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의 비상한 믿음 마14:22~33 06.01.29.설교녹취
과거에 한 번 있었던 성경에 나타난 사건들은 나와 아무 관련 없어 보이지만
내가 읽고 깊이 묵상하고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 때마다 오늘을 살고 있는 내게 은혜를 주시는
살아있는 사건으로 내게 다가오도록 만들어 주신다.
갈릴리 바다는 돌발적인 돌풍과 풍랑이 잘 일어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세상과 영락없이 닮았다.
그래서 세상은 고해 고통의 바다 와 같다는데... 사실이다.
▲1. 세상은 풍랑이 거칠 날이 없는 거친 바다와 같다.
풍랑만난 제자들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 역시 험한 세파 세상 파도 와 싸우며 힘겹게 늘 살아가고 있다.
물론 너무 험한 세파를 사시고 승리하신 분들에 비하면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 자신의 과거를 돌아봐도 나름대로 정말 험한 세상을 살아왔다.
오랫동안 가난과 씨름할 때도 그랬고
이런 저런 병을 안고 투병할 때도 그랬고
저 자신이 실패를 몇 번 경험할 때도 그랬고
빈손으로 사랑의 교회를 개척할 때도 마찬가지였고
수 만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 영혼들을 책임지는 무거운 짐을 지고
하루하루를 견뎌야 하는 일도 그랬고
지금 역시 인생의 겨울철을 맞아서 하루하루 사는 것도 만만치 않음을 느끼며
인생은 풍랑이 그칠 날이 없는 고통의 바다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절감한다.
▲2. 주님은 최선의 타이밍을 맞추신다
제자들은 9시간이 넘도록 밤새 풍랑과 싸워야 했다.
그들은 힘겹게 사투를 벌이며 노를 저었지만, 목적지 건너편에 가지 못하고
바다 가운데서 풍랑에 배를 맡긴 채 헤매고 있었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에서 기도하고 계셨다.
제자들이 거친 파도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계셨다.
그랬다면 예수님은 기도 좀 짧게 하시고 (웃음)
일찍 내려오셔서 제자들을 구해 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데 주님은 꿈쩍도 않고 기도만 하시다가 결국 새벽 3시가 지나서야
풍랑 이는 바다 속으로 제자들을 찾아가셨다.
주님은 언제 어떻게 도우시는 것이
제자들의 우리들의 신앙을 키워주고
또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할 수 있는지 가장 정확하게 아신다.
그래서 최선의 타이밍을 맞추신다.
그 때가 제자들이 거의 지쳐서 기진맥진했던 새벽 3시 즈음이었다.
▲주님은 가장 좋은 시간에 응답하신다
내가 급해서 주님께 매달리고 기도한다고 주님은 금방 응답하시지 않으신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그렇다.
어떤 때는 견디지 못해서 내 믿음이 흔들리고
부르짖다가 제 자신이 스스로 낙담해서 주저 앉아있을 때에도
주님은 응답 없이 가만히 계실 때가 많았다.
예수님의 발걸음은 느린 걸음이셨다. 저처럼 성급하지 않으셨다.
제가 지금 인생을 되돌아보면서, 관조하며 다시 한 번 발견하는 것은
비록 내가 원하는 시간에 오시지는 않으셨지만
주님은 가장 좋은 시간, 가장 정확한 시간에 오셨다는 점이다.
그리고 나를 도와주셨다. 결코 나를 실망시키지 않으셨다.
▲3. 베드로의 비상한 믿음
바다 위를 걸어오는 예수님을 볼 때
배 안에 가만히 앉아 있던 11제자처럼 되고 싶은가? 아니면,
배에서 풍덩 뛰어내려 바다를 걸어보겠다던 베드로처럼 되고 싶은가?
성령님께서 이런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실 때
우리는 “베드로처럼 되기 원합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새벽에 물 위로 걸어오시는 분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이다, 귀신이다”
소리를 쳤다. 예수님은 “내니 안심하라!”고 그들을 안심시켰다.
이 때 11제자들의 반응은 “야 대단하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굉장하다.”
말하며, 충격도 받고 감동도 받았지만 그 이상은 없었다.
