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얻는 믿음과 은혜 막10:47, 요8:1~4 출처
2010년 종교개혁 기념 사경회 설교 스크랩
그리고 오늘 날 구원얻는 믿음을 그저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으로 은근히 여깁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불신자가 교회 들어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 사람이 교회를 친근하게 생각하고
예배를 꾸준히 참석할 뿐만 아니라 교회 일에 헌신도 하고 현금까지 냅니다
그러면 이 사람에게 믿음이 있다 라고 여깁니다
우리는 구원이라는 엄청난 은혜를 너무나 쉽게 낙관하고 있습니다
교회 다니고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다 받을 수 있는 가장 쉬운 은혜가
구원이라고 얘기합니다
아니에요 우리가 받아야 될 가장 지고한(지극히 높은) 은혜가 구원이고
앞으로 구원을 받을 사람들, 구원을 받지 못할 사람들이 받아야 돼 가장 큰 은혜가 구원이며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가장 가장 가장 가장 사모해야 할 은혜가
바로 구원의 비밀을 깨닫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십자가에서 걸어 놓으시고
그의 피를 우리 가운데 7번 뿌리시며 속죄하셨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의 아들 예수는 나 같은 죄인의 죗값을 지시고
창세기 3장 이후부터 하나님께서 쌓아오셨던 그분의 진노를 다 받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성령은 지금도 예수께서 이루신 이 대속의 사건을
사람들 마음속에 효력 있도록 하시기 위하여 일하고 계신다 라는 거예요
이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삼위 하나님의 사랑과 관용과 은혜는
말로 할 수 없던 것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은혜인 이 구원을 왜 그렇게 쉽게 전락 시켰을까요?
진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 얻는 믿음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 어떤 은사주의에서는 방언과 신비적인 체험이나 하면
구원을 얻는 믿음을 소유했다고 인정합니다
이들에 대해서 마르틴 루터의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그들의 영혼이 진정 구원을 얻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그들의 영적 절망과 하나님으로 인한 거듭남과 죽음,
지옥을 경험 했는지를 물어봐야한다..."
이렇게 '역사적 사실(갈보리 십자가)에 동의하고 예수를 믿습니다' 라고 고백하고
교회생활에 열심을 품고 신비적인 체험을 했다 할 지라도
그가 죄인됨을 깨닫지 못하고 나를 부인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는 그런 삶을 보이지 않는 그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고 성경은 얘기합니다
이러한 믿음은 구원을 얻을 수 있는 믿음이 아니라
그저 자기 최면이며 자기 확신에 불과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얻는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우리 선택과 결단으로 생겨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믿음은 죄인이 성령으로 거듭날 때 생겨나는 자연적인 반응이에요
그렇게 때문에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 믿음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자연인을 거듭나게 하실 때
그 성령께서는 그 자연인에게,
그 자신의 죄악된 실체와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죄악된 실체를 보면서
영광스러운 하나님 앞에 접근할 수 없다 라는
그 마음으로 큰 절망을 느끼며 큰 시름에 빠지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거듭난 사람의 마음이라는 겁니다
먼저 거듭난 사람은
(거듭나기 전) 이제까지 어느 정도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가 만약 교회를 다니고 있다면
자신의 신앙을 괜찮게 여기고
자신은 구원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거듭나는 순간 그는 자신이 죄를 가득하며
자신의 신앙은 위장 되었고
자신은 저기 보이는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자 라는 사실을
확신하게 되는 거예요
한 마디로 지옥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지옥을 깨닫는 거예요
▲이것을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자,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이 여자 한밤 중에 간음하다가 낮이 되자 죄가 들통이 납니다
남자들은 이 여자를 예수님께서 설교하시는 장소로 데리고 오는 거예요
그리고 그 여자를 땅바닥에 내팽개 칩니다
이 여자는 눈물로 얼굴이 범벅되어 있고 머리는 헝클어져 있어요
그리고 그 마음에는 깊은 후회와 부끄러움으로 가득합니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이런 죄를 지었을까?'
