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G3KSFjDawlA
◈하나님의 영광 P1 계5:13, 사6:9~10, 렘20:9, 고후4:6 출처
2010년 종교개혁 기념 사경회 중 <영광 관련글>
여러분 가운데 거듭나신 분들은 어떻게 거듭나셨습니까?
영접기도 하셨습니까,
모태신앙이라서 그냥 지내다 보니까 믿는 것 같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여러분들이 할
여러분의 스토리가 어디 있습니까?
오늘 날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 잃어버렸습니다
구호는 있고 말은 있어요
그렇지만 하나님의 영광을 내가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굶주림이나 목마름이나 갈증이나 갈망은 없습니다
필요 없습니다 그것은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교회 가운데 충만해지기를,
하나님의 영광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하박국과 이사야가 보았던 환상과, 그들의 인생을 걸었던 그들의 비전!
이것이 여러분들의 간절한 기도에 제목이 됐었던 적이 있습니까?
아니면 여러분들의 고달픈 삶 속에서
하나님 앞에 울었던 적은 많겠죠
성경은 그것을 기독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 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성경에서,
그것은 구호가 아닙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의 몇몇 특정한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참된 그리스도인이 된 모든 사람에게 체험된 경험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법은 없습니다
이 개념이 추상적이죠?
추상적인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면 경험한 적이 없으니까!
교회는 다녔지만!
어떻게 변화 합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는 예수를 잘 믿을 수 있고
어떡하면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있습니까?
열심히 하면 될까요?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을 봐야만 우리는 하나님을 닮아간다고 말씀합니다
다른 길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
이런 삶이 아니고는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고
본질적으로 우리는 자기를 영화롭게 하게 되어 있습니다
죄인의 본성이!
▲제가 여러분들과 함께 읽고 싶은 성경 말씀은
요한계시록 5장 13절 입니다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지금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마지막 때
하늘에서 일어나게 영광스러운 예배의 현장 가운데 있습니다
이 장면은 예배의 표준입니다
사도 요한이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하늘 위에 있는 존재들’은 천사들이겠죠,
‘땅 위에 있는 모든 존재들’은
무엇을 의미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땅 아래의 존재’
그리고 ‘바다 위에 바다 가운데’
즉 ‘모든 만물이’
우리는 이것을 한눈에 본 적이 없고 볼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모든 만물을 마치 창조 때 천사들이 하나님의 창조를 보면서
‘와~ 와~’ 하며 그렇게 천사들이 감격했었던
욥기에 나오는 그 말씀과 같이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모든 것을 보이십니다
근데 그 모든 것들이 모든 존재가
죽어있으나 살아있으나 나무와 꽃들과 짐승과 모든 존재가
해와 달과 별들 등 모든 존재가 다 보입니다
그들이 말합니다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이것을 요한이 본 것입니다
요한이 무엇을 보았느냐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이 계5:13절은 성취된 영광이고 완성된 영광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것을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서!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이유이고 존재하는 목적이고
이것 때문에 여러분들은 일 하셔야 하고
이것(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여러분들은 자녀를 기르시는 것이고
이것 때문에 여러분들은 가정을..
우리 가정은 이것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고!
여러분들이 이 자리에
만물, 모든 만물이 보였으니까
마지막에 요한이 보았던
시간적으로 하나님이 앞당겨서 보게 하셨던 그 이야기
이 장면 속에 저와 여러분들이 가게 될 것입니다, 서는 날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현재는 요한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쓴 것을 통해서 보지만
우리가 그 날 실제로 이 현장에 설 날이 올 거예요
그런데 제가 조금 아까 말씀드린 대로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만물과 같이 찬송 할 수 있을 거예요
감격과 은혜와 주님에 대한 사랑과
그 말할 수 없는, 표현할 수 없는,
만 입이 있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그리고 인간의 언어로는 도무지 형언 할 수도 없고 표현할 수도 없는
그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는 감격하며 하나님을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계열)’은 계6장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계6:14절부터 제가 몇 절 봅니다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자리에서 옮기우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가난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누가 능히 서리요!’
너무나 하나님의 낯을 보는 것이 그들에게는 감격도 기쁨도 아니라
견딜 수 없는 두려움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산들아 바위야 나에게 덮쳐서 나를 제발 좀 없애 줘!’
