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제의 원인, 모든 응답의 열쇠 빌2:2~4
06.06.18. *원제목 :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
▲사탄을 물리친 비결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날 ‘빛의 사자’로 둔갑한 사탄이
사막에서 기도하고 있던 교부에게 다가가서 그를 시험하게 된다.
사탄이 말했다. “나는 가브리엘 천사다. 하나님이 내게 메시지를 주어서
중요한 메시지를 가지고 네게 왔느니라!”
그때 교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다시 잘 생각해 보십시오.
누군가 다른 사람에게 보냄을 받았겠지요. 저는 천사의 방문을 받을만한
사람도 못 되고, 그럴만한 의로움도 없는 사람입니다!”
교부는 이렇게 사탄의 방문을 물리쳤다.
사탄은 실패하고 그 자리를 떠나면서 이렇게 말했다.
“겸손한 자는, 사탄인 나도 유혹할 수 없구나.”
이렇게 겸손한 자는 사탄을 물리친다. 반대로 교만하면 사탄이 쉽게 틈탄다.
▲모든 문제의 원인
성도 여러분, 고민이 있으신가? 근심이 있으신가?
때때로 좌절하시는가? 실망, 낙담하시는가?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무엇인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다.
→교만하기 때문이다.
내가 교만하기 때문에, 모든 시험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럼 이 모든 문제 해결의 마스터 키는 무엇이겠는가?
고민과 근심, 좌절과 낙담을 극복할 수 있는 마스터 키는 딱 하나이다.
→바로 겸손이다. 겸손하면 이 모든 것이 하나도 문제되지 않는다.
행복을 원하면서도... 행복하지 못하고,
생각하면 감사할 일이 많지만... 감사하지도 못하고,
왜 이렇게 능력이 없을까 하지만... 알고 보면 그것도 교만하기 때문이다.
겸손이 없기 때문이다.
▲교만한 사람에게는 행복이 없다
뭘 가졌다 하더라도 더 가지고 싶으니까,
아니, 더 못 가진데 대한 불만이 있으니까...
교만한 사람은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교만한 사람은, 한 평생을 통해 감사하다는 말 한 마디를 못 한다.
끝없는 교만과, 교만이 주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 언제나 불만과 원망뿐이다.
그런고로 겸손한 사람은... 겸손한 만큼 감사한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언제나 자기를 낮추는 순간, 모든 것이 감사로 여겨진다.
▲겸손해야 용서한다.
사랑해야 할 것을 알면서도 왜 사랑하지 못하는가? → 교만하기 때문이다.
용서해야 될 사람을 왜 용서하지 못하는가? 왜 그렇게 원수 맺고 사는가?
교만하니까 그렇다. 교만한 사람은 용서 못 한다.
겸손하면 쉽게 저절로 용서할 수 있는데, 교만한 자는 용서할 힘이 없다.
우리는 때로 분열을 슬퍼한다. 이견을 괴로워한다.
왜 하나 되지 못하는가? 교만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겸손한 사람만이 하나 될 수 있다.
▲겸손케 만드는 비상조치
그래서 겸손은 큰 복이다. 겸손은 은사이다.
내 스스로 겸손할 수 있다면, 그건 큰 축복이고,
내가 겸손할 수 없으면, 하나님께서 비상조치를 취해서 겸손하게 만드신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렸더라도 겸손을 얻었으면, 그는 복 있는 사람이다.
다 잃어버렸더라도 겸손만 바로 찾으면 된다. 그러면 다시 복 받는다.
사람은 성공할 때 버렸던 것을, 실패하고 나서야 되찾는다.
건강할 때 버렸던 사랑을... 병들고 나서야 아쉬워한다.
그렇다면 실패와 병드는 것 자체를 불행이라고 말할 수 없다.
모처럼 병들고 실패해서, 제자리로 돌아가서 겸손을 되찾았으면,
그 질병과 실패는 불행이 아니다. 복 받는 도구였다.
▲겸손케 만드는 육체의 가시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가 있었다. 그것 때문에 괴로워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12:7
자고(스스로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나를 낮추시기 위한 비상조치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육체의 가시, 사탄의 사자가 한평생 바울을 따라다녔다.
그래서 낮추고 낮추어서 나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그래서 은혜가 은혜 되고, 그 은혜가 능력이 되고 사명이 되어서
결국 하나님께도 영광이요, 자신에게도 영광이 되었다.
