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의 파도를 소망하라 합3:2 06.06.04.
▲내리막길의 기독교
06.05.25일 통계청 발표는, 제게 하루 종일 가슴앓이를 가져다주었다.
마치 ‘주님이 이렇게 아파하시겠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그 날 통계청의 인구주택조사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종교 인구가 지난 10년간 어떻게 변화했는가를 보여주었다.
불교는 현재 1,072만
지난 10년 동안 3.9%, 약 40만 명의 증가를 나타냈다.
천주교는 현재 514만
10년 전 295만에서 74.4%, 219만 명의 증가를 나타냈다.
개신교는 현재 861만
10년 전 876만에서 1.6%, 14만 명의 감소를 나타냈다.
지난 10년 동안 약 1백만 명의 불신자가 전도되어 증가되었다고 보면
같은 기간에, 교회를 떠난 사람들 역시 1백만 명이 넘는다는 뜻이다.
▲부흥의 파도를 소망하자
한국교회는 20년 전까지, 세계교회가 놀라고 부러워하던
부흥하던 교회, 건강한 교회였다.
세계 모든 교회가 침체의 늪에서 허덕이던 그 때에도
한국교회만큼은 유독 잘 성장해 왔다.
그러던 교회가 내적으로 갈등을 겪고
사회적으로 비난과 지탄을 받기 시작하더니, 그 때부터 침체를 겪고 있다.
마치 침몰하는 타이타닉 호, 적의 공격을 받았던 진주만을 연상케 한다.
지금 한국교회는 가장 빨리 급성장했다가
가장 빨리 몰락해가는 교회라는 오명을 갖게 되었다.
한 번 주저앉은 후, 무려 20년 가까이 일어설 줄 모르고 있다.
이제 한국교회는 부흥의 파도를 기도하고, 부흥의 파도를 소망해야 할 때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우리의 죄악 용서 하소서, 이 땅 고쳐 주소서
오소서 진리의 성령님, 이 땅 흔들며 임하소서
거짓과 탐욕, 죄악에 무너진 우리 가슴 정케 하소서 ♪ (부흥)
◑하박국의 소원, 하박국의 기도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
여러분은 공동체에 어려움이 있을 때,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시는가?
①문제로부터 도피하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있다.
②마치 아무 문제도 없는 듯이 덮어버리는 사람도 있다.
③혹자는, 책임을 남에게 전가시키고, 불평, 원망, 비난, 비판하기도 한다.
이 방법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가질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아니다.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킬 뿐이다.
하박국서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가를 보여준다.
▲먼저, ‘하박국’이란 이름의 뜻이 많은 것을 암시해 준다.
- 끌어안는다, 포옹한다, 문제를 가슴에 품는다, embrace 는 뜻이다.
하박국은 어려운 상황에서 도피하거나, 덮어버리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그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註1)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유다 왕 여호야김 때였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인 예언서를 낭독하면, 그 두루마리를 빼앗아
칼로 조각내어 화로불 속에 집어넣던 악한 왕이었다. 렘 36:23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조롱하던 이런 왕을 하나님은 두고 볼 수 없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을 보내서 여호야김 왕을 잡아간다. 이 때
다니엘과 세 친구 등 많은 젊은이들도 포로로 함께 바벨론에 끌려간다.
▲하박국의 소원, 하박국의 기도 (①긍휼하심, ②수년 내에)
이런 암울한 민족적 상황에서 하박국은 기도하고 있다.
하나님, 이 백성을 버리시렵니까? 버리지 마시고 긍휼히 여기시옵소서.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합 3:2
하나님 많이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하오나 당신의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소서.
우리의 선함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성품인 긍휼 때문에
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그렇다. 문제를 보고서,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덮어버리고 지나가면
그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이런 하박국 같은, 문제를 끌어안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해서,
그 가정, 교회, 나라는 치료받고 해결될 것이다.
▲오늘 “부흥”이라는 단어는 유행어가 되었다.
눈에 보이는 거대함, 화려함을 추구하는 ‘값싼 부흥’이 넘실대고 있다.
