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E0qSs89FYeM&feature=youtu.be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 단11:32, 빌1:9~11, 고전1:5~6 17.01.08. 출처
어느 교회의 대학부 집회 메시지 김형익 목사
다니엘 11:32 ‘그가 또 언약을 배반하고 악행하는 자를 속임수로 타락시킬 것이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시작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 시간에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말씀하여 주시기를 구합니다
주의 말씀은 잠 자는 영혼을 깨우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부족한 종을 통해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말씀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세기에 기독교 고전이라고 알려진 몇 가지 책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 Knowing God>이란 책입니다
James Packer가 쓴 책인데
이 책에서 제임스 패커가 이런 얘길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참된 증거가 무엇인가?’
이 말에 우리 자신들을 비춰볼 수 있겠죠
하나님을 아는 참된 증거는
먼저 아닌 것 2가지를 얘기하는데
1)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알면서도
하나님을 정작 모를 수 있다
2) 하나님에 대해서 많이 알지만
또 하나님을 전혀 모르면서도
신앙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즉 기도하는 법, 전도하는 법, 성경공부도 가르칠 수 있고
그러나 정작 하나님을 모를 수 있다.. 이런 얘기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다니엘을 통해서 배교의 시대가 올 것에 대한 예언의 말씀인데
사실 일차적으로는 이미 역사속에서 있었던 이야기이고
앞으로 또 주어질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
배교의 시대’라는 것은
대다수가 다 하나님을 떠난다는 얘기죠
소수가 아니라 대세가 하나님을 떠나는 시대!
그런데 그것은 반드시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교회가 문을 닫고, 교회를 다니던 사람들이
신천지로 가고, 혹은 불교로 가고,
혹은 기타 다른 종교로 개종한다.. 그런 차원으로 나이브(순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교회는 어느 때보다도 더 많아질 수도 있고
오히려 기독교적인 활동들은 굉장히 많아질 수 있지만
실제로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없는 기독교!
전도도 왕성하게 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리스도 없는 전도가 가능한 것이죠 *배도의 시대
많은 곳에서 예배 운동이 일어나지만
선교도 많이 활발하게 행해지고 있지만
그리스도 없는 선교, 그리스도 없는 예배가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런 시대가 올 때
과연 분명한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 분을 즐거워하고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않고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냐?
오늘 이 말씀에서 제시하는 바는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 단11:32
▶여러분들은 신앙생활을 몇 년 했나요?
내가 모태신이냐, 아니면 언제 내가 예수를 믿었느냐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니고데모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거죠
거듭난다는 것은 너무나 시급하고 또 절박한 요구이기도 합니다
왜냐면 거듭남이 없이 교인이 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는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거듭남’이 없이 교인으로 등록을 하고
‘거듭남’이 없이 제자훈련을 받고
‘거듭남’이 없이 성경공부 하고
‘거듭남’이 없이 집사가 되고
‘거듭남’이 없이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는 형국이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대한민국의 기독교입니다
누구든지 원하면 목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기독교 전통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자기가 원해서 목사가 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셔야 하고
그것도 주관적으로 내가 하나님이 부르셨다고 생각하는 것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를 통해서 ‘저 사람은 하나님께서 목사로 부르신 사람이 틀림 없다’
하는 외적인 소명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다 무시되는 시대입니다
교회가 시장바닥 같습니다
시장의 원리와 시장의 가치가 교회 안에 들어와서 지배합니다
여러분이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교회를 다닌다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되짚어 물어야 하는 그런 시대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종교개혁이 일어난지 5백년이 되었습니다
1517년, 하나님께서 종교개혁 전야에 그 부패한 기독교를,
거대한 유럽 사회를, 1500년 동안 지탱해 온 거대한 물줄기를,
하나님께서는 한 시골의 수도사 마르틴 루터를 통해서
그 물줄기를 바꾸어 내셨습니다
역사 속에서 이렇게 귀하고 놀라운 일이 없습니다
도대체 그 거대한 물줄기를 어떻게 바꾼다는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시골 목사 한 사람을 통해서
그 일을 이루셨다는 말입니다
그 사람의 펜(글)을 통해서
그리고 이후에 몇몇 사람들,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힌,
오늘 본문의 표현을 빌리면
‘하나님,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몇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를 바꾸셨습니다
그리고 그 5백년 후에 오늘이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의 4가지 특징
제임스 패커가 이렇게 말했어요
‘자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이런 4가지 특징을 가지는데
1) 하나님을 위한 엄청난 열정이 있다
그런데 열정이란 것은
그냥 젊은 패기를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 있어서
이 사람은 하나님의 대의, 하나님의 목적,
말하자면 주님께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그랬을 때
주님은 기도응답을 받는 비결을 가르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셨습니다
뭐죠?
