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값진 눈물

LNCK 2019. 12. 28. 12:34

값진 눈물                         눅15:1~32                     장경동 목사

                                                                        *원제목 : 하나님의 사랑의 특권, 회개


   

값진 눈물  /  송명희

세상에서 값진 그것은 무엇일까?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 우리 죄를 고하고

회개하며 흘리는 눈물이리라

그 눈물은 햇볕에 반짝이는

수많은 진주알 같으리

눈물로 씨를 뿌리면 백배의 결실을 얻으리라

 

양 잘못을 주님 당신의 잘못으로 여기신다.

99마리는 우리에 있는데, 한 마리는 잃어버렸다.

정확하게 말하면, 그 한 마리는, 주인이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제 발로 걸어 나갔다. 그래서 책임은 목자가 아니라 자기에게 있다.

 

그런데 목자는 지가 나갔다하지 않으시고 (15:4)

내가 잃어버렸다고 하신다. 내 잘못을 주님의 잘못으로 여기신다.

 

딸이 시집가서 살림을 잘 못 하면, 친정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른다.

딸이 살림 잘 못 할 때, 마치 자기가 잘 못해서(못 가르쳐서) 그런 것처럼

발을 동동 구르시는 친정어머니의 모습 바로 주님의 모습이다.

(반면에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살림 못한다고 구박한다.)

 

이와 같이 사랑하면, 남의 잘못도 내 잘못이다.

반대로 미워하면, 내 잘못도 남의 잘못이다.(지 잘못이다)

 

잃어버린 양의 교훈

주님은 99마리 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에 더 관심 가지신다.

한 마리밖에 안 나갔으면... 99마리 남아있으면, 큰 다행 아닌가?

한 마리 찾으러 나갔다가, 남은 99마리 도적맞으면 어쩌겠는가?

그래도 한 마리에 더 관심이 많으시다. 남은 99마리보다...

 

목자는 한 마리를 찾아 어깨에 메고 돌아와 즐겁게 잔치를 벌인다.

양 한 마리 값이 얼마인가? 현지에서 사면 한 20만원 든다.

그런데 이웃 친척 다 불러서 잔치하면, 그 돈보다 더 들 수도 있다.

 

그러니까 목자는 이해관계 때문에(손해 날까봐) 양을 찾은 것이 아니다.

돈과 상관없이, 사랑하니까, 찾아 나서신 것이다.

 

목자는 잃은 양을 찾도록(찾을 때까지) 찾으신다.

저녁 식사 때, 형더러 동생 찾아오라고 보내면, 거의 못 찾고 돌아온다.

그러나 엄마가 찾으러 나가면, 반드시 찾아온다. 찾도록 찾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런 목자가 계심을 감사하며

우리도 이런 목자의 심정을 가져야 할 것이다.

 

주님은 너무 값비싼 대가를 치루시고 소중한 회개의 용서를 주셨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신자들은 그것을 너무 값싸게취급하고 있다.

 

우리는 죄를 지으면서, 용서를 너무 스스로 남용하는 경향이 있다.

죄 짓는 것을 두려워하면서,

혹시 죄를 짓게 되더라도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지어야 하는데,

괜찮을거야!” 하면서 쉽게 죄를 짓는다.

십자가에서 과거 죄, 현재 죄, 미래 죄까지 다 용서해 주셨는데 뭘!”

 

탕자의 회개(의 모범)

마음으로 돌이킴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 집에는”(15:17)

 

입술로 시인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21)

 

돌이키는 발걸음(행동)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20)

 

값싼 회개는 회개가 아니다.

부모에게 자식이, 선생님께 학생이, 값싼 회개를 하는 경우를 본다.

제가 잘못했다니까요. 잘못하면 용서해 주신다면서요?”(대드는 투로)

 

참된 회개는 아버지 집에 돌아온 탕자의 회개와 같은 것이다.

거기에는 용서의 기쁨과 자유를 누린다.

 

하나님은 똑같이 보신다.

우리 마음으로 짓는 죄나, 우리 행동으로 짓는 죄나....똑같이 보신다.

그래서 우리는 죄를 이길 때도, 마음에서부터 이겨야 하며

회개할 때도, 마음에서부터 진정으로 회개해야 한다.

 

마귀는 내 죄가 크게 보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작게 보이게 하지만

주님은 내 죄는 작게 보이고, 하나님의 사랑은 크게 보이게 하신다.

 

자식 입장에서 보면, 자기 죄는 부모가 용서 못 해 줄 것 같지만

부모 입장에서 보면, 자식 죄는 부모가 용서 못 해 줄 죄가 없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내 입장에서 내 죄를 보면 안 되고

아버지의 입장에서, 내 죄를 볼 때, 용서 못 받을 죄가 없는 것이다.

그 사랑 앞에 회개로 나아가면 백 퍼센트 용서 받는다.

 

내가 회개했는데도... 자꾸 과거의 죄의 유혹을 받는 것은?

-자꾸 옛 자아가 살아나기 때문이다.

 

달리는 차에는 그 안에 운전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그 안에 운전수가 있다.

옛날에는 세상적 운전수(옛 자아)가 있었고

이제는 주님이 내 안에서 나를 운전하신다.

 

그래서 바울은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다.

옛 자아를 날마다 죽이지 않으면, 과거의 죄성이 자꾸 되살아난다.

바울의 위대함이 바로 여기에 있다.

옛날에 한 번 죽은 것으로 평생 헌신한 것이 아니라

날마다 죽는다는 각오로 늘 새롭게 헌신한 것이다.

 

평소에 자기 죄가 많다고 느끼는 사람

그래서 평소에 회개할 거리가 많은 사람이... 어떻게 보면 더 의인이다.

 

진짜 죄인은, 많은 죄를 짓고도, 그것을 스스로 죄로 느끼지 못한다.

그래서 평소에 회개할 거리가 별로 없는 사람은... 어떻게 보면 더 죄인이다.

 

회개를 하고 난 후에도 계속 죄책감이 드는 이유는?

마귀가 죄용서에 대한 의심을 주기 때문이다.

 

진정한 회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친구 사이에도, ‘미안하다고 사과해 오지만

느낌이 전혀 뉘우치는 듯한 느낌을 못 받을 때가 있다.

 

하나님은 인격이시다.

우리가 진실로 회개하면

주님도 그것을 받으셨다는 느낌을 우리에게 주신다.

 

주님이 잊어버리신 것을 내가 기억하고 괴로워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회개한 것은 주님이, 안개의 사라짐같이, 등 뒤에 던지심같이,

깊은 물속에 빠뜨리심같이 ...... 다 잊어버리신다.

그러나 사람은 그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잊어버리는 면도 필요하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기억해서, 다시는 그런 죄를 지으면 안 된다.)

 

범죄 보다 회개가 중요하다.

죄를 지었냐/안 지었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회개를 했냐/안 했냐이다.

죄를 지어서 지옥 가는 것이 아니라, 회개치 않아서 지옥에 간다.

(사람은 죄 짓기 이전에 벌써 죄인이다. 원죄 때문)

 

그래서 주님은 세상에 오셔서 죄 짓지 마라!”보다

"회개하라!“고 선포하셨다.

 

그러므로 죄를 많이 지었냐? 적게 지었냐?’로 접근해서는 안 되고

회개를 했냐? 안 했냐?’로 접근해야 한다.

 

회개하고 죄용서 받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증거는?

기쁨이다. 구원의 기쁨, 용서의 기쁨이 있다.

그 은혜와 빚을 갚아나가는 자발적 신앙생활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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