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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요나서 / David Pawson

LNCK 2018. 7. 26. 10:14

요나서           

 

지금까지 우리는 구약의 율법서 부분을 이미 보았고

그리고 성경의 역사서 부분도 보았고

우리는 지혜 문서도 살펴보았죠 전도서 같은 책

앞으로 몇 강에서 우리는 예언서를 살펴볼 것입니다

우선 먼저 우리 함께 요나서를 보고 그리고

나훔서를 보겠습니다

그들은 (히브리어) 발음으로 요나, 나훔입니다

두 책을 먼저 보고 그 다음에 아모스와 호세아로 갑니다

그 다음에 대선지서로 가는데 그렇게 불리는 이유는

(분량이) 크기 때문입니다 즉 이사야 에스겔..

예언이란 무엇입니까? 먼저 선지자들은 매우 평범한 남자들과

여자들이었어요 예언의 은사는 양 성에 모두 주어졌는데

여선지자들이 있었어요 남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선지자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그들은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아주 특별한 기능을 가졌죠

그 특별한 기능이란 하나님을 대변해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대변해 말하기 전에,

하나님으로부터 들어야 합니다

말씀을 받아야만 말씀을 전달해 줄 수 있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들었을까요?

말씀과 그림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이 말씀들은 아주 무거워서 선지자들은 짐을 느꼈습니다

저는 이러한 느낌을 경험해서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마음에 무거운 짐이 있으면

신속히 전달해야 가벼워집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줘버리면 그들에게 무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선지자에게는 (반드시 전달해야 할) 말씀의

무거운 짐이 있었습니다 그는 이것을 전달해야만

그 무거운 짐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말로 오지 않고 그림으로 올 때도 있어요

그림에는 두 형태가 있는데 깨어있을 때 보는 그림은 환상이고

잠 잘 때 보는 그림은 입니다

그래서 이런 방식을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달하십니다

도표의 왼쪽 아래에 보면

그 예언의 다양한 전달 경로를을 보여줍니다

(예언 형태 중에) 예를 들면 하나님은 먼저 body

말씀하십니다 말 그대로 귀에 들리는 소리로

 

하나님은 공기를 진동해서 그래서 그게 파장을 일으키며

이렇게 사람 몸에 들리는 방식으로 말씀하실 수 있고요

하나님은 자주 이렇게는 하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이 음성을 발하셨을 때 사람들은 천둥으로 생각했죠

그렇지만 들리는 음성으로도 말씀하실 수도 있어요

예수님의 수세 때 말씀하시길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이것은 하나님이 사람 몸에 친 음성으로 말씀하신 경우이고요

혹은 하나님은 우리 mind (생각)속에 말씀을 넣으셔서

그 말씀이 우리 생각속에 명확하게 떠오르게 하십니다

비록 우리가 그걸 귀로 듣지는 못하지만요

혹은 하나님은 당신의 spirit ()에 말씀하실 수도 있어요

그러면 우리 생각은 이해하지 못해도

방언 기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영을 통해 입으로 전달

하지만, 이때 당신의 생각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spirit, mind생각, body몸에

예언을 주시면

그 예언을 body로 받아 mind으로 전달되고,

혹은 spirit으로 받아 mind으로 전달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결국에는 모두 입(예언)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직접 몸을 통해 말씀할 수 있습니다

영이나 생각을 거치지 않고요

하나님이 나귀로 말씀을 전했지요 발람의 나귀로

하나님은 나귀의 입을 통해 말씀하셨죠

분명한 것은 나귀는 생각이나 영이 없어요

그렇지만 예언했습니다

그래서 예언의 채널(경로)은 아주 다양해요

그는 직접 몸에게 말씀하여 입으로 나오게 하고,

생각에게 말씀하여 입으로 나오게 하고,

영에게 말씀하여 입으로 나오게 하고,

혹은 영에서부터 이성을 통하여 입으로 나오게 합니다

많은 방식이 있지만, 결국에는 모두 반드시 입으로 나오게 되죠

인간은 바로 이러한 방식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결국에는 (입으로) 전달합니다

선지자들이 전하는 메시지는 두 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잘못할 때 그것에 맞서는 메시지를 전하거나

-사람들이 잘할 때 위로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대부분 잘못했으므로

선지자의 메시지는 대부분 위로보다는 맞서는 것이었죠

이사야서를 보면 전반부는 죄에 대한 도전이지만

후반부는 너희는 위로하라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40:1

그래서 받은 예언에서 백성들의 상황을 볼 수 있는데,

죄를 범하면 그들은 바로 도전적 메시지를 받게 되고,

정직한 길로 가면 잘 한다는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거짓선지자는 두 번째 메시지만 주었어요

참 선지자는 둘 다 줍니다 상황에 적절하게요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항상 사람들이 듣기 원하는 메시지만

