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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선이 멈추는 곳

LNCK 2019. 12. 27. 09:25

하나님의 시선이 멈추는 곳                14:14~24                  06.06.18.스크랩


하나님의 스포트라이트 spotlight

 

연극을 볼 때면, 넓은 무대에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는 곳이 있다.

많은 배우들이 서 있지만, 거기가 바로 감독이 보여주고자 하는 곳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신다.

그런데 우리가 보기에 세상적 기준으로는 변변치 않은 곳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신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한 시대의 역사를 가늠하는 기준은 - 정치, 경제, 문화 등이다.

신문을 보더라도 오늘을 흐르는 시사적 사건current events 들은

정치, 경제, 문화 등의 사건들을 주목해서 보도한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그 분이 주목하시고, 그 분의 시선을 머무시는 곳을 우리가 알아야 되는데,

우리가 전혀 예상치 않은 곳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신다.

 

예를 들면, 출애굽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말렉과 싸우게 된다.

모든 시선과 관심이 전쟁터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주님은 스포트라이트를 언덕 위로 비추셔서, 하나님께 손들고 기도하던

모세와 아론과 훌을 보게 하신다. 세상이 전혀 예상치 않던 곳이었다.

바로 거기가 당시 역사를 이끌어가는 핵심이라고 보여주신다. 17:12

 

다니엘 당시는, 페르시아(바사)가 팔레스틴, 메소포타미아, 소아시아 등을

통일해서 광대한 제국을 이루고 있었다. 당시 다리오 왕의 신하들은

하나님의 사람 다니엘을 끌어내리려고 음모를 짜고 있었다.

 

세속 역사를 보면, 페르시아 왕국과 왕들과 그들의 통치에 초점을 맞추지만

성경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스포트라이트가, 화려한 궁궐이 아니라, 기도하는 다니엘의 골방을 비춘다.

정치가들이 의논하며 계획할지라도, 그런 정치가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진짜 역사는 골방에서 기도하는 나의 종을 통해 일어난다.’고 말씀하신다.

 

신약시대에도, 그 때 역사를 주름잡고 있었던 가이사, 총독, 분봉왕,

대제사장이 누구 누구였다고 성경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3:1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황량한 빈들에서 하나님만을 바라보던

세례요한에게 임했다. 3:2

하나님의 스포트라이트는 전혀 예상치 못한 엉뚱한 곳을 비추고 있었다.

 

사도행전 마지막에도, 스포트라이트는 바울이 잡혀있던 셋집을 비춘다.

당시 로마는 찬란한 정치, 경제, 문화로 세상역사를 이끈다고 자랑했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좁은 자기 집에서 복음을 외치던 바울을 주목했다.

그를 통해 성령의 바람과 파도가, 로마를 거쳐 온 구라파로 퍼져나갔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는가?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세상의 역사는 한 때 화창하게 피었다가도 곧 사그라진다.

그러나 주님의 나라는 조그만 밀알처럼 시작되지만(모세, 다니엘, 세례요한, 바울)

나중에 하나님의 능력과 파도를 타고, 사라지지 않고

온 세상 끝까지 펼쳐졌다... 영원히 계속되었다.

 

그러므로 나 자신은, 내가 보기에도 초라하게 보이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절대 그렇게 안 보신다.

 

한 사람의 골방의 기도가 한 나라를 움직인다는 것 아시는가?

그래서 영국에서 개신교를 탄압하던 메리 여왕은 나는 스코틀랜드의

모든 군대보다 기도하는 존 낙스 한 사람을 더 두려워한다.” 라고 말했다.

 

그러므로 골방에서 기도하는 사람이 역사를 움직이는 자가 될 수 있다.

복음을 들고, 성령의 바람과 성령의 파도를 올라타고서

능력있는 말씀을 전할 때, 로마가 변하고, 유럽이 변하고, 온 세계가 변했다.

 

그렇다면, 나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가치를 우리가 붙잡아야 한다.

엄청난 가치, 능력, 사명이 내 속에 있다는 것을... 발견하자.

나는 결코 아무 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 각자는 대단한 인물들이다.