그러나 이 여자에게 있는 가장 큰 감정은 두려움입니다
이스라엘 율법에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히면 돌에 맞아 죽게 되어 있어요
이 여자는 부끄러움과 후회보다는 심판 앞에 두려워 하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이런 상태가 거듭날 때 생겨나는 마음이에요
이것이 회개의 전조입니다
"자신의 죄값에 대한 확연한 깨달음(두려움)"이라는 겁니다
이것이 거듭남의 증거입니다!
그리고 거듭 날 때 그 사람은
본문의 여자가 보았던 것처럼
예수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그러면서 통곡합니다
나로서는 저 영원한 나라, 저 영광스러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는 사실 앞에
큰 절망과 좌절과 슬픔 가운데 빠집니다 그리고 그때 복음을 듣습니다
이게 기쁜 소식이에요
복음은 기쁜 소식입니다!
이렇게 거듭날 때, 자신의 죄된 실체를 깨달은 자들에게만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기쁜 소식이 됩니까?
복음이 진짜 복음(기쁜 소식)이 됩니까? Yes!
저 예수를 믿으면 너의 영혼이 살 수 있다 라는 간절한 그 고백,
그 간절한 소식, 그 기쁜 소식이 여러분에게 복음이 됩니까?
만약에 복음이 '기쁜 소식'으로 들려오지 않았다면
여러분들은 아직 자신의 죄된 실체를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기쁜 소식(복음)은 그에게 말합니다
'저 예수를 믿으면 네가 살 수 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그때 그는 가장 겸손하고 가장 처절하게
완전한 희생제물 되신 예수를 붙잡는 거예요
심판앞에서 두려워하는 자신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에 접근하지 못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구하는 그것, 이것이 회개 라는 겁니다
그리고 '오 주여 당신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하며 주 예수를 간절하게 부여잡는 것,
이것이 믿음이라는 거예요
'구원 얻는 믿음'은 이렇게 회개를 동반합니다
믿음이란 지옥의 맨 밑바닥까지 내려가 봤던 사람이
자신의 온 마음으로 예수를 붙잡는 거에요
이것이 바로 '구원 얻는 믿음'이라는 겁니다
단순히 그저 '예수를 믿습니다' 라고 말하는 꽝이라는 거예요
교회를 어느 정도 10년 20년 다니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구원 얻는 믿음'이라는 것은 착각입니다
'구원 얻는 믿음'은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로
내 마음이 온전히 뒤집어졌을때 생겨나는 자연적 반응이라는 겁니다
죽을 죄인이 '저 예수를 믿으면 살 수 있다'라는 그 소식을 듣고
간절한 마음으로 주 예수를 부여잡는 것
그것이 구원은 믿음이라는 거예요
그러나 진리가 사라진 오늘날 교회에서는
이 '구원얻는 믿음'에 대한 정의가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난입니다 왜요?
이 구원 얻는 믿음을 착각함으로 말미암아
자기는 거짓된 확신과 자기 최면에 걸려서
구원이 보장된 사람으로 자신을 그렇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앙입니다
▲그리고 구원 얻는 믿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구원 얻는 믿음에는 그 증거가 뒤따른다는 겁니다
에비던스(증거)가 있다는 겁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열매'라고 얘기합니다
마태복음 7장 1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웁니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여기서 말하는 열매가 뭘까요?
내가 전도한 사람들이 숫자를 가리키는 걸까요?
아니면 내가 제자훈련한 사람들일까요?
아니면 목회하는 목사는 사람이 많아진 교회를 열매라고 얘기할까요?