주었어요 위로만 주었지요

참 선지자는 보통 도전적 메시지를 더 많이 전했는데

왜냐면 모든 게 잘 돌아가면 하나님은 많이 말씀하지 않으셨죠

여러분이 직장에서 일을 잘 할 때는 사장이 말이 없습니다

사장이 당신에게 와서 말을 할 때는 대개 당신이 뭔가

잘못하고 있을 때죠

그래서 주님이 선지자들을 통해서 자주 말씀하셨을 때는

일이 잘못 되고 있을 때였지요 그래서 선지자들은 저주스럽고

침울한 상인이란 명성을 얻었어요 왜냐면 그들은 항상 비판적

이고 재난이 곧 닥친다고 말했기 때문이죠

실제로 한 선지자는 저주하는 음울한 선지자로 말거리가

되었는데 바로 예레미야입니다 *38:4

실제로 예레미야를 읽으면 사랑스런 위로의 말도 거기 나와요

너희를 향상 내 생각은 재앙이 아니라 평안이요29:11

그러나 대부분 그가 말한 것은 꽤 강했고 가혹한 내용이었어요

왜냐면 그들이 잘못 행하고 있었으니까요

이것이 선지자에 대한 간단한 배경이었고 지금부터

두 선지자를 살펴 볼 터인데 요나와 나훔입니다

히브리 발음으로는 요나와 나훔이죠

이것이 선지자에 대한 간단한 배경이었고 지금부터

두 선지자를 살펴 볼 터인데 요나와 나훔입니다

히브리 발음으로는 요나와 나훔이죠

 

왜 제가 요나와 나훔을 함께 묶었을까요?

먼저 두 사람은 같은 지역 출신이고 같은 곳으로

(선포하러) 갔습니다

 

그들은 같은 내용의 메시지를 전했고 그래서 그들이 어디 출신

인지 살펴봅시다 요나는 나사렛 근방에서 태어났어요

요나는 나사렛 지역 사람들의 (내려오는) 영웅이었어요

예수님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요나에 대해 듣고 자랐을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은 모든 선지자들 중에 오직 요나에게만

자신을 비교하셨어요 두 분은 한 마을 출신이었고

아주 흥미있습니다

나훔의 고향은 나사렛에서 조금 떨어진 곳입니다

나사렛은 이 곳에 있고, 나훔은 가버나움 출신입니다

가버는 마을이라는 뜻이고, ‘가버나움눈치 채셨죠?

이 사실을 여러분 대부분은 전에는 몰랐을 것입니다

아랍어로 마을도 쿠파, (히브리어) ‘케파가 변한 거죠

그래서 가버나움은 나훔의 마을이란 뜻이죠

이 도시 역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의 근거지였죠

그래서 예수님은 이 두 선지자와 매우 가까운 연관성이 있어요

그래서 두 선지자는 북쪽 출신인데 거기는 이스라엘에서

매우 국제적인 곳이었어요 (반면에) 남쪽의 산지는

매우 민족주의적인 곳이었고요

하지만 북방은 인터네셔설 (다른 나라와 접촉이 잦은) 지역이기

때문에 열방의 갈릴리 Galilee of the nations’라고 부릅니다

이는 갈릴리가 세계의 교차로에 있기 때문입니다

 