진정한 부흥은 무엇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흥은 어떤 것인가? - 를 볼 수 있는
예언적 통찰이 필요한 때이다.(아래 3가지로 그것을 보여준다)
▲1. 긍휼하심을 구한 하박국의 기도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말씀을 버리고 타락했다가
몰락해가는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하나님께 매달리고 있다.
하나님, 이 민족이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어
매 맞고 심판받는 사실에 아무런 의의가 없습니다.
사랑받을 가치도 없고, 내세울만한 공로도 없습니다.
하오나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믿고 간구합니다.
내 민족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재건의 기회를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선민으로서 당당히 살아가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그 날, 그 기회를 주시옵소서.
이방의 조롱거리에서 벗어나 영광의 백성이 되는 그 날을 주시옵소서
▲2. 하박국은 수년 내에 부흥 을 기도했다.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합 3:2
“수년 내에” - 이 말을 3:2 한 절에 두 번이나 반복하고 있다.
일년, 이년이 지나기 전에!
우리가 예기치 못했던 짤막한 기간 내에
하나님, 당신의 백성을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옵소서.
이대로 몰락하도록 하나님 버려두지 마시옵소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놀랄 만큼 짧은 시간에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하박국의 기도가 필요한 현실
오늘 우리 사회의 암울한 현실을 바라보며
희망의 빛을 상실한 채 날로 어두워져만 가는 역사를 바라보며
하박국의 기도가 오늘 성도들의 심장 속에서 터져 나와야 되지 않겠는가!
구석구석 병든 채 신음하는 민족을 바라보며
침체와 갈등과 분열로 허덕이는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세속적인 가치로 병들어가고 있는 교우들을 바라보며
생명 잃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바라보며
하박국의 기도를 쏟아내야 될 때라고 느끼지 않으신가.
지금은 한국교회가 공통의 비전을 찾아
함께 부흥의 파도를 보자고
이제는 새로워지자고
이만큼 짓밟혔으면 되었지
또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허덕여야 되느냐고
몸부림하며 외쳐야 될 때라고 여러분 느끼지 않으신가.
▲긍휼 을 간구하는 설교자의 기도
하나님이여, 우리는 가진 것 없는 백성이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 가운데 많은 복을 누렸습니다.
잘 한 것 없는데 교회는 성장했습니다.
조그만 땅덩어리, 지하자원 하나 없는 이 나라가
잘도 성장하고 부흥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만했고, 방만했고
우리가 잘나서 이런 부귀를 누리는 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에 합당한 존재들입니다.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매 맞아 마땅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하오나 이 백성을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우리는 부흥을 간구할 아무런 공로도, 의로움도 없습니다.
가정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넘실대고
가정마다 찬양이 넘쳐 나기를 하나님은 기대했지만
우리 가정들은 상처로, 갈등으로, 분열로, 분노로 넘실대고 있습니다.
복 받을 자격이 없는 가정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오나 이 백성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과 긍휼을 믿습니다.
수 년 내에 부흥케 하시옵소서!
사명을 빼앗아가지 마시옵소서!
한국 교회로부터 촛대를 옮기지 마시옵소서!
저주의 강물이 우리 가정들마다 흘러가지 못하게 하시옵소서.
주여,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 민족을 새롭게 하시옵소서.
▲암울한 고통의 시절에 - 대 부흥이 찾아오다
1907년 대 부흥이 있었던 그 시대만큼
우리 민족사에 고통스러웠던 때는 없었다.
국권은 일본의 손에 통째로 넘어갔고, 황제는 폐위 당했다.
나라를 살려보려던 온갖 몸부림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국민들은 허탈과 절망에 빠져들었다.
세계는 조선을 잊어버리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잊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이 나라를 버리시지 않으셨다.
바로 이 암울한 상황 속에 -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찾아 오셨다.
성령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언제나 절망의 바다 한 가운데 희망의 꽃이 피어나듯이
절망하는 내 백성을 하나님께서 찾아오셨다.
교회 역사학자 백낙준 박사가 지적했던 것처럼
“이것은 필연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이 민족을 쓰시겠다는
하나님의 작정, 하나님의 계획의 표현이었다.”
