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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을 공동체적으로 준비하라

LNCK 2019. 12. 28. 13:21

부흥을 공동체적으로 준비하라!                9:1-6, 22-24                         출처


 

1.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공동체다.

 

미시적 영성과 거시적 영성

저는 오늘 여러분에게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경제학에는 미시경제학이 있고 거시경제학이 있다.

영성에도 미시적인 영성이 있고 거시적인 영성이 있다.

 

미시적인 (微視:세밀하게 봄)영성은 한 개인의 변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거시적인 (巨視:크고넓게 봄)영성은 하나님 나라와 열방회복에 초점이 있다.

 

우리가 나무를 보면서 숲을 볼 수 있어야 하듯이,

두 가지 영성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특별히 여러분 거시적인 안목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한국의 개신교도들의 가장 큰 취약점 중 하나는

시각이 너무 근시안적이라는 것이다.

자기 앞에 놓여 있는 문제 밖에 생각할 줄 모른다는 것이다.

신앙이 매우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경향이 있다.

(미시적 영성에만 주로 머물러 있다.)

 

그러나 우리가 믿고 섬기는 하나님은 크신 하나님이시다.

온 우주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도

생각하는 것이 넓고 커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공동체와 뗄 수 없는 존재이다.

또한 우리가 좀 크게 생각해야 하는 이유가 또 있다.

우리가 당하는 고통과 좌절은 결코 나 혼자만 잘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도 IMF 한번 터지면

나의 노력과 상관없이 고난이 나의 삶 속에 닥쳐온다.

 

따라서 우리는 나 자신을 위해서라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이 땅의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와 이 나라와 민족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함께 하는 공동체인 것이다.

 

내가 나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있는 사이에

마귀는 점점 더 우리 주위의 사람들을 야금야금 점령해 갈 것이며,

사회는 점점 더 강퍅하고 악해져가고 있다.

그런 사회에서는 나 혼자 아무리 거룩한 삶을 살아도

고통과 핍박을 피해가기 어려울 것이다.

 

여러분,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공동체를 먼저 생각할 수 있기를 바란다.

집에서는 나 개인적인 행복보다는 가족의 행복을 먼저 생각하며,

교회에서는 나 개인적인 유익보다는 교회의 유익을 먼저 생각하며,

이 나라의 국민의 한사람으로서는 나 개인의 이익보다는

나라의 질서와 안녕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질 때

진정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점점 더 밝아질 것이며

우리는 참된 행복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

 

지체의식 :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공동체적이다.

기독교 신앙은 결코 개인주의적이지 않다.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것이 기독교 신앙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있는 지체들

이라고 말한다. 지체는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다.

지체는 결코 자기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지체는 철저하게 다른 지체들과 몸 전체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지체로 사는 법을 배우고 훈련해야 한다.

즉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개인적인 성공보다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는 삶을 훈련해야 한다.

 

그리고 나 자신만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체들을 위해 사는 법을 훈련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해서 이 땅에 임하게 되는 것이다.

 

개인주의는 마귀의 전략

이것을 알고 있는 마귀는 끊임없이 개인주의적인 영성과 개인주의적인

삶의 방식을 개발해서 퍼뜨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TV 문화와 인터넷 문화가 그 대표적인 예다.

TV와 인터넷에 익숙한 오늘날 세대들은 혼자 놀기의 진수를 보여준다.

우리는 이러한 마귀의 전략에 저항해야 한다.

우리는 공동체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며,

공동체 지향적인 삶의 방식들을 세상에 흘러 보내야 한다.

 

 

2. 부흥은 공동체적으로 일어난다.

 

오늘 제가 부흥을 이야기하려는 이야기도 그런 차원에서 말씀드리는 것이다.

여러분 부흥을 간절히 소망하며 부흥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란다.

이 땅의 부흥이 곧 여러분의 개인적인 행복과 직결되어 있다는

거시적인 안목을 가지고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란다.

 

오직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만이 이 땅을 새롭게 변화시킨다.

