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te[#pg_il_#

분류 없음/2006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LNCK 2019. 12. 28. 17:23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막12:42                      도서 스크랩

 

한 가난한 과부는 와서 두 렙돈 곧 한 고드란트를 넣는지라12:42

 

무하마드 유누스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저는 2003년도에 이 책을 읽어 보고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무슬림 회교도 한 사람은, 기독교의 어느 성인보다 위대한 일을 했고

기독교의 어느 선교사보다 더 탁월한 업적을 남겼습니다.

 

눈을 씻고 다시 봐도 그는 무슬림이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이런 일을 열심히 안 하니까, 구레네 리비아 지방 시몬처럼

하나님은 이방인을 들어서까지 사용하시는 것은 아닐까요?

 

최근 [KBS 수요기획]에서 무하마드 유누스 박사를 다루어 기뻤습니다.

http://www.kbs.co.kr/1tv/sisa/wedplan/vod/1380598_1068.html

  

동영상이 안 되는 나라 거주민들을 위해서 전문을 녹취했습니다.

글을 읽으시면, 45분짜리 동영상을 5분만에 파악할 수 있어 좋습니다.

 

    


7년 전만 해도 시린 낙달의 식구들은 세 끼 밥을 먹지 못했다.

그들에겐 땅도 없었고, 일도 없었고, 먹을 것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모든 것을 가졌다.

땅도 샀고, 집도 지었으며, 먹을 것도 넉넉하다.

대나무 공예품을 만들고, 양어장을 해서

한 달에 2백 달러 이상을 벌고 있는 것이다.

 

가난하다는 것은 단순히 돈이 없다는 문제가 아니다.

가난은 굶주림과 질병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모든 권리를 빼앗긴다는 것을 뜻한다.

그것은 늘 죽음의 위협 속에 살아간다는 뜻이며

실제로 죽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루 1달러 이하로 생계를 유지하는 극빈층이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10억 명에 이른다. 가난으로 죽어가는 아이들은 매일 3만 명에 이른다.

우리는 그들을 바라보며, 가난을 퇴치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 말은 옳은가?

 

아직도 이 세상에서 가난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 문제를 외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하마드 유누스

 

은행 직원이 마을을 직접 방문한다.

 

방글라데시 치타공 지역의 작은 농촌 마을 보루와의 예

매주 월요일 아침 그라민 은행 직원이 이 마을을 찾아온다.

은행 직원이 직접 마을로 와서, 이동식 은행 창구(책상 하나)를 개설한다.

 

이 시간, 마을 아낙네들은 대출 받은 원금 일부와 작은 이자를 상환한다.

거기서 새로운 대출 신청도 받는다.

이것이 세계에 유례가 없는 그라민 은행 운영 방식이다.

 

그라민 은행은 반드시, 대출신청자가 가난해야만 돈을 빌려준다.

그것도 은행에 담보로 잡힐 것이 전혀 없을 만큼 가난해야 한다.

 

니하르발라 여인

이 마을에 니하르발라 여인은 젖소를 사려고 15천타카23만원 대출받았다.

이 가정은 특정 직업이 없고, 가끔 남의 농사일을 돕는 것으로

하루 두 끼만 먹으며 4식구가 생계를 근근이 이어가고 있었다.

부엌에는 비축된 식량도, 조리기구도 있을 리 없다.

아궁이위에 솥 하나가 달랑 걸쳐 있을 뿐이다.

그녀는 아무 가진 것도 없고, 도리어 병든 자식을 부양하며 살아야 했다.

그래서 그녀는 대출자격을 확실히 갖춘 셈이었다.세상 금융과 반대다.

 

그녀(50대 여인)는 대출금으로 이제 처음으로 자기 소를 갖게 되었다.

송아지도 딸려 있었다.

이제 그녀에게 아무도 빈털터리 미하르발라!”라고 말하지 못할 것이다.

오늘 산 젖소는 우유를 짜서 먹을 수도 있고, 우유를 팔 수도 있고

나중에 송아지를 낳아 큰 돈을 벌 수 있게 해 줄 것입니다. 저는

돈이 한 푼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이렇게 소를 사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이렇게 그라민 은행은 미하르발라 여인에게 자신의 삶을 재창조할

기회를 준 것이었다.

 

물고기가 아니라, 그물을!

돈이 아니라, 삶에 대한 희망을 주는 것이다.

 

가난해야만 돈을 빌려 주는 은행!

담보 없이 돈을 빌려 주는 이상한 은행 그라민!(Grameen, 마을이라는 뜻)

이 은행의 대출금은 소액으로 제한되어 있지만

그럼에도 지금 방글라데시에서 그라민은 희망의 이름이 되었다.