유럽에서 오는 길이 해안을 따라 오다가 이 교차로를 지나서

계속 남쪽으로 가면 아라비아에 도착합니다

또 아프리카에서 올라오는 길이 애굽에서 해안을 따라오다가

이 교차로를 지나서 다메섹으로 가서 인도와 중국까지 갑니다

그래서 아시아에서 아프리카로 가는 사람

혹은 유럽에서 아라비아로 가는 사람들이

모두 이 교차로(갈릴리 지역)를 통과하죠

그 교차로에 므깃도라 불리는 작은 산이 있는데

므깃도 산을 히브리어로 하면 하르-마게돈

이 이름(아마겟돈)은 여러분이 들어보셨을텐데

역사의 마지막 종말 전쟁이 벌어질 곳이죠

나사렛은 여기 이 산에 위치하고 교차로를 내려다보고 있죠

거기서 소년 예수는 모든 사람들이 오고 가는 것을 보셨습니다

마치 공항라운지 같이 모든 국적의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곳이죠

그래서 갈릴리는 매우 국제적이었고 반면에 유대의 남쪽 산지는

매우 민족주의 적이었고 고립되어 있었으며

주요 도로에서 벗어나 있었죠

 그래서 여러분은 두 곳의 (지리적) 영향을 아셨을 겁니다

흥미로운 것은 예수님은 국제적 지역(갈릴리)에서는 매우 유명

하셨지만 남쪽의 민족국수적 지역에서는 유명하지 못하셨어요

그곳 남쪽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죠

제가 간단히 배경을 소개했고요

요나와 나훔은 북쪽 사람 나사렛 출신이고

그래서 국제적으로 관계된 일에 민감했어요

그들 둘은 같은 나라로 예언하러 갔는데 앗수르죠

여기는 모두 사막, 아라비아 사막으로 알려져 있죠

중동에서 기름진 곳은 위로 두 강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지역과

나일 강 북부, 그리고 여기 조금 요단강 지역이죠

이 반원지역을, 기름진 초승달지대로 부르죠

그래서 누구든지 어디를 가려면

이 약속의 땅을 통과해야만 했어요

여기가 대륙들의 바로 중심이고 여기 이 좁은 복도 모양의

땅에서 모두가 만납니다 지중해와 (아라비아) 사막사이

그래서 위협이 이 작은 성지에 왔는데

큰 동서의 강대국으로부터 왔죠

이 작은 땅이 두 강대국 사이에서 밀착당했어요

이 두 강대국은 언제나 상대국을 정복하려 했죠

애굽은 메소포타미아를,

메소포타미아는 애굽을 정복하려했죠

 

 그러려면 쌍방 모두가 이 교차로를 거쳐야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스라엘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만약 이 교차로에 거주하려면 반드시 억압당할 것이다

확실히 그런 일이 일어났죠

우리가 걱정스런 것은 북쪽에서 힘쎈 나라가 일어나는 거죠

지금 이라크인데 사담 후세인이 다스리는 영토죠 *1993 강의

당시에는 앗수르라 불렸고 수도는 니느웨였죠 *모술

갈릴리에서 꽤 먼 곳이었어요

하지만 앗수르가 와서 애굽을 정복하려고 할 때

그들은 북쪽에서 성지를 거쳐 갔습니다

이 지도에서는 (앗수르는) 동쪽에,

애굽은 서쪽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 이 긴 복도 모양의 땅은 남북 방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남북 양쪽의 위협 모두를 대면하게 되었죠

그들이 바로 그 좁고 긴 복도모양의 땅에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이 두 선지자들은 왜 모두 니느웨로 갔을까요?

비록 그들의 연대는 250년이 서로 떨어져 있지만

아마 150년 같은데, 조금 후에 다시 확인해 보겠습니다

이제 우리 함께 역사적 배경을 보겠습니다

요나는 첫 번째로 앗수르에 도전한 선지자였고,

나훔은 (앗수르에 도전한) 마지막 선지자였어요

한분은 BC770년이고, 다른 한분은 BC620년이며

두 분은 150년 상간이네요

둘 다 앗수르에 갔는데 왜냐면 앗수르 사람들의 악함이 심했기

때문이죠 앗수르 제국은 750년을 지속했는데

그들은 끊임없이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사실 한동안은 이집트를 정복했었는데, 기름진 초승달 지대

를 돌아서 이집트를 점령했었습니다 애굽의 테베 까지

그래서 앗수르는 꽤 큰 제국이었고, 우리가 이름을 들어본

몇 명의 유명한 인물들이 나왔는데

산헤립에 대해선 이사야서를 공부할 때 자세히 보겠습니다

앗수르는 1354 BC에 시작되었는데 처음엔 꽤 작았지만

점점 확장되었어요

그들이 확장한 방식이 매우 잔인하였습니다

앗수르는 인류 역사상 가장 잔인하고 야수적으로

유명한 나라였습니다

그들은 아주 잔인한 방법을 한 가지 발명했는데,

바로 적을 말뚝으로 꽂는 것이었습니다

땅에 위쪽 끝이 뾰족한 말뚝을 땅에 박고는

적들을 그 뾰족한 말뚝에 몸 전체를 꿰뚫게 하였습니다

여러분 몸 아래로부터 꿰뚫려 죽는 고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렇게 서서히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들은 수만의 포로들을

이렇게 땅에 박아 죽었습니다

실제적으로 공포로 사람을 지배했는데 (최근 IS가 그 후손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앗수르 사람들을 무서워했습니다

그들은 피가 흐르는 나라였어요

이것은 제가 나훔서를 인용한 표현이었는데

나훔 선지자는 니느웨를 두고 말했죠 화 있을진저 피의 성이여

그들은 피에 목마른, 잔인하고, 폭압적이며 만약 앗수르가

자기 나라를 노려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 나라 사람들은

놀라서 반죽음이 될 지경이었죠

이것이 바로 당시의 배경이었고

이 그림은 요나와 나훔 사이에 연대()

