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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찢는 회개> 8편 신학교에 불어닥친 성령의 바람

LNCK 2018. 7. 16. 15:50

www.youtube.com/watch?v=QvHnVFjJLso&feature=youtu.be

도서 낭독 <가슴 찢는 회개> 8

 

현숙한 여인, 허 선교사

 

무엇보다 내가 믿은 선교 방향을 확인 받은 것이 감사했다.

공부를 마친 뒤 아마존 미전도 부족 선교 전략이라는 논문을 썼다.

 

허 선교사는 잠언에 나오는 현숙한 여인이었다.

선한 일은 강요하고 악한 일은 무섭게 꾸짖어 그만두게 만드는 여인,

그러나 거기에는 언제나 그녀의 희생이 따랐다.

 

지금 신학교의 간판은 허 선교사의 아이디어로 제작된 것이다.

벽돌로 높이 4m, 가로 6m를 쌓고 그 위에 검은 타일을 붙인 다음

흰 타일을 양 옆으로 붙여 돋보이게 하고 하얀 글씨의

‘Instituto Biblico do Alto Rio Negro’를 붙였다. 약자인 IBARNE도 붙였다.

 

이 큰 간판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마치 큰 연구소의 입구 같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벽돌로 쌓아서 신학교 이름을 새긴 그곳은 원래 야산이었다.

울퉁불퉁한 여러 나무들이 우거져 있었다.

 

허 선교사가 매일 오후 학생들과 함께 그 야산을 삽과 곡괭이로 다듬었다.

그러기를 두 달이나 했다.

 

그런데 누군가 법원에 신학교가 학생들을 착취한다고 고소를 했다.

우리가 법정에 가서 그 공사는 학생들의 노동 시간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해명해서

일단락되어 3천 평의 넓은 정원을 만들 수 있었다.

 

정원의 경계에는 아사히 야자나무들을 심었다.

그리고 신학교 입구 양쪽으로 1년 내내 꽃이 피는 꽃나무를 심었다.

 

그렇게 수고한 뒤 허 선교사가 앓아누웠다. 병명은 말라리아였다.

당시 우리 도시의 간호사이자 약사인 뺑야 부인(Dona Penha)의 도움으로

겨우 몸을 추스를 수 있었다.

 

우리는 신학교 정원을 허 선교사 정원으로 명명했다.

허 선교사의 브라질 이름 도나후치 (룻 부인) 정원이다.

허 선교사는 간판을 만든 뒤 언젠가 자신이 주님 품으로 돌아가면

그 간판 뒤에 묻어 달라는 말을 했다.

 

1년 내내 하얗고 노랗고 빨간 꽃이 피는 그곳에서 허 선교사는

깊은 쉼을 누리고 있다.

 

주님을 위해 죽기 원한다면

수산나는 아홉 살, 지훈이는 여섯 살에 한국을 떠나

아마존에 와서 자연스럽게 사역을 도왔다.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을 때도 방학 동안 딸은 아이들 사역을 하고,

아들은 의사 선생님을 돕는 조수로 사역했다.

 

수산나는 대학을 졸업한 뒤 1년간 아마존에 와서 사역했다.

엄마가 아플 때는 나와 번갈아 가며 간호와 사역을 병행했다.

 

우리 아이들은 아마존의 인디오 형제들을 사랑한다.

그들도 우리 아이들을 가족으로 인정한다.

 

우리 아이들이 아마존에 와서 살다가 죽기를 바란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그러나 형제들은 그런 가족 개념을 갖고 살아간다.

인간적인 가족 관계를 뛰어넘는 관계다.

 

허운석 선교사는 우리 아이들이 아마존에 와서 사역하기를 원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대를 이어 충성하기를 바랐다.

 

허 선교사는 이 땅에서 부와 명예, 권력을 누리며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고,

또 그렇게 아이들에게 가르쳤다.

 

너희가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나는 너희들 집에서

단 하루도 머물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의 집에 가서 자겠다.”

