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진 눈물 눅15:1~32 장경동 목사
*원제목 : 하나님의 사랑의 특권, 회개
詩 값진 눈물 / 송명희
세상에서 값진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 우리 죄를 고하고
회개하며 흘리는 눈물이리라
그 눈물은 햇볕에 반짝이는
수많은 진주알 같으리
눈물로 씨를 뿌리면 백배의 결실을 얻으리라
▲양 잘못을 주님 당신의 잘못으로 여기신다.
양 99마리는 우리에 있는데, 한 마리는 잃어버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한 마리는, 주인이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제 발로 걸어 나갔다. 그래서 책임은 목자가 아니라 자기에게 있다.
그런데 목자는 ‘지가 나갔다’ 하지 않으시고 (눅 15:4)
‘내가 잃어버렸다’고 하신다. → 내 잘못을 주님의 잘못으로 여기신다.
딸이 시집가서 살림을 잘 못 하면, 친정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른다.
딸이 살림 잘 못 할 때, 마치 자기가 잘 못해서(못 가르쳐서) 그런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시는 친정어머니의 모습 → 바로 주님의 모습이다.
(반면에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살림 못한다고 구박한다.)
이와 같이 사랑하면, 남의 잘못도 내 잘못이다.
반대로 미워하면, 내 잘못도 남의 잘못이다.(지 잘못이다)
▲잃어버린 양의 교훈
①주님은 99마리 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에 더 관심 가지신다.
한 마리밖에 안 나갔으면... 99마리 남아있으면, 큰 다행 아닌가?
한 마리 찾으러 나갔다가, 남은 99마리 도적맞으면 어쩌겠는가?
그래도 한 마리에 더 관심이 많으시다. 남은 99마리보다...
②목자는 한 마리를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즐겁게 잔치를 벌인다.
양 한 마리 값이 얼마인가? 현지에서 사면 한 20만원 든다.
그런데 이웃 친척 다 불러서 잔치하면, 그 돈보다 더 들 수도 있다.
그러니까 목자는 이해관계 때문에(손해 날까봐) 양을 찾은 것이 아니다.
돈과 상관없이, 사랑하니까, 찾아 나서신 것이다.
③목자는 잃은 양을 찾도록(찾을 때까지) 찾으신다.
저녁 식사 때, 형더러 동생 찾아오라고 보내면, 거의 못 찾고 돌아온다.
그러나 엄마가 찾으러 나가면, 반드시 찾아온다. 찾도록 찾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런 목자가 계심을 감사하며
우리도 이런 목자의 심정을 가져야 할 것이다.
▲주님은 너무 값비싼 대가를 치루시고 소중한 ‘회개의 용서’를 주셨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신자들은 그것을 너무 ‘값싸게’ 취급하고 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서, 용서를 너무 스스로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혹시 죄를 짓게 되더라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지어야 하는데,
“괜찮을거야!” 하면서 쉽게 죄를 짓는다.
“십자가에서 과거 죄, 현재 죄, 미래 죄까지 다 용서해 주셨는데 뭘!”
▲탕자의 회개(의 모범)
①마음으로 돌이킴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 집에는”(눅 15:17)
②입술로 시인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21)
③돌이키는 발걸음(행동)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20)
값싼 회개는 회개가 아니다.
부모에게 자식이, 선생님께 학생이, 값싼 회개를 하는 경우를 본다.
“제가 잘못했다니까요. 잘못하면 용서해 주신다면서요?”(대드는 투로)
참된 회개는 아버지 집에 돌아온 탕자의 회개와 같은 것이다.
④거기에는 용서의 기쁨과 자유를 누린다.
▲하나님은 똑같이 보신다.
우리 마음으로 짓는 죄나, 우리 행동으로 짓는 죄나....똑같이 보신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이길 때도, 마음에서부터 이겨야 하며
회개할 때도, 마음에서부터 진정으로 회개해야 한다.
마귀는 내 죄가 크게 보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작게 보이게 하지만
주님은 내 죄는 작게 보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크게 보이게 하신다.
자식 입장에서 보면, 자기 죄는 부모가 용서 못 해 줄 것 같지만
부모 입장에서 보면, 자식 죄는 부모가 용서 못 해 줄 죄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내 입장에서 내 죄를 보면 안 되고
아버지의 입장에서, 내 죄를 볼 때, 용서 못 받을 죄가 없는 것이다.
그 사랑 앞에 회개로 나아가면 백 퍼센트 용서 받는다.
▲내가 회개했는데도... 자꾸 과거의 죄의 유혹을 받는 것은?
-자꾸 옛 자아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달리는 차에는 그 안에 운전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그 안에 운전수가 있다.
옛날에는 세상적 운전수(옛 자아)가 있었고
이제는 주님이 내 안에서 나를 운전하신다.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다.
옛 자아를 날마다 죽이지 않으면, 과거의 죄성이 자꾸 되살아난다.
바울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옛날에 한 번 죽은 것으로 평생 헌신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죽는다는 각오로 늘 새롭게 헌신한 것이다.
▲평소에 자기 죄가 많다고 느끼는 사람
그래서 평소에 회개할 거리가 많은 사람이... 어떻게 보면 더 의인이다.
진짜 죄인은, 많은 죄를 짓고도, 그것을 스스로 죄로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평소에 회개할 거리가 별로 없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더 죄인이다.
회개를 하고 난 후에도 계속 죄책감이 드는 이유는?
① 마귀가 ‘죄용서’에 대한 의심을 주기 때문이다.
②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해 오지만
느낌이 전혀 뉘우치는 듯한 느낌을 못 받을 때가 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다.
우리가 진실로 회개하면
주님도 그것을 받으셨다는 느낌을 우리에게 주신다.
③ 주님이 잊어버리신 것을 내가 기억하고 괴로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회개한 것은 주님이, 안개의 사라짐같이, 등 뒤에 던지심같이,
깊은 물속에 빠뜨리심같이 ...... 다 잊어버리신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잊어버리는 면도 필요하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기억해서, 다시는 그런 죄를 지으면 안 된다.)
▲범죄 보다 회개가 중요하다.
‘죄를 지었냐/안 지었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개를 했냐/안 했냐’ 이다.
죄를 지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치 않아서 지옥에 간다.
(사람은 죄 짓기 이전에 벌써 죄인이다. 원죄 때문)
그래서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죄 짓지 마라!”보다
"회개하라!“고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죄를 많이 지었냐? 적게 지었냐?’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
‘회개를 했냐? 안 했냐?’로 접근해야 한다.
회개하고 죄용서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는?
①기쁨이다. 구원의 기쁨이, 용서의 기쁨이 있다.
②그 은혜와 빚을 갚아나가는 자발적 신앙생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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