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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자

LNCK 2019. 12. 28. 19:03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자   9:1~38            06.10.08.

 

*느헤미야 9장에 관한 좋은 설교입니다.

  

도입

 

본문 느헤미야 9장은 성경에서 가장 긴 기도문이다.

그 핵심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것이다.

특별히 본문은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를 조명한다.

출애굽 시대부터 바벨론 포로 시대까지 역사의 흥망성쇠가 나와 있다.

 

제가 본문을 준비하면서 참 하나님께 감사했던 것은,

요즘 우리 사회에 여러 갈등의 골이 깊어졌는데,

그것을 치유할 수 있는 맞춤형 본문이라는 점이다.

이 시점에 적합한 하나님의 음성이라는 확신이 제게 생겼다.

 

이번 주간에 느헤미야 91~36절까지 본문을 따라 그대로 기도하면

적게는 10, 많게는 30번 이상,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새롭게 해 주셨듯이,

한국의 역사와

또한 우리 개인의 역사도 새롭게 해 주실 것을 믿는다.

(하나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한다.)

 

우리가 가진 인간의 생각들을 첨가하지 않고

성경본문대로 소리 내어 읽고 기도드리면,

설교를 들은 이해를 토대로 순수하고 소박하고 깨끗하게 기도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응답으로 역사하시리라 믿는다.

 

 

백성들이 다 함께 금식하며 애통한 이유

 

느헤미야 91절과 2절은 본문이 기록된 때와 상황에 대해 설명한다;

그 달 24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며 굵은 베를 입고 티끌을 무릅쓰며

 

왜 금식하고 슬퍼하는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앞서 8:17절에 이스라엘 백성이 전례 없이 크게 기뻐했는데

예루살렘 성곽을 보수하고 나서, 희락의 강물이 넘실대고 기쁨의 파도가

출렁거렸는데.... 왜 갑자기 분위기가 슬픔으로 반전되었는가?

왜 굵은 베옷을 입고 티끌을 뒤집어썼는가?

그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한 세대의 악이, 다음 세대에 전달된 것

자기의 죄와 열조의 허물을 자복하고(:2)

 

한 세대의 악이, 다음 세대에 전달된 것이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다.

부모 세대의 악이, 자식 세대에 전달된 것은 너무 가슴 아팠다.

그래서 티끌을 뒤집어 쓴 것이다.

 

올해 들어 제가 강조하는 것이 있다.

우리 모두는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녀 교육을 위해 애를 쓰며, 과외를 시키며, 좋은 대학에 들어가며

좋은 배우자 만나기를 애쓴다. 당연하게 부모 마음이 그렇다.

그러나 그런 애를 쓰기 이전에 우리가 꼭 영적으로 기억할 것이 있다;

부모가 어떤 신앙을 가지고, 어떤 영적 신앙 자세를 갖는가 하는 것이

다른 말로, 부모가 의롭게 사는 것이 자녀에게 그대로 전수된다는 것이다.

자녀의 장래를 걱정하기 이전에, 부모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면

하나님이 자녀 세대를 책임지신다는 것이다.

 

한 세대의 허물이 다음 세대로 전수되는 것이 너무 가슴이 아프듯이

반대로, 한 세대의 은혜가 다음 세대로 계승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 우리 사회에, 우리 가정에 다시 확인하고 넘어가야할

매우 중요한 주제이다.

 

3주 전에, 연합신문에서 통계를 냈는데

부모의 가업을 자식이 이어받는 경우는 2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한다;

i) 정말 자녀가 그 부모의 직업을 가치 있게 생각할 때.

ii)또한 부모가 자기 직업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때 자녀도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 부모의 직업을 이어 받는다.

이것은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부모의 신앙을 가치 있게 여기고, 자녀들과 함께 가정예배를 드리면서

부모의 신앙이 정말 살아있는 신앙이요, 이것은 내 생애를 다 투자해도 될 만한

것임을 보여주면, 자녀들이 이어받는다.