 

허 선교사가 생전에 아이들에게 자주 한 말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3:35)

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가족은 피를 나누어서 가족이 아니라

주님의 뜻 안에서 하나되어서 가족이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십 수 년 전부터 아마존에서 함께 동역할 선교사를 부르고 또 불렀다.

하지만 산산이 부서진 이름처럼,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처럼,

내가 부르다 죽을 이름처럼, 오지 않았다.

 

어느 분이 정식 선교사가 아닌 견습 선교사를 부르면 선교지에서 머물며

마음에 감동이 되어 장기 선교사로 헌신할 것이라는 조언을 따라

2003년부터 견습 선교사를 요청했다.

 

영남신학대학 공국표 전도사님을 시작으로

한국과 미국, 상파울루에서 16명이 다녀갔다.

 

견습 선교사들이 아마존에 파송될 당시는

수산나와 지훈이가 이미 우리를 떠난 뒤라서

우리는 그들을 아들로, 친구로, 제자로, 컴퓨터 선생님으로 여기며 함께 지냈다.

 

그들이 돌아가면서 남긴 보고서는 늘 우리를 감동케 했다.

아마존에 와서야 비로소 주님을, 인생을, 사명을 알았다고 고백했다.

 

나는 견습 선교사가 오면 12권의 중요한 책을 함께 읽고 토론을 했는데,

아마도 외롭고 고생스러운 환경에서 나눈 대화인 만큼

그들 가슴에 별처럼 박혔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중 어느 누구도 장기 선교사로 헌신하지 않았다.

아마존에 다녀간 마지막 견습 선교사가 아직 신대원에 재학 중이어서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다.

 

아마존은 주님을 사랑해서 주님을 위해 기꺼이 죽어 드리기를 원한다면

죽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자아를 죽이기에 가장 좋은 장소라는 말이다.

 

우리는 아직도 단기나 장기 선교사든,

의료 선교사든 평신도 전문인 선교사든 현직에서 은퇴한 실버 선교사든

누구든지 우리와 동역할 이들을 기다린다.

 

회개운동이 뜨겁게 타오르다

 

우리는 썽가브리에우에서 사역을 시작하면서부터 심한 영적 갈증을 느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마음은 이 지역의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은 마음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주님, 이 땅에 부흥을 주시든지

아니면 저희를 데려가시든지 둘 중 하나를 하십시오.

저희를 부흥의 불씨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새벽마다 부르짖었다. 목이 상하고 또 상해도 계속 기도했다.

그러나 부흥은 오지 않았다.

일주일, 한 달, 1년이 지나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은 마음은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먼저 내 심령에 부흥을 주시라고 기도하게 되었고

주께서 우리를 더 깊은 회개로 인도하셨다.

 

주님은 이미 그때 우리 심령 속에 부흥을 주셨다.

단지 이 부흥의 불길이 다른 사람에게 전달될

만큼 크지 않았다고 이해한다.

 

성령님께서 언제나 오시려나?

언제 주님이 우리 학생들에게 회개의 영을 부어 주실 것인가?

해가 지나고 또 한 해가 지나면서 초조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주님, 저희가 아닌 다른 사역자들이 그 부흥을 가져와도 감사합니다.

저희는 단지 부흥에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라고 기도하게 되었다.

 

그렇게 주님은 우리의 인내와 믿음을 준비시키셨다.

20099월이 되었다. 우리 신학교에 재학 중이던 에스더라는 자매가

허 선교사와 함께 기도를 하다가 방언의 은사를 받았다.

 

그리고 그동안 숨겨 왔던 죄를 고백했다.

미모가 그리 뛰어나지 않은 자매라서

우리는 그녀가 학교 안에서 그렇게 많은 남학생들의 유혹을 받았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신학교의 모든 죄악이 에스더를 통해 50% 정도 드러나고 밝혀졌다.