▲피곤하신가?
그런고로 겸손은 모든 은사 중에 최고요, 복 중의 최고의 복이라고
사도 바울은 그렇게 갈파하고 있다.
사랑할 삶을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할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는 것,
피곤에 지쳐서 쓰러지는 것... 그 모든 것이 교만 때문이다.
왜 사는지 알 수가 없고, 늘 피곤하고 좌절에 빠지는 그 깊은 곳의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여러분, 겸손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자신을 정비해 보시라.
여러분, 자신이 스스로 겸손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교만한 사람이다.
겸손한 사람은 ‘나는 교만하다. 나는 교만하기 쉬운 사람이다.
그저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또 교만이 고개 드는 사람이다....’ 라고 생각한다.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벌써 그는 겸손한 사람이 아니다.
▲빌립보 교회는 작은 문제가 있었다.
사도 바울의 사랑을 받는 교회요, 당대의 칭찬을 받는 교회지만
그 교회 안에는 하나 되지 못하는 시기와 질투가 좀 있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염려하면서 그 근본적인 해법을 제시한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 2:2-4
하나 되지 못하는 것... 겸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해법은 바로 겸손에 있다고 완전한 해답을 주고 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2:5
품어야할 마음, 예수의 마음은 한 마디로 말하면 겸손이다.
▲겸손은 행동이다
겸손은 심리 상태가 아니다. 하나의 감상이 아니다.
후회의 눈물도 아니다. 겸손은 행동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 성육신,
- 그 자체가 바로 겸손이었으며, 겸손은 성육신이란 행동으로 나타났다.
오늘 본문 빌립보서 2:1~11은 겸손을 4단계로 말한다.
◑1st. 비우다 (에케오센, empty)
자신의 능력, 지식, 지혜, 자기 마음, 자기 자신까지 비워버리는 단계.
능력과 지식이 있으나, 완전히 없는 것처럼 되는 것이다.
알고 있으나 모르는 척이 아니라, 아주 몰라 버리는 것이다.
아는 대로 다 말할 수 없고, 아는 대로 다 말하지도 않는다.
아주 잊어버렸다. 벌써 오래 전에 잊어버렸다.
▲어느 목사님이 65세에 은퇴하셨다.
그 교회에 아주 까다롭기로 유명한 장로님이 계셨다.
장로님도 노환인지 돌아가실 때가 가깝게 되었다.
그래서 그 목사님이 병원에 입원하신 장로님을 찾아갔다.
목사님은 큰 맘 먹고 이렇게 말했다. “장로님, 저도 섭섭했던 일이 있지만,
혹 그저 마음에 섭섭했던 일 뭐 그런 것 이제 다 잊어버립시다.”
그랬더니 장로님이 딱 쳐다보면서 하는 말이
“그거 아직도 기억하고 있어요?”
그 말에 목사님은 한대 얻어맞고 말았다.
장로님은 벌써 다 잊어버렸다. 그런데 목사님은 지금 장로님의 임종시에 와서
과거를 다 잊어버리자고 했으니, 아직 목사님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목사님은 너무 죄송해서 그걸 돌아다니면서 설교하시는 것을 보았다.
내가 이렇게 부끄러운 일을 당했노라고...
겸손은 비워버리는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말자.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
하나님이 사람이 되는 순간에 주님은 모든 것을 비워버리셨다.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다 비워버리셨다.
◑2nd. 되다 (게노메노스, becoming)
‘되었다’는 것은 막연히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찾아가는 것이다.
찾아가는 것만이 아니다. 자신을 주는 것이다.
주는 것만이 아니라. 그 사람과 같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신비스런 말이다.
▲유럽의 어느 도시에서 아주 큰 음악회가 있었다.
이 콘서트에서 곡이 절정에 도달했을 때,
지휘자는 온 정열을 다해서 지휘를 하고,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아주 혼신을 다해서 그 곡에 몰입하면서 연주했다.
청중들은 조용하게 그 연주에 흠뻑 빠져 있었다.
바로 이런 순간인데 어쩌다가 너무 열정적으로 지휘하다보니까
이 가난한 지휘자의 예복의 소매가 찢어지면서 펄렁펄렁 하더니 그만
소매가 떨어져 나갔다. 한쪽 소매가 떨어져나갔는데도 지휘를 계속한다.