이 은행 여성 조합원들의 모임(새마을 운동 같은)은 새로운 희망을 전파하는

진원지가 되었다.

 

"언제나 항상 훈련된 삶, 단결, 용기, 근면 등 구호를 외치는 여인들"

 

(일동 구호 제창, 마을 여성들 오른손을 불끈 쥐고)

하나가 되어서 열심히 훈련하자!

그것이 우리의 목표다.

가족의 발전, 우리가 책임진다!

그라민 은행 그라민 은행

우리의 은행 우리의 은행

 

이 제도가 세계로 확산되다

은행이 거부하는 빈민들에게, 소액이지만 담보 없이 대출해 주는 제도!

이른 바 마이크로 크레딧’(소액대출제도)는 오늘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캄보디아, 필리핀, 모잠비크 등 세계 수 십 개 국으로 확산 전파되었다.

 

그 성과를 눈여겨 본 UN은 마침내 2005년 한 해를

빈곤 퇴치를 위한 마이크로 크레딧 소액대출 의 해! 로 선언하기에 이른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 총장 연설>

무담보 소액금융은 여러 나라에서 빈곤과 기아에 대항하는

효과적인 무기임이 입증되었습니다.

무담보 소액금융은 자선charity(무조건 퍼 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권리와 서비스를 동일하게

세계의 저소득 가정에게도 제공하는 것입니다.”

 

가장 가난한 국민 방글라데시

방글라데시는 최근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가난한 나라다.

1인당 국민소득은 430달러에 불과하다.

14천만 국민 중, 11천만 명이 하루 2달러 이하로 생계를 이어간다.

그 중 5천만 명 이상은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연명하고 있다.

 

하루 두 끼 식사가 꿈이 될 만큼 가난한 나라!

이런 상황에서 무담보 소액 대출 운동이 태동했다.

 

빈민들은 신용이 없다는 이유로 늘 은행 대출에서 소외되어 왔다.

무담보 소액 대출 제도는 그런 통념을 뒤집는 금융의 혁명이었다.

 

무하마드 유누스(창시자)

빈곤을 퇴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그는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는 인물이 되었다.

-1940년 방글라데시 치타공 출생

-미국 반더빌더 대학 경제학 박사

-1961~1977 치타공 대학 교수

-1976년 그라민 은행 창설

-1984년 막사이사이 상 수상

-1994년 세계식량 상 수상

-1995년 아시아위크 선정 위대한 아시아인 20에 선정됨

-2004년 세계경제혁신 상 수상. 세계경제신문협회 제정

 

유누스 박사는 빈곤과 싸우고자 하는 세계 모든 사람들에게 말한다;

나는 빈곤이 빈민들 스스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발견

했습니다. 빈곤은 그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빈곤은 우리가 설립한 금융기관이 만들었고

우리가 추구하는 정책이 만들었고

우리가 갖는 생각(컨셉)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우리는 되돌아가서,

빈곤이 만들어낸 기관을 바꾸고

빈곤을 만들어낸 정책을 바꾸고

빈곤을 만들어낸 생각(컨셉)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라민 은행의 탄생 역사

1974년 그라민 은행을 창설하기 전까지 그는 한 명의 대학 교수였다.

그는 미국에서 돌아와 고국 치타공 대학에서 경제학 강의에 전념했다.

그 해 1974, 국토의 절반이 물에 잠기는 대 홍수가 일어났다.

수재는 절대적인 식량난과 기아를 불러왔다.

거리엔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그 해 한 해 동안 방글라데시에서는 10만 명이 굶어죽었다.

그 현실 앞에서 유누스 교수는 깊은 무력감과 회의감에 빠진다;

길바닥에서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경제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그는 사람들의 실제 삶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가난한 사람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고, 진짜 경제가 무엇인지 알기 원했다.

대학교 인근의 조브라 마을을 들여다보았다.

방글라데시의 가장 흔한 부업은 대나무 제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조브라 마을 사람들도 대나무 제품을 만들어 내다 팔고 있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들은 전혀 돈을 벌지 못하고 있었다.

 

그 마을에서 대나무 의자를 만드는 21살 여자 수피아 데굼.

그녀의 이야기는 결국 처지가 같은 수천 명의 여성들의 이야기였다.

그녀는 파이키브라 불리는 중개인에게서 빌린 약간의 돈으로 미화 22센트

대나무 재료를 구입했다. 하루 종일 대나무 공예품을 만드는 일을 했다.

