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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LNCK 2019. 1. 5. 11:19

www.youtube.com/watch?v=Z6I8Del9bx8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마1:23                   17.12.25.

인명진 목사

     

1:23 '처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부를 것이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이다.

 

도입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모두가 다 겪는 일입니다만

인생을 살면 살수록 절실하게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결국 인생이란 것은, 나 혼자다! 나 혼자 사는 것이다

나 혼자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라는 사실입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나와 함께 더불어 인생을

산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결국 인생은 나 혼자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모두가 다 외로워합니다.

인생을 외롭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한 평생 살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수많은 사람을 만나서 함께 인생을 살지만

어떤 사람과 인생을 함께 사는 것은, 잠시 뿐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는 그 사람과 변치 않고 평생을 같이 살 것같이

생각했지만

여러분, 그 누구도 평생 동안 변치 않고 나와 함께 인생을

같이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을 한 번 되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 어떤 사람이 처음부터 지금까지

끝까지 변치 않고 여러분과 같이 인생을 산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부모, 자녀?

형식적으로는 그럴는지 모르지만, 진정한 인간관계에 있어서

부모자식도 따로 따로입니다. 남입니다.

부부가 평생 생사고락을 같이 하겠다고 굳게 약속했습니다만

처음 마음이 세월을 따라서 변하기도 하고

또 살다보면 아무리 같이 평생을 살기도 한 부부지만

남남이다, 나 혼자다그런 것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니 이 세상을 떠날 때 죽음 앞에 가면 결국 혼자입니다.

혼자 죽음의 길을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저도 이 갈릴리교회에서 여러분들과 함께 오래동안 변치 않고

신앙생활을 할 줄 알았지만

우리 이제는 헤어지고 따로 신앙생활 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결론은 무엇입니까?

인생은 혼자다! 혼자 사는 것이다!’

나와 함께 영원히 같이 할 사람은 없다!’

그래서 외롭고 힘들다, 고독하다..

누군가 진정으로 어떤 경우에든지 나와 함께 있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우리의 간절한 바램입니다.

 

사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겪는 사람들로부터 받는 여러 가지 배신과

그리고 여러 가지 쓰라렸던 일들, 아픔과 고통, 이 모든 것들이 다

인생이라는 것은 혼자 사는 것이다

혼자라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 겪는 것입니다만

내가 인생을 잘 나갈 때, 다 내편인 것 같습니다.

나를 칭찬하고, 내 곁에 몰려 듭니다.

 

그러나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실패할 때

모든 사람들은 다 내 곁을 말없이 떠나갑니다.

돌아서게 됩니다.

 

이런 배신 속에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사실 우리 인생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 하더라도

나와 함께 끝까지 동행할 사람이 있다면

내 곁에 있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 인생은 힘든 가운데서도 살 만할 것입니다.

 

제가 민주화 운동 하다가 감옥에 갔을 때 일입니다만

춥고 배고프고 특별히 외롭고 고독했습니다.

정말 힘든 상황속에서 지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감옥에서 가장 기쁜 소식은 무엇이냐면

어제 저녁에 박형규 목사님이 잡혀 왔다.

지학순 주교님이 감옥에 왔다.

OO 교수님이 감옥에 들어왔다

학생들 몇 명이 붙잡혀 왔다

 

그 소식을 들을 때, 그것만큼 기쁜 소식이 없었습니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얼마나 좋은지 밥이 넘어가지 않을 만큼 좋았습니다.

 

무엇때문입니까?

이 고독한 감옥에서 나와 함께 옆에 있어줄 사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제 인생의 경험입니다만

우리 인생의 최대 축복은 무엇인가요?

그것은 나와 인생을 같이 할 사람이 내 옆에 있는 것

그것이 인생의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인생의 성공이 무엇입니까?

나와 늘 함께 같이 있어 줄, 변치 않고 같이 있어 줄 그런 사람을

얼마나 내가 가지고 있는가? 그것이 인생의 성공의 기준이라 생각합니다.

 

인생이라는 것은, 결국 나 혼자 사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 절망이 있고, 우리 슬픔이 있고, 우리 불행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말씀에 우리에게 참으로 놀라운 사실 하나를 가르쳐줍니다.