아주 길었음을 나타냅니다

스바냐도 앗수르를 언급했지만, 결국은 나훔이 가서 선포하길

너희는 끝났다 하나님이 너희를 쓸어버리실 것이다

그 말대로 니느웨 성이 BC 612년에 함락되었고 5년 후인 BC 607

년에 앗수르 제국이 사라졌습니다 나훔이 예언한 직후에요

 하지만 요나가 선포한 후에는 망하지 않았는데 그게

요나의 문제였죠, 우리 조금 후에 이 문제를 보겠습니다

이상은 대략적인 소개였어요

이제 요나의 이야기를 봅니다, 이 큰 물고기의 이야기는

정말로 논쟁이 조금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실인지, 지어낸 것인지

역사인지, 신화인지

 이것이 전설인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혹은 피노키오처럼 동화인지

피노키오도 고래 뱃속에서 살았어요 디즈니 영화에 보면

현대 학자들 이구동성으로 이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죠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비유라고 하면서

이야기 속에 도덕적인 교훈이 포함되어 있다고 합니다

상상해 낸 이야기로 듣는 사람에게 도전을 주려고 하고

이것은 근본적으로 선교를 홍보하려는 자료이며

이 비유로 이스라엘이 나머지 세계에 선교적 사명이 있음을

깨우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요나가 이 선교의 임무에서 도망한 이야기에서

이스라엘이 교훈을 배우라 (그래서는 안 된다) 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런 식으로 접근하죠

바꾸어 말하면 그들은 오로지 자기들만을 돌보고

다른 나라에 가서 섬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더러 자신들의 임무를

잊지 말라는 깨우침이라고 합니다

문제는 성경에서 비유가 나타날 때면 항상 비유라고

명확하게 명시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이 비유라고

(서두에)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비유에는 기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는 8개의 기적이 나옵니다

비유속에 기적이 있었다는 말을 들어본적 없습니다

비유는 단순히 하나의 이야기이고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뜻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요나서가 하나의 우화라고 합니다

그 단어(알레고리, 우화)가 또 나오네요

성경에서 분명하게 지적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함부로 그것을 우화로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는 확실히 우화가 일부 있는데, 하지만 성경에서

요나서가 우화라고 말씀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학자들이 요나서가 우화라고 합니다

그들은 요나라는 인물은 이스라엘을 의인화했다고 합니다

브리튼의 존 불이 영국을 의인화했고

엉클 샘이 미국을 의인화했듯이

신화적 인물(요나)이 이스라엘 나라를 의인화했다는 거죠

 이 학자들은 고래가 요나를 삼킨 것은 이스라엘이

포로되어 삼켜질 것의 은유라고 합니다

듣고 보면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두 가지 설명에 모두 동의하지 않습니다

요나서가 픽션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일련의 반박이 있고요

이게 팩트라는 주장에 많은 무거운(엄중한) 이유들이 있습니다

1) 이 책의 문체가 역사적 책들과 정확히 똑같습니다

워딩, 문체, 문법이 열왕기서와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2) 이 책은 실제 지명과 실제 사람이름을 책 속에 명시합니다

요나는 열왕기에 나오는 실존인물이며 그래서 이 책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여로보암2세 때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아밋대

이렇게 요나는 성경의 역사책에 나오는 실제 인물이었어요

 3) 예수님도 요나를 실재했던 사람으로 말씀하셨고 예수님은

요나가 고래 또는 큰 물고기가 실재했던 것을 믿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요나보다 큰 자가 여기 있느니라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자라셨고, 요나도 여기서 태어났습니다

무엇보다 요나서가 비유 혹은 우화 라는 이론들은

정직하게 볼 때 욘4장을 설명할 수 없어요

우리는 중요한 문제 하나를 대답할 필요가 있는데

요나가 왜 도망을 갔을까요?

일단 답을 알면 요나서가 열릴(이해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묻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요나를 지어낸 인물로 생각하고 싶어서일까요?

왜 이 이야기를 팩트(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할까요?

반대하는 두 가지 중대한 이유가 있는데

우리가 이 이유를 함께 검토해 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요나가 당한 이 일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심리학적으로 불가능하다는데요

 유대인 설교자 한 사람이 어떻게 도시 전체를 회개시키겠느냐?

그는 근본 그 도시 출신도 아닌데요

마치 유태인 한 사람이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에서 설교하면,

심리학적으로 볼 때 그가 전체 런던 사람을 회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대면해야 할 두 가지 큰 어려움입니다

먼저 첫 번째 현실적 문제를 보겠는데, 두 질문이 제기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두개의 서로 다른 질문입니다

무엇보다 먼저

사람이 큰 물고기나 만약 그게 고래라면

그 속에 삼켜질 수 있겠습니까?

