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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서에 나오는 영적전쟁 P1

LNCK 2018. 12. 11. 20:15

 

느헤미야서에 나오는 영적전쟁 P1                느4:1~8                 출처

   

오늘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회복시키시는데 있어서 엄청난 영적 전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영적 정쟁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교회를 회복시키기 위해서

전례 없이 주를 깊이 아는 교회, 전례 없이 주를 깊이 사랑하는 교회,

전례 없이 하나 된 교회, 전례 없이 거룩한 교회, 전례 없이 강한 능력의 교회를 세우시고 계십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다가올 말세지말에 놀라운 하나님의 부흥을 위해서

그 부흥을 담을 새 부대의 교회를 예비시키는 것이고,

또한 다시오실 그리스도의 신부를 준비시키는 차원에서

하나님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시고 하나님의 열심이 이루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일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위대한 일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거기에는 큰 대가가 따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한 큰 영적전쟁이 있습니다.

 

느헤미야의 삶을 보더라도 이 길은 목숨을 내어놓고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으면 갈수 없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말하기는 참 쉽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이 되면

자기 목숨을 내어놓을 각오를 하고 주님을 좇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래서 큰 댓가가 따르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 되어지고, 하나님 교회가 하나님의 기준 가운데 세워지면

얼마나 놀라운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한편으로 사단은 그런 교회가 세워지는데 있어서 얼마나 방해를 하겠습니까.

그냥 일반적으로 생각을 해봐도 뻔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세워지는 곳에는 엄청난 영적전쟁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느헤미야서를 영적전쟁의 교과서라고 말합니다.

왜냐면 느헤미야서는 하나님께서 느헤미야를 통해서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시는 일을 하는데,

거기에 산발랏과 그 무리들이 그 일을 아주 강력하게 대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4:1]

여기에 산발랏과 그 일당들은 사단의 세력들을 대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서를 통해서 보듯이, 말세지말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회복시켜 가시는데 있어서

사단의 세력들이 강력하게 대적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제가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 가시는 것을 보고 순종하고 따라가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는 그것을 영적 전쟁차원에서 보지 못했습니다.

그저 너무나 큰 어려움도 많이 당했고, 너무나 큰 아픔이었는데,

지내놓고 보니까 그것이 엄청난 영적 전쟁이었던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 교회가 세워지는 초기일수록 더 그런 것 같습니다.

여러분 사단은 여러분이 주님을 따라가는 초기에 더 강하게 역사합니다.

왜냐면 세워지기 전에 그 싹을 밟아버리려고 하는 겁니다.

싹이 나려고할 때가 가장 절호의 찬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싹이 자라나지 못하게 그냥 밟아버리려고 합니다.

 

그래서 초기가 가장 영적전쟁이 심합니다. 그런데 일단 교회가 든든히 세워져가기 시작하면

거기에는 강력한 하나님의 뒷받침과 아울러 성도들이 분별력이 생기기 때문에

사단이 예전처럼 강하게 틈타지 못합니다.

때로는 가끔 틈타기도 하지만 초기처럼 공격이 심하지는 못합니다.

 

전도서 412절 말씀에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능히 당하나니

삼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기준 가운데 세워져서 연합되기 시작하면 사단이 쉬게 틈타지 못합니다.

 

이런 얘기를 처음 듣는 분들은 무슨 말인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일반 성도들에게는 이런 말이 피부에 안와 닿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자신이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여러분이 자칫 잘못하면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여러분이 선한동기, 좋은 의도만 가지고 있다고 절대로 안됩니다. 영적인 분별력이 없으면

여러분은 좋은 의도로 말하는지 몰라도 사단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좋은 예가 베드로에 경우입니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16:15-17, 21-23] 

 이처럼 우리가 좋은 의도만 가지고 안됩니다. 영적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새물결선교회에 속한 많은 교회들을 세워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단히 치열한 영적전쟁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여러분들이 진짜 경각심을 가지고 하나님에 길에 서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사단의 공격에 그 싹이 밟혀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서를 보면 이러한 영적전쟁의 형태들이 오늘날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답변도 그대로 있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부분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단이 사용하는 방법 1. 조롱과 경멸입니다.

 

첫 번째 조롱과 경멸, 순서는 있는 것은 아닙니다. 또 순서대로 사단이 시험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어져가는 과정에서 사단이 사용하는 방법들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조롱과 경멸입니다.

 

여러분들이 중보기도 하는 것이 절대 작은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중보기도를 통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에게 중보기도 하게 하셨더니 그가 얼마나 그 마음속에 부담이 있었던지

왕의 눈에 보기에도 그의 얼굴이 수심이 가득했습니다.

신하가 왕 앞에 나가면서 수심이 있는 얼굴을 나가면 죽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술 맡은 관원장이 왕의 파티에 기분 잡칠 일 있습니까. 다른 때 같았으면 죽었을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왕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 이유를 묻게 하시고,

느헤미야가 그 이유를 말할 때, 왕이 총독으로 조서를 내려 모든 필요를 내주게 하고

또 가는 길에 보호와 협조를 잘하게 하고, 그 성벽을 수리하는데 있어서

왕이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협조 공문까지 써줘서 보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드디어 예루살렘으로 오게 되고 성벽을 수리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또 중보기도와 관련해서 여러분들도 다 아시다시피 영국의 웨일즈에 부흥이 임했을 때,

그 웨일즈 부흥의 주역으로 쓰임 받았던 사람은 에반 로버츠였습니다. 그가 웨일즈 부흥의 중심인물입니다.