아니에요 여기서 말하는 열매란
예수님입니다
나를 구원하신 예수를 그 어떤 것보다 그 누구보다 사랑하며
그분을 죽기까지 따라가는 것을 말하는 거예요
돈과 명예와 세상에 내가 사모하는 그 영원한 것이 가로막지 못하는 겁니다
세상의 환란과 핍박이 예수를 믿는 것을 방해하지 못 하는 거예요
이 열매 없음은 구원 없음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겁니다
마태복음 10:37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하냐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아니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리라' 라고 말씀합니다
세상과 불화하면서까지 심지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불화하면서까지
예수를 따라 가지 않는다면 구원 없음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것입니다
대신에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게 열매라는 거예요
우리는 팔팔하게 나라는 존재가 너무나 살아 있고
나를 날마다 주장하며 나를 내세우기를 바라고 내가 인정받기를 원한다 라는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 보다 나에게 속한 것들을 사랑합니다
그렇게 하다가는 (구원이) 위험하다는 겁니다
이들을 향해서 하나님은 '너는 내게 합당치 않다' 라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세상에 핍박과 환란 가운데서 끝까지 견디어내는 자가
바로 구원을 얻게 될 것이라고 주님은 마태복음 10:22절에서 말씀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세상에 잡아먹힌다고
주님은 마태복음 10장 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 이리떼들 가운데로 들어간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양이에요 양은 이리한테 잡아먹히는 것은 당연합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할 거라고 얘기합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자의 삶이라는 거예요
예수 믿는 자의 삶은, 이 땅에서 번영과 떵떵거리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지지리궁상 떨며 살아가면서 세상에 잡아 먹히는 것이
예수 믿는 자의 삶이라는 겁니다
세상에 잡아먹히는 삶,
세상의 핍박과 화력에서 끝까지 견디어내는 자가
구원을 받게 될 거라고 얘기합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가 구원을 얻게 될 거라고 마태복음 10:22절에서
예수님은 선언 하셨다 라는 거예요
우리는 주님을 위해 나의 물질과 건강이 손해 볼 수 있다라는 것을 감수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나의 직업과 사업과 학업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각오 해야 돼요
우리는 주님을 위해 나의 미래와 나의 계획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계산해야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따라 가야 합니다
이 열매를 보인 믿음이 바로 '구원 얻는 믿음'이라는 거예요
'구원 얻는 믿음'은 믿음은 영원한 것을 보고 확신한 자 안에 있는 겁니다
▲제가 거듭날 때 생겨나는 것이 바로 믿음이라고 얘기했죠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실 때 보게 하는
두 가지 요소가 있다고 말씀을 (지금까지) 드렸습니다
1) 첫 번째는 '나의 진실된 모습'이라는 겁니다
이제까지 나라는 인간은 스스로 참 나름대로 괜찮게 생각했단 말이에요
나의 신앙도 괜찮았다고 스스로 생각했다는 말이에요
나는 좀 덕스러운 인간이라고
어느 정도는 그 정도 생각했지만
성령께서 영적인 눈을 우리 안에 팍 뜨게 하는 순간에
나의 죄된 실체를 성령께서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내 온통 몸에는 죄덩어리 뿐이구나
내가 생산했던 것은 모든 죄며
나의 모든 과거는 죄 그 자체로구나! 라는 사실을
확연하게 (성령께서) 보게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날 때 성령께서 보게 하시는 one thing(중요한 한 가지) 입니다
2) 거듭날 때 두번째로 하나님이 보게 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영광'이에요
저 영원한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겁니다
거듭난 자는 그것을 보면서 '내가 저 곳에 서고 싶구나
저 곳에 서고 싶구나!' 하며 소원합니다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십니까?
제가 사역하면서 가장 마음이 우울하고 다운 될 때
저는 요한계시록을 뒤져요
요한계시록을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숨가쁘게 읽어 내려갑니다
그때 제 마음에 소망이 있어요
저 원수 세상은, 바벨론은 무너질 거라는 거예요
복음을 반대하고 복음을 방해하는 모든 원수들과 세상은
바벨론처럼 다 멸망하리라는 기쁜 소식을
요한계시록이 저에게 전해 주는 거예요
그리고 간절한 소망이 생깁니다
저 믿음의 선조들과 함께 저 유리바닷가에 발을 담그고
오 하나님의 공의를 함께 노래 하는 거예요
'하나님이여 바벨론된 이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공의로우십니다 당신은 나의 모든 것입니다'
그 (어린양을 찬양하는) 성가대에 내가 함께 참여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요한계시록의 천국이나,
신앙생활 하면서 저 영원한 곳에 가고자 하는 그 강렬한 마음이 여러분께 있습니까?
