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부흥 삼상 7:1~12 06.06.11.
김요셉 목사
사무엘을 통한 이스라엘의 부흥의 역사를 살펴볼 때
특별히 세 지명을 유심히 관찰하면, 깊은 메시지를 얻게 된다.
◑1. 기럇여아림 - 통회 (삼상 7:1~2)
삼상 6장 끝부분에, 빼앗긴 법궤가 블레셋의 세 도시들을 옮겨 다닐 때
거기 법궤가 이르는 도시들마다 재앙이 일어났다.
그 결과 블레셋 사람들은, 하는 수 없이 법궤를 이스라엘로 돌려보낸다.
그래서 7장 1절에, 법궤는 이스라엘의 기럇여아림에 도착하게 된다.
이렇게 법궤가 이스라엘 지경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는 7:2
자그마한 영적 회복의 역사가 시작된다.
▲미신적 신앙이 안 통함을 경험한 이스라엘
앞서 그들이 법궤를 블레셋에 빼앗기게 된 경위가 어떠했는가?
전쟁에 법궤를 앞세우고 나가기만 하면, 법궤가 무슨 부적인 것처럼,
하나님 백성으로서 자기들의 의로움 등은 깡그리 무시하고
법궤만 앞장세우면 전쟁에서 승리할 줄 알았던
미신적 신앙이 완전히 무너져 내림을 경험했다.
← 전쟁에서 지고 법궤를 빼앗겼으니까! 부적의 힘이 안 통했다.
▲기럇여아림에서 다시 회복이 시작되다.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삼상 7:2
법궤가 다시 돌아옴으로써 시작된 그 회복은... 경건의 회복이었다.
‘무조건 하나님은 내 편’이라는 식의 잘못된 신관을 버리고
하나님 앞에 경건한 백성으로 서서 섬기겠다는 회복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이 올바른 신관으로 회복되고
변질된 신앙이 본질적 신앙으로 되돌아오는 데는
아주 필연적인 요소가 있는데...(바로 아래)
▲1. 슬퍼하면서 여호와를 찾았다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삼상 7:2
여기서 ‘사모하니라’의 원어적 뜻은 매우 아리송한 단어이다.
영어성경은 lament(통곡하다, 애가를 부르다)로 번역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에는 슬퍼하며 여호와를 찾았다 로 번역했다.
그러니까 원래 뜻은, 여자가 남자를 사모하듯 여호와를 사모한 것이 아니라
슬퍼하면서 여호와를 찾았다 는 것이다.
통회가 일어난 것이다. 그들이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 했다는,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못하고, 사용(이용)만 했던 그들의 신앙이
20년이란 세월이 흐른 후에, 다시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오면서
그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회복되면서 슬퍼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그들 신앙의 회복의 참된 증거는 - 슬픔과 통곡이었다.
회개의 역사가 바로 부흥의 시작이었다.
고후 7:10절 말씀을 한 번 볼펜으로 노트에 적어보시기 바란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Godly sorrow brings repentance that leads to salvation
and leaves no regret
▲회개는 회복의 전제조건이다.
부흥이 있으려면, 회개가 정말 일어나야 한다.
개인에게, 우리 교회에, 우리 민족에 다시 부흥이 일어나려면
그 부흥의 첫 발은 first step 회개에서 시작된다.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오자
백성들은 하나님을 잘 모르면서
법궤로 상징되는 그 종교적 미신, 종교적 타락 속에 빠져 있던 그들이
이제 하나님을 다시 찾는 모습으로 돌아오는 첫 길목에서
제일 먼저 체험한 것은 슬퍼하며 하나님을 찾는 그런 감정이었다.
침례 요한과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 하실 때에도
“회개하라! 천국이 ~ ” 라고 외치면서, 회개를 제일 먼저 선포하셨다.
우리 안에, 그 동안 하나님과 멀리 떨어져 살았던 삶에 대한
온전한 통회가 없다면 - 부흥을 체험하지 못할 것이다.
▲2. 사무엘이 말씀 선포 사역을 계속하다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옴과 동시에, 표면적으로는 잘 나타나지 않았지만
사무엘은 일찍부터 한 가지 일을 성실하게 하고 있었다.
법궤를 미신적으로 활용하다가 그 결과로 법궤를 빼앗기는 일이 발생했지만
그런 와중에도 그는 성실히 한 가지 사역을 계속하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여호와의 말씀으로 사무엘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삼상 3:21~4:1
법궤가 빼앗기고 여호와의 영광이 떠나가는 상황 속에서
사무엘은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자기에게 임재하시는 체험을 한다.