이것을 믿고, 한국교회는 예배시간, 기도회시간 등 모일 때마다
“성령이 오셨네, 성령이 오셨네!”를 목이 터져라 외쳐댔다.
부흥의 파도를 소망했다.
오늘처럼 암울한 시대에도, 당시와 같은 부흥이 임할 수 있다.
그렇다면 1907년 당시 부흥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을까?
아래 3가지 모습으로 설명할 수 있다.
◑1. 회개의 파도
당시 부흥운동의 그 파도는 어떤 파도였을까?
마지막 때, 하나님께서 이 민족 한 가운데 부흥의 파도를 일으키신다면
그 파도는 도대체 어떤 모습의 파도일까?
성경이 말하는 부흥은 - 도대체 어떤 부흥일까?
먼저 우리가 소망하는 파도는, 회개의 파도이다.
▲부흥의 파도는 회개의 몸부림에서부터 시작된다.
C. S. 루이스는, “타락한 시대에는 죄 문제를 해결하려는 진지한 몸부림이
사라진다.” 라고 말했다. 오늘이 바로 그런 시대인 것 같다.
교회에서도, 자신의 죄 때문에 고민하고 아파하다가 질퍽거리는 눈물을
가슴에 끌어안고 몸부림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워져 가고 있다.
심지어 설교에 ‘죄’라는 말을 쓰지 말도록 당부하기도 한다.
대신 ‘부적응, 행동 장애’ 등으로 표현하라고 한다.
그러나 죄는 죄이다. 다른 표현으로 미화시킬 수 없다.
죄에 대한 해결 역시, 죄를 죄로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국교회가 1907년 그 날의 부흥을 새롭게 다시 보기 원한다면
교회들마다 영적 부흥을 원한다면
우리 시대가 대각성의 기회를 얻고 싶다면
하나님의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저주의 가문들이 축복의 가문들로 바꿔지기 원한다면
침체된 한국교회가 일어나는 모습을 보기 원한다면
짓밟았던 사명을 가슴에 다시 끌어안고 한국교회가 다시 벌떡 일어나는
모습을 보기 원한다면
통일된 한국이 세계열방을 섬기는 영광스런 그 날을 보기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기대하는 바는 - 바로 회개하는 일이다.
우리 모두 죄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정직하고도 진지한 도전이 필요하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각각 회개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행 3:18~19
▲어느 시대나 부흥의 선행조건은 회개였다.
1백 년 전 1903년, 원산 기도회에서 하디 선교사는 강단에 서서
자신이 수 년 동안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지만 아무런 생명의 열매를
거두지 못했으며, 이것은 선교사 자신의 교만 죄 때문이라고,
한국 사람을 형제 자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선교사들의 죄 때문이라고
회개했다.
한 선교사의 진지한 회개가 있었을 때, 회개의 물결은 성도들에게로,
교회들에게로 점점 퍼져나갔다. (註2)
▲1907년의 대 부흥 때 회개 모습
살인과 간음, 상상도 할 수 없는 불길한 일들
도적과 거짓, 서로 상처를 준 일들, 훔친 물건을 돌려주는 일들
1907년 부흥의 시발이 된 그 집회에서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모든 죄들이 다 고백되어졌다.
국법에 의해서 처형이 된다든지, 사형을 당할 수도 있는 끔찍한 죄들이
교회 안에서 토해 내어지고 있었다.
감옥에 가는 것이나 죽는 것은 아무런 두려움이 되지 못했다.
오직 내 죄가 용서받고, 내 죄가 깨끗해져서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가 새로워질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에 성령이 임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하면 한국이 사랑받는 민족이 될 수 있을까?
이런 것들이 그들의 유일한 관심사였다.
집회 시간마다 머리를 바닥에 찧으며 몸부림하는 사람들,
가슴이 뜨거워져서 가슴을 움켜쥐고 바닥을 뒹구는 사람들,
공포와 두려움에 목 놓아 울다가 지쳐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 사람들,
그리고 가슴에 떨어진 성령의 불을 견딜 수 없어 밖으로 뛰쳐나가
절규하다가 다시 뛰쳐 들어와 “선교사님,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물으며 몸부림치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 회개의 용기가 순교의 용기로 이어졌다.
