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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을 통해 본 성령충만의 의미

LNCK 2019. 12. 27. 11:11

 

스데반을 통해 본 성령충만의 의미                 행6:3~10               06.06.04. *원제목 : 영광의 면류관

 

한국 현대사를 섭리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나라를, 사람을 세워서 오늘까지 인도해 오셨다.

그 섭리의 손길을 보면 신묘막측 하다.

 

이승만 박사 - 자유민주주의 정부 수립

우리는 이씨왕조 5백년을 지냈다.

그리고 36년간 일제 식민지의 비극을 경험했다.

그 후 독립이 되어 새 나라를 세우게 되었는데, 왕정 복권은 할 수 없었다.

어떤 형태의 나라를 세워야할까? - 그것을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승만 박사를 이 땅에 초대대통령으로 세워주셨다.

그 분의 역사적 잘못을 지적하는 분들도 많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승만 박사를 통해

혼란기 한국에 자유민주주의가 세워지게 된 것은 - 하나님의 뜻이었다.

 

 

그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백성들이 반대할 때 하야하신 것은 - 자유민주주의 원리를 따른 것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 경제의 기초를 놓다

해방되고 자유민주주의 기초는 세웠지만, 우리의 문제는 가난이었다.

 

제가 70년대 말에 영국에 공부하러 갈 때

그 때 정부가 법적으로 허용하는 외화 소지 액은 1인당 1백 달러였다.

그 이전에는 1인당 50달러만 갖고 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가난했다.

 

그 때 우리 아버님은, 제게 여비에 보태 쓰라고 금가락지를 빼서

제 손가락에 끼워주셨다. 그만큼 우리는 가난했다.

그 때 초청한 영국교회에서 비행기표와 숙식을 제공해주어서 다행이었다.

 

당시 우리가 해외여행을 할 때, 각국 입국심사대에서 우리는 심문 당했다.

한국이 어디에 붙은(위치한) 나라냐?’

돌아가는 비행기표는 소지했는가?’

초청장과 숙식장소도 마치 심문 당하듯이 세밀하게 검사 당했다.

다른 사람은 모두 입장시키고, 한국인은 남겨두었다가 따로 심사했다.

그 정도로 서러웠고, 그 정도로 가난하고 국력이 미약했다는 뜻이다.

 

가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박정희 대통령의 18년 동안 집권을 허용하셔서

이 나라에 경제의 기초를 놓게 해 주셨다.

 

군사정권에서 문민정부로 안정적 발전

갑자기 그 분이 시해당해 세상을 떠나자,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몰랐다.

그 때 하나님은 일단 전두환 대통령을 세워서 국가를 안정시켜 놓으셨다.

      

그 후 곧바로 노태우 대통령을 세워서

군복으로 이 나라 정치 체제가 안정되던 그 색깔을 탈색시켜 놓으셨다.

그리고 국민의 직선투표로 대통령이 선출되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 다음에는 야당투사였던 김영삼 대통령을 세우셨다.

군사정권이 완전히 끝나고 문민정부시대가 시작되었다.

사실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는 시절을 지나왔다.

 

김대중 대통령 - 정권교체와 남북교류

김대중 대통령 때, 한국은 여야의 정권교체가 비로소 이루어졌다.

그리고 남북교류의 화해의 물꼬를 여는 일을 하셨다.

 

노무현 대통령의 치적

역사가 더 흐르면 노무현 대통령의 공과도 정확하게 평가될 것이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공적을 말하자면,

 

돈 안 쓰는 깨끗한 선거문화를 이루었다.(돈을 쓰면 부정선거는 물론이고

선거 때마다 돈이 풀려서 인플레에 이어 부동산 급등 등 홍역을 치러왔다.)

 

재벌들이 분식회계를 할 수 없도록 경영투명화를 이룩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당선되신 것은 최대의 치적이다.

왜냐하면 (3김 시대로부터) 세대교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저는, 부동산 문제도 반드시 해결되어져야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부동산이 너무 올라가는 것은 길게 보면 누구에게도 손해다.

단지, 너무 과격하고, 미움이 그 정책 기조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에

그런 배경만 없다면, 부동산투기억제 제도는 이 땅에 정착되어져야 한다.

 

제가 어렸을 때, 같이 교회 다니던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는데,

하루는 이 분이 독한 감기에 걸려서 감기약을 3일분을 지어왔는데,

그 분은 너무 빨리 낫고 싶었는지, 3일치 약을 한꺼번에 다 드셨다.