‘하나님의 이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나 수없이 많은 이 시대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내 이익과, 내 자녀의 잘 되는 것과, 성공과,
부귀와 기타 등등을 하나님 앞에 구합니다
이것은 무당 불러다가 굿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런 기독교에 대해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게 대세가 되어버렸고
또 그것도 열심히 하는 것이 좋다고 그래서
특별새벽기도니, 무슨 특새라고 그러는데
기독교인만 아는 새입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위한 열정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잘 됨,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을 위해서
하나님을 이용하는 수준의 천박한 기독교가 된 것입니다
이런 기독교가 대세입니다 *2017년 상황
이런 대세에 ‘자기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엄청난 열정이 있어서
패커에 의하면
기도에 힘을 쏟는다는 거죠
2) 자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위대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패커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하나님의 거룩하심
-하나님의 엄위하심
-하나님의 전능하심
-하나님의 선하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과 자비,
-하나님의 영원하심
-하나님의 불변하심
이런 하나님의 많은 속성들을 생각할 때
그는 그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압도당할 줄을 알고
그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는 먼지와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엎드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하고
할 수만 있으면 자기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를
어필해야 하는 그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자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자기에 목 매지 않는다는 얘기죠
자존심이 상해서 밤에 잠을 못 이루거나
가슴이 아파서 며칠 동안 밥이 안 넘어가는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는 사람이라는 거에요
3) 자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위한 담대함을 가지는 사람입니다
이건 무슨 얘긴가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되든지
내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면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해도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용기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4) 자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큰 만족과
위로를 얻습니다
이 세상에 내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들과 상황과 처지에 의해서
일희일비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살아가는 방식이지만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그런 것들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께서 내 실패와 좌절과 나의 죽음과
심지어 내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과
기타 모든 것들을 초월하여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능히 선으로 바꾸시는
전능하시고 지혜로운 하나님이신 것을 알리기 위해
그 하나님 안에서 흔들림 없이
또 잠시 흔들리기는 하나
위로와 만족을 얻고 간다는 것입니다
이 ‘자기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강한 사람이죠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것처럼
‘세상이 감당하기 힘든’ 사람인 것입니다
▶구약의 역사를 보면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할 즈음에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를 불러서 말씀하시는데
이스라엘이 망한 이유를 설명하십니다
그것은 ‘내 백성이 지식이 없어서 망했다’ 라고 말씀하셨어요
여러분, 다른 게 없어서 망하는 게 아닙니다
열심 이 없어서 망했다고 얘기하지 않습니다
롬10장에서 바울사도는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기이하고도 놀라운 열심에 대해서 인정합니다
왜요? 자기가 그런 열심을 가졌던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 열심은
지식이 없는 열심 이라고 얘기합니다
지식이 없는 열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이
세워진 우리의 공로와 섬김과 열심과 헌신과
기타 모든 인생의 수고들은
그렇게 의미가 없습니다
의미가 있지 않다는 것은
굉장히 점잖케 돌려서 하는 얘기이고.. ‘망한다’는 얘기입니다
성공하는 것 같지만 망합니다!
유명해지는 것 같고, 내가 원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 같지만
그 삶은 ‘필경 사망의 길’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것을 좌우하는 것은 여러분의 스펙도 아니고,
실력도 아니고,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성패를 결정하는 것, 여러분 인생의 성패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오해들을 가지고 신앙생활 합니다
내가 원하는 신의 모습을 투영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목적과 하나님을 결부시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자기의 체험과 하나님을 결부시킵니다
또 자기가 이해하고 있는 지식과 이해의 수준에
하나님을 결부시킵니다
그런 목적과 결부해서 하나님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사실은 오해죠)
성공과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 나를 도와주는 신을
설정해 놓고, 성경을 읽어도 그 신을 투영해서 읽습니다
내 목적을 이루어주는 신입니다
내 소원을 성취해주는 신이죠
그렇게 해서 자기들의 공식이 생깁니다
여러분, 이걸 레시피 시올로지 라고 그러는데
‘설탕 반 스푼 넣고, 간장 큰 숟가락으로 세 숟갈 넣고
3분 끓여서...’
