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임하옵소서! 눅11:12 06.12.03. *원제목 : 구름 위를 바라봅니다
◑1. 개혁이 능사가 아니다
▲변화, 개혁, 고치고 바꾼다고 개선되지 않는다.
내년에는 무엇보다도 대선을 앞두고 있다.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일에
온 국민이 큰 기대를 하고 있으며, 또 한편으로는 염려를 많이 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를 뽑아야 하는가? 어떤 지도자가 나왔으면 좋겠는가?
확실한 것은, 어떤 지도자가 나올지라도 나라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사람에게 너무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확실한 것은 인간의 문제, 국가의 문제는
어떤 변화나 개혁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을 해야 한다.
사회적인 문제들, ‘이거 다 고쳐야 된다. 이거 다 바꾸어야 된다.’ 라는 논리,
‘이 모두가 다 잘못되었다.’ 라는 생각으로는
인간, 사회, 국가, 가정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기독교는 인간의 문제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인간의 문제는 영적인 문제이며,
어떤 만 가지 문제가 있을지라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 앞에 바로서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여 하나님 앞에 돌아올 때만이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이 사회는 전반적으로 바로 서고 해결된다.
▲솔제니친의 정확한 분석
1978년 하버드 대학교에 러시아의 솔제니친이 와서
‘우리는 너무나 많은 희망을 정치적 사회적 개혁에 두어 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깨달은 것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영적인 것을 우리는 잊어버렸습니다.’라고 연설했다.
러시아의 공산주의는 ‘이 세상을 다 바꾸어야 한다. 다 못쓴다. 고쳐야 된다.
그래서 이 나쁜 놈들 다 없애야 한다. 죽여야 한다.’라고 해서
수 천 만 명을 죽이고 모두를 다 바꾸었다.
그런데 바꾸고 나니 좋은 세상이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저주가 왔다.
비극이 오고 가난이 왔다. 남는 것 하나 없이 모두 파멸 되었다.
다 나쁜 것이니까 모두 없애버렸는데,
과거 일등 국가였던 러시아가 공산주의 때문에 삼류 국가가 되고 말았다.
동토의 땅, 가장 불행한 나라, 거지나라가 되어버렸다.
이 비참함이 어디서 왔는가? 개혁에서 온 것이다. 고쳐야 된다는 데서 왔다.
그러나 솔제니친은 사태를 정확히 꿰뚫어 보았다.
하나님 앞에 가면 다 될 일을,
하나님 앞에 가는 걸 뒤로 미루고 인위적으로 다 뜯어 고쳤더니
러시아 전국이 저주의 땅이 되고 말았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하나님께 기대고, 구름위에 계신 주님께 기대해야 한다.
영원히 살아계셔서 영광 받으시는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향하여 나아갈 때
앞으로 이 나라에 황금시대가 올 수 있고
최고로 세계적으로 번영하는 날이 주 안에서 분명히 올 것이다.
▲(개혁 한답시고) 남을 헤치면 자기가 망한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시려고 무리들에게 붙잡히실 때
곁에 섰던 베드로가 칼을 쫙 빼가지고 예수를 붙잡는 사람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러자 예수님은 ‘인간의 생각으로 보지 말라. 그것이 나를 돕는 게 아니다.
그리고 칼을 꽂아라.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느니라.’고 말리셨다.
그렇다. 칼로 적을 해치려고 하면 그 칼이 내게로 돌아온다.
하나님의 나라는 칼로 임하지 않는다.
개혁이란 미명으로 남을 죽이려 하면, 도리어 자기가 죽게 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떨어진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주셨다.
◑2. 하나님 나라(=하나님의 통치)가 임해야 된다!
기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주기도문은
성경에 있는 모든 말씀을 다 모아놓은 기도이다. 그 기도의 핵심이 무엇인가?
‘주님의 나라가 내게 임하시옵소서!’ 이다.
나라가 임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주님이 통치자로 오셔서 다스리신다는 뜻이다.
▲주님이 다스리시는 천국의 복
기독교는 내 안에 천국이 임하는 것(=주님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 천국을 건설하려고 이 땅에 오셨다.
기독교의 축복은, 주님의 나라가 내게 임하는 것이다.
내게 임하여, 주의 뜻이 나로 말미암아, 주의 거룩한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벌을 보면, 여왕벌이 없으면 벌은 다 날아가 버린다.
내 안에 왕의 왕이신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내 집은 다 빈 집이 된다.
아무것도 없게 된다.
오늘날 개혁을 논할 때, 인간의 문제가 이렇게 많은데 다 어디서 왔는가?
내(↔주님)가 나를 다스리기 때문에, 이렇게 문제가 많이 생겼다.
내 정욕이 나를 다스린다. 교만이 나를 다스린다. 음욕이 나를 다스린다.
욕심이 나를 다스린다. 온갖 이기적 불의와 온갖 악한 마음이 나를 다스린다.
그래서 우리는 이 좋은 세상을 살면서도
가정이 무너지고, 자살하며, 탈선하는 것은 내가 나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내가 아내를 다스려도 안 되고, 아내가 나를 다스려도 안 되며,
내가 자녀를 다스려도 안 되고, 내가 세상을 다스려도 안 된다.
