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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생전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기는 사람

LNCK 2018. 2. 13. 17:24

vimeo.com/468500689

살아생전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기는 사람          20:38                편집장 묵상글

    

20:38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에게는 모든 사람이 살았느니라 하시니

  

◑살아생전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긴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찰스 스펄전, 레너드 레이븐힐, 존 파이퍼 목사 등 신실한 사역자들이

설교시간에 종종 언급하는 사람이 데이비드 브레이너드(1718~1747)입니다.

 

 

그는 뉴잉글랜드에서 21세 때 회심하고,

당시 말을 타고 다니며 이 산속, 저 산속을 다니며

미국의 원주민 인디언 선교에 헌신하다가

폐질환으로 30세를 채 못 살고 소천한 젊은 복음전파자입니다.

 

그런데 그는 사실 살아생전에 사역에 큰 열매를 이룬 것은 아닙니다.

4년에 걸친 그의 사역 중에서 (1743~)

자기 통역자 인디언을 주님께 인도했고, 그 외 몇몇 인디언을 인도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인디언들의 반응은 무덤덤하거나 냉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살아생전보다, 사후에 더 큰 일을 했습니다.

그가 쓴 일기를, 조나단 에드워즈가 책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으로 출판했는데,

       An Account of the Life of the Late Reverend Mr. David Brainerd 

 

그 후 약 250년에 걸친 지난 세월동안, 신실한 여러 주의 종들이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읽고서, 진한 감명과 감동을 받았다고 고백했습니다.

 

그 책을 읽어본 여러 사람들은 지루하다고 합니다.

왜냐면 그 책에는 각혈했다, 고열로 죽을 뻔했다, 먹을 게 없어서 굶주렸다,

추위를 무릅쓰고 말을 타고다니며 전도했다, 새벽에 간절히 기도했다,

아파서 며칠을 땀흘리며 누워있었다..’ 이런 내용만 시종일관 반복해서 나옵니다.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기적적인 간증, 수많은 사람들의 회심,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

이런 눈이 휘둥그레지는 얘기는 거의 안 나옵니다.

 

그런데 왜 존 파이퍼 목사 등 여러 신실한 주의 종들이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하며, 이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를 설교에서 언급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 중 한 가지는 <동병상련>일 것입니다.

목회와 사역의 현실은, 장밋빛 환상과는 정반대입니다.

 

성경에는 놀라운 기적이 많이 나오고,

내가 주님께 헌신하면 나도 그런 기적의 주인공이 될 것 같지만

 

실제 목회나 선교지의 현장에서는,

병들고, 사고가 나고, 배신을 당하고, 실패하며, 괴로움의 연속이며

사면초가와 같은 암울한 상황을, 현실적으로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게 실제 목회나 선교지의 현실이라고

정직하게 간증하는 사람은 대단히 드뭅니다.

다들 기회가 주어지면 성공하고 잘 되는, 기적적인 이야기만 주로 하죠.

 

그런데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는

병들고, 고생하고, 굶주리고, 맨땅에 해딩하는 이야기를

정직하게 하고 기술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지루할 것 같은 책을 보고 은혜를 받았다는 사람들은

아마도 <동병상련의 은혜>일 것입니다.

 

자기들이 병들고, 고생하고, 힘들어 하고 있는데,

주님을 섬기는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헌신했는데,

자기보다 더 힘들고, 고생하고, 깨지고, 사면초가에 갇힌 사람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주님께 헌신해서 섬기면 팔자가 쫙 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전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의아해하고 있는데

데이비드 브레이너드도 그렇더라는 것입니다.

 

, 나보다 더 힘들게 사신 분이 계시네?

그럼 나는 입 다물고 조용해야 하겠다!’

 

 

(물론 그 외에, 그 책에는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여러 배울 점들이 있지만,

오직 고생, 환란, 질고라는 부분적인 관점에서만 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묵상글의 주제는 동병상련이 아니고,

데이비드 브레이너드가 예상했는지, 못 했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그는 죽어서, 천국에서, 저 영생의 차원에서

그는 대대적으로 성공한 사역자가 되었습니다.

 

살아생전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긴 신앙 위인이 되었습니다.

바로 자기가 기록한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를 통해서요!

 

그런데 한국에도 이렇게

살아생전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기길 소원했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길을 뒤따른 분이 한 분 계시는데요...

 

 

◑살아생전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기기 원했던 허운석 선교사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위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사람도 죽으면, 생전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뜻도 될 것입니다.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다가 소천하신 분들은

죽으면 반드시 살아생전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허운석 선교사는 20대 초반에 예수님을 영접한 후    *1953~2013

대한신학교를 졸업하고, 남편 김철기 선교사와 만나 결혼한 후

장로교 총회(통합) 선교사로 브라질에 파송되어 1991년부터 사역하던 중

폐암으로 2013년에 소천했습니다. 당시 60세 였습니다.

