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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 8장. 겸손과 죄 / 앤드류 머레이

LNCK 2017. 11. 17. 15:06

겸손 8. 겸손과 죄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서론

 

겸손은, 깊은 참회와 통회를 거친 사람이 갖게 되는 것으로 종종 간주됩니다.

그렇다면, 신자이 죄를 짓는 것 외에는

겸손케 되는 방법이 없는 것같이 보입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사람이 겸손케 되기도 하지만,

그러나 겸손은 그 차원 이상입니다.

 

또한 예수님과 서신서의 가르침에서도

죄와 관련 없이도 자주 겸손이 강조되었습니다.

즉 피조물과 창조주의 관계 속에서,

우리의 본질을 생각할 때, 겸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기에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 속에서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고, 몸소 보여주신 겸손을 생각하면,

죄를 지어서, 그 후에 얻게 된 겸손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겸손을 배울 수 있는데요.

그 겸손은 우리 거룩의 밑바탕이며, 또한 우리가 받는 복입니다.

 

겸손은 우리가,

하나님을 왕의 자리에 앉혀드리고 높여드릴 때

나타나게 되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모든 것이 되시고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게 됩니다.

이렇게 겸손은,

원래 인간이 가져야 하는

본래의 모습이요,

창조와 거듭남이 원형의 모습이.. 바로 겸손이요,

 

그 은총을 입은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인 것입니다.

그는 영생을 받았고, 영생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본론 : 사죄의 은혜를 받은 자의 겸손

 

그렇지만 <인간의 죄와 하나님의 용서의 은혜>

성도의 겸손

얼마나 새로운 깊이와 강렬함을 주는지를,

지금 좀 더 깊은 차원에서 생각해 봅니다.

 

*지금 제8장의 제목이 겸손과 죄입니다.

 

속죄함을 받아 거룩하고 겸손케 된 사람에게서

자기는 죄인이라는 깊은 인식

얼마나 자기 마음에 깊이 나타났는지를 알려면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을 살펴보면 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박해자이자

신성모독자로 살았던 시절들을 알고 있습니다.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전15:9~10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3:8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3, 15

 

그렇지만 하나님은 은혜로 바울을 구원하셨고

그의 옛 죄를 영원히 기억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끔찍한 죄를 지었는지

절대 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뻐하면 기뻐할수록,

하나님의 은혜가 기쁨으로 자신을 채우면 채울수록

그는 자신이 구원받은 <죄인>’이라는 생각이 더욱 확실해졌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구원받은 <죄인>’이라는 의식이 분명하고 확실할수록

자기의 구원이 소중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의식이 없으면

자기의 구원은 의미도 없고, 정말 구원 받은 것도 아닙니다.

 

바울은 <죄인>이었던 자기를

하나님이 그분의 팔로 안으시고,

사랑으로 면류관을 씌우셨다는 사실을

단 한순간도 잊을 수 없었습니다.


혹자는 위에서 인용한 본문들은

바울이 날마다 소소한 죄를 지을 때,

그때마다 회개, 고백한 것이라고 보는데요,

 

하지만 본문들을 문맥 속에서 주의 깊게 읽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위 본문들은 훨씬 더 깊은 의미를 가집니다.

즉 구원 받은 자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경배할 때

그 놀라움과 경외감 가운데서

자기 낮은 목소리로 고백하게 되는 그 고백들입니다.

 

사도바울이 그 구원받음의 놀라운 경이감,

어린양의 피에 죄 씻음 받음의 그 경외감을

그 낮은 톤의 목소리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 중의 괴수로다!’ 라고요!

 

물론 진정 구원받은 사람 모두도, 그렇게 바울처럼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명심해야 할 점은 그리스도의 피로 씻긴 사람들은

영광 가운데 있다 해도

속죄함을 입은 죄인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은혜로 약속된 모든 것을 받을 권리와 명분을 갖고 있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구원받은 죄인임을 느끼지 않고서는

단 한순간도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의 빛 가운데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처음 구원받을 때 죄인으로 나아왔던그 겸손이

피조물로서의 겸손에 대한 새로운 깊은 의미를 얻게 합니다.

 

피조물로서 우리 겸손이, 그 후로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사랑을 기억하며 늘 찬양하게 됩니다.

사도바울처럼요!

바울의 서신서를 보십시오.