그래서 오늘의 많은 통치자들이 자기 가정의 비극을 막지 못하는 것은
인간은 통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성경은 우리를 ‘양’ 이라고 말한다. 주님이 목자가 되셔서 나를 인도해 주시고,
주님이 나의 랍비가 되셔서 나를 가르쳐 주시며,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셔서 나에게 모든 일을 지시해 주시고,
주님이 왕이 되셔서 나를 다스려 주시는 것이 바로 성도의 축복이요 은혜이다.
▲교회에 나오는 것은 주님이 나를 다스려 달라고 나오는 것이다.
오늘 이렇게 지식이 많고 과학이 발달하며,
정보사회에서 수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주님이 완전히 다스리지 아니하므로
우리는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빨리 이 시대가 지나가고
내년에 새로운 지도자가 오기를 바라는데
내년에 어떤 지도자가 나와도
예수님이 여러분을 다스리지 아니하면 마찬가지다.
지금보다 절대 더 좋아질 수가 없다.
이 나라를 누가 다스려야 좋아지는가? 주님이 다스려야 한다.
♬전능왕 오셔서 주 이름 찬송케 하옵소서
영광과 권능의 성부여 오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옵소서♬
교회 나오는 것은 주여, 나를 다스려 달라고 나오는 것이다.
‘내 인생을 다스려 주세요. 통치해 주세요. 내 생명을 다스려 주세요.
내 앞날을 다스려 주세요. 내 노후를 내 건강을 다스려 주세요.’
현대인들은 자기가 건강을 다스리니 얼마나 피곤한가?
내가 자녀를 다스리니 자녀가 너무 짐이 되고 피곤하다.
내가 내 인생을 다스리니 고민이 너무 많다.
내가 내 사업을 다스리니 사업이 걷잡을 수 없이 힘들고 피곤하다.
우리 인간은 다스리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인 줄로 믿는다.
▲오늘 우리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려면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 여러분에게 이루어져야 이 나라도 좋은 나라가 된다.
정치인들이 이 나라를 좋은 나라로 만들리라고 기대한다면
몇 년 지나면 폭삭 망하고 우리가 크게 후회하게 될 것이다.
이 나라가 개혁을 통하여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각자에게 임한 하나님 나라를 통하여 좋은 나라가 되는 것이고,
여러분 안에, 여러분 가정에, 우리 교회에 주님이 다스리는 천국이 임할 때
이 나라는 좋은 나라가 될 줄로 믿는다.
◑3. 세상에 너무 취하지 말라
▲좋은 아파트란?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에게는 집이 좋으냐 나쁘냐?,
직장에서 직위가 높으냐 낮으냐?, 자동차가 좋으냐 싸냐 비싸냐?,
이런데 중요한 가치를 두지 않는다. 핵심은 주님을 모시는데 있다.
하늘나라(=하나님의 통치)가 내 안에 이루어지는데 축복, 기쁨, 영광이 있다.
저는 강남을 좋아하고, 강남 사시는 분들을 존경한다.
저는 강남에 이사 가지 않고 교회 가까운 길동에 살고 있다.
그런데 집값이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 같고 안 올랐다.
그러나 저는 저의 집이 참 좋다. 왜냐하면 주님이 함께하시는 집이기 때문이다.
강남이냐, 신도시냐? 이런 위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집이 의로운 집이냐? 경건의 아파트냐? 믿음으로 사는 믿음의 아파트냐?
성령이 임재하시는, 성령이 함께하는 아파트냐? - 이것이 더 중요하다.
아무리 집이 비싸고 좋아도,
성령이 없는 아파트, 믿음 없는 아파트, 기도가 없는 아파트는... 천국이 아니다.
좋은 아파트란, 은혜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 믿음의 이불을 덮고 잠을 잔다.
소망의 의자에 앉아서 감사의 음식을 받아 나눈다.
밤에는 천사가 집을 지켜준다. 거기서 좋은 꿈을 꾼다.
성경 읽고 기도하면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비싸냐, 좋으냐? - 이게 아니다.
▲천국(하나님의 통치)은 겉이 아니라, 속으로 임하신다.
기독교는 내적으로 해결하는 종교다. (↔바깥 제도 개혁)
내가 계급장을 달고 학력, 외투, 의복 이런 것은 다 외적인 ‘나’ 이다.
그것은 걸친 코트에 지나지 않는다.
진짜 나는 내 안에 있는, 내 영혼이 진짜 나이다.
진짜 나의 변화는 개혁은 주님을 만나야, 주님을 모셔야,
주님이 나를 완전히 100% 다스려야 내가 바로 설 수 있다.
왜 모두 불행해졌는가? 자신이 자신을 다스리다가 불행해졌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가다가 인생이 망가지는 것이다.
가정도 겉에 보이는 모습이 있고, 반면에 내면적으로 천국 가정이 있으며,
교회도 겉에 보이는 교회 모습이 있고,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교회가 있다.
주의 나라가 임하는 교회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 교회가 거룩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교회다.
이런 살아있는 믿음의 교회는 의인이 많고, 겉으로는 잘 표가 나지 않는다.