그러다가 중간에 잠깐 쉴 때, 이 지휘자가 민망하니까 예복을 벗어버리고
그만 셔츠바람으로 지휘를 하게 되었다.
장내 모든 사람이 어수선해졌다. 망신스럽게 셔츠바람에 이게 뭐냐는 소리가
들렸다. 이때 맨 앞에 있던 귀족 한 사람이 일어서더니 자기 웃옷을 벗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청중들이 차례로 자기 웃옷을 벗었다.
곡도 곡이지만, 그 일로 인해 음악회는 최고의 감동을 주는 음악회가 되었다.
이렇게 같이 된다는 것은 사랑이다.
멀리 앉아서 교훈하는 것이 아니다.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하는 것,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저가 죄인이면 나도 죄인이요, 저가 아프면 나도 아픈 것이다.
누구를 향해서 비판하겠는가? 겸손은 - 그와 같이 되는 것이다.
◑3rd.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훼페코오스)
이것은 노예적 복종을 뜻한다.
복종이란 - 모르고 순종하는 것이다. 이해가 안 되는데도 따라가는 것이다.
다 알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납득이 가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과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 복종이다.
▲놀라운 것은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실 때, 하나님 앞에 복종하셨다.
겉으로는, 빌라도 앞에 로마군병 앞에 끌려가서 매 맞고 죽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 예수님의 마음은 하나님께 복종하신 것이다.
그것을 잊지 말자.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순간 온전하게 복종하셨다.
그 다음부터 이루어지는 모든 현실을 그대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신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않겠느냐? 요 18:11
이렇게 현실 속에서 조용하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셨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겸손이다.
여러분, 변명하지 마시라. 구차하게 이론 늘어놓지 마시라.
아버지의 뜻에 조용하게 복종하시라. 이것이 겸손이다.
▲아브라함 링컨이 대통령으로 있을 때 구두를 자기가 닦고 있었다.
그러니까 옆에 있던 비서가 깜짝 놀라면서,
“아니, 대통령께서 구두를 직접 닦으시다니요, 이러시면 안 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미리 닦아야 되는데...”
그러니까 링컨은 껄껄 웃으면서 “이 사람아, 그러면 미국 대통령이 자네
구두를 닦아야겠냐?(유머) 내 구두를 내가 닦는데 그게 무슨 큰 문제냐?”
여러분, 이 얼마나 참 평안한 겸손인가?
교만하다보면 시끄러워진다.
겸손하면 이렇게 편하고 자유로울 수 없다.
남이 뭐라고 하든 말든 상관없다. 완전한 자유인이다. 자유롭다.
◑4th. 하나님이 높이신다.
겸손하게 되면, 겸손한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를 주신다.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모든 응답의 원인 - 겸손
여러분, 요즘 무슨 소원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가?
기도 아무리 해 보시라. 그냥 들어주시는 법은 없다.
하나님은 그를 겸손하게 만들어 놓고, 그 다음에 응답하신다.
‘돈 벌게 해 주세요!’ 하고 기도하면, 돈 손해 볼 수도 있다.
어쩌면 돈을 잃어버리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겸손하게 만들어 놓으신 다음에,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
이런 과정이 필요하다. 하나님이 가르치시는 겸손의 교과과정이다.
달란다고 그냥 다 내어주시지 않는다.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겸손한 자에게, 겸손을 갖춘 다음에만 주신다.
그러니까 겸손하게 만든다는 그 자체가 복을 받는 과정이다.
그리고 겸손해진 다음에, 그 겸손한 마음에, 겸손한 그릇에
하나님께서 네 소원대로 되리라고 허락하신다. 이것을 잊지 말자.
여러분, 하나님은 그제서 높이신다.
예수님은 낮아지고, 낮아지셔서 종의 형체를 가지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했을 때, 하나님은 다시 그를 높여 만왕의 왕이 되게 하시고
만주의 주가 되게 하셨다.
겸손할 때 하나님이 그를 높이신다.
하나님이 높이신다는 것 - 이것을 잊지 말자.
자기 스스로 자기를 높이는 것처럼 맹랑한 일은 없다.
그것은 쓸데없는 짓이다. 그렇게 되지도 않는다.
나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이 높이시는 바로 여기에 축복의 길이 있다.
▲마치는 말
스스로 물어보시라! 모든 문제의 그 깊은 곳의 원인이 무엇인가 물어보시라!
→ 겸손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 마음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한 마음을 품게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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