그런데 부모가 신앙인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되고

오히려 어떤 때는 박쥐처럼 살고(박쥐는 새도 아니고 쥐도 아니고 모호함)

, 크리스천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되는 행동을 하고

심지어는 신앙인인 것을 감추고 할 때.. 자녀에게 제대로 전승되지 않는다.

부모가 자기 신앙을 떳떳하고 영광스럽고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를 소망한다.

 

자녀교육.. 자녀에게 신앙만 제대로 계승되면, 걱정할 필요 없다.

효도.. 신앙만 제대로 전수되면 걱정할 필요 없다.

자녀들 독립해서 제대로 사는 것.. 걱정할 필요 없다.

자녀들이 이번 겨울수양회에서 은혜 받고 변화되면.. 걱정할 필요 없다.

공부 조금 못해도 괜찮다.

정말 부모의 허물이 자녀의 허물이 되지 않기를 소원하자.

 

죄의 노예가 되고, 죄의 근성에 속박된 것

악행을 그치지 아니한고로 (:35)

우리가 오늘날 종이 되었삽는데 (:36)

우리의 죄로 인하여 (:37)

 

죄의 노예가 되고, 죄의 근성에 속박된 것이 너무 가슴이 아파서 애통했다.

동일한 아픔이 오늘 우리에게도 있어야겠다.

죄의 노예, 죄의 근성... 이것을 해결할 길이 없어서 신음하는 것

참 안타까운 일들이 많지 않은가.

 

내가 죄의 근성, 죄의 노예가 되어 있지/않은지 한 가지 테스트가 있다;

죄의 속성은 더 큰 자극을 요구한다.

어떤 죄를 지으면...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데... 그것 갖고 만족 못한다.

마약도 자꾸 더 깊이 들어가듯이, 더 깊이 들어가는 것이 죄의 속성이다.

 

그러니까 죄의 노예가 된 사람은, 평범한 삶에서 만족 못한다.

일상의 삶에서 은혜를 못 누리고, 자꾸 더 큰 자극을 요구한다.

오늘처럼 예배 나오고, 가정을 이어가며 평범하게 사는 것에 불만이 크다.

그래서 노예처럼 죄에 묶여서 살고, 노예처럼 좀처럼 거기서 못 빠져나온다.

 

은혜 받으면, 특징은 일상의 삶에서 깊은 감사가 나온다.

오늘도 동터 오는 해가 너무 귀하다.

오늘처럼 약간 싸늘한 날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좋다.

해지는 황혼, 신선한 공기, 아내의 아름다운 미소와 남편의 관대함 등

평범한 삶의 행복을 누린다. 살아있다는 그 자체가 감사하다.

이 감사와 행복이 우리에게 다시 회복되기 바란다.

 

죄의 근성 때문에, 죄의 노예됨 때문에, 죄의 유전 때문에

그래서 느헤미야와 백성들은 재를 뒤집어쓰고, 금식하고, 애통했다.

 

그러자 5~34절 사이에, 하나님께서 2가지 큰 기도(자복하는 기도,

그리고 찬양하는 기도)를 하게 하심으로써

이 모든 압박들, 이 모든 짐들을 벗길 수 있도록 해결책을 제시해 주신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오늘의 갈등구조 속에서 영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신다.

 

계속 자복하는 기도

레위 사람 예수아와 바니와 갓미엘과 스바냐와 분니와 세레뱌와 바니와 그나니는

대에 올라서서 큰 소리로 그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고 (:4)

 

계속 찬양하는 기도

또 레위 사람 예수아와 갓미엘과 바니와 하삽느야와 세레뱌와 호디야와 스바냐와

브다히야는 이르기를 너희 무리는 마땅히 일어나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 할찌어다 주여 주의 영화로운 이름을 송축하올 것은

주의 이름이 존귀하여 모든 송축이나 찬양 에서 뛰어남이니이다 (:5)

 

그래서 6절 이하로 찬양자복의 기도가 교대로 나온다.