라고 이야기 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 중에) 한 편은 이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성경의 예언입니다
사도 요한은 아마 열두 제자 가운데서 예수님하고
가장 친밀한 사람이었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가장 친밀했습니다
요한은 굉장히 사랑스러운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예수님에게 늘 기댈 수도 있었던
보통 친밀하지 않으면 기댈 수가 없죠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하나가 나를 팔자가 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나 인가?’ 자기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합니다
자기가 물어보면 되는데
요한이 예수님 옆에 기대고 있으니까
눈짓을 해 가지고 요한이 대신 예수님께 물어봐 줬어요
요한은 보통 사이가 아닙니다 예수님 하고
그런데 요한이 예수님을,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
그렇게 친하게 알았던 예수님!
3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던 그런 예수님을
그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
영광을 가리우고 이 땅에 오셨을 때
요한은 뭐라고 쓰고 있습니까? 요한복음 1장에서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즉 하나님의 성품인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고 얘기를 합니다
그런데 요한이 계시록 1장에서
예수님,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을 봤을 때
그가 보이는 반응은 어떤 것인가 하면
계1:17 ‘내가 볼 때에 그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이르시되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니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내가 그다!’
우리의 상상대로라면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나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다’ 라고 얘기 하셨던,
어머니를 부탁하셨던 그 분,
인간적으로 너무나 잘 알았던 그분,
그런데 예수님 그 부활하신 예수님,
영광을 받으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우리의 상상대로라면 와락 껴안았어야 돼요 그쵸?
그게 감격이에요 당연한 거예요 그거는
근데 사도요한이 그렇게 못 해요
너무 반갑고 내가 그 분을 위해서 내가 팝박과 박해와 모든 것을 견디며
오직 예수, 내가 3년 동안 내 인생 가운데 만났고,
그분이 나에게 생명이 되셨고 나에게 빛이 되셨던 그 오직 예수
그 분을 위해서 나는 내 생애를
지금까지 90세 평생을 살았는데
이제 내가 그 영광의 주님을 봤는데 껴안지를 못 해요
그게 하나님의 영광이에요!
우리가 값 싸게 예수 예수 말하는, 노래 부르면서,
우리의 삶은 형편 없고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데
그저 노래만 부르면 ‘예수 나의 모든 것 예수 나의 모든 것 하면서’
울 수 있는 그런 예수가 아니에요 여러분!
그런 값싼 주님이 아니에요
도무지 내 마음에서
내 중심에서 올라올 수 없는 얘기는
하나님 앞에 할 수 없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아는 거예요 삭
값싼 말로, 노래 부르고 눈물 흘리고 이런 게 아니고
이게 정말 예수님을 보는 것이에요
여러분 저는 이런 생각을 늘 가지고 삽니다
종종 그런 말씀을 드릴 때가 있지만
저나 여러분이나 예외 없이 그분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요한처럼!
영광을 받으신 분 주님이십니다 그러면 저나 여러분이나
혹은 순교자들이라 할지라도 견딜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고백했던 예수님이 이렇게 영화로우시고
이렇게 영광 가운데 계시며 이렇게 완전 하시고
이렇게 이런 이런.. 인간의 어떤 표현으로도 다 담을 수 없는
이런 하나님이신 것을 조금이라도 내가 알았었더라면..
내가 이렇게 주님을 섬기지는 않았을 텐데...
이런 식으로 내 영광을 구하고
내 의를 구하고 내가 인정받고 내가 좀 잘 되고
돈 좀 더 벌어 보고 좀 더 괜찮은
그게 내가 살아가면서 내 인생을 그렇게 낭비하지는 않았을 텐데...
....................
하나님께서는 그런 상상을 우리에게 하라고
우리에게 이 말씀을 주시는 건 아닐까요?
가끔가다가 예수님께 경의를 표하는 정도로 예수를 믿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순교자들도 주님 앞에서 순교했던 그날은 있었지만
순교하기 전에 그들이 주님을 알지 못하고 살았던 그 삶이
얼마나 그 영광의 주님,
내 인생을 다 드릴 가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도 부족하고 그분의 그분 되심은 알려지기에 너무나 합당하고
알려져야만 되고 그 부분에 대해서 나는 너무나 모르고 있고
그 분을 알리는 것이 내 삶의 가장 큰 사명이 되고
그분을 위해서라면 나의 생명이 천 개가 주어진다 해도
나는 그 분을 위해서 드리고 또 드리리라 하는
양화진에 묻힌 한 선교사(루비 켄드릭)의 이야기와 같이 고백하지 않을까요!
