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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나훔서 / David Pawson

LNCK 2018. 8. 10. 17:00

www.youtube.com/watch?v=P6vDsyRt0ww

나훔서                                            영어녹취록

  David Pawson  

 

이것은 독일어 짧은 시인데 롱펠로우가 영어로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Though the mills of God grind slowly

yet they grind exceeding small;

비록 하나님의 맷돌은 천천히 돌아간다

하지만 아주 미세하게 갈아낸다

 

Though with patience he stands waiting,

with exactness grinds he all”

비록 그 분은 인내로 기다리며 서 계시지만

그 분은 정확하게 모든 것을 갈아내신다

 

하나님의 인내가 고갈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 분은 믿기 어렵게 인내하시고 놀랍게 긍휼하시지만

하나님이 ‘(인내가) 이제 충분하다하시는 날도 옵니다

 

이것은 선지자들의 메시지입니다 요나는 시기를 잘못 알았죠

요나 당시는 하나님이 니느웨성에 대해 여전히 긍휼이 있었고

인내심이 있었는데, 그때 요나는 니느웨성이

이미 (하나님의 인내가) 끝났다고 생각했었죠

 

하지만 150년 후에 나훔 때는 심판의 때가 왔던 것입니다

나훔도 (요나와) 같은 멸망의 메시지를 가지고 보내졌는데

그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들이 긍정적인 반응(회개)을 할 길이 없었어요

 

(나훔과) 반대측 극단은 생각하기를

하나님은 결코 화내지 않으시고 결코 벌하지 않으시며

도시나 나라를 결코 파괴하거나 쓸어버리지 않는다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실 것이고 그렇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천천히 노하실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게 하나님은 결코 노하지 않으신다는 뜻은 아니죠

 

사실 하나님의 분노는 난로 위에 우유 냄비와 같아요

처음엔 아주 오래동안 표시 없이 끓다가

갑자기 순식간에 끓어 넘쳐버립니다

 

만약 여러분의 영안이 열려있다면 지금 그 진노가 끓고

있음을 보실 것입니다 그 분의 진노가 이 순간

우리나라(영국) 위로 (표시 안 나게) 끓고 있어요

영안이 열린 사람은 그걸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언제 그게 끓어 넘칠거냐?’ 그 문제죠

사람들은 눈에 안 뵈니까 그것이 끓고 있는지를 몰라요

그러다 갑자기 우유가 끓어넘치면 그때 아내가 거실에서

부엌으로 달려가서 우유가 넘친다고 소리지르지요

 

그러나 우유가 끓는 것을 (곁에서) 보고 있는 사람은

놀라서 당황하지 않게 되죠

 

▲(요나가 활동한지) 지금 150년이 지나서 나훔이 활동했어요

나훔의 배경을 보겠습니다

그는 북왕국 출신인데 제가 말씀드렸죠

우리는 기억할 필요 있어요 솔로몬이 죽은 후 그들은 결코

다시 합치지 못했어요 내전을 계속했죠

 

그래서 북쪽 10지파와 남쪽 두 지파로 나뉘어졌죠

북쪽 10지파는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가졌고

남쪽 두 지파 베냐민과 유다는 둘 중 큰 쪽 이름을 따서

유다라 불렀어요 그래서 완전히 나뉘어졌죠

 

기억하세요 요나는 북왕국 출신이고

이때는 열 지파가 떨어져 나온 (오랜) 후였죠

나훔도 마찬가지였어요 지금부터 역사를 약간 살펴봅니다

 

보세요 이들이 북왕국의 왕들입니다

아합, 여러분 들어보셨을 겁니다

그의 사악한 왕비 이세벨 그 다음에 여로보암2세가 나오죠

이 왕때 요나가 니느웨로 갔어요

 

그 다음에 베가, 호세아 왕이 지나는데

그 동안에 앗수르는 점점 커졌죠

그들은 아합 왕 때 북왕국을 침입한 적이 있는데 실패했어요

그러나 그들은 다시 침입해 옵니다

 

앗수르는 디그랏빌레셀 3세 때 침입해 납달리 한 지파를

취했어요 그 후 살만에셀 때 다시 침입해서

10지파를 모두 잡아갔죠 그때 북이스라엘 10지파가

사라졌고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혀갔어요

 

그 때부터 작은 남유다만 남게 되었죠 그러나 히스기야 왕

(앗수르의) 산헤립이 와서 예루살렘을 포위했죠

우리가 이사야서 때 살펴보겠습니다만

그때 가장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한 천사가 앗수르 군대 185천명을 쳤습니다

천사는 그런 일을 할 수 있죠 

 

후에 제가 185천의

해골 사진을 보여드릴텐데 예루살렘 바깥에서 발굴되어죠

앗수르바니팔 당시는 이집트 북부 테베까지 점령했어요

그래서 당시 그들은 당시 큰 제국을 이루고 있었죠

 