나는 죄인 중의 괴수로다는 식으로

바울은 자기가 죄인 됨을 고백했지만

그러나 서신서에

자기 자범죄의 구체적 고백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신의 단점이나 결점을 언급한 곳에서도

자기가 의무를 이행하지 못했다거나, 사랑의 법을 깨뜨리고

죄를 지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자기는 흠이 없이 살았노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살전2:10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고후1:12

 

, 바울의 스스로 죄인 됨의 고백

영원히 구원 받은 자의 경이로운 감탄이요,

용서 받은 자가 하나님 앞에서 갖게 되는 영원한 겸손의 표현인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뿐만 아니라

진정 구원 받은 자의 공통된 고백인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기가 죄인 됨에 대한 스스로 고백이 거의 없다는 것은

겸손의 결여요

성령의 능력안에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더 깊은 겸손의 비밀은

죄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제 앤드류 머레이가 강조하고 싶은 내용은 이렇습니다.

바울과 같은 죄인 됨에 대한 고백이 없다는 것은,

더 깊은 겸손의 비밀을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인데요,

 

이것은 매일 행하는 소소한 일상의 죄와 그 회개에서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즉 죄인이 회개를 통해 겸손케 되는 차원이 아니라요.

 

하나님의 그 크신 구속의 은혜를 생각할 때,

더욱 풍성한 은혜 가운데 거할 때,

자신은 한없이 불쌍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않는 태도, 그 겸손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취해야 가장 복된 자세는,

자신이 은혜로 용서받고, 은혜로 구원받은 자임을 고백하며

그 비천한 처지에서 구원받은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7:18

이 말씀은 육신이 지향하는 바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영광스런 구원을 말하는 로마서 8장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8:2

 

이 해방은, 자기 육신이 죽어 없어지거나

자기 의지적 성화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내주하시고 동행하시는 가운데

육의 행실을 죽이도록 이끄시고

그래서 지속적인 승리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건강이 질병을 몰아내고,

빛이 어둠을 쫓아내고,

생명이 죽음을 정복하듯이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의 내주하심은

영혼의 건강이요 빛이자, 생명입니다.

 

한편 우리가 어찌할 수 없이 죄를 짓는 존재라는 확신은

순간순간 끊임없이 역사하시는 성령 안에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겸손의 종으로 만드는 의존성을 더욱 굳세게 합니다.


위에서 인용한 세 개의 구절은

모두 바울에게 임한 놀라운 은혜 아래서

그가 매 순간 그토록 깊이

자신을 낮출 필요를 느꼈음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바울과 함께했고,

이로써 그는 다른 이들보다 더 열심히 일할 수 있었습니다.

 

그 은혜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아주 풍성했습니다.

 

은혜의 본질과 영광은

죄인들을 위한 것입니다.

 

또 한때 죄를 지은 자로서 지금도 죄를 지을 수 있다는 인식을

더욱 강하게 의식하도록 돕는다는 데 있습니다.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는 말씀은 롬5:20

은혜의 경험이 풍성할수록

죄인이라는 의식도 강렬해진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누군가에게 그가 어떤 죄인인지를 보여주고 깨닫게 하는 것은

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는 그로 하여금 진정으로 겸손케 합니다.

지신이 죄인임을 진정으로 알게 하고,

죄인으로서 가장 깊은 겸손의 자리에 있으면서

그 자리를 결코 떠나지 않게 해주는 것은

죄가 아니라, 은혜입니다.


사람은 강한 표현으로 자신을 정죄하고 비난하면서

겸비하려고 애쓰지만

 

겸손의 정신, 즉 자비와 긍휼, 온유함과 오래 참음을 동반하는

겸손의 마음과 아직 거리가 먼 사람들이 많습니다.

 

자신을 가장 깊이 혐오하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면

결코 자신에게서 자유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하는 것은

죄를 정죄하는 율법만이 아니라

죄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율법은 두려움으로 마음을 깨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에 기쁨이 되는 겸손은

오직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아브라함과 야곱, 욥과 이사야를 그토록 낮추고 엎드리게 한 것은

은혜로 자신을 아리기 위해 가까이 다가오신,

거룩 속에 나타나신 그분의 계시였습니다. 즉 은혜였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피조물의 전부가 되시는 창조주 하나님,

죄성으로 충만한 죄인들의 전부가 되시는 구속자이신 하나님을

기다리고 신뢰하고 예배하는 영혼만이

하나님의 임재로 자신이 충만해지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곧 자신을 위한 자리는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그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2:17

라는 약속만이 성취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구속적 사랑의 완전한 빛 속에 거하는 죄인은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죄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사로잡히는 사람은

자아으로부터 구원받고

진정 겸손해지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