제가 전에 목회했던 샬폰슨피터 마을에 한 대장장이가 있었는데

그의 아들이 미국에 살고 있었고 이름은 하워드 브라운 이었죠

그 아들은 캘리포니아 마린랜드에서 고래조련사 일을 했습니다

그는 큰 수족관에 고래 한 마리와 와 돌고래 한 마리를 넣었는데

두 마리는 아주 가까운 친구가 되었습니다

후에 그 돌고래가 죽었는데, 고래가 자기 죽은 친구(돌고래)

의 사체를 사람이 만지지 못하게 했습니다 이 고래가

돌고래를 보호하려고 삼일동안 입 속에 넣고 있었습니다

고래는 포기하지 않고 돌고래를 끊임없이 수면 위로 올려서

돌고래가 다시 숨 쉬기를 바랬습니다

똑 같은 포유동물인 고래는 돌고래가 소생하기를 바래서

숨을 쉬게 했던 것입니다

하워드 브라운은 그 삼일동안 촬영한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었죠

돌고래의 크기가 사람과 비슷했습니다 그 현상은

참으로 이색적이었고, 제게 뭔가를 생각하게 횄습니다

여기에서 제 생각을 한 가지 나누고 싶은데

물고기 배속에서 요나는 도대체 죽었을까요 아니면 살았을까요?

제가 고래가 돌고래를 숨 쉬게 도와주는 필름을 보고

이 문제에 질문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시 요나서를 읽으면서 아주 놀라운 것을

발견했는데 고래가 물고 있었던 것은 요나의 시체라는 것이죠

그 증거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요나는 죽었다가 부활!)

2장을 읽으면 나오는데 요나는 익사했어요 그는 말하길

선원들이 자기를 바다에 던져 지중해 밑바닥까지 가라앉았고

산의 뿌리에까지 내려갔고 해초가 자기 머리에 있었다고 했죠

(우리는 요나가 살았다고 알지만 죽었다는 증거)

사람이 익사하는데는 130초 걸립니다

그런데 바다 밑바닥까지 도달하는데는 오래 걸리죠

전에 저는 항상 그 고래가 수면에서 입벌리며 떠다니고 있었고,

마침 그때 그들이 요나가 바다에 던졌다고 알고 있었어요

주일학교의 그림이 바로 이렇습니다

그가 바다 밑에 누워서 해초에 휘감겨 있는 그림은 없었어요

분명히 그 고래는 그의 시체를 (바닥에서) 집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기도 중에 말하기를

내가 스올(죽은 자의 처소)에 있으며, 깊은 구덩이에 있어요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2:6

요나가 의식이 있던 최후에 말하길

내 생명이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물들이 내 목구멍에 넘치나이다

이때 나는 여호와를 기억하였노라’ 2:7

다시 말하면 만약 그렇다면 모든 증거로 볼 때

요나는 생존한 것이 아니라 (죽었다가) 부활한 것입니다

즉 고래가 그를 토해냈을 때 하나님이 그의 몸과 영을 다시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이러면 예수님의 말씀이 더욱 이해됩니다

주님이 말씀하시기를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그렇게 땅 속에 있으리라12:40

여러분 일리가 있지 않습니까?

저는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비교적 쉽게 설명을 하려 하지 않아요

사실 물고기 뱃속에서 생존하는 것이

죽음에서 부활한다는 것보다 믿기 쉽기 때문입니다

저는 성경의 말씀을 부인하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의미를 찾으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에 대한 인상은

주일 학교 때 결정된 후 이어진 것입니다 (오류가 있을 수 있죠)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성경을 읽을 때

잘못 이해할 수도 있어요 제가 믿기로 요나서가 구약성경에서

부활에 대한 가장 뛰어난 예입니다 밤낮 사흘 후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요나로 자신의 경험을 동일시하셨습니다

주님은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그때는 당시 회의적인 유대인들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달라고

요구할 때였죠 그러나 요나가 죽었(부활)든지, 산채 생존했든지

어느 경우라도 그건 하나님이 행하시면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적에 대해 진짜 문제에 부딛히게 됩니다

요나서에 여덟가지 기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 가지가 아니라 여덟가지입니다

사람들은 한 가지 기적만 알지요 고래!

사실 고래보다 더 큰 기적들이 있었죠

마지막 장에서 하나님은 벌레를 명하여 뭔가 하게 하셨고

벌레는 순종했습니다 이것은 큰 기적입니다

아시다시피 제 친구 브라운은 캘리포니아에서 고래를 조련하는

데 그건 쉬워요 고래는 매우 지능적인 포유동물이기 때문이죠

그러나 저는 벌레가 써커스 하는 것은 보지 못했어요

여러분은 보셨나요?

저는 사람이 벌레를 훈련시키는 것은 결코 보지 못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벌레를 명하여 일하게 하십니다

이것은 큰 기적입니다

누가 제게 말하길 당신은 그 이야기를 정말 믿지는 않겠지요?

