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자의 가시면류관 민33:55
이중표 목사
사람에게는 누구나 다 찌르는 가시가 있습니다. 가시가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나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가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평안하게 보일 수 있으나 보이지 않는 어떤 가시가
우리를 찌르고 있을 때 괴로움을 느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생 동안 몸에서 떠나지 않는 육체의 가시가 있습니다.
평생 괴롭히는 질병이 있습니다.
또 어떤 목사는 가정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아내가 가시 노릇을 하고 자녀들이 가시가 되어서
일생동안 괴로움을 당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친구나 동역자가 가시가 되어 고통을 주기도 합니다.
훌륭한 목사님들 가운데도 가시와 같은 교인들이 있어서 괴롭게 목회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일평생 사는 동안 가시 없이 살 수는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가시를 가지고 있습니다.
위대한 사도인 바울에게도 남모르는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육체의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내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 사도 바울을 찔렀던 가시는 무엇이었을까요?
칼빈은 영적인 유혹이나 의심, 가책, 갈등이라고 해석했습니다.
루터는 바울이 받았던 모든 핍박, 환난을 육체의 가시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러나 터툴리안은 바울이 두통, 안질병으로 평생 고생을 했는데
이것이 그의 가시였다고 해석했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해석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바울을 끈질기게 괴롭히던 육체적인 고질병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목사는 일생동안 가시 속에서 산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두 가지의 가시가 아닙니다.
늙은 가시로부터 크고 작은 가시가 찌르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자들에게 주어지는 가시를 어떻게 극복하고 치유하며
그 가시를 면류관으로 바꿀 것인가를 생각하며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우리 가운데 가시로 고통당하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 마음을 괴롭히는 가시의 고통을 느끼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일시적인 가시가 있고 평생 떠나지 않는 가시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것도, 공동체적인 것도 있을 것입니다.
교회적인 것도 있고 또 민족적인 공동체의 가시도 있습니다.
“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않으면
너희가 남겨둔 자가 너희 눈에 가시와 너희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너희 거하는 땅에서 너희를 괴롭힐 것이다.
평생에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이 가나안 땅의 족속을 추방하지 아니하면
그것들이 너희에게 눈의 가시와 옆구리를 찌르는 가시가 될 것이다.”(민 33:55)
가시는 괴로움이요, 아픔입니다.
또 어떤 가시는 죽지도 않고 두고두고 목회자를 찌르고 상처 내는 것을
사명으로 알고 열심히 가시 노릇 하는 분들이 교회 안에 있습니다.
이런 가시가 찌를 때 가시에 찔려 죽지 않고
승리하는 신앙적인 자세가 있어야 됩니다.
◑가시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받아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12:7)
‘사단의 사자’라는 말은 마귀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사단이 곧 나를 찌른다는 것입니다.
직접 사단이 고통을 주고 있으나 하나님의 허락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사자 노릇을 한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당하고 있으나 하나님이 배후에 계십니다.
직접 사단이 건드리고 괴롭히고 있으나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가시가 올 때 원망하거나 불행으로 저주하지 말고
그것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로 받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고통이 휘몰아칠 때 저주나 불행으로 받지 말고
하나님이 주시는 시련으로 받아야 합니다.
바울은 표현할 수 없는 육체의 고통이 가시로 찌를 때
하나님이 주신 사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이 가시를 주었습니까? 사도 바울은 이렇게 깨달았습니다.
‘자고하지 않게 했다.’는 말은
스스로 교만하지 않도록 겸손케 했다는 것입니다.
즉 은혜 받으라고 주셨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것이 너무나 컸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 보통 사람과 달랐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 (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한 말이로다.”(고후 12:2-4)
사도 바울은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황홀한 경지에서 하늘로 올라가서
낙원에 갔습니다.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신비한 천국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그 경지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런 은혜를 사도 바울이 받았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그는
2천년 교회사에서 예수님 이후에 처음 나오는 대신학자입니다.
학문으로 보면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습니다.
신비의 체험으로 봐서는 천국에 직접 간 자요, 은혜가 충만한 자였습니다.