그리고 그 여호와의 말씀을 온 이스라엘에 성실하게 선포하고 있었다.
▲두 가지가 병행되어야 한다.
지금 법궤를 되찾은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었던 삶에 대한 ①통회 가 일어남과 동시에
② 하나님의 말씀이 회복되고 있었다.
거기서 민족적 부흥이 일어났다. 부흥의 오른팔과 왼팔이다.
이 두 가지가 살아있는 교회는 부흥하는 교회다.
이 두 가지가 살아있는 성도는 부흥을 일으키는 성도이다.
부흥하는 교회는 교인들이 많아지는 교회가 아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헌금이 많이 나오는 교회가 아니다.
부흥하는 교회는 회개와 말씀 이 살아있는 교회이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의 회복은 법궤가 돌아온 기럇여아림이라는
자그마한 동네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불길이 미스바로 옮겨가서 크게 타오르게 되는데...
◑2. 미스바 - 우상을 제함 (삼상 7:3~6)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삼상 7:3
사무엘은 아주 심플한 두개의 메시지를 전했다. 장황하거나 복잡하지 않았다.
①이방신들과 아스다롯을 제하라 (또는 ‘바알과 아스다롯’ 7:4)
②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 섬기라
▲여호수아는 선택의 결단을 통해, 먼저 자기 가정을, 나아가 민족을 구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 한 사람의 결단, 우리 가정의 결단이
나아가 교회적, 민족적 부흥을 가져올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註1)
▲회개는 눈물 흘린다고 되는 것 아니다.
울면서 소리 지르는 자기 카타르시스(감정 해소)로 끝나는 것 -회개 아니다.
물론 회개는 통회하며 우는 것을 포함하지만
그러나 ‘회개’라는 말의 본질적 뜻은 → ‘180도 돌아선다.’이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지적하시고 돌이키라는 것에서
180도 돌아서서 다시는 그 죄를 짓지 않는 것이 (회개의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
- 참된 회개다.
울며 회개하더라도 다시 그 죄에 빠지는 것은 - 회개가 아니라 후회 다.
▲바알과 아스다롯 이란 - 당시 주류 문화
이것은 무당에게 점을 보거나 부처에게 절하는 종교적 차원이 아니다.
당시 바알과 아스다롯은 가나안 지방을 지배하던 주류 문화였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과 아스다롯을 제했다는 것은 삼상 7:4
당시 사회를 지배하던 주류 문화로부터 180도 돌이켰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 각자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 문화의 바알과 아스다롯
으로부터 돌아서는, 완전히 발을 빼는 진정한 회개가 없이는
진정한 부흥은 이 땅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익숙했던 풍습과 가치관들은
지금 21세기 한국적 정황으로 말한다면, 바알과 아스다롯이란
성공의 신화, 부의 추구, 쾌락과 자기 욕망의 충족이다.
(참고로, 바알은 풍요와 다산의 신이다)
그런 것을 쉽게 정당화하고, 쉽게 편승하는 한국 문화를
버리고 돌아서는 그러한 회개의 역사가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부흥은 원천교회에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단번에 순종한 이스라엘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7:4
신기한 것은, 엘리 제사장 때부터 법궤가 블레셋에 빼앗겼다 돌아오는
기간까지 수 십 년 동안, 회개 하지 못했던 것을
사무엘의 말씀 사역이 먹혀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삼상 7:3절에서 우상을 제하라고 사무엘이 말씀을 전하자
7:4절에서 단번에 그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긴다.
구약에서, 이렇게 즉각 순종해서 회개하고 돌이킨 역사도
많이 찾아보기 힘들다.
미스바에서 - 즉각적인 변화와 돌이킴의 역사가 일어났다.
저는 원천교회의 부흥을 기도하고 있다.
그럴려면 오늘 저녁부터 변화의 모습들이 우리 안에 일어나야 한다.
그날 말씀 듣고 그날 실천하는 미스바의 역사가 일어나야 한다. 註2)
▲성령님의 내면적 음성에 순종하라
요즘 제 마음에 하나님이 계속해서 이 메시지를 주고 계시는데
“순종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못 듣는 사람도 있거니와
그 내적 음성을 듣고서도 계속 불순종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결국 성령님이 근심하시다가 떠나버리시는 일이 벌어지는데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
정말 신부처럼, 신랑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순종하게 된다면
우리 교회는 크게 부흥할 것을 믿으시기 바란다.