그 당시에 두 명의 작은 선지자들이 나타났어요

지금 스바냐에 대해선 논하지 않겠지만

당시 스바냐가 니느웨에 대해 예언한 것을 읽어볼게요

 

스바냐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여호와가 앗수르를 멸하며 니느웨를 황폐하게 하여 사막 같이 메마르게

하리니, 전에 자랑했던 대 도시가 양떼가 풀을 뜯어먹는 밭이

될 것이며 각종 짐승이 그 가운데에 떼로 누울 것이며

고슴도치도 깃들이고 독수리 올빼미도 무너진 왕궁 터 위에

깃들 것이며 창문 턱에 앉아서 지저귈 것이다

까마귀도 그 문에 앉아서 울 것이다 왕궁의 모든 백향목

벽은 바람에 쓰러지고 날씨에 삭을 것이다 *2:13~14

 

이것이 스바냐가 (니느웨에 대해)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가서 그들이 반드시 끝장 날 것이라고

말한 사람은 나훔이었지요 비록 스바냐도 예언했지만

북이스라엘에서 했고, 나훔은 요나처럼 니느웨로 가서

예언했고 그들에게 마지막 경고를 주었습니다

 

요나와 나훔 사이의 한 가지 큰 차이는 물론

이번(나훔 때)에는 니느웨를 용서하지 않은데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두 선지자 모두 하나님은 노하기를

더디하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훔 시대에는

니느웨의 기한이 다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 번 폭발하면 당신은 하나님의 진노를 멈출 수 없어요

그게 끓는 점에 도달하면,

종종 성경에는 그의 진노의 날로 나오죠

그때는 아무 것도 그 진노를 멈추지 못해요

 

그 임계점에 도달하기 전에는 멈출 수가 있죠

그러나 끓어 넘치면 아무 것도 멈추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나라마다 다르고, 개인마다 다르고, 시간도

다르게 각각 끓어넘칩니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진노의 날

이 올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차라리 지진으로 땅 속에 삼키

우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의 얼굴에

나타난 분노를 보는 것 보다요 계6장에 나오죠 *6:16

그래서 하나님은 지금 진노로 충만해서 끓어넘치고 계십니다

 

비록 니느웨 왕이 기도하고 다시 금식을 시도했지만

그는 요나 때 일어난 일을 재현해 보았지요

그러나 그게 이번에는 효과가 없었어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언젠가는

때가 늦어서 도저히 바꿀 수 없는 때가 옵니다

 

그래서나훔서마지막 구절에서 말하기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부상은 고칠 시기가 지났도다

 

앗수르가 곧 멸망한다고 하니 좋은 소식이고

앗수르에게는 나쁜 소식이지만 이스라엘에게는 좋은 소식이죠

이는 나훔이 태어날 때 열지파의 영토가 이미

점령당했고 그는 점령지에서 태어났어요

 

그는 앗수르의 통제를 받는 가운데 태어났는데

거기가 다름 아닌 거룩한 땅이었어요 여러분 그렇게

앗수르 통치 하에 태어나고 자라는 것이 상상이 됩니까?

 

그래서 그에게 니느웨가 멸망한다는 예언은 좋은 소식입니다

아주 멋진 어느 구절에서 말하기를

아름답도다 산을 넘어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라고 하였죠

 

보통 발은 아름답지가 않아요 그렇죠? (걸어다녀 투박하죠)

여러분의 발을 사진찍어보신 분 계십니까?

얼굴을 사진 찍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발은 사진 찍지 않아요

 

단지 한가지 상황에서 발이 아름다운데 그것은 바로

좋은 소식을 가지고 달리는 자의 발입니다

 

당신은 그의 발을 붙들고 입을 맞출 정도가 될 겁니다

만약 당신 평생에 잔혹한 적의 통치하에 있다면

'자유가 온다'가 좋은 소식일 것입니다

 

몇 년전 동유럽에도 동일한 반응이 있었습니다

이것은 그와 같은 크고 좋은 소식입니다

사실상 나훔이 말하기를 너희 멸망의 소식을 들은 모든

사람들은 모두 손벽을 치며 좋다고 할 것이다

왜냐면 너희 잔인함을 겪지 않은 자가 없기 때문 아닌가

*3:19 이 예언은 아주 생동적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우리가 꼭 물어야 할 질문이 있는데

하나님은 자연을 컨트롤 하듯이 역사도 컨트롤 하십니까?’

만약 요나서가 당신에게 하나님은 자연을 통치하십니까?’

를 묻는다면

 

나훔서는 당신에게 하나님은 역사를 통치하십니까?’