그는 유대인 중에 특별히 율법에 있어서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참으로 사도 바울은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는 성격이 너무 강직해서 한번 틀어지면 상대하지 않을 정도로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마가 요한이 저지른 한 번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해서
그의 선배요, 또 그의 동역자였던 바나바와 결별할 정도로 강직한 사람이었습니다.
분명히 사도 바울은 영적으로 교만할 조건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생각할 때 그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에
그에게 겸손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하고 손을 쓰셨습니다.
바울이 받은 은혜가 크니, 내가 좀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
가시를 너에게 주겠다는 것입니다.
남은 병은 고치면서 자기 병은 고치지 못하고,
남에게는 능력을 행하면서 자기에게는 능력을 베풀 수 없는
연약한 인간인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그는 하늘 높이 올라가는 신비한 은혜를 받았지만
‘너는 땅에 있는 사람이다.’라고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겸손을 알게 한 것입니다.
가시를 주어서 조금 교만해지려고 하면 찔러 겸손하라고 경고했던 것입니다.
참으로 사도 바울의 영적인 교만을 하나님이 꺾으셨습니다.
그의 가시로 꺾으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에 자고하지 말라고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가시를 주면 받은 은혜마저 소멸해버리고
가시에 찔려서 가시만 남는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는 교인들에게 찔린 가시 때문에 상처를 입고 병들고 신음하고
탄식하는 주의 종들을 주변에서 너무 많이 보고 있습니다.
언제 무슨 가시가 우리를 찌를지 모릅니다.
그러나 가시에 대한 자세는 신앙적으로 가져야겠습니다.
◑몸의 가시를 면류관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몸에 병이 있을 때는 고쳐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쳐지지 않는 병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건강한 것만 가치가 있고 병들면 가치가 없는 줄 압니다.
성공하면 가치가 있고 실패하면 망하는 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는 다르게 옵니다.
성공하거나 건강할 때는 상대적인 자아가 승리합니다.
그러나 실패하거나 병들었을 때는 절대적인 자아가 승리합니다.
목회자가 외면적인 가치관에서 내면적 가치관으로 자신을 비약시키는 데 있어서
가시가 주는 은혜는 엄청난 복이 됩니다.
제가 존경하는 목사님이 한 분 계십니다. 그 분이 바로 이상근 목사님이십니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시골에 가서 목회하면서 이상근 목사님에게 편지를 띄웠습니다.
그는 대학자요, 위대한 목회자요, 훌륭한 인격자였기 때문에 편지를 띄웠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을 가장 감동시킨 책이 뭡니까?”
그랬더니 가장 감동을 받은 책을 영문으로 적어서 보내주셨습니다.
이 분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께로 가셨는데
이 분의 아들 이성희 목사님이「내가 본 아버지」라는 회고담을 썼습니다.
이상근 목사님이 열여섯 살 때 발에 병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구 달성공원 느티나무에서 40일 동안 작정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병은 낫지 않고 더 심해져 갔습니다. 3년 동안 출입을 못하니까
학교에 갈 나이에 학교에도 못가고 집안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어머니가 한방약을 붙인 것이 독이 나서
평생 낫지 못하는 발이 되었습니다.
그만 대학 진학도 못하고 검정고시로 학교 과정을 마쳐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바깥 출입을 못하니까 집안에서 성경을 거의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그때 방 안에서 3년 동안 열심히 성경만 읽어 머릿속에 입력시킨 것이
성서 대학자가 되는 동력이 된 것입니다.
60년 동안 발병으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1993년 그가 은퇴한 후에 외과 의사의 권유로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발뒤꿈치에서 1.5㎝의 머리카락 굵기의 철사가 나온 곳입니다.
어렸을 때 맨발로 다니다가 철사에 찔린 것이 속에 들어가서
그의 평생 가시가 된 것입니다.
이 목사님은 발 수술을 받은 후 철사를 들고
“이 철사가 나의 가시가 되어 60년 동안 나를 찔렀으나
내가 성서학자가 되게 한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였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도다.”하고 간증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무슨 가시가 있습니까?
