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남북 왕국의 관계 변천사 대하13:14~16 편집장 글
성경 역대하를 읽으면서, 거기에 나타난 남왕국과 북왕국의 관계 변천 역사를
특별히 주목해서 읽어보았습니다.
저와 제 주변 분들과의 관계로 적용해 보게 되었습니다.
◑ 남북 분열은 하나님의 섭리 <남유다 1대 르호보암 왕
솔로몬의 재위 때 여로보암이라는 심복이 있었다.
그는 솔로몬 왕에게 그의 용맹과 부지런함을 인정받아
요셉 족속의 노동 감독으로 임명 받기도 한, 한 때는 최측근이었다. 왕상11:28
그는 선지자 아히야로부터 열 지파를 취하게 되리라는 예언을 듣는데 왕상11:30
이 일이 알려지자, 솔로몬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으로 피신한다. 왕상11:40
그러다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실정을 거듭하자
이스라엘로 돌아와 10지파를 규합하여 북이스라엘을 건설하게 된다.
그러자 2지파만 차지하게 된 다윗의 정통성을 이어받은 르호보암은
군대를 모아서 일종의 반란군인 여로보암과 북왕국을 진압하려 한다.
이 때 하나님은 예언자 스마야를 통해 말씀하신다.
'너희는 너희 형제인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지 말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라
이 모든 일은 내가 일으킨 것이다.' 대하11:4
다행히도 르호보암과 그의 군대는 이 말씀에 순종했다.
그래서 다윗 왕국은 남과 북왕국으로 분열되어 계속 고착되게 된다.
르호보암이 사는 날 동안에 여로보암과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왕상15:6
▲여로보암을 세우신 이유
①우리 각자는 모두 다윗의 후손이며,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하고, 불순종하면
하나님은 우리 기업을 일부분 빼앗아 가신다. 다 망하지는 않더라도...
②여로보암은 그 후손 대대로 하나님을 배반한 악한 왕이었지만,
하나님은 쉽게 그의 나라를 망하게 하지 않으셨다.
하나님이 북 이스라엘을 세우신 이유는, ‘사람 막대기와 인생채찍’이었다. 삼하7:14
언약 백성인 남 유다를 괴롭게 할 목적, 그래서 항상 정신 차리며 살게 할 목적이었다.
'내가 이로 인하여 다윗의 자손을 괴롭게 할 터이나
영원히 하지는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한지라' 왕상11:39
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나에게 천적을 세우셔서 항상 견제하게 하신다.
◑남북 1차전 - 남왕국 승리 <남유다 2대 아비야 왕
르호보암에 이어 아비야가 남유다의 2대 왕에 올랐다.
그는 군사 40만 명을 모으고, 북쪽을 치러 나갔다.
그러자 북왕국 여로보암은 군사 80만 명을 모으고 대항했다. 대하13:3
아비야의 주장은, 북왕국은 다윗왕국의 정통성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성전이 예루살렘, 남유다에 속했으니, 너희 종교도 정통성이 없다고 했다.
여로보암은 그런 논리에 굴복하지 않고, 먼저 전후방에서 양면으로 공격했다.
그래서 초반 전황은 북왕국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위기에 처한 남유다는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다.
전쟁의 승패는 여호와께서 손들어 주시는 쪽에 달려있었다.
결국 하나님은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군대를 물리쳐 주셨다. 대하13:14~16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항복하고 유다 자손이 이기었으니
이는 저희가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음이라' 대하13:18
▲1차전 남왕국의 승리 이유 : 여호와가 손들어 주시는 쪽이 이긴다.
이것은 순전히 신앙의 승리였다.
위기에 처한 그들은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대하13:14
제사장은 나팔을 불었고, 군인들도 함성을 질렀다. 13:15 (이하 표기 없으면 역대하)
역대기 기자는, 저희가 여호와를 의지하였기 때문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하지만 본의 아니게 형제끼리 다툴 때도 있다.
사람이 다투더라도, 승패는 여호와께서 손들어 주시는데 달려 있다.
그러므로 다투는 중에라도 하나님께 간절히 의지해야 한다.
이 전쟁 후에 여로보암은 특별히 여호와의 치심을 받고 죽었다. 13:20
반면에 아비야는 매우 강해져 갔다. 13:21
◑남북 2차전 - 외세를 힘입어 남왕국이 승리했지만... <남유다 3대 아사 왕
아비야를 뒤이어 아사가 남유다 왕국의 3대 왕으로 계승했다.