그들 자신의 존재를 흔들어 놓을만한 영혼의 각성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베드로는 달랐다. 풍랑 위에 서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풍랑을 헤치고 걸어오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절감했다.
구약에 나오는 바다와 파도를 복종시키시는 분임을 깨달았다.욥 9:8, 사 48:13.
이런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에 베드로는 압도를 당했다.
그러자 자기 존재를 뿌리 채 흔들어 놓는 놀라운 변화가 그에게 일어났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만일 주시어든, 제가 물 위를 걷게 하소서!” 마 14:28
“걸어오라!” 예수님은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베드로처럼, 우리가 믿는 것만큼 응답하신다.
우리가 요구하는 것만큼 주님은 들어주신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우리가 믿음이 없으면 못 받는다.
아무리 위대한 일이라도...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못 받는다.
11제자는 원하지 않았으니까... 경험을 못 했다.
그러나 베드로는 물위로 걸어가겠다는 요청을 하니까... 응답을 받았다.
베드로가 깊은 바다 위로 뛰어내리려는 찰나, 그는 일말 불안했을 것이다.
형제 안드레는 “물에 빠질거야!”며 아마 그의 옷자락을 붙잡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베드로는 “예수님이 오라시면 나는 갈 수 있어!” 물 위로 뛰어내렸다.
그는 한 발 두 발 주님을 향해 걸어가는... 기가 막힌 체험을 하게 되었다.
물 위로 뛰어내려서 걸을 수 있다는 믿음은... 아무나 가질 수 없다.
상식적으로 봐서는 정신 나간 사람의 생각이라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베드로의 믿음은 비상(非常)한 예사롭지 않은 믿음이라 할 수 있다.
이렇듯 비상한 믿음은, 모든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상황가운데서도
자신은 긍정적으로 보고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믿음이다.
▲4. 비상한 믿음은 큰 풍랑 속에서 생긴다
비상한 믿음은 아무 때나 생기지 않으며,
내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밤새도록 험한 파도와 싸우는 가운데서 생겼다.
이제는 지칠 대로 지쳐버렸다. 더 이상 파도에 거슬려 싸울 힘도 없다.
물결이 밀고 가는대로, 파도가 밀고 가는 대로 내버려 둘 수밖에 없는 상황.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만났을 때 - 물 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만났고
베드로에게는 물 위를 걸어가고자 하는 비상한 믿음이 생겼다.
만약 그날 밤, 아무 바람도 없고 배는 미끄러지듯 물 위로 나아갔다면
그들은 한 시간도 채 못 되어서 건너편에 도달했을 것이다.
그렇게 평안하게 바다를 건넜다면,
바다에 물결을 밟고 서 계시는 예수님의 창조주 영광을 뵈올 수 있었을까?
‘저 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구나!’ 하는 뜨거운 믿음이 그 영혼의
깊은 곳에서 다시 한 번 샘솟는 기쁨을 그가 누릴 수 있었을까?
‘아니, 나도 물 위를 걸을 수 있다!’며 물 위로 뛰어내리는
정말 비상한 믿음의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천만이다.
평안하게 바다를 건넜다면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사실은, 세상에서 고달프게 하루하루를 사는 우리에게 큰 격려가 된다.
잘 살든, 못 살든... 세상 살기가 힘들다는 것은 모두의 공통분모이다.
가난의 고통,
질병의 고통,
실패의 고통,
그런 이모양 저모양의 고통을 오래 동안 끌어안고 힘들게 살아간다.
시인 조지 허버트는, 인생 풍랑은
하나님이 만드신 인생 작품의 결정판이다 라고 말했다.
인생의 고통은 하나님이 만드신 여러 작품들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내 놓는 대표적인 걸작품 - 그만큼 가치 있고 소중하다는 뜻이다.
▲5.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인물들을 유심히 보시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이 어디서 배출되었는가?
하나님이 감동하시는 선한 결과가 어떤 경우에 나타나는가?
찬란한 인간승리를 어디에서 보게 되는가?
고난을 통해서 연단된 거룩한 백성이 사는 곳에서이다.