우리는 마귀가 그녀를 정죄하며

공포로 다시 가두려 하는 모습을 보았다.

 

어둠의 왕인 사탄의 포획권이 주님의 빛 아래서 분노하며 보복하고 위협했으나

성령께서 곧 그를 붙드셨다.

강하고 담대하게 하시며 오히려 자매의 죄의 자백을 통하여

모든 자매들이 자기들의 죄악을 낱낱이 고백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그래서 학교의 남학생 중에 플레이보이같은 몇몇 학생의 죄들이 밝혀졌고,

그들은 꼼짝없이 회개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신학교 내에 숨겨진 죄악들이 그렇게 많은 줄 우리는 미처 몰랐다.

그날 이후 우리 학교의 모든 일정이 끝나는 10시 반부터

허 선교사의 인도로 신학교 채플에서 기도회가 열렸다.

 

그리고 낮 시간에는 신학교 전체 학생이 주님을 만날 자기 자리를 찾기 위해

정글로 들어갔다.

 

남학생은 이쪽으로, 여학생은 반대쪽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그동안 주님과 개인적인 만남을 갖기 위해 정글 속 조용한 자리로 찾아가라고 가르쳤지만,

문화적으로 그들에게 정글의 의미가 무엇일까 싶어서 강요하지 못했다.

 

어느덧 주님이 정한 시간이 되었는지 주님께서 결국 입을 열어 주셨다.

이들의 마음에 순종의 새싹이 보이는 것 같아서 냉큼 정글로 들어가자고 했다.

 

매주 수요일은 예배가 있는 날이다.

모든 교수와 학생들이 함께 공적인 예배를 드린 뒤

오늘은 다 정글로 들어가서 주님과 만날 장소를 마련하자.

온 마음을 다해 죄를 열거하고 물을 쏟듯 마음을 열어 주님께 고백하며

주님께 회개의 영을 부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자고 해서 정글로 들어갔다.

 

정글에서 들려오는 기도 소리에 그토록 많은 새도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부르짖는 기도 소리들이 온 정글에 메아리쳐 울려 퍼졌다.

 

우리 모두는 창조주 앞에 벗은 몸으로 울었다. 기도를 마치고 돌아온

그들의 모습은 자신들의 끔찍한 죄악의 얼굴을 보았는지,

울고불고 난리를 쳤는지, 목소리가 쉬어서 말을 잇지 못하고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온몸이 땀에 젖어 초췌했으나 그들의 얼굴은

어린 양처럼 순결했다.

주님과 조용히 만날 장소를 찾아 정글로 들어 가자고 했던 시간은

오래 걸렸으나 주님은 마침내 정글에 들어갈 목마름을 주셨고,

그들을 그곳으로 부르셨고, 만나 주셨다. 할렐루야!

 

정글에 들어가서 한없이 그냥 울기만 했다는 학생,

울다 뒹굴었다는 학생, 자기 죄가 보여서 펄펄 뛰면서 고함을 쳤다는 학생,

미칠 뻔했다는 학생, 제각기 주님을 체험한 이야기를 간증했다.

 

그리고 금식을 하는 학생들이 줄을 잇고

철야를 하는 학생들이 성전에 기도의 불을 밝혔다.

더불어 공중 앞에 자기 죄를 낱낱이 고백했다.

 

콜롬비아에서 온 한 인디오 형제는 통곡하면서 고백하기를

저는 코카인을 하기 위해서 늘 몸을 팔았습니다. 쾌락을 위하여

훔칠 수 있는 것은 다 훔쳤습니다라고 했다.

프란시스코라는 학생은 저는 술꾼이었습니다. 밤마다 성적 욕구를 채우지 않으면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양성애자였고 늘 수간(獸姦)을 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여자들과도 잠을 잤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이렇게 줄을 잇던 회개 운동 후에 주님은 성령의 은사를

60명의 신학생 전체에게 허락하셨다.