그런데 그 에반 로버츠는 집이 너무 가난해서 13세 때부터 광부로 일했는데, 학교를 제대로 다닌 적이 없습니다.

 

그런 그를 하나님은 13살 때부터 그 시대의 교회 상황을 보게 하시고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어떤 때는 피곤해 지쳐 잠에 떨어졌는데 하나님께서 한밤중에 일어나게 하셔서

밤새도록 중보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십 삼년 후에 하나님께서 웨일즈에 놀라운 부흥을 보내실 때,

그때 나이 겨우 26살인 에반 로버츠를 사용하셔서 놀라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때 단 6개월 만에 무려 십만 명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부흥의 여파가 퍼지고 퍼져서 우리나라 평양에까지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어떤 일로 초청하실 때,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 소홀히 여기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세요.

그러면 여러분들을 더 인도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느헤미야 같은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을 그에게 보이시고 중보기도하게 하신 다음

때가 되니까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는 일에 리더로서 일을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그 일을 시작할 때, 거기에 산발랏과 그 무리들이 대적하게 되는데,

그 대적하는 것 중에 한 가지가 조롱과 경멸입니다.

 

느헤미야 219절과 41-3절을 봅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종이 되었던 암몬 사람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이 이 말을 듣고 우리를 업신여기고

비웃어 가로되 너희의 하는 일이 무엇이냐 왕을 배반코자 하느냐 하기로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세우려고 하니까 산발랏이 대단히 분을 냈습니다.

이처럼 여러분들이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성벽이 세워지는 것, 이건 사단이 대단히 분을 낼 일입니다.

 

지금은 사단의 가치관과 사단에 영향력이 교회를 마음껏 드나듭니다.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교회의 리더십에 이르기까지

그 가치관과 태도와 자세가 너무나 세속적이고 인본주의적입니다.

그래서 사단의 영향력이 오늘날 교회 가운데 마음껏 드나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가운데 분별의 벽이 세워져서 하나님에게 선한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에게 악한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무엇이고,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기준이 무엇이고,

그릇된 신앙 체계가 무엇인가가 교회 가운데 발견되어지고,

분별의 벽이 세워질 뿐만 아니라 구별의 벽이 세워져서

 

세상적인 가치관과 삶에 태도, 자세, 방법, 그릇된 신앙관과 그릇된 신앙에 대한 이해,

이러한 것들이 철저하게 교회 가운데 비춰져서 방어의 벽이 세워지면,

절대로 사단이 교회 가운데 함부로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틈타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성벽이 세워지는 것을 사단은 방해하고, 대적하고, 분을 내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므로 시험하는 것 중에 하나가 조롱과 경멸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의 일의 크기가 엄청난 일인데,

그것에 대한 우리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실망하고 좌절시키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에게 하나님 크기의 사이즈와 현실적인 갭을 지적하면서 실망시켜 포기하도로 하기위한 것이

사단의 수법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때는 목회자들은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고, 진실로 세상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길에 서길 원합니다.

 

그래서 어느 날 노회에 가서 이런 설교를 했더니 후배 목사가 다가와 묻기를

목사님 요즘 성도가 몇 명이나 모이십니까?

이 말 한마디에 아무 말도 못하고 내놓을 것이 아무것도 없는 겁니다.

 

방금 전까지 교회 회복이 어떻고, 성벽이 어떻고 했는데,

지금 몇 명이나 모이냐는 그 한마디에 완전히 흔들리고 할말이 없는 겁니다.

그러면서 생각이 들기를 자기보다 늦게 목회를 시작한 사람은 벌써 교회 건축도하고

이렇게 저렇게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할지 모르지만

 

그래도 성도도 많이 모이고 예산도 빵빵하고, 차도 좋은 것 타는데,

나는 지금까지 겨우 성도 몇 명 앉혀놓고 이러고 있으니

내가 내 모습을 봐도 한심하고, 성도들 모습을 봐도 하나님 앞에서 진짜 변변한 사람 한사람도 없는데,

무슨 교회 회복이 어떻고, 무슨 하나님의 부흥이 어떻고 하는 자신이 너무나 우습게 보이는 겁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을 보게 하는 것이 사단의 수법입니다. 이게 사단의 대적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목회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옆집에 사는 다른 교회에 나가는 성도에게 우리교회는 이렇게 저렇게 하나님을 따라간다고 하면

그분이 말하기를 그래가지고 지금 몇 명이나 모이고 몇 년 되었는데,

그러면 또 코가 쑥 빠져가지고 할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게 사단에 수법입니다 사단은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는 것에 대해서 분을 냅니다.

그리고 사단은 자기의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해서 대적하는데, 그 대적하는 것 중에 하나가 조롱과 경멸입니다.

 

하나님의 일의 사이즈와 우리자신의 현실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시작도 하기 전에 실망시켜 포기하게 합니다.

때로는 친구를 통해서도 하게하고, 때로는 동료 목회자들을 통해서 하게하고,

때로는 이웃집 성도나 가족들을 통해서 실망과 좌절하게해서 포기하게 합니다.

 

잘 따라가다가 정신 차리고 보면 겁나는 겁니다. 그럼 다 때려치우고 옛날로 돌아갈까?

