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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낭독 <가슴 찢는 회개> 11편
마지막 호흡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복음을 듣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영접한 뒤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는 경험을 계속 했다.
주님은 제게 여러 가지 은사와 은혜를 주셨다.
나는 주님을 기쁘게 하고 싶어서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애썼다.
주님을 향한 사랑을 증명해 보이고 싶어서
자꾸 뭔가를 하려고 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내가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안에 머무는 것이었고, 그분으로 살아가는 것이었는데,
나는 내 열심으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했다.
그렇다 보니 율법으로 나가게 되었고 그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내가 하는 모든 것이 내 자랑이 되고 업적이 되고 자기 의가 된 것이다.
나는 주님 안에서가 아니라, 율법 안에서 주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되려고 했다.
주님이 어디를 가라든 무엇을 하라든 무조건 순종해서 내 전부를 드리고 싶었다.
나는 율법적으로 흠이 없이 완전하고 싶었고, 순교가 소원이었다.
그런 내게 주님은 예상치 못한 고난을 허락하심으로
내가 위선으로 가득 찬 바리새인이었음을 가르쳐 주셨다.
주님의 보혈의 공로를 거절하고 내 의로 천국에 갈 것을 믿는 데까지 이른 내 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시며 내가 바로 가장 악한 죄인임을 계시해 주셨다.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의 것이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갈 3:23-29
이 말씀이 내게 임했다. 그러자 나의 악한 행위가 숨길 곳 없이 드러났다.
지금까지 내가 율법인 초등교사를 따라서 살았구나,
주님을 대적한 죄인 중의 죄인이었구나.
그렇게 나는 주님께 돌아왔고 비로소 그리스도로 옷 입게 되었다.
내 공로가 아닌 주님의 공로로 유업을 잇는 자가 되었다.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포기하는 자는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고 짐 엘리엇이 말했듯이,
아담에게서 받은 주님을 대적하는 자아, 옛사람을 버림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우리의 훌륭한 의무들은 수없이 찬란한 죄들과 같다…
우리는 죄에 넌더리를 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와 모든
성과들까지도 메스꺼워해야 한다.
먼저 마음의 깊은 회심이 있어야만
당신 마음에서 마지막으로 꺼내야 할 우상인
자기 의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팀 켈러의 《당신을 위한 로마서》 중에서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내 자아를 죽음에 넘기려고 애써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주님께서 내 자아를 완전한 죽음에 넘겨서 죽게 해 주셔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받는 최고의 영광이고 축복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자아가 죽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이 땅의 어떤 것을 바라거나 미련을 두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만을 바랐다.
자아를 죽음에 넘긴 성도들에 대한 표현이 히브리서에 잘 나와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히11:36-38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분을 사랑한 대가로 힘든 연단을 받고 제 명에 죽지 못했다.
그러나 그들은 자아를 죽음에 넘긴 가장 성공한 그리스도인들이었다.
◑다시 태어나도 아마존 선교사가 되고 싶다
“허 선교사를 데려가셔도 좋습니다”
허 선교사는 2010년 4월, 암이 재발했다는 판정을 받은 후 2011년 초,
광양자 치료와 이레사 약으로 암 크기가 줄어들어 아마존에 두 번 돌아와서 사역을 감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1년 말부터 상황이 점점 악화되어 암이 복부로 전이되었고,
장이 유착되어 심한 통증을 느꼈다. 그리고 2013년 6월에는 복수가 찼다.
나는 허 선교사를 잃을까 두려워 밤낮 “주님, 허 선교사를 살려 주십시오” 하고 떼쓰는 기도를 했다.
어느 날 이런 상황에서 주님은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하실까 궁금해졌고,
나도 모르게 이런 고백을 했다.
“주님, 허 선교사를 데려가셔도 좋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그러면서 통곡을 했다. 내가 원하지 않았던,
기필코 거절했던 최악의 상황을 나는 받아들이고 있었다.
허 선교사는 내가 유일하게 기댄 언덕이었다.
그런 그녀가 내 곁을 떠나는 일은 내 인생 전체가 무너지는 일 같았다.