 

우리는 썽가브리에우 시내에 있는 우리 교회 교인들을

신학교 금요일 철야예배에 초대했다.

지금껏 신학생들이 경험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지 못한 교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렵고도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교인들은 신학생 60명이 쏟아 내는 기도와

찬양에 몸에 경련을 일으키고 뒤로 넘어지는 등 성령의 임재를 경험했다.

 

그러고는 성령의 은사를 받아 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신의 죄악을 통회하며 공개적으로 자백하기 시작했다.

 

성령께서 친히 일으키시는 회개 운동이 얼마나 강력했던지

불신자들이 금요일 철야예배를 구경하러 올 정도였다.

 

나는 이들 불신자를 신학교 교실 한쪽에 모아 놓고

에반지 큐브(Evange Cube)로 복음을 전한 뒤 주님을 영접하게 했다.

 

놀랍게도 그들 역시 그날 저녁 성령을 체험하고 공개적으로 죄를 자백했다.

성령님이 일으키신 회개 운동은 20099월부터 12월까지 계속되었다.

 

기적의 망고

 

이렇게 강력한 회개운동이 일어나고 난 후 기적의 망고열매들 이 열렸다.

당시 나는 아마존 검은강 상류 지역에서만 15년째 살고 있었는데

망고나무는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다.

 

그러나 망고나무에서 한 번도 열매를 맺은 것을 보지 못했다.

농학박사들의 이야기로는 이곳은 토지에 산성 성분이 너무 많아

농사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모든 과일 중에서 망고를 제일 좋아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다른 도시에서는 풍성한 이 열매를 이곳에서는 먹을 수가 없었다.

 

몇 년 전부터 군인들이 이곳에 많이 들어오면서

망고가 시장에 나오긴 했으나 매우 귀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망고가 이곳까지 오려면 브라질 남쪽 상파울루로부터

자동차와 선박들을 갈아타며 5000km의 먼 길을 달려와야 했다.

 

당연히 값이 비싸서 1kg에 미화로 약 8달러가량 했다.

그러니 너무 비싸서 사먹지는 못하고 교인들이 다른 도시에 여행 갔다가

선물로 가져 온 것을 먹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데 2010년부터 이 도시의 모든 나무에 망고가 주렁주렁 열렸다.

망고뿐만 아니라 다른 과일들도 많이 수확되었다. 할렐루야!

 

이것은 기적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거목부터 작은 망고나무까지 망고들이

주렁주렁 풍성하게 열렸다.

역대하 714절의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이다.

 

지금도 주님은 부흥을 꿈꾸며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는 성도를 찾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의 회개를 통하여 황폐한 이 땅을 바꾸어 주신다.

 

작지만 큰 사람들

 

아마존의 잃어버린 영혼을 위하여 우리와 함께한 교회와 성도님이 아주 많다.

그들의 헌신을 일일이 열거하자면 책 한 권을 써야 할 것이다.

 

어찌 그 도움과 사랑을 잊을 수 있으랴. 나는 그들을 별처럼

가슴에 품고 시간 날 때마다 중보하고 있다. 다음은 중보기도 내용이다.

 

사랑하는 주님, 당신이 세계 곳곳에서 천사들을 일으키셨습니다.

저희가 낙심하고 좌절할 때 당신의 종들이 기도하여 저희가 일으킴을 받았습니다.

배신과 핍박으로 눈물이 마르지 않을 때,

중보자들이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여 저희의 눈물이 닦아졌습니다.

우리가 두 손을 주님께 들고 도움을 요청할 때,

주님의 종들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생활비를 줄이고

아르바이트를 하여 선교비와 선물들을 보내 주었습니다.

 

허 선교사가 암 투병을 할 때 가족이라 여기며

치료비와 생활비와 선물들을 보내며 위로와 사랑을 나눠 주었습니다.

전화나 편지와 메시지로 격려해 주었습니다.

아마존에 직접 와서 저희와 고통을 함께 나누며 형제들을 섬겨 주었습니다.