이것이 하나님이 제시해주신 죄악을 극복하는 영적 대안이다.

 

 

기도의 첫 번째 기둥 : 찬양하는 기도

 

창조하심을 찬양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

하나이다 (:6)

 

우리가 찬양하는 기도를 드릴 때, 첫 번째 요소는 하나님이 나를 지으셨다

다른 말로 내가 나를 짓지 않았다이다. 이것이 마음에 와 닿아야 한다.

내가 내 생명의 보존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가 새 삶을 컨트롤 하지 않고, 창조주 하나님이 통제하신다는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왠만한 질병도 오늘 기도해서 기적이 일어나기 바란다.

내가 모르는 내 삶과 육체의 많은 부분들을 하나님이 통제해 주신다.

우리가 큰 소리 치지만 사실은 내 생명에, 내 몸에 형성되는 조직과정의

모든 부분들 하나님이 하신다. 모든 것을 지으시고 보존하시오니 (:6)

 

내가 잠들기 전에 내 심장박동수를 제어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알아서 통제해 주셔서 오늘을 깨어나 건강하게 살고 있다.

피와 혈관과 허파에 공기가 들락날락하고, 횡경막이 움직이고

신장이 기능해서 나쁜 것들을 걸러주고...어떻게 돌아가는지 나는 잘 모른다.

근육도 내가 움직이는 수의근과, 나도 모르게 움직이는 불수의근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질그릇같이 연약한 인생, 주의지하여 늘 강건하리 찬양한다.

하나님은 내 생명의 창조주이시요, 나는 내 삶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내 육체의 모든 신묘막측한 기능은, 하나님만이 아시므로...

암 때문에도 너무 고민할 필요 없다. 하나님이 내 생명의 창조주이시므로

그 분께 맡기면서 찬양하면 나도 모르게 제대로 된 기도를 드릴 수 있다.

 

택하심을 찬양

주는 하나님 여호와시라 옛적에 아브람을 택하시고 갈대아 우르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시고 (:7) 말씀대로 이루셨사오니 (:8)

 

하나님이 택하시고 부르시지 않으면, 이 자리에 나와 예배드리지 못한다.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5:8 참조)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데,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14:6) 주님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예배드리러 못 온다.

주님 저를 택하시고 인도하셨군요. 주님 제 이름을 아시죠...’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택하심을 찬양 드리자!

 

역사를 진술하며 찬양

이적과 기사를 베푸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나라 온 백성을 치셨사오니 (:10)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으로 그 행할 길을 비취셨사오며(:12)

 

홍해와 같은 그 절박한 상황에서도 이적과 기사를 베풀어 주셨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 행할 길을 비추어 주셨다.

이렇게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재 진술했다. 새롭게 조명했다.

 

하나님께 찬양 기도를 제대로 드리려면, 오늘까지 나를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역사를 새롭게 조명해 보시기 바란다.

누가 뭐라든 간에, 우리 삶은 홍해를 가르신 역사요,

이적과 표적과 기사를 베푸셔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확인하라.

그 때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찬양 기도를 제대로 드릴 수 있다.

 

저는 이것이 오늘 한국 사회에 접목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한국 역사는 한국 민족의 독립적인 역사가 아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이후 지난 120년의 역사는, 하나님이 개입하신 역사였다.

우리 개인도 마찬가지다. 내 개인의 역사가 아니라

홍해를 가르시고, 이적과 기사를 베푸신 역사였다.

 

지금 어떤 사람들은 과거사를 재정립 한다고 한다. 필요는 하겠지만...

자칫 잘못하면 친일파 운운하면서 [자학적 민족사관]을 가질 수도 있다.

누가 뭐라든 간에 지난 120년 한국 역사는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으시면

안 되는 역사였다. 그래서 우리는 자학적 민족사관이 아니라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도우신 [구원사적 민족사관]으로 바꾸어야 한다.

