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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LNCK 2019. 3. 28. 17:32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고전3:21, 4:14                              출처

 

교만하지 않는 자랑,

정말로 겸손하면서도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고 있는 자랑!

이것이 참 중요합니다.

 

이것은 전체의식, 또는 존재감이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세요. 얼굴이 잘 났어요.

이 때문에 인간관계가 무너집니다.

 

돈 이라는 것이 참 중요하지만

돈 때문에 많은 일들이 생깁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은 후계자는 있어도 아들은 없다!’

 

돈이 많은 사람은 그 유산을 물려받을 사람은 있지만

사실은 돈 많은 집에는 식구들간에 화목이 없습니다.

그 아름다운 귀한 화목함의 정서가 다 깨지는 것을 봅니다.

또한 아시다시피 형제간은 물론 부자지간 까지도

돈 때문에 문제 되는 것을 많이 봅니다.

 

가난했으면 다 좋은 관계였을 텐데

좋은 효자도 나오고 효부도 나올건데 말입니다.

 

명예.. 이것은 갈수록 태산입니다. 점점 겸손하기가 어렵고

건강.. 이것도 꼭 복이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너무 건강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제 친구 한 명이 그만 상해치사로 자기 부인을 다치게 했습니다.

그래서 감옥에 있을 때 제가 찾아가 보았습니다.

그때 그가 한 말입니다. ‘아니,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답니다.

그런데 그가 워낙 건강했습니다. 몸집도 크고요.

자기 말로는 딱 한 번 쳤는데, 아내가 죽었답니다.

 

자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무엇 때문입니까?

너무 건강이 좋았어요. 그것도 자랑거리가 아니더라고요.

 

여러분, 똑똑한 것, 남보다 머리가 좋아서

덕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본문은 이 모든 말을 종합해서 딱 한 마디로 말합니다.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고전3:21

 

자기가 남보다 우월한 것을 자랑하지 말라!

    

 

고독의 원인은 교만

 

현대사회에서 가장 어려운 근본 문제,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 연구합니다만

심리학적으로 제일 큰 문제는 고독입니다.

 

모두가 고독으로 고통 받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좋은 세상에 전부 독신으로 살지 않습니까.

40%가 독신으로 산다고 합니다.

혼자 살면서 고독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래서 절망하고, 우울증에 빠지고

몸도 마음도 병들고 마지막에 자살까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운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 원인이 무엇입니까? - 교만입니다.

 

왜 친구가 없습니까?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왜 외롭습니까? 외로울 이유가 하나도 없는데요.

교만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입니다.

 

고독의 원인은 교만입니다.

이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농사의 이치를 생각해 봅니다.

, 토지, 종자가 있어야 농사를 짓습니다.

또 비와 햇빛이 있어야 하고, 바람이 불어야 합니다.

어느 것 하나도 우리 인간의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께로부터 몽땅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농사꾼은 교만하지 않습니다.

 

바다에서 일하는 사람도 교만할 수 없습니다.

그 대자연앞에 겸손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현대 문명이라는 것,

전기도 쓰고, 자동차도 타고,

이런 저런 인간의 기술발전으로 인해서

편리해지기 시작하니까

 

그 소중한, 대자연에 대한 신비, 생명에 대한 존중

이런 것들을 다 잃어버리고 교만해 졌습니다.

인간이 기술발전 이후에 교만해 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 하나님을 믿던 사람들의 전통까지도 부정하며

초인간 됨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교만입니다.

 

그 교만이 우리 세대를 이렇게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는 언제나 자기 노력으로 삽니다.

노력하면 된다고 믿습니다.

 

옛날 새마을운동 할 때

그 당시 제가 강사로 새마을운동 본부에 가서 강연을 많이 했습니다.

거기 들어갈 때 보면 입구에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는 슬로건이 크게 붙여져 있었습니다.

 

그 구호를 보고서 제가 들어가서 강당에서 강연을 했습니다.

그때 제가 했던 말은

하면 된다!’ .. 이것은 인간의 교만입니다.

