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의 사람 롬9:1-2 06.06.01. 번역글
Man of sorrow
Gregory N. Barkman
늘 심각했던 대표적 한 사람, 링컨
슬픔 sorrow -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경건한 사람의 한 표식이다.
늘 잃어버린 영혼에 대한 관심으로 슬픔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
- 이 글의 주제다.
▲바울의 마음속 큰 짐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9:1-2
I have great sorrow and unceasing anguish in my heart
성령 충만한 사람, 그래서 항상 기쁘게 살아가야 할 바울에게
가끔씩 느끼는 통증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느끼는 마음의 고통이라니...
말이 되는가?
이 부분에서 질고를 아는 자 man of sorrows 가 생각난다. 사 53:3
자기 문제로 인해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구원 문제로 인해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
우리는 성경에서 예수님이 소리 내어 웃으시고,
늘 웃음을 활짝 띤 얼굴보다는,
슬퍼하시고 탄식하는 모습을 더 많이 도처에서 찾아보게 된다.
그렇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질고를 아는 자의 모습으로 사셨다.
실제로 예수님이 항상 웃으면서 사셨는지 모르지만,
성경의 기록을 보면
항상 웃음보다는 항상 슬픔 쪽으로 더 기운다.
그런 슬픈 모습은 이사야 53장의 예언과도 일치된다.
그런데 묘하게도, 당시에 예수님을 비방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밝은’ 모습을 주로 두각 시켰다.
탐식자요, 포도주를 즐기는 자, 죄인들의 친구로
(사람들과 떠들면서 음식을 배터지게 먹고 즐기는 사람의 이미지로)
예수님을 매도했다. 눅 7:34
그렇다고 예수님이 항상 근엄하고 침울하게 사셨다는 뜻은 물론 아니다.
단지 그 마음에 항상 어떤 갈등(죄인들의 운명과 구속사역)이 있었기 때문에
늘 슬플 수밖에 없었고, 그 심각성이 그 얼굴에까지 비쳐진 것이다.
물론,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빌립보서와 다른 서신에서 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항상 사람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고, 웃음보를 터뜨리며
유쾌하고 떠들썩하게 (싱겁게) 살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슬픔 sorrow -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경건한 사람의 한 표식이다.
우리는, 예수님이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생각하시며 가지셨던 질고 sorrow
바울이 동족을 위해 가졌던 마음의 큰 근심sorrow과 그치지 않는 고통...
오늘날 그런 것들이 점점 퇴색되어 가는 시대에
다시금 예수님, 바울, 구약 선지자들의 탄식소리가 들려지기를 바란다.
또한 그렇게 이웃의 구원과 삶의 문제를 내 문제처럼 돌보느라
스스로 슬픔과 탄식 가운데 사는 사람들에게
주님의 위로와 평안이 힘 있게 임할 것이다.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겔 9:4
▲바울이 고통 중에 얻은 해답 (참고)
로마서 9~11장에서 바울은 정말 안타까운 심정으로
왜 많은 동족 유대인들이 구원을 받는데 실패했는지,
그 이유로 다음 3가지를 논하고 있다.
①선택 election (9장) - 이스라엘이 모두 다 선택받지는 못했다는 것
이스라엘에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9:6-7
그는 모든 혈통적 유대인이,
다 구원받도록 선택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시지만)
②불신앙 unbelief (10장) - 믿지 않았다는 것.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10:16
③남은 자 remnant (11장)- 대부분 불신했지만, 그 중에 남은 자가 있다.
하나님은, 유대인을 시기 나게 하여 이방인을 구원하고자 하고
대신에 유대인들에게는 ‘남은 자’를 남겨두셔서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계획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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