오늘날 우리 한국사회가 얼마나 성적으로 타락했으며,

도덕적으로 규범과 질서가 완전히 무너졌으며,

각종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으며, 남북이 아직 군사적으로 대치한 상태에서

언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 가운데 놓여 있다.

 

이러한 모든 문제들을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 땅에 하나님의 거대한 성령의 불길이 일어나야 한다.

 

18C 영국의 거시적/공동체적 변화

18세기 초 영국은 종교적인 갈등과 사회적인 혼란이 극심했다.

그 때문에 술 취함, 싸움, 도박, 자살 등이 전염병처럼 돌았다.

음주량이 급속도로 증가해서 18세기 초에는 10배나 늘어났다.

천연두로 말미암아 13명 중에 한 명꼴로 죽었다.

 

장례식 횟수가 세례식 횟수보다 두 배나 많았다.

이처럼 사회가 붕괴되어 갈 때 요한 웨슬리가 성령을 받았다.

그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 하니 온 영국 사회가 뒤집어졌다.

 

술주정뱅이는 60%나 감소했고, 죄수는 40%나 줄어들었다.

토마스 카알라일은 말하기를

웨슬리의 영적각성운동은 영국을 폭력혁명에서 구출해 주었다고 했다.

안 그러면 영국에 유혈혁명이 일어날 판인데,

웨슬리가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해서

온 영국이 (전체로, 공동체적으로) 회개하고 변화를 받았다.

 

백 년 전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1894년 청일전쟁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북녘 땅의 평양은

기생과 환락의 도성, ‘한국의 소돔으로 불렸다.

그런데 불과 15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07년에 평양은

거룩함으로 불타는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이런 놀라운 변화가 가능했는가?

 

1903년부터 원산에서 불이 붙은 성령의 부흥운동이 계속 남진하면서

일본의 식민 통치 하에서 가난과 상처로 멍든 민족을 치유하고

꿈을 회복해 주었다.

 

그때부터 한국교회는 성령충만한 부흥을 통하여

절망당한 사회에 소망을 주었다.

성령의 부흥운동이 민족과 나라의 재건운동을 가져다준 것이다.

 

해리스 선교사가 한 말을 그대로 인용하면,

수 천 명이 글 읽기를 배우기 시작했고, 술주정꾼, 도박꾼, 도적놈,

오입쟁이, 살인, 도박, 광신적 유학자들, 구태의연한 불교신도들,

수천 명의 잡신 숭배자들이 새 사람으로 바뀌었으니

사회가 달라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서 학교가 설립되고, 문맹 퇴치 운동이 일어나고, 병원이 설립되고,

금주 금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으며,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무속과 우상숭배에서 해방되고, 일제 식민지 정책에 대항할 민족의식이

고취되었고, 독립운동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한 마디로 교회가 부흥하는 길만이 민족을 살리고

사회를 새롭게 변혁시킬 수 있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다.

우리 한국 사회가 변화되려면 성령바람이 불어와야 한다.

아무리 사회 정화운동을 해도 소용이 없고,

아무리 법을 개정하고 사회 제도를 개혁해도 역시 사람이 달라져야지,

사람이 달라지지 않으면 아무리 법과 제도를 개정해도 안 된다.

우리 한국이 변화되려면 성령 바람 불어와야 되는 것이다.

성령의 불이 임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 불을 간절히 사모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불을 받아야 한다.

불이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힘 있게 할 수 있다.

불이 없는 사람들은 주님의 일 하기가 얼마나 두렵고 힘든지 모른다.

나라와 민족적으로도 성령의 불이 임해야 한다.

그래야 나라가 변하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3. 불과 기도

 

성막의 시작은 불이었다.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9:23-24)

 

성전의 시작도 불이었다. “솔로몬이 기도를 마치매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대하 7:1)

 

교회의 시작도 불이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2:1, 3)

 

기독교는 불의 종교다. 신앙의 본질은 뜨거움이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려면 불을 받아야 한다.

목사가 목사다워지려면 불을 받아야 한다.

성도가 성도다워지려면 불을 받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성장이 멈춘 것은 불이 꺼졌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하는 길은 한국 교회에 오순절이 임하여

성령의 불이 다시 타오르게 되는 것뿐이다.