해도 안 될 것은 안 된다!’ 제가 그랬습니다.

 

여러분, ‘하면 된다, 안 되면 되게 하라!’

좋은 말처럼 들리지만 얼마나 교만한 말입니다.

하면 되죠. 그러나 안 되는 것은 안 됩니다. 그걸 아셔야 합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생각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은혜로고요

모든 게 하나님의 은총이라고요.

 

지혜로운 자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작은 자이다.’

 

하나님의 은총을 인정하려면, 내가 작아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순간, 바로 내가 작아집니다.

하나님의 큰 은혜, 하나님의 큰 역사와 신비 앞에

인간은 아무 것도 아닌 초라한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한 유명한 말이 있죠.

우리가 과학을 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바닷가에 나가서 어린아이가 거기서 조개껍질을 줍는 것과 같다.

, 하나님의 큰 역사 앞에

인간의 과학이란 것은, 거기서 조개껍질 하나 가지고 노는 것 같은..

그것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총 앞에 작아지는 인간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생 겸손했던 사도 바울

 

사도바울은 말합니다.

그의 유명한 고백이 빌3장에서

내가 과거에 좋아하는 것, 가말리엘 문하에서 공부했고

베냐민 족속이요, 바리새파요,

옛날에 자랑으로 여겼던 것들을

오늘에 와서는 내가 다 잊어버리고, 내가 스스로 다 버리고

나아가서 분토와 같이 여겼다고 합니다.

 

해롭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로운 줄 알았는데, 이제와서 보니

신앙적으로 볼 때, 그것은 해로운 것이다.. 라고 인정합니다.

철저한 자기 부정을 합니다.

 

그리고 작아집니다.

 

재미있는 얘기입니다.

사도바울의 원래 이름은 사울입니다.

이스라엘 왕국의 제1대 왕의 이름을 따서 사울이라 했습니다만

언젠가는 (그 시기를 아무도 모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종으로 일할 때 바울로 이름이 바뀝니다.

 

바울이란 말은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아마 키가 좀 작아서, 어렸을 때 별명으로 그렇게 파울루스로 불리웠을 것이라 추측도 합니다.

 

그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사람이 될 때

그 별명, 남들이 자기를 업신여겨서 불렀던 그 별명을

자기 이름으로 바꿉니다.

나는 작은 파울루스이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서신서 서두에 자기를 소개합니다.

바울(작은 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나는 작은 자다!’

 

그 자기 정체의식에서 절대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의 사람이요, 은혜의 사람이 가지는 자기정체성입니다.

 

수고와 땀, 지혜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내가 노력하더라도 하나님이 지혜를 주셔야죠.

 

저도 개인적으로 간증드릴 것은

제가 북한에서 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남쪽에 와서 중고등학교를 다니지 않고 검정고시를 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미국유학을 할 사람이 아닙니다.

어느 모로 보아도.. 그런데 유학을 마쳤습니다.

이것은 제가 생각할 때는 최고의 기적입니다.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영어를 배워서

미국에서 유학까지 했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깜짝 놀랄 일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 제게 일어났어요.

 

저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마는

하나님이 하시고자 할 때

엄청난 일들을 이루어나가시는 것을 볼 때

은혜 안에 나는 작은 존재요

더더욱 작은 존재,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저는 너무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늘 감사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자기를 비우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내 지식도, 내 능력도, 내 돈도, 내 건강도 아무 것도 아니다!’

 

이렇게 자기를 완전히 비우는

그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서 조금 더 신학적으로 생각할 문제가 있는데요..

 

하나님께서는 겸손케 만들어 주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받은 축복 가운데

<내가 겸손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면.. 그것은 축복입니다.>

 

나를 겸손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

그 분을 찬양해야 할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자랑할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만

그는 자랑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거든요.

 

확실한 것은 모릅니다만

제가 연구한 대로는 아마 간질병 같습니다.

 

가는 곳마다 가끔 그는 쓰러졌습니다.