그저 여러분, 목사가 전화 걸어 줘야 교회에 오고,
전화 안 걸면 사랑 없다 그러고..
여러분 이렇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거 믿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교회에 붙어 있다 한들 그것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누리고
오직 예수로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에요?
성경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해요!
단호하게 아니라고!
제 마음은 목회를 하면서 제 마음은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내 인생 모든 것 다 드릴 수 있습니다
주님 오직 예수가 나의 생명이시고, 나의 빛이시고
나의 모든 것입니다
주님이 허락하시면 우리는 순교 할 수 있습니다
내가 사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이런.. 그저 사도신경의 고백이 아니라
이 고백을, 이 약속을 가지고 하나님께 우리가 예배하고..
계시록 5장에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거예요!
기도를 하죠 '주님, 언제 이런 날을 하나님
언젠가는 주님의 때에 주님의 때에
기다려, 기다려 (복음 성가 가사)
그 날에, 아름답게 변할 그 날에! 주님의 때에!
이렇게 주님을 섬기다 보면 어느 날 우리는 그 자리에 옮겨가 있겠죠
그런 생각을 해요
그러면서 제 마음속에 있는 안타까움은 뭔가?
제가 말해 주지 못하고 미안해서
관계 상하는 게 무서워서
말해주지 못하고...
원래 저는 성격이 '남 귀찮게 안 하는..'
제가 목회 그렇게 하잖아요
남 귀찮게 하기 싫어해요
근데 제 생각에는
저 분 저렇게 하다가는 지옥 갈 것 같아요
주님께서 저한테 물어 보실 텐데
'니가 잘 얘기는 했었니?
그에게 경고는 주었니?'
여러분 성경에 있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십시오
여러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여러분들이 예수 믿는 것의 도리를 깨우칠 수는 없습니다
우리시대는 그러기에는 너무나 힘든 시대입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제가 주변에 있는 목사님들을 보다가는 저 타락합니다
성경에서 복음을 전하고 이
이 세상에서 편안함과 물질적인 보상을 하나님한테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없어요 있으면 한번 좀 알려 주세요
다니엘? 다니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전하는 사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물론 선지자 였지만
그러나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도록
그 말씀을 받아서 그 말씀을 전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가 받은 리워드(보상)가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주님이 뭐라 그러셨나 하면
'내가 너의 reward 다, 내가 너희 상급이다' 창15:1
주변에 보면 제 눈에도 다 보여요
'야 나도 저런 멋진 서재가 있으면 좋겠다'
세상의 영광입니다
'나도 좀 걱정 안 하고 여유롭게 살면 좋겠다'
세상의 영광입니다!
성경을 보세요 여러분이 이사야 선지자를 보세요
도대체 이사야 선지자는 실패가 보장된 사역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에요
'네가 말씀을 전해도 깨닫는 자는 하나도 없을 거야!'
'네가 이거 말해도 하나도 못 알아들어' 사6:9~10
그래도 가서 말씀 전해
이사야 선지자가 얘기하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라
그 시대에 그는 별로 열매를 못 봤어요
왜냐면 전설에 의하면 히11장에서 톱으로 켜서 죽임을 받은 사람은
바로 이사야 라고 얘기합니다
무엇이 실패가 보장된 사역을 끝까지 견디며
톱으로 죽임을 받기까지 그로 하여금 그 길을 걸어가게 만든 것일까요?