 

기도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령의 불을 이 땅에 가져올 수 있는가?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이 일으키시는 부흥을 준비할 수 있는가?

찰스 피니는 부흥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것은 기도와 연합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도 부흥을 경험하고 싶으면, “명백한 동의와 연합

그리고 특별한 기도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오순절 날 다락방에 하늘로부터 성령의 불이 임하였고,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다.

베드로가 설교했을 때 한번에 3천명이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왔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러한 놀라운 부흥을 어떻게 준비했는가?

그들은 어떻게 해서 하늘로부터 성령의 불을 가져올 수 있었는가?

그 비결을 우리는 사도행전1;14에서 찾을 수 있다.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첫째는 마음을 같이 했다.

둘째는 전혀 기도에 힘썼다.

그것이 부흥을 준비하는 길이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불을 이 땅에 다시 가져오는 길인 것이다.

 

저는 우리 교회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새벽기도 운동이

부흥의 징조라고 믿는다.

그러나 기도의 불길이 더욱더 일어나야 할줄 믿는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그의 사역에 세 가지 열쇠가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첫째 기도요, 둘째도 기도요, 셋째도 기도이다라고 했다.

우리가 초대교회와 같은 기적적인 부흥을 맛보기 위해서는

우리는 더욱더 기도에 힘써야 할 것이다.

기도의 부흥이 일어나도록 기도하시기 바란다.

 

 

4. 속죄제 번제 화목제(공동체)

 

그러나 기도만으로는 2% 부족하다.

오늘 본문을 통해 우리는 그것을 살펴볼 수 있다.

 

본문은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위임받은 후 첫 번째 직무를 수행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의를 기울여서 볼 필요가 있는 것은 제사의 순서이다.

제사는 속죄제 번제 화목제 순서로 드려졌다.

그리고 그 모든 제사가 드려진 이후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불이 임하여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태워버렸다

(23-24).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저는 분명한 성령의 음성이 들려왔다.

즉 그것은 한국교회에 대한 비전이었다.

 

위의 세 가지 제사는 구약뿐만 아니라 신약시대에도 동일하게 중요하다.

위의 세 가지 제사를 온전히 드릴 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고

하나님의 불이 임한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적으로도 그렇고, 나라와 민족적으로도 그렇다.

 

먼저 속죄제를 드려야 한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속죄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구원받은 것만으로는 부흥을 경험할 수 없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교회적으로도 그렇다.

 

그 다음에 우리가 드려야 할 제사는 번제.

번제는 나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헌신의 제사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렸던 1천 번의 제사가 바로 일천번제였다.

 

우리는 속죄제를 드림으로써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

그리고 번제를 드림으로써 우리는 주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리는 제자가 되기 전에는

성령의 불을 받을 수 없다. 그리고 부흥의 주인공이 될 수 없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려야 할 제사가 바로 화목제.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하늘로부터 불이 임하는 것은

화목제를 드리고 난 다음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시기 바란다.

 

아론이 백성을 향하여 손을 들어 축복함으로

속죄제와 번제와 화목제를 필하고 내려 오니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백성에게 축복하매

여호와의 영광이 온 백성에게 나타나며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 지르며 엎드렸더라. (9:22~24)

 

제물도 다른 두 제사에 비해 양이 많다는 것도 눈 여겨 보시기 바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속죄제를 위해서는 숫염소를 드리고,

번제를 위해서는 일 년 되고 흠 없는 송아지와 어린 양을 드렸지만,

화목제를 위해서는 수소와 숫양을 드렸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화목제가 그만큼 더 큰 헌신을 요구한다는 뜻이다.

 

여러분, 내 자신을 주님께 드리는 것은 나만 헌신하면 된다.

그러나 공동체의 화목을 이루고 하나 됨을 이루기 위해서는

나만 결심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헌신과 더 많은 눈물과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화목제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화목제를 드려야만 하늘로부터 불이 임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즉 우리가 하나 됨을 이루어야 불이 임하고 부흥이 임한다는 것이다.

................