 

백 년 만에 민족의 종교를 바꾸고, 전쟁의 폐허에서 오늘의 기적을 일군

세계 어디에서도 유래를 찾기 어려운 독특한 민족의 역사였다.

 

함석헌 선생의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책이 있다.

그분은 사상계의 주간이었고, 상당히 진보적인 분이셨다.

제가 그 분의 삶 자체, 사상 전부를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 70년대 지성인들은 그 분의 책에 매우 관심이 많았다.

저도 청소년 시기에 그 책을 접하고, 많은 것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민족의 역사에 대해 제게 눈을 열어주었다.

 

한국 역사를 보는 그의 통찰력이, 구원사적 민족역사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그 책에 이런 부분이 나온다;

 

우리 민족의 815해방은 하나님의 전적인 도우심 때문이었다.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 받은 것은 도둑같이 뜻밖에 왔다.

해방이 이렇게 도둑같이 올 줄 아무도 모른 것은

아무도 그 해방을 위해 꾸민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투쟁을 해서 해방이 된 것도 아니다.

왜 해방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되었을까?

그 까닭중 하나는 민중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왜냐하면 이 해방은 민족주의자가 한 것도 아니요,

이 해방은 공산주의자가 한 것도 아니요,

이 해방은 전체주의자가 한 것도 아니요,(일본 정부를 지칭하는 듯)

이 해방은 무정부주의자가 한 것도 아니다.

이 해방은 하나님이 뜻이 있어서 우리 민족에게 값없이 생명의 길로

열어주신 것이다.

이 감사의 일념은 모든 역사적 대차관계를 일소해 버리기에 족하고

모든 현실의 인과관계에 얽힌 것들을 끊어놓기에 넉넉하다.

 

오늘 한국 사회에 모든 갈등 구조를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길은

무슨 사상이나, 이즘이나, 내가 어떤 편을 든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고

오늘 민족의 역사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라고 고백하는 그 순간에

민족의 갈등 구조가 해결되리라고 확신한다.

 

오늘 우리가 이만큼 된 것은, 경제인들이 힘을 많이 썼고

여러 사람들이 여러 영역에서 많은 수고를 해서 된 것이지만

필연적,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다고 고백해야 한다. 그것이

[자학적 민족사관]에서 벗어나 [구원사적 민족사관]으로 가는 길이다.

 

이스라엘 민족 역사를 조명해보면, 우리는 이것을 너무나 절실히 느낀다.

그럴 때, 저와 여러분의 개인 역사는... 개인 역사로 끝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개입하시고 주관하시는) 역사 His story 가 될 수 있다.

 

더더구나 이적과 기사에 관해서도 우리가 할 말이 있다;

홍해를 건넌 기적 등 성경의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자유주의자들은 그것을 갈대밭을 건넌 것 정도로 폄하한다.

어떤 사람들은 지성인으로서 그런 기적들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도전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조명하고, 하나님이 오늘도 창조주 되심을

믿는 사람은 이렇게 대답한다;

나는 어떻게 기적이 이루어졌는지 관심 없다.

나는 하나님이 내 삶의 창조주이심을 믿어! 확신해!

그래서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면 홍해도 능히 가를 수 있어!

우리는 이렇게 확신 있게 대답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종종 보잉 747같은 큰 비행기를 타는데

그 비행기의 모든 계기 작동 원리와, 양 날개 각도의 움직임,

어떻게 그 쇳덩이가 나는지의 역학관계 등을 다 알고 타는 것은 아니다.

보잉회사에서 만들었으니까 안전할거야!’ 라며 타고 간다.

 

오늘 아침에도 아파트 대문 밖에 놓여진 우유를 들여와서 마신다.

우리는 우유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제조과정을 세세히 모른다.

갈색 소가 초록색 꼴을 먹고 어떻게 하얀 색 우유를 만드는지.. 다 모른다.

그렇지만 우리는, 우유회사에서 만든 것을 믿고 그 우유를 안심하고 마신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시니까, 기적도 가능하다고 믿는다.