그 가시를 원망하지 말고 그 가시를 통해서 하나님을 붙드십시오.
그러면 주님을 찔렀던 가시관이 찬란한 면류관이 되듯이
여러분들의 가시도 하늘의 면류관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가시 면류관의 비밀이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가시에 찔리면서 자기도 면류관으로 바꾸어 쓸 수 있는
희망을 줍니다.
금 면류관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닙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이고 실망시키고 얻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시 면류관은 자기의 믿음만 있으면
누구나 만들어 쓸 수 있는 하나님이 주신 면류관입니다.
저 이중표 목사는 개인적으로 어려서부터 너무도 많은 병고에 시달렸습니다.
죽지만 않는 병이라면 병은 면류관을 만들어 주는 가시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병원에 드나들면서 질병의 가시가 내 인생의 면류관으로 바꾸어 졌습니다.
저는 18세에 폐병이 들었습니다.
도저히 나을 소망이 없어 자살을 결심하고 약을 샀습니다.
음독자살을 하려는 순간 눈을 감으니 지옥 환상이 나타나서 죽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큰 은혜였습니다.
서울대병원에 들어가서 세 번째 수술을 받을 때
마취 받는 시간에 “아직도 안 죽었네.”하는 의사의 한 마디는
별세신앙의 큰 비밀을 알려주는 은혜가 되었습니다.
몸이 약하니까 사람을 만나지 않고 조용히 혼자 있으면서
주님과 교제하므로 신비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다 면류관으로 바꾸어졌습니다.
◑교인 가시를 면류관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교인 가시는 목사에게 참 무서운 가시입니다.
일반적으로 목사에게는 교인이라는 가시가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든지 가시에게 찔려 본 경험은 다 있을 것입니다.
어떤 목사는 얼마나 고통이 심했던지 충격으로 죽은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교인은 목사에게 가시 되는 것을 쾌감으로 느끼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죽지도 않고 명이 긴 사람이 많습니다.
저희 교단에 선배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 교회는 늙은 가시들이 교대로 찌릅니다.
당회를 하면 목사 하나를 포위하고 장로 가시들이 찌르니까
얼마나 아픈지 회의를 마치고 나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릅니다.
어느 날 연말 무려 7시간 동안 당회를 하면서
얼마나 가시에 찔렸던지 목사님이 얼굴이 검은 빛으로 변하여 당회실을 나오더랍니다.
“목사님, 오늘은 얼굴이 검습니다. 빨리 들어가 쉬시지요.” 했더니
“가시가 너무 찔러서 열이 오르니 얼굴이 타서 그런다.”하더랍니다.
목사님은 그날 밤 집에 들어가 목욕탕에서 쓰러졌습니다.
그리고 식물인간으로 7년을 지내고 소천 했습니다.
장로가 찌르는 가시는 더욱 아픕니다. 독한 가시가 많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장로 가시에 찔려서 목회를 실패합니다.
그러므로 목사는 그 가시를 피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대로 가시가 찌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교인 가시에 찔릴 때 은혜를 받으면 좋지만
그러지 못하고 가시와 싸우게 되면 결국 피 흘려서 죽습니다.
많은 목사들이 교인 가시와 싸우느라 자기도 가시 목사가 됩니다.
그러면 교인 가시가 합심해서 달려들어 목사 가시를 죽이고 맙니다.
장로가 가시가 된다고 목사도 가시가 되면 안 됩니다.
권사가 가시 된다고 사모가 가시 되면 죽습니다.
저의 경험입니다. 가시에 찔리면서 죽지 않고 산 것이 기적입니다.
저도 하마터면 ‘가시 교인’과 싸우다가 죽을 뻔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싸우지 않도록 은혜를 주셔서 살아났습니다.
제가 시골 교회에 있을 때 늙은 가시가 있었습니다.
그 가시 교인을 뽑아내려고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 가시 교인 때문에 목회를 못하겠습니다.
설교도 찌르고 매사에 찌르니 아파서 목회가 안 됩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목사들이 찔려서 견디지 못하고 교회를 떠났고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 묵은 가시를 다른 데로 보내 주시옵소서.”