묻고 있습니다

 

인격신론 관점으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역사의 지도는

하나님이 그리신다바울이 아덴의 전쟁의 신의 언덕

(, 아레오바고)에서 헬라인들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은 나라들의 연대와 영토를 정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한 나라를 일어나게 하시고 제국이 되게

하시며 또한 한 나라를 멸망하게 하십니다

 

저는 하나님이 대영 제국을 종결지었다고 믿습니다

소위 말하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는데요

영국은 1947년에 유태인을 돕고자 하지 않고 오로지 관계를

끊으려 애를 썻습니다 하나님은 그럼 너희들이

다른 사람도 돌볼 수 없겠구나하셨습니다

 

그 후 짧은 5년 사이에 대영제국이 무너졌습니다 

이것은 저의 역사에 대한 이해입니다 

하나님은 대자연 전체를 통치할 뿐 아니라 전체 역사까지도 장악하고 계십니다 

왕들을 일어나게 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왕들을 내려가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한 나라 확장을 허락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고

한 나라가 멸망하게 하시는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독일 크리스천들이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2년전에 예수님

이름으로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장벽을 허물어 뜨릴

것이라고 선포했습니다 

 역사는 하나님이 장악하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예측할 수 있습니다 선지자로서의 큰 임무는

바로 역사를 예측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역사를 기록하는 것입니다 

 

◑본문 해석

 

나훔이 니느웨가 곧 멸망한다고

예언했는데 듣고 보면 정말로 상상할 수 없는 것인데

왜냐면 당시 니느웨의 세력은 너무 강대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예언은 얼마되지 않아서 이루어졌습니다

 

나훔서의 내용 거의 모두는 예언입니다

나훔서의 예언을 한번 분석해 보겠는데

3장이어서 단락 나누는 것이 아주 쉽습니다

 

나훔서는 총 3장이고 전체가 니느웨 멸망과 연관있습니다

우선 먼저 하나님이 누구에게역사하시느냐의 선포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그 분의 적에게는 재앙이고

그 분의 친구는 곧 구원 받는다는 표시입니다

 

일단 하나님이 개입할 때는 이 두가지 특징이 나타납니다

일단 하나님이 역사에 개입하시고 행동을 취하시면

그의 적들은 불행을 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반항하고 모든 것을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하나님의 적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그리고 하나님을 반항합니다

일단 하나님이 행동을 취할 때면 그들은 재앙을 만나게 되죠

 

나훔이 명확하게 지적했는데 것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Jealousy

 

이것은 '시샘 envy'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구가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에 envy 하지 않습니다

만물이 모두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시편 50편의 한 구절을 아주 좋아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충족성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뭇 산의 가축이 내 것이며 금 은도 모두 내것이다'

그 구절은 이렇게 시작하죠 만약 내가 주려도 네게 말하지

아니할 것이다 나는 내 물건을 마음껏 취할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질투하십니다 그것이 차이입니다

(*jealous : 건강한 질투, envy : 좋지 못한 질투, 시샘)

 

여러분의 envy시샘은 다른 사람이 가진 것 때문이고,

여러분의 jealous질투는 다른 사람이 당신의 것을

가지고 싶어할 때 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당신이 다른 사람의 아내를 envy 부러워하지만

당신의 아내에 대해선 (다른 남자가 빼앗아 갈까봐)

jealous 질투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질투하고

(다른 이가 그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을 질투하고)

하나님은 자기 명성을 질투하고

(다른 이가 그의 이름이 함부로 남용하는 것을 투기하며)

하나님은 다른 이가 그의 백성의 관심을 빼앗는 것을 질투하며,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그의 세계를 빼앗아 가는 것을 질투하십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나의 이름이고 나의 명성이고 나의 세계이다'

나는 다른 사람이 나의 세계에서 제멋대로 못된 짓을 하는

것을 용납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질투입니다

 

질투하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응(보복)합니다 

나훔서에 하나님이 보응한다는 말을 자주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복한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 있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악독하게 앙갚음하지는 않으시죠

그렇지만 하나님은 보복하십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성경에서 권고 받습니다

절대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다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다12:9

 

여러분은 하나님은 질투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설교를 마지막으로 들은 게 언제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한가지 성품입니다 *질투하시니 보복

그는 거룩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훔은, 그 내용 하나만 강조해서 선포하는데

하나님은 질투하신다는 것을,

그래서 보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분을 반항하고 자신을 의지하는 사람

모두는 보복을 받는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한 사람들은

잔혹한 앗수르 통치하에서도,

하나님이 어느날엔가 보복해 주실 것이라고

여전히 믿는 사람들은 반드시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좋은 소식입니다

 

1장은 알파벳시입니다

매 구절이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로 시작합니다

여러분이 히브리어로 읽을 줄 아시면 이 시가 매우 기술적

으로 구성되었다는 거죠 이렇게 하면 쉽게 기억됩니다

왜냐면 매 구절이 알파벳 순서로 시작되기 때문이죠

(*1:2~8 히브리 알파벳 22개 중 12개만 사용, 논란있음)

 

