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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나사로

LNCK 2019. 12. 27. 09:54

부자와 나사로                 16:19-31

 

 

주일날 설교하기에 매우 어려운 본문이다.

본문 자체의 해석상의 어려움도 있지만,

무엇보다 부자들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부자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16:19)

 

그러나 성경에 나온 부자에게 뚜렷한 도덕적 유죄성을 발견할 수 없다.

살인, 간음, 도적질, 거짓 말, 부패 등 어느 하나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의 재산이 부정 축재한 것이라는 증거도 찾을 수 없다.

그럼 부자 되는 것도 죄인가?’ 라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어떻게 보면 조그만 자비심과 기본 양심은 있었다.

거지를 내 쫓지 않고, 자기 상 근처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게 허용했다.

 

이렇게 너그럽고 아량 있는 부자를

우리가 나쁜 사람 취급하는 이유는 - 결과적으로 지옥에 갔기 때문이다.

 

나사로

거지 나사로가 의롭고 선한 사람이라는 증거가 아무데도 없다.

단지 그가 천국에 간 것을 보고 결과론적으로 그가 의롭다고 판단할 뿐이다.

 

거지는 무조건 구원받는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만약 그가 방탕하고 게을러서 거지가 되었다면, 그래도 천국에 가는가?

성경을 잘못 읽으면, 유전유죄/무전무죄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부자와 나사로성경본문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

 

1. 세상에서 성공한 것이 꼭 잘 믿은 결과가 아니며,

세상에서 실패한 것이 꼭 못 믿은 결과가 아니다.

 

두 사람은 모두 유대인이었다.

유대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당연히 교인이었다.

 

세상적으로 성공한 교인도 얼마든지 지옥에 갈 수 있으며,

세상적으로 실패한 교인도 얼마든지 천국에 갈 수 있다.

 

뒤에 천국과 지옥 이야기가 만약 삭제되어 있다면,

우리는 성공한 교인 부자를 매우 높이 평가했을 것이고

세상적으로 실패한 교인 나사로를 형편없이 낮게 평가했을 것이다.

 

세상에서 지지리 못 살고 늘 쪼들리는 가난한 교인

-조상의 저주가 아닐 수 있다.

 

세상에서 하루도 건강치 못하고 병들다 죽는 사람

-누구 죄 때문이 아닐 수 있다.

노숙자들 중에도 천국 갈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인과응보적 판단을 잘 내린다.

믿음=성공=부자=건강 일 수 있지만

그러나 아닐 수도 있다. 판단을 유보하자.

 

2. 땅에서 보상이 없어도 천국에서 보상이 있을 수 있다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16:25)

 

나사로가 땅에서 무슨 보상을 받았는지 모르겠다. 헌데, 굶주림, 걸식...

그러나 천국에서 그는 보상을 받았다.

 

손양원 목사님도 땅에서 무슨 보상을 받았는지 잘 모르겠다.

세상적으론 지지리 고생만 하시다가 결국 순교하셨다.

나환자 봉사 신사참배 반대 옥고 해방 후 다시 나환자 봉사

두 아들 순교 당신 자신의 순교

 

예수 잘 믿으면 당연히 복 받아야 되지 않는가?

동인, 동신 손목사님 두 아들이 세상에서 머리되고 부자 되어야 했는데...

 

우리 생각은 오직 땅에 굳어져 있다. 땅에서의 보상에 너무 집착하지 말자.

땅에서 못 받아도 천국에서 위로를 받을 터이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16:25)

이 말씀에 위로를 받자!

 

3. 세상에서 유족하게 살고, 덕망 있게 살아도

그것이 구원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

 

예수님은 부자의 비도덕성을 조금도 언급하지 않으셨다.

그렇지만 지옥에 갔다.

 

부자에겐, 보통, 유족함에서 오는 인격과 덕성과 여유가 있다.

부자가 양반이다는 시쳇말도 일리가 있다.

돈이 있어야 덕망을 유지할 수 있다.

 

오늘도 부자로서 양복도 사주고, 기부금도 적당히 내면서

인격과 덕망을 유지하는 교인들이 꽤 있다.

그들에게 뚜렷한 인격적 흠집을 찾아볼 수 없다.

-그래도 지옥갈 수 있다.

 

4. 믿음은 오직 은혜

부자는, 나사로를 보내서 자기 5형제가 여기 오지 않게 해 달라고 간구했다.

그러나 주님은, 성경을 믿지 않으면, 나사로가 살아나가는 기적을 보더라도

믿지 않는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나사로처럼 기적적으로 천국과 지옥을 갔다 온 사람의 증언을

듣고 보고서도 안 믿는다는데, 16:31

그럼 나는 어떻게 안 보고도 믿는가?

 

오직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 설명할 도리가 없다.

내가 믿고 싶어서 믿은 것도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은혜 주셔서 믿게 되었다.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 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9:16)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나?

 

일반인의 시각

영면 - 무덤에서 영원히 잠잔다는 생각.

영면 하소서!’라는 말을 시중에서 자주 듣는데,

그 말을 문자적으로 해석해서 자기 머리에 비판 없이 입력시킨 결과.

 

바울도, 주님의 재림 때 무덤에서 잠자던 사람들이 일어나리라고 말했는데

그 구절만 읽으면, 성도가 죽으면 영면한다고 오해할 소지가 많음.

 

환생/윤회

장례식에서 참석자들과 대화를 나누면

이런 사상을 가진 사람이 꽤 있음을 발견한다.

우리 어머님 돌아가셨는데, 영혼이 새가 되어 날아가셨다

- 하관식 때 마침 옆에서 새가 날았음. 새는 산소주변에 어디든지 있다.

      

인도의 수 억 힌두교인들, 불교도들도 윤회설을 믿는다.

불교 문화권인 우리나라 사람들도 전생과 윤회를 믿는다는 사람이 꽤 있음.

 

영혼이 떠돌아다님

죽은 이후 영혼이 귀신이 되어 떠돌아다닌다는 무속 신앙의 계승.

굿을 통해 무당이 죽은 아버지의 혼을 불러내는 것을 체험한(?)

사람들이 굳게 믿는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고

즉시 천국과 지옥에 간다고 가르친다. (네가 오늘 나와함께 낙원에...)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유물론적 사고방식이다. 극소수 철학자들만 이런 철학을 고수한다.

 

성경적 내세관

우리 육신이 죽으면, 영혼이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대 앞에 선다.

허공을 떠돌지 않고, 무덤에서 자지 않고, 즉시 간다.

 

천국에 간 영혼은 보좌 앞에서 때가 차기까지,

순교자의 수가 차기까지,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쉰다(영혼부활)

 

주님의 재림 때, 천국 보좌 앞에서 쉬던 영혼들이

주님과 함께 공중으로 재림한다.

그 때 무덤에서 잠자던 육체가 일어나 공중에서 영혼과 만나

(영혼부활 +육체부활)을 이룬다.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우리는 영혼+육체적 부활체로 살아간다.

 

*그럼, 영혼부활(죽음)과 육체부활(재림) 사이의 기간은 몇 년일까?

- 그것은 죽을 때 3차원의 시간에서 4차원의 시간으로 넘어감으로

그런 계산이 무의미하다고 본다. 하루가 천년이고, 천년이 하루다.

 

*죽어서 영혼이 부활해서 가게 되는 천국

나중에 재림 때 가게 될 새하늘과 새땅은 어떻게 다른가?

-성경에 자세한 설명은 없다. 넓은 의미로 다 같은 천국으로 본다.

차이는, ‘마귀가 살아있을 동안마귀가 불못에 심판받은 후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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