4장에 보면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때

너희 믿음을 시험할만한 것이 내 육체에 있었으되

너희가 나를 업신여기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와 같이 영접했느리라4:14

 

여러분, 상상해 보세요.

갈라디아교회에 가서 설교하다가

도중에 간질병이 발작해서 그가 소리를 지르면서 쓰러집니다.

이 얼마나 사람들이 놀랐겠습니까.

사도바울은 얼마나 자신이 부끄러웠겠습니까.

 

하나님의 종이 자기 앞가림도 잘 못합니다.

그런데도 갈라디아 교인들은 놀라지 않고

사도바울을 그리스도와 같이 영접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감사하다고 절절하게 편지에 썼습니다.

 

그 육체에 사탄의 사자가 왜 있어야 합니까?

고전12장에 보면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것이 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고

이것이 있음으로 내가 겸손하고

하나님의 능력이 내게 머무른다

 

이렇게 사도바울이 <겸손>하라고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가 있어야 했다고, 그것도 일평생!

그는 자기 스스로 진단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을 은사(선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더 없는 축복이니까요.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

 

사도바울은 생각합니다.

나를 겸손하게 만드는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

이것이 있음으로 나는 약할 때 강하다!’

그런고로 내 안에 있는 은혜는 더 크게 나타나게 된다.

육체의 가시, 사단의 사자를 은혜로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하니라!’

 

이렇게 그 모든 것을 자족함으로 받아들입니다.

왜요?

겸손의 은혜, 겸손의 축복이 더 크니까요!

그렇게 받아들인 것이 사도바울의 신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조용히 기다리는 겸손!

그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기다리십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재촉하십니까?

왜 제 기도를 안 들어주십니까?’ 하고 재촉하십니까?

 

잠깐 멈추고 가만히 겸손한 마음으로 기다리십시오.

그것이 더 큰 축복이니까요!

 

더 나아가서 귀중한 신학적 문제가 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교만은 하나님의 심판의 전주곡입니다.

유명한 찰스 베어드의 역사관에서 그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악한 사람을 심판하실 때

선한 사람을 통해서 악한 사람을 진멸하는 그런 심판을 하지 않으신다.

악한 사람을 심판하실 때는

악한 사람을 더욱 교만하게 만드신다.’

 

즉 성공하게 하고, 권력을 쥐게 하고

그래서 더욱 교만, 교만하게 만들어서

꽝 하고 얻어맞게 되는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함!

그 심판입니다.

 

악한 사람이 성공!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악한 사람이 재벌이 되는 것!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이런 심판이 민족적으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잊지 마십시오.

교만한 자의 성공..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유명한 성 어거스틴에게 물어봅니다.

그리스도인의 덕목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겸손입니다.’

 

그렇다면 둘째는 무엇입니까?’

겸손입니다

 

그렇다면 셋째는 무엇입니까?’

겸손입니다

 

그렇다면 조금 더 깊이 생각합시다.

나를 겸손케 하는 것!

겸손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축복의 기본이요 시작입니다.

 

어느 순간이라도 교만해지기 시작하고

교만함이 성공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멸망의 징조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된 것입니다.

 

유명한 에디슨과 뉴턴을 비교해서 연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유명한 과학자 두 사람을 자세히 연구해 보니까

공통점이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 고독을 참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고독할 때, 조용하게 더 성실하게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고독을 즐겼습니다.

그것이 두 사람의 공통된 특징이고

 

둘째, 호기심과 손재주가 많았습니다.

재능이 많았습니다.

 

셋째, 가장 중요한 것은

절대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성공을 하고, 많은 사람의 칭송을 받을 때도

그들은 절대 교만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겸손과 온유가

큰 성공의 기본이었다고.. 연구자는 말했습니다.

 

여러분 본문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무것도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말 없는 것 같으나 속으로 교만합니다!

조용한 것 같으나 속에서 꿈틀거리는 교만이 있습니다.

이것 때문에 고독합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감격하지도 못합니다.

 

다시 한 번 귀담아 들어시기 바랍니다.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고전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