아사는 41년 재위 기간동안 평생에 여호와를 잘 섬겼다. 15:17
그런데 재위 36년째 되던 해에, 북왕국의 바아사가 남침해온다.
여기서 아사의 일생에 결정적인 과오가 발생하는데,
그는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더 북쪽 아람왕 벤하닷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래서 아람이 내려오자 뒤쪽이 뚫린 북왕국은 퇴각하게 된다. 16장
아사 왕은 결국 북왕국의 침략은 격퇴하긴 했으나
하나님은 선견자 하나니를 통해 그를 책망하신다.
이제부터 왕은 여러 전쟁에 시달려야 할 것입니다! 16:9
아사는 그 후 발에 병이 났는데도, 여호와를 찾지 않고 의사들만 찾았다.
▲사람을 의지해서 실패한 아사 왕
41년 재위 중, 35년 동안은 선정을 베풀고 전쟁에서도 승리했다.
그러나 36년째,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외세를 의지하면서부터
그의 인생은 급격하게 내리막으로 치달았다.
얼마나 위급했으면, 외세를 의지했을까... 사람은 이해해 줄 수도 있지만
하나님은 엄하게 그를 책망하셨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살다보면 팔 다리가 후들거리는 위태한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그 때 하나님만 의지하고 정면 돌파해야 되는데,
힘 있는 사람을 의지하다 보면... 그 때부터 내리막 인생이 시작된다.
급한 불은 껐지만, 잔불이 계속 일어나면서... 치러야 할 대가는 혹독하게 된다.
◑남북 연합으로 화를 부르다 <남유다 4대 여호사밧 왕
다윗 왕조의 3대 선왕을 꼽으라면 대부분 다윗, 여호사밧, 히스기야를 꼽는다.
여호사밧은 그 정도로 뛰어난 왕이다.
지면 관계상 이 글에서 훌륭한 왕들의 놀라운 치적을 언급하지 못하고,
그들의 실수만 꼬집는 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천국에서 용서 바랍니다.)
여호사밧 가문은 정략적으로 북왕국의 패역한 아합 가문과 결혼한다.18:1
그는 북왕국 수도 사마리아를 방문하고, 아합 왕과 친분을 맺는다.
그는 아합 왕과 남북 연합군을 조직하여 인근 변방 국을 치러 나간다.
이 전쟁에서 아합은 목숨을 잃지만, 여호사밧은 무사히 남쪽으로 돌아온다.
그 때 선견자 예후가 나타나 그를 책망한다.
왕은 어찌하여 악한 백성을 도와 주셨습니까?
어찌하여 여호와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사랑하십니까?
그러나 왕은 좋은 일도 하셨습니다.... 19:2~3
▲여호사밧의 최대 실수 : 아달랴를 며느리로 맞다
여호사밧은 모든 사람을 좋게만 보는 호인이었던 모양이다.
그의 치적은 성경에 여러 장에 걸쳐 길고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런 그의 최대 실수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랴를 며느리 삼은 것이었다.
아달랴를 자기 아들 여호람과 결혼시킨다. 18:1
북이스라엘이 이세벨 때문에 망했다면,
남유다는 이세벨의 딸 아달랴 때문에 망하게 된다.
나중에 아달랴는 다윗 가문 왕자들을 싹쓸이하고, 자기가 나라를 다스린다.
남 왕국 유다는 아달랴 이전까지는 대체로 괜찮았다.
그러나 아달랴 출현 이후로 북이스라엘처럼 급격하게 쇠락하게 된다.
간신히 다윗의 혈통은 지켜내었고, 간간이 선왕들이 나왔지만 말이다.
▲친구를 잘 사귀어야 한다.
굉장히 훌륭한 왕, 우리가 따라가지 힘들 정도의 신앙인 여호사밧 왕의
최대 실수는 친구(아합)를 잘못 사귄 것이었다.
특히 아달랴를 들인 그의 실수는 남유다 왕국에 대대로 고통을 주게 되는데...
(그러나 이런 것을 며느리 핍박의 원인으로 삼으면 안 됨)
◑ 남북관계는 평안했으나 북에 물들다 <남유다 5대 여호람 왕
여호람은 32세에 왕에 올랐다.
그의 실정은 동생 왕자들을 모두 살해한 것이다. 최초의 ‘왕자의 난’이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지도자들도 죽였다.