고래와 요나이야기, 당신은 정말 믿나요?‘

 저는 말합니다 그건 아무것도 아니죠 저는 벌레(기적)도 믿어요

그러면 그들은 하얗게 질리고 아무 생각도 없어집니다

그러나 보세요 요나서가 말하는 것은 하나님은 당신이 만드신

모든 사물을 전적으로 컨트롤 하신다는 그림을 보여주십니다

8개의 기적을 봅시다

1) 하나님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되었습니다

2) 사공들이 누가 하나님을 화나게 했는지 제비 뽑았는데,

하나님이 제비 결과를 장악하고 계십니다

1장이 바로 하나의 예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제비를 뽑았는데

하나님이 제비 결과를 장악하시고

사람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죠

사람들이 동전을 위로 던질 때, 동전이 공중에 몇 번을 돌더라도

하나님은 (정확히) 결정하시는데

이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적3) 그들이 갑판에서 요나를 던졌을 때

하나님은 바다를 잔잔케 하셨죠

4) 그리고 큰 물고기를 보내어 그의 몸(시신)을 삼키게 하셨어요

5) 그 다음에 물고기가 시신을 토하게 하셨어요

6) 그 다음에 밤사이에 포도나무가 자라게 하셨어요

사실 그건 박덩쿨 이었는데 잠시 후에 제가 사진 보여드릴게요

 7) 그 다음에 하나님은 벌레를 보내서

그 식물의 뿌리를 먹게하셨어요 그것이 곧 죽었죠

8) 하나님은 함심 Khamsin, 뜨겁고 건조한 사막 바람을 보내셨죠

이렇게 8번이나 이 작은 책에서 하나님은 자연을 조절하셨어요

여러분은 세가지 관점에서 한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그 중 한가지는 성경의 관점입니다 사실 여러가지 관점들이

많은데, 저는 여기서 세 가지만 언급하겠습니다

 

이 세 가지 관점은 영국에 널리 퍼져있어요

3가지 주요 관점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신 사실을 믿는지의 여부,

그리고 하나님이 여전히 세상을 컨트롤하심을 믿는지에 따라

이 관점들이 나뉩니다

1) 무신론인데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지 않았고

그래서 당연히 세상을 다스리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믿는 것이 무신론Atheism이죠

 2) 그런데 영국에서 가장 많이 받아들여진 것은 이신론

Deism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믿지만 지금 세상을

다스리신다고는 믿지 않죠문제는 교회 다니는 자들 다수가

이신론자 deist들입니다 *<>성으로 <>을 믿음

전에 누가 제게 은사주의적 갱신운동이 영국 크리스천들에게

미친 제일 큰 영향력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제가 다음 월요일에 당신의 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이것을 나눌 것인데, 제일 큰 영향은 바로

이신론자 deist들을 유일신론자 theist로 변하게 했다는 거죠

그들이 기적을 믿게 된 것이 새롭게 된 것입니다

왜냐면 이신론자들은 기적을 믿지 않아요 그들은 교회는

다니고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주이심에 감사합니다

하지만 날씨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데 그들은 하나님이 날씨는

변화시키지 못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신론자들은 기적을 기대하지 않는데 왜냐면 하나님은 지금

개입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죠 그럼 하나님이 불쌍해지시죠

그 분이 더 이상 이제 다스리지 않으신다니요!

지금 자연을 다스리는 것은 자연법칙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유일신론은 성경적 관점(철학)인데

하나님은 유일하게 세상을 창조하셨고

지금 그것을 다스리고 계신다고 믿습니다 아시겠죠?

그런데 지금 웃기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성경을 읽을 때는

유일신론자로 읽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살 때는

이신론자(이성적으로 신을 믿음)로 삽니다

제 말 뜻을 아시겠습니까?

제가 어떤 신자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검은 가죽(성경)안에 있는

어떤 기적도 다 믿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일어나는 기적은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실제 삶에서 그들은 이신론자이지만 신학적으로 그들은

유일신론자들입니다 성경적 철학은 유일신론(신본주의)인데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한 지금 다스리고 계신다고 믿죠

심리학적으로 볼 때 도시 전체가 회심할 개연성이

얼마나 불가능할까요? 이게 니느웨 그림인데

요나가 방문했을 당시를 (상상해) 그린 거죠

니느웨는 거대한 도시였어요 그래서 아주 인상적이었지요

이게 당시 왕궁 터인데 지금 폐허 더미만 남았죠

요나가 전파할 때 그 거대한 도시가 확실히 회개했습니다

멀리서 잘 모르는 나라 사람이 와서 전도했는데도요

그들은 종교적이었고 심지어 미신적인데

자기들이 믿는 신이 있었지요 이것은 시작입니다

 