감기는 나으셨다. 그런데 얼마 못 가서 그 분은 돌아가시고 말았다.

뭐든지 너무 성급하게 고치려고 하다가는 도리어 문제가 커질 수 있다.

 

이제 국민들은 너무 아슬아슬해서,

안정감 있는 지도자(와 정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그래서 (별로 마음 내키지 않은 분도) 오래 정치를 한 한나라 당을

그처럼 무차별 찍어주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해 본다.

      

하나님은, 아슬아슬하게 지나온 해방 후 과거 역사들을

언제나 함께 하시고 지켜주셨다.

 

 

제도 보다는 사람

 

여러분, 제도가 절대로 그 나라를 바로 못 만든다.

만약 제도가 좋은 이상 국가를 만들었다면

공산주의는 이 세상에서 성공한 나라를 만들었어야 했다.

 

사람 제도를 앞선다.

사람 제도보다 훨씬 영리하고 훨씬 악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도보다) 사람 을 만드셔서 역사를 운행하신다.

 

그런데 공산주의는 제도를 앞세워서 실패했다.

막스는 이 초대교회 유무상통의 사건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가

공산주의 이론을 만들었다.

 

이것은 성경적 사상, 목표와 같다. - 골고루 나누어 다 잘 살게 하자는 것.

그러나 방법이달랐다. - 초대교회는 스스로 자발적으로 나누었으나

막스와 레닌의 공산주의는 제도와 법적 구속력으로 강제로 나누게 했다.

 

아놀드 토인비는 공산주의는 기독교의 잃어버린 페이지다! 라고 말했다.

역사적으로 기독교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갔을 때

교회가 자기 개혁이 없었기 때문에 공산혁명을 당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교회가 부익부 빈익빈을 용인했던 적이 있었다. 귀족과 노예제도를 용인하고

교회는 항상 부자 편, 귀족 편에 섰던 적이 있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회가 무혈로 못한 개혁을, 공산주의가 유혈로 대신해 준 것이다.

 

 

성령 충만한 스데반

 

1. 성령 충만은 - 칭찬 듣는 사람이다. 6:3

좋은 칭찬, 평판은 한두 번 잘 해서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을 계속적으로 잘 해야 듣는 것이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자칫 잘못하면, 충만한 자기 능력을 과신해서

주변 사람에게 교만하고 오만하게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참된 성령 충만은 주변 사람에게 칭찬을 듣는다. 계속적으로.

 

2. 성령 충만은 -능력 있는 삶을 산다.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6:8

 

그가 행한 일을 볼 때,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하나님의 능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들이 일어났다.

성령 충만한 사람의 모습이다.

 

3. 성령 충만은 - 말씀 충만한 삶을 산다.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저희가 능히 당치 못하여 행 6:10

 

7장 스데반의 설교를 보면, 그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 정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의 설교 개요를 요약하면,

 

먼저 족장시대에 하나님이 어떻게 역사하셨는지를 말한다.

아브라함부터 요셉 시대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태동기에,

어떻게 그 족장들과 함께 하셨는지를 말해준다.

 

다음에는, 출애굽과 율법을 형성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광야의 방황, 성막과 이스라엘 건국 이후의 성전을 비교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해 주셨는가를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는 외친다.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역사하실 때

조상들이 한 번이라도 제대로 순종한 적이 있었느냐?

 

모세를 보냈을 때는, 한 걸음에 불평이고, 두 걸음에 원망하지 않았느냐?

그들의 불충성은 우리 민족 역사 전체에 흐르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 마찬가지로 지금 너희도

최후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라고 그는 저들을 향해 도전했다.

 

저들은 그 가르침 앞에 마음이 찔렸다.

그런데 저들은 옛날 선지자들을 죽이듯이 돌로 쳐서 그를 죽이고 말았다.

 

4. 성령 충만은 - 원수를 용서 한다.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행 7:70

 

그 때 하늘이 열렸다.

보좌 우편에 서신 그리스도를 바라보았다. 7:55

그 영광스런 예수님이 친히 보좌에서 일어서서 그를 주목하신 것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미워하는 그 미움의 절정에

주님은 그를 지지하고 환영하고 계셨다.

 

5. 성령 충만은 - 죽음 도 영광스럽다.

 

주님이 영접해 주신다.