역대기 기자는, 그의 이런 만행 이유를 아달랴와의 결혼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저가 이스라엘 왕들의 길로 행하여 아합의 집과 같이 하였으니
이는 아합의 딸이 그 아내가 되었음이라 21:6
이때 북쪽에서 활동하던 선지자 엘리야는 편지를 보내 왕을 책망한다.
여호람아, 너는 조상 아사, 여호사밧처럼 살지 않는구나.
너는 북왕국의 아합처럼 사는구나!
너는 너보다 나은 네 형제들을 죽였다.
너는 창자가 빠져나와 죽을 것이다. 21:12~15
▲아달랴의 통치가 시작되다
실제로 아달랴는 남왕국의 7대 통치자이다.
그러나 5대 여호람 왕의 왕비가 된 이후부터 그의 실질적 통치가 시작된다.
여호람이 자기 동생들을 다 죽인 것을 아달랴가 조정했다는 성경기록은 없지만
선대에 한 번도 그런 일이 없었는데, 아달랴의 영입부터 시작된 것은 과연 우연일까?
태초부터 사탄의 목표는 여자의 후손, 곧 다윗의 후손을 박멸하는 것이었다.
그런 사명을 띠고, 아달랴는 정말 들어가기 어려운 가장 핵심부인
다윗 왕조의 왕비로 들어가는 것에 성공했다.
‘멸망의 가증한 것은 언제나 서지 못할 곳을 공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의 대결은 모든 역사에 항상 계속된다.
사탄의 나라는 항상 하나님의 나라의 최고 핵심부를 공략해서 무너뜨리려 한다...
자기가 하나님 나라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분일수록 자신과 측근을 조심해야 한다.
이런 여호람의 만행은 다행히 오래가지 못하고, 재위 8년 만에 막을 내린다...
◑어이없게 악인 아합과 함께 벌 받다 <남유다 6대 아하시야 왕
여호람이 자기 동생들을 다 죽인 죄의 벌을 그대로 되받았기 때문일까?
여호람의 자녀들이 도적 떼(아마 비정규군)에게 거의 몰살당한다. 21:17
그래서 가장 막내아들만 남기고, 여호람은 40세에 일찍 죽었다. 22:1
그래서 22세에 등극한 아하시야는 단 1년 밖에 다스리지 못했다. 22:2
난데없이, 예후의 칼날에 죽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하시야의 어머니는 아달랴다.
그는 어머니의 부추김을 받고 악한 일을 행했다. 22:3
또한 북왕국 아합 집안사람(외가)들이 나쁜 충고를 해 주었다. 22:4~5
어이없게도 아하시야는 아합 가문이 망할 때 덩달아 죽는다.
하나님은 예후 장군을 세우셔서 아합 가문을 심판하는 도구로 삼으셨다.
그 때 아합 가문의 사돈이요, 이세벨의 외손자인 아하시야도 같이 심판받는다.
22:8
▲북왕국에서 여로보암 왕조의 끼친 해악과 막상막하로
오므리 왕조가 각종 우상숭배로 해악을 끼치는데,
그 왕조의 핵심은 이세벨이고, 그녀는 남편 아합 왕을 갖고 놀았다.
그들 부부는 남유다에 딸 아달랴를 시집보내서 유다 황실에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악영향을 미친다.
이에 하나님은 참고 보시다가 노하셔서, 무자비한 예후 장군을 세우신다.
선지자 엘리사를 통해 예후는, 아합 가문을 멸절시키는 사명을 받게 된다. 왕하9:7
그런데 예후가 무자비하게 북왕국 아합 자손의 씨를 진멸하는데,
어이없게도 남왕국 아하시야 왕까지 당하게 된다.
그렇다. 악인과 손잡고 악인의 길로 가면, 악인이 망할 때 덩달아 망한다.
하나님의 언약 자손인 다윗 혈통이, 우상숭배자들과 함께 덩달아 도매금으로 망한 것은
정말 어이없는 일이다. 얼마나 자기 정체성을 상실했으면...
◑어두움이 잠깐 승리할 때도 있다 <남유다 7대 통치자 아달랴
5대왕 여호람의 왕비요, 6대왕 아하시야의 모친인 (이세벨의 딸) 아달랴는
아들 아하시야가 통치 1년 만에 ‘예후의 난’에 의해 죽자
드디어 남유다 다윗 왕가를 자기가 접수하려고 한다.