그래도 교회가 우선 성도라도 많이 모여야 되지 그러면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합니다.

 

그런데 이 때 어떻게 할 것인가? 답은 조롱은 하나님께 맡기고 여러분은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44절에서 6절을 보면 나옵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컨대 저희의 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의 앞에서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저희가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의 노를 격동하였음이니이다 하고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되고 고가 절반에 미쳤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역사하였음이니라

 

조롱은 하나님께 맡기고 여러분들은 부지런히 나가야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 보면 느헤미야만 나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 백성들이 같이 나갔습니다.

 

여러분 사단이 지도자에게만 조롱과 경멸은 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들에게도 동일하게 합니다.

이때 조롱과 멸시는 하나님께 그대로 맡겨놓고 여러분들은 부지런히 앞을 향해서 나가야 됩니다.

 

스가랴 4:10절에도 이에 대한 예언이 선명하게 나와 있습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여러분 이 일이 절대로 큰일이 될 수 없습니다. 제가 하나님을 따라 오면서 이런 일을 여러번 당했습니다.

지방회에 갔는데 누가 얘기하면 돌아와서 진짜 힘듭니다. 그러니까 안가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 지금 몇 명 모여? 교회가 몇 년 됐어? 그 말 한마디에 잘 따라가다가도 그냥 순식간에 마음이 낙심됩니다.

 

그러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지 정신 차리게 만들고, 옛날로 돌아가야 되는 것 아냐! 이렇게 만듭니다.

한번은 저한테 어떤 목사님이 유학 갔다 왔다고 그러던데 뭐 도움 좀 되나?

그때만 해도 저는 순진해서 그 말이 무슨 말이지 잘 몰랐는데, 그게 바로 조롱과 경멸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초기에는 더 그럽니다. 초기가 언제냐면 아직 전체 그림이 안보일 때입니다.

초기일수록 전체 그림이 안보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의 길이 분명히 맞는 것을 알기 때문에 따라는 가는데,

아직 그 앞에 뭐가 있는지 전체적인 그림이 안보입니다. 그런데 전체적인 그림이 보이면 그때는 쉽습니다.

 

▲전체적인 그림(씨앗)을 보면 쉽습니다.

제가 늘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이 행하신 그 일 가운데 그 씨앗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에게 특수한 씨앗이 하나 있는데, 그 씨앗이 자라게 되면

우리나라 식량문제는 완전히 해결 된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처럼 그 씨앗 뒤에 있는 것이 보이면 쉽습니다.

 

지금 우리가 주님을 따라가는 것은 손안에 있는 작은 씨앗 하나입니다.

남이 보기에는 하찮게 보이니까, 지금 몇 명이나 모이는데 그러면 할말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때 하나님의 교회가 회복되어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시 살고,

그야말로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어지고 나라가 살 수 있는 그 씨앗이 들어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전체가 보이니까 쉬습니다. 이처럼 씨앗 하나라도

그 씨앗 속에서 그 뒤에 있는 열매를 보면 문제가 안됩니다.

누가 뭐라고 조롱하고 경멸해도 절대로 문제가 안됩니다. ! 씨앗이 보이니까.

 

그런데 지금은 그 씨앗의 열매들을 조금씩 더 봅니다. 이처럼 열매가 전혀 나타나기 전이라도

그 씨앗에서 열매가 보이면 사단이 사람들을 통해 조롱과 경멸을 해도 앞으로 계속 나갈 수 있습니다.

 

다시 스가랴 4:10절 말씀입니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은 처음에 작은 일 일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성도가 만 명 있는 교회가 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 상황에서 제가 전하는 것처럼 아침저녁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한다면

과연 일년 후에 그 교회에 몇 명이나 남아있을까요.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 중에는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도 못한 상황에서

대부분의 성도들은 자기의 세상적인 목적을 위해서 하나님이 수단이 되어버려서

하나님께 종교적인 의무를 하면 그 댓가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이 채워줄 것으로 생각하는데,

 

거기다가 목회자들은 사람들 비위 맞추기에 급급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전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그래서 조금이라도 그들의 비위를 건드리면 금방 떠나니까

어떻게 하든지 자리에 앉혀놓기 위해서 말씀을 정직하게 전하지 못하는데,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여기까지만 전하고,

너희는 내게 와서 내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11:28-29)

여기까지 하나님 말씀 있는 그대로 전하지 못합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제시한다고 보십시오.

예수님 시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르니까

예수님께서 돌아서서 그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아니하면 나에게 합당치 않다.”

 

그랬더니 많은 사람이 주춤하면서 도대체 모슨 소리야! 그러는데,

또 예수님이 거기다 대고 또 하시는 말씀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 아내나 남편이나 자식을 미워하지 아니하면 내게 합당치 않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요구하는 것이 도대체 뭐냐는 겁니다.

이 말씀의 내용이 오늘날 보통 목회자들이 전하는 것을 훨씬 초월하잖아요.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내놓으라는 얘기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따라가다가 점점 느려집니다. 제자들은 속으로 예수님이 제발 그만 하세요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드디어 결정적인 카운트 뻔치를 날리시기를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내게 합당치 않다.”

그랬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으악! 하면서 떠나가고 다시는 주님을 좇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진실로 주님을 올바로 따르는 자들을 찾고 계셨던 겁니다.