이렇게 알파벳 시 형식으로 구성하는 것은

쉽게 외우기 위해서 입니다

 

나훔이 이렇게 기록한 것은 니느웨를 도와주기 위함이

아니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도와 기억하기 쉽게 한 것이죠

 

이는 그들에게 있어서 좋은 소식입니다

너희 마음에 감추고, 마음으로 깊이 기억하고,

네 스스로 반복하고, 자녀에게 항상 말해주어라

니느웨는 멸망하였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위하여

질투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1장입니다

 

나훔은 1장에서 교차적으로 선포하는데

한 문장은 니느웨에게, 한 문장은 이스라엘에게,

나쁜 소식은 니느웨에게, 좋은 소식은 이스라엘에게

(이런 식이죠)

문학적 기법이 놀랍습니다 

 

 이 예언자들은 성령의 영감으로

놀랍도록 단어들을 잘 배열했어요

 

다음으로는 2장인데 제1장은 니느웨가 곧 무너지리라는

선포라면, 2장은 그 일이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를 묘사

하는데 그것도 아주 자세히 묘사하여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제가 전에 TV를 봤는데 CBN기자가 바그다드에서 첫번째

폭탄 투하 사건을 보도한 것을 보았는데

여러분은 그 기억에 남는 장면을 보셨습니까?

TV가 놀랍지요 여러분은 전쟁이 시작하는 것을 (집에서)

볼 수 있어요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 일은 처음 있었어요

 

전세계 수백만이

그 적대적 전쟁이 시작하는 것을 (TV) 지켜본 일요!

 

나훔은 보았어요 그것(니느웨 몰락)이 시작되는 것을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나기도 전에!

그리고 기록했죠 마치 TV 기자처럼요

마치 자기가 목전에서 본 것 처럼(생생하게)

 

그러나 그 일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 기록은 매우 생생하고 자세했어요

시적인 감성이 풍성하게 (나훔서를) 기록했어요

정말 기억에 남는 기록이죠 

 

 사실 제가 그것을 읽을 때

알프레드 테니슨 경(시인)이 생각났어요

그는 이렇게 시를 지었죠

 

그는 작년이 죽은 지 백년이 되었는데

*1892 사망, 1993년 강의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적이 있습니다

 

“Half a league, half a league, Half a league onward,

All in the valley of Death Rode the six hundred.

반리그 반리그 반리그 계속앞으로 *1리그는 3마일

사망의 골짜기에서 당당한 6백 용사가 진격한다

 

“Cannon to right of them, Cannon to left of them,

Cannon in front of them Volley'd and thunder'd;”

대포는 그들의 오른쪽에 날아왔고,

대포가 그들의 왼쪽에 날아왔고,

대포의 포탄이 그들 앞으로 날아왔다 천둥처럼

 

여러분들이 학교에서 이 시를 배우셨나요?

맞아요 지금은 배우지 않는데

고전 문학은 매우 재미있는 것입니다

제가 나훔서를 일부 읽어드리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성경을 읽은) 기억이 나는지 들어보십시오

 

2:1 Nineveh, you are finished! You are already surrounded by

enemy armies! Sound the alarm! Man the ramparts!

Muster your defenses, full force,and keep a sharp watch for

the enemy attack to begin! (TLB)

 

니느웨야! 너는 곧 멸망하리라 너희는 적군에 의해 완전히

포위되었으니 성을 지키는 자들에게 경종을 울려라

너희 요새를 지키도록 하고 전력을 다하며

예리하게 지켜보아라 네 적군이 곧 공격을 시작한다

 

2:2 For the land of the people of God lies empty and broken

after your attacks, but the Lord will restore their honor and

power again!

하나님의 백성들의 땅이 텅 비고 무너져있다

너희 공격을 받은 후에, 그러나 주님이 그들의 명예와 힘을

회복시키실 것이다

 

2:3 Shields flash red in the sunlight! The attack begins! See

their scarlet uniforms!See their glittering chariots moving

forward side by side, pulled by prancing steeds!

(니느웨를 공격하려는 용사들의) 방패가 햇빛에 붉게 번쩍

거린다 공격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자주색 군복을 보아라

그들의 번쩍이는 전차를 보아라 나란히 앞으로 달려오고 있다

격렬한 군마들이 전차를 끌고 있다

 

2:4 Your own chariots race recklessly along the streets and

through the squares,darting like lightning, gleaming like

torches.

그 병거들이 질풍처럼 거리를 휩쓸고, 광장에서 이리저리

달리니, 그 모양이 횃불 같고, 빠르기가 번개 같다.

 

2:5 The king shouts for his officers; they stumble in their

haste,rushing to the walls to set up their defenses.

왕이 장교들에게 고함친다

그들은 넘어지면서도 돌격한다

벼락같이 성벽에 들이닥쳐 자기들 방어벽을 설치한다

 

6 But too late! The river gates are open!

The enemy has entered! The palace is in panic!