 

영육간 내 필요를 채우심을 찬양

또 시내 산에 강림하시고 하늘에서부터 저희와 말씀하사 정직한 규례와

진정한 율법과 선한 율례와 계명을 저희에게 주시고 (:13)

저희의 주림을 인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주시며 저희의 목마름을 인하여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15)

 

가나안 땅의 타락한 문화에 그 죄의 오염에 물들지 않도록 명확한

규례와 율법을 주셨다(:13)

 

영적으로 오염될까 싶어서, 오늘도 날마다 큐티를 하면서

매일 아침에 말씀을 읽으면서 , 그렇군요 주님!’ 하며 영적 양식을 얻는다.

오늘도 느헤미야 9장을 통해서 제게 규례를 주시는군요!’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일용할 (영적) 양식을 주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셨으며(6)

또한 생수를 너희에게 공급하여 준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런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을 기도할 때 찬양해야 한다.

 

기도의 두 번째 기둥 : 자복하는 기도, 통회하는 기도

 

무엇을 자복하고 회개하는가?

 

다시 옛날의 악습으로 돌아가는 것을 회개

저희와 우리 열조가 교만히 하고 목을 굳게 하여 주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16)

거역하며 주께서 저희 가운데 행하신 기사를 생각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며

패역하여 스스로 한 두목을 세우고 종 되었던 땅으로 돌아가고자 하였사오나 (:17)

 

죄는 언제나 옛날로 돌아가려고 하는 습성이 있다.

과거에 한 때 빠졌던 곳으로 돌아가서 흐느적거리게 만드는 것이다.

주님을 섬기고 헌신하기로 결심한 다음에도 수많은 유혹들을 이기지 못하고

옛날의 부끄러운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분들은 오늘 자복하셔야 한다.

 

시내산에서 금송아지 부어 만든 잘못을 회개

또 저희가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이르기를 이는 곧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하나님이라 하여 크게 설만하게(모독) 하였사오나 (:18)

 

후에 가나안에서 가나안 족속들을 치게 하시고, 그 땅을 차지하게 하시고

견고한 성읍들을 취하게 하시고, 배불리 먹고 살지게 하셨다. (:23~:25)

잘 될 때, 편안하니까 하나님을 등진 것이다.

 

이스라엘은 당시 전쟁을 잘 하는, 잘 조직된 군사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은 전쟁을 좋아하는 호전적인 민족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나안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의 삶과 똑 같다.

치열한 영적 전쟁에서, 생존 전쟁에서, 우리는 본래 전쟁 잘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이 전쟁에 이기게 하셔서, 오늘까지 우리가 살아온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가 오히려 순종치 아니하고 주를 거역하며 주의 율법을 등 뒤에 두고

주께로 돌아오기를 권면하는 선지자들을 죽여 크게 설만하게 행하였나이다 (:26)

 

오늘 우리 삶에 기대하지 않았던 많은 승리, 직장에서의 승진

이런 복을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해야 하지만

자신을 추스르고 부족한 것은 늘 자복해야 한다.

 

계속되는 사사기 시대에도 여전히 악을 행함

저희가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주께서 그 대적의 손에

버려 두사 대적에게 제어를 받게 하시다가 저희가 돌이켜서 주께 부르짖으매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여러 번 긍휼을 발하사 건져내시고 (:28)

 

잘 아는 대로, 사사기 시대는 범죄의 악순환이었다.

그래서 범죄로 죽을 지경에 이르러 하나님께 나아가자, 다시 건져주셨다.

다시 살려주니까 또 옛날처럼 죄를 지었다. 또 회개하자 다시 살려주셨다.

그런데 또 범죄했다... 이런 범죄의 악순환이 당시에 일어났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잘 지킬 때, 하나님은 그들을 성실하게 축복해 주셨다.

또한 택하신 백성이 범죄할 때, 하나님은 그들을 성실하게 경계하시고

성실하게 징계하셨다. 그들이 징계당해 회개하면 성실하게 용서해 주셨다.