영적으로 보면, ‘사탄의 나라’가 ‘하나님 나라’를 박멸시키려는 책동이었다.
아달랴는 갑자기 유다 다윗 가문을 모조리 죽이기 시작했다. 22:10(이하 역대하)
왕손을 없앰으로써, 자신이 유다의 통치자가 되려는 속셈이다.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서는 것’이다. 그래서 잠시 서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패하는 법이 없다. 패하는 듯하지만 계속된다.
비록 아달랴가 모든 왕손을 죽이고 6년간 유다의 통치자로 스스로 다스리며
남유다를 ‘바알과 아세라 우상숭배’로 타락시켰지만,
이런 와중에 기적적으로 아하시야의 누이가 왕자 아기 요아스를 숨긴다. 22:11
다윗의 후손이 완전히 멸절될 뻔하다가 단 한 명이 겨우 살아남은 것이다.
요아스는 육년 동안 하나님의 성전에 숨어서 키워지고
그 동안은 아달랴가 나라를 다스린다.
▲마귀도 자기 때가 있다
역사는 창세기 이후로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즉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가 계속 서로 충돌하며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때때로 ‘사탄의 나라’ 곧 흑암의 권세가 승리할 때도 있다. 단, 잠깐이다.
예수님도 십자가에 못 박히신 때가 있었고,
세상 마지막 때도 ‘사탄이 잠깐 놓이는 때’가 있다. (‘대환란’, ‘후3년반’ 이라 한다)
그러나 그 어두움의 나라는 영원하지 않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 빛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영원한 승리이다.
그러므로 잠깐 패하는 일이 있어도, 결코 낙심하면 안 된다. 최후승리는 우리 것이다.
◑뿌리는 여전히 살아서 움직인다. <남유다 8대 요아스 왕
아달랴의 통치 7년째, 드디어 어두움의 세력이 망하게 된다.
대제사장 여호야다(성경에 보기 드물게 나오는 선한 대제사장, 대제사장은 보통
미지근)는 백부장들과 손잡고 7살 된 요아스를 성전에서 왕으로 등극시킨다.
그들은 아달랴를 죽이고, 바알 신전을 허물고, 바알의 제사장들을 죽인다.
아달랴자 죽은 이후로 예루살렘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23:21
요아스는 7세에 왕이 되었고, 그 어미는 시비아였다. 23:1
(여담으로, 구약성경에 ‘그 모친은 누구더라’이런 말씀이 자주 나온다.
그만큼 엄마의 가정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요아스가 처음 한 일은, 아달랴 때에 황폐해진 여호와의 성전을 24:7
다시 수리, 보수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자원해서 헌금함에 돈을 넣었고,
인부들도 기쁜 마음으로 성전을 보수했다. 24:13
▲그런데 선한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죽은 후에
요아스가 변질되기 시작했다.
잘못된 조언에 빠져서 도리어 우상숭배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24:18
그러자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서 요아스를 책망하셨다. 24:19
그리나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까지, 저들은 돌을 던져 죽였다. 24:21
이에 하나님의 심판이 아람의 침공을 통해 나타났다.
이때부터 요아스는 고난을 당하다가 결국은 신하들에 의해 살해된다.
그것은 특별히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를 죽인데 대한 벌이었다. 24:25
▲아달랴가 죽긴 했는데...
4대 여호사밧 왕부터 시작된 북이스라엘과의 혼인관계는
7대 아달랴가 권세를 잡으면서 최고조에 달하다가
8대 요아스에 의해 완전히 차단된다.
그러나 아달랴가 죽었다고 우상숭배가 끝난 것은 아니었다.
비록 악녀는 죽었지만, 그의 제자, 그의 선지자들이 계속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들은 남유다에 바알과 아세라 신앙을 전파하며, 요아스 왕까지 타락시킨다. 24:18
이 시기에 남북관계는 결별이었다. 북왕국에도 아합 가문이 예후에 의해 진멸되었다.
그런데 아달랴에게 포섭되고 길러진 ‘제자?’들이 여전히 남유다에 활동했다.
여전히 다윗 황실에 접근해서 그들을 물들이는데 성공한다...
신앙인은 일생 우상숭배와 싸워야 한다.
오늘날 바알과 아세라 형태의 우상은 없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살아남아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유혹한다.