그럼에도 나는 “주님 당신의 뜻을 이루소서”라고 기도했다.
이 땅에서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포기함이 자신을 부인하는 것임을,
그것이 그분이 내게 원하는 것임을 깨달았다.
허 선교사가 떠난 후, 내가 했던 기도를 돌이켜 보면서 야곱이 생각났다.
얍복강가에서 천사와 겨루며 그는 뭐라고 말했을까?
“주님, 저는 지금까지 내 지혜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살고 죽는 것을 주님께 의탁합니다. 주님 당신의 뜻을 이루시옵소서.”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야곱의 이 기도를 듣고 천사가 마침내 말했을 것이다.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창 32:28
누가 하나님과 겨루어 이길 수 있겠는가? 아무도 없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이 인간의 본성을 거절할 때,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고 인정해 주신다.
이때 우리에게서 인간 본성을 거스르겠다는 항복을 받아 내는 이는 주님이시다.
주님이 우리 영혼을 위하여 이 모든 환경을 조성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본성을 거절케 하신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최고의 사랑이고
자비이고 긍휼이고 은혜라고 믿는다.
나와 허 선교사는 평생 십자가의 복음을 믿었고 선포했으며
그 복음대로 살고자 몸부림쳤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하신 말씀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고 영생을 얻으며 주님의 제자가 되는 조건으로 여기며 붙들었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나는 틀렸고 이기적이며 악하고 주님을 대적한다.
내 속에 선한 것이 없으니 내 생각도 내 주장도 부인되는 것이 마땅하다’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제의 상황은 잊어버리고 오늘 내게 주어진 모든 환경을 가장 기쁘게 받아들이며
내일을 주님께 의탁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졌기에 우리는 아마존이 주는 고통과 고난을
오히려 자아를 죽이는 기회라 여기며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었다.
언제부터 이런 믿음을 가졌는가?
우리 부부가 주님을 인격적으 로 만난 20세 초반부터다.
허 선교사의 영적 아버지라 할 수 있는 동교동교회 음동성 원로목사님의 영향으로 시작되었다고 믿는다.
우리가 읽은 초대 교부들의 삶과 금언들을 비롯해
잔느 귀용과 프랑수아 페넬롱, 앤드류 머레이, 십자가의 성 요한, 아빌라의 테레사,
워치만 니, 제시펜 루이스, 마이클 웰스 등의 저서들은
모두 십자가의 복음에 관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내가 본성을 부인하고 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포기하는 것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복음과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가장 깊이 숨겨진 나의 우상을 뽑아내는 과정이었을 것이다.
끝끝내 허락하고 싶지 않은 것을 주님은 나를 사랑하시사 추적하시는 사랑으로
코너로 밀어 넣으시고 결국 항복을 받아 내셨다. 할렐루야!
◑마지막 호흡까지도 ‘사랑’
2013년 9월 13일은 아내와 내가 결혼한 지 33주년이 되는 날이 었다.
백장미 33송이를 주문하여 배달시킨 뒤
나는 11일 아마존으로 돌아가기 위해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에 올랐다.
언제나 그랬듯 이 허 선교사를 한국에 두고 떠날 때면 가슴이 무너졌다.
12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샌프란시스코 공항의 기내에서 나를 찾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김철기 손님은 승무원을 만나라는 내용이었다.
무슨 일일까? 승무원은 내게 사모님이 위독하니
이 비행기를 다시 타고 한 국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승무원이 KAL 직원과 연결해 줘서 입국과 출국 심사를 동시에 밟았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내내 소리 없이 절규했다.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 가는 등불도 끄지 않으시는
자비하신 주님, 당신의 자비를 구합니다.”
그동안 기도한 내용들이 머릿속으로 스쳐 지나갔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것처럼 허 선교사에게 기적을 베풀어 달라고
무언으로 부르짖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견습 선교사로 아마존에 왔던 김낙준 전도사님이 마중 나와 있었다.
공항에서 병원으로 전화하니 허 선교사가 힘겹게 말했다.
“어서 와.”