그러나 너무 늦었다 (성 방어용 해자) 강 위 문이 열려버렸다

적들이 들어왔다 (니느웨) 왕궁은 패닉에 빠졌다

 

그렇게 계속됩니다 이런 매우 생생한 묘사군요 그렇지요?

놀라운 것은 니느웨를 파괴하려고 오는 사람들이

자주색 군복을 입었다는 겁니다 2:3

 

나훔 시대에는 자주색 군복을 입었던 군대가 없었습니다

그는 심지어 그들이 입은 군복 색깔까지 보았고

그들이 어떻게 강 위 문으로 들어온 것도 보았어요

 

그들은 강물을 마르게 하여 수문을 통해 니느웨 성으로

들어와서 니느웨를 점령한다는데 그는 이 모든 과정을

(미리)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읽어보세요

나훔서의 묘사는 매우 생동적입니다

 

이 시를 들어보세요

3:1~3 ‘피의 성 니느웨에 화가 있을 것이다

사기와 약탈이 판을 치고 있으므로 희생자가 떠날 날이 없다

휙휙하는 채찍 소리, 덜거덩거리는 전차 바퀴 소리,

뛰는 말과 달리는 전차, 격돌하는 기병, 번쩍이는 칼,

기병의 쳐든 손 안에서 빛나는 창,

3:3b 수많은 사상자, 시체더미, 헤아릴 수 없는 주검들,

시체에 걸려 넘어지는 사람들!

3:4 이 모든 것은 왜냐면 니느웨가 자신을 팔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적들에게

 

생생한 기록입니다 여러분은 상상할 수 있습니까

이런 것들을 설교하는 사람, 그는 이 모든 것이 일어날 것을

보고 있습니다 아주 생생합니다 이것은 2장인데

그는 약탈의 첫 날을 묘사합니다

 

그는 니느웨가 약탈당하고 모든 재산이 빼앗기는 것을 봅니다

모든 보물들이 사라지고

그때 그는 말하기를 내가 사자굴을 보는데

하지만 그 안에 있는 사자들이 모두 약하고

죽어가고 있다’ 2:11~12

 

전에 어떤 사람이 영국은 이빨이 없는 사자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나훔이 바로 이렇게 니느웨를 말하는데

의미심장한 것은, 사자는 앗수르의 문장紋章이며

그들은 사자로 자처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들을 이빨 없는 사자, 종이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위협이 되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이 무서워 벌벌 떨고 있어요 이것을 시적인 권선징악

poetic justice’ 으로 묘사했습니다

 

다음은 제3장인데 나훔은 묘사에서 해석으로 옮겨

갑니다 즉 ?’를 설명합니다 그는 먼저 하나님이 개입

하셔서 자기 친구를 위하시고 대적에겐 대항하심을

선포했습니다

 

이어서 그가 (원인을) 해석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일들이

발생했을까요? 이렇게 더 큰 군대가 니느웨에 침입해서

사자굴을 점령하는 것은, 그 이유는, 그 대답은

앗수르 제국이 조금도 인간성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십계명을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이

십계명을 어겼다고 심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

를 보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아닌 사람들에게 선포하실 때

하나님은 십계명을 제시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아모스 공부 때 보았어요

하나님은 그들에게 비인간성을 제시하셨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양심으로) 압니다 사람은 잔인하기보다는

친절해야 함을요

 

십계명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도 압니다 야만적이고

잔인하고 사람들을 고문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든 사람들이 (양심으로) 압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자기들이 아는 바로 심판하십니다

이것이 성경을 관통하는 원리입니다

 

만약 사람이 십계명을 모르면 그들은 십계명을 범한 것으로

심판 받지 않습니다

만약 사람이 그리스도를 들어보지 못했다면 그들은 그리스도

(복음을) 듣지 못한 것으로 심판 받지 않아요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일부 있는데

외적으로 창조를 보거나 내적으로 양심을 통해서죠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심판하십니다

그들의 양심이 아는 바에 의해서요

우리 모두는 압니다 비인간성은 나쁘다는 것을! 그렇지요?

 

유엔 문서 U144는 인권선언입니다

그건 크리스천이 쓰지 않았어요

 

우리는 인권을 압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난 것은 그들이

인권을 짓밟았기 때문에 이런 참극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입니다 그들은 무력으로 정복을 일삼았어요

무력이 그들의 확장 방식이었습니다

그건 마치 기습공격이었어요

 

그들은 전차를 타고 달려가서 나라들을 짓밟고

그 거주민들을 살육하고 군사력으로 정복했지요

하나님은 영토를 더 확장해 주실 수 있습니다

군사력을 사용하지 않고!