 

역사를 주관하시고 역사의 흐름을 붙잡고 계신 분은 하나님이신데

그 위대하신 하나님의 가슴을 움직이는 자는 ... 그의 자녀들이다.

역사를 움직이시는 하나님, 그 하나님을 움직이는... 하나님 자녀인

우리의 역할은 대단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교회에 대해 뭐라고 하셨는가?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음부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이 교회에 주어졌다는 것이다.

, 성도(교회)들을 통해서, 사탄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펼쳐 가신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진 사명은 보통 사명이 아니다.

 

이것을 깨닫고서,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세계관이 바뀌어져야 한다.

역사관인생관이 바뀌어져야 한다.

 

비관 속에 낙관적인 기독교 세계관

 

한국 전쟁(625)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

정확히 모르지만, 지금 북한에 참 성도가 굉장히 많을 것 같다.

미국이나 한국처럼 넘치는 자유로 인해 희석된 신앙보다는

북한에서 지금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키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나중에 북한이 열렸을 때, 그들이 우리보다 더 큰 해외선교를 하지 않을까?

 

중국 문화 혁명의 핍박을 통한 하나님의 섭리

중국교회가 오늘날 이렇게 부흥한 것은,

문화혁명 이후 지난 몇 십 년 동안 지하에서 아픔과 어려움 가운데

신앙을 지키며 순결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살다가

지금 열렸을 때, 엄청나게 힘을 뻗치는 것을 보면서,

그동안 중국에 심한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비밀과 역사가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라크 전쟁,

그냥 정치의 눈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영적인 눈으로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세계 선교의 마지막 보루인 이슬람 국가들에 복음을 전하시려는

하나님의 손길이, 이라크 전쟁을 통해서,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성경적 세계관을 가진 사람은, 자기 자신을 준비할 것이다.

또한 우리 자녀들을 준비시켜야 한다.

20년 후에 하나님이 이루실 일들을 위해서 미리 준비해야 한다.

 

 

스포트라이트 받은 아브라함

 

창세기 14장은 복잡하게 얽힌 고대 역사의 한 장면을 보여준다.

동맹한 네 나라가, 동맹한 다섯 나라에 대항해서 싸운다.

이런 복잡한 국제정세 가운데 하나님의 스포트라이트가 어디에 가 있는가?

그것은 정치가 아니라,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에게 가 있었다.

 

장기나 체스를 연상해 보자. 궁극적 목표는 상대의 왕을 잡아야 한다.

복잡하게 체스를 두지만, 그 목표는 오직 하나이다.

주님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복잡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지만

그 시선은 항상 자녀들, 하나님의 사람들에 맞춰져 있다.

 

성경은, 여기서 아브라함이 남긴 믿음의 유산legacy를 보여주면서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역사의 무대에 서라고 도전한다.

 

 

당시 신문기자가 이 사건을 보도한다면, 아브라함에게 주목했을까?

4나라, 5나라가 서로 싸운 것에만 집중 조명하면서,

아브라함이 롯을 구해온 것은 한쪽 구석에 단 한 줄로 작게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스포트라이트는 아브라함에게 가 있었다.

(마찬가지로, 지금 하나님과 영의 세계는 우리 성도를 주목하고 있다)

 

성경에 보면, 영의 세계에 속한 마귀는 - 욥을 주목하고 있었다.

그래서 욥이 하나님을 배반하지 않은 것은, 주님이 주신 복 때문입니다!’

라면서 고소했는데, 그만큼 평소에 욥을 주목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믿음의 모습을 보이면서 살아야 한다.

오늘 우리가 사는 역사의 책임을 지는 자들로서, 믿음의 삶을 보여주어야 한다.

 

아브라함이 보여준 믿음의 유산legacy은 두 가지다.

 

1. 소명에 충실한 모습

아브라함은 현실에 매우 충실하게 살았다.

영적인 믿음의 삶은, 절대 자기에게 주어진 현실을 무시하지 않는다.

다윗도 온 백성을 목양하기 이전에, 목동으로서 양떼를 성실하게 쳤다.

 

아브라함도 정착한 그 지역에서 주변 아모리 족속과 좋은 관계로 살았다.

