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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혼여성들의 심리학적 이해 및 관계치료

LNCK 2018. 7. 19.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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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리아
       
◑도입
 
현대사회는 많은 여성들의 가치관의 변화와 사회적 지위향상 등으로
이혼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급속한 산업화, 도시화, 정보화 사회로 발전하면서
핵가족화, 출산율의 감소, 맞벌이 가정의 증가, 부부중심의 가족,
개인주의사고 등 가족제도의 변화를 가져왔다.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 전통적으로 유교적이고 가부장사회인 한국사회에서는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서 변화를 가져왔지만
아직도 여성의 이혼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거부감으로 바라본다.


남성의 이혼보다는 여성의 이혼을 더 비난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혼한 여성은 삶의 실패자로 보는 사회적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스스로를 사회적 약자로 생각하게 되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를 두려워한다.


상처를 안고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외롭게 하며 살아간다.
냉담한 사회의 시선 앞에 전투적으로 살아 내야한다.

이혼이란 낙인을 찍고 세상을 맞받아쳐 살아가기란
이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삶의 또 다른 도전이다.
 
교회공동체 내 에서 이혼여성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죄책감이란 짐을
하나 더 얹고 살아간다.

교회에서 이혼은 죄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고 율법의 잣대로 정죄하는 시각이 많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다룬다.


이혼한 여성들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인가,
이혼은 기독교 윤리에 어긋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이혼의 아픔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여성들은
교회공동체 안에서의 소극적이고 냉담한 비난의 눈초리에
교회에서 더 큰 상처를 받고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한 채 교회를 떠나 갈수 밖에 없다.


교회공동체 안에서 교회는 아픔이 있는 이혼 여성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 상처를 공감하고 돌보며 함께 성장 할 수 있을 것인가?


◑이혼에 대한 이해


▲이혼의 실태 및 증가 원인
2017년 통계청이 내놓은 이혼 통계자료에 따르면
전체적으로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 이혼율은 OECD 국가 중 9위, 아시아에서는 1위이다.

통계청이 내놓은 ‘혼인-이혼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17년 혼인건수는 전년 (2016) 대비 6% 감소한
26만4500건으로,
1974년 (25만9600건) 이후 43년 만에 최저를 기록했다.


1996년에만 해도 43만 건이었던 혼인건수는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30만 건대로 떨어진 뒤
2016년에는 20만 건대로 추락했다.


이혼 건수는 10만6000건으로 전년 대비 1.2%, 1300건이 감소했다.
이 같은 이혼 감소는 결혼 자체가 줄어든 영향이 작용했다.
혼인 건수에 비례해 보면, 감소한 수치라 보기 어렵다.



위 통계표에서 볼 수 있듯이 한국사회의 이혼 건수는
90년대 들어서 가속화되었고
IMF외환 위기 직 후인 97년에는 9만 건에 이르고
2003년에는 17만 건으로 증가했다.


이혼의 증가 원인으로는 여성들의 높아진 교육수준, 경제적 활동 참여,
사회에서의 여성들의 지위상승, 개인주의의 가치관 형성,
남녀평등 의식의 확산 등을 들 수 있겠다.


평균 이혼 연령층이 상승하고 있는 것은
이혼이 젊은 부부의 문제라고 불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이혼율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혼여성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기독교 윤리적으로 명확한 답변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사람이 이혼을 했을 경우
신앙적인 갈등으로 인해 고통은 이중으로 더해진다.

기독교 윤리에서 이혼은 인간의 죄로 말 할 수 있는 것인가.
기독교 윤리에서 이혼은 어떻게 설명되어 져야 하는가를 생각해보고
성서에 나타난 이혼에 대해서 살펴보자. 
 
▲구약에서의 이혼
구약성서에서는 이혼을 금하지 않았다.
이혼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언급된 것은 신명기 24:1-4절에서이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 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어 보낼 것이요” 신24:1


고대근동에서 이혼에 대한 주도권은 남자에게 있었고
남편이 아내에게 불만이 있을 때 쉽게 이루어 졌다.

이혼증서를 두어 자세한 사유를 적도록 하여 이혼이 쉽게 이루어지는 것을 막고
여자를 보호하려는 면이 있었다.


신명기는 남자에게 이혼의 사유를  “남편의 수치 되는 일을
여자에게 발견했을 때 이혼의 사유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고 있다.
수치 되는 일에 대한 해석은 끊임없이 논란이 되어져 왔다.


▲신약에서의 이혼
신약시대가 되면서 1세기경 이혼은 유대인과 이방인들 사이에 퍼져있었다.
그 당시 시대 상황 속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한다.