영토를 확장하는 데는

올바른 방식과 잘못된 방식이 있어요

 

그가 특별히 언급한 또 다른 것은

그들은 재정적인 면에서 부패했습니다

이 점이 부각되었는데 그들이 부유해졌을 때 그것이

그들을 부패하게 했고 뇌물이 일상화되었습니다

 

나훔이 말한 그들의 잘못은 이 두가지 였어요

(비인간성 + 돈 타락) 그들은 자기 잘못을 알았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 도시를 멸망시키신다는 거죠

이 두가지 사건은 정말로 심각합니다 현대인들은

이 두가지 사건에 대해 낯설어 하지 않는데

여러분 모두가 이것은 틀렸다고 알고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한 것은 영국에서는 뇌물이 그다지 심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당신이 어느 나라에 가서 뇌물 없이는 여권이나 운전면허

증을 만들 수 없다면, 혹은 뇌물 없이 승진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여러분 당신이 아주 기뻐서

영국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행해 보시면 이 사실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니느웨에서 일어났어요

그들은 무력으로 정복했고 재정적으로 부패되었어요

 

나훔은 말합니다 화 있도다 피가 가득한 도시여’ 3:1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미 woe’라는 단어를 현대인들은

그 의미를 잊어버렸습니다 저주라는 뜻인데요

그래서 여러분들은 절대로 이 말 woe을 사용하면 안돼요

영국의 많은 부모들이 종종 이렇게 말하는데요

'Woe betide you if you ever do it again'

한 번만 더 하면 화가 네게 미칠거야

그런 말을 애들에게 절대 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아이를 저주하는 겁니다

 

기억하십니까 여러분이 오늘날 갈릴리 바다에 가시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오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이렇게 표현할 겁니다

정말 아름답고 모든 사람이 그곳을 좋아합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 갈릴리는 완전히 달랐어요

거기엔 25만이 갈릴리 주위에 살고 있었고

당시에 매우 도시화된 곳이었어요

가버나움은 꽤 큰 어촌 타운이었어요 벳세다나 고라신처럼요

 

오늘날 그 타운들이 어디로 갔습니까? (없어져 버렸죠)

여러분이 오늘날 거기 가시면, 디베랴에 머물 필요 있어요

왜 이 마을만 오늘날 갈릴리에 유일한 타운으로 남아있나요?

제가 그 이유를 말씀드릴게요

 

그건 왜냐면 예수님이 그 타운들을 저주하셨기 때문입니다

화있을진저 가버나움이여, 화있을진저 벳세다, 고라신이여

너희 가운데 행해진 놀라운 일들이 오래 전에 두로와 시돈

에서 있었다면 그들은 회개하였으리라

 

예수님이 저주하지 않으신 타운은 디베랴였어요

화있을진저 디베랴여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그 결과 디베랴는 여전히 거기에 있어요

 

다른 타운들은 거의 찾기 어려워요 돌 몇 개만 남아있죠

화있을진저 피가 가득한 도시(니느웨)’ 3:1

이것은 무서운 저주였는데 나훔이 선포했죠

 

그럼 나훔이 선포한지 10년이 못 되어서

니느웨에 어떤 일이 일어났나요?

나훔이 선포한 세부 사항까지 다 일어났죠

나훔서는 거기 다시는 사람이 살지 못하리라했죠

 

제가 다시 여러분에게 그 곳의 현재 사진을 보여드릴게요

이것은 당시의 웅장한 궁전인데 현재 이렇게 변했으며

마치 스바냐가 말한것처럼 올빼미와 고슴도치가 (그 기둥 꼭대

기에 깃들이고) 각종 야생짐승들이 거기에 깃들이고 있죠

 

니느웨가 무너졌고 다시는 사람이 거주하지 않게 되었죠

그 도시는 수 세기동안 사라졌습니다

아무도 그곳이 어디인지 몰랐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1820년까지 니느웨의 존재 자체를

의심했어요 그러다가 그때 영국인 레야드가 그 지역을 밟고

다니다가 티그리스 강 서쪽 둑에 있는 한 마을에 머물렀는데

하루는 그 반대편에 어떤 잔해 무더기가 있는 것을 보았어요

 

그가 말했죠 저게 뭘까요?’

그들은 모른다고 했죠

그래서 그가 건너가서 그 주위를 파기 시작했죠

내 생각에 내가 니느웨를 찾았군

맞았어요

 

그 후 나훔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어요

여러분이 오늘날 티그리스 강의 서편 둑에 있는 그의 무덤을

찾을 수 있어요 여러분이 거기 가시면 그곳 사람들이 나훔이

누워있는 무덤을 가리켜 줄 겁니다 그래서 그의 무덤은

둑 반대편에 오늘날에도 여전히 거기 있어요

그는 아랍인들에게 선지자 중의 하나로 존경받았어요

 

 

그럼 이제 결론을 지읍시다

 

저는 아모스와 나훔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다른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죠 왜 우리가 선지서를 공부해야

합니까? 우리나라 역사도 아니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아닙니다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잖아요

 

왜 우리가 다른 민족의 역사를 공부해야 합니까?