그러나 그녀의 수입은 원금과 이자를 제하면, 하루 2센트20원에 불과했다.

만약 자기 수중에 소액이라도 원자재를 살 수 있는 돈(자본금)이 있었다면,

그녀가 수공예품을 만들어 내다 파는 수익은 그렇게 작지는 않을 것이다.

매일 아침 파이키브에게 고리대금으로 돈을 빌리지 않는다면,

매일 저녁 파이키브에게 당하는 금전적 착취는 적어도 피할 수 있었다.

 

그런 여인이 그 마을에 42명이나 있었다.

그들이 매일 아침 사채업자에게 빌리는 돈은 27달러에 불과했다.

유누스는 이 사실을 파악하고는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자기 수중에 있던 27달러 상당의 돈을 내주고는

고리의 사채업자에게 즉시 그 돈을 갚고 자유하라고 했다.

그리고 자기에게는 언제든지 갚고 싶을 때 갚으라고 했다.

이것은 그 마을 사람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자 유누스는 이런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이렇게 작은 돈으로 많은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면, 이런 일을 더 못할 이유가 뭐가 있어?’

 

1978년 유누스는 조브라 마을에서 실험적인 은행을 개설했다.

바로 그라민 은행 1호점이 된 조브라 지점이다.

유누스 교수는 자기가 직접 보증을 서서 기존 은행에서 대출을 얻었다.

그는 그 대출금을 다시 빈민들에게 쪼개어 소액 대출을 시작해 보았다.

가장 돈이 필요한 계층이지만, 돈이 없다는 이유로 대출을 못 받는 사람들..

이 사업이 점점 성공해서, 1983년에는 정부로부터 정식 은행 인가 받았다.

이것이 그라민(작은 마을village이라는 뜻, Grameen) 은행의 탄생 역사다.

 

제분누의 성공사례

제분누는 1978년 최초 대출자들 중의 한 여인이다.

당시 그녀는 찢어지는 가난 속에 살면서, 누가 찾아오면 집 안에 숨고

만지면 즉시 쓰러질 것 같은 움막집에 살고 있었다.

그 때는 사리()도 입지 못하고, 누더기 같은 것을 걸치고 살았다.

 

제분누가 처음 받은 대출금은 250타카. 우리 돈으로 고작 6천원이었다.

그러나 이 돈은 당시 그녀에게 너무도 요긴했던 종자돈이었다.

그녀는 이 돈으로 대나무를 사서, 여러 가지 물건을 만들어 시장에 팔았다.

얼마 지나서 그녀는 5백 타카를 갖게 되었다.

그녀는 처음에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매우 두려웠는데,

시작하고 나서부터는 점점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27년이 지난 오늘, 지분누는 3대의 마을버스(지프)를 소유하고 있고

마을에서 가장 번화한 길목에서 카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그녀가 모은 재산은 1백만 타카 이상, (2,400만원 상당)

월수입은 5만 타카을 헤아린다. (120만원 상당)

지금 나는 꽤 부자라서, 마을 사람들이 다 나를 알아줍니다.

옛날에는 쌀도 없었고, 그릇도 없었는데, 지금은 가구도 많습니다.”

그녀는 선풍기, 냉장고, DVD까지 갖추고 살 만큼 멋지게 가난을 탈출했다.

그라민 은행이 빌려준 250타카로 인해 시작된 기적이었다.

그 첫 대출금이 그녀의 인생을 들어올린 지렛대가 되었다.

 

대출 상환률 99%를 가능케 한 이유, 그라민 은행의 특징

제분누 뿐만 아니라, 5백여만 명을 헤아리는 그라민 은행 회원들의 삶은

나날이 향상되어가고 있다. 그들의 성공은 또한 그라민 은행의 성공이었다.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아무도 가난한 사람들이 대출금을 잘 갚을 것이라고

믿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은 대출금을 매우 성실하게 잘 갚았다.

지난 30년 가까운 세월동안 대출금 상환률은 99%에 이른다.

 

아이샤 여인은 5백마리의 닭을 키우며 1만타카(24만원)의 월수입을 올린다.

그러나 17년 전, 그녀는 땅도 집도 닭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 그라민 은행에서 종자돈 3천타카(7만원)를 최초로 대출받았다.

 

그라민 은행은 집안 부인들에게 대출해 준다. 남편에겐 안 해 준다.

여자가 신용도가 더 높다고 본다. 대출자 5백만 명중 96%가 여자들이다.

남자들은 돈을 벌어도 가정 일이 아닌데 돈을 쓰는 경향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여자들은 가정적이다. 돈을 벌어도 가정 발전을 위해 쓴다.

