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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처녀의 비유

LNCK 2019. 12. 26. 14:41

열 처녀의 비유                25:3-4                      

 

미련한 처녀들은 등잔은 가지고 있었으나

기름은 준비하지 않았다.

한편 슬기로운 처녀들은 등잔과 함께

기름도 그릇에 담아 가지고 있었다. (25:3-4)

 

교회를 다닌다고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닌가 보다...

어리석은 다섯 처녀는 등잔(신앙,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신랑을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결국은 잔치자리(천국)에 들어가지 못했다.

 

1. 준비하는 신앙

 

지난 주 저는 자전거 여행을 했다. 강화에서 부산까지.

어떤 분들은 제게 무모한 짓을 왜 했냐고 하시지만, 제가 과연 무모했을까?

      

만약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부산으로 출발했다면 분명히 저는 무모했다.

하지만 저는 그렇게 무모하지 않았다.

      

사실 이 자전거 여행을 위해서 한 달 이상 준비했다.

매일 30Km 이상씩 자전거를 타면서 체력을 키웠고,

장거리 자전거 여행을 위해 부품도 많이 교체하고, 간단한 정비도 배웠다.

더군다나 각 지방의 세부지도까지 복사해서 준비를 했었다.

 

이렇게 준비했는데 제가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일까? 아니다.

나름대로 철저히 준비했기 때문에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아픈 데 없이 잘 다녀올 수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 나라에 갈 준비로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자전거로 부산까지 가는 데는 무모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는데,

정작 우리들의 최종 목적지라고 말할 수 있는 하나님 나라로 가기 위해서는

과연 어떠한 준비를 하고 있을까?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하루하루를 대충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너무나 무모한 것은 아닐까?

(예수를 아는데 치우친 이신득의 신앙은 무모할 수 있다.)

 

그러면 과연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2. 등불을 준비하는 신앙

 

슬기로운 처녀는 빛이 있었다.

꺼지지 않은 등불, 살아있는 등불은 반드시 빛을 비춘다.

오늘 내가 어두운 세상을 비추는 한 줄기 빛이라면, 등불을 준비한 것이요,

오늘 내가 어두운 세상에 아무런 기여, 봉사를 하지 않고 있다면...

나의 등불은 꺼진 것이다. 그래서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것이다.

 

빛과 소금의 사명에서 면제되는 성도는 아무도 없다.

오늘 하루를 사는 성도의 목적은

어두운 세상에서 작은 빛(사랑의 실천)이 되는 것이다.

 

탄광촌에 한 소년이 살고 있었다.

이 소년은 친구들과 놀다가 우연히 아름다운 빛을 내는 보석 하나를 주웠다.

날이 저물어 탄광에서 아버지가 돌아오자 소년은 자랑스럽게 보석을 내밀었다.

 

아빠, 이것 보세요. 예쁘죠? 놀다가 주웠어요.

난 이런 보석 같은 사람이 될 거예요.

늘 이렇게 반짝이는 보석 같은 사람 말이에요!”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한참 동안 소년을 가만히 바라보시더니

창가에 걸려 있는 등불 쪽으로 걸어가 성냥으로 등불을 밝혔다.

어두웠던 방이 금방 환해졌다.

그리고 아버지는 소년에게 등불을 보여주며 말씀하셨습니다.

 

얘야, 보석 같은 사람보다 이런 등불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소년은, 바람만 강하게 불면 훅 꺼져 버리는 보잘것없는 등불 같은 사람이

되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들아, 보석은 태양 아래서만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낼 수 있단다.

태양의 힘을 빌려 빛을 내는 건 참된 빛이 아니야.

너는 이 등불처럼 세상이 어두울 때

제 몸을 태워 세상과 사람들의 가슴을 환하게 밝혀 주는 사람이 되어라!”

 

그렇다. 보석이 훨씬 아름답고 가치가 있을 것 같지만,

어쩌면 더 소중한 존재는, 깜깜한 어둠 속에서 자신의 몸을 태워

모든 것을 환하게 밝혀 주는 등불이 아닐까?

 

그런데 우리들은 등불보다는

자신만을 뽐내려고 노력하는 보석과 같은 삶만을 원했던 것 같다.

 

타오르는 등불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등불을 예비하고 있었다.

그들의 등잔에는 기름이 있었기에, 꺼지지 않고 타오르고 있었다.

 

오늘 뭔가 타오르는 것이 있어야 한다.

내 마음속에 무엇이 타오르는가?

 

사명이 타오르고, 헌신이 타오르고, 영적전투의 긴장감과 결의가 타올라야 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들은 신앙생활은 했지만(신랑은 기다렸지만)

깨어있지 못 하고,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그래서 우리가 자동차에 기름을 넣듯이, 등불에 기름을 항상채워야 한다.

사람들은 빠르면 3~4, 늦어도 1주일이면 자동차에 기름을 다시 채운다.

우리는 매일 말씀과 기도로... 성령의 기름을 재충전해야 한다.

그래서 내 등불이 꺼지지 않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신득의’(믿음으로 구원받음) 신학이 너무 강해서

이런 열 처녀의 비유가 성도들 머리 속에 들어설 입지가 너무 좁은 것이 문제다.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슬기 있는 자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 하니25:8~9

 

기름은 나누어 줄 수 없다.

타인의 공로가 내 것이 될 수 없다.

내 부모가 훌륭한 신앙인이었다고, 내가 거기에 편승해서 천국갈 수는 없다.