그리고 그것이 나와 나눈 마지막 대화였다.
병원에 도착하니 허 선교사는 기계장치를 주렁주렁 달고
코에는 산소마스크를 끼고 양손으로 침대 모서리를 잡고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있었다.
볼펜으로 유언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그리고 얼마 후, 이제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했는지
그 고통 중에 나를 향해 큰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러고는 혼수상태에 들어갔다.
수산나가 좀 쉬라 해서 보호자 의자에 누웠더니
기계장치에서 숨이 멎는 소리가 들려
벌떡 일어나 그녀를 다급하게 불렀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머리를 때리는 생각이 있었다.
과연 그녀의 살아생전에 지금과 같은 사랑으로
그녀를 불러 본 적이 있는가.
충격이었다. 나는 허 선교사를 사랑한 적이 없구나.
단지 내 필요를 위해 아내를 이용했을 뿐이구나.
나를 위한 사랑만 했구나. 나의 위선이 적나라하게 까발려졌다.
그에 반해 허 선교사는 마지막 숨을 몰아 쉬면서도 내게 사랑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그대로 그리스도의 향기였다.
허 선교사의 죽음은 하늘 꼭대기에 있던 내가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는 충격이었다.
충격은 장이 끊어지는 슬픔이 되었다. 그 슬픔은 나를 회개의 자리로 이끌었다.
회개의 자리는 내 인생 전체가 사기였음을 드러내는 자리였다.
나는 극심한 혼란에 빠졌다.
이른 새벽에 그렇게 세상을 떠난 허선교사를 밤이 늦도록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가 떠났다는 사실이 납득되지 않았다. 아무리 울어도 눈물이 마르지 않았다.
귀에 들리는 것도 없고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다.
다만 나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했다.
밤이 되었다. 마음속에 세미한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너의 평생 소원이 나와의 연합이 아니었느냐?”
“맞습니다.”
“내가 너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하여 네 아내를 취했다. 너의 기도를 거절했다.”
겨우 혼란이 수습되고 이해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고통은 오히려 더 커졌다.
허 선교사가 떠난 후
주께서 맡기신 사명을 이루는 데 자기 목숨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충성한 여인 허 선교사는 세상을 떠나면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본인이 세상을 떠나면 화장하여 우리가 늘 말하던 신학교 교문 뒤에 묻어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유언을 따라 한국에서 장례를 치르고 아마존으로 오는 중에
뉴저지를 지나면서 지인들의 요구로 가스펠 펠로우쉽교회에서 추모 행사를 가졌다.
그리고 아마존에 도착하여 장례식을 다시 했다.
샌디에이고 삼일교회 손찬식 목사님, 상파울루 김태현 장로님 내외와 주호걸 장로님,
브라질리아 아마라우 형제와 도시의 유지들, 군부대 지도자들,
우리 교회 교인들과 신학교 가족들, 인디오 형제들이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들은 마지막 순간에도 형제들을 사랑하는 증거로
아마존에 매장해 달라고 부탁하고 떠난 허 선교사에게
눈물의 꽃을 바치며 작별인사를 하였다.
그렇게 허 선교사는 한줌의 재로 아마존에 묻혔다.
장례식 후, 우리 도시의 시의회가 허 선교사가 이 지역에서 행한 수고와 업적을 영구히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교회 앞을 지나는 큰길을 ‘허운석 선교사의 길’로 이름을 바꾸었다.
2014년 7월 마침 서울 신촌교회 조동천 목사님과 선교부장 최재형 장로님과
동행한 단기선교팀이 단기 사역을 마치고 허운석 선교사 길 개통식에 참석했다.
허 선교사가 떠나고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놀라운 변화는 복음의 문이 열린 것이다.
이 도시의 모든 사람들에게 허 선교사는 사랑을 실천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되었고
그들의 가슴을 녹였다.
그래서 그동안 우리 선교에 대하여 가졌던 모든 의심을 녹이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으로 바꾸었다. 할렐루야!
진실로 허 선교사는 아마존 땅에 떨어져 죽은 한 알의 밀알이 었다(요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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