본문 마1:23절에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유가 무엇인가?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와 함께 하신다... 의미

 

아무도 나와 영원히 같이 있어주지 않는데

세상 사람들은 조변석개 하며 언제든지 내 곁을 떠나는데

그래서 나는 힘들고 어렵고 고독한데

그런 나와 함께 하시려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사는 것을 굽이 보시니

모두가 다 힘들고 어렵게 인생을 사는 겁니다.

괴롭게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의지할 수 있는 사람, 믿을 사람 없이 인생을 살아갑니다.

 

부모 따로, 자식 따로

남편 따로, 아내 따로

서로 배반하고, 미워하고, 헐뜯고, 속이고 속고

모두가 다 상처 받고, 그런 고통 속에서 인생을 살아갑니다.

절망 가운데서 세상을 살아가는 겁니다.

 

특별히 병든 사람, 가난한 사람, 실패한 사람

의지할 데 없는 사람,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한 사람들, 외로운 사람들

위험 가운데 있는 사람들

누가 꼭 옆에 있어줘야 될 사람이 필요한데

부축해줘야 할 사람이 필요한데

손을 꼭 붙잡아 줄 사람이 필요한데

 

누군가 진정으로 인생의 동반자가 되어줄 사람이 필요한데

하나님께서 굽어보시니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혼자 외롭게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보시고

내 아들이라도 보내서, 저들과 함께 있게 해야 되겠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신 날

우리들과 함께 있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신 날,

그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크리스마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될 일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모든 종교, 사람이 어떻게 하면 신이 될까

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불교에서 사람이 도를 닦으면 부처가 된다.. 성불한다고 하죠.

 

그런데 우리 기독교의 진리는 거꾸로

하나님이, 신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사람이 신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여러분 이것은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는가요?

사람과 함께 있으려고 하니, 사람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으로서는 사람과 같이 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이 되어야만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으니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입니다. 복음입니다.

놀라운 은혜입니다. 놀라운 지혜요 진리입니다.

 

여러분, 여기에서 함께 한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누구와 함께 하려면, 그 사람의 처지가 되어야 됩니다.

 

나는 여기 있고, 저 사람은 저기에 있고

말로만 위로하고, 말로 무슨 말을 하고..

그렇게 해서는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처지가 되고, 그 사람과 동일시 되어야

그 사람과 함께 있을 수 있습니다.

 

욕을 먹는 사람과 함께 있으려고 하면

같이 욕을 먹어야 됩니다.

욕 먹는 사람이 같이 됩니다.

 

가난한 사람과 함께 하려면, 같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고통받는 사람과 함께 하려면, 같이 고통을 당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말씀 가운데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나는 여기 있고, 이웃은 저기 있는 상태에서

내가 가진 것을 누구에게 나눠준다..’ 그것이 이웃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르쳐주신 이웃사랑은

내가 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이웃사랑입니다.

 

나 따로, 그 사람 따로!

그래서 우리가 그를 무엇으로 돕는다 하면

그것은 이웃사랑이 아니라, 그저 자선사업입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가리키는, 예수님이 가르치신 이웃사랑이 아닙니다.

진정한 이웃사랑은, 그 사람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사람과 함께 계시기 위해서

그래서 당연히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시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참으로 재미있는 사실은

물론 성경에 기록된 것입니다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예수님이 어떻게 어떤 모습으로 이 세상에 오시게 되었는가요?

 

참으로 재미있는 일들을 우리가 성경에서 찾아보게 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는대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출신성분이 좋지 않게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집안이 좋은 집안이 아니었습니다.

막노동꾼, 목수의 집안 출신입니다.

 

또 출신 지역도 좋은 곳이 아니었습니다.

갈릴리 지역인데, 모든 사람이 깔보는 지역, 무시하던 지역이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좋은 지역,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나셨다고 하면

어떻게 소외당한 사람들, 세상에서 짓눌린 사람들,

세상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목수의 집안에서

갈릴리 지방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런 곳에서 태어나셨기에,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인생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큰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분, 또 예수님은 요즘으로 말하면

미혼모의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불분명합니다.

물론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한 사이였습니다만

마리가가 임신하자 요셉은 나는 아니다고 잡아뗐습니다.

그리고 애를 낳았습니다. 말하자면 미혼모요, 미혼모의 아들입니다.

 

물론 요즘 우리는 성령으로 잉태되셨다고 믿습니다만

그건 먼 훗날의 교리입니다.

당시 세상 사람들이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쉽게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보면, 초대교회도 이 문제로 곤혹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사도신경에 성령으로 잉태하사를 넣어서 외우게 했습니다.