오늘날도 주님은 올바른 목적으로 주님을 따르는 자들을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부지런히 주님을 향해서 그 뒤를 따라 갈 때,

때론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을 수 있습니다.

그때에 조롱과 경멸은 주님께 맡기고 여러분은 부지런히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사단이 사용하는 방법 2. 화를 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는 일에 사단은 심하게 분을 냅니다.

성벽의 구멍이 막아지는 것 세워지는 것을 정말로 싫어합니다.

벽이 세워지면 사단의 그 영향력이 교회가운데서 파괴됩니다.

 

지금 저희 포도나무교회만 하더라도 한편으로는 상당부분은 사단이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할 자리가 없습니다.

그리고 제 얘기는 한번 그러게 되면 항상 자동적으로 된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많은 부분에서 사단이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자리들이 없습니다.

이제는 거짓신앙체계 가지고 통하지 않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성도들이 그러한 것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누가 카리스마적인 뭐를 가져와가지고 자기의 신앙체계를 휘두르려고 한다. 아무도 동조하지 않습니다.

그야말로 맥을 모춥니다. 세속적인 방법을 가져다가 성도들을 속이려고 해도 넘어가지 않습니다.

뒤에서 소수의 몇 사람들이 사바사바 해가지고 교회를 엉뚱한 곳으로 인도하게 하려고요 통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목회자인 제가 어떤 개인적인 의도를 가지고 교회를 잘못 인도하려고 하면

금방 성도들을 통해서 들추십니다. 하나님이 금방 들추십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 거기에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현 상황을 볼 때,

사단이 교회 가운데 그 가치관과 태도와 자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억압하고

그 영향력을 미치고 신앙이 왜곡되게 하고, 그릇된 신앙의 방향으로 사람들을 인도하고

이러한 것들의 상당수가 더 이상 틈타지 못합니다.

왜냐면 이제는 상당부분 분별에 벽이 세워져있고 구별의 벽이 세워져있기 때문에 틈탈 자리가 없습니다.

 

어떤 때는 교회 가운데 앞으로 근본적으로 어떠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죄가 있으면 들추십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격체이십니다. 우리의 죄들을 하나하나 다 들추시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말하면 지금도 제 속에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부분이 아마 많이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제 얘기는 어떤 부분에서는 죄가 근본적으로 틈타서 성도들을 오염시키고

교회에 근본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 소지가 있는 죄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들추십니다.

들추시는 방법 중에 하나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한가지 방법은

찬양과 경배를 하는데 하나님이 임재를 거둬버리십니다.

 

그럼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찬양 리더가 문제가 있거나 내가 문제가 있거나 성도들이 문제가 있다.

한번은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반복되어져요 그럼 그때는 경각심이 올라갑니다.

왜 이건 절대로 가만있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찬양리더가 화요일 날 찬양 인도할 때는 매우 함께했어요.

그런데 주일날 찬양 인도할 때는 함께하지 않아요. 그럼 찬양 리더에게는 문제는 없어요.

왜 찬양리더가 문제가 있었다면 그때도 문제가 있었어야지요.

그때는 제게 문제가 있거나 교회에 문제가 있어요.

 

이런 식으로 해서 한번 예를 들면 하나님의 임재가 걷히는 것은 우리가 다 실수할 수 있고 그럴 수 있어요.

부족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한번 되고 두 번 되고 세 번 반복된다.

그때는 절대로 가만있을 수가 없어요. 이건 심각한 문제기 때문입니다.

 

어떤 때는 그렇게 하나님이 임재를 거두세요. 그럼 어떤 때는 설교를 못해요

! 지금 하나님의 임재가 교회 가운데 걷혔는데 설교가 무슨 소용이 있어요. 그럼 설교를 안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엎드립니다. 하나님 우리 가운데 무슨 죄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지금 합당치 못한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우리에게 알려주세요.

하나님 우리를 용서해주세요. 하나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하나님 앞에 기도 합니다.

 

그럼 하나님이 길을 알려줍니다. 어떤 때는 그럴 때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요.

얼마 전에도 그런 일도 하나 있었어요. 그리고 그것을 다루고 나면 하나님이 다시 임재를 회복시킵니다.

그래서 사단이 틈탈 자리가 점점 잃어져가고 있어요. 물론 아직도 벽이 다 막히지 않았어요.

그러나 상당히 많은 부분은 막혀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들어올 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런 일이 있을 때, 우리가 안보여서 그렇지 사단이 얼마나 분을 내겠습니까.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예배가 회복되어지고 하나님의 성소인 교회와 성도가

하나님 성전으로서 삶이 회복되어지고, 교회 가운데 하나님의 성벽이 회복되어질 때,

사단이 얼마나 화를 내겠느냐고요. 그 산발랏이 분을 크게 냈다고 그랬어요. 사단이 분을 냅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퇴락한 곳이 수보되어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하여

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쳐서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4:7-8]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니무슨 얘깁니까? 낙심시키려고, 이들이 조롱하고 멸시 합니다. 그런데 듣지 않아요.

분을 내도 듣지 않아요. 그랬더니 어떻게 하냐면 저들을 공격하자그러니까 이제 난리가 났어요.

경각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여기에 보시면 새마을운동처럼 한손에 무기 들고 한손에 삽을 들고 일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사단이 대규모적으로 공격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뭐냐면 말을 가지고 공격 합니다.