그래서 대출금도 나누어 잘 갚고, 또한 더 많은 대출을 얻어 사업도 키운다.

 

여자들이 대출금을 받아 경제 활동을 하자, 전통적 가부장적 사회제도에도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났다. 남자의 부속물로 취급되었던 여자가 가족의

중심으로 떠올랐고 여자들의 사회적 지위도 크게 달라졌다. 괄시도 사라졌다.

 

반드시 부인 5명이 조를 짜야 대출해준다.

조원 중 한 명이 대출을 받으려면 조원 모두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대출금을 상환 못하면 5명의 조원 모두가 공동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조원들은 수시로 모여서, 사업에 대해 함께 토론하고 서로 격려한다.

또한 대출된 돈이 원래 목적대로 쓰여지는지 감시도 하게 된다.

때문에 대출과 그 돈의 활용은 매우 신중하게 이루어진다.

 

그라민 은행은 세 번째 대출까지는 작은 돈을 대출해 준다.

그러나 신용이 쌓이고 사업을 발전시켜 나가면, 네 번째부터는

점차 큰 금액을 대출해 준다.

 

이에 반해 방글라데시 국영 은행의 원금 상환율은 30%에 불과하다.

부자들이 더 낮은 신용도를 보여주고 있다.

그라민 은행은 가난한 사람들도 신용이 있다는 점을 증명해 주고 있다.

 

빈민들은 화분에 심어진 나무와 같다. 똑같은 나무종자이다.

부자들은 넓은 땅에 심어진 묘목이지만, 빈민은 작은 화분에 심어진다.

그런데 빈민들도 넓은 땅에 심어진다면, 그들도 큰 나무로 자랄 수 있다.

부자처럼 말이다. -유누스-

 

가난을 벗어나려는 몸부림

그라민 은행의 궁극적인 목표는 회원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다.

그라민 은행은 빈곤 정도를 10가지 기준으로 조사한다.

*가족 모두가 침대 위에서 자는지 여부

*모기장을 갖추었는지

*하루 세끼를 모두 먹고 사는지

*집에 수동 펌프가 있는지

*화장실에 벽이 있는지

*비가 새지 않는 함석 지붕을 덮었는지

*만일을 대비해 병원에 갈 비상금이 있는지

*5천 다카(12만원) 이상의 예금이 있는지 등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는지 여부

    

이 기준에 의하면 그라민 은행 가입자 5백만 명 가운데

50%가 이미 가난에서 벗어났으며(그들은 최초에 가난한 사람만 가입시킴)

25%는 가난을 벗어나기 직전에 있으며

나머지 25%가 아직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렇지만 100% 그들 모두는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자녀들이 좋은 직업을 갖고 가난에서 벗어나기를 소원한다.

      

방글라데시의 문맹률은 아직도 60%에 달한다.

그런 그들이 100% 자녀들을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좋은 미래의 청사진이다.

이렇게 그라민 은행은 방글라데시의 미래를 바꾸고 있는 것이다.

      

그라민 은행의 발전

회원들과 함께 그라민 은행도 방글라데시 굴지의 은행으로 성장했다.

재정자립도 100%, 흑자은행으로서 전국에 15백 개의 지점을 갖고 있다.

지금도 그라민 은행 지점들은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그라민 은행에서 대출을 받고 자립한 사람들은 다시 그라민 은행에 예금한다.

그래서 은행은 더 많은 빈민들에게 더 많은 대출을 해 준다.

그렇게 순환되면서, 은행은 나날이 더 발전하고, 빈민도 더 줄어들고 있다.

      

샤비아 여인의 경우

지금까지 샤비아는 구걸로 연명해 왔다.

그녀는 오늘 대출받은 8백 타카로 입담배 장사를 할 계획이다.

그라민 통장을 가짐으로써, 비로소 그녀의 삶에도 계획이라는 것이 생겼다.

      

“10년 전에 남편이 병으로 죽고 나서

그 동안 딸과 함께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살아 왔습니다.

그 동안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살기도 힘들었습니다....”

      

이런 샤비아 여인의 경우와 같이, 그라민 은행은

방글라데시 가장 밑바닥 층의 사람들에게도 새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들은 소액의 종자돈을 통해 삶에 대한 의욕을 되찾고

일하는 자신감도 되찾고, 인간으로서의 긍지를 되찾는다.

그럼으로써 그라민 은행은 방글라데시 전체를 업그레이드 하고 있다.

      

이동전화 대여사업

요즘 시골에서 인기가 좋은 사업은 이동전화 대여사업이다.