그가 318명의 군사를 일으켰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성공한 사람이었다.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현실에 충실한 가운데... 소명을 잃지 않았다.

 

적지 않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열심히 사는 것은 좋은데.., 소명을 망각한다.

이민교회 성도들은, ‘아메리칸 드림을 소명으로 오해하고 있다.

, 돈 많이 벌어서 잘 사는 것이 전부인줄로 착각하고 있다.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다가, 나중에는 현실 자체를 삶의 목적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소명을 잃어버린 사람을 많이 보았다. - 이것은 안 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현실에 충실했지만, 궁극적으로 소명에도 더 충실했다.

 

아브람이 소돔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네 말이, 내가 아브라함에게 치부케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무론 한 실이나 신들메라도

내가 취하지 아니하리라 창 14:22~23

 

12:1-3,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아

온 세상에 복에 근원이 되리라는 소명을 받았다. 그는 그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므로 전쟁에서 승리하면 당연히 전리품을 취하는 권한이 있었지만,

장차 내가 이 땅에서 부요케 되었을 때

옛날 소돔 왕으로 인해 부요케 되었다는 소리를 절대로 듣지 않으리라!

그러니까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 부요케 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즉석에서 나오는 간증은, 미리 깊이 생각하며 준비한 것이 아니다.

그 마음속에 평소에 차곡차곡 쌓여있던 것이 그냥 터져 분출되어 나왔다.

아브라함은 소명에 불타 있었기 때문에, 소돔 왕이 전리품을 선사해도

“No, 안 받는다!”고 즉석에서 거절할 수 있었다.

내 소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으로 세상을 복 주는 것이다!”

그의 불타는 소명감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하겠다.

또한 우리 자신도 그런 불타는 소명감을 평소에 갖고 있어야 되겠다.

 

다윗은 자기 시대에 주어진 사명을 다 하고 열조에게 돌아갔다. 13:36

For when David had servedGod's purpose in his own generation,

he fell asleep; he was buried with his fathers ...

 

우리도 다윗처럼, ‘자기 시대에 주어진 사명이 있다.

우리가 아무리 위대해도, 백 년 후 미래의 어떤 사명을 감당할 수는 없다.

 

우리 이민교회 성도들은, 21세기 한국 디아스포라 이민자로서의

하나님이 주신 지금 이 시대적 사명을 곰곰이 생각해야 한다.

 

돼지에게서 얻는 교훈

돼지를 연구하는 모 박사는, 새끼 돼지 한 마리에도 460개의 유익한

유산 비슷한 것을 남긴다고 한다. 예를 들면,

-족발, 삼겹살 등 고기

-돼지털은 매우 질이 좋아서, 여성 속눈썹의 재료가 된다고 한다.

(이 말을 듣고 제가 여성들의 눈을 다시 쳐다보게 되었다. 일동 웃음)

 

-돼지 이빨은 매우 튼튼하고 질이 좋아서 틀니(보철)의 재료가 된다. (웃음)

-돼지의 심장은 사람의 심장과 가장 비슷해서

사람이 심장 수술할 때, 돼지의 심장heart valve을 이식시킨다.

-돼지가 꿀꿀거리는 소리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안정시킨다고 한다.

그래서 음악치료, 배경음악과 함께 꿀꿀 소리를 들려준다고 한다.(웃음)

 

새끼 돼지 한 마리도 이렇게 사명을 갖고 세상에서 쓰임 받고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이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이 엄청난, 보통이 아닌 것을 깨달아야 한다.

 

2. 도우시는 하나님께 전심으로 향한 모습

전쟁에서 돌아온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멜기세덱에게, 그는 십일조를 드렸다.

-나를 도우시고 축복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이다.

 

소돔은, 당시에 가장 화려한 도시로서, 그 제품이 값비싸고 우수했다고 본다.

그러나 소돔 왕의 선물(빼앗겼다 다시찾은 전리품)은 하나도 받지 않으면서,

도리어 하나님께 그는 예물을 드렸다. 그는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았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대하 16:9

 

하나님의 눈은 오늘도 누군가를 찾고 계신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는 자를 찾고 계신다.