신앙생활 이라는 것을 이런 공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기도 열심히 해, 그럼 돼!’
‘기도 해도 안 돼던데?’
‘금식 했어? 금식 안 해서 그렇잖아!’
‘며칠 금식 했어? 5일 가지고 안 돼, 최소한 7일은 해야지!’
이런 되지 않은 공식들, 성경이 거의 말하고 있지 않는 공식들이
대한민국의 교회들 안에 난무합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만들어낸 신이거나
내가 체험적으로 경험한 신입니다
코끼리를 소경 3~4명이 만지고
‘이것은 벽, 기둥, 노끈 같아’ 라고 얘기하는
그런 식의 체험담들!
그런 식의 나눔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알게 하시려고 우리에게 주신 것은
성경 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넘어서 우리는 하나님을 알 수 없고
오직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배우고 알아가는 겁니다
내 체험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목적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내적치유의 복음’이라고 하는,
거의 내적치유를 복음의 수준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또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심리학과 상담학이 복음을 대치해 버리게 되고
‘내가 받은 상처’가 ‘죄’를 대치하는 형국이 됩니다
그러니까 죄는 회개해야 할 문제인데
도리어 하나님이 회개하셔야 할 문제로 바꾸는 것이죠
‘왜 이렇게 내가 상처를 많이 받게 하셨나요?
뭐 하셨나요?
나한테 잘못을 빌면 내가 믿어드릴게요!’
하는 식의 기독교가 되는 겁니다
(중략)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의 평생 여정은
하나님을 배워(알아)가는 여정입니다
‘신앙의 여정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여정이다’
하는 이 명제를 제가 3가지로 입증을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아는(친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 해석을 잘못할지 모르겠지만
근본적으로 성경을 떠난 기독교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건 기독교가 아니니까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이 말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떠나서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모이는 모든 모임의 중심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저 어떤 좀 고리타분한 보수적인 목사가
하는 잔소리가 아니라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여러분들이 나이 만큼은 성경을 읽었어야 정상입니다
서른 살이면 서른 번은 읽었어야 됩니다
성경에 대해서 무지한 수준이 도를 넘어서는 자리에
지금 한국의 기독교회가 있습니다
과거에, 또한 요즘에는 어느 시대부터인가
대한민국의 교회들이
프로그램들을 도입하기 시작했습니다
program driven church 가 되었습니다
그런 프로그램이 없던 1960~70년대의 기독교는
유일한 하나의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성경 읽기 프로그램’
매일 하루 3장, 주일날 5장
그러나 그때 교회가 견고했습니다
왜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아갔어요
여러분들이 어떤 방식으로 큐티를 하는지는 모르겠으나
큐티가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는 않습니다
성경을 많이 봐야 합니다
하나님을 알려면!
성경은 어떤 신학자가 말했던 것처럼
‘어린 양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강이나 개천이기도 하고
코끼리가 헤엄쳐야 하는 바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렇게 비유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성경을 주셨다는 것이
우리가 평생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2. 하나님은 교회에 목사와 교사를 주셨다고 엡4:11절에서 말씀합니다
근본적으로 교회에는 목사와 교사가 성령께서 주신 직임입니다
목사와 교사가 있어야 하는 이유가 뭡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입니다
여러분, 목사와 장로는 자기 경험을 가지고 얘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밝히 알고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신지를 드러내는 사람입니다
즉 가르치는 사람입니다
말씀으로 목양을 하는 것이지
그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나 리더십이나 경영의 스킬이나
이런 것들로 목회를 하는 것이 아니죠
그러면 주님의 양들은 어떻게 해야하는 것입니까?
그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보고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게 기독교입니다
그저 목사가 무슨 소리를 하든지 아멘 하고 따라가는 것이
기독교가 아니죠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말씀에) 무지하니까!
그래서 성경을 가르치면.. 신자들이 (이단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여러분 “신천지 출입금지!”
대한민국 교회의 입구에 그런 포스트 프래카드 붙여놓은 것을 보고
제가 아주 기겁했습니다
뭐 예방적인 차원에서 한다는 얘기도 듣기는 했으나
이게 얼마나 교회가 부끄러운 일입니까!
신천지가 들어와서 흔들면 흔들리지 않을 사람이 없어요!
그렇게 허약하고, 그렇게 아는 바가 없고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 신학!