두번째는 그들이 죄책감이 있었는데, 이 죄책감이 사람을

두려워하게 만듭니다 요나가 그들이 행한 죄를 지적하니

그들은 자신들이 유죄 임을 알았습니다

셋째로 부흥은 바닥 계층 보통 사람으로부터 시작해서

위로 올라가 왕궁까지 향했습니다

넷째로 그들은 요나의 표적을 보았어요 당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어떻게 된 거지요? 요나는 그들에게 이야기를

다 해 주었죠

요나는 말하길 하늘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나는 그 분을 피해

도망갈 수 없었어요 이것이 제게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표적(요나)을 보았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니 회심이 일어났어요

저는 도시 전체가 회심했다는 점을 믿는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요나서를) 믿었어요 그래서 말씀하시길 심판 날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날 것이다 왜냐면 그들은 회개했다

그런데 너희는 나에 대해서 들었을 때 회개하지 않는구나

큰 문제는 물론 왜 요나가 자기 임무에서 벗어나 도망했는가

입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4장은 거의 설교되지 않고, 잘 읽히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4장은 이 짧은 이야기의 심장부입니다

왜 요나가 그렇게 주저했는가요?

내가 거기 가서 설교하지 않을 거야라고 했을 때 그는 주로

누구를 생각했습니까? 그는 도망하기를 결정했고, 먼저 욥바

로 도망하였고, 그리고 욥바에서 배 한척을 찾았습니다

이 사진은 오늘날 욥바 모습인데요

그가 거기서 배 한척을 찾아 스페인으로 가려고 하였습니다

우리 잠깐 박넝쿨이 어떤 모습인지 봅시다

후에 하나님이 박넝쿨 한그루를 준비하여 하룻밤 사이에

크게 자라게 하였는데 이런 식물들은 아주 빠르게 큽니다

요나는 왜 이 임무에서 도피하려고 합니까?

그는 왜 주저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가 자신만 생각해서이고

겁이나서 그는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는 나무에 꽂힐까봐 두려워서라고 하는데 물론 저도 무섭죠

그는 그 도시의 사람들이 아주 잔인하다는 것을 알고 도망갔고

말뚝에 찔려서 죽는 것을 원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의 추론입니다 하지만 틀렸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사공들이 그를 바다에 던질 때 그는 기뻐했습

니다 그는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두번째는 누군가 말하기를 요나가 생각컨데 그들은 이방인인데,

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에 대해 전도를 들어야 하나?‘

(그럴 필요 없다)

이것은 반유대주의의 반대로 반이방인주의네요

이것이 이유일까요?

그러나 사실 그는 이방땅인 다시스로 도망갔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방인 땅으로 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말하기를 요나는 앗수르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악독한 자들이었음을 고려했기 때문이라 하였습니다

나는 그런 사람들 향해 가서 전도하지 않을 거야

그러나 이런 것은 아닙니다

또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요나가 이스라엘 생각하면,

당시 앗수르는 나약한 이스라엘의 제일 큰 위협이기 때문이었죠

앗수르의 국력이 가장 강했고, 끊임없이 판도를 확장했고,

나약한 이스라엘은 그들의 다음 사냥감이라고 하였습니다

요나는 이스라엘 적인 니느웨에 가기를 싫어했고,

그들은 이스라엘 미래까지 위협했습니다

저는 위의 어떠한 원인도 모두 답과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

, 우리는 요나 자신에게 이것을 해석하라고 합시다

그가 가서 전도한 결과 도시 전체가 모두 회개하여 화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40일 내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니느웨성을 멸할 것이라고 말하니

그들은 결국 회개하였습니다

만약 전도자 빌리 그레이엄이라면 아주 기뻐했을 것입니다

만약 도시 전체가 회개하는 것을 본다면요

그러나 요나는 반대로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화를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나의 신학이 원인)

그는 성밖의 한 산에 앉아서 하나님께 말하기를

제가 이렇게 되리라고 말씀드렸죠?

저는 당신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당신이 그들을 그냥 놓아줄줄 알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그들에게 위협만 주고 진짜로 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이렇게 말했지요

요나가 이렇게 하나님을 원망했는데, 그가 왜 이렇게 했을까요?

그는 자신이 전한 경고가 사실 하나의 호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설마 그가 사람이 구원 받는 것을 원하지 않았겠습니까

설마 그가 마음이 좁아서 다른 사람이 회개하길 원치 않았을까

? 저는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요나가 하나님께 말하기를 제가 고국에 있을 때

당신은 긍휼히 많으신 하나님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제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라고 하였는데, 이 말씀은 무슨 뜻이겠습니까?

