러나시오

하게 되는데요,

 

우리는 실제로 그런 말을 하지는 않지만

그런 마음과 태도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보다 거룩하니, 당신은 내 옆으로 물러나시오!”

 

거룩한 분 예수님은 가장 겸손한 분이십니다.

가장 거룩하신 분이 가장 겸손한 분으로 늘 계실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The holiest is the humblest

가장 거룩한 사람은 가장 겸손한 사람이고

가장 겸손한 사람은 가장 거룩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거룩하신 분이 없으며

우리가 하나님을 소유하는 만큼만 우리는 거룩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소유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교제, 동행, 임재로 나아감을 통해

내가 주 안에, 주님이 내 안에 계실 때를 뜻합니다.

 

그때 내 성품은, 하나님의 성품을 공유하게 되고

그때 하나님의 성품이, 내 성품을 통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소유하는 만큼만,

나는 거룩해지고 또한 겸손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모습에서, 내 자아의 모습은 다 사라지고

하나님의 성품이 더 많이 드러나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거룩한 자는 가장 겸손한 자입니다.

거룩을 다른데서 찾으려 하지 마십시오.

 

스스로 거룩을 주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교만한 사람이 많은 것은,

사실은 자기가 바리새적인 거룩을 추구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오늘날에는, 뻔뻔스럽게 자신을 자랑하던

이사야 시대의 유대인 같은 사람들을 발견할 일이 별로 없고

우리도 그런 식으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동료 신자들이나 세상 사람들을 대하는 방식에서

그런 교만한 태도가 얼마나 자주 비슷하게 나타나는지 모릅니다.

 

자신의 의견을 나누거나, 일을 진행하거나,

잘못을 표현하는 방식 속에서

우리는 세리의 옷을 입고 있으나

목소리는 여전히 나는 다른 사람들과 같이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말하는 바리새인과 같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자인 나에게3:8

모든 사람들의 종으로 자신을 여길 만큼의 겸손을

내 모습속에서 찾을 수 있습니까?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고전13:4~5

 

이런 사랑의 정신이 마음에서 밖으로 빛을 비추고,

하나님의 성품이 완전하게 태어나고,

하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진정으로 거하시고 내주하실 때,

 

그래서 하나님의 성품이 완전하게 나타날 때

완전한 사랑의 능력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겸손 가운데서요!

 

그때 우리는 아무리 자신이 연약해도 스스로를 잊은 채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그들과 함께 견디고,

그들을 존귀하게 세우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이 임하십니다.

하나님이 능력으로 임하시고 전부가 되시어

자신을 계시하시는 곳에서

인간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됩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자로 서는 곳에서는

동료 인간을 향해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어떤 특별한 때와 장소에 따라 임하시는 게 아니라

이런 겸손한 영혼들 위로 덮으십니다.

그래서 함께 거하심으로 임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깊이 낮추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위한 성소가 되는 것이며,

우리의 모든 말과 사역이 그곳에서부터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말과 느낌이

우리가 가진 겸손의 시험대이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것이

이웃에게 항상 겸손할 수 있는 우리의 근거입니다.

 

우리의 겸손은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의 생명에 닿아있기 때문입니다.


강단이나 토론장에서 거룩을 가르치는 모든 사람들과,

골방이나 집회에서 거룩을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만만큼 위험한 것이 없습니다.

 

그 이유는 거룩 속의 교만처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아주 미묘하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보다 거룩하니, 당신은 옆으로 물러나시오라는 말을

항상 하거나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실제로 이런 생각은 혐오스럽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무의식중에 은밀히 자라나면서

자신이 성취한 것에 만족을 느끼고

자신이 남들보다 어느 정도 뛰어난지를 보게 됩니다.


이런 특별한 자기 교만이나 자기자랑이

항상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영혼의 표지인

깊이 있는 자기 낮춤이 없을 때는

금방 드러납니다. 42:5-6, 6:5


거룩 속의 교만

말이나 생각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나 어조에서 드러나는데

영적 분별의 은사를 가진 사람들은

여기에서 옛 자아의 권세를 인식하곤 합니다.

 

심지어 세상조차도 예리한 시각으로

그의 자아가 살아있음을 알아차립니다.

 

그들이 말로는 종종 천국을 거론한다 하더라도

실제 삶에서 천국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증거는

자기 자아가 살아있어서,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의해야 합니다.

거룩으로 더욱 나아갈수록

겸손이 더 더해지지 않으면

거룩 속에 교만하게 되는데,

즉 이는 바리새적인 교만으로 추락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지 않으면, 교만하지도 않을 터인데

스스로 자기가 거룩하다고 여기는 가운데서

겸손을 잃어버리고, 자기도 모르게 교만에 빠져서

더 깊은 골짜기로 추락해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주님을 더 열심히 믿고 섬기는 가운데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아름다운 생각과 느낌,

또한 성결과 믿음에서 나온 엄숙한 행동은

우리가 얼마든지 즐거워하지만

 

그러나 (호사다마처럼)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표지인

자기 자아의 죽음

더욱 부족해 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좋은 일들 때문에

더 교만해질 수 있고,

더 안 좋게 될 수 있다니까요!

 

우리 모두 예수님께로 달려가서

겸손으로 옷 입을 때까지

그분 안에 늘 우리 자신을 숨깁시다.

그것만이 우리의 안전한 거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