 

)화목제가 다른 제사와 다른 특징은

번제는 모든 제물이 주님의 것이고(껍질 제외)

소제는 대부분 제사장에게 드려지는 반면

화목제는 주님과, 제사장과, 제사를 드리는 사람에게까지도 나누어진다.

그리고 식사가 제사의 한 부분이었다.

 

함께 먹는다는 자체가 화목을 의미한다.

그런데 여기서 화목은 먼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화목을 뜻한다.

그러나 넓게 보면, 사람과 사람사이의 화목도 뜻할 수 있겠다.

원래 사람과 화목됨 없이 하나님과 화목됨도 없으니까.

성찬도 모두 같이 먹는 것인데... 그것은 화목과 서로 하나됨을 의미한다.

 

 

5. 시대의 흐름

 

속죄제의 시대

한국교회는 60-70년대에 양적인 측면에서 큰 부흥을 이루었다.

즉 교인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여기에는 순복음교회의 성령운동이 크게 기여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은 속죄제까지다.

즉 예수 믿고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것으로 끝인 줄 안다는 것이다.

더 이상의 믿음의 진보가 약했다.

 

60-70년대에 한국교회를 대표해서 속죄제를 드린 하나님의 사람은

조용기 목사님이었다. 그는 한국교회 내에 성령운동을 일으킨 주역이었고,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회개하고 돌아오는 역사가 있었다.

 

번제의 시대

그러나 80년대 들어서면서 한국교회 안에 제자훈련이 불같이 일어나면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는

주님의 제자들이 많이 일어났다.

그 결과 한국교회 안에는 많은 사역들이 일어났고,

목회자와 선교사들도 많이 일어났다.

그리고 평신도들도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그러나 그 퍼센트(%)는 여전히 소수이기 때문에

한국교회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영광이 약한 것이다.

 

이러한 영적인 흐름을 읽고 80년대에 한국교회의 성숙을 부르짖으며,

한국교회 가운데 제자운동을 일으킨 하나님의 사람이 옥한흠 목사님이었다.

즉 그는 80-90년대에 한국교회를 대표해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 한국교회 안에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 제자들이 많이 일어났고

한국교회 또한 좀 더 성숙한 모습으로 변화되기 시작하였다.

뿐만 아니라 사역 또한 헌신된 일꾼들로 말미암아 점점 전문화되고

그 영역 또한 확장되었다.

 

화목제의 시대가 도래하다

2000년대에 들어서서 이제 한국교회가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제사는

화목제라고 저는 믿는다.

물론 계속해서 속죄제와 번제도 드려져야 하지만,

집중적으로 드려야 할 제사는 화목제다.

그 이후라야 우리는 한국교회 위에 임하실 하나님의 영광, 성령의 불을

기대할 수 있다.

 

이 마지막 시대에 한국교회를 대표해서 하나님께 화목제사를 드릴

하나님의 사람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과업은

교회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제도상 일치를 꼭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님)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한국교회 가운데 가득 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국교회 가운데 다시 한번 성령의 강력한 불이 임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란다.

그리고 한국교회의 일치와 연합을 일구어 낼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

나타나기를 기도하시기 바란다.

 

카를로스 아나콘디아를 잘 아실 것이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평신도 복음전도자. 성공적인 기업가이다.

1979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소명을 깨닫고 곧바로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결단한다.

1982년부터 복음전도를 위한 대중 집회를 공개적으로 시작하여

지금은 전 세계적으로 부흥 집회를 인도하는데,

강력한 성령의 기름부으심과 표적과 기적이 따르고 있다.

그의 사역을 통해 아르헨티니나에서만 2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아래는 그의 주장이다;

 

나는 각지에서 천막을 치고 전도 집회를 시작하며

한 가지 중요한 비결을 발견했다.

많은 영혼이 구원받고 도시를 그리스도께로 되찾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사랑 안에서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개인적인 혼자만의 기도가 필요하지만,

범 도시적인 승리를 위해서는 교회가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범 도시적인 연합과 일치가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범국가적인 승리와 부흥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교단과 교파를 초월한 교회의 범국가적 연합이 선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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