방글라데시 농촌 사람들은 전화가 필요할 때 폰 레이디를 찾는다.

그녀는 이동전화를 빌려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통신 시설이 열악한 농촌지역에서 떠오르는 소액 창업이다.

이렇게 그라민은 유망한 사업 아이템을 계발해서 소개해 주기도 한다.

놀랍게도 폰 레이디들은 방글라데시 평균 가구수입의 두 배를 벌고 있다.

빌리지 폰은 그들에게 안정된 수입과 안정된 신분을 보장해주는

신종 유망 사업이다.

옛날에 그녀(폰 레이디, 사업주)는 남의 집에 가도 앉으라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디를 가도 그녀에게 의자가 건네진다.

경제 활동을 하면서, 사회적 대우가 달라진 것이다. 신분이 상승되었다.

      

그라민 은행은 가난만 퇴치한 것이 아니라

빈민들의 삶의 질까지 향상시킨 것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그라민 은행의 성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제 그들은 그라민 은행 시스템을 전 세계로 1백 개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35개국에는 직접적인 금융 지원도 하고 있다.

      

과연 무담보 소액 대출이 어느 나라에도 통용될 수 있을까?

그것은 방글라데시 같은 계발도상국가에 유효한 수단이 아닐까?

      

선진국에서도 확산되는 소액대출금융

지금 그라민 은행은 프랑스에서도 아디라는 이름으로

프랑스의 빈민층에게 소액 자본을 대출해 준다.

실제로 연금 생활자 미테랑코 부부는 3천 프랑을 대출받아서

소규모 가내 자영업을 창업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함으로써 정부는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 사실은, 소액대출시스템이 선진국에서도 필요하며, 잘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계발도상국가 뿐만 아니었다.

      

미국 보스톤에도 액시온이란 이름으로 소액대출기구가 활동하고 있다.

액시온은 미국 전역에 8개의 지부를 갖고 있다.

역시 신용이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금융기구다.

이렇듯 선진국에서도 이 시스템은 유용하게 적용되어지고 있다.

      

유누스 박사가 염두에 두는 것은, 가난 그 자체보다도

사람들이 가난한 자들에게 얼마나 불친절한지를 염려하는

, 가난한 자들의 인권 향상이다.

세상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구해주기보다는

그들이 처한 상황을 도리어 비난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다고 그는 지적한다.

그는 필요한 것은 자선이 아니라고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가난에서 벗어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오직 적절한 환경조건과 적절한 여건을 제시해주라고 말한다.

(그의 어록을 종합해보면 그는 약간 좌파적이다. 그래서 그는 많은 공로에도 불구하고

아직 세계적인 큰 상을 많이 받지 못했나보다... 편집자)

      

지금 세계에는 60억 인구가 있다.

그러나 40억 이상은, 은행에 자기 구좌가 없는 실정이다.

주목할 것은 선진국에도 은행을 못 가는 빈민층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계 모든 나라에서는 빈민들에게 대출을 금지하고 있다.

유누스 박사는, 돈이 있는 사람에게 돈을 더 잘 빌려주고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잘 안 빌려주는 원칙은 잘못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돈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더 잘 빌려주는 원칙이 옳다고 본다.

 

책에는 유누스 박사의 간증이 더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해외선교를 하시는 분들은 꼭 읽어 봐야할 필독서입니다.

극빈자들을 위해 그가 이룬 쾌거는 정말 길이 빛날 신화입니다.

      

한 번은 필리핀에서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갈 때,

마침 제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필리핀 식 그라민 은행(소액 대출)

필리핀 중부지역 책임자였습니다.

그는 필리핀의 많은 은행들이 그라민 은행식의 소액 대출 방식을

교육 받고, 그런 시스템을 구축/실행하고 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약 십만원에 해당하는 소액을 대출 받아서

과연 그 돈으로 사업을 해서, 원금을 쪼개서 갚아가면서

자립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은 결코 아닙니다.

일생에 한 번도 남에게 고용되어 일해 본 경험도 없고 제멋대로...

일생에 한 번도 책임 있고 성실하게 살지 못했던 ㄱㅈ근성의 사람들이

자기 나라 한 달 월급 정도에 해당하는 돈을 쥐고서 구멍가게라도

시작했다가 도리어 원금을 까먹고 도망치기가 더 쉽겠습니다만...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을 살리기 위한 방안으로서 지금까지 발견된 방법

중에서는 무하마드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소액 대출)방식이

가장 뛰어난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회복지나 해외선교를 하시는 분들은 꼭 읽어 봐야할 필독서로

다시 한 번 강력히 권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