십자가 종탑을 아무리 높이고 건물이 화려하며,
설교가 대단한 것 같아도, 성가대가 아무리 장엄한 것 같아도,
이 안에 주님이 우리 교회를 안 다스리면 이 교회는 죽은 교회가 되고 만다.
‘주여! 저의 목회를 다스려 주옵소서. 저의 설교를 다스려 주옵소서.
우리의 재정을 다스려 주옵소서. 우리 성도들을 다 다스려 주옵소서.’
주님이 다스리는 곳에 천국이 있고, 영생이 있으며, 구원이 있는 줄로 믿는다.
▲세상 나라에 너무 관심 갖지 말라
사도행전에 보면, 제자들이 승천하시려는 주님께 부탁했다.
‘주여! 로마를 멸하고, 이 땅위에 멋진 메시야 나라를 건설해 주십시오.’
그 때 예수님의 대답은, ‘아니야. 내 나라는 이 땅에 있는 게 아니야.
너희는 그런데 관심 갖지 말고
너희도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임하여
너희가 능력을 받아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온 세계에 확장시켜라.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 천국 나라를 건설하는 하나님의 역군이 되어라.’
그 후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그 전에는 욕심내던 땅의 욕심을 버리고,
천국의 욕심, 하늘나라 확장의 욕심을 내며 살게 되었다.
▲영원한 영광을 얻기 위해, 세상 영광을 포기하라
주님의 나라는 아름답고 영원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의 아름다움에 너무 현혹되지 않는다.
세상 나라는 어디 가도 특별한 것이 없다.
그의 나라는 너무 광대하다.
우리나라가 크고 지구가 큰 것 같아도, 하늘나라에 비하면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볼 때 세상의 나라는 너무 작다.
그래서 주님을 잘 믿는 사람은, 세상의 것을 기꺼이 포기한다.
모세처럼 포기한다. 별것 아니기 때문이다.
큰 나라의 영원한 영광을 얻기 위하여 땅의 영광,
이 극히 부분적인 것을 버리는 것이다.
▲신부로서의 단장
저도 결혼 한 지 40년 지났지만 저희 집사람은 항상 신부와 같다.
늘 화장하고, 늘 머리 손질하고, 집에서도 저녁에 잘 때도 화장을 한다.
그래서 제가 왜 밤에 화장을 하느냐 하니까
‘당신은 몰라요!’ 하고 저녁에도 세수를 늘 한다.
그렇다. 신부는 늘 긴장하며 산다.
그래서 예수 믿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이 땅을 떠나는 그 날까지 늘 자신을 단장하며 긴장하며 살아야 한다.
‘내가 나이가 이만하니까 그냥 됐다. 이만큼 살았으니까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
교인은 그러지를 못한다. 아무리 잘 살아도 예수님의 신부로서
늘 새벽기도 다니면서 매일 내 심령을 깨끗하게 하고 경건하게 하며,
죄에 물들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신부로서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산다.
죄를 지으면 죄를 가지고는 천국에 못 간다. 그래서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오른손이 범죄 하거든 이 손 자르고 한 손으로 내게 오라고 하셨다.
오른 눈이 범죄 하면 눈 빼고 한 눈으로 내게 오라고 하셨다.
그 정도로 죄를 자르고 살아야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영원히 주의 나라에 살기 위해서
항상 주님을 향하여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살도록 힘써야 한다.
죄의 유혹을 물리치고 떠난다.
그리고 킹덤(하늘 나라)이 이루어지도록 항상 힘쓰는 것이다.
▲시선을 어디에 둘 것인가?
우리 시선을 세상에 두고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너무 급변하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정신을 잃기 쉽다.
저희 고향에 여름에 홍수가 나면
교회에 가도 물을 건너야 되고, 학교에 가도 시내를 네다섯 번 건너야 된다.
그런데 우리 동네 사람들은 아무리 물이 많이 내려가도 잘 건넌다.
물에 빠지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그런데 서울 사람이 오면 늘 개울을 건너다가 물에 빠진다. 왜 그럴까?
물에 빠진 사람들은 한결같이 물을 보면서 건너간다.
그런데 징검다리 옆으로 세차게 흐르는 물줄기를 보면 눈이 빙빙 돌아간다.
항상 방학 때 서울에 있는 친구들이 오면 물에 빠진다.
물을 건널 때는 물을 안 봐야 된다. 멀리 건너편을 보고, 물을 보면 안 된다.
이 세상은 진리가 아니다.
마귀가 다스리는 곳은 하루도 믿을 수 없어서 늘 바뀐다.
늘 신제품이 쏟아져 나오며, 남편도 변하고 아내도 변하며,
세상도 변하고 지식도 다 변한다. 빙글빙글 돈다.
성도 여러분! 늘 주님을 바라보아야 세상을 끝까지 잘 통과할 수 있다.
아무리 사업의 짐을 무겁게 짊어지고 있어도
주님만 바라보고 건너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다.
예수님만 바라보고 저 구름위에 계시는 주님, 높이 계신 주님을 바라보고 살면
모두 다 승리할 줄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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