그때 응답은 “종아, 갈 데가 없다. 그 가시를 누가 받아 주겠느냐?
거기 있는 것이 좋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주님, 그러면 그 늙은 가시를 천당으로 일찍 데려가 주시옵소서.” 했더니
“아직 때가 안 되었다.”하셨습니다.
“오, 주여, 그러하시오면 그 가시를 꺾어 주시옵소서.
그 못된 버릇 고쳐 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했더니
“나도 못 고치겠다. 나도 그 가시는 고칠 능력이 없다.”하셨습니다.
“전능하신 주님,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시던 그 능력으로
고쳐 주옵소서.”했더니
“병든 자는 고칠 수 있었고, 죽은 자는 살릴 수 있었지만
가룟 유다는 못 고치고 내가 죽었다.
너도 고칠 생각 말고 너나 죽을 생각해라.
그 가시 뽑으려고 하면 너 명대로 못 살고 죽는다.”라고 하였습니다.
얼른 깨닫고 순종했습니다. “가시를 손대지 않겠습니다. 나를 죽여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때부터 가시가 찌르지 않았습니다. 그런 가시는 설교로 안 됩니다.
기도로 안 됩니다. 금식으로 안 됩니다. 가시를 통해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9절)
족한 은혜가 되도록 내가 별세를 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를 받았음에도 가시 교인을 건드리고 죽을 고비를 넘긴 일이 있습니다.
나를 별세하라고 하나님은 가시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알았습니다.
이 종이 시골에서 10년 목회를 하고 서울 관악교회에 왔습니다.
교회에 부임해 보니 가시 같은 교인이 있습니다. 매사에 나에게 거침돌이었습니다.
저 가시를 놓아두면 평생 찔리고, 살 일이 걱정이 되었습니다.
제가 부임하기 직전에 있던 종이 그 사람을 장로로 피택해 놓았기 때문에
그가 피택장로가 되어 있는데 그것을 백지화시켰습니다. 이것은 행정상 불법이었습니다.
그때 가시 같은 교인이 선동해서 수많은 가시가 나를 찌르려고 달려들었습니다.
심지어 그의 친척인 주일학생 작은 가시까지 동원했습니다.
제 아내가 꿈을 꾸고 이렇게 전해 주었습니다. “여보, 어젯밤에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당신을 물려고 용이 나타났어요. 그러니까 당신이 가슴에서 칼을 들이치니
두 마리로 변해서 물려고 하고 또 칼로 치니 이번에는 네 마리로 변하고 칼을 휘두르니
앞뒤 수없이 나타나서 물려고 달려드는 것이었어요.”라고 하면서 식은땀을 흘렸다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교회 가시가 얼마나 무섭고 두려운 것인가를 알았습니다.
그 일로 교회는 어느 한 날 편한 날이 없었습니다. 어느 주일 밤이었습니다.
저는 예배를 방해하는 성가대석 쪽으로 조용히 하라고 성경을 던졌습니다.
그것으로 여학생 코피가 흘렀습니다.
저는 그 일로 노회에 고발되어 노회 재판국이 생겼고 당회장권을 박탈당했습니다.
저들은 나를 강단에서 끌어내리고 가운을 찢고 교회를 수라장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사택에 있는데 나가라고 그분의 부인이 고무신을 벗어들고 제 뺨을 때렸습니다.
정말 그 가시는 무섭게 찔러댔습니다.
저는 청계산으로 도망을 쳤습니다. 청계산에서 6개월 동안 찬 이슬을 맞으면서
은혜의 계곡 눈물의 골짜기를 지나야 했습니다.
저는 그때를 회상하면 지금까지 살아온 것이 기적으로 느껴집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저에게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제 목회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때 저만이 아는 숨겨진 두 가지 큰 악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자기의’라는 교만이었습니다.
농촌에서 10년 동안 성공적인 목회를 하여 인간적인 의로움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또 하나는 관악교회에 부임해서 6개월 만에 배로 성장하면서 성공의 허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손을 쓰시되 사단의 사자 곧 가시를 허락하셨습니다.