마가복음 10장2절에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이에 대해 예수님의 입장은 단호했다.
“창조 때로부터 저희를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 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 지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19장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라”고 말씀하신다.
즉, 음행을 저질렀을 때에만 이혼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반면, 바울은 고린도전서 7장10-11절에 이혼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바울은 이혼에 대하여서 오히려 예수님의 가르침보다 더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이었다.
배우자 중 한쪽이 믿지 않더라도
하나님을 믿는 배우자가 믿지 않는 배우자를 구원으로 이끌 수 있기 때문에
이혼을 금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혼을 원하시지 않는다.
그러나 가정 안에서 배우자의 심한 학대와 폭행으로 고통을 당하면서
무조건 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결혼은 한 몸을 이루는 신뢰의 관계로 보셨고
동반자관계의 언약이다.


그러나 간음과 같은 돌이킬 수 없는 죄로 인해 신뢰가 깨어 졌을 때
결혼의 언약은 파괴된다.
또한 부부가 구타와 학대, 비인격적인 대우로 회복 될 수 없는
고통 속에 놓였을 때 결혼은 언약의 파괴가 되므로 이혼을 인정해야한다.


▲이혼에 대한 사회심리적 이해
이혼 초기에 경험하는 다양한 부정적인 정서 중에서
가장 지배적인 감정은 분노와 상실감이다.
이혼 여성은 결혼생활의 유지를 위해 인내해온 사실과 자신,
이혼으로 인해 상실된 현실적 조건에 분노한다.


자신을 보호하고 위안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
자신과 지녀의 인생에 오점을 남겼다는 것 등으로 인해 상실감을 느낀다. 

이혼 여성들은 또한 외로움, 죄책감, 무력감 등의 감정을 경험하기도 한다.


특히 30대 이혼 여성들은 재혼이나 낭만적 사랑을 기대하기도 하는데,

이에 비례해서 외로움이 더욱 증폭되기도 한다.

이혼 여성들은 자녀문제와 연관해 죄책감을 지속적으로 경험하기도 한다.


어린 자녀를 남겨두고 혼자 나왔다는 죄책감, 자녀에게 심리적 고통을
남겨주었다는 죄책감이다.
 
이혼여성에게 중요한 또 하나의 문제는 경제적 문제다.
전문직 이혼여성을 제외하고, 대부분 이혼 여성인 경우,
대체로 살고 있는 집이 유일한 경제적 자산이다.
학령기 자녀를 둔 이혼여성은 이혼과 동시에 생계비를 벌어야 한다.


성 및 대인 관계에서도 이혼 여성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심한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한다.
이혼 이후 여성들은 점차 자신의 성적 욕구를 발견하고
이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대인 관계에서 대부분의 이혼 여성들은 소외감을 느끼거나 위축되거나
혹은 타인을 대할 때 매우 신중해진다. 또 이혼 여성에 대한
일반 여성들의 부정적 태도에 직면해 여성을 적으로 인식하기도 한다.


▲이혼과 교회의 역할에 관한 논의에서 이혼에 관한 목회 신학적 관점의
가장 중요한 조명은
이혼이 옳은지 그른지에 대한 직접적인 논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Wayne E. Oates는 이혼한 사람들에게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관해
가치 있는 생각을 갖도록 한다.
그는 이혼한 사람들이 직면한 문제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전체 공동체의 관심사라는 것을 지적한다.


이혼한 기독교인은 가르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무책임한의 증상이고
인간고통의 동료로서의 용기의 실패이다.


그는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지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면서
교회와 사역은 결혼 전부터 이혼이 있기까지 모든 것에
교회가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지 못했는지 책임감을 갖아야 한다고 한다.


이혼 사람들의 고통과 책임에 대해 교회가 상호책임이 있다는 관점을 갖고
모든 책임과 부담을 공유해야 한다고 했다.


교회가 이혼한 여성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에서
그들의 관점이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하고
이혼에 까지 이르게 한 책임을 함께 지고 가겠다는
목회적 돌봄의 깨달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에 생각을 같이 하게 된다.


교회가 목회적 역할을 소홀히 하였다는 이혼을 찬성하고 반대하는
좁은 관점에서 벗어나


이들을 양육하고 돌봄의 넓은 관점으로 초점이 옮겨가야 한다고 한다.    
교회 안에 이혼한 여성들은 이혼의 상처를 갖고 힘들어 하고 있으며
좌절과 슬픔으로 사람들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불안과 두려움에 있을 것이다.


이들에게는 진정성 있는 사랑으로 위로하고 돌보는 교회 공동체가 필요하다.
교회는 공동체적인 차원에서의 이혼에 대한 바람직한 개념을 정립하고
여러 가지 당면한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극복을 위한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본론 : 이혼여성과 관계치료


공감과 힘 불어넣기는 개인을 이끌어내는 결정적인 요소이다.
성장에 관계에서 공감과 힘 불어넣기를 받지 못하면
그 사람이 성장을 경험하기가 어렵다.
 
인간은 일생동안 관계를 통해 그리고 관계를 향해 성장한다.
모든 변화와 성장과 성숙은 나와 관계 안에서 일어난다.