 

그래서 보내는 자나 보냄을 받은 자가 모두 당신 안에서 하나이며

그 열매를 나누게 될 줄로 압니다. 그 상급을 나누게 될 줄로 압니다.

아마존 사역을 위하여 지금까지 일으킨 수많은 종들로 인해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쪼록 당신께 간구하옵기는 지금까지 당신이 만 배로 보상하신 것처럼

이 땅과 영원에서 만 배로 갚아 주옵소서.”

 

아마존 사역을 알린 CGN TV

 

아마존 사역을 소개하고 싶다고 여러 번 각종 매스컴에서 연락이 왔으나

나는 매번 거절했다. 부득이한 일이 생겨서 기독교방송에 나가

간증을 몇 번 하기는 했다.

 

하지만 아마존을 방송하는 것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주님이라면 만천하에 자신의 사역을 공개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서였다.

 

또 다른 이유는 브라질 정부가 인디오 부족의 삶을

외부에 공개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201210CGNTV 직원이라는 사람이 전화를 했다.

아마존에 오게 되었다며 곧 찾아와서 만나겠다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투병하고 있는 허 선교사가 방송사의 아마존 방문을 허락할 리 없었다.

 

그래서 매일 그 직원과 여러 시간에 걸쳐 통화를 해서 설득했다.

나중에는 그들과 입씨름하는 게 힘들었는지 입술이 부르텄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항공권을 구입했노라고 막무가내였다.

내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항공권을 취소할 경우 많은 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그들의 월급에서 그 수수료를 감당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마존에 오라고 허락했다. 한편으론 주님이

그동안 한 번도 매스컴에 소개하지 않았다는 나의 자랑을

깨고자 하신다고 생각해서 문을 열었다.

 

알려지지 않은 진실한 선교사라는 간판을 떼야

자기 의를 내려놓을 것 같아서,

알려지지 않은 선교사가 아니라 보통 선교사로 나타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아마존이 열렸다.

그분들에 의해 두 편의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졌다.

 

다큐멘터리는 시청자로부터 호응을 얻는 데는 성공했으나 선교비는 오히려 줄었다.

우리 사역의 규모를 본 후원자들이 다른 선교사님들에게 후원을 돌렸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크게 감사한 것은, CGN TV가 가진 영성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아마존에서 CGN TV를 시청하는 선교사가 얼마나 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가의 위성 수신료를 내면서

선교사들을 위해 24시간 방송을 송출한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손익을 계산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 일이다.

우리가 하는 아마존 사역도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시간 낭비요

자원 낭비 같아 보인다. 깊은 정글을 헤치 고 어렵사리 찾아가면

고작 50명이거나 많아야 300명이 거주하는 마을이 나타난다.

 

한 사람이라도 복음을 듣게 하려고 많은 자원을 낭비하면서

그토록 애를 쓰며 며칠을 걸려 찾아가는 것이다.

세상적인 관점에서 보면 답이 안 나오는 일이고 온통 헛된 일 같지만

그것은 한 마리 양을 찾기 위해 99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고

길을 나선 주님을 따르는 일이다.

 

아마존에 온 CGN TV 직원들에게서 나는 커다란 감동을 받았다.

광고 수입에 의존하지 않고 후원에만 의지해서 방송에 헌신하는

그들의 삶이야말로 선교적 삶이었다

 

어리석은 발람처럼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16:12-14

 

아무것도 아닌 내게 주님은 너무 풍성한 은혜와 은사를 주셨다.

때로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을 베풀어 주셨다.

내가 기대하는 것보다 주님은 훨씬 더 큰 사역들을 이루어 주셨다.

 

이 모든 은혜를 주신 것은

내가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오라고 길을 보여 준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주님께로 가지 않았다. 그분이 내게 원하신 일,

가장 중요한 일, 나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일은 하지 않았다.