저는 관악교회 일을 통하여 너무도 큰 상상할 수 없는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종으로 세우기 위해 그토록 가혹한 채찍과 막대기를 사정없이 내리치셨습니다.
무서운 가시로 사정없이 찌르게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으며 고통과 시련의 아픔의 계곡을 지나야 했는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시련의 골짜기는 하나님의 예정된 계획의 코스였습니다.
그때 그 시련 속에서 저는 감사하는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심한 가시가 나를 찔렀는데도 주님의 뜻으로 잠잠히 받고 누구를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가시가 될 생각을 안 했습니다. 경찰서에 허위문서로 고발했으니
이쪽도 같이 해야 한다고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반대했습니다.
같이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목회자의 소명에 대하여 추호도 망령된 말을 안 했습니다.
그 일로 한신교회를 개척할 수 있는 복을 주셨습니다. 정말 가시를 면류관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저는 그때 가시를 통하여 가정을 살려냈습니다. 원래 저는 가정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목회를 돕는 보조 기능으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쫓겨날 때 제 곁에는 제 아내가 저를 따라 주었습니다.
청계산으로 도망쳐 있는데 어느 날 아내가 아이와 함께 갈아입을 옷을 챙겨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쓸쓸히 내려가는 아내를 보면서 제 눈에서는 눈물이 비 오듯 쏟아졌습니다.
저와 함께 살아주는 것이 너무 고맙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 일로 겸손을 알았고 저의 소중한 사람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 뒤로 그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흐릅니다. 참으로 큰 은혜를 주셨습니다.
가시 교인과 싸우다가 가시 목사가 되어 망한 사람이 많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가시가 찌르고,
유다 가시가 찌르고, 로마 군병의 창이 찔렀으나 주님은 참고 은혜를 받으셨습니다.
◑가시가 찌를 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겸손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있는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라고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8-9)
바울은 자기에게 어떤 가시가 있어 찌를 때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족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그는 깨달았습니다.
어떤 가시가 여러분을 찌를 때 사람을 원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가시로 하늘의 능력을 입히실 것이며,
그 가시를 면류관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가시가 찌를 때 그의 눈에서 나오는 찬란한 눈물을 통해서 천국 가는 길을 활짝 열어 주실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어떤 약함 때문에 탄식하십니까?
어떤 상처 때문에 아파하십니까? 어떤 약점 때문에 부끄러워하십니까?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십시오. 혼자 간직하고 있으면 한평생 약점이 됩니다.
혼자 괴로워하면 한평생 상처가 됩니다.
혼자 가지고 있는 한 아무도 치료해 주지 못하는 아픔으로 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큰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문제가 생길 때 기도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그대로 들어 주시든지
아니면 그 기도를 거절하시고 더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는 아플 때 기도해야 합니다. 가시에 찔릴 때 그 아픔의 고통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위치만 니 목사님은 중국의 대 성서학자요, 순교자입니다.
그는 큰 은혜를 받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몸에 떠나지 않는 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금식하면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이 병을 내게서 물러가게 해 주십시오.”
그런데 물러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오랜 기도 중에 꿈에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가 중국 양쯔강에 배를 타고 지나가는데 큰 바위돌이 자기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래서 배가 지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 그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이 바윗돌을 제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배가 지나가도록 해주십시오.”
그때 하나님께서 잠잠히 들려준 음성이 있었습니다.
“바윗돌을 옮겨주랴, 강물이 넘쳐서 지나가게 해주랴.”
그는 “오 주여, 강물이 넘쳐 지나가는 것이 더 편하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때 강물이 넘치면서 잠이 깼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다. 내 몸에 있는 가시를 빼는 것보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서 지나가는 것이 복되도다.”
라고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말할 수 없는 인생의 가시가 올 때 가시를 다 제하고 살 수는 없습니다.
어떤 때는 하나님이 그대로 두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때에 더 큰 은혜를 받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으면 우리의 생애에 어떤 환난이나 곤고나
적신이나 기근이나 어떤 시련도 능히 넘어가게 될 것입니다.