 

내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교회에 다닌다고,

가장 훌륭한 주의 종이나 부모 아래서 신앙 생활한다고,

그것 때문에 내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남의 등불 활활 잘 타오르는 것 보고 흐뭇해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교회에는 지혜로운 5처녀와 미련한 5처녀가 섞여 있는데,

지혜로운 5처녀 때문에 전체는 잘 굴러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같이 맷돌 갈다가도,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바로 옆에 있는 한 사람은 버려짐을 당할 것이다. 24:41

 

 

3. 깨어있는 신앙

 

예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씀하시고 세상을 떠나신 지

수많은 시간이 흘렀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재림은 지척에 있는 사건으로 믿었고,

개중에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재림이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재림이 지체되면서... 기다림의 열망은 지치고, 식어가기 시작하였다.

 

기회를 놓치지 말라

어리석은 처녀들이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와 버렸다.

야속하기 이를 데 없다. 왜 하필이면 그 순간에 오실 것은 무엇인가?

 

허나 인생은 그런 것이다. 인생의 중요한 때와 기회를 놓치고 나면

다시 얻기란 힘든 것이다.

그러니까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늘 깨어있어야 한다.

 

쉴 때는 쉬어야 한다.

재미있는 일은 오늘 복음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신랑을 기다리다가

슬기로운 다섯이나 미련한 다섯이나 모두 지쳐서 졸다가 잠들어 버렸다

사실이다.(5) 얼마나 솔직한 표현인가?

 

그렇다. 졸음이 밀려올 때는 쉬어야 한다.

고속도로에서 운전하다 졸음이 밀려오면, 휴게소에서 잠시 눈을 붙여야 한다.

그러나 등불은 꺼뜨리지 않았다.

기름은 바닥나지 않고, 다시 운전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깨어 있으라는 말씀(13)이 쉼도 없이 뜬 눈으로 밤낮 긴장하여 살라는 말은

아니다. 주어진 하루에 예수님의 복음을 따라 최선을 다하여 살고,

하루의 마지막 시간에 평온한 휴식의 잠을 청할 수 있다.

 

그러나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쉴 때 쉬더라도, 마음은 항상 깨어있었다.

그러다가 기회가 왔을 때, 그것을 반드시 놓치지 않았다.

 

변화의 가능성에 능동적 대처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이 모범적인 처녀들로 인정받는 이유가 있다면

그것은 신랑이 늦게 도착할 가능성을 미리 염두에 두고 대비했다는 데 있다.

 

지혜로운 처녀의 모습은 농부와 같다. 농부는 계절을 고치는 자가 아니다.

다만 계절의 변화를 알고 받아 들여서 그를 따라 농사를 짓는다.

봄에는 밭을 갈고, 여름에는 김을 매고, 가을에는 추수하며, 겨울에는 쉰다.

그것을 거스리지 않고, 자기를 계절에 맞출 줄 안다.

 

우리가 봄에 계획하고 기다리던 일이 봄에 안 되고,

여름에 될 수도 있고, 가을이나 겨울에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슬기로운 사람은 어떤 처지에 이르러도

거기에 맞추어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는 사람이다.

 

조수석도 같이 깨어 있어야 안전하다.

승용차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승합차는 여러 사람이 타고 가기 때문에

운전수 옆에 앉은 조수석 탑승자도 같이 깨어있어야 안전하다.

 

운전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영적 지도자는 가끔씩 깊은 밤이나, 아주 이른 새벽에

캄캄한 밤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볼 수 있어야 한다.

 

촛불을 가져오시오!

1780519, 그날에 미국의 뉴잉글랜드 지역에는 온 하늘과 공중이

전연 해석할 수 없는 암흑으로 뒤덮혔다.

 

이에 대하여 매사추세츠 주의 한 목격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아침에 해가 떠오를 때에는 맑고 선명하였으나 잠시 후 하늘은 어두워졌다.

구름이 점점 낮아지더니 험악해졌고 이어서 번개, 뇌성이 들렸고 비도 약간 내렸다.

오전 아홉 시 경이 되자 구름은 엷어졌으나 온 하늘이 구릿빛처럼 붉어졌는데,

그 이상한 빛 때문에 땅, 나무들, 건물들, 사람의 모양이 완전히 변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잠깐 후에 새까만 구름이 온 하늘을 덮어 버렸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여름철의 저녁 아홉 시 만큼의 어두움이 되어 버렸다.

 

두려움과 염려와 무서운 생각이 차츰 사람들의 마음을 엄습하였다.

부인들은 문간에 서서 어두운 풍경을 주목하여 보았다.

농부들은 밭에서 돌아오고, 목수와 대장장이는 일손을 멈추고,

장사꾼들은 점포를 걷어치웠다. 학교들은 수업을 중단하여 하교하였다.

행인들은 가까운 농가로 피하여 들어갔다. ‘대관절 어찌된 일인가?’

모든 사람의 마음과 입에서 그런 의문들이 새어 나왔다.

마치 태풍이 땅에 몰려올 것처럼, 만물의 종말이 다가올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집집마다 촛불을 켰다.

닭들은 홰에 올라가 잘 준비를 하고

가축들은 목장의 한 편 구석으로 몰려서 울고 있었다.

개구리가 울고 박쥐들은 밖으로 나와서 날아다녔다.

아직 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은 사람뿐이었다 .

종말인줄 알고, 교회로 모여드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때 코네티컷에서 주 의회당에는 의원들의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회의장은 술렁거렸다. 혹자는 정회를 선포하자고 했고,

혹자는 지구 마지막 날이 되었을 지도 모르니

빨리 각자 말을 타고 집에 돌아가자고 했다.

 

그 때 어떤 의원이 일어나서 단호히 이렇게 발언했다고 한다.

촛불을 가져오시오! 회의를 계속합시다.

오늘이 설령 이 세상의 마지막 날이라 해도

우리는 회의를 계속해야 합니다...!”

(평소의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사는 것, 가장 최선의 종말 준비라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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