회개의 강물에 뛰어들었던 사람들이, 일제 36년 강점기에
순교의 피바다로 첨벙 첨벙 뛰어들 수 있게 했다.
심령이 찢어진 사람에게 언제나 위로와 용서는 나타나고
부흥은 임하게끔 되어있는 것이다.
부흥의 파도를 소망하자. 그 부흥의 파도는 회개의 파도로 시작한다.
우리의 심령에서 파도가 일어나서 가정으로, 셀로, 교회로,
한국 교회 구석구석으로 전달되어질 때
하나님은 이 민족을 새롭게 쓰실 것이다.
하나님이 이 민족을 통해 위대한 일들을 해 나가실 것이다.
우리는 작은 나라다. 그러나 하나님이 임하시면 성령이 오시면
예수 안에서 우리 민족은 위대한 민족이 될 것이다.
◑2. 성령의 파도
두 번째 우리가 소망하는 파도는 성령의 파도 다.
▲1906년 평양과 서울에서 성령세례를 갈구하는 예배가 열렸다.
여기서 강사로 나오신 선교사님은 웨일즈 지방에서 있었던 부흥 운동,
무디로부터 시작되어 인도 카시아 지방에 까지 이르게 했던 부흥 운동,
세계 도처에서 성령님이 일으키시는 동시 다발적인 성령폭발운동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설교를 마치는 시간에 모든 성도들을 진지하게 바라보며 도전했다.
“조선 땅에서는 누가 성령 충만을 갈구하는가?
원하는 자는 거수하고 기립하라!
조선 땅에서는 누가 하나님 앞에서 쓰임 받기를 원하느냐?
조선 땅에서는 어느 교회가 쓰임 받기를 원하고 성령 충만을 갈구하는가?
원하는 자는 기립하고 거수하라!”
이 때 길선주가 일어났고 거기 모인 모든 성도들이 일어나 울부짖었다.
“성령님 사랑합니다. 성령님 오시옵소서... 한국민족을 용서 하옵소서.
이 민족을 쓰시옵소서. 내 백성을 버리지 마시옵소서.” 울부짖기 시작했다.
성령의 역사는 제한 없이, 교회들 마다, 가정들 마다 임하고 있었다.
▲우리의 문제는 성령을 믿지 않는 것이 아니다. 성령님을 제한하는 것이다.
내가 경험한 범위 내에서만 성령님을 인정한다.
내 이성으로 판단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하나님을 인정한다.
내 믿음의 용량 안에서만 성령님을 받아들인다.
부흥이란 이 한계를 부수는 것이다. 영적 기대치를 높이는 것이다.
한계가 없는 부흥, 제한이 없는 성령을 기대하는 것이다.
◑3. 구령운동의 파도
▲백만인 구령운동
세 번째, 우리가 기대하고 바라는 부흥의 파도는
영혼이 돌아오고 민족이 돌아오는 구령운동으로 이어져 갔다.
감리교회와 장로교회가 함께 총회를 하며 백만 명을 전도하자고 결단한다.
▲내한 선교사님들의 열정
그래서 너도 나도 금년 백만 명을 외쳐대며 복음을 전했다.
한국 땅에 들어와 있던 선교사님들은
오늘 복음을 전하고 내일 죽을 사람들처럼 몸서리치는 추위와 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전도에 미쳐있었다.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안산 발왈(?) 장터에서 복음을 전했지만 열매가 없었다.
그 때 거기서 병들어 죽어가는 젊은이 한명을 발견했다.
그를 놓고서 식음을 전폐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이 젊은이의 병이 낫고 그 가정이 주님 앞에 돌아와
그 마을의 무수한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온다.
대구에서 복음을 전했던 아담스 선교사님은 고국에 보낸 편지 가운데
금년에 나는 하루에 단 한 시간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하나님은 하루에 한 교회씩 마을 마다 나를 통해서 세우고 계신다고 말했다.
탁월한 한국어 실력으로 사랑을 받던 정킨 선교사는
이 교회 저 교회, 이 도시 저 도시에서
정킨 선교사님을 보내 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은 폐렴에 걸려 피를 토하는 시간에도
자기를 찾는 마을을 거절할 수 없어 달려간다.