스데반의 죽음은 우리에게

내 최후의 임종이 어떤 것인지 가르쳐준다.

주님이 보좌에서 일어나서 죽는 그를 영접해 주셨다. 7:55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3

 

아름다운 예화

예수님은 죽음을 죽음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대신 잔다고 하셨다. 스데반도 잤다.

 

어떤 믿음 좋은 성도님의 외아들이 안타깝게도 불치병에 걸려서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

이제는 등잔에 기름이 다 떨어진 것처럼 며칠이면 세상을 떠날 것 같았다.

이렇게 비참한 아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 아픈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하루는 그 아들이 뜬금없이 엄마에게 이렇게 물었다;

엄마, 죽음이 뭐야?”

 

(만약 내가 그런 질문을 받은 엄마 입장이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 엄마는 심장이 파열될 것 같은 고통을 겪었다.

그 엄마는 말씀을 암송하며 기도드렸다.

 

그 엄마는 먼저 빌 4:6~7에 따라 마음의 평강을 구했다.

 

주여 주의 평강으로 채워 주시옵소서!”

주님께서는 그녀의 마음에 평강을 주셨다.

 

다음으로 그녀는 주님, 제 아들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질문을 했습니다.

죽음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제게 올바로 대답할 지혜를 주시옵소서!”

 

마침내 그녀는 응답을 받았다. 주님께 지혜를 얻었다.

그래서 눈물을 닦고 아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해 주었다.

 

아들아, 네가 지난 날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축구 실컷 하고 돌아와서

피곤해서 신도 벗지 않은 채 엄마 침대 위에 푹 쓰러져 잔 적 있지?

그 다음 날 아침에 눈 떠 보니 너는 어디에 있었니?”

“2층 제 방에서 파자마 입고 눈 떴어요!”

 

누가 널 그렇게 했겠니?”

그거야 힘센 아빠가 저를 안아서 옮겨 놓으셨겠죠!”

 

아들아, 예수님 안에서 죽음이란 그런 것이란다.

이 땅에서 우리가 눈을 감으면,

네 아빠보다 더 힘센 팔을 가지신하나님 아버지께서

찬란한 영광의 천국에 눈 뜨게 해 주시는 것이

바로 죽음이란다...!”

 

여러분, 죽음은 끝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에겐 소망이 있다.

그래서 이 땅에 진실하게 사는 것이 손해 아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이 땅에 내 삶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서

영광스럽게 눈뜰 날이 있기 때문에, 크리스천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스데반의 죽음의 영광

스데반은 돌무더기 속에서 비참하게 죽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스데반의 죽음과 함께,

큰 핍박이 일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몰려들었다. 8:1

 

i) 그렇지만 더 놀라운 사실은, 그 핍박으로 저들은 흩어졌다.

그러자 사마리아와 아시아, 가이사랴 지중해 연안 등

복음전파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

 

ii) 사도들도, 사도 요한을 제외하면, 모두 스데반의 뒤를 따라 순교했다.

 

그를 본 받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iii) 스데반이 죽을 때, 돌로 치는 사람들의 옷을 갖고 있었던 청년이 있었다.

 

스데반은 죽기 직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7:60

 

그 소리는 아마 사람들의 고함소리에 파묻혔을 것이다.

돌에 맞아서 입술이 터져서 더 이상 제대로 말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비참한 얘기로 끝나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그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다.

그래서 주님은, 사울이라는 옷 맡은 청년에게 죄를 돌리지 않으시고

그를 용서해 주시고, 스데반을 대신하는 큰 복음 전도사로 삼으셨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했다.

스데반의 기도가 없었다면, 사도바울의 전도도 없었다.

 

중국 문화대혁명(성경을 불사르고, 교회당을 폐쇄함, 외세를 모두 배척)

그 고통의 시기에 기독교인 숫자는 도리어 엄청나게 증폭되었다.

 

140년 전, 이 땅에 영국의 젊은 청년 토마스 선교사가 배를 타고 와서

제대로 전도도 못 해보고 대동강변에서 목이 베여 순교했다. 개죽음 같았다.

그런데 오늘 날, 이처럼 죽어서 많은 열매를 거두는, 작은 밀알이 되었다.

스데반처럼...

 

이와 같이 스데반은, 살아서도 많은 일을 했지만

죽어서 더 많은 일을 했다...

이것이 성령충만한 크리스천의 삶의 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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