요아스가 성전을 수복하고도, 이렇게 말년에 당한 것을 보면, 대적은 보통내기가 아니다.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한 번 침입하면, 그것을 찾아내서 죽이기란 쉽지 않다.
우상숭배는 이것과 같다. 죽이면 잠복하다가도 때가 되면 항상 다시 올라온다.
◑남북간 3차전 - 남왕국이 우상숭배로 패하다 <9대 아마샤 왕
아마샤는 왕이 된 후, 군비를 강화하고 30만 군대를 양성했다.
그리고 북왕국에 돈을 주고, 북왕국 군인 10만 명을 용병으로 사서 세웠다.
이 일에, 어떤 선지자가 책망했다.
하나님이 그들 북왕국 용병과 같이 하지 않으신다고 했다.
다행히 아마샤는 그 조언을 수용했고, 북왕국 용병들을 돌려보냈다.
그들은 크게 화를 내며 돌아갔다. 25:10
그들은 북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다의 마을들에서 노략질을 했다.
이런 일을 계기로 남과 북이 서로 전쟁을 치르게 된다. 25:17
횟수로 치면 3번째였다.
그동안 남유다는 북왕국 아합 가문과 결혼을 통해 서로 전쟁은 면했다.
그러나 이제 북왕국은 ‘예후의 난’으로 아합 가문이 진멸되고
새로운 왕조가 출현했고,
남북 황실의 친인척 관계는 사라졌고, 그 결과 전운이 다시 감돌았다.
(그런데 남북 황실의 정략결혼으로 통해 남왕국이 얻은 것은
‘남북간 평화’였다고 말할지 모르나,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더 컸다.
아달랴를 통해 수입된 바알과 아세라 숭배는 후에 남유다 멸망의 단초를 제공했다.)
결국 전쟁은 터졌고, 결과는 남왕국 아마샤의 패배, 북왕국의 승리였다.
▲역대기 기자는, 남유다의 패인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앞서 남유다 9대왕 아마샤는 에돔을 정벌한 적이 있었다.
그는 전리품 중에서 에돔 사람들이 섬기던 우상들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 우상들에게 절하면서 제물도 바쳤다. 25:14
남북간 전쟁에서 패한 것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고 했다. 25:20
즉, 남유다의 우상숭배로 인해, 하나님은 남유다를 패하게 하신 것이다.
북왕국의 승리는 그들의 의로움 때문이 결코 아니었다.
남왕국의 우상숭배로 인해 북왕국에게 승리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북왕국은 남왕국의 수도 예루살렘까지 진격해 들어왔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전도 훼파되었다. 25:24
아마샤도 포로로 잡혔다가, 나중에는 남쪽의 민란에 의해 희생된다.
언약 백성이 우상숭배하면 다 망하고, 교회도 다 파괴된다!
▲우상숭배하면 전쟁에 패한다.
모두를 사랑하시지만, 하나님의 관심은 다윗왕국, 남왕국에 있었다.
언약의 흐름은 남왕국에 있었다.
사실 악함의 정도로 따지면, 북왕국이 더했다.
여로보암 왕조, 오므리(아합) 왕조, 개혁자?로 나섰던 예후 왕조도 악을 더했다.
그런데도 남북간 전쟁에서 (악한) 북왕국이 이긴 것은 매우 이채롭다.
그러니까 북왕국은 언약의 자손 남왕국에 대한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이었다.
남왕국 아마샤의 군대가 패한 것은, 북왕국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남왕국의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25:20
성도가 未신자(아직 신자 아닌, 불신자)에게 망신당하는 일이 생기는 것은,
未신자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라,
신자의 우상숭배 때문이다.
하나님은 신자를 다루시기 위해, 未신자를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으로 쓰신다.
◑남유다에 우상숭배가 없으니 남북관계가 평안했다 <10대 웃시야 왕
웃시아 왕의 특징은 한 마디로 ‘강해지면서 교만해 진 왕’이다. 26:16
그리고 그 강함으로 인한 교만 때문에 망했다.
그는 여호와의 성전에 직접 들어가서 함부로 향을 피웠다.
이에 제사장 80명이 왕을 말렸다.
그러나 그 말을 듣지 않고 도리어 성전에서 화를 낼 때, 즉시 문둥병에 걸렸다.
하나님의 징계였다.
▲우상숭배가 없으니 남북간이 평안했다.
웃시야의 재임기간 중에 남북관계에 대한 언급은 역대기에 없다.