하나님은 그런 분이시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광야 길에, 또한 사사기 시대에

자주 자주 경고를 내려 주셨다; ‘너희들 이렇게 가면 안 돼!’

왜 하나님께서 경고하셨는가? 우리가 진정 자유롭게 살라고 하셨다.

진정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살라고 경고하신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의 파괴력이 너무 크기 때문에...

하나님이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을 우리가 하면... 죽어나가기 때문에.

너무 파괴적이고, 너무 수치와 슬픔이 크다는 것을 아시고

너무 고통이 크다는 것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에 ...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지 말라고 제한하시고 금하신 것은

하나님이 우리의 슬픔과 수치당할 것을 모두 아시고

미리 예방하시고 막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예를 들면, 동성애... 로마서 1, 출애굽기, 레위기에서 강력히 제지하신다.

우리가 동성애 성향이 있는 분들을 불쌍히 여겨야 되겠지만

동성애를 허용하거나 인정하면 안 된다.

하나님은 그 파괴적인 결과를 수차례 경고하시기 때문이다.

그것은 가정을 파탄시키는 것이요, 에이즈 같은 염병이 일어나는 것이요,

그것을 통한 수치와 부끄러움을 미리 아시고,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것이다.

 

*선악과도 마찬가지였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 먹으면

큰 일 나는 줄 아시고, 너무나 비탄하고 파멸이 되고 고통과 죽음을 아시니까

 

그래서 오늘도 성경에 하나님이 뭔가 우리에게 금하시는 것은

그것의 파괴력과 비참한 결과가 굉장히 심각한 것을 절실하게 깨닫고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고 속박하기 위한 금령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시고 행복하게 하기 위한 금령이라는 것을 꼭 명심하자.

 

하나님은 적절한 경고와 금하시는 것이 없이 우리를 징계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금하시는 것을 알고도 우리 마음대로 그 금령을 어기고

산 것이 있으면 하나님께 자복해야 한다.

 

*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25:10)

 

하나님의 제한, 하나님의 경고를 무겁게 듣고, 그 말씀을 지키면

우리는 더 큰 자유를 얻고, 더 큰 능력을 얻는다.

 

거듭 경계하셨지만 듣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앗수르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게 된다.

 

다시 주의 율법을 복종하게 하시려고 경계하셨으나 저희가 교만히 행하여

사람이 준행하면 그 가운데서 삶을 얻는 주의 계명을 듣지 아니하며 주의 규례를

범하여 고집하는 어깨를 내어밀며 목을 굳게 하여 듣지 아니하였나이다 (:29)

 

그러나 주께서 여러 해 동안 용서하시고 또 선지자로 말미암아 주의 신으로

저희를 경계하시되 저희가 듣지 아니하므로 열방 사람의 손에 붙이시고도 (:30)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자비의 손길을 놓지 않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듭 경계를 받을 때... 자복해야 한다.

자복하지 않으면 정말 헤어 나오기 어려운 큰 재앙에 빠진다.

앗수르와 바벨론 포로처럼.

 

 

과거 역사가 아닌 이제 우리의 현실

 

31절까지 출애굽부터 바벨론 포로까지 이스라엘의 과거 역사를 회고했다.

32절부터 35절까지는, 이제 현재 자신들의 처지를 기도하고 있다.

 

과거 이야기, 남 얘기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자신의 죄를 자복했다;

우리의 당한 모든 일에 주는 공의로우시니 우리는 악을 행하였사오나 (:33)

 

이것이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다!

이렇게 민족의 문제를 내 것으로 알고, 내가 자복하고 나아갈 때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게 되고

그렇게 될 때, 이적과 기사의 주인공으로 삼아주실 것이다.

 

이번 한 주간동안, 적어도 10, 20번씩 이 말씀을 읽으시면서

찬양의 기도와 자복의 기도를 반복함으로 말미암아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역사를

오늘날 여러분들이 재현해서 누리시기를 바란다.