만일 인생 역풍을 만나 깨어지고 낮아지고 빚어지는 거룩한 연단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비상한 믿음, 영웅적 믿음의 행동, 진정한 예배, 거룩한 삶,
향기로운 헌신, 열정적인 사랑, 영원을 사모하는 소망이 나올 수 있겠는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가끔씩 우리에게, 우리가 원치 않는 고난을 허락하신다.
더 소중한 것을 주시기 위함이다.
‘나에게 비상한 믿음을 갖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풍랑을 주시는 구나!’
라며 여러분은 믿으시기 바란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런 풍랑은... 목사인 저 자신도 정말 좋아하지 않는다.
정말 좋아하지 않으니까... 정말 주시는 경우도 있다. (많이 웃음)
그러나 지나고 보면, 만약 내가 그 풍랑 그 때 겪지 않았더라면
내가 지금 가진 이 믿음,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풍랑을 밟고 서 계신 주님의 찬란한 영광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바다 위를 걷겠다는 생각을 감히 품을 수 없었던
미지근한 신앙인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내가 원치도 않는 풍랑 주셔서
오늘에 이르게 하신 것은... 감사해야할 일이다.
그래서 주님이 풍랑을 주실 때
말로 다 할 수 없는 여러 은혜를 동시에 주심을 믿고 감사해야 한다.
♬거친 파도 날 향해 올 때
비상한 믿음의 날개를 펴고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
하나님은 우리가 가진 어떤 문제보다
더 크시고 위대하시다.
▲6. 비상한 믿음을 가진 무명의 사람이 끼친 영향
얼마 전에 읽었던 잡지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하면,
미국 해군 병원에, 어떤 부모는 몸이 아픈 자기 아이를 데려왔다.
의사가 검진해보니, 아이의 간에 종양이 발견되었고 심각한 상태였다.
‘어떻게 하면 아이를 살릴꼬...’ 하며 의사는 고민하다가
결국 의사는 공격적인 화학요법을 처방했다.
그런데 결과는... 아이가 발작을 일으키더니 그만 죽어버렸다.
의사는 망연자실했다.
그런데 부모들은 뭔가 다른 사람들이었다. 평안한 마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의사는 나중에 의대생들에게 자기의 케이스를 강의할 시간이 있었는데,
강의를 준비하면서, 그는 아이에게 처방했던 약 분량을 다시 계산해 보았다.
그는 깜짝 놀랐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모르겠지만
당시 자기가 처방했던 약 분량은, 적정선을 10배나 초과했던 것이었다.
결국 그 환자 아이는 자기가 죽인 셈이었다.
그 의사는 정직하게 부모를 만났다. 그리고 자기의 실수를 시인했다.
그랬더니 아무 말 없이 듣던 부모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아이를 구해 보려고 정성을 다해 노력하신 선생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죽은 우리 아이는 지금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부모들은 의사를 고소하겠다고 협박하지 않았다.
자기 자녀를 다시 살려내라고 소동을 벌이지도 않았다.
견디기 어려운 절망, 다시 돌이키기 어려운 불행을... 사람을 탓하지 않고
모든 것을 묵묵히 신앙으로 받아들이는 이 무명의 부부를 보고
의사는 마음에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았다.
이런 일을 계기로, 그 의사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 의사의 이름이 잭 탬플턴이다.
최근 그는 부친이 자기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서 만든 재단의
이사장직을 이어받았다.
이 재단은 미국에서 3번째로 큰 자선단체이다.
이 재단은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 상’을 수여한다.
테레사 수녀(1973), 빌리 그레함(1982), 한경직 목사(1992) 등이 수상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의사지만‘선교사’라는 소리를 들을 만큼 크게 변화되었다.
그가 이렇게 변화된 이유가 무엇인가?
자기의 불행을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여기고 겸허히 수용했던
무명의 부부의 비상한 믿음 때문이었다.
지금도 주님은, 단순하고 우직하고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신다.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어떻게 보면 맹목적인 것 같은 믿음을.... 담대하게 붙들고 거룩하게 살아가는
바보들이 종국에는 승리하도록 만들어 주신다.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 는 놀라운 약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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