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 눈물, 피의 가치 눅7:38
◑1. 땀의 가치 http://blog.daum.net/kyc3235/2126996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한 아담에게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을 수 있다고
하셨다.(창 3:19) 그래서 종종 땀을 흘리는 것을 저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조차 인생에게는 복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땀 안 흘리는 것이 두려워, 범죄한 아담처럼 우리가 여전히 죄 가운데서
영원히 이 땅에 산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이 세상에 흘려진 땀 중에 가장 아름다운 땀이요, 가장 귀한 땀은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며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된 예수님의 땀이라고 할 수 있다. 눅 22:44
예수님께서 땀을 그렇게 흘리셨다면
우리 또한 이 땅에 살면서 땀을 흘려야 한다.
▲땀을 억지로 흘리는 세상
요즘은 정신노동을 많이 하고 또 에어컨 아래에서 노동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땀을 많이 흘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사람들은 부족하게 흘린 땀을
헬스와 각종 스포츠의 취미 생활로 땀을 흘리려고 한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자칫하면 오히려 영적 생활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있다.
성도들 중에 취미 생활에 너무 열중한 분들이
자연적으로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혹 신앙생활을 해도, 취미 생활에 힘과 신경을 다 쏟고 난 이후에
맥이 빠지고 힘이 없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이 분리되어
육체는 점점 건강해 지는데 영혼은 약해져 가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땀을 잘 흘리자
그러나 이제 우리는 영적인 것에서 땀을 흘리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면 영적으로도 육적으로도 건강하게 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주님처럼 기도하면서 땀을 흘려야 한다.
그리고 성경을 읽고 연구하면서 땀을 흘려야 하고
찬양하면서 봉사하면서 전도하면서 땀을 흘려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영적인 곳에 땀을 흘려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땀이 날 정도로 열정적이고 열심히 기도, 찬양, 전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땀을 드리는 성도
그렇다. 눈물은 우리의 내적인 마음의 열정의 결정체라고 한다면
땀은 외적인 육체의 열정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눈물과 함께 땀도 주님께 드려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제 주님께 눈물을 드리고 싶지만 또한 땀을 올려 드리고 싶다.
그것도 기도와 찬양과 예배와 봉사와 전도와 같은 영적인 부분에서
땀을 올려 드리고 싶은 것이 나의 소원인 것이다.
◑2. 눈물의 가치 http://blog.daum.net/kyc3235/2080145
▲비싼 향유보다 더 값진 눈물
나의 일평생의 기도 제목 중에 하나가 있다면
주님 위해 눈물을 흘려 그 발을 적시고 머리털을 풀어 씻었던 여인처럼
저도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시게 해 주옵소서... 이다. 눅 7:38
조금의 양이 아니라 주님을 발을 적실 정도로 눈물을 흘릴 수 있게 하소서,
그리고 다른 것에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발 위에 흘리게 하소서,
그리고 이러한 눈물이 끊이지 않게 하소서... 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너무 거창한 기도인 것 같지만
여인은 주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과 감사와 회개...의 모든 것이
그 눈물로 드려졌고,
그 눈물은 그 여인이 드렸던 그 어떤 비싼 향유보다도
더 값진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도 흐르고, 속으로도 흐른다.
눈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축복이다.
다른 그 어떤 생물이 인간처럼 이렇게 눈물을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인간은 큰 아픔 속에서 눈물을 흘림으로 그 아픔을 표현하고 이겨내고
더 나아가서 그 눈물이 겉으로만 아니라 안으로 흘러
아픔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를 씻어 내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인간은 큰 기쁨 가운데서 눈물을 흐림으로
그 기쁨을 표현하고 승화시키며
더 나아가서 그 눈물이 겉으로만 아니라 안으로 흘러서
마음으로 촉촉이 적셔 준다.
그래서 눈물은 겉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같이 흘러내린다는 신비로움이 있다.
▲눈물은 말라 사라지지 않는다.
또 하나의 눈물의 신비는
눈물은 흘러내려 없어지고 말라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눈물은 하나의 씨앗이 되어서 자기도 모르게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된다.
눈물의 열매이다.
슬픔과 고통의 눈물을 흘렸는데
기쁨과 감격의 눈물로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 시 126:5-6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시고
주님의 책에 기록하시기 때문이다. 시 56:8
그렇기에 눈물이 복되려고 하면 한 가지 조건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울고,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울고,
하나님을 부르면서 울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혼자서 침상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우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화요 저주가 되는 것이다. 호 7:14
그리고 눈물은 우리의 힘과 의지로 흘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나는 주님께 눈물로 주님의 발을 적셨던 그 여인처럼
나에게 그런 눈물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이다.
◑3. 피의 가치 http://blog.daum.net/kyc3235/2129813
피의 가치에 비하면 눈물의 가치나 땀의 가치는 차라리 논하기 쉽다.
눈물의 내적인 열정의 결정체이고, 땀은 외적인 열정의 결정체라면
피는 생명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는 생명과 죽음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피는 철저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벌이 된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피를 쏟으셨고 우리를 위해 기도하실 때에도
그 땀에 피가 묻어나올 정도였다.
그래서 우리가 주님을 위해 눈물을 드리고 땀을 드린다는 것은
주님께 드리는 사랑과 헌신의 열정을 말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주님을 위해 피를 드린다는 것은
곧 핍박 받음과 순교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눈물의 제사도 좋고 땀의 제사도 좋지만
피의 제사는 주님께 가장 큰 영광이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본인 자신에게도 가장 큰 영광이 된다.
왜냐면 순교의 기회는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알았던 성도들은 순교의 순간에 접했을 때
구차히 피하지 않고 감사하며 그 길을 갔었다.
그리고 순교는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이기에
인간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도우심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 순간에 주님을 부인할 수 있는 위험 부담
또한 가지고 있기에, 쉽게 순교를 하게 해 달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도와주심을 믿는다면
감히 순교의 은혜를 나에게 달라고 기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내 몸에서 죽을 수 있는 질병을 발견하고는 죽음을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러나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 8:35) 는
주님의 말씀에 도전을 받고, 그냥 죽는 것은 의미 없고 억울하니,
주와 주의 복음을 위해 목숨을 잃을 수 있도록
나에게 생명을 달라고 간구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수술을 통해 생명을 얻었다.
비록 시간은 지났지만 주님께 했던 그 서약을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주님 또한 그 서원 기도를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감히 나의 피를, 나의 눈물과 땀과 함께
주님께 드리고 싶다고 간구하게 되는 것이다.
◑4. 침의 가치 →http://blog.daum.net/rfcdrfcd/8715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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