내가 나의 하나님, 자기 하나님을 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라고 하는 것이
그게 교회라면
신천지가 들어와서 예수를 믿어야 하고
신천지가 아니라 이단 사이비들이 들어와서 복음을 들어야죠
왜 <신천지 출입금지!> 합니까 부끄러운 얘기입니다
저는 광주 벧살롬 교회에 부임한지 1년 지났는데
3년 후에 교리를 열심히 3년 동안 배우고
3년 후에 큰 길에다 현수막을 써 붙일 것입니다
‘신천지 구원파 및 각종 이단 대 환영!’
3년 동안 잘 배우십시오
제가 계속 가르칠 것이지만, 평생 가르칠 것이지만
3년 동안 성경과 교리를 배우면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기독교 교리의 기본은 갖출 수 있으니까요
목사와 교사를 주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이지요..
미국에 큰 교회 가운데
프로그램을 많이 하는 교회가 하나 있어요
거기서 이제 회의를 하면 목사들이
‘이번에는 뭘 할까? 어떻게 해서 좀 교인들을 깜짝 놀라게 할까?’
그래서 제가 말했어요
‘그러려면 신학교 나온 사람을 목사들로 뽑지 말고
방송국에서 월급 좀 많이 주고 PD들을 데리고 와서
목회를 하는 것이 더 낫겠다
신학교 나온 사람들을 데리고 이러한 이벤트들..
뭐 ‘이번에는 비둘기를 날려 보내자, 특별새벽기도 끝날 때’
‘요번에는 야구장에서 응원할 때 쓰는 비닐막대기를 하자’
이렇게 별짓을 다 합니다
이게 교회에요? 시장이지!
이게 교회에요? 경기장이지!
또 어느 교회에는 설교하러 갔더니 흰 연기가 나왔어요
내가 무슨 연예인입니까?
왜 연기(미스트)를 뿜습니까?
아니 모세의 성막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 쉐키나의 연기입니까?
무슨 가짜들을 그렇게 흉내를 낼 필요가 있나요?
왜 그렇게 사람들을.. 조명도 막 뒤에서 (번쩍번쩍) 돌리는데
정신이 없게 돌려서, 제가 봉사자에게
‘그 조명 춤 추는 데도 아는데 교회에서 왜 그렇게 조명을 돌리느냐?’
했더니 그것도 사역이랍니다!
왜 사람들을 그렇게 현혹해야 되죠?
하나님의 말씀에 아무 관심도 없는 사람들을
기타 자극적으로 현란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기타 여러 가지 수단들을 동원해야 할 이유가 뭐죠?
교회가 커지고 싶어서!
성공하고 싶어서!
하나님은 (성경을 가르칠) 교회 목사와 교사를 주셨습니다 엡4:11
▶3. (내가 하나님을 알게 되려면)
제대로 좋은 교회가 필요하고,
그 변화의 디딤돌은 말씀과 성령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요14장~16장에
십자가를 지고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내가 보혜사 성령을 너희에게 보내주겠다
그렇게 말씀하세요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
그런데 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는 진리의 영이라
내가 너희에게 가르친 것을 생각나게 할 것이고
알게 할 것이다’고 말씀하셨어요
성령은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분이시죠
그러니까 성령님을 높이고
뭐 성령님을 찬양하고 그게 아니고
제임스 패커가 <성령을 아는 지식>이란 책을 나중에 썼는데
여러분 높은 빌딩을 보면
조명을 멋있게 건물 바깥에 설치해서
아래에서 위쪽으로 건물을 멋있게 비춥니다
그러면 밤에 건물이 멋있게 보입니다
그게 성령님이 하시는 역할입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것은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멋지게!
그래서 교회에 성령을 주신 것은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것이 뭐에요?
구약성경은 모두 다 내게 대하여 증거한 것이라고
요5:39절에 말씀하셨으니까
그러니까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고
그 성경의 진리를 통해서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고
하나님을 경험적으로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는 것,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신지를 보는 것!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가 250년 전에 살았는데
그 신학자는 하나님을 묘사하면서
아주 특이한 단어를 썼습니다
‘beauty 하나님의 아름다우심’ 이라 그랬어요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대해서 말하면
‘아 거룩하실거야!’ 라고 생각하지만
그 분은 하나님을 아름다우심 이라 말했어요
여러분들이 평생을 살면서
여러분들이 봤던 가장 아름다운 것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뭐 어떤 사람은 나이아가라
이과수 목포를 본 사람은 나이아가라는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알프스, 그랜드캐니언
그런데 그렇게 아름다운 것들 앞에 우리가 서게 되면
가슴이 멎는 것 같고
거기서 며칠이라도 그걸 쳐다보고 (만족해서) 살 것 같아요 느낌이!