 

나는 사역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한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변화되는 것을 보는 기쁨이

마약을 하고 얻는 기쁨과 같을까 생각할 만큼 그 감격을 좇았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행복했고 기뻤다.

하지만 거기엔 주님이 계시지 않았다.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고 오해였다.

 

허 선교사가 늘 말했다.

김철기 선교사가 없으면 아마존이 무너지고 신학교가 문 닫겠는가?”

 

사역에 목숨을 걸다 보니 언제나 긴장했다.

일의 효율성을 위해 늘 머릿속으로 사역을 구상했다.

 

좀 더 완벽하게 잘하고 싶어서 24시간 사역만 생각했다.

밤에 잠을 자는 동안에도 사역만 생각했다.

 

그러므로 쉼이 전혀 없었다. 평안이 없었다.

허 선교사는 내게 일 중독에 걸렸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은혜를 거두어 가지 않으시므로

주님이 주시는 영감으로 매 주일과 수요일은 물론 새벽기도에 설교를 했다.

 

나는 가끔 설교 시간에 나는 아주 유능한 선교 경영가이지만

주님의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내가 주님의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고백하기도 했다.

 

언젠가 내가 아마존을 떠나게 될까?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왜 그럴까?

 

처음엔 아마존을 사랑하고 형제들을 사랑해서였겠지만

지금은 집착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날도 모터보트를 타고 부흥회 인도를 위해

머나먼 인디오 마을을 향했다.

 

그런데 수산나가 보트 안에서 읽으라며 편지를 주었다.

내용인즉 제발 좀 쉬라고, 엄마와 가족도 생각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코웃음 치며 아이고 웃기네. 저나 잘하지 딸 주제에 주제넘기는

하며 편지를 강물에 버렸다.

 

마치 발람이 유혹에 빠져 발락에게 갈 때

불순종하는 나귀의 의도를 알아차리지 못한 것처럼(22:22-24)

당시 내가 그랬다. 어린 딸도 알아차린 나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나는 몰랐다.

 

나는 사역을 진행할 때 가장 먼저 허 선교사가 도와주기를 바랐다.

그것도 아주 흡족하게 잘해 주기를 바랐다. ‘나도 선교사이지만

너도 선교사다. 마땅히 너도 이만큼 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주변의 사역자들에게 내가 원하는 만큼 일해 주기를 강요했다.

모두 나로 인해 힘들어했다.

나는 왜 그랬을까? 종교적 야망이었다.

 

사람들에게 칭찬 받자는 욕심은 아니었다. 명예욕도 아니었다.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종교적 야망에 눈이 멀었다.

 

그래서 생명의 주님을 버리고 내 거룩한 야망을 따랐다.

그것이 야망일 뿐임을 알아차린 것은 허 선교사가 내 곁을 떠난 뒤였다.

 

나는 가장 가까이 있는 아내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인디오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했다.

 

나는 희대의 사기꾼이었다. 위선자 중에 위선자였다.

그렇게 마귀에게 속아서 수십 년을 살아왔음을 알았을 때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뒤였다.

 

나는 58세에 홀아비가 되어 있었다.

나는 내가 가증스럽다

 

허 선교사가 병원의 요구로 조직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종양이 있는데 그게 암인지 아닌지 모르겠으나

크기가 3cm나 되니 일단 수술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종양이 암이라면 시간이 좀 걸릴 것이라고 했다.

 

허 선교사는 이른 아침 7시에 온 오창학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수술실로 들어갔다.

나는 오랫동안 아마존에 나가 있던 탓에 한국 병원의 시스템을 잘 몰라

처음에 모든 것이 낯설었다.

 

그런 나를 위해 신학교 동기인 남은우 목사님이 와서 나와 함께해 주었다.

제발 암이 아니길 빌었지만 수술 시간은 자꾸 지체되고 있었다.

 

수술실 앞에 있는 간호사에게 묻자 암이 발견되어 늦어진다고 했다.