아픔과 고통을 공감해 주고 반응하는 것은 공감을 통해
타인에게 영향을 받고 주는 관계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영향은 받아들여 질 수 없다고 생각하거나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개인의 일부들이
관계 안으로 다시 들어 올 수 있게 된다.
서로 더욱 함께하게 되고 변화와 배움에 자신을 열게 된다.
 
이혼여성들은 단절의 경험을 한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의 고통과 상처나 분노를 표현하기에 이미 큰 두려움이 있다.

강자 앞에서 자신의 경험을 억압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자신을 숨기고 관계에 있어서도 솔직하지 못하고 숨게 된다.


그래서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만들지 못한다.

자신이 무능한 사람이며 존재감 없다고 느끼게 된다.
관계에 있어서 종종 수치심과 거리감을 가지게 되고
인격적 성장은 정체 된다.


이혼여성들에게 있어서 상호 공감과 상호간의 힘 불어 넣기는
회복과 인격적 성장을 위한 핵심 과제인 것 같다. 
 
▲사례 연구 : 관계를 통해 회복된 이혼 여성
강집사님(가명)은 기독교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왔다.


대학1학년 때 처음 만난 남편과 결혼해서 살다가
결혼 7년 만에 이혼을 하고 아이들 둘을 키우며
가정경제를 이끌기 위해 열심히 일하며 치열하게 살아왔다.


이루 다 말로는 설명 할 수 없는 그녀의 지나온 20년의 삶은
막막함과 먹먹함의 이미지로 표현된다.

살아갈 것에 대한 막막함이 늘 삶을 긴장시켰고
자신을 돌아 볼 때는 자기 연민에 숨이 막히도록 가슴이 먹먹했다.


그래서 자신을 돌아 볼 틈 없이 일하는 시간이, 육체의 힘듦이 오히려 편안했다.

아이들을 위해 이혼을 선택하고 고통과 아픔의 길을 내딛고자 했지만
삶에 대한 좌절과 분노는 눈을 뜨면 되살아나서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다.

두 눈을 뜨기 싫어서 이대로 죽는 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는 갈등이 아침마다 찾아왔다.


이 세상에서 그녀에게 주어진 두 아이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아침은 그녀에게 찾아오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그녀는 사람들에게 늘 밝고 친절했다.


착하고 성실한 모습은 그녀를 지키고 살아가게 하는 무기였고
일하면서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 받게 했다.

그러나 어느 누구와의 관계에서도 자신을 드러내 놓지 않았다.


일하면서는 혹시 이혼이 일에 걸림돌이 될까봐 관계에 경계선을 그었고
교회와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두렵고 수치스러웠다.

사람들의 대화에서 무심코 이혼 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가슴이 내려앉았고 불편했다.


자신의 말을 하려면 가슴이 떨려서 한마디도 제대로 못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스스로 피하고 단절시켰다. 
그래서 그녀는 20년 동안 어디에서고 말을 잘 못하는 말없는 사람이 되었다.


교회에서 마음이 조금 편안하게 생각되는 한집사님(가명)이
일대일 성경공부를 해주고 싶다고 제의를 했다.
신학을 공부한 집사님이시고 일주일에 한 번씩 직장으로 찾아와
해주시겠다고 하셔서 그녀는 얼른 받아들였다.



첫 번째 만남에 강집사는 자기 아픈 부분을 조금 드러내 보였는데
한 집사님은 눈믈을 흘리며 진정성 있게 따뜻하게
정확한 공감을 가져주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픈 이야기들을 진정성 묻어나오게 나누어 주었다.


누구에게 드러내고 싶지 않고 감추고 싶은 이야기 일 텐데
그녀에게 말해주는 것에 그녀는 깊은 신뢰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한집사님의 힘듦을 이해하고 공감 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집사는 자신의 이야기들도 하나 둘 꺼내놓게 되었다.

상호 공감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관계를 통해 둘은 함께 성장해 나갔다.


한집사님이 자기를 공감하고 진심으로 위하고 있다는 신뢰가 형성되었고
그리하여 관계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상담과 관계를 통해, 강집사는 서서히 치료, 회복되어져 갔던 것이다.


모두 16번의 성경공부를 하면서 한사님과의 만남 동안
좋은 공감적 치료자로서 상호 공감을 가져왔다. 

관계적 회복으로 발전해 나갔고 관계적 용기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관계 속 성장은 공동체 안에서의 마음가짐에도 영향을 주었고
강집사 자신의 가치에 대한 자존감 또한 높여 주었다.

상호공감은 자기공감으로 발전하게 되어서
그녀의 스스로의 감정에 머무르며 감정을 발달시켜나갔다. 
 
이제 두려움의 벽을 허물고 수치심의 빗장을 거두어 치우게 된 그녀는
스스로를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고 말하는 방법을 이제 막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느꼈던 공감의 능력을
그녀와 같이 아프고 고통스러운 사람들에게 진정으로 공감해주고
용기를 주기위해 사용하고 싶어 한다.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로마서 1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