어쩌면 곤혼스러워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부끄러운 모습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는 오늘 우리와 함께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또 예수님은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왜 좋은 자리에서 태어나지 않으셨는가요?

좋은 자리는 사람들이 다 차지하고 예수님이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마땅히 태어나야할 예루살렘 성전

높은 성직자들이 다 차지했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서 왕궁에 태어나셔야 했지만

왕궁은 헤롯과 권력자들이 다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갈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밀리고 밀려서

말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이 세상에 태어나실 때부터 밀리고 밀려서 태어나신 분이시니

그렇게 태어나셨으니

밀리고 치이고 처지고 낙오된 그런 처지에 있는 우리들과 함께

하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임마누엘의 의미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여기에 중요한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함께 한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함께 한다 이 말은, 나는 나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안 해도 되는데, 일부러 그 사람에게 가서 그 사람과 함께 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본래 예수님의 자리가 어디였습니까? 하늘나라였습니다.

예수님은 원래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사람이 되는 것 예수님이 굳이 안 하셔도 되는 일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안 오셔도 되는 일입니다.

안 오신다고 해서, 사람이 되지 않는다고 해서 누가 뭐라할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일부러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게 함께 한다는 뜻입니다.

일부러 사람이 되셨습니다.

 

욕을 먹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과

억울한 사람들과

인생에 뒤떨어진 사람들과

그들처럼 되어서 그들과 함께 한다 ..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임마누엘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함께 한다는 뜻은 또 무엇입니까?

그 사람 편을 드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편을 들고 삽니까?

우리에게 유익 되는 사람의 편을 들고 삽니다.

잘난 사람들의 편을 들고 삽니다.

힘 있는 사람들의 편을 들고 삽니다.

권력 있는 사람들의 편을 들고 삽니다.

 

여러분, 편 든다는 것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편 든다는 것의 기준은, 옳고 그른 것을 따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의 편을 드셨다는 말은

내가 옳고 내가 똑똑하고 내가 깨끗하고 내가 바르고

그래서 내 편을 드신 것이 아닙니다.

 

편을 든다는 것은,

정의의 문제가 아닙니다.

옳고 그른 것을 따져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약자입니까?

어떤 사람이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인가?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는 것이 편을 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우리의 편을 드셨는데

우리가 똑똑하고 깨끗해서 우리의 편을 드셨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더럽고 추하고 편들 만한 사람이 아니지만

우리가 누군가 편들어줘야 할 사람이 필요하고

누군가 나와 함께 있어야 될 사람이 필요하고

누군가 나와 같이 욕을 먹을 사람이 필요하고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하마. 내가 네 편을 들어주겠다’ - 임마누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편을 들어주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은혜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대표적으로 세리와 창기의 편을 드셨습니다.

윤리적 기준으로 따진다면, 어떻게 예수님이 세리와 창기의 편을 드실 수 있습니까

 

인명진 목사가 창기와 죄인의 편을 들었다?

세상에 비난거리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윤리적 기준을 따지지 않으시고

그냥 그들이 약자니까,

누군가 편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누군가 같이 있어줄 사람이 필요하니까

혼자 외로우니까

혼자 욕을 먹으니까

내가 네 편을 들어주마, 내가 너와 함께 있어주마하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는데

정말로 예수님이 깨끗하고 훌륭하고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편을 들어주시기 위해서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다면

우리는 기쁘다 구주 오셨네찬송을 부르지 못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함께 하신다는 말은 손해와 욕을 먹는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 이미 큰 손해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을 성경 가운데 찾아보면

괜히 사서 욕먹으신 일이 많았습니다.

 

안 하셔도 될 일을 욕을 먹어셨습니다.

세리, 창기 뭐 이런 사람들을 모르는 척 하고 지나치셨으면 되는데

그들 편을 들다가 괜히 안 먹어도 될 욕을 먹으시고 사셨습니다.

 

함께 한다.. 그 말은, 같이 욕을 먹는 것, 같이 손해 보는 것을 각오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저는 때때로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내 편을 들으시다가 얼마나 많은 욕을 먹으셨을까?

나같은 사람 편을 드시다가,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은 욕을 먹으셨을까?’

 

세상에 편들 사람이 없어서, 저 사람하고 편을 먹나?

저 사람 편을 드냐? 저가 어떤 사람인데?’