오래 전일 뿐만 아니라 그것도 멀리 떨어진..

그것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대답은 간단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더 잘 알기 위해서이죠

 

왜냐면 하나님은 조금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는 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볼 수 있어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왜냐면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계시하기

(나타내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야훼나는 있다 I am’로 번역할 수 있는데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동사이기보다는 분사입니다

또는 제가 제안했듯이 항상 always’으로도 번역할 수 있어요

저는 제 번역이 잘 이해됩니다 하나님은 항상이세요

항상 계시고 항상 똑같으십니다

 

지금부터 선지자들이 항상 강조한 3가지를 살펴봅니다

제가 여기 리스트를 만들었는데요

 

1 첫째 그들은 하나님의 행하심에 초점 맞추었어요

그 분이 과거에 행하신 일과, 현재 행하시는 일,

또한 장차 행하실 일들

그들이 하나님을 모든 능력의 하나님으로 제시한 점에는

의심할 바 없어요

 

여러분이 매 주일마다 교회에서 사도신경을 암송하는데

이렇게 시작하죠 나는 믿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그저 아버지가 아니라 천지를 만드신 전능하신 아버지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으로 제시되었어요

 

그 분은 자연과 역사 두 분야 다 전적으로 관리하십니다

그런고로 자연계 속에서 기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고

역사 속에서 하나님은 얼마든지 움직임을 발생케 하십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하는 하나님 관입니다

 

왜냐면 현대 과학 시대에 많은 사람들이

자연계는 자연법칙에 의해서만 운영되고,

역사는 경제적 힘들의 결과인 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대자연과 역사를 완전히 통치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선서서들을 정기적으로 읽는 것은 우리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의 그림을 계속 갖게 해 줍니다 그 분은 자연계의

어떤 일이든지 일어나게 하실 수 있으며,

그건 역사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철학을 우리는 인격신론 theism’ 이라 부르는데,

이것이 성경적인 철학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선지서를

읽어야 하는 첫째 가장 큰 이유입니다

 

2 두 번째로 그 분의 활동에서 그 분의 성품으로 옮겨갑니다

하나님은 일관적이십니다 그 분은 항상 변치 않으세요

그 분의 성품은 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은 독특하게

정의와 긍휼을 둘 다 가지십니다

 

만약 당신이 이 둘 중에 한쪽에 너무 치우치고 다른 한 쪽을

잊어버리면, 당신은 하나님 관에 균형을 잃게 됩니다

만약 당신이 하나님의 공의만 생각하면 당신은 너무 딱딱한

하나님 관을 갖게 되고, 만약 긍휼 쪽으로만 본다면

당신은 너무 물렁한 하나님 관을 갖게 됩니다

 

일례로 경외심만 있고 사랑이 없을 수 있으며

반대로 사랑만 있고 경외심이 없을 수 있지요

우리는 둘 다 필요하며 선지자들은 정말 놀랍도록 균형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다음 두 강의에서 아모스서와 호세아서를 살필 것인데

(강의는 성경목차 따르지 않고, 역사적 연대기 순서를 따름)

만약 하나님의 공의를 주로 말한 선지자가 있다면 아모스죠

그리고 하나님의 긍휼을 주로 말한 선지자는 호세아입니다

 

하나님은 (아모스, 호세아) 두 선지자를 같은 장소에,

같은 시대에 보내셨어요 그들은 두 다른 메시지로서

함께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그 분의 공의는 하나님이 반드시 죄를 벌하셔야 한다는 것이고,

그 분의 긍휼은 하나님은 용서하고 봐주시기 원한다는 것이죠

 

이제 거기 둘 사이에 긴장이 있습니다 둘 다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께는 충돌이 되죠 그래서 그것은 오직 십자가에서만 풀

어집니다 왜냐면 십자가에서만 공의와 긍휼이 함께 만나거든요

죄가 동일한 곳(십자가)에서 징벌과 사함을 동시에 받습니다

 

하지만 징벌 받는 것은 예수님이시고 사함 받는 것은 우리죠

여러분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의 온전함입니다

그런고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어떻게 행하실지 예측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가능한 오래도록 긍휼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계속 거절하면, 그 분은 공의를 행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요나서(긍휼)와 나훔서(공의)의 메시지이죠

 

3 셋째로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융통성을 강조합니다

제게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가장 중요한 통찰력입니다

하나님은 그 분의 계획을 도중에 바꾸실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뜻은 영구히 확정된 게 아닙니다

그 분은 자기 계획을 바꾸실 수 있어요

사람들이 그 분께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이것이 특별히 예레미야서에 잘 나타나죠

거기서 예레미야가 토기장이의 집에 가서 보니까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예쁜 그릇을 만들고 있었어요

 

그런데 진흙이 그릇을 빚는 토기장이의 손에서 잘 다뤄지지

않았어요 그래서 토기장이는 그걸 뭉개서 진흙덩어리로 전환

했다가 이제는 그걸로 투박한 그릇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이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죠

예레미야, 토기장이와 진흙의 교훈을 배웠느냐?’