결국 복음을 전하다 강단에서 피를 토하고 죽는다.
클럭 선교사와 시릴로스 선교사는
한참 복음을 전하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어린 자녀들이 풍토병에 걸려 죽어 갔다.
그렇지만 소중한 자식이 죽는 것도 지켜주지 못했다.
게일 선교사는 아내의 죽음을 슬퍼할 수도 없이
약속된 집회약속을 거절할 수 없어,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뛰쳐나갔다.
의료선교사이자 남편인 윌리엄 홀 선교사를 먼저 천국에 보낸
29세 로제타 홀 사모님은 피 덩어리 아기를 안고 미국에 돌아가서
“남편이 묻힌 땅에 다시 보내주십시오!”
그래서 다시 선교사가 되어 남편이 활동하던 평양에 돌아와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던 여성들을 위해 여자의료원을 세우고
병든 여인들을 치료하며 복음을 전하며 평생을 이 땅에서 살았다.
이 백성들의 영혼을 구하고 죽어간 수 백 명 외국인 선교사의 무덤이
서울 합정동 양화진 곁에 있다.
선교사들의 구령전도 복음열정에 감동된 수많은 한국교회 성도들은
수없이 이 골목 저 골목, 이 마을 저 마을 누비며 복음을 전했다.
어린아이들도 세뱃돈을 모아 전도지를 사서 이 마을 저 마을로 뛰어다녔고
마을을 지나는 나그네의 도포자루를 부둥켜안고
“예수 안 믿으면 지옥가요, 아저씨 예수 믿으세요!” 울며 복음을 전했다.
암울한 민족을 살리는 길은, 정치적 힘을 키우는 것이나
경제적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바로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길이라고
한국교회는 믿었고 또한 역설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고종 황제 전도
이 무렵 선교사들과 한국교회는 황실에 복음을 전하려고 기도한다.
알렌과 아디슨 같은 의료선교사들이 고종황제를 만나는 기회가 잦아지면서
황제에게 직접 복음을 전한다.
성서공회는 정성스럽게 손으로 만든 성경을 황제에게 전했고
황제께서 아침 저녁으로 성경을 읽는다는 소식이 한국교회에 전해지자
한국교회는 황실을 위하여 금식하며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청년들의 자결
그러나 일제는 1907년 7월 24일 고종황제를 권좌에서 강제로 폐위시킨다.
(1907년 6월, 헤이그 밀사 파견사건 빌미로 소위 정미칠조약 맺어 고종 폐위함)
이 사태로 민족적 울분을 달랠 수 없었던 젊은이들은 자결로 항거했다.
그 중심에 바로 교회가 있었고, 교회의 젊은이들이 있었다.
정동감리교회에서 권총으로 자결한 정재봉
대한문 앞에서 자결한 홍태순
샌프란시스코에서 일제침략을 지지한 미 외교관 스티븐슨을 저격한 장윤환
안중근의 거사에 동참했던 우덕순
이완용을 저격한 이재명 (상처만 입힘, 1909)
이들 모두가 기독교 신자들이었다.
▲국채보상운동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는 민족적 수난을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근검절약 운동을 펼쳐 나간다. 그래서 국채보상운동을 펼친다.
(1907년 2월, 대구에서 발단)
▲교회로 몰려드는 사람들
그러자 수많은 젊은이들은, 이 민족의 희망이 교회에 있다며
교회로 밀려들었다. 민초들이 희망을 둘 곳이 없던 막다른 골목에서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기 시작했다.
수많은 지성인들이 이 민족의 희망은 오직 교회에 있음을 믿었고
그래서 교회로 물밀 듯이 밀려 들어왔다.
그 때 대한매일신보는 헤드라인(표제)을 이렇게 뽑았다.
의병들이 무수히 감화받고 기독교에 입교했다.