 

생각해보면 예수님께서 내 편을 드시다가

얼마나 많은 욕을 먹으셨을까요?

 

인간들은 약삭빠르기 때문에 그런 일을 안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러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마치는 말

이제 저는 제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 있습니다.

지난 날들의 삶을 되돌아 생각해보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됩니다.

 

제 인생에 한 고비고비마다 힘들었던 때, 어려웠던 때도

많이 있었습니다.

온갖 비난과 욕을 먹을 때도 있었습니다.

 

지금 되돌아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그때 많은 사람들이 제 곁을 떠났습니다.

 

친구들도 떠났고,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도 떠났습니다.

나와 같이 하면 욕을 먹을까봐, 손해를 볼까봐..

 

가장 힘들었던 것은,

그래서 아무도 내 곁에 있지 않았던 때.. 였습니다.

 

그런데 모두가 더 떠났구나 생각하고 돌아보면

딱 한 분, 예수님이 내 곁에 계셨습니다.

 

아무 말 안 하고,

너 왜 그런 일을 했느냐?’ 비난하지 않으시고

그냥 물끄러미 저를 쳐다보고 계셨습니다.

 

아무 말씀 안 하시고

내 손을 꼬옥 잡아주셨습니다.

 

저는 때때로 그 예수님께

예수님, 예수님도 가십시오. 나하고 같이 계시다간 예수님도 손해를 보실 것입니다

다들 떠나지 않았습니까. 예수님도 가십시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

아니, 나는 못 간다. 나는 너를 못 떠난다.’

 

저는 제 평생을 살면서, 한 번도 예수님께서 나를 배반하지 않으셨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모든 사람들이 다 나를 떠날 때도

예수님만은 나를 떠나지 않으시고 나를 배반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때때로 예수님을 배반했지만 주님은 한 번도 나를 배반하지 않으셨습니다.

지금까지 평생을 살아나오는 동안!

여러분들 인생을 사시는 것이 참으로 힘이 드시지요? 외로우시죠?

 

믿을 사람이 없으시지요?

달면 삼키고 쓰면 뱉죠? 배신의 세상입니다,

누구 하나 내 편이 되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나와 함께해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 다 나를 놓고 이렇고 저렇고 험담하고 헐뜯고, 수근대죠?

그래서 속상하지요? 마음에 상처를 받으셨죠? 앓으셨죠?

그래서 나는 혼자다?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나는 인생의 실패자다? 고독하다? 나 혼자다?

생각하면 내 인생이 불쌍하지요. ‘인생을 헛살았구나.’

내 인생이 처량하죠? 외롭고 고독하죠?

 

근데 여러분 여기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런 상처투성이 외로운 인생길을 사는 우리에게

진정한 친구가 되시고자 함께하시고자,

그 누구도 내 편을 들지 않는데 내편을 들어 주시고자, 나와 함께하시고자,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참 기쁜 소식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오늘 그 누구가 아닌, 오늘 나와 우리들 모두와 함께 계시고자 함께하시려고

하나님이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상처투성이인 인생을 사는 내 인생의 나의 진정한 친구가 되시려고

그 어떤 경우에도 나를 떠나지 않고 나와함께 변치 않고 계시기위해서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오늘 성탄절이 이 바로 그 아침입니다.

나와 함께 계시고자 오시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이 있어 우리는 외롭지 않고

그 주님에게서 우리는 다시 일어날 수 있고,

그 주님의 위로로 우리 상처를 치유받을 수 있고,

절망과 슬픔 속에서 우리는 다시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고

힘들고 어려운 인생의 길을 우리는 담담하게 다시 걸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 때문에 그분의 손을 잡고

이 귀한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들 모두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내가 나를 보더라도

참으로 못나고 모자라고 부족하고 흠 많고,

세상 사람들 다 나를 향해서 손가락질 하고 수근거리기도 하고 떠나기도 하고..

주님, 인생의 길을 살아가는 무엇이간데 이 죄인을 생각하셔서

주님,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땅에 오셨습니까?

저희들은 그저 감사한 것 뿐입니다.

 

내 편을 들어 주시기 위해 나와 함께 계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주님, 오늘 저희들 온 마음으로 맞이하며,

주님의 손을 붙잡고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이 힘들고 어려운 인생의 길이지만

희망과 소망가운데 믿음으로 나아가는 저희들 모두가 되게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