제가 들어본 대부분 설교자들은 토기장이와 진흙에 대해

설교할 때 잘못 말합니다 그들은 토기장이가 진흙의 모양을

미리 결정하고 있다고 하죠 그게 (극단적) 예정론입니다

*예정론 반대가 아니라 극단적 운명론적 예정론을 지적함

 

만약 그가 이것은 이렇게, 저것은 저렇게 다 결정하면

여러분은 할 게 아무 것도 없어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진흙이 결정합니다 자기가 아름다운 그릇이 될 건지

아니면 투박한 그릇이 될 것인지,

그것은 자기가 토기장이의 손에서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달려 있어요 동의하십니까? 이것은 무섭도록 중요합니다

 

그때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했어요 토기장이와 진흙의

교훈을 배웠느냐? 나는 이스라엘을 내 긍휼의 그릇으로

만들기 원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걸 받지 못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을 나의 공의를 받는 그릇으로 만들었다

 

그렇지만 만약 그들이 회개하면 내가 누그러지고

내가 그들을 다시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들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융통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태도에 기꺼이 반응하십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그 분은 우리가 하나님께 잘 반응하길 바라시고,

그러면 그 분은 계획을 바꾸어서

우리에게 좋은 계획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재앙이 아니라요

*큰 틀 속에 작은 그림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 분의 긍휼에 말을 듣지 않으면

그때 그 분은 계획을 변경해서

우리에게 안 좋은 계획을 세우십니다

이해하셨나요?

 

하나님은 인격적이세요 그 분은 살아계시고

우리는 그 분과 생동적인 관계를 맺고 있어요 모든 게 확정된

게 아닙니다 그건 숙명론이고 숙명이죠 모든 게 다 미리

결정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은 융통적이세요

그 분은 자기 백성이 하기에 따라 맞추어 가십니다

 

그 분의 백성들이 올바로 반응할 때 그 분은 그들을 아름다운

그릇으로 만드시죠 그러나 우리가 틀리게 반응하면 그 분은

여전히 우리를 그릇으로 만드시는데요 그건 하나님의 일이죠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공의를 담는 그릇이 되고

이 세상에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을 나타내되

하나님의 긍휼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나타내는 그릇이

되는 겁니다 그 선택은 여러분께 달렸어요

 

어떤 종류의 진흙이 당신은 되기 원하십니까? 당신은 세상에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는 그릇이 되길 원하십니까?

아니면 그 분의 공의를 나타내는 그릇?

당신은 둘 중 한 쪽을 나타내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이 당신이 어느 쪽이 될지 미리 작정하지 않으셨어요

 

그건 당신이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하는가에 달려있죠

이 하나님의 융통성에 관한 통찰력은 제게 아주 소중한 진리

입니다 미래는 사전에 다 결정된 게 아닙니다

모든 게 다 예정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열려있어요

 

왜냐면 개인적으로 다 달라요 그런데 하나님도 바꾸시지

못하는게 있는데 우리 과거는 못 바꾸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미래는 바꾸실 수 있습니다

또 기꺼이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제가 발견한 이 하나님의 융통성개념은 아직 많은 크리스천

들이 가지고 있지 못해요 그 분의 성품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 분의 온전한 인격은 불변합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그 분의 계획은 바뀝니다 왜냐면 그 분은 인격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이세요 그분은 우리의 (올바른) 반응을 원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반응에 따라서 반응하십니다

성경은 감히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repent 하셨다고요 우리가 회개할 때' *6:6

여기서 ‘repent’의 뜻은 생각을 바꾸다이죠

 

그래서 우리가 우리 생각을 바꾸면,

하나님도 생각을 바꾸시죠

정말 멋진 개념 아닙니까 그러나 그 분은 자기 성품은

못 바꾸세요 그건 더 중요한 개념입니다

그래서 당신은 상항 그 분께 의지할 수 있어요

 

이것이 제가 여러분을 격려해서 선지서를 읽도록 하는 이유

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더 잘 알게 되었어요

그들은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자연계와 아울러

역사까지 다스리신다는 것을 (선지서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예측가능한 하나님이세요

 

그 분은 자기 성품적

온전성에 따라 행동하십니다 그런고로 당신은 압니다

그 분이 (사람들의 행동에) 어떻게 반응하실지

 그러나 그 분은 또한 인격적인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우리와 살아있는 관계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에게 반응하시고 우리도 그 분께 반응하죠

이 하나님이 우리가 경배하는 하나님이세요 그 분의 이름을 찬양드립니다!

 

초벌번역 LCY

영어타자 Chris

교정자막 Ji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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