그런데 그런 아름다움들은 하나님의 아름다움의 카피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진짜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아름다움이란 것은 우리를 매혹하게 하고
우리에게 우리의 마음을 빼앗는 것이죠 아름다움이란 것은!
빼앗겨서 내가 정신을 잃어버릴 정도로..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라고
조나단 에드워즈는 얘기하고
그것은 시편에 고백되어 있는 말씀들이에요
이렇게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렇게 알고 하나님과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아는 것!
이게 신자가 일평생 신앙생활 하면서 걸어가야 하는
여정입니다
딤후3:14에서 바울사도는 젊은 목사인 디모데에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권면합니다
단순히 배우는 것이 아니라
확신한 일에 거하라
배우고 그것이 너로 하여금 확신에 이르게 해서
그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게 다니엘이 말씀한
‘자기 하나님을 안다’는 말입니다 단11:32
긴가민가 하는 앎을 말하지 않아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엄마의 하나님, 부모의 하나님, 할아버지의 하나님이 아니라
내 하나님의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신 것을 아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난 삶에 1~3년만 돌아보십시오
그 기간이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을 아는 삶이었습니까?
하나님을 알아가는 여정이었습니까?
여러분들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매일 읽었습니까?
어떻게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씨름했습니까?
진짜 웃기는 얘기는 뭔가 하면,
성경이 어렵다고 합니다
성경은 ‘어린양이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시내 같다’고요
그런데 어렵데요
여러분은 고등학생 때
우리나라 학생들은 다 죽어라고 공부하고 학원다니고
도대체 세상에서 하는 공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세상에서 하는 공부도 쉽지가 않아서
밤을 새고, 물어 보고, 배우려고 학원에까지 가는데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을 아는 것은
그냥 쉬워야 될 것 같아요?
누가 그렇게 얘기해 주던가요?
이건 그냥 식은 죽 먹기에요?
그저 먹어요?
제가 대학교 1학년 대학생이 되었을 때
교회 전도사님이, 고등학교 때 우리 고등부 전도사님이
“형익아, 이제는 네가 영어로 봐야지
번역된 게 없어서 그러니까
NBC New Bible Commentary, NBD New Bible Dictionary
라고 하는 단권으로 된 성경주석과
단권으로 된 성경 사전이 있는데
이것을 서점에 가서 사라! 좀 비싸지만 사라!
네가 대학시절에 이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 주석과 사전이 있어야
네가 성경을 깊게 이해할 수 있어!”
대학부에 들어가니까 선배들이 그래요
“그리고 이 다섯 사람을 읽어라
대학교 4학년 선배들이
지금 생각하면 애들인데, 그 때 대학교 1학년 때는
4학년 선배들이 하늘같이 보였죠
‘형익아, 다섯 사람을 주로 읽어라
네 신앙이 성장하려면
그 중에 한 사람이 제임스 패커 였어요
로이드존스, 제임스 패커, 존 스타트, 프란시스 쉐퍼, 아더 핑크
다른 책도 많이 봐야 하는데 이 다섯 분을 많이 보면
아주 유익할 거야!”
여러분, 신앙생활을 우리는 성경도 제대로 읽지 않고,
성경도 항상 생소하고, 어려우면 그냥 다 건너뛰고
그렇게 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반적으로 강단에서 하는 설교는
제가 볼 때 거의 초등학교 수준입니다
설교가 어려워야 된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절대적으로 어려워야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초등학생도 알아 들어야 되요
그러나 초등학생이 ‘지적인 수준’으로 알아듣는 게 아니라
‘영적인 수준’ 때문에 초등생도 설교를 알아들어야 되요
저희 교회는 3살 이후는 다 어른들과 같이 예배드려요
초등학생들도 설교를 다 알아들어요
설교를 60분을 해도!
60분 시간이 중요한 게 아니라
미국에서 박사들도 못 알아듣고 어렵다고 그러는데
초등학교도 못 나온 분도 알아들어요
그런데 우리는 그나마 그 짧은 설교,
대한민국의 교회의 설교 길이가
지난 30년~40년 동안 어떻게 짧아졌는지를 보면
그것도 굉장히 재미있는 부분인데
그것도 다 듣기가 힘들어요
그리고 중간에 졸다가 깨서 들어도
무슨 소린지 다 알아들을 수 있어요
이게 (영적인) 수준입니다!