진짜 참기 힘듭니다. 이 세치에 혀를 가지고, 여러분 릭 조이너가 쓴 빛과 어둠의 전쟁을 보면,

말세지말에 있을 사단과 교회와의 영적전쟁 대해서

하나님이 환상을 통해서 혹은 이상을 통해서 쫙 보여주신 것을 기록 해놓은 겁니다.

 

그런데 거기 보시면 사단이 말을 타고 다니면서 성도들을 공격 하는데, 그 타고 다니는 말들이 성도들입니다.

사단이 성도들의 등을 말처럼 타고 다니면서 불화살을 막 쏴대는데

그 불화살이 또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회복하려고 하나님 길을 따라갈 때, 막 불화살을 쏴댑니다.

그러니까 얼마나 안타까워요 지금 성도들은 자신들이 사단의 도구로 사용 되는 것을 모르고 하는 겁니다.

 

성도가 다른 사람이 아니고 저와 여러분입니다.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하는데, 저와 여러분이 성도입니다.

사단이 말을 타고 다니면서 불화살을 집중적으로 쏘아대는데,

불화살이 뭐냐면 성도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입니다.

여러분 말세지말에 사단이 대규모적으로 공격합니다. 그런데 그 공격 중에 하나가 성도들의 말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 어떤 때는 이런 경우까지 있었어요. 물론 제가 부족한 면이 있었어요.

그러나 저에 부족함만 때문은 절대 아닙니다. 돌이켜보면 분명히 영적전쟁이었습니다.

그래서 경각심을 가지지 못하면 사단의 도구로 쓰임 받습니다.

 

어떤 때는 예배가 끝나면 성도들이 한집에 모여서 집중적으로 저를 후욕 합니다.

그리고 어떤 때는 전화해가지고 하나님이 하라고 해서 한다고 하는데,

제 아내가 받았기에 망정이지 제가 받았으면 살아남지 못할 별말을 거침없이 합니다.

 

거짓선지자는 둘째 치고, 사기꾼, 도둑놈, 하여튼 입에 담을 수 없는 말까지,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 아내에게 은혜를 주셔가지고 그런 말을 듣는 대도

그게 마음에 상처가 전혀 안되도록 그렇게 딱 막아 주셨어요.

오죽했으면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전혀 다른 교회 나가는 성도의 그림을 보여주세요.

그게 뭐냐면 사람들이 와서 제 눈에다가 고춧가루를 팍 뿌려버려요.

저는 지금 뭘 말하려고 하냐면 영적전쟁에 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한번은 C.I에 갔더니 그분들이 기도해주면서 하는 말이 사람들이 칼을 가지고 제 가슴을 난도질하더래요.

그런데 뭘 가지고 그러냐면 말로 난도질하는 겁니다. 자기들의 판단과 평가를 가지고 그럽니다.

거짓선지자란 말은 그래도 부드러운 말입니다. 별소리를 다했어요.

그러니까 기도 받는데 하나님께서 저에게 네가 참다운 선지자인건 나도 알고 너도 안다. 그러시더라고요.

 

지금 말하니까 웃음이 나오지 그 당시에는 전혀 웃음이 안나와요.

인간으로서는 들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악한 말을 다 들었어요. 사단의 공격입니다.

진짜 참기 힘든 공격, 가슴을 난도질하는 대규모적인 공격입니다.

리고 C.I 갔을 때, 나는 혹시 좋은 다른 뭐라도 주실까 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맨 영적전쟁만 얘기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나님이 저에게 큰 칼을 주셨는데 이쪽에 싹 휘두르면 이쪽에 있는 지옥의 세력들이 싹 무너지고,

저쪽에 싹 휘두르면 저쪽이 싹 무너지는 그림이 보인데요.

 

그러니까 사단이 온 지옥을 다 동원해서 저를 죽이려고 한데요. 그러면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을 보인 겁니다.

그리고 그다음 뭐라고 그러냐면 그런데 하나님이 온 천국을 동원해서 날 지키셨대요.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왜냐면 나는 지금 그 소리 들으러 온게 아니고,

뭔가 미래에 대해서 좀 비전을 주시시를 기대했기 때문에,

그런데 맨 영적전쟁이 어떻고 칼에 귀신이 쓰러지고 그러니까 처음에는 전혀 이해가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나중에 돌이켜보니까 너무나 선명하게 이해가 됐습니다.

 

여러분 율법주의는 사단이 교회를 공격하는 가장 큰 무기입니다.

교회가 율법주의 가운데 빠지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끊어지게 되고,

하나님의 임재는 걷히게 되고, 하나님의 생명이 걷히게 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은 소멸되게 됩니다.

그럼 교회가 영적으로 죽는 겁니다.

 

그래서 그런 율법주의적인 사고방식이 우리 가운데 너무나 팽배한데 제가 말씀의 검을 통해

그 율법주의를 들춰내고 다니니까 얼마나 영정전쟁입니까. 이보다 더 큰 영적전쟁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니까 사단이 공격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말을 가지고 난도질하는 것입니다.

 

진짜 그 그림에 나온 것과 똑같을 만큼 그랬어요. 어쩌면 칼로 난도질한 것처럼, 그렇게 합니다.

여러분들 중에 경험하신분도 많을 겁니다. 이 길을 가면 그런 일이 있을 겁니다. 이건 영적전쟁입니다.

