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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리를 동행하라

LNCK 2019. 12. 26. 20:18

십리를 동행하라                     마5:41                   06.07.16.곽선희 목사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라

5:41

   

이 말씀은 예수님의 깊은 휴머니즘(인간사랑)의 한 단면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어차피 각자에게 주어진 생을 살아간다.

내가 선택하는 것 아니다.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살아왔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렇게 주어진 환경이지만, 주어진 한계 속에 살지만,

환경과 한계를 넘어서는 자유를 누리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 본문 말씀은 보여주는데....

 

1.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고 하신다. 5:39

십리를 동행하라는 말씀은, 문맥상,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와 연결되어 있다.

 

악한 자를 만나는 것은 - 주어진 환경이다.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와 대적관계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 그것은 나의 선택이다.

악한 자라도 이웃관계로 살아야 한다.

 

그가 내게 주는 도움도 반드시 있다.

해만 끼치는 것은 아니다. 1 )

 

2. 나의 자발적 삶을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억지로 5리를 같이 가자고 하면 10리를 같이 가라고 하셨는데,

5리까지 가자고 요청하면, 5리만 가면 되지, 10리를 가라고 하시는가?

 

누가 5리까지 같이 가자고 부탁해오면, 5리까지는 마지못해 간다.

억지로, 피동적으로, 아니 부득이해서 투덜거리며 끌려가다시피 한다.

 

그렇게 가는 도중에 생각하게 된다.

이 사람은 10리를 가야 될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5리까지만 동행하고 만다면, 남은 5리는 혼자 가게 될 것이다.’

이제 그 사람이 불쌍해서, 5리를 더 자발적으로 동행해 주는 것이다.

 

처음에 5리는 억지로 동행했지만

다음에 5리는 능동적으로, 자유함으로 선택해서 간다.

 

발단, 시작, 출발은 억지로 되는 일이 많다.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얽매이게 되는 수도 있다.

 

간혹 우리가 깊은 고려를 하고 나서 신중하게 선택하는 경우가 있지만

인생에 근본적인 일들은 대게 주어진다.’ 내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다.

내게 주어진 바를 나는 뭔지도 모르고 살아가게 된다.

 

적용

예를 들면, 결혼도 부모가 억지로 시켜서 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가문의 명예처럼 어쩌다가 얽히는 수도 있고,

내가 원하던 사람과는 안 되고, 내가 원치 않았던 사람은 쉽게 되기도 한다.

 

자녀도 내가 낳고 싶은 모습대로 생기지 않고, 그저 위에서 주어진다.

 

직업도 내가 원하는 곳은 안 되고, 원치 않던 곳에는 입사되기도 한다.

내가 원했던 사업은 망하고, 원치 않았던 사업은 지금까지 유지된다.

 

교회 봉사도, 신앙생활도 얼떨결에 시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일이 그렇다면, 이제는 동기를 전환시켜야 한다.

모르고 출발했지만, 이제 남은 길은 알고 가야 한다.

이제까지 모르고 살았지만, 이제는 알고 살아야 한다.

이제까지 5리는 억지로 왔는지 모르지만, 10리는 자발적으로 동행해야 한다.

 

처음에 5리까지 함께 갈 때에는 남의 일이었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남의 의지에 이끌린 것이었다.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었으니까, 남의 일을 내가 해 준 것이다.

 

그러나 이제 5리를 지나서, 10리까지 가는 일은 내가 선택해서 가는 일이다.

남이 가자고 해서 가는 일이 아니라, 내가 내 길을 가는 것이다.

내가 내 일을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큰 변화인가?

할 수 없어서 부득이하게 시작한 일이, 이제는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되었다.

 

요셉은 불행하게도 형제들에게 팔렸다.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하게 되었다.

자기가 선택한 삶이 아니라, 자기에게 주어진 삶이었다.

이왕 이렇게 되었으니, 그는 성실하게 살았다.

 

주인 보디발이 모든 것을 신임하고 다 맡길 만큼 성실하게 살았다.

주어진 노예생활을 억지로 하면서 눈가림만 했다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5리까지는 억지로 왔지만, 10리까지는 자발적으로 간 사람이었다.

 

3. 그를 위해

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그 사람에게는 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그의 필요에 응해서 남은 5리를 더 가 주는 것이다.

중심이 아니라, ‘타인중심적으로 사는 것이다.

 

내가 돕지 않으면, 그 사람은 잘못 되기 쉽다.

그러므로 이제 자발적으로, 내가 그의 동행자가 되어주는 것이다.

 

인생을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시라.

저에게 내가 필요하면, 나는 그에게 동행자가 되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억지로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10리를 동행하는 것이다.

 

그렇다.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특권이다. 억지가 아니다.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이 기회이다.

5, 10리를 동행해 줄 수 있다는 것은 - 나의 행복이 된다.

나아가 나의 영광이 된다.

 

4. 악한 자가 변하여 이웃으로

악한 자를 대적치 말라고 했는데

이제 악한 자가 변해서 이웃이 되고 내 형제가 되는 순간

저와 함께 한다는 것은, 내게 최고의 영광이 된다.

 

여러분, 어떻게 그 남편(그 아내)와 오늘까지 살아왔는가?

여러분의 지금까지 가정생활, 직장생활, 마음에 드시는가?

그저 그렇고 그렇다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그러나 잊지 마시라. 여기까지 (5리를) 왔다.

이제 남은 5리는 그렇게 끌려가듯이 살지 말자.

 

저 사람이 나의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저의 필요에 따라주는 것이, 나의 삶에 보람이라고 여기며 살 수 있다면,

이 보다 더 성공적인 생애는 없을 것이다.

 

강요된 사랑에서 자발적 선택하는 사랑으로

노예적 삶에서 자유인으로서의 삶으로

악한 원수가 변하여 이웃과 형제로

의미를 바꾸어 살아가야 한다.

 

내가 이만큼 섬김으로 인해서

저들에게 생명이 주어지고, 구원이 주어지고, 영생이 주어진다면

억지가 아니라 창조적으로 남은 5리를 가야 한다.

 

그러니까 남은 5리란, “죽을 때까지를 뜻한다.

이것이 주님의 가르침이다.

 

마치는 말

악한 자를 미워하고 싫어하니... 내 삶의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내가 그를 사랑하기로 선택해 버리는 순간,

저도 살고 나도 사는 놀라운 일들이 일어난다.

 

억울하고 부득이하게 살아간다는 사람도 있다.

원수 맺고 살아간다는 사람도 있다.

 

여러분, 어떤 의미로 오늘까지 살아오셨는가?

앞으로 남은 5, 10리까지는

이제부터는 사랑으로 가게 되시기 바란다.

함께하는 마음으로, 자유함으로 가게 되시기 바란다.

아니, 특권으로, 영광으로 여기며 살아가게 되시기 바란다.

 

.....................

 

1 ) 조연도 필요하다

인터넷 뉴스를 본적이 있다.

그것은 스타는 좋은 조연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고,

역시 영화의 성공도 조연들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것이다.

 

악역이 없다면 위인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성경의 경우에 아브라함에게는 롯이 그러했고

이삭에게는 블레셋의 왕 아비멜렉이 그러했고

야곱에게는 라반,

요셉에게는 그를 판 형제들과 보디발의 아내가 그러했고,

이스라엘 출애굽 백성에게는 애굽의 바로왕이 그러했고,

모세에게는 고라,

다윗에게는 사울,

모르드개에게는 하만이 그러했고...

너무 많아서 다 열거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경쟁자나 원수 때문에 낙심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우리는 이러한 사람들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들로 인해 단련한 후에 정금같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