 

허선교사의 비교적 이른 소천은

하나님의 작정이었을 것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으로 나는 사람도 있고,

젊어서 한센병에 걸려서, 남은 세월을 격리되어 주님만 섬기는 사람도 있고

또한 위치만 니, 디트리히 본회퍼처럼 하나님이 살려주지 않으시고

일찍 데려가시는 사역자들도 있듯이,

허선교사도, 하나님의 무한하신 섭리와 작정에 의해, 60세로 소천했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안타깝기 그지없지만

누가 하나님의 그 깊은 섭리와 지혜와 작정을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최근에 깨달음이 왔습니다.

왜 허운석 선교사가 온 몸이 탈진된 상태에서

저렇게 <병상 일기>를 쓰고,

폐의 물을 빼내는 비닐주머니를 차고서 <외부 설교>를 하고 돌아다니셨는지...

 

그건 <살아생전 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기는 사람>

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2년 정도, 자기는 더 이상 가망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사력을 다해

정말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아서

<살아생전 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기는 사람>

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이 분이 이런 통찰력을 가진 것은, 추측이지만

 

1) 데이비드 브레이너드 라는 분의 삶에서 통찰력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북미의 인디언들은 아니었지만,

남미 아마존의 인디오들을 상대하면서,

비슷한 처지에서 선교했던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와 동병상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와 똑같이 폐질환이었잖아요!

두 분 다 폐질환으로 세상을, 비교적 젊은 나이에 떠났습니다.

 

2) 허운석 선교사는 소천하기 2년 전인 2011년 경부터

폐암이 장으로 전이되면서

아마 하나님의 부르심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분은 사력을 다해

정말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쏟아서

<살아생전 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기는 사람>

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 몸을 더 돌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이때 당시 그의 설교에 생명의 계보를 언급하십니다.

성경에 나타난 구속사의 계보,

에녹-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모세-여호수아-라합--다윗 등

그 계보에 자신이 들어가기를 소원하고,             *생명의 계보 / 허운석

 

또한 그 계보에 들어가기 위해서 더 하나님과 온전히 연합하라고,

하나님은 자신에게 폐암을 주셨다고, 그는 스스로 설교했습니다.

 

정말 허운석 선교사 병상일기를 읽으면,

                        * 그리스도만 남을 때까지허운석 저, 두란노출판사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일기>와 비슷합니다.

비참하고 암울하고 읽기에 괴로운 페이지가 많습니다.

 

그리고 정말 말로 형언하기 어렵다는 그 폐암의 고통 가운데서

어떻게 이렇게 <병상일기>를 집필하고 남기셨을까?’

 

사실 건강한 사람도, 그렇게 일기를 쓰기가 쉽지 않은데,

통증으로 몸이 오그라드는 사람이, 마약성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병상일기>를 남긴 것은

 

-성경에 나타난 생명의 계보에 들어가기를 원했고

-살아생전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기를 소원했던

그런 영원을 바라보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적용

 

어쨌거나 나도

<살아생전 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기는 사람>

되고자 애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영생을 믿는다면요!

 

그리고 한 알의 밀알이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12:24

라는 말씀처럼

자기가 정말 신실하게 크리스천의 삶을 살았다면

그는 반드시 자기가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 성경에 나타난 믿음의 조상들은 모두가 다

살아생전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긴분들이었습니다.

 

일례로 아브라함은, 자기 당대보다

사실 아브라함의 진가는, 사후에 더 잘 나타나

지금까지 무려 4천년 동안, 그것도 고대 근동의 지리적 한계를 넘어서

전 세계로 그 영적, 신앙적 영향력을 미치고, 빛을 비추고 있습니다.

 

신앙인은 현재부터 영생을 살기 때문에,

그 거룩한 영향력을

현재 뿐만 아니라, 영원토록 계속 미친다는 사실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우리 각자도

<살아생전 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기는 사람>

되고자 애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정말 영생을 믿는다면요!

 

    그런데 사실 현실은,

    살아생전에는 이름을 날릴지 모르나, 죽으면 파묻혀버리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정말 억울하리만큼, 당대 사람들은 과거의 사람들을 기억해주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잊혀진 사람들은, 살아생전에

    현실과 당대에만 충실해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허운석 선교사처럼
   '살아생전보다 죽어서 더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
   으로서의  어떤 내다봄이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누가 소천하면, 그 이듬 해 즉시 성인으로 추대하지 않고

적어도 20년은 두고 보는 것 같습니다. 역사의 평가를 기다리는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 앞에서 성실하게 살았나 하는 것은

그의 당대만 봐서는 안 되고, 그의 소천 후 한 20~30년 지나서,

역사의 평가를 보면 더 정확합니다.

 

왜냐면 당대에는 꽤나 유명했으나

사후에 즉시로 잊혀지는 분도 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 당대에 하나님 앞에서 성실한 삶을 산 신자는,

반드시 생전보다 죽은 다음에, 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 그 증거로 나타날 것입니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12:24

 

  

   누가 압니까? 우리도 혹시

   <살아생전 보다, 죽어서 더 많은 열매를 남기는 사람>이 될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