답을 얻으려면 열왕기로 돌아가서 봐야 합니다

요나가 이스라엘에서 무슨 일에 부딛혔는지 봅시다 이 사건은

요나서에는 기록하지 않았고 열왕기에만 기록했기 때문이죠

열왕기에서 하나님이 요나를 부르셔서 선지자가 되게 하였고

그를 이스라엘의 아주 나쁜 군주에게 보내었는데,

이 왕은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였습니다

 

이로써 하나님이 '요나야, 내가 너를 이 나쁜 왕에게 보내니

그에게 메시지를 전하여라'

요나는 긍정적으로 말하기를 맞습니다 지금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그 왕을 다루실 때가 되었습니다

제가 무슨 메시지를 전해야 됩니까?’라고 하니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네가 가서 그 왕에게 내가 그에게 복을

주고, 내가 그의 국경을 확장해 주고, 그를 위대하게 하리라'

라고 전해라 요나의 반응은

그런데 그는 악한 왕입니다 주여 잘못된 메시지이지요?

응당 그에게 공의와 징벌의 메시지여야 맞는거 아닙니까

 

'너는 그 왕에게 가서 내가 그에게 복을 주겠다고 알려주어라

어쩔 수 없이 왕에게 가서 말하기를 '하나님이 말씀하셨다

너 나쁜 왕이여 내가 너를 축복하겠다

그는 속으로 생각하기를 하나님이 이렇게 해도 아무 소용이

없고, 나쁜 사람에게 복을 준다는 것은 다만 그들을 더욱

나쁘게 할 뿐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그 왕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더욱 악하게 되고,

갈수록 나빠지고, 온갖 나쁜 짓을 다하고, 하나님이 그에게

축복할수록 그는 더욱 나쁘게 변하였습니다

이로써 요나는 한가지 결론을 내렸는데,

즉 긍휼은 악인을 고칠 수 있도록 하지 못한다 였습니다

요나의 느낌을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주여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당신보다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그들을 그냥 두고 격려만 하시면

그들은 갈수록 더욱 나쁘게 변할 뿐입니다

제 말이 틀리지 않을 겁니다

요나가 니느웨성 밖에 앉아서 말하기를 이제 어떻게 되는지

우리가 봅시다 당신이 그들을 한번 내버려 둔 후

그들이 잘못을 깨닫고 바른길로 돌아오는지 봅시다

그들이 도대체 좋게 변하는지 나쁘게 변하는지 봅시다

이 때 그 박넝쿨이 자라났고, 그는 나무 그늘이 있어서 태양을

가려 주는 것에 매우 감사했는데, 후에 벌레 한마리가 그 나무

뿌리를 갈가 먹어서 그 나무는 말라 죽어버렸습니다

요나가 또 화가 났습니다 '주여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하나님이 요나에게 네가 이 식물때문에 화를 내는거 맞지?

네가 니느웨에게 화를 내는 것을 옳다고 생각하지?

그 도시에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가 50만명 있고

그리고 많은 가축들이 있어서 내가 그들을 긍휼히 여겼다

요나는 하나님 편에서 지금 매우 화를 내는 것입니다

(니느웨 규탄이 하나님의 뜻으로 오해) 저는 이걸 이해합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긍휼을 남용하는 것을 보았다면

당신도 화가 났을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 편에서 지금 매우 화를 내는 것입니다

(니느웨 규탄이 하나님의 뜻으로 오해) 저는 이걸 이해합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이 하나님의 긍휼을 남용하는 것을 보았다면

당신도 화가 났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면 그들은 오히려 본래보다

더욱 악해진다고 하면, 당신이 주님께 말하기를

나쁜 사람한테 이렇게 대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얼마나 인내하신다는 것을 잘 잊고

하나님이 얼마나 사람을 긍휼히 여기시는 것을 잘 잊고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여러 번 다시 기회를 주고 싶어한다는

것을 잘 잊어버립니다 요나는 이 점을 간과했습니다

하지만 요나가 지금 하나님이 그럴 줄 알고 대신 화 내는 것을

저는 이해합니다 이것은 당신을 화나게 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남용할 때

그들이 긍휼을 받아서 아무 일 없으면

(벌 안 받으면 우리는 화나죠)

마치 이런 것과 같죠 죽어가는 프랑스인 하이네가 파리에서

일생동안 죄 짓고 난 다음에 했던 마지막 말이 *시인

하나님이 날 용서해 주시겠지 하나님은 늘 그렇게 하시잖아

이렇게 사람들이 하나님의 긍휼을

이용하는 것을 보면 여러분도 정말 화가 납니다

이것이 바로 요나의 문제였어요 그는 하나님을 너무 사랑했어요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서 (대신) 화를 내는 겁니다 *오해였죠

그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하나님의 긍휼, 인내 많으심을요

그래서 악한 사람들에게 모든 기회를 주신다는 것을 잊었습니다

이 늙은 요나 저는 이 요나의 심정을 똑같이 느낄 수 있어요

그러나 우리는 (요나와) 반대 극단으로 가서 착각할 수도 있어요

하나님은 결코 화내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결코 벌하지 않으셔

이 말은 나훔서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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