영국에는 유명한 요한 웨슬레 목사님이 계십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주 훌륭하신 분입니다. 어머니의 신앙과 인격은 천하가 다 압니다.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그런데 그의 부인은 그 어머니와 정반대 되는 거칠고 아주 사나운 여자였습니다.
얼마나 드센 여자인지 남편을 때립니다. 심지어 남편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방바닥을 헤맸습니다.
요한 웨슬레에게는 그의 아내가 가시였습니다. 집에 들어와 부인의 가시에 찔림으로 인해
그에게는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온유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 하나는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아내의 가시가 무서워 밖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평생 4만 2천 번의 설교를 밖에서 했습니다. 매일 50,60마일을 말을 타고 여행을 하면서
세 번씩 설교했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안방의 찌르는 가시 때문에 밖에 나가서는 장미꽃을 피웠습니다.
향기를 발했습니다. 결국 그는 영국을 복음화시키는 위대한 영적인 지도자가 되었고,
결국 가시와 같은 아내 때문에 일생을 복음 전도에 바쳐서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혹시 여러분의 가정에는 찌르는 가시가 있습니까? 교회로 달려와서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찌르는 가시를 족한 은혜로 바꾸어 가져야 합니다.
가시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나를 놀라운 기적으로 이끌어 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목회자 여러분, 찌르는 가시가 있을 때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풍성한 은혜를 주실 줄을 확신합니다.
◑자랑스런 가시 면류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 12장 9절)
사도 바울은 이제 그의 가시를 자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우리는 이 땅에 살면서 우리의 장점을 자랑합니다.
내 인물을 자랑하고, 머리를 자랑하고, 가문을 자랑하고, 전부 나에게 있는 것을 자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자랑은 천만 번을 해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돈을 자랑하다가 안될 때 남들이 잘 망했다고 기뻐합니다. 인
물을 자랑하다가 병이 들면 꼴좋다고 비난합니다.
자식을 자랑하다가 시험에 들면 잘되었다고 고소해 합니다.
여러분, 세상적인 것은 아무것도 자랑하지 마십시오. 겸손하십시오.
가진 것 있으면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가 자랑할 수 있는 최고의 자랑은 하나님 자랑인데 어떻게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습니까?
자기의 약한 것을 통해서만이 하나님을 자랑하게 됩니다.
내가 병들었을 때 고쳐 주신 하나님, 내가 가난할 때 복 주신 하나님,
내가 어리석을 때 지혜롭게 해주신 하나님을 자랑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전에는 강한 것을 자랑했습니다. 전에는 육체적인 자랑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이 쓸데없는 자랑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약한 것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을 자랑했습니다.
“나는 약한데 하나님은 강했고, 나는 부족한데 하나님의 은혜는 충만했고,
나는 하나님을 배신했으나 하나님께서 끝까지 나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러한 자랑거리가 많아지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자랑은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며 희망을 줍니다.
“저렇게 무식한 자가 은혜를 입다니, 저렇게 못난 자가 저렇게 큰일을 하다니,
저렇게 천한 자가 이 세상 사람이 부러워하는 자가 되었으니
이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가!”하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부득불 자랑할 진대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리라.”(고후 11:30)
목사는 자기를 통해서 하나님을 자랑할 것이 많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는 유일한 면류관이 가시면류관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서 가시 면류관을 쓴 왕이었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모든 저주와 고통을 자신이 짊어지는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지상의 왕들은 남의 영광을 모두 빼앗아 머리에 쓰지만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고통을 자기 머리에 쓰셨습니다.
로마의 병정들이 예수님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웠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손이 예수님 머리에 관을 씌운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쓰셨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며 흠모의 정을 담아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들의 화려한 성공은 남들에게 부러움은 되지만 감동은 주지 못합니다.
나에게 찌르는 가시가 주님께 드려질 면류관이 될 수 있다면 한없는 영광이 될 것입니다.
가시를 면류관으로 쓴 자만이 천국에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면류관을 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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