그럼 왜 성도들이 사단에게 쓰임 받는 줄 아세요? 분별력이 없어서 그럽니다.

자기 생각대로만 하려고 하니까 그래요. 내가 보기에는, 누가 말하는데,

그러면서 하나님말씀은 중요하지 않아요. 분별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말을 반드시 조심하셔야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다루시는 것 중에 하나가 후욕인데, 반드시 말을 다루십니다.

 

우리나라는 어느 나라보다도 후욕하는 문화가 조상대대로 내려오고 있어요. 이건 저주입니다.

제가 3년 전에 미국에 세미나 때문에 갔었는데, 그전에 제가 공부하기 위해서 미국에 한 7년 살았는데,

돌이켜보면 그때도 진짜 그랬습니다. 신학교에 있으면서 학생들이 모이기만하면

한 두 사람 도마 위에 올려놓고 그 사람을 그냥 이렇게 비판하고 저렇게 비판하고 그랬는데, 참 잘못했더라고요.

 

학생들이 서로 바빠서 수업시간외에는 못 만나는데 시험 때는 시간이 나니까 모여서 욕하는 겁니다.

한 두 사람 빼고는 엄청난 죄를 졌어요. 그래서 회개 많이 했어요. 그래서 제가 세미나 갔다 와서

그분에게 잘못했다고 편지를 썼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씨를 뿌려놨으니 제가 안 당하겠어요.

그래서 그런 면도 있지만 이게 영적 전쟁입니다.

 

그런데 제가 미국에 가서 한국식당에 들어가 신문도 보고, 또 미국 내에 나오는 신문을 보는데,

가만히 앉아 있는 그 자체가 힘들어서 못 앉아 있겠더라고요. 꼭 뭐와 갔냐면 공중에 화살이 가득한 것 같아요.

서로 상대방을 비방하는 화살이 신문을 통해서 방송을 통해서 뭐를 통해서 뭐를 통해서,

그냥 완전히 불화살이 하늘을 덮는 것 같아 숨이 막히고 답답해서 못 있겠더라고요.

 

미국은 넓어도 그중에 한인사회는 좁으니까 더 심합니다. 이게 우리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저주입니다.

심각한 저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는 리더가 절대 안 세워집니다.

하다못해 아이들이 학교에서 반장만 되어도 가만 두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건 우리의 저주입니다.

 

그래서 리더가 안 세워져요. 어느 한사람이 세워지려고 하면

그 사람이 누구든지 끌어내리지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이런 문화 속에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기다가 영적인 것까지 더해지니까 이것은 진짜 릭 조이너가 말한 것보다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완전히 난도질합니다. 이게 사단의 공격입니다. 대규모 공격입니다.

저 같은 경우에는 그런 일을 몇 차례 겪었습니다.

 

한번은 제가 하나님 앞에 이렇게 기도했어요. 하나님 제가 명예로운 퇴직을 하게해주세요.

무슨 말이냐면 제가 목회 그만두면 저를 그렇게 비방하고 욕하는 사람들에게 거시기 하잖아요.

저는 하나님이 부르신 뒤로 말씀 전하는 것 외에는 하고 싶은 게 없고 인생의 의미를 못 느낍니다.

그래서 다른 일을 하기 싫고 그러니까 기도원에 가서

기도원에 오는 사람들에게 말씀전하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때는 진짜 뭐처럼 느껴지냐면 아주 좁은 길이 있는데 완전히 양쪽은 낭떠러지예요

그런데 거기에 제가 쫙 엎드려가지고 하나님 저는 못가요 저는 못가요 그러고 있는 겁니다.

이게 사단의 공격입니다.

 

여러분 그 쪽으로 쓰임 받지 마세요. 사단의 도구로 쓰임 받지 마세요. 사단이 타고 다니는 말 되지 마세요.

리고 여러분의 입으로 사단이 사용하는 화살 되지 마세요. 그러려면 여러분이 영적인 분별력을 가져야 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지 못하면 원치 안해도 그렇게 됩니다.

내 생각에는이러면 반드시 사단에게 쓰임 받는 도구가 됩니다. 여러분의 생각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앞서서 하나님의 종이 여러분을 인도할 때,

여러분이 거기에 가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여러분이 이유를 알겠습니까. 모릅니다.

인도하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지 안 맞는지를 보고 말씀에 맞으면 순종해가야지,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작은 지식가지고 판단하고 평가하면 절대로 못갑니다.

그런데 사단은 그것만 가지고 공격하지 않습니다. 대규모 공격을 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말입니다.

  

  

사단이 사용하는 방법 3. 환경을 통해서 공격합니다.

 

재정적인 공격

또 하나 어떤 때는 환경을 가지고 공격합니다. 대규모 공격을 펼칩니다.

교회 같은 경우 특별히 재정문제로 공격합니다. 저희 같은 경우에도 말씀드린 대로 처음 분당에 개척했을 때,

일반 재정으로 한달에 300만원씩 적자가 났습니다.

 

월세가 250만원인데 그렇다고 어디 다른데서 꿔다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채워주셔야 되는데 일반적인 적자가 300만원씩 나는데, 쉽지 않지요.

그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입주하기 시작하니까 하나 둘씩 찾아오는데,

목사의 설교는 사람들을 완전히 떨어뜨리려고 하고 있잖아요. 그때는 또 얼마나 메시지가 강했는지요.