다리가 후들거리며 머릿속이 하얘졌다.

 

암이라는 것을 몰랐던 까닭에 암이 아니길 기대하며 많은 사람들이

병원에 속속 도착했다. 울산 한마음교회 목사님과 성도님들,

신촌교회 김미자 권사님, 부항중앙교회 장철환 장로님 내외

그리고 이모님 세 분도 오셨다. 그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약 네 시간에 걸친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로 옮겨지는

허 선교사의 모습은 내게 너무 충격적이었다.

마치 숨이 멎은 것 같은 얼굴, 환자 가운에 묻은 피

그때의 충격은 말로 옮기기 어렵다.

밤이 다 되어 회복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사이 손님들은 돌아가고 나 혼자 중환자실 앞에 있는 보호자 대기실로 들어섰다.

보호자들로 가득했다. 이미 이곳에서의 생활이 오랜 사람도 많아 보였다.

한밤중 통곡 소리와 함께 보호자 대기실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날 밤은 너무 두렵고 소름 끼치게 외로웠다.

 

다음 날 아침 중환자실로 가자, 허 선교사가 침대에 앉아서 입에

장난감 같은 것을 물고 있었다. 폐를 움직이게 하고

폐에 가래가 고이지 않도록 강제로 끌어내는 기구였다.

아니 벌써 이렇게 좋아졌나 싶어 너무 감사했다.

 

일반 병실로 옮긴 뒤 담당의사가 와서 결과를 알려 줬다.

선암 (腺癌)이라고 부르는 폐암 2A단계인데 임파선 하나에 전이되었다면서

항암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의사는 통계적으로 폐암 2기 환자는 5년 내에 사망하는 경우가 50%이고,

5년 이상 생존할 경우 도 50%라면서 절대 아마존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열흘 후에 브라질로 돌아가야 했다.

학기가 끝나는 동시에 외부 강사를 모시고

인디오 마을 지도자 교육이 열흘간 있는 데다 졸업식도 있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허 선교사를 이모님 댁으로 옮겨 놓고 길을 나섰다. 떠나는 날 화사한 꽃바구니를 주문하여 허 선교사 방에 놓아 주었다.

아파트 앞에서 작별인사를 하는데 허 선교사가 함께 가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울었다.

 

나는 따라 울까 봐 황급히 돌아서서 공항으로 갔다.

그때 내가 어떤 기도를 했던가?

선하신 주님, 당신의 여종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기도인가? 얼마나 신앙적인 기도인가?

 

그런데 그것은 사치스러운 기도였다. 50%는 살고 50%는 죽는다고 했는데

허 선교사는 반드시 살 것이라 믿었다.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 여인인가.

본인의 목숨보다 주님과 인디오 형제들을 더 사랑한 여인이 아닌가.

그들을 지도자로 세우기 위해 얼마나 헌신했던가.

 

공기보다 삐융이라는 벌레가 더 많아서 온몸이 짓무르고

피부가 소나무 껍데기처럼 변해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하나님의 전사가 아닌가.

 

폭포와 폭포를 넘고 험난한 길도 마다 않던 용감한 군사이지 않은가.

주님이 그런 그녀에게 기적을 베풀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기적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그렇게 허세를 부리는 기도를 했다.

그때 내가 해야 할 기도는 회개기도였는데,

내 마음을 찢고 그동안 내가 붙들고 살던 내 자랑과 자기 의,

종교적 야망을 버렸어야 했는데, 나는 가증스럽게도 주님께 허세를 부렸다.

 

아내가 폐암 수술을 해도 낙심하지 않고 주님을 원망하지 않는

신실한 선교사라고 남들에게 보이고 싶어 했다.

 

나는 허 선교사의 고통을 내 의를 드러내는 데 이용한

거룩함을 흉내 내는 악한 자였다. 주님은 내가 얼마나 가증스러웠을까?

 

그때를 생각하면 아내에게 너무 미안하고 부끄럽다.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1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