해답은 이사야 6장입니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봤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소명 이라고만 얘기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종을 부르실 때 그런 소명을 주실 때 주시는 경험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울 사도의 설명에 의하면
모든 사람이 예수 믿을 때 경험하는 부분이라고 얘기합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전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우상 섬기는 사람의 아들이었는데
어떻게 자기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서 그렇게 모험을 감행할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힐끗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처럼은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힐끗 본 그것 때문에 그는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인생을 걸었습니다
모세가 40년 동안을 미디안 광야에서 양치기로 살면서
그의 인생이 이제 끝났다고 확신할 무렵에
그의 인생을 새롭게 하셔서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신 그 사건은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습니까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신을 벗는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두렵고 떨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정말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렘1:6
그런데 예레미야는 말만 하면 사람들은 때리고 감옥에 가두었고
고생의 떡을 먹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나는 도무지 하나님 말씀을 이제는 전할 수 없다고
전하면 미움만 받는다고
그러나 하나님의 방망이 같고 불같은 말씀은 그를 가만히 놔두질 않았습니다 렘23:29, 20:9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교회가 왜 이렇게 힘이 없죠?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없이 회심하는 거짓 회심이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생각해 보지도 않고 상상 해보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데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라고 말하는 사람이 교회안에 너무나 많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그렇게 체험했는데 출33장에 보면,
'하나님 저에게 영광을 (더, 계속) 보여 주세요' 라고 기도합니다
영광은 한 번 보고 마는 게 아니란 얘기죠
모세처럼 큰 체험 했던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나에게 영광을 보여주세요 영광을 보여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나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아니면 나는 힘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것이 나의 힘이요 능력입니다
이렇게 모세는 더 큰 은혜를 구했습니다
제가 여러분께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신앙생활 하시면서 더 큰 은혜에 대한 사모함과 갈망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은 충분히 은혜 받으셨기 때문에 자족하십니까?
이만하면 괜찮습니까, 은혜에 대한 사모함이 있습니까?
은혜 대한 사모함을 가지고 여러분들은 하나님 앞에 나가 보셨습니까?
어쩌면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시기 때문에 못 하시는 거예요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의 영광을 본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요
이 길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바울! 어떻게 설명할 수 있어요?
사울이 어떻게 바울이 됐어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나머지의 사역과 삶과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열쇠는
그가 예수, 부활하신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을 보았다! 다른 설명이 없어요
가인처럼 자기 힘으로 예수 믿는 사람은
끝까지 갈 힘도 없고, 계속해서 갈 힘도 없습니다
끝까지 간다 해도 주님은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자기의 회심의 체험을
나만큼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체험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으면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고후4:6절에 있는 말씀처럼 예수를 믿는 것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어두운 데서 빛이 비치리라 하시던 그 창조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이게 예수를 믿게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다른 길은 없어요
내가 어떻게 했다는 얘기는 여기 성경에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어요, 하나님이 창조 때 '빛이 있으라' 빛이 있었습니다
그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어느날 저의 인생가운데 찾아오셔서
'형익아 너에게 빛이 있으라!' 하시니까 제 인생에 모든 어두움이 다 사라지고
그 빛이 하나님의 빛이 그 생명이 저에게 임한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예수를 믿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에 대한 유일하고도 참된 하나님의 설명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했다..는 없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일입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이렇게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고
다른 길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 너무나 많다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가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성경과,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거에요
태생이 인간이 만든 회심인데
어떻게 하나님이 만든 은혜와, 하나님이 만든 믿음과, 하나님이 제공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주신 말씀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할 수 있겠어요!
태생이 출발이 없었는데!
이럴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고
그 엄위로우심 앞에 두렵고 떨림이라는 것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을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근본적으로 교육을 통해서나
프로그램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교회들은 모든 것을 인간이 하는 것으로 바꿔 놨습니다
이 새신자 등록과정만 하시면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래요?
여러분들은 새신자 등록과정으로 예수를 믿으셨어요?
이 과정만 마치면 뭔가 마술이 일어나고 마술적인 능력이 있어서
예수를 믿게 되던가요?
그러면 그 과정만 끝나면 이제는 제자훈련을 들어가죠
하나님의 은혜가 그 사람을 만들어내기 보다는
제자훈련 잘 시키는 어떤 사람의 능력과 교재의 능력에 의해서
인간이 만들어낸 것들이지만.. 성경을 그렇게 표현하지 않아요
P2 에서 계속
그렇지
'분류 없음 > 2010'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언기도가 즐거운 이유 (0) | 2019.10.15 |
---|---|
하나님의 영광 P2 (0) | 2019.10.14 |
구원 얻는 믿음과 은혜 (0) | 2019.10.13 |
성령의 사람이 되라 (0) | 2019.07.19 |
제6강 찬양과 경배 (0) | 2018.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