 

그러니 그전에 임시처소해서 같이 더해진 성도들이 얼마나 안절부절합니까.

저렇게 안해야 성도들이 올 텐데, 300만원씩 적자나는데, 그러면서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어요.

 

그런데 나는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가는데, 그때 헌금을 제일 많이 한분이 계셨는데,

그분이 처음 교회 세우는데 헌금을 많이 했습니다. 일억이 넘는 헌금을 했고,

그분이 한달에 십일조만 해도 100만원 했는데, 그분이 교회를 떠날지 모른다고 하니까.

그때 내가 첫 번째로 딱 생각되는 게 '그럼 교회는 어떻게 하지..'

 

그런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하나님께서 저에게 뭘 비추시냐면

내가 여태까지 하나님만 의지했다고 생각해 왔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의지하는 것을 보여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그분이 떠난다니까 교회가 염려된 것이죠. 안그래도 한달에 300만원 적자인데,

그분이 떠나면 십일조만 100만원이고 합계가 200만원인데, 그럼 한달에 500만원이 적자인데,

그동안 말은 안했어도 얼마나 부담이 됐겠어요.

그래서 그분이 떠나기 전에 제가 그분에게 잘못했다고 말을 했어요.

 

교단적인 공격

어떤 때는 교단적인 공격도 있을 수 있습니다. 자 그러면 보세요.

말을 통해서 공격하는 것이건, 경재적인 압박이건, 그것이 교단적인 공격이건, 어떠한 공격이건

우리가 여기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사람에 관한 모든 것을 끊고 하나님만 의지해야합니다. 그럼 이깁니다.

 

불화살을 막는 것은 믿음에 방패입니다. 그런데 그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저 같은 경우 이런 게 있습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주신 겁니다. 그게 뭐냐면 예를 들면 한달에 재정이 300만원씩 적자가 났는데

그분이 교회를 떠날지 모른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교회는 어떡하지 하고 싹 생각이 드는 순간

내가 사람을 의지했던 것을 보이셨는데, 그런데 이런 일이 닥치면 저는 사방의 커튼을 내립니다.

사방의 커튼을 다 내린다는 말은 내 마음속에 누구도 어떠한 사람도 보지 않고 하나님만 보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런 일이 있으면 저는 오직 주님만 바라보고,

아무것도 보지 않습니다.

 

여러분 저를 함부로 초청하지 마세요. 왜냐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꼭 나눠지게 되어있습니다.

요한 웨슬리가 제자들이 전도 나갔다 돌아오면 묻기를 사람들이 너에게 화를 내더냐 아니요.

그럼 돌을 던지더냐 아니요. 그러면 너는 집에 가서 애나 보라고 했다고 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자기가 최근에 돌마저 본 기억이 없어서 회개했다고 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면 하나님 말씀을 정직하게 전하면 반드시 두 가지 반응이 나타나게 되어있는데,

하나는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 돌이키든지 아니면 분을 내게 되어있습니다.

두 가지 반응이 다 없는 것은 말씀을 정직하게 안 전해서 그럽니다.

 

예수님을 보세요. 말씀을 전할 때, 근본적으로 돌이키는 자들이 있는 반면에

바리새인처럼 쫓아다니면서 분을 내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가는 곳마다 그랬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할레를 전하면 왜 지금까지 핍박을 받겠느냐.”

말씀을 정직하게 전하면 홍해처럼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그러니까 변하지도 않고, 화도 안내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정직하게 전한 것이 아니고

사람을 기쁘게 하기 때문에 둘 다 아니라는 겁니다. 영적으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정직하게 전하면 반드시 둘 중에 하나가 있게 되어 있습니다.

듣고 변하든지 아니면 화를 내든지 갈라집니다.

 

그래서 제가 외부 설교를 잘 안 가려고 합니다. 저를 아는 분들 외에는 초청해도 안갑니다.

그래서 가서 말씀을 전했는데, 한분이 이때만 그런 게 아니고 그전 때부터 교회를 나가려고 그랬는데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교회를 나갔어요. 그런데 그분들 가족이 그 교회에 상당수였어요.

그런데 그분들만 나가면 또 좋은데, 다른 한분은 잘 따라오는 줄 알았더니 그분까지 나간다고 그러네요.

 

그리고 그분들이 그렇게 나가니까 남은 분들이 말하기를

아니 새물결선교회 안가면 저 사람들이 안나간다고 그러는데

뭐 때문에 새물결선교회에 가가지고 이렇게 하느냐고 다 흔들리는 겁니다.

그러니까 와가지고 뭐라고 그러냐면 어떻게 할거냐고,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영적인 공격입니다.

 

이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절대 그렇게 얘기하지 말라고 했어요. 이것은 영적 전쟁입니다.

엄청난 영적전쟁입니다. 여러분 눈에 안보일지 몰라도 대규모 영적전쟁입니다. 설득가지고 절대로 안됩니다.

 

여러분이 설득하려고 그러면 더 올무에 빠져들어 갑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되는 줄 아세요.

그때는 모든 커튼 다 차단해야 합니다. 사람 바라보는 것, 사람 의지하는 것,

다 내려놓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저는 저희 교회 성도들 앞에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나는 여러분 누구도 의지하지 않는다고,

그럼 성도들이 마음 상한 걸 알아요. 그러나 저는 분명히 그 얘기를 합니다.