웃시야는 37만으로 구성된 군대를 양성했고, 그 군대는 강했다. 26:13
웃시야가 우상숭배를 했다는 기록은 역대하에 없다.
그러므로 북왕국은 남쪽을 건드리지 않았다.
다만 웃시야는 우상숭배는 안 했지만, 개인적으로 실수했다.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드릴 수 없는 분향을 제 맘대로 드리다가
문둥병에 걸려서 남은 일생 별궁에서 ‘별당임금’으로 지냈다.
(열왕기하 15장에는 ‘아사랴’왕이란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평안한 날이 지속되다 <남유다 11대 요담 왕
요담은 부친 웃시야처럼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만 행했다. 27:2
그리고 아버지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했다. 27:2
그래서 그의 재위 16년 동안 나라는 태평했고,
남북관계도 아버지 때처럼 아무 일 없었다.
남유다에 우상숭배가 없으니 점점 강해지고, 북왕국도 잠잠했다.
◑남북간 4차전에도 대패, 주변국간 전쟁에서도 대패 <남유다 12대 아하스 왕
사람들은 평안하면 또 곁길로 가게 마련인가보다!
웃시야 52년, 요담 16년에 걸쳐 큰 전쟁 없이 평안을 만끽하던 남왕국은
아하스 왕에 이르러 다시 바알우상숭배를 재개한다. 28:2
①그 결과 외적의 침입을 받게 되는데, 먼저 아람이 쳐들어온다.
남유다는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 다메섹으로 끌려간다. 28:5
②또한 북이스라엘 왕 베가가 쳐들어와서 또 패한다.
이는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음이라
베가가 유다에서 하루 동안에 용사 12만 명을 죽였으며... 28:6
거기에다 20만 명의 부녀자들을 북왕국으로 포로로 잡아간다. 28:8
▲북왕국 선지자 오뎃의 책망 28:9~11
이렇게 포로로 잡아서 오던 이스라엘 군대를 향하여 오뎃이 예언한다.
여러분이 남유다를 이긴 것은 여러분의 의로움 때문이 아니요,
그들의 우상숭배로 인해 남유다에게 하나님이 노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족을 노예로 잡아서 끌고 온 것은 너무 심합니다.
이제 하나님이 도리어 여러분께 벌을 내리실까 합니다.(너무 심하게 동족 유린)
북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선지자 오뎃의 의견에 동의했다.
그리고 20만 명의 포로들을 즉시 되돌려 보냈다.
▲그러나 침략은 그 뒤로도 계속되었다.
③동쪽에서는 에돔이 침략했다. 그들도 남유다 인들을 포로로 잡아갔다.
④서쪽에서는 블레셋이 쳐들어왔다. 그들은 점령하고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기진맥진한 아하스는 신흥강국 앗시리아 왕에게 도움을 청했다.
⑤그런데 더 큰 괴로움은 앗시리아로부터 왔다.
그들은 도와준다는 핑계로, 남유다를 더욱 괴롭혔다. 28:20
▲이렇게 된 것은 → 아하스는 괴로움을 당할수록 더욱 범죄 했다. 28:22
그는 아람이 강한 것은 그들의 신들 때문이라고 보고, 아람 신들을 섬겼다.
그리고 여호와의 성전 문을 아예 잠가버렸다.
유다의 마을마다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산당을 만들었다.
그가 다스린 16년은, 다윗 왕부터 자기까지 14대 동안 최악이었다.
여로보암이 북왕국 우상숭배의 원흉이라면, 남왕국은 아하스였다.
▲고난이 오면 빨리 회개해야 되는데...
아하스 재위 시절부터 남유다는 몰락의 시대를 시작한다.
남북관계에서도 대패했을 뿐만 아니라
동, 서, 북쪽의 주변국간의 전쟁에서도 대패했다.
예수 믿는 사람도 고난을 당하고 대패할 때가 있다.
그러면 빨리 회개하고 여호와께로 다시 돌아와야 되는데,
도리어 ‘우상을 안 섬기니까 신이 노해서 그러나보다... ’해서 우상을 찾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망한 대표적 사람이 바로 아하스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했다. 최강대국을 이기다. <남유다 13대 히스기야 왕
역사는, 경제의 경기순환처럼, 오르락내리락 하는 면이 있다.
잘 되다가 못 되다가, 상승하다가 하락하다가, 엎치락뒤치락 한다.