마치는 말
우리가 부흥을 소망할 때, 그 부흥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백 년 전에 이 땅에 임했던 성령이 다시 이 땅에 임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나를 살리기 위해서 그 처절했던 몸부림이
그와 똑같은 울부짖음이 우리 심장 속에서 쏟아지기를 - 기도하는 것이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한국교회에
수많은 지성인과 청년들과 민초들이
‘이 민족의 장래는 한국교회에 있다’
‘통일한국의 희망은 교회에 있다’ 는 희망을 가지고
교회가 이 민족에 희망이 되어보자는 절규요, 몸부림이다.
▲우간다에 일어난 부흥
최근 지구상에서 가장 비참했던 한 나라가
가장 축복된 한 나라로 변화되는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우간다는 군사독재정권이 지배하면서
정치는 파탄에 빠졌고 경제는 붕괴되었다.
에이즈는 더욱 창궐해 갔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울부짖으며 기도하던 몇 사람이 있었다.
이 기도는 이 교회, 저 교회로 확산되어갔다.
이들을 통해, 하나님은 우간다를 재건하셨다.
새롭게 취임한 우간다 대통령은 전 국민 앞에서 선언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돌아갈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새로워지는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
하나님이 내 백성을 긍휼히 여기시는 길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 국민은 하나님을 함께 믿겠습니다.”
지금 우간다는 아프리카 경제대국 제3위일 뿐만 아니라,
영적 지도국가로 일어나고 있다.
에이즈는 사라져 가고 있고, 깨어진 가정들이 회복되고 있다.
도탄에 빠졌던 경제는 부흥되어졌고, 정치는 맑고 깨끗해졌다.
▲우리가 함께 부흥을 소망하자.
그리스도인들이 새로워지고, 가정들이 새로워지고, 교회가 새로워지고
사회가 맑아지고, 나라가 깨끗해지고, 민족이 새로워지는 부흥을
함께 소망하자!
이 일을 위해서 우리교회가 중심으로 릭 워렌 목사님을 7월에 초대했다.
이제는 교회가 서로 분열하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고 서로 껴안고 하나가 되어서
공통의 비전을 향하여 다 함께 일어서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 날부터 우리 교회의 금식운동이 다른 한국교회에도 퍼지면서
정확하게 앞으로 1년 후, 2007년 성령강림주일을 기하여
한국 땅에 불같이 떨어지는,
장마 비처럼 쏟아지는 성령의 폭발을
우리가 함께 보기를 열망하고 기도하자.
함께 기도하며 함께 달려 나가자.
...............
(註1) - 오늘날의 하박국 선지자들
가정에 어려움이 있을 때, 남편은 아내를 원망하고
아내는 남편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내 탓입니다’며 문제를 끌어안고 기도하는 사람은 가정의 하박국이다.
교회에, 공동체 안에 어려움이 있을 때
아무 문제가 없는 듯 덮어버리거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시키지 않고
그 문제를 끌어안고 기도하는 사람 - 교회의 하박국(선지자)이다.
한국교회에 어려움이 있을 때, 나라와 민족 가운데 위기가 있을 때
그 문제를 가슴에 끌어안고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 - 그가 하박국이다.
(註2) - 원산 부흥 운동
“성령께서 내게 임하시어 첫 번째 명하신 것은 선교사 생활의 대부분을 할애했던
사람들 앞에서 내가 실패했다는 사실과 실패한 원인을 밝히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참으로 괴롭고도 창피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를 선하다 하셨으니 이는 오늘날 보다 많은 사람들을
구하려 하심이라’ 지난 수년간 나는 한국인들에게 죄를 자백하게 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보여 주도록 강조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 때까지는 내 자신이 하고 있는 일과 관련해 지속적이고도
빈틈없는 회개, 고통을 수반한 회개를 한 적은 없습니다.”
하디는 성령체험을 한 다음 주일, 낮 예배시간에 원산교회 회중들 앞에서
자신의 오만과 불신을 공개적으로 자복했다.
한국인 회중들에게는 이것이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 때부터 원산에서 모이는 집회마다 공개적인 회개운동이 일어나
선교사와 교인들 모두에게 성령충만한 영적 갱신의 역사가 일어난다.
하디의 변화는 다른 선교사들을 변화시켰고,
선교사들의 변화는 한국을 변화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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