저는 어느 누구도 교회서 의지하지 않아요. 제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섬기라고 하신만큼 섬길 겁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아무리 많이 봉사하건 아무리 많이 헌금하건 아무리 많이 뭐해도

절대로 여러분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제가 만약 누구를 의지하면 그분 반드시 시험 듭니다.

 

저는 여러분을 사랑하지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보통 때는 하나님만 의지한다고 하면서도 잘 모릅니다.

 

처음 교회를 세울 때, 돈이 전혀 없을 때, 하나님이 채우셔서 왔는데,

그래서 그렇게 믿어왔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사람을 의지했던 게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이런 게 있으면 하나님이 때로는 영적전쟁을 할 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그래서 전시가 닥치면 더 모든 걸 차단합니다. 그리고 주님만 바라봅니다. 그래야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래야 영적전쟁에서 이깁니다. 그래서 저는 그 목사님에게 그랬어요.

주님만 바라봐라. 모든 눈 감고, 우리 주님은 단 한사람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설령 다 나가더라도 주님만 의지하고 서면 교회는 하나님이 세우십니다.

교회의 주님은 하나님이고 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간다는 것 절대 가볍게 생각하지마세요.

우리는 철저하게 사람을 의지하는 것을 다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공통분모만 있으면 됩니다.

여러분의 담임 목사와 여러분의 사이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외에 다른 공통분모가 있어서는 안됩니다.

저희 교회는 제 친형제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희 형제들이라도 일을 맡기는 것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도 고려하지 않습니다.

 

저는 그게 하나님 앞에서 옳은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제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공통분모 외에는 저와 여러분은 어떠한 관계도 없습니다. 매우 차갑게 들리죠.

 

하나님을 사랑하는 공통분모 외에 다른 것이 끼어들면 우리가 성령을 거역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봉사한 것 하나님이 다 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헌금한 것은 하나님께 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사랑해서 했고, 저도 하나님 사랑해서 섬기고,

이 공통분모 외에는 아무것도 있을 수가 없고, 있어서도 안됩니다.

이 외에 다른 것이 들어가기 시작하면 교회는 성령의 인도를 따르는 게 아니라 사람의 힘이 미칩니다.

그리고 제일 강한 끈은 지금 말씀드린 이 사랑의 끈입니다.

 

어떤 인간적인 끈보다 훨씬 강합니다. 그리고 이 토대위에 세워질 때에만

우리가 상대방을 성경에 말하는 의미에서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보통 때에도 그래야 합니다. 이게 안 되어지면 새 부대 교회는 안 세워집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데 하나님이 그걸 가만두실 것 같으세요. 절대 안 세워집니다. 반드시 다루십니다.

 

여러분이 저분이 봉사해서 의지한다. 저분이 헌금해서 의지한다. 잊어버리십시오.

하나님만 의지하지 않고는 안 세워집니다. 하나님이 반드시 그걸 먼저 다루십니다.

그리고 여러분도 목사님 개인적으로 잘 선기고, 양복 사드리고 헌금 많이 했으니까 특별 대우해달라고요

아니요 잊어버리세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한 것입니다.

 

서로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섬겨야 합니다.

실제로 저 같은 경우에 여러분이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제 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섬기기보다 저에게 개인적으로 잘하려고 그러면 저는 되게 싫습니다.

제가 여러분을 섬기는 것은 여러분 속에 있는 하나님 목적을 위해서 섬기는 것이고,

여러분이 저를 섬긴다면 제안에 있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섬기는 겁니다. 아멘.

 

그때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공통분모가 있기에 진실로 형제자매로서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토대위에 있지 않고, 여러분이 개인적으로 저에게 잘해주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인간의 정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보통 때에도 이게 되어져야 합니다.

이렇게 되어져야 교회가 반드시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가운데 세워집니다.

이게 되어져야 인본주위로 나가지 않고 하나님의 성령이 운행해 가심을 따라 순종하는 게 됩니다.

 

보통 때에도 그렇게 되어져야 합니다.

그게 안되면 하나님께서 시험을 통해 사막을 뱅글뱅글 돌리듯이 돌려서 다루십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신뢰하게 하게 하십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것이지 신뢰하는 대상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닫고 하나님만 바라보세요.

그런데 이것을 많은 경우에 시험을 통해서 하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이때 사단이 대규모로 공격해옵니다.

모양은 다를지 몰라도, 많은 경우에 이 과정을 통과하게 하십니다.

 

그럼 대규모로 공격해올 때 어떻게 하느냐? 똑같습니다.

첫째는 당연히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되고,

또 하나는 어떤 사람을 바라보는 것을 철저히 막고, 하나님만 신뢰해야 합니다.

이것은 목회자든지 성도든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럼 이깁니다.

 

하나님은 강하십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하려고 하지마세요 그럼 넘어지는 길입니다.

사람의 방법으로 설득하려들지 말라는 겁니다. 같이 넘어집니다. 이건 영적전쟁입니다.

기도하셔야 되고, 하나님만 의지하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감동을 주셔서 이렇게 하라 그러면 순종하는 겁니다.

그러나 사람의 방법으로 설득을 통해서 이루려고 하지 마세요. 이것은 대규모의 영적전쟁입니다. 아멘,

 

◑4. 내부로부터 공격은 2부로 넘어갑니다

 

여주봉 목사 설교, 정리: 조정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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