가르침이 실종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도덕적으로 타락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저도 동의합니다
도덕적인 타락이 오기 전에, 교회 역사를 보면 언제나,
교리적인 타락이 있었어요
말씀에 대한 무지가
그런 방종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제가 언제 여러분들을 또 만나요? *초청 설교
한 번 지나가는 목사가 와서 설교하는 건데
여러분들의 남은 세월에
남은 인생의 시간에
아~ 하나님께 집중하세요!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되세요!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싶은대로,
믿고 싶은대로 주관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단11:32
저는 우리 시대가 배교의 시대에 못지 않다고 생각하고
지난 교회 역사를 읽어보면
종교개혁이 일어났던 5백년 전에
그 중세 말에 그 깊은 어두움,
그것이 대한민국의 교회가운데
결코 우리가 그때보다 더 밝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10년 후에 경험하게 될 기독교가
어던 기독교일지 잘 모르겠으나
그러나 상황이 더 좋지 않을 것입니다
속지 마십시오
여러분들이 이만큼 젊은이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그들 중에 하나 라는 사실에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아무 것도 보장해 주는 것은 없습니다
‘자기의 하나님, 오직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백성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말씀하는 것입니다
견고한 신앙은
진리에 대한 확신에서만 가능합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배우는 일에
전념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여러분들의 시간에 많은 부분을 여기에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우고 알아가는 일에 핑계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아는 일에 열심을 내지 않는다면
여러분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를 허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열망이 없는 사람,
10명 20명 1백명 5백명이 ‘가르치지 않는 목사’를 만들고
여러분 탓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같이 맞아간다(쌍방 책임)는 얘기입니다
핑계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
하나님께서 성경을 주셨고 목사와 교사를 주셨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십니다
고전1:5~6 ‘이는 너희가 그 안에서 모든 일 곧 모든 언변과 모든 지식에 풍족하므로
6.그리스도의 증거가 너희 중에 견고하게 되어’
그리스도의 증거가 견고하게 되고
모든 지식에 풍족하다고 말씀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지식에 풍족한 것이 신앙이 견고해지는 것입니다
바울사도가 빌립보서를 쓰면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빌립보 성도들을 위해서!
빌1:9~11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10.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1.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보세요, ‘너희 사랑을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풍성하게 한다’고!
여러분, 사랑과 지식은 별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깊어질수록
여러분들의 사랑은 풍성해 집니다
교회에 진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풍성해질 때
그 교회는 진정한 사랑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동호회죠
교회 안에서 등산 좋아하는 사람끼리 등산 클럽 만들고
골프 클럽 만들고
기타 동창회 만들고
그건 교회가 아니라 시장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점점 자라가면서
사랑이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이렇게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너희는
점점 더 풍성하게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지식이 없으면
여러분들의 신앙과 관련된
그리고 여러분들의 영적인 모든 것들은
다 정체 되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가야 합니다
체계적으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배워가야 합니다
여러분 보세요
책이 얼마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모릅니다
기독교 서적들입니다
번역서적도 있고, 한국 저자들이 쓰는 책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책들 중에서
어떤 것이 좋은 것인지를 가려낼 수 있는 변별력도 필요하겠으나
그러나 이 좋은 것들이 널려 있는 이런 세상에서
그 유익을 누리지 못한다면
그것은 또한 핑계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말이 있죠
‘네 옷을 팔아서 책을 사라!’
자신을 꾸미는 데는 아끼지 않지만
실제로 하나님을 알아가는 일에는 인색합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설렁탕 한 그릇을 먹어도 1만원 가까이 줘야 되는데
책값을 만 원 낼 때는 비싸다고 여깁니다
이게 얼마나 슬픈 현실입니까
여러분,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강하여 용맹을 떨치리라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확신을 가지고 삽니다!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아는 기쁨이 있습니다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다니엘이 말한 것처럼
모든 사람이, 대세가 다 하나님을 떠나가도
자기의 가는 길을 굳게 지키고 그 길을 따라 갑니다!
우리 시대는 그런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어른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으로 여러분들이 십년 후, 20년 후
여러분 세월은 금방입니다
여러분들이 40, 50. 60세가 될 때
그런 자기의 하나님을 아는 어른으로
여러분들의 후배들에게
‘아 정말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강하고 힘이 있고
용맹하고 멋있구나!’
이런 자리에 여러분들의 삶이 서 주기를 바랍니다
다같이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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