오늘 교회에서 말씀을 전한 후에
마치고 한 여자 집사님이 저를 찾아왔어요
'목사님 저는 어릴 때 태어났을 때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목사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옥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천국은 내가 당연히 가는 곳이라 여겼지만
천국에 대한 깊은 확신과 사모함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뭡니까?
제가 집사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집사님, 거듭나야 됩니다!'
여러분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성령으로 거듭날 때
두 가지 현상을 보는 것, 두 가지를 보는 것은
우리 힘으로 도대체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3:16절 성령께서 죄로 막혀 있던 우리 눈에
허물을 벗겨주실 때만 그것이 가능하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도대체 안 된다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그것을 볼 수 있다라고 얘기를 하는 겁니다
이 회개와 믿음이 있는 자들
그들은 그 영원한 것에 대한 확신이 생각나는 겁니다
저 영원한 하나님의 보좌와 예수와 진리와
저 영원한 천국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라는
그 누가 위협해도 그 누구도 사라지지 못하게 한다는 확신이 있다는 거예요
그리고 내가 살아가고 있는 이 땅, 사라질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믿음 있는 자는 영원한 것을 위해서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린다는 겁니다
그가 버리는 것은 단순히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자신을 버리는 거예요
이것을 베드로와 그 형제(안드레)들의 예수를 따라가는 기사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너는 나를 따르라' 라고 말을 합니다
마태복음에서 그 말씀을 듣고 그들은 자신의 배와 부친을 버려 그리고 주님을 따라갑니다
굉장히 간단한 기록이에요
이 간단한 기록 속에서 구원얻는 믿음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와 그의 형제들은 단순히 밥 먹고 사는 것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을 상징하는 배와 부친을 버린 거예요
한 마디로 말해서 자신 전체를 하나님 앞에 내동댕이 치며
그 존귀하신 주님,
성령으로 거듭날 때
영원하시고 영광스러우신 주님을 확신하며
주님을 따랐다는 거예요
이것(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따름)이 바로
구원얻는 믿음이 있을 때, 생겨나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변화될 게 뭘까요?
예수님처럼 변화된다 얘기하는데
우리가 예수님처럼 변화되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요?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성장 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신비적인 것을 보고 방언을 하고 예언하고...
제가 어렸을 때 저희 교회는 제가 다녔던 교회는 은사주의가 아주 성행했던 교회였어요
권사님들 특별히 무서운 아주머니들과 함께 기도원에 가면
저희 엄마가 저를 등에 업고 가요
막 기도하다가.. 저는 자다가 옆에서 눈을 뜨고 보니까,
어떤 여자 전도사님이 '아 맛있다!' 그러면 다 조용히 해요
왜 그런가 하면 그 분이 지금 하늘을 올라가 있대요
입신해서 천사랑 얘기하고 있대요 (생명실과 먹으며)
여러분,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변화와 성장은 이것이 아니에요
기독교 신앙이 말하는 변화와 성장은
나를 날마다 하나님을 앞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이 바로 변화, 성장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나는 이렇게 생각했는데 또 나는 아니구나' 하는 거예요
태어나면서부터 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구나, 나는 낫싱이구나!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이것을 깨닫고
가장 지루한 수준에서 더욱 깨닫는 것
이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될 변화요 성장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 길길이 팔팔 날라 뛰는 거예요
그냥 자기가 너무 강한 거예요
자기 의가 너무 강하고, 자기를 정말 좀 알아 달라고
'날 좀 알아주세요 알아주세요 좀 알아주세요'
이게 바로 오늘날 교회가 됐다 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