아하스 시절에 초토화되었던 남유다는, 아들 히스기야 때 다시 회복을 맛보는데,
25세에 왕이 된 히스기야가 제일 처음 한 일은 성전청결이었다. 29:5
히스기야는 왜 남유다가 父왕 때 왜 그렇게 망했는지 정확히 알았다.
바로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적국에 패하고, 포로로 잡혀가기까지 한 것은 모두 우상숭배 때문이었다고
그는 정확하게 지적했다. 29:6~9
▲히스기야의 종교적 화해 제스처gesture
그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을 성결케 하고, 성전을 청소하고, 제사를 회복했다.
그는 북왕국에도 전갈을 보내 유월절 절기에 초대했다. 30:1
히스기야는 편지를 써서 남북이 신흥강국 앗시리아에 고난을 당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이유는 하나님께 배반했기 때문이라며
여호와께로 돌아와 같이 유월절을 지키자고 편지를 써서
남북의 전국을 돌며 낭독하게 했다. 30:6~9
그러나 북왕국 사람들은 이것을 조롱하고 비웃었다. 30:10
그러나 그 북왕국 중에 일부 사람들이 히스기야에 동조하고 돌아왔다. 30:11
그래서 율법에 명한 유월절이 다시 남북연합으로 회복되게 된다.
일부 북왕국 사람들까지 가세된 유월절 절기의 회복이 있은 후 30:18
유다에서는 전국적으로 ‘우상청결운동’이 벌어진다. 31:1
▲앗시리아를 물리친 히스기야
이 시기에 신흥강국 앗시리아의 산헤립이 남유다로 쳐들어온다.
히스기야의 청결운동을 비웃던 북왕국 사람들은
이 시기에(히스기야 재위 5년 경) 앗시리아에 망한 것으로 보인다. B.C.722
앗시리아는 세속 역사에도 매우 유명한 나라이다.
부조 등 고고학적 자료에 보면, 그 잔혹함은 고대역사에 제일 유명하다.
그래서 그들은 북이스라엘을 (아마 갈고리에 코를 꿰어) 포로로 잡아갔다.
북왕국을 먼저 초토화시킨 초강국 앗수르,
전차와 투석기 등 각종 신무기로 무장한 앗수르가
이제 남왕국을 침략하자, 약소국 남왕국의 운명은 바람 앞에 등불이었다.
여기서 유명한 히스기야의 연설이 나온다.
저와 함께하는 자는 육신의 팔이요, 우리와 함께하는 자는 우리 하나님 여호와시라
반드시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리라 32:8
앗수르 왕 산헤립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어느 나라의 어느 신이 자기 백성을 앗수르에서 구해내었느냐?
유다 나라, 여호와라고 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이렇게 그는 여호와와 그의 종 히스기야를 비방했다. 32:16
히스기야는 이사야 선지자로 더불어 하나님께 기도드렸다.
드디어 때가 되자 하나님이 한 천사를 앗시리아 군대의 진에 보내셨다.
여러 명도 아니고, ‘단 한 명’이었다. 32:21
그러자 앗시리아의 군대가 전멸했다.
산헤립은 겨우 목숨을 건져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가 아들들에게 살해되었다.
이것은 실로 놀라운 사건이었다.
최약소국 중 하나인 남유다 왕국이, 최강대국을 이긴 ‘기적, 이변, 파란’이었다.
그러자 많은 주변국들이 좋아서 여호와께 바칠 예물을 가져 왔다.
그리고 히스기야를 크게 존경했다. 32:23
◑마치는 말
히스기야 이후에도 므낫세, 아몬,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긴, 시드기야
등의 왕이 있지만, 히스기야 왕까지만 살펴보았다.
이 글은 이스라엘의 <남북관계>를 주로 살폈기 때문에,
히스기야 재위 초기(재위 5년경)에 북왕국이 앗시리아에 멸망해 버리므로,
남북관계는 거기서 끝나기 때문에, 히스기야 까지만 살폈다.
①북왕국은 ‘사람막대기와 인생채찍’이다.
하나님은 언약 백성 남왕국에 깊은 관심을 갖고 계시고,
나중에 그들은 신약에 예수님의 조상이 된다.
그런데 언약 백성들이 혹시 잘못해서 망할까봐
하나님은 북왕국의 존재를 허락하시고 그들을 ‘막대기’로 삼으셨다.
우리 어릴 때, 학교 선생님은 큰 매를 칠판 옆에 걸어 놓으셨다.