◑3. 에벤에셀 - 회개 후에 도우심 (삼상 7:7~12)
▲회개 후에도 계속되는 환란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을 미스바로 모이라고 명한다 7:5
그러자 백성들은 금식하며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다고 기도한다. 7:6
미스바의 민족적 통곡과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을 때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을 대적하여 일어나게 된다.
대부분 크리스천들은, 자기가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게 되고 똑바로 살면
어려움과 환란들이 자연히 없어질 줄로 생각한다.
그런 면도 있겠지만,
오히려 회개와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면
우리 원수들이 우는 사자처럼 더 강하게 엄습해 오는 경우도 있다.
우리가 기도하기 시작하면, 사탄도 더 크게 대적하기 시작 한다.
우리가 회개하면, 어려움과 괴롭힘이 더 크게 나타날 수도 있다.
오늘 본문 미스바에서도, 블레셋이 모여서 싸움을 걸어왔다.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에 모였다 함을 블레셋 사람이 듣고
그 방백들이 이스라엘을 치러 올라온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듣고 블레셋 사람을 두려워하여... 삼상 7:7
▲달라진 대처방식
이전에, 하나님과 멀리 떨어졌을 때 그들은 블레셋에 졌다.
그러나 지금 회개와 말씀이 회복된 다음에
여전히 블레셋이 쳐들어 왔지만, 이제 백성들은 기도할 줄 알게 되었다.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삼상 7:8
전에 그들은 무조건 미신적으로 법궤만 있으면 전쟁에 이길 줄 알았던
(진정으로 기도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는 점과 비교하시라.
그리고 번제를 드리며 하나님께 부르짖으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셔서
결국 하나님이 블레셋 사람들을 어지럽게 하시고 패하게 만들어 주셨다.
이전에 환난을 당하면, 블레셋에 져서 수치와 어려움을 당했지만 7:9~10
이제 회개한 후에는, 똑같은 환란이었지만, 당당히 싸워 이기게 된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상황을 역전시키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
註1) 하나님의 부흥은 작은 한 사람을 통해서 시작된다.
한나와 엘가나를 통한, 한 가정의 자그마한 부흥이
이제는 그 가정의 자녀를 통해서, 한 민족의 부흥으로 변하는
놀라운 모습을 보게 된다.
그렇다. 부흥은 항상 그렇게 시작된다.
하나님의 부흥,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큰 지진이나 광풍, 또는 우리가 기대하는 것처럼
무슨 영화장면처럼 우르릉 쾅쾅 하며 거창하게 나타나는 역사가 아니다.
하나님은 종종, 역설적으로, 미세하고 작은 목소리를 통해서
역사하시고 말씀하신다.
즉, 한나와 엘가나의 가정에서 시작되었던 자그마한 부흥,
그 한 가정의 자그마한 회복, 자그마한 기도가
결국은 이스라엘 전체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진정한 민족적 구원과 회복으로
역사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오늘 여러분과 제게 주시는 이 말씀의 의미는 매우 크다.
여러분 한 사람은 결코 작은 사람이 아니다.
여러분 한 가정은 결코 작은 가정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사무엘서는 끊임없이 그 메시지를 주려고 하는 것 같다.
엘가나 집안의 두 부인 중에 작았던 사람, 자식을 못 낳아서 멸시받았던
한나 한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셨다.
엘리의 제사장 집안에서, 홉니와 비느하스와 같이, 이미 탄탄한 기반과
기득권을 가진 사람을 통하지 않고,
작은 한 사람 사무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셨다.
사무엘상은, 사무엘의 스토리에 이어서 사울 왕과 다윗의 스토리가 나온다.
작은 한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의 패턴은 다윗에게서도
계속 이어진다. 베들레헴 작은 마을에서,
이새의 가장 어린 말째 아들 다윗을 통해서...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하나님의 부흥의 역사는 이렇게 작은 사람들을 통해서 일어난다는 것이다.
註2)
‘미스바’ 라는 지명의 뜻은 watchtower 이다.
즉 ‘여호와께서 지켜 보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
참고로, 야곱과 라반 사이에 언약을 세우고 ‘미스바’로 칭한 것은
지명은 같으나 서로 다른 장소이다. 창 31:49
미스바에서 그들은 물을 길러 여호와 앞에 부었다. 삼상 7:6
여기서 물을 길러 부었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너는 초저녁부터 일어나 부르짖으며
네 마음을 여호와 앞에 물 쏟듯 부을지어다 애가 2:19
물 쏟듯 우리 마음을 다 쏟아버리듯
눈물샘이 터지고, 마음이 터져서 기도하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것이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부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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