 

위 말씀(여호와의 눈은~)은 하나님이 아사 왕에게 주셨다.

그 정황을 한 번 살펴보자.

 

에디오피아의 엄청난 군대가 공격해 올 때, 하나님은 아사 왕을 도와주셨다.

절대로 인간의 힘으로 승리할 수 없었던 전쟁에서, 아사는 승리했다. 대하14:9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에디오피아 보다 훨씬 작은 나라(북 이스라엘)

유다를 공격해 올 때, 아사 왕은 심히 흔들렸다.

그래서 시리아에 선물을 보내며 도움을 요청한다. 대하 16:1~2

참 이상하다.

훨씬 큰 군대(에디오피아)가 공격해 올 때는, 필사적으로 주님을 붙잡았다.

그 후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안정되었을 때, 약한 나라가 공격해 올 때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하고 벌벌 떨었다.

 

이것이 우리의 모습과 같다. 큰일은 비교적 결사적으로 기도하며 이기다가

작은 공격에 쉽게 무너진다.

제 인생을 뒤돌아봐도 그동안 수많은 고비와 어려움을 주님이 지켜주셨다.

그런데 오늘, 훨씬 더 작은 어려움 때문에, 마음이 떨리고 절망에 빠진다.

그래서 슬럼프에 빠지는 것이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다.

 

그런 가운데 아사 왕에게, 하나님은 선지자를 보내 말씀하셨다. 대하 16:7

전심으로 여호와를 향하고, 주님을 붙드는 자에게 능력을 베풀어주시겠다고..

반대로 하나님을 향하지 않으면, 전쟁이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대하 16:9

 

하나님을 믿는 것 - 복잡하지 않다.

우리 마음이 전심으로 여호와를 향하라고 하신다.

 

소명을 갖고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사람은 - 별난 사람 아니다.

그냥 전심으로 하나님께 향하는 자이다.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내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모든 상황에서, 모든 마음(전심)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소돔 왕에게 선물을 받지 않고

도리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 것은, 바로 그 마음이었다.

오직 전심으로 하나님께로만 향하는 마음!

오직 하나님이 나를 공급하시는 분이시니...물질적 필요에 대해서도 당당했다.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은 살아계심을 믿는다.

그러므로 오늘 내게 닥친 그 어려움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주님이 해결하지 못하실 일이 어디 있으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고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신다.

 

오늘 아사 왕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하나님은 온 땅을 두루 감찰, 살펴보고 계신다.

주님께 전심으로 향한 사람을 찾아, 그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실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함

요한복음 316절에서 내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한다고 말씀하신다.

이것은 그저 다정한 목소리로 부드럽게 말씀하심이 아니다.

처절하게 울면서 부르짖으시는 말씀이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할 때, 어떤 상처에서도 사람들은 회복된다.

 

어떤 대학생 자매가, 과거 중학생 때의 일이었다.

하루는 자기 부모님이 자기 눈앞에서, 강도들의 권총에 죽는 것을 목격했다.

그 사건의 충격으로, 자매는 거의 절망과 두려움으로 지내는 폐인이 되었다.

그 자매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을 깨닫고 다시 회복되었을까?

성령의 역사로, 독생자를 버리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동되니까... 회복되었다.

 

어떤 형제는 형과 함께 미국에 조기유학을 와서 힘들고 부모를 그리워했다.

어느 날 새벽에 그는 일어나 시애틀 바닷가에 들어가면서 자살을 시도했다.

그 때 뒤에서 형이 죽지 말라고 부르짖으며 달려오고 있었다.

어떻게 형이 새벽에 잠이 깨서 바닷가로 자기를 찾으러 나온 것일까?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신 것이라고 간증했다.

 

여러분의 이민 생활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절실히 깨닫고 다시 용기를 갖게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바라보시라!

그 스포트라이트가 당신을 향해 비출 것이다. 당신을 지켜보고 계신다.

 

그러므로 당신 문제에 빠져 스스로 고민할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시대적 사명으로 고민하게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스포트라이트가 머무는, 시대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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