‘잘못하면 이 매로 맞는다!’는 경고용이었다.
살아있는 물고기를 차로 운반할 때, 메기 같은 것을 같이 풀어놓는다고 한다.
메기가 다른 물고기를 공격하는 동안, 그 물고기들은 피해 다니느라 정신없다.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물고기들이 싱싱하게 유지된다고 한다...
②우상숭배가 관건이다.
언약 백성 남왕국 유다가 북왕국에 침략을 당하고
심지어는 주변 민족들에게 침략당한 것은
<예외 없이>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우상숭배가 없었을 때, 그들은 태평하고, 도리어 주변국들을 이겼다.
그러나 우상숭배가 있었을 때, 무슨 무기나 군사력이 그들을 지켜준 것은 아니었다.
오늘 우리도 우상숭배가 무엇인지 낱낱이 밝히고, 폭로해 나가야 한다. 그래야 산다.
③날뛰는 마귀가 분명히 있다.
남유다 역사 속에 마귀는 ‘아달랴’였다.
아달랴 이전까지, 그러니까 4대 여호사밧 왕까지 그런대로 나라가 괜찮았다.
그러나 아달랴 이후부터, 유다는 엎치락뒤치락 계속했다.
그달랴는 죽어도, 그 잔재가 간첩처럼 계속 남아서 활동하면서,
남유다를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숭배=패망으로 몰고 갔다.
이 싸움은 재림의 날까지 계속된다.
특히 이들은 유다 왕가(하나님 나라 핵심부)까지 침투한 것은 정말 경계가 필요하다.
④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바람 앞에 등불’같은 비참하고도 위태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이 때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고, 남쪽으로 애굽에, 북쪽으로 앗시리아에
사람을 의지하며 도움을 청했다가, 남은 인생 망조가 드는 경우가 있다.
사실 믿음이 약해지면, 자꾸 사람을 의지하게 되는데...
그 때 하나님은 은총을 거두신다.
3대 아사, 12대 아하스 왕 등이 사람을 의지했다가 완전히 쫄딱 망했다.
⑤신앙회복이 승리의 비결이다.
남유다는 북왕국의 침략 말고도, 더 북쪽 앗시리아와 바벨론 강대국의 침략에
직면해야 했다.
히스기야의 승리는 정말 ‘전쟁이 여호와께 속했다’는 것을 크게 시사해 준다.
오늘 우리 개개인이, 개교회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이 민족이 사는 길이요, 4강대국 틈에 끼여 있는 우리 민족이 살 길이다.
⑥히스기야 때 남북의 종교적 화해가 있었다.
히스기야는 유월절 절기 회복에 북쪽 사람들을 초청했고,
비록 모두는 아니었지만, 일부 북쪽 사람들이 남으로 와서 유월절에 동참했다.
남북의 화해는 여호사밧 때 잘못했다가 큰 화를 입었다.
북왕국의 아달랴를 통한 바알과 아세라를 무방비로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히스기야 때는 통일 다윗 왕국의 회복으로 나아갔다.
남쪽 신앙이 튼튼하고 부흥할 때, 남북 종교인의 화해는 결실이 있었다.
⑦북왕국에 안 망하고, 주변강국에 망했다
이스라엘 역사로 보면, 남왕국과 북왕국의 통일은 자주적으로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들은 각각 앗시리아와 바벨론에 망한 후에
나중에 포로에서 돌아와 통일왕국을 이루게 된다.
남유다왕국은 북왕국과 전쟁에서 3, 4차전(아마샤, 아하스 왕)에 비록 패하기는 했으나
그 이유가 군사력 때문이 아니었다.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그런데 남유다가 결정적으로 망한 것은 북왕국에 의해서가 아니라,
주변강국(바벨론)에 의해서였다.
그 이유는 군사력 때문이 아니라, 우상숭배 때문이었다.
영적으로 보면, 땅 끝까지 여호와 신앙을 전파하고 복음을 전해야 될 사명을 가진
남유다 왕국이, 그 사명을 망각하고 도리어 우상 숭배에 취해 나자빠져 있으니까
하나님은 전혀 새로운 방식의 선교를 기획하셨다.
‘바벨론 포로’에 의해서... 타의적으로
남유다가 히스기야 때처럼, 여호와 신앙을 회복해서
주변 강국을 물리치고,
여호와의 이름